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등학교때 나는 '지구과학' 선택이었다. 하지만 1.2 학년때는 '화학'을 배워야 했다.수업은 거의 3분의 1만 하고 나머지는 자습이었다. 어차피 대입에 선택과목이 아니었으니까...어쨋거나 나는 화학이 싫었다. 내가 고등학교때까지 얻은 점수중에 가장 낮은 점수가 화학과목에서 나왔다.^^

지금도 인문.사회과학에 비해 자연과학과 좀 거리가 있다. 나는 '상대성 이론'과 '특수상대성이론' 이 정확히 뭔지 뭐가 다른지..그리고 그것이 만든 세계관의 변화가 무엇인지 정확히 잘 모른다. 최근에 뉴스위크 비스무리하게 생긴 단행본으로 나왔던데...자연과학 공부 좀 해야겠다.

<잡식성 동물의 딜레마>를 읽다가 '프리츠 하버' 라는 이름을 오늘 처음 알았다.저자는 프리츠 하버가 우리에게 질소를 고정시키는 능력을 주었을 때 '인간은 자연과 파우스트적 거래'를 한것인지도모른다라는 지리학자 바클라프 스밀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프리츠 하버(1868-1934)---네이버에서

독일의 화학자. 암모니아 합성법을 개발해서 현대 인류에게 가장 위대한 화학적 업적을 남긴 인물로 손꼽히고 있다. 물을 전기분해해서 얻은 수소와 공기 중의 질소를 높은 온도와 압력에서 철 촉매를 이용하여 반응시킴으로서 암모니아를 얻는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하버의 암모니아 합성은 퇴비와 천연 비료에만 의존하던 농업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서 단위 면적당 식량 생산량을 6배 이상 향상시키는 데에 핵심적인 기여를 함으로써 수십 억의 인류를 굶주림의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그래서 "공기에서 식량을 생산"하는 하버의 암모니아 합성법의 발명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것이라고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하버가 암모니아 합성법을 개발한 것은 이처럼 좋은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독일은 남미의 칠레에서 생산되는 칠레초석을 수입해서 전쟁에 필요한 폭약의 원료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 때 개발된 하버의 암모니아 합성법은 독일 군에게 연합군에 대항할 수 있는 화약을 제공해줌으로써 1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더 오래 연장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암모니아 합성법에 대한 과학적 가치는 인정을 받아서 1918년에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독일에 대한 하버의 충성은 이것만이 아니다. 그는 인류 최초로 전쟁에서 사용할 살상용 독가스를 개발한 화학자로도 유명하다. 그가 개발한 염소 가스는 1915년 벨기에 전투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어 가공할 화학무기의 개발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버는 자신이 개발한 독가스가 얼마나 위험스럽고 반인류적인가를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권은 자신이 신뢰하고 충성하던 독일 정부 지도자의 몫이라고 선언해버렸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의 민족을 배반하고 독일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바쳤던 하버 였지만, 그의 최후는 비참했다. 그의 비극은 1933년 반유태인 사상을 가진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시작되었다. 어려서부터 자신은 충성스러운 독일인임을 믿고 있던 하버를 히틀러 정권은 "유태인"으로 낙인찍어 버렸다. 1933년에 어쩔 수 없이 실험실을 떠난 하버는 같은 유태인 과학자였던 아인슈타인에게 "내 평생에 지금처럼 유태인이었던 적이 없었다"는 편지를 보내고 영국으로 이주했지만 다음해에 스위스로 가던 중에 쓸쓸한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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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스로 노동자인지 뭔지 별 생각이 없다. 그냥 다른 직원들도 가입하고 뭔가 기댈 벽 하나쯤은 있어야 하니까 가입한다.

2. 치킨런의 닭들처럼 먹을거 많이 뿌려주면 다 잊어버린다.

3. 이번에 내가 직접 끌려가지 않는다면 또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잊어버린다.

4. 회사측이 들고 들어오는 '위기론' '위협론'의 담론을 가치관의 전제로 삼는다.즉 자본주의가 원래 공포를 무기로 삼는지 알지 못한다.

5. 사측이 제공하는 타협안을 대게 합리적 이성을 소유한 사람이라면 거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6. 원칙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원칙을 말하기는 쉽다' 라고 소리를 높인다.그러나 생각해보면 언제나 '원칙을 말하고 실행하는 길'이 '타협'을 하는 길 보다 어렵다. '타협'은 가서 도장찍으면 되는 일 일 뿐이다. 스스로 쉬운 길 가겠다는 것을 이렇게 돌려서 역으로 뒤집어씌운다.

7. 매번 쟁점이 발생하면 소급해서 '(과거에) 우리가 기회를 놓쳤어'라고 말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이번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할 것이 분명하다. 기회는 오는 것이 아니라 잡는 것이라는 사실은 항상 과거완료로 이해한다.

8. 노동자가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자 무기인 '직접행동'이라는 무기는 우리 집안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9. 회사측의 개량적인 타협안을 언제나 '커다란 과실'로 착각한다. 신용할 수 없다고 말하고 또 매번 그렇게 배반을 당하면서도 '이번은 다르겠지'라고 믿는다. 닭은 동료 90마리를 기억한다고 하는데 닭대가리라고 하면 닭에게 미안한 일이다.

10. 최음제를 치료제로 아는 것은 물론이고 더 닭같은 짓은 '최음제'를 스스로 '치료제'라고 큰소리로 말하고 다닌다.

11. 나 진짜 협회니 노조니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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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05-21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신들이 싫어서 노조 확 탈퇴하고 싶다고 말한다.ㅠㅜ

느티나무 2008-05-21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규직 노조원으로서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 ^^;;해 봤어요~~!!ㅠㅠ
늘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시니 고맙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벼리다 보면 실천으로 이어질 날이 있겠지요.ㅋ
 

....이번주 시사IN을 보다가 김종철 교수(지금은 교수가 왜 아닌지 시사인을 통해 알았다.)의 인터뷰가 실려서 쭈욱 읽어봤다. 생태근본주의에 대해서는 나는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환경을 걱정하고 아이들의 미래를 근심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환경,생태주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에 하나다. 하지만 그것이 진보의 대안적 모델이라는데는 동의할 수 없는 입장이다. 김종철 선생은 생태공동체의 확산만이 근대적 모순을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생태 공동체의 의식을 가진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경향에 대해 '근대 국가의 폐지론'보다 훨씬 더 현실적인 변화라고 말한다. 가장 극적인 변혁방식은 '탈주'라는 말에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그 '탈주'의 정치적 관계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한다. 생태주의에 대한 막연한 공감에는 늘 그런 부분이 빠져있다

“적당한 성장은 자본주의 극복 전략”
입력: 2008년 05월 19일 17:32:48
 
ㆍ백낙청, 김종철 비판 반박 … 진보진영 ‘성장’ 논쟁

“생명의 발전에는 일정한 물질적 여건이 필수적이며, 어떤 영역에서는 물질생활의 지속적 향상이 요구될 수도 있고 이런 필요에 부응할 적극적인 개발도 있어야 한다. 현시점에서 한국경제가 일정한 성장동력을 유지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백낙청)

백낙청 ‘창작과비평’ 편집인

“자본주의 논리에 근거한 경제성장이란 언제나 가동 가능한 모든 인적·물적 에너지를 전면 투입할 것을 요구하므로 ‘적당한 경제성장’이란 성립할 수 없다. 정말 필요한 것은 성장 없이는 존속할 수 없는 근대적 방식에 대해 ‘적응’을 말할 게 아니라 성장 논리와는 무관한 질적으로 다른 삶, 즉 비근대적 방식으로 방향을 전환하려는 급진적 노력이다.”(김종철)

진보진영 내에서 ‘성장 논쟁’이 불붙었다. 계간 ‘창작과비평’의 백낙청 편집인(70)과 격월간 ‘녹색평론’의 김종철 편집인(60) 사이에서다. 자신이 창간한 잡지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목소리를 일관되게 내며 한국사회 진보담론을 이끌어온 두 지식인은 최근 상대방의 성장, 개발에 대한 관점을 비판하는 글을 주고받았다.

김종철 ‘녹색평론’ 편집인

논쟁의 장은 창비가 마련했다. ‘녹색평론’을 통해 생태와 자치 민주주의 사상을 펴온 김 편집인이 창비 측의 ‘한반도에서의 근대와 탈근대’ 특집기고 요청에 따라 창비 지난호(2008년 봄호)에 쓴 ‘민주주의, 성장논리, 農的 순환사회’라는 글을 통해 백 편집인의 ‘적당한 성장론’을 비판했다.(경향신문 2월22일자 26면 보도)

김 편집인은 이 글에서 “경제성장을 계속하면 환경과 인간성을 파괴할 수밖에 없음을 잘 아는 백낙청이 고심 끝에 내놓은 처방이 ‘방어적인 경쟁력 노선’ 또는 ‘적당한 경제성장’ 개념인 듯하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의 추상적 언술로 성립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과연 구체적 현실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전략인지 분명치 않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직선적인 진보를 추구하도록 강요하는 근대주의적 발전사관의 덫을 벗어나 토양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상호그물망 같은 호혜적 관계가 복원된 소농과 그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생태적 순환사회를 이뤄야 한다”고 했다.

이에 백 편집인이 최근 나온 창비 여름호(140호)에서 쓴 ‘근대 한국의 이중과제와 녹색담론’을 통해 김 편집인의 비판을 반박했다. 백 편집인은 “나의 적당한 성장 개념은 어차피 자본주의 체제 아래 살아갈 수밖에 없으면서도 현대 한국, 즉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특정 시기 특정 지역에서 이 현실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살고자 하는 처지에서의 구체적인 대응전략으로 제안된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가 말하는 ‘적응’은 “극복하기 위해서도 최소한으로 필요한 적응, 극복 노력이 따름으로써만 ‘투항’이 아닌 주체적인 ‘적응’ ”이다.

백 편집인은 “물론 새 정부 출범 이후 더욱 기승을 부리는 성장주의와 개발주의의 광풍 속에서 근본주의적 반대운동의 효용은 그것대로 소중하다”면서도 “그러나 좋은 이야기라도 논리가 그토록 허술해서는 긴 싸움에서 승리할 방도가 안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허술한 논리’라는 비판은 김 편집인의 주장이 “어차피 자본주의체제 아래 살아갈 수밖에 없으면서도 현대 한국, 즉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특정 시기 특정 지역에서 이 현실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살고자 하는 처지에서의 구체적인 대응전략”으로 현실성이 있느냐 하는 의문이다.

백 편집인은 “개인이건 국가건 자본주의의 무한 축적 원리에 충실해 최대한의 돈벌이에 목을 매고 사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적어도 개인이나 한정된 집단 차원에서는 그런 세태에 맞서 자신을 지켜내고 나아가 이런 기막힌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돈벌이를 하고 경쟁에서 탈락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라며 “당장 나 자신과 김종철을 이런 개인들 틈에 포함시켜도 되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그는 “나 역시 김종철처럼 바람직한 사회는 자본주의시대의 과소비에 비하면 사람들이 ‘고르게 가난한(共貧)’ 생활에 자족하는 사회라고 믿는다”면서도 “하지만 비록 깨끗하고 따뜻한 가난일지라도 그것을 배타적 목표로 설정하는 것은 하나의 편향”이라고 했다.

백 편집인은 “환경운동이 역사적 소임을 감당하려면 스스로도 ‘산업화 대 농업화’ ‘자본주의적 과소비 대 공생공락의 가난’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것들이 발생할 가능성을 좀더 골똘히 읽어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두 지식인 사이의 논쟁은 침체돼 있던 진보진영에 생산적 토론의 부활을 알리는 것으로 보여 향후 논쟁이 주목된다.

<손제민기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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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8-05-21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비와 백낙청 선생이가 어떤 흐름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녹색평론의 주장을 알고 나 역시 내 세계관의 일부로,또 일상에서 접점을 만들어 가고 있지만 그것은 체제가 수용할 수 있는 범위의 '차이'의 정치라는,즉 지젝이 말하는 '유사능동성' 정도의 하나로 포섭될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해하리라고 생각한다.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 영화제목이 좀 길다. 제목만큼이나 상영시간도 길다. 대략 2시간 40분 정도

이 영화는 극장에서 볼 수 없다.

바로 DVD로 나왔다. 전주 국제 영화제를 찾았던 행운아들은 이 영화를 큰 스크린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행운아들이고 그들의 심미안에 박수를...

올해 나를 가장 기쁘게 했던 영화는 코언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였다. 내 주변 반응은 '그게 도대체 뭔 말이에요' '뭐야..끝이 그게' '아...진짜 답답하네' 가 대부분이었다. 이들 중 대부분은 봉태규가 나온 <가루지기>에 더 큰 박수를 보낼 듯 하다. 취향이야 취향이니까..박수를 보내도 상관없다.하지만 자신의 예술적 경험의 일천함과 텍스트를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의 부재를 자신의 무기로 삼아 당당하게 그런 류의 영화를 매도할 때는 정말 정말 마야코프스키의 싯구를 실행에 옮기고 싶어진다.

이 영화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이후에 가장 훌륭하다. 서부시대 실존했던 제시 제임스라는 갱 역학을 맡았던 브래드 피트는 이 영화로 부활했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는데 충분히 그럴 만하다.

영화는 서부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열차 강도 한 번 이외에는 별 다른 액션이 없다. 영화 제목이 이미 제시 제임스의 죽음을 밝히고 있으니까 제시 제임스가 로버트 포드에게 죽는다는 것을 알려도 그닥 스포일은 되지 않을 듯 하다. 제시 제임스가 죽는게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는 20살이 된 로버트 포드가 제시 제임스 일당에 합류하면서 시작한다.로버트 포드 역을 맡은 유약하며 지적으로 보이는 친구는 커시 애플렉이다. 이름이 좀 낯익지 않은가? <굿 윌 헌팅> <아마게돈> 등에 출연했던 밴 애플렉의 동생이다.

로버트 포드는 제시 제임스의 추종자다. 요즘말로 하면 열혈 팬이다. 그의 기사를 수집하고 그와 관련된 픽션들을 모두 읽는다. 심지어 그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 까지 기억해낸다. 이 소심해보이는 청년이 장차 제시 제임스의 암살자가 되는 것이다. 그에게 제시 제임스는 우상이자 아버지이고 또한 절대적 가치이다. 그랬던 그가 왜 제시 제임스를 죽이고 할 까? 니체적인 의미로 말하자면 아들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함이었을까...아니면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의 주인공처럼 절대적인 미에 대한 타나토노스적 충동이었을까..

아..돌아온 브래드 피트...

브래드 피트는 영화<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뽀쏭 뽀송한 그였을때가 가장 좋았다.

그 이후..나는 그에 대해 별 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파이트 클럽>에서 뭔가 좀 다른 느낌을 주었지만...

이 영화로 한 방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제시 제임스라는 인물은 이 영화에서 정말 매력적이다. 그가 '안티 히어로'로서 매력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는 악마적으로 집요하면서 이웃집의 선량한 가장이기도 하다. 그가 어린 아이를 상대로 고문에 가까운 폭력을 행사하고 나와서 잔설이 남아 있는 벌판에서 말에 기대어 우는 장면은 그의 복잡한 내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성과 속'을 동시에 가진 인물이다.또한 '폭력과 침묵'을 동시에 품고 있는 사람이다. 브래드 피트는 이런 양가적인 내면을 가진 인물을 하나로 브랜딩해 내는 일에 성공했다.



영화는 아주 느릿 느릿 진행된다. 중반부까지는 도대체 어디까지 가려고 그러나 싶을 정도다. 마치 첼리비다케의 브루크너 교향곡을 듣는 느낌이다. 지붕에서 땅을 향에 떨어져 내리는 거미줄처럼 흔들거리며 중심으로 치닫는다. 장면들은 눈 내리는 소리처럼 침묵과 침묵 사이를 매운다. 실제 영화에서도 눈 덮인 장면이 자주 나온다. 서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눈 내린 장면은 이 영화에서 처음 본다.

감독의 연출력이 빛을 발하는 지점은 느린 템포 속에서 극적 사건을 맞아서 느림과 느림을 충돌시켜 긴장감을 극화하는 방식이다. 이건 정말 눈여겨 볼 만하다. 여러 장면들에서 그런 '느림의 긴장감'을 맛볼 수 있는데...위 사진에 나온 씬도 그런 장면 중에 하나이다. 두 형제가 제시 제임스라는 거목을 잡으로 들어가기 전에 시선을 나누는 장면이다. 누런 풀빛이 눕는 와중에 아무런 대사도 없이 둘의 얼굴과 펌프질하는 물 떨어지는 장면가지고 거사를 앞둔 긴장감을 표현해낸다. 이런 표현이 좀 뭣하지만 아름다운 장면이다. 영화는 씬과 씬 사이의 이동장면이나 나레이션 장면에서 매혹적인 장면을 선사한다. 때로는 화각을 왜곡하거나 유리를 통해 비춰지는 장면들로 미장센을 구성함으로써 다분히 몽환적이고 선적인 느낌을 준다. 

영화는 제시 제임스 암살 이후에 조금 더 진행된다. 제시 제임스를 800번을 죽인 로버트 포드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가슴을 누군가에게 한 웅큼 움켜 잡혀 있는 먹먹함을 준다. 돌아보니 영화 내내 제시 제임스는 타자였을 뿐 로버트 포드가 나의 한 구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가 조연같은 주역이기도 했고 그의 시점이 중심이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려는 카메라 앞에서도 나는 로버트 포드의 좌심방 한쪽 구석에 몸을 숨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시 제임스는 로버트 포드의 뒷덜미를 바라보면서 의자에 앉아 시거를 피우고 있다.  

영화 길다. 그런데 이 영화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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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5-13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님 너머 어려와서 잘 오지 말아야지 생각하다가
좋다, 아름답다
이런 평 쓰신 거 보니
왜 이렇게 위로가 되는 걸까요
지금도 영화 본 거, 책 읽은 거(소설로만)
양 손에 꼽힐 정도지만
좋다, 아름답다의 책이나 영화는 보고 싶다 읽고 싶다
생각해요
그렇다고 보고 읽고는 거의 못하지만요
비가 와서 세상이 깨끗해 보이네요

드팀전 2008-05-13 09:15   좋아요 0 | URL
^^어려울때도 있고 아닐때도 있고가 주관적인거라서..참 그러해요.^^
어려운 걸 쉽게 쓰려면 충분한 소화가 있어야지 본질을 훼손시키지 않으며 할 수 있으련만 그렇게 하기까지에는 제 능력이 아직 부족하겠지요..

이 영화도 스토리는 단순해보여도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지도 모르지요.
날씨가 좋아서 눈이 맑아집니다.

비로그인 2008-05-19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모잘라서 어려울 때와 아닐 때의 기복을 넘어서려면 죽을 만큼 노력을 해야 해요
죽을 만큼 힘 쓰고 났더니 사는 게 말이 아니네요
사느라고 충분히 저를 읽지를 못해요
일주일 동안 또 행복하세요
 

아침 6시 운동 가다가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들었다. 1부 마지막곡 으로 <인터내셜널가>가 나왔다. 한국어로 부른 노래는 또 놀랄 인간들이 많을테니까 PD가 외국곡으로 선곡했다. 누가 불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고 락 비트로 편곡된 곡이었다.

노동절 아침에 듣는 <인터내셔널가>.그것도 라디오에서...갑자기 그 라디오에 잘 들었다고 문자라도 남겨주고 싶었으나 핸드폰을 들고 오지 않았다.

 

.................................아래는 레디앙 기사를 재인용합니다.

깨어라 노동자의 군대, 굴레를 벗어던져라...” 오늘은 메이데이. 해마다 5월 1일이 되면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 거리를 행진하며 해방을 향한 영원한 투쟁을 선언한다. 이 때 반드시 부르는 노래가 바로 “인터내셔널가”다. 인터내셔널가는 도대체 언제,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걸까?

 인터내셔널가의 아버지는 파리꼬뮌에 전사로 참여했던 프랑스인 외젠 포티에Eugene Pottier다. 사회주의자였으며 운수노동자였고, 시인이었던 그가 파리꼬뮌을 기념하기 위해 1871년에 쓴 시가 노래의 기원이 됐다. 당시의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은 이 시를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에 맞춰 불렀다. 그러던 중 1888년 역시 프랑스인인 피에르 드제이테Pierre Degeyter가 곡을 만들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터내셔널가의 멜로디는 이때 처음 생겨났다. 생각보다 그리 오래된 노래는 아닌 셈이다. 드제이테는 곡을 만들면서 운율 등을 고려해 가사를 일부 수정했다. 따라서 포티에가 파리꼬뮌의 시기에 쓴 원작 시는 그 이후 프랑스 안에서도 점차 잊혀졌다. 지금은 자료로만 남이 있을 뿐이다. 라 마르세예즈에 맞춰 부른 인터내셔널가는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참여했던 제1인터내셔널의 주제가가 됐다. 그러나 첫 번째 인터내셔널은 이 노래가 나온 다음해인 1872년에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의 분열로 인해 사실상 문을 닫았다. 드제이테가 새로 곡을 붙인 인터내셔널가는 1889년 두 번째 인터내셔널이 결성되자 즉각 사회주의자들의 찬가로 채택됐다. 이후 유럽을 넘어서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고 알려지기 시작했다.

 75종이 넘는 다양한 가사가 존재 ▲

 1900년대 인터내셔널가 악보의 표지 아마 ‘생일축하’노래 정도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불려지는 노래가 인터내셔널가일 것이다. 심지어는 같은 나라 안에서도 서로 다른 가사들이 존재할 정도다. 가장 많은 것은 영어로 된 인터내셔널이다. 영국에서만 두 가지의 다른 가사가 존재한다. 큰 차이는 아니지만 확실히 다른 형태를 띠고 있다. 미국에서는 영국에서 수입된 가사를 부르다가 전국단일노조 운동을 벌였던 아나코생디칼리스들인 IWW가 1900년대에 만든 새 가사가 표준이 됐다. 이외에도 캐나다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부르는 조금 다른 형태의 영어가사가 존재한다. 이처럼 같은 영어권이면서도 서로 가사가 다르고 특히 인터내셔널의 영어 번역은 구어체의 문장과 딱딱한 단어들의 남발로 악명이 높았다. 그래서 영국의 좌익 뮤지션인 빌리 브랙Billy Bragg은 1990년 미국의 저명한 포크가수인 피트 시거Pete Seeger와 함께 새로운 영어 가사를 만들었다. 쉬운 단어와 현대영어에 맞춘 가사로 더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들이 노래를 부르게 하기 위해서였다. 현재는 영국에서는 빌리 브랙의 새 가사가 널리 통용되고 있으며 미국에서도 나이 많은 좌익들을 제외하고는 새 가사로 바뀌는 추세라고 한다. 이외에도 독일어나 이탈리아어, 에스파냐어 모두 대여섯개 이상의 다른 가사를 가지고 있다. 초기에 프랑스 가사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차이가 생기기도 했고, 사회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이 서로 다른 내용을 집어넣으면서 차이가 생기기도 했다. 에스파냐어의 경우 유럽과 라틴아메리카라는 지리적 차이 때문에 가사에 변형이 생기기도 했다. 반면 러시아어 가사는 하나뿐이다. 망명 중인 레닌이 초기 번역 중 하나를 선택해 ‘공인’한 이후 아무도 가사에 손을 대지 않았다. 레닌의 권위 때문이었는지 당에 대한 공포였는지는 알 수 없다.

서로 다른 한글 가사도 3개나 있다

일제시대-북한 가사의 후렴에는 ‘판갈이 싸움이니’라는 구절이 나온다. 민주노동당의 ‘판갈이’ 구호는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셈이다. 일어나라 저주로인 맞은 주리고 종된 자 세계 우리의 피가 끓어 넘쳐 결사전을 하게하네. 억제의 세상 뿌리 빼고 새 세계를 세우자. 짓밟혀 천대받은 자 모든 것의 주인이 되리. [후렴] 이는 우리 마지막 판가리 싸우미니 인터나쇼날로 인류가 떨치리. 이는 우리 마지막 판가리 싸우미니 인터나쇼날로 인류가 떨치리 하느님도 임금도 영웅도 우리를 구제 못하라 우리는 다만 제 손으로 헤방을 가져오리라 거세인 솜씨로 압박 부시고 제것을 찾자면 풀무를 불며 용감히 두드려라 쇠가 단김에 [후렴] 반복 우리는 오직 전세계의 위대한 로력의 군대 땅덩어리는 우리의것이니 기생충에게는 없으리 개무리와 도살자에게는 큰 벼락 쏟아져도 우리의 머리 우에는 찬란한 태양이 비치리 [후렴] 반복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한글로 된 가사도 여러 개가 존재한다. ‘어, 우리말로 된 인터내셔널가가 또 있다고?’하며 놀라겠지만 한국어 인터내셔널가는 모두 3종류다.

 우선 일제시대에 ‘인터나쇼날’이라는 제목으로 불린 첫 번째 가사가 있다. 정확히 인터내셔널가의 한글 번역이 언제 이뤄졌는지 알기는 어렵지만 대략 1922년 일본어 가사가 처음 만들어진 이후로 추정된다. 한글 가사와 일어 가사는 서로 내용이 달라 일본가사를 번역했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일본 가사의 특이한 후렴구조가 한글 가사에서도 나타나는 것을 보면 일본가사를 참고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일제시대의 가사는 지금도 북한에서 불려지고 있다. 다만 제목은 ‘국제가’ 또는 ‘국제공산당가’라고 한다. 주로 의전용으로 사용되며 북한 민중들이 일상적으로 부르는 노래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반도의 남쪽에서는 전쟁을 통해 좌익과 이에 연관된 모든 것들이 분서갱유 당했기 때문에 ‘인터내셔널가’는 완전히 잊혀져 버렸다. 80년대 들어 민중음악 활동가들이 외국에서 악보를 다시 들여오면서 복원됐다. 처음에는 영어 가사를 직역한 듯한 노래말로 매우 투박한 인상이었다. 제목도 “역사의 새 주인”이었다. 이후 보다 매끄럽게 한글 가사를 다듬은 노래가 전노협 시기 노동운동 노래패를 통해 보급됐다. 이 가사가 지금 우리가 부르는 “인터내셔널가”다.

 인터내셔널가의 어두운 면 인터내셔널가는 노동자 계급의 투쟁과 해방, 국제주의를 찬양하는 노래다. 하지만 이 노래가 항상 영광 속에서만 불려졌던 것은 아니다. 우선 당연하게도 20세기 초반까지 대다수의 나라에서 인터내셔널가는 금지곡이었다. 이에 상관없이 사회주의자와 공산주의자와 무정부주의자들은 집회와 모임에서 노래를 합창했지만 이는 경찰의 단속 대상이었다. 1917년 혁명 이후 인터내셔널가는 소비에트연방의 국가가 됐다. 그러나 스탈린은 히틀러와의 전쟁 중인 1944년 이 노래 대신 새로 만든 ‘소련찬가’를 국가로 삼았다. 인터내셔널가의 국제주의를 소련찬가의 애국주의로 교체한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코민테른(제3 인터내셔널)을 해체했다. 그 이전인 1935년 모스크바는 프랑스 공산당에 프랑스어 인터내셔널가 중 군대에 대해 적대감을 드러낸 구절을 부르지 말라고 지시했다. 프랑스와 관계 개선을 추진하던 소련이 프랑스 군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터내셔널가는 전 세계 노동계급과 사회주의자들에게 국제주의와 국경을 넘어선 단결을 호소하는 노래다. 이념은 달라도 사회민주주의자부터 공산주의자까지 모두 이 노래를 부르지만 때로는 이념적 차이를 드러내기도 한다. 포르투갈에서는 지금도 공산당원들과 사회당원들이 서로 다른 가사의 인터내셔널가를 부른다. 칠레 사회당과 공산당의 인터내셔널가도 조금 차이가 있다. 인터내셔널가와 얽힌 비극적 기억 중의 하나는 1989년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 사건이다. 당시 광장에 모여 개혁을 요구하던 학생들은 운동가로 이 노래를 불렀다. 아마도 1980년 서울의 봄 때 서울역에 모인 대학생들이 많은 사람이 아는 고향의 봄이나 애국가를 부른 것과 비슷한 이유로 중국의 학생들도 인터내셔널가를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은 ‘노동자 군대의 각성’을 노래하다 인민해방군이 보낸 탱크에 희생됐다.

 영화를 통해 만나는 인터내셔널 ▲ 영화 <랜드 앤 프리덤>의 포스터 인터내셔널가는 워낙 많이 알려진 노래고 또 노동운동과 좌익운동을 상징하는 노래인 만큼 이런 주제를 다룬 영화나 기록 영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앞서 한국전쟁 이후 남한에서는 인터내셔널가가 자취를 감췄다고 했는데 한번 이 노래가 대중적으로 공개된 적이 있다. 65년 개봉된 영화 <닥터 지바고>에는 1분 정도 이 노래가 배경으로 깔리는 장면이 있다. 아마 전쟁이후 인터내셔널가가 남한에서 공공연하게 공개된 첫 번째 사례이겠지만 이게 무슨 노래인지 알아챈 사람은 그리 만치 않았을 것이다. 러시아혁명을 취재한 미국의 공산주의자 언론인 존 리드의 삶을 다룬 영화 <레즈>에서는 시종일관 이 노래가 흘러나와 인터내셔널가를 배우는 교재로는 따 안성맞춤인 영화였다. 그러나 워런 비티 같은 인기스타가 나오고 아카데미 감독상까지 받은 영화임에도 1981년이라는 시대상황 속에서 국내개봉은 못했다.

인터내셔널가가 가장 인상적으로 사용된 영화는 켄 로치 감독의 <랜드 앤 프리덤>일 것이다. 스페인 내전을 다룬 이 영화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모인 국제여단의 전사들이 파시스트들과의 전투에서 죽은 동지를 묻으며 장송곡 대신 이 노래를 합창하는 장면이 나온다. 국제주의라는 노래의 테마를 이보다 더 잘 살려낸 장면은 앞으로도 보기 드물 것이다. 인터내셔널가를 들을 수 있는 영화 중 가장 황당한 것은 <에어포스 원>이다. 해리슨 포드가 테러리스트 잡는 대통령으로 나온 이 ‘무협영화’를 보면 러시아에 체포된 카자흐스탄의 독재자 장군이 테러리스트들의 협박으로 풀려나는 장면에서 감옥 안의 죄수들이 독재자를 위해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반북집회에 모인 우익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격이다. 인터내셔널가는 카피레프트일까? 많은 사람들이 인터내셔널가는 좌파의 노래고 오래된 곡이니까 저작권과 상관없이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이 노래는 지금도 저작권의 보호를 받고 있다. 프랑스에 한정된 이야기지만 인터내셔널가는 2014년까지 저작권을 보호받는다. 이 노래를 작곡한 피에르 드제이테는 1932년 사망했다. 작가의 사후 70년 동안 저작권을 인정하는 프랑스 법에 의해 2002년까지 보호를 받지만 두차례의 세계대전동안의 기간을 제하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2014년까지 보호되는 것이다. 실제로 2005년 프랑스의 한 영화 제작자가 이 노래를 사용하기 위해 1,000유로를 지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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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de 2008-05-01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님 덕에 처음으로 들어봤어요 ^^; 얼마전엔 미국 국가도 모르냐고 구박받았었는데 -_-; 지미 헨드릭스가 기관총 소리 흉내 내던 그 동영상 보다가요 ㅋㅋ

근데 레닌 아저씨가 저렇게 생겼었군요. 전 체 게바라 같은 이미지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

바람돌이 2008-05-01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어포스원에서 인터내셜가는 정말 황당 그자체였죠? 부르르 했어요. ㅎㅎ
전 오늘 아침 출근길에 차 없는거보고 아 노동절이구나 했어요.

글샘 2008-05-02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철북에선가... 인터내셔날가가 나요죠. 정말 가슴을 후끈하게 하는 노래였는데요...
이젠 그 별들은 다 어디로 간 건지...

팥쥐만세 2008-05-13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팀전님의 글을 두번째로 찜해갑니다.
인터내셔날가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