불멸의 목소리 1 - 남성 성악가편
유형종 지음 / 시공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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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꼬리가 먼저 올라오다.

전두환-전재국-시공사...됐나? 내가 리뷰쓰면 결국 홍보가 될 터이니 이 라인에 일정 기여를 하는 셈이다.뭐 크게 기여하지는 않겠지만...그래도 논리적으로 분명 관계는 있다..최소한 오는 명절에 아버지 '일해'선생께 들어가는 용돈의 일부로 기여되고 있을지도 모른다.1원정도.그렇다고 내가 경남 합천의 '일해공원' 명칭을 찬성해야 하는 건 아니지?... 위에 있는 자본의 흐름은 알면서 '일해공원'은 반대하니까 모순이라고....(멀뚱 멀뚱  (. . )(' ' )(. .)(' ' )...이거 내가 지금 막 만들어 본 건데 어때요? 원래 이런거 있었나요? )

진짜 시작.!!

쓰리테너의 시대는 이제 끝난 것 같다.이미 오페라계에서는 쓰리 테너의 시대가 저문지 오래 돼었다.고도비만 파바로티는 나이가 많고 언니들이 좋아할 것 같은 호세 카레라스는 병원 다녀온 후로는 소리의 빛을 잃었다.둔탁한 고음의 도밍고 만이 여전히 노익장을 과시하고 계시다.월드컵 우승 후보국 출신답게 -2002년 우리나라한테 다 졌던 팀이다-4년마다 한번씩 콘서트를 하시더니 지난 번 부터는 그나마도 보기 힘들어졌다.도밍고가 섹쉬하게 생긴 안나넵트레브코와 미스터 빈처럼 생긴 롤란도 비아존을 데리고 공연하고 말았다.

쓰리테너의 전성기는 역시 70-80년대였다.물론 그들의 공연을 한번도 본 적은 없지만 그 대단한 테너들과 동시대에 살았다는 것은 NBA의 마이클 조던,KBL의 박철순과 동시대에 살았다는 것 만큼 즐거운 일이다.하지만 오페라 팬들은 진정한 테너의 전성시대를 50-60년대로 친다..오페라야 독일도 있고 프랑스도 있고 러시아도 있다만 그래도 원조집으로 치면 이탈리아 아니겠는가.이탈리아 종마들..(사람을 말에 비유해서 좀 그렇지만 쓰다보니 영화<록키>에서 이런 표현이 나왔던 것 같다.이탈리안 종마 록키 마르시아노...ㅋㅋ) 마리오 델 모나코-주세페 디 스테파노-프랑코 코렐리-카를로스 베르곤치. 이렇게 네 명의 이름을 쓰고 보니 그리스 신전을 지키는 네 기둥마냥 무게감이 확 느껴진다.레퍼토리로 치면 모나코가 가장 무거운 쪽이고 스테파노가 가장 가벼운 편인 듯 하다.네 명을 상대적으로 비교하면 그렇다는 것이다.이들은 자기 고유의 캐릭터를 가지고 개성적인 소리를 창조해 냈다.이들 앞에도 또 대단한 테너들이 많았다.카루소-베냐미노 질리-유시비욜링정도면 20세기 초반 쓰리테너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물론 이 책에서 테너들만 다루는 것은 아니다.영원한 리트의 황제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성격파 바리톤 세릴 밀른스,모범적이고 안정적인 베이스 니콜라스 갸우로프,20세기 최고의 보탄 베이스-바리톤 한스 호터 등... 테너가 중심이 되지만 20세기를 대표하는 목소리를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불멸의 목소리>는 사실 새로운 책은 아니다.이미 월간 <객석>에 소개되었던 글을 모아서 새롭게 낸 것이다.나 역시 <객석>을 간간이 보는 편인데 이 책에 나오는 몇 몇 그들은 이미 만난 적이 있다.글의 내용은 거의 유사한 형식을 갖는다.짧게 음악가과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고 간단한 약력 소개가 있다.음악가로서 성장과정과 몇 몇 에피소드,소리나 연기의 특징,그리고 마지막으로 은퇴와 그 후 활동등...성악가의 짧은 평전 형식이다.새로 책을 내면서 책 말미에 그 성악가가 부른,또는 모습을 만날 수 있는 CD와 DVD를 소개한다.또한 <객석> 기사를 책으로 그대로 내는 부담감을 줄이기 위해 이 책에 소개된 위대한 가수들과 동시대에 활약했던 덜 알려진 가수-그러나 유명했던-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친절하게도 장르별,지역별,파트별로 구분해서 정리해주고 있다.예를 들면 독일권의 헬덴테너,스칸디나비아 출신의 테너,독일 리트를 빛낸 바리톤,코스모폴리탄 저음가수.... 결국 이 책에서 언급하는 가수들의 명단을 정리하면 20세기 성악사에서 나올 만한 사람은 전부 나오게되는 셈이다.

이 책을 보면서 관심이 가게된 가수가 베냐미노 질리와 카를로스 베르곤치이다.베냐미노 질리는 옛날 가수여서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가끔 컴필레이션 음반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을때가 있었지만 직직 거리를 소리에 묻혀 지나치기 일수였다.이 책을 읽다 다시 한 번 그의 목소리를 주의깊게 듣게 되었다.요즘 가수들에게서 만날 수 없는 순수함과 고답적인 아름다움이 가득한 목소리였다.베냐미노 질리가 출연하 오페라 전곡을 아직 만나지는 못했다.그러나 지난번에 간 음반가게에서는 그의 아리아집을 뒤적거리는데 많은 시간을 썻다.저자가 말하는 베냐미노 질리의 장점을 좀 옮겨본다.

베냐미노 질리는 성악적으로 완벽한 테너로 불린다.순수하고 아름다운 톤을 지녔으며 특히 그의 메차보체(약음의 테크닉)는 역사상 최고의 절륜이라 할 만하다.의도적인 달콤한 음색이나 흐느끼는 듯한 표현방식으로 통속성을 가미하는가 하면 그와 반대로 풍부한 성량과 극적인 힘을 드러내며 오페라의 드라마틱한 면을 충분히 살리기도 한다.

정열적인 이탈리아 남자들에 가려 조금 손해를 본 듯 한 카를로스 베르곤치도 새롭게 눈에 들어온다.카를로스 베르곤치는 다른 이탈리아 가수들에 비해 선이 조금 가는 편이다.사실 그가 선이 가늘다기 보다는 동시대 활약했던 모나코-코렐리등이 워낙 쩌렁쩌렁했다는 생각이 든다.베르곤치는 열정적인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이지적인 스타일이다.찌르는 하이 C로 브라보를 외치게 하는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지적인 분석와 안정적인 호흡으로 무난하게 하이C를 건드리고 내려오는 스타일이다.그래서 혹자는 베르곤치의 스타일에 호소력이 좀 부족하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저자가 이탈리아 오페라의 특징으로 철부지 남자와 원숙한 여인상을 거론하며 스테파노나 코렐리등을 옹호했는데 이를 베르곤치에 적용하면 그는 너무 철이 든 이탈리아 남자인 셈이다.다른 측면에서 보면 카를로스 베르곤치의 발성이나 테크닉이 다른 이들에 비해 안정적이며 뛰어났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저자가 인용한 이탈리아의 오페라 학자 첼레티의 말을 옮겨본다.

지난 40년 동안 테너는 물론 바리톤과 베이스 중에도 베르곤치만큼 권위있는 베르디를 만나보지 못했다.(그는)리듬의 흐름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호흡하는 법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관객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감쪽같이 호흡하는 기술도 갖고 있었다.그는 작곡가가 요구하는 세세한 프레이징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존재였다.

저자는 이렇게도 말한다.

그의 스타일.극히 정제되고 귀족적인 광채를 뿜는 베르곤치의 특유의 개성을 일컫는 것이다.나는 베르곤치보다 아름다운 테너를 들어본 적은 있어도 그보다 더 우아한 테너는 알지 못한다.

어린 시절 세상에서 기타를 가장 잘치는 사람이 누구이냐를 가지고 자율학습 시간을 논쟁의 시간으로 대체해버린 적이 있었다.흔히들 말하는 '세계 3대 기타리스트'니 뭐니 하는 그런 되먹지 않는 논쟁이었다.오페라 가수들도 마찬가지다.흔히들 쓰리테너라고 말들은 하지만 그들이 모든 오페라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몇 번 도전했다가 참패를 거둔 적도 있고 아예 시도하지 않는 역들도 있다.그럼에도 무림 최고수를 가리듯 누가 넘버 3이고 누가 TOP 10인지 가려내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호세카레라스는 서정적이나 목소리가 바랬다.파바로티는 기량적으로는 찬란하나 표현력과 레퍼토리가 한정적이다.도밍고는 안정적이 중저음과 표현력 그리고 넓은 레퍼토리는 높게 평가할 수 있으나 고음과 소리의 답답함은 늘 아쉽다.이 셋 뿐만이 아니다.주세페 디 스테파노의 고음은 불안불안하다 코렐리는 쩡쩡 울리지만 힘에 너무 의존한다.그럼 어떻게 하나?  간단하다 네거티브 리스닝에서 포지티브 리스닝으로 바꾸면 아주 편안하다.

파바로티의 청량한 딕션과 깨끗한 고음은 얼마나 사랑스러우며 피셔 디스카우의 학구적이며 심오한 리트 해석은 또 어떠한가? 돌이킬 수 없는 목소리 프리치 분덜리히의 미성은 천국에서 훔쳐내고 싶을 정도다.

뱀꼬리가 앞으로 가는 바람에 뒤로 밀린 사두...

나는 이 책을 또 화장실에서만 읽었다.화장실에서 최고로 많이 애용하는 읽을 거리는 신문이나 잡지.이 책의 글들도 잡지 기사였으니 잡지 읽듯 책을 읽었다.그리고 지금은 2권에 해당하는 오페라 디바들을 화장실에 초대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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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1-18 13:20   좋아요 0 | URL
숨은 글이 두 군데 있어요.(으이구 친절하기도 하지.) 원래는 전부 안보이게 해봤는데..^^ 당황해 하실까봐^ ^ (으이구 소심하기도 하지)

글샘 2007-01-19 00:08   좋아요 0 | URL
어째도 전두환은 죽일놈이죠. 나쁜넘.
재미있습니다. 뱀꼬리와 뒤바뀐 뱀 대가리도... ㅋㅋ
 
이문재 산문집
이문재 지음, 강운구 사진 / 호미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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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문재 산문집은 등푸른 고등어같다.그러나 바다를 막건너온 고등어는 아니다.발효의 시간을 거친,이제는 바다보다는 인간과 더 가까와 져 있는 고등어다.그의 문장은 소박한 밥상에 오른 고갈비처럼 맛깔스럽고 그 의미는 한 젓가락 꽉차게 잡히는 흰살처럼 두툼하다.그러나 사물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은 푸른 바다 심연을 누릴 때 처럼 생생하다.시인은 매일 만나는 새로운 것들을 기록하며 등의 푸른 빛이 퇴색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새해 처음 읽은 책이자 오랜 만에 읽은 산문집이다.결론 부터 말하자면 첫 걸음이  너무 사뿐하여 행복하다.김학철 선생의 <우렁이 속 같은 세상> 이후 가장 훌륭한 산문을 만난것 같다.김학철 선생의 산문이 우직한 감나무같았다면 이문재 시인의 산문은 물푸레나무같다.물론 김학철과 이문재 사이에 더 좋은 글들도 많았을 것이다.(나는 과거 유명한 고답적인 산문을 읽는 정도에서 만족했다.)그 중간에 산문을 접해보려고 노력한 적도 있다.그러나 인연이 좋지 않았다.내 나이 또래의 어떤 여류시인의 관념적이며 화려한 산문을 읽다 내팽겨친게 1년도 넘은 일이다.그 후 산문과의 '절연'의 시간이라 할 수 있겠다.과문한 탓에 좋은 글을 찾지 않았던 것이 새삼 부끄러워지기도 한다.어쨋거나 오랜 만에 만난 산문과의 해후가 '이문재 산문집'이었으니 분명 행운이다.(아무래도 올 한해 이 책을 여기 저기 많이 선물할 것 같다.) .

길 위에 살면서도 길 너머를 그리워 한 시인답게 이문재는 디지털화한 세상을 천천히 소요한다.이문재 시인의 글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은 '느림' '아날로그' '몸' '걷기' 등이다.시인은 첫 장부터 '나는 아날로그다'라고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히 밝힌다.스스로 아날로그임을 부끄러워하는 나 같은 도시인들에게 이 선언은 자신감을 가지라고 이야기하는 듯 하다. '아날로그선언'은 내게 DSLR이 없는 것도MP3가 없는 것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또 90년대 후반쯤 나온 것으로 추측되는-글을 치면 가끔 한 줄씩 동시에 나타나기도 할 만큼 느려터진- LG IBM 컴퓨터도 불편해 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모든 '아날로그'는 '기다림'을 특징으로 한다.흔히 인스턴트 식품의 대명사인 '라면'조차 이문재 시인은 '컵라면'에 비하면 '기다림'과 '주체적 이용'이 있기 때문에 이시대의 마지막 음식이라고 이야기한다.만년필이 그렇고 파이프 담배가 그렇다.불편하지만 그것들을 이용하기 까지 '시간'이라는 것이 개입된다. 그 시간은 사물들이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짧은 명상의 시간이 되기도 한다.녹차를 마시는 시간을 예로 든다.

'끓는 물이 식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있고 또 차가 우러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있으며 상대방이 찻잔을 비우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있다.와인이 숙성되고 녹차가 우러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한여름 내내 포도를 키운 먼 곳의 농부를 떠올릴 수 있다.비탈에서 녹차를 따는 아낙네의 깊은 눈망울을 그려 볼 수도 있다.포도를 영글게하고 녹차 잎을 틔워 내는 데에 참여한 우주 전체가 고마울 수도 있다.'

근대의 속도 지상주의는 우리 삶을 점점 피폐화 시키고 있다.사람들은 그것을 발전으로 받아들이지만 늘 그렇지만은 않다.따뜻한 정서의 공간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사라져 간다.골목과 마당에 대한 시인의 생각에는 애틋함이 묻어난다.나이 든 사람의 '옛날이 좋았어' 라는 신세타령으로 보기에는 우리가 잃어버리는 정서의 공간이 너무 크다.

'황혼병이라고 있다.저녁이 되면 공연히 불안 초조해지는 질병..내가 다니던 대학교 앞에는 골목이 제법 많았다. 이모집,작은집,큰엄마네같은 단골 주점이 그 골목안에 있었다....언제든 쳐들어갈 수 있는 선배나 친구의 하숙집,자취방도 그 골목과 모두 이어져 있었다....정동에서 인사동까지 걸어가는 골목길이 나를 다스리는데 한몫을 했다.골목이 특효약이었다.....모든 대도시가 골목을 박멸하고 있다...도시의 실핏줄이 바로 골목이다.실핏줄이 없는 인체가 식물 인간이듯이 골목이 없는 도시는 죽은 도시다.'

그러고 보니 내가 다니던 대학도 무지하게 한옥골목이 많았다.그 골목에 면한 친구 하숙방,버스 끊겨 갈데없는 청춘을 졸린 눈을 비비며 창문을 열고 친구가 맞아 주었다.어떤 때는 주인없는 방에 혼자 들어가 자고 있으면 저 멀리 골목에서 친구의 술에 취한 노랫소리가 들려오기도 햇다.저녁 내내 생각을 하고 술기운을 빌어 여자친구를 데리고간 골목길,순진한 입맞춤 한 번을 못하고 얼마나 똑같은 골목길을 뱅뱅 돌았는지.......오랫동안 가보지 않았지만 아직도 그 골목길에는 사람의 향기가 나고 있을 것이다.고층 아파트 숲에서는 결코 맡을 수 없는 향기이다.

또한 '마당'에 대한 이문재 시인의 기억도 나를 애틋하게 만들었다.그는 당당하게 이렇게 말한다.'나는 안방이 아니라 마당에서 자랐다' 라고.그 만큼은 아니어도 예전에 내가 살던 집 역시 마당이 있었다.내 유년 시절 기억의 많은 부분은 그 마당에서 벌어졌다.하지만 아파트에서 태어나서 아파트에서 살게 될 우리 아기에겐 이런 기억은 별나라 이야기가 될 것이다.그 친구가 나이가 들면 '나는 아파트에서 태어나서 아파트 놀이터에서 자랐다'라고 쓸 지도 모른다.쓰고 나니 더욱 안타깝고 애틋하다.

그는 속도의 무한 경쟁 속에서 편리와 편의를 추구하는 삶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적시한다.수많은 시인들의 감수성의 원천이 되었던 우체국은  편지가 사라지며  각종 공과금 영수증을 보내는 곳으로 바뀌었다.핸드폰은 우리의 새로운 신체가 되어 하늘과 땅,지하를 가리지 않고 우리를 일중독으로 몰아간다.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은 단 한 순간도 각종 모니터를 떠나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모니터는 눈의 창이고 마음의 창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이 '디지털 대세화'는 우리에게 '기다림'을 앗아가 버리고 하늘의 바라보던 푸른 눈빛과 고드름을 만지던 차가운 손을 잊어버리게 했다.시인은 말한다.잊어 버린 몸을 찾고 '발효의 시간'이 주는 미덕을 즐기자고 말이다.

시인은 우선 '언플러그'라는 작은 실천을 제시한다.그는 우리가 '전력의 노예'라고 말한다.도시의 삶에 전기가 빠지면 도시의 존립 자체가 없어진다.아파트 단지에 잠시 정전이 되면 난리가 난다.몇 시간 정전이 되면 9시 뉴스감이다.도시인들의 삶은 플러그를 꽂아 놓았을 때만 작동한다.행여 플러그가 뽑히면 심적으로 무척 불안해한다.그는 '언플러그'를 통해서 '자발적 망명'을 하라고 주문한다.만물이 하나임을 깨닫기 위해서 또 근대화의 속도에 잊혀진 나의 속도를 찾기 위해 그는 '걷기'라는 방법을 제안한다.걸음으로서 모든 풍경이 비로소 자기의 것이 되며 세상과 하나가 될 수 있다.

생태주의적 삶을 지향하는 도시인으로서 시인은 한계를 알고 있다.도시적 삶에 반항하면서도 도시에서 먹고 살고 쓰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중간자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자신에 대한 자기반성에 치열하다.

'나는 아마도 눈부시게 이 도시의 속도에 적응했던 것 같다.말로는,글로는,시로는 유목민의 속도를 떠들고,쓰고하면서도,내 구체적인 삶은 이 거대 도시에서 한걸음도 벗어나지 않았다.'

 생태적인 삶에 대한 동경만 가득한 나같은 이들에게 시인이 보내는 자기반성의 메시지이다.어떤 선배가 올 한해의 다짐으로 '좀 더 까칠해지자' 라고 농담처럼 말했다.그 말이 가르키는 바는 다르겠지만 나 역시 올해 좀 더 나에게 까칠해져야 겠다고 다짐해본다.언제나 문제는 마음으로 부터 손까지의 거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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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7-01-09 22:16   좋아요 0 | URL
어제 주문해놓고 기다리고 있는 책이에요.
기대하면서도 좀 두려워요.
그에게서 스승인 김훈의 냄새가 너무 많이 날까봐요.-,-;
(기우인가요?)

드팀전 2007-01-09 23:09   좋아요 0 | URL
걱정 안하셔도 될 듯 해요.스스로도 김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인정은 하지만 또 그와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말하니까요...저널리스트적인 글쓰기 특징이 언뜻 보이는데 전 개인적으로 그런 글들도 그리 싫어하지 않는답니다.

잉크냄새 2007-01-16 17:12   좋아요 0 | URL
어떤 책을 고를까 고민하다 얼마전 읽은 <농담>이란 시에 이끌려 들어왔고 님의 리뷰로 굳히기 한판 들어가게 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드팀전 2007-01-16 18:01   좋아요 0 | URL
...글 내용중에 좀 중복되는 부분이 있는데 ..그건 그냥 봐줍니다.^^ ..그정도야 하는 허용범위내여서..^^
 
미국민중사 세트 (2권 세트)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 이후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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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죽음이 있었다.선거로 뽑히지 않은 유일한 미국 대통령, 제럴드 포드(1913-2006.12.26)가 9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전 미국인의 애도 속에 그의 장례가 치뤄질 것이다.미국 증권시장도 그의 죽음을 기리는 의미에서 새해 첫 장을 일찍 마감하기로 했다.한 해를 넘기기 전 또 다른 죽음,후세인(1937-2006.12.30)전 이라크 대통령의 죽음이다.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상당히 빨리 형이 집행되었다.바그다드에 있는 과거 그의 정보부 건물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다른 양상의 두 죽음은 그들의 정치적 공과를 떠나서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에 복잡한 심정을 갖게 한다.후세인이 이라크 민중들에게 행한 반인권적 행동은 결코 그의 죽음으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그러나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방식이 과연 정당했는가는 마음 속에 큰 질문으로 남는다.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물러난 닉슨을 대신에서 권좌에 오른 포드,사자에 대한 예의인지 언론은 그의 업적을 미화하기에 여념없다.중동평화를 앞당기고 소련과의 핵협상을 통해 핵불안을 줄였다는 식으로 말이다.그러나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에는 그런 이야기 말고 숨겨진 진실들이 빼곡하다..

제럴드 포드는 1972년 이미 승산이 없다고 판단이 난 베트남전에 미련을 계속 남겼다. 1975년 4월 포드는 이렇게 말했다."만약 의회가 내가 요청하는 시간에 맞춰 7억 2200만 달러의 군사 원조를 가용할 수 있게만 해준다면 남베트남이 오늘날 베트남의 군사적 상황을 안정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을 전적으로 확신하는 바입니다,' 그는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메이어게스호 선원 납치 사건을 빌미로 캄보디어 본토를 폭격한다.선원 39명은 중국측의 중재로 풀려나기로 되어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폭격은 감행되었다.엄청난 인명사상이 발생했다.이 많은 무고한 사상자에 대해 포드는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일까? 종로에서 뺌맞고 한강에 화풀이라도 해야지 베트남에서 구겨진 미국의 자존심을 살릴 수 있다는 이유의 폭격이다.또한  포드는 취임 한달 만에 닉슨에 대해 면책특권을 준다.<르몽드>지는 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한 중요한 발언을 했다. '닉슨을 제거함으로써 워터게이트 스캔들을 낳은 모든 구조와 그릇된 가치는 그대로 남게 되었다.' 하워드 진은 말한다.이것이 미국 주류가 정치를 작동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정치,기업,군부가 유지하는 기성 체제는 형태를 바꾸고 공격에 대처하면서 기존 질서를 더욱 교묘한 형태로 강화해 나가는 것이다.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는 당파성을 인식하라고 주문한다.<미국 민중사>를 이끄는 역사의 주인공들은 흑인,장애인,여자,노동자,인디언,그리고 피학살자 들이다.하워드 진은 자신이 당파성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말한다.

'이 책은 일정한 방향으로 치우친 편향된 설명을 할 수 밖에 없다.그러나 나는 이런 편향에 얽매이지 않는데,왜냐하면 산더미처럼 쌓인 역사책들이 우리 모두를 다른 방향으로 크게 치우치게 만든 나머지-정부나 정치인들을 전율할 정도로 존중하게 만들고 민중들의 운동은 의도적으로 무시하게 만든 나머지-우리로서 굴종 상태로 속절없이 내몰리지 않기 위해 반대의 경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대개 '중도' '중립'에 우호적이다.스스로 '중도,중립' 적인 인물로 이미지 메이킹함으로써 현명하고 합리적인 사람으로 보이게끔 노력한다.(아무리 그래봐야 -미안하게도 -별로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하워드 진은 이런 '합리적'인 사람들이 '구세주'에 의존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즉 위기의 시대를 탈출시켜줄 그런 사람말이다.그들은 4년에 한번씩 투표소에 가서 두 명의 부유한 앵글로 색슨계 백인 남자 중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구세주를 뽑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하워드 진은 이런 '구세주'라는 관념이 정치의 영역을 넘어서 문화 전반에 구축되어 왔다고 말한다.

표현이 '구세주'여서 괜한 공격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구세주'를 찾는 사람들은 '내가 뭐 그리 큰 걸 기대하는 것도 아닌데..그가 그렇게 완벽하리라고 생각한건 아닌데..' 라며 의회 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해 고개를 돌릴 빌미를 줄 것 같다. 유적 표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글을 읽어 보라는 말 이외에 달리 해줄 말이 없다.우리 나라의 경우만 들어도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상황인데... 지난 대선 때- 그리고 실패가 드러나고 있는 - 현직 대통령에게 보낸 열광은 하워드 진의 입장에서 보자면 '구세주'관념에 다른 말이 아니다. 다른 접근의 정치적 지평을 이야기해도 그들은 늘 '현실'을 이야기 했으며  임기가 다 되어가는 시점에선 크게 실망을 하여 이젠 '정치적 허무주의'에 빠져버렸다.(실망의 늪에  빠진 그분들에게 광명의 빛이 다시 비춰지길..)

하워드 진은 이 힘빠진 분들에게 다시 한번 희망을 가지라는 의미에서 이 책을 썻음직하다?

 ".....이런 역사(민중의 역사)를 들춰내는 것은 자기 자신이 인간임을 주장할 수 있는 강력한 인간적 충동을 발견하기 위함이다.이것은 더 없이 깊은 비관주의의 시대에 조차 놀라운 가능성을 버리지 않기 위한 것이다."  (아멘!)

하워드진의 관점에서 사회의 부를 독점하는 1%를 제외하면 나머지 99%는 민중이다.그들 중 하층 계급을 빼고는 대개 체제의 간수 역할을 한다.자본주의가 가장 잘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 바로 이 중간계급층이다.이들은 상층계급과 하층계급의 완충지대가 된다.그리고 체제가 스스로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양보해주는 특권들에 스스로 만족하며 상층계급으로 의식적으로 편입한다.하워드 진은 체제가 만들어 놓은 이 완충지대-중간계급-이 변혁을 위한 열쇠라고 믿는다.이 체제의 간수들이 만약 시스템에서 이탈하기 시작한다면 변혁은 급물살을 타게 되는 것이다. 하워드 진은 변혁 운동이 이 '중간계급의 불만을 조직'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물론 중간계급을 하나의 층으로보는 일원화된 관점이 있다.또한 그들의 헤게모니를 분석하고 재전유하는 방식은 말하지 않는다.)신자유주의의 시대에는 이러한 외부의 상황 변화가 급격하게 만들어지고 있다.하층 계급으로 수많은 중간층이 편입되어 가는 추세다.

하워드 진은 이렇게 말한다.

"99%가운데 자기 자신을 똑같이 궁핍한 계층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록,체제의 간수들과 죄수들 가운데 그들의 공통된 이해관계를 깨닫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록,기존 체제는 점점 더 고립되고 무력하게 될것이기 때문이다.수많은 사람들이 굳게 결심한다면 엘리트들의 무기와 돈과 정보수단의 통제는 아무 쓸모가 없게 될 것이다."

천 페이지가 넘는 <미국 민중사>의 수많은 학살과 봉기,그리고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를 전부 다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우리는 알고 있다.기존의 교과서도 이 정도는 가르친다. 현재의 사회적 평등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역사 속 사람들이 피를 흘렸는 지를.물론 교과서의 수치만 잘 외워서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에서 일하는 생각 바른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하지만 행간을 읽고 그 행간의 의미에 눈을 돌리지 않았던 사람들은 알고 있다.우리의 일상적인 평화는 사실 핏덩어리 위에 구축된 것이라는 걸 말이다.사실 인류의 기원은 폭력과 희생아니던가..문명인이라고 하면서도 그 태곳적 카인의 기억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지금 무슨 무장봉기를 하자는 말은 아니다.다만 우리의 역사가 그런 지평위에 있었다는 것을 왜 외면하냐고 묻는 것이다.또한 아무런 일도 없어보이는 일상 바깥에는  이 책에 넘쳐나는 갈라진 목소리와 핏덩어리들이 사방에 흩어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것이다.아....알고 있다고...TV에서 봤다고...그렇다면 내년에는 지나가다 그 현장에 한번이라도 끼여서 그들의 고민을 좀 들어보자.모니터 안에서 바라보는 역사는 내 안방의 온도만큼이나 따뜻하다.그러나 그건 사실이 아니다.,<미국 민중사>에 나오는 현실도 차갑기만 하다.지금 길바닥에서 터져나오는 역사도 차갑다.그 차가운 바람 한번쯤 맞아보자.차가운 바람 한번 맞아보지 않으면서 사무실에서 교실에서 작업실에서 '정치는 허무해' '이제는 한국사회가 정말 염증나'라고 말하지는 말자.

일나 애버나시의 시의 한 구절

"나는 당신의 양심 긁는 소리, 나를 받아들여라"

<미국 민중사>를 올해 마지막으로 읽었다.한 줌의 지배세력의 욕심과 비인간적 자본주의와 전쟁이라는 장난질에 의해 죽어간 수 천 수 만 명의 이름없는 사람들을 기억하며 한 해를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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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6-12-31 18:31   좋아요 0 | URL
엄두를 못내고 있는 책중 하나입니다
그래도 또 읽어보고 싶어지는.
결국 해를 넘기네요
리뷰를 읽고 나니 더욱 읽어야 할것 같네요 ^^

클리오 2006-12-31 22:54   좋아요 0 | URL
아~ 이 책 정말 봐야 되는데.. 언제 진지하게 도전할런지 모르겠습니다. 그치만, 별 다섯 리뷰의 도움을 받아, 꼭꼭 도전하렵니다!!! 뜬금없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드팀전 2007-01-01 10:08   좋아요 0 | URL
네...몽님도 클리오님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저는 조금 전에 해운대에서 해뜨는 것 보고 회사로 들어왔습니다.이제 곧 집으로 들어가야죠.^^
 
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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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생뎐>은 2006년 동인문학상 최종후보까지 올랐다.그러나 상을 받지는 못했다.문학상이란 것이 그렇다.겉표지에 '00문학상 수상' 딱지를 하나 두르고 있으면 눈이 한번 더 간다.미스 코리아가 두른 어깨띠 마냥 '올해의 소설'띠를 두르면 그 아우라가 1년은 보장된다.한해가 지나가 또 다른 후보들이 신문 문화면을 채우면 고별 행진을 하며 스르르 기억에서 잊혀져간다.물론 아니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아주 오래도록 문어다리보다 질기게 독자들의 입맛을 붇돋아주는 책들도 있다고 말이다.맞는 말이다.올해 동인문학상은 <틈새>라는 작품이 받았다.그럼 작년(2005년)에 무슨 책이 받았을까?....국내 문학을 내 몸처럼 아끼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결국 보편적으로 말해 문학상의 유효기간은 1년이다.2007년 '이상문학상 수상집'이 나왔는데 2006년 수상집을 들고 다니면 왠지 뒤깍이 같아보이기 때문이다.

문학상 수상작품이 그럴진대 아무리 아까운 탈락이라지만 후보작을 오래 기억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을것이다.하지만 <신기생뎐>은 오래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싶은 작품이다.오히려 '2006 00상' 이라는 시간을 한정하는 딱지가 붙어 있지 않기에 더 긴시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글의 처음을 문학상과 관련된 이야기로 풀어서 그렇지 사실 문학상이나 콩쿠르 우승이니 하는 것이 예술가치를 평가하는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어떤 유명한 사람이 그랬다나.."경쟁은 경마장에서 하는 것이지 예술 작품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이현수라는 작가의 작품은 <신기생뎐>이 처음이다.신문에 난 동인문학상 최종후보군을 보고 보관함에 넣어두었다.물론 다른 몇몇 작품들도 함께.그러다가 수상발표가 난 후에야 책을 주문했다.1등 먹은 책보다 떨어진 책에 더 눈이 간 것은 아무래도 삐딱한 우월감이던가 아니면 곧 잊혀질 책에 대한 연민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좀 더 그럴싸한 이유를 대자면 '소재'의 특이성이 마음에 들었다.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이긴 하지만 '일상사'의 질곡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한 소설들에 좀 지루함을 느껴왔다.후일담과 일상의 미묘함의 한 시대를 건너더니 요즘은 가벼움을 동반한 일탈이 패권을 잡는듯하다.무식을 무기로한 일반적 편견일 것이다.어쨋건 나의 부족한 식견은 한국 문학을 그렇게 재단하고 있었다.그 와중에 만난 <신기생뎐>의 소재는 특이해보였다.

내가 아는 기생이라봐야 책이나 영화로 만난게 전부다.대개 조선시대 황진이의 선후배들이다.가끔 정치드라마를 보면 정치인이나 군부 인사들이 모종의 계획을 도모하기 위해 만나는 요정,그리고 그 종업원 기생 정도가 가장 최근에 간접적으로 만난 기생이다.소설 <신기생뎐> 역시 허구이다.하지만 왠지 인간극장을 보는 듯 하다.즉 소설적 리얼리즘이 돋보인다는 말이다.부용각에 모여든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딘지 모르게 한번쯤은소설이나 영화에서 만나봤음직한 내용들이다.상투적이라기 보다는 무언가 원형의 기억같은 것을 툭툭 건드린다는 느낌이 더욱 강하다.

오래된 소나무 향기를 내뿜은 부용각,어머니의 자궁처럼 낮은 사람들의 사연과 욕망,회한을 묵묵히 그러나 포근하게 안아준다.못난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했던가. 옴팡진 눈에 박복한 생김의 타박네는 뒤틀려있어 위태로와보이면서도 수백년 절을 지켜온 일주문의 기둥처럼  등굽어가는 부용각을 건사해낸다.부엌에서 잔뼈가 굵은 그녀는 시장터에서 만나는 욕쟁이 할머니이다.그녀가 내뱉는 말들은 하나의 운율을 이루어 잘만들어진 요리처럼 맛갈나다.욕을 들으며 즐거워지는 것은 그 욕이 세월의 향기속에 숙성되기 때문이다.세속적이지만 약아 빠지지 않았다.실속을 챙기지만 남을 해하지 않는다.무뚝뚝하지만 숭늉같이 -그 말 밖에 없다-그냥 숭늉같은 의리와 인정이 있다.연꽃의 대궁처럼 텅비어가는 기생들을 바라보며 그 텅빈 마음을 채워주는 것이 부엌 흙냄새가 나는 타박네의 역할이다.타박네의 욕질과 적재적소의 옛스런 표현들은 <신기생뎐>의 비타민같다.몰락의 기운이 서려있는 기생들 속에서 그녀는 거울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햇빛과 같다.유려하게 흐르던 흐름은 타박네가 등장하는 순간 액센트를 받는다.셋 잇단음표가 되고 스타카토가 되어 소설의 스피드를 높인다.<신기생뎐>의 완급이 타박네의 말에 의해 조절된다는 것이 재미있다.그리고 캐릭터를 보고 웃음을 띄는 순간, 소설속에서 튀어나와 '너는 뭐하는 종잔데...웃고 지랄이여' 라며 머리통을 칠 것 같은 등장인물의 생생함.작가 이현수의 은근한 공력이 느껴진다.

타박네가 소설의 한축을 이룬다고 하지만 <신기생뎐>의 주인공은 역시 기생들이다.이 소설에는 세 명의 기생이 등장한다.채련,오마담,미스 민.....채련과 오마담은 동기이고 미스 민은 차기 부용각의 기대주이다.이 세명은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아 왔지만 기생이라는 이름으로 똑같은 한의 정서를 지닌다.그리고 셋은 변증법적으로 하나가 되기도 한다.뛰어난 춤솜씨로 촉망받던 채련은 사랑을 얻을 수 없는 처지를 비관하여 이른나이에세상을 접는다.모두를 사랑하지만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할 수 없는 잔인한 운명을 스스로 끊어버린 것이다.유명한 소리꾼도 고개를 떨구개 만든다는 오마담은 채련과는 다른 방법으로 그 운명과 대면한다.자기를 비우는 방법으로 소리를 지키고 부용각을 지킨다.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슬픔은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수많은 남자들에게 몸을 주고 정을 주지만 늘 돌아오는 것은 배신일 뿐이다.오마담은 서운해하지 않는다.그녀는 기생의 삶이 몸에 배게한 허무의 정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지는 벚꽃이 가는 봄을 원망하지 않듯이 대숲의 떠림을 간직한채 그녀는 기생의 운명을 따라간다.미스 민은 마지막 기생이라는 떨리는 감투를 써야할지도 모르는 사람이다.철길 옆의 가난은 그녀를 국악원 대신 기방으로 몰았다.오마담의 허무미와 다르게 그녀는 야망의 푸른빛이 서려있다.소설은 그녀의 기대와 다짐을 통해 사라져가는 문화공간으로서의 기방의 미래에 나지막한 희망을 싣는다.기생들의 캐릭터와 그녀들의 한을 풀어나가는 솜씨 역시 눈여겨볼만하다.특별한 세계를 살아온 그녀들의 이야기가 깨진 독에서 흘러내리는 달콤쌉싸름한 술처럼 흘러내린다.작가는 기생을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예인으로서도 파악한다.물론 예인과 기생은 성과 속의 세계로 나뉘어 살고 그렇게 인정받고 있지만 말이다.오마담의 소리,채련이나 미스민의 춤 등 묘사하는 작가의 호흡과 표현력도 근래 소설에서 만날 수 없는 깊은 맛이 난다.몇 번 씩 소리내서 읽어도 아깝지 않은 문장들이 도처에 깔려있다

<신기생뎐>을 읽다가 책장 위에 꽂혀 있는 최명희의 <혼불>에 눈길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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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1-16 09:45   좋아요 0 | URL
님의 리뷰 멋집니다.^^

2007-01-24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7-01-24 12:24   좋아요 0 | URL
몇 번 씩 소리내서 읽어도 아깝잖은 문장들이 어떤 건지 한번 보고 싶군요. ^^
셋잇단음표와 스타카토... 요즘 피아노 배우다 보니 이런 거 힘들어요. ㅠㅠ 아직 건반 자리도 못찾아 뒤뚱거리면서도 멋지게 폼잡고 앉아서 우아한 선율을 연주해낼 날을 꿈꿉니다. ㅋㅋ 멋진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달팽이 2007-01-24 20:01   좋아요 0 | URL
리뷰가 너무 멋있어 책읽고 혹 실망할런지 모르지만...
일단 보관함으로 옮깁니다.
혼불은 마눌이 사둔것이 눈앞에 들어오는데...
아무래도 열권을 달아 읽을 공력이 딸리는지라...이 책을 먼저 주문해서 들어볼까...생각중..

드팀전 2007-01-25 14:07   좋아요 0 | URL
글샘님>좋아하실 겁니다.피아노는 저도 배우고 싶지만.지금은 좀 곤란.제가 피아노학원다닐때 프로야구가 시작되었는데...그게 늘 가슴의 한이되더군요.박철순이 피아노 건반보다 좋았습니다.
달팽이님>설마... 언감생심 졸렬한 리뷰가 어찌 책을 따라가겠습니까.재미있는 책이고 향기가 있습니다.사람들의 향기,세월의 향기 같은 것들...지난번 모임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에 관심이 있어서 사진을 찍으신다 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이 책이 딱 그러네요.사라져가는 기생들의 이야기니까...
혼불은 대학4학년때 읽었는데...좋았지요.8권인가쯤에는 사천왕상을 중심으로 한 권 통째로 불교문화에 대한 이야기만 있었던것 같아요.그때부터 사찰에 가면 그 의미를 알아보며 꼼꼼히 보기시작했지요.사찰 장식의 이해 같은류의 책들도 사보고..^^...혼불10권이 1부로 알았는데..그 이후 작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멈춰선게 안타까왔습니다.최명희 작가는 모든 글을 육필로 썼다하더군요.원고지가 너덜 너덜한데 뒤에 첨가한 글을 메모지에 써서 본 원고에 붙였다더군요...혼불...그 책을 읽던 대학 시절을 생각하면 ...아련해지는게...마음 한 켠에 바람 한점 휭 지나갑니다.
 
로시니 : 세빌리아의 이발사 - 한글자막 포함
유니버설뮤직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유니버셜에서 최근 나오는 한글 번역판 DVD는 여러모로 평가가 좋다.영어를 따라가느라 음악과 영상에 집중하기 힘든 점을 조금 덜어주기 때문이다.물론 영어가 우리말처럼 편안한 사람들이야 한글 읽는 거나 영어 읽는 거나 오십보 백보일것이다.그러나 대개는 모국어로 된 번역이 빨리 읽힌다.그런면에서 오페라 DVD가 라이센스로 보급되는 것은 오페라의 층을 넗히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우선 유니버셜의 DVD들은 특정 극장과 특정 시기에 상영된 작품들에 많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대개가 메트로폴리탄 극장의 공연이 많다.그렇다보니 남자 주인공은 열에 아홉이 '플라시도 도밍고'이다. 공연물들이 주로 80년대 또는 90년대 초반에 녹화된 것이라는 점도 문제다.화질과 연출이 이 시대의 기대 수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그런면에서 볼 때 가장 최근에 나온 레알 마드리드 극장의 <세빌리아의 이발사>는 그 동안의 유니버셜 DVD의 약점을 어느 정도는 해소해주고 있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이 공연물은 2005년 레알 마드리드 프로덕션의 새로운 작품이다.무대 연출가는 에밀리오 사기이다.공연이 시작되고 서곡이 연주되는 동안 무대 위에서 세트가 만들어진다.검은 그림자들이 여기저기 오고 가면서 세비야의 하얀 거리를 만든다.무대의상은 검은색과 흰색으로 구성되어 있다.이 무채색의 세련된 조화는 2막 마지막 부분까지 이어진다.모든 갈등이 해소되는 극의 마지막 부분이 되면 무대 위는 검은 색과 흰색의 단단한 조화를 벗어던지고 총천연색으로 변한다.갑자기 조르지오 알마니에서 베네통으로 옷을 갈아입는 느낌이다.사랑하는 두연인의 결합을 축하해주기 위해 무대는 동화처럼 바뀌는 것이다.무대 연출가는 이렇게 무채색에서 유채색으로 무대의상의 전환을 생명력의 분출로 설명하고 있다.동화 같은 마지막 부분도 인상적이지만 무대 전체를 이끌고 가는 심플함 역시  매력적이다.흰색과 검은 색으로 구성된 옷을 입어도 스트라이프 패턴,물방울 패턴등을 활용하여 지루함을 없앤다.오히려 무대의 배경과 어울리는 깔끔함으로 기억된다.장면의 전환은 서곡과 마찬가지로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그대로 보여진다.무대를 만드는 과정등은 보너스 DVD에 실려 있다.오페라 무대가 대략 저렇게 만들어지는 구나를 훔쳐보는 즐거움이 있다.

<세빌리아의 이발사>에 출연하는 가수들은 현역 최고의 로시나 가수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사랑에 목메달고 있는 알마비마 백작은 페루의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가 맡았다.몇 년전 부터 오페라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잘생긴 청년이다.전형적인 레제로 테너로 가볍고 탄력있는 목소리가 그를 동시대의 최고의 로시니 테너로 만들어가고 있다.1막 전반부부터 시작되는 카바티나부터 플로레즈는 사랑의 열정에 상기된 젊고 자신만만한 알마비마 백작의 모습을 훌륭하게 그려내고 있다.나름대로 훤칠하게 생긴 외모 역시 비디오가 중요시되는 최근의 오페라 무대의 경향에 비추어 볼 때 큰 메리트가 되고 있다.

로시니의 현명한 여자 주인공 로지나 역은 스페인의 마리아 바요가 맡고 있다.그녀는 모차르트나 헨델음반등으로 국내에도 꽤 알려진 가수이다.플로레즈의 젊음에 비해 외모는 조금 나이 들어 보인다.그러나 그녀의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개성적인 목소리는 현대적인 여성상으로서의 로지나를 잘 표현해내고 있다. 마리아 바요의 음색은 크리스탈처럼 맑다.그녀의 목소리에서는 유리관을 막 빠져 나온  산소같은 생기가 느껴진다.사각거리는 홑이불을 펼치듯이 마리아 바요는 탄력 있는 가창을 들려준다.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부분이 이발사 피가로 역할을 맡은 피에트로 스파논리이다.그는 정말 호남이다.키도 크고 다리도 길다.생긴 것 역시 귀족적이다.플로레즈와 서있는 장면을 보면 어디가 귀족인지 잘 모르겠다.오지랖 넓은 중매쟁이 피가로로 보기엔 너무 멋있다.그는 마치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부의 대농장 소유주처럼 생겼다.그의 가창 역시 희극적이 부분을 살리기에는 너무 점잖은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돈 바질리오에 나오는 루제로 라이몬디는 일단 무척 반갑다.아무래도 자신감있는 목소리는 아니다.그래도  한 시대를 대표했던 베이스가수들 젊은 가수들 틈에서 만나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다.바르톨로를 맡은 브루너 파라티코는 생긴 외모만큼 인상적인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외모는 나이든 늙은 의사와 너무 어울리지만 말이다.

새로운 프로덕션의 작품이지만  실험적이지는 않다.배경은 대략 계몽주의 시대쯤으로 설정해 놓고 있다.실험성 보다는 -바그너나 베르디가 아닌 로시니니 만큼- 로맨틱하며 코믹한 오페라 부파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리는 쪽을 택하고 있다.최근 <세빌리아의 이발사>녹음이나 DVD가 그다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 정도 공연물이면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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