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한겨레 21에서 <쓰촨성을 보듯 북한을...> 이런 기사를 읽었다. 굶어죽는다는 것...세계의 비참이다.

정당을 비롯해서 6군데 정도 돈을 내고 있는 듯 하다. 만약 내가 경제적으로 더 힘들어져 하나씩 중단해야 할 경우를 생각해 봤다. 먼저 취소할 기부부터 정리해봤는데... 결론적으로 가장 끝까지 남을 것은 '긴급구호지원'이나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 지원' 이다. 왜냐하면 '배고픔'에는 좌와 우가 남과 북이 따로 없기때문이다. 특히 기아로 어린이들이 죽어야하는 상황에서 정권이 어떻니 전략이 어떻니 하는 것은 좀 아니다.

 나는 한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로서 아이들의 죽음에 울컥해진다. 그러면 가끔 어떤 사람들은 국내에서 기아로 허덕이는 아이들이 많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비참한 일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질적 차이가 있다. 절대적 식량 부족의 문제라기 보다는 제도적 분배장치와 구석구석까지 살필 수 있는 자원과 시스템의 부재가 가장 크다. 즉 정치의 문제이지 절대적 부족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도 얼마나 평범한 사람들의  멀쩡한 음식들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고 있는가...패밀리 레스토랑은 주말에 예약하지 않으면 1시간 기다리기는 기본이다. 북한은 현재 그렇지 않다. 절대적 식량 부족은 객관적 사실이다.

나는 북한정권을 지지하지도 않고 일말의 애정도 없다. 프랑켄슈타인 정권이다. 그렇지만 쌀을 보내주면 북한 정권만 배불리게 한다는식의 조중동논리와 그걸 마치 무슨 정치적 혜안을 가진 합리적 사람인양 착각하는 분들께는 분노한다.

나는 한 아이를 키우는 아버지로 죽어가는 자식을 바라보는 북한 아버지의 마음을 함께 아파하며 지원한다. 그 아이들이 이 고비를 잘 넘겨서 언젠가 예찬이와 만날 수 있길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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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06-14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안그래도 요즘 북한 아이들 소식에 마음아파하고 있었는데... 감사합니다. 저도 힘을 보탤게요.

글샘 2008-06-14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blog.aladdin.co.kr/booknamu/2136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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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ㅜㅜ

화물연대가 파업에 들어갔다. 나는 조금 전 '민노총 파업 찬반투표'를 하고 왔다.

"소에게는 풀을 우리에게는 꿈을 언론에는 자유를"

 개인적으로도 좀 아는 분의 거취를 두고 아고라에서 청원운동을 벌이고 있다. 부산 동의대학교 신태섭 교수다. 이명박 정권이 하는 짓이 이렇다.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검색해서....^^ 거저 얻는 것 보다 검색이라는 노력을 통해 찾아봐야쥐.. ^^

철강코일을 가지고 프레스작업을 하는 공장에 잠시 다녀왔는데...공장 안의 기계 소리는 옆에 사람의 목소리도 알아듣기 힘들 정도였다. 날씨가 더우니 공장 아저씨들은 귀마개도 안하고 그냥 일을 하신다. 외국인 노동자도 언뜻 보이고...

하루 종일 똑같은 표정으로 프레스에서 찍혀나오는 물건들을 소음 속에서 옮기는 일을 할게다.

맑스의  '소외' 와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가 거대한 기계 굉음 속에서 파동을 만들어서 내 신경을 자극했다. 굉음은 살갗을 자극한다.공장의 위압적인 지붕은 산소를 희박하게 만든다.

나는 내가 저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감사했다...또 그 굉음이 주는 공포감을 이해하려 하지 않은 채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는 백면서생들과 선량한 시민들을 생각했다. 현장주의를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대신 거리의 감격, 거리의 현장감 만큼이나 공장의 현장에 대해 알고 '노동의 시대'가 접혔느니, 비물질노동의 시대가 되었느니 하는 말을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짧은 공장 견학에 뭐 대단한 걸 발견한 양 깝친다고 욕할 수 도 있다. 인정한다.

그래서 함께 욕 먹자고 권하는 거다. 나만큼 욕을 먹거나 나보다 조금 더 먹거나...

아프님이 하던 거 따라해본다. 아프님이 서울거리에서 바쁘시고..나는 뭐 ...논다. 축제가 노는거 아니더냐  ^^     

폭력론/비폭력론, 중심성/무중심성....다 역사에 나오더라. 무중심성에 대한 찬사가 이제 슬슬 무중심성의 한계에 대한 비판으로 나온다. 지난 주 였던가...이택광은 글에서 나오미 클라인의 시애틀 반세계화시위의 집산과 해산과정의 경험을 예로 들며 '포스트모던' 시위의 문제를 이야기했다. 이번 시위가 마땅한 성과가 없이 사그라든다면 '반동'과 '허무주의'가 더 크게 만연할 것이 분명하다. '포스트모던' 시위에 대한 예측도, '허무주의'에 대한 예측도 모두 내가 한게 아니다. 역사가 과거로부터 알려주고 있는 것일 뿐이다.

코맥 매커시의 작품이 나왔다. 야호!!  알라딘 메인페이지에 당당히 등장했다. 나는 어제 문득 이 책을 발견하고 소풍가서 보물찾은 듯-단 한번도 못찾았다- 환호했다. 올해 본 최고의 영화 중 하나인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이 작품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소설<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영화의 감격이 잊혀질 때쯤 보려고 의도적으로 미루어두었다. 나는 숙제하듯 영화/소설을 번갈아 보는 방식에 별 재미를 못느낀다. 왠지 '틀린 그림찾기' 하려는 듯 한 강박증이 발동할까봐서 이다. 그래서 <로드>도 영화화 되고 있다는데 이건 소설을 먼저 보고 영화를 기다리면 될 듯 하다.   

<88만원 세대>는 히트작이다. 이제 '88만원세대'는 거의 사회학적 용어로 쓰이는 듯 하다. 나는 <88만원세대>를 읽지 않았다. 아무래도 사회정치적 의식이 박약한가 보다. 몇 몇 이유는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더 강하게 읽고 싶은 책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알라딘의 <이유>님의 리뷰가 가장 재미있었다. 이 책의 설명을 보니 '식민지를 만들지도 못하는데 제국주의가 되고 싶어하는 대한민국' 이라는 말이 나온다. 생각해보면 개화기 한국지식인들을 사로잡았던 량치차오의 생각들이 여전히 근대의 이름으로 한국을 부여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평범한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이명박은 그걸 극단적으로 신봉하는 중증 환자일 뿐이다.

아...<자본>이다. 이 책은 붉은 성경이다. 하지만 '성경 무오류주의자'들은 기독교에서도 그렇듯이, 붉은 교도들 내에서도 광신도들 뿐이다. <자본>은 이론적이고 어떤 경향들을 말한다. 마녀의 유리구슬처럼 자본과 역사의 변증법에 대해 일거수일투족을 예측하지 않는다. <자본>은 끊임없이 읽히고 또 그만큼 재구성되고 비판과 반비판된다. <자본>은 역사 속에서 끊이지 않는 샘물과도 같이 매번 무수한 상상의 열매를 가능케했다. 자본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노동자와 그들의 저항이 사라지지 않을 것 처럼,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이 책의 이름도 기억될 것이다. 안면이 있는 분의 독어원본 최초 번역이어서 더 좋고 또 한번 실패한 경험이 있어서 더 애정이간다. 

불가코프의 작품은 로쟈님이 꼽은 <20세기 러시아 문학작품 리스트> 속에서도 만날 수 있다.곧 읽을 책의 목록 속에 꽤 오래 있었다. 다른 책들에 밀린 감도 있지만 로쟈님이 새로운 번역본이 나온다고 속삭여주셨기 때문이다. 어차피 번역비교를 하면서 읽지는 못하기 때문에 구번역과 신번역이 뭐가 더 좋은지 알 수는 없다. 가끔은 오래된 번역이 훨씬 나은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때문이다. 그래도 새 책이 나왔으니 새 책에 끌리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어차피 이 책을 몇 종씩 가지고 있을 생각은 없으니까....여름 휴가때쯤 볼까 싶기도 하구...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작가 올리버 섹스의 책이다. 이 사람의 현직은 컬럼비아대학 신경정신 임상학 교수. 음악 애호가라고 한다. 책 제목이 인상적인데 '뮤직'과 '필리아' 의 합성어이다. 즉 '음악에 대한 사랑' 이 인간의 본원적 속성이라는 점을 말한다. 하루라도 음악을 듣지 않는 날이 없는 사람으로서 혹할 수 밖에 없다. 사진 속 인물이 저자가 아닐까 싶은데 사진에서 음표가 마구 날아온다. 여름에 나는 클래식을 자주 듣지 않는다. 여름은 '재즈와 맥주'의 시간이다.아 술 이야기하니까 다시 취하는 것 같아.. 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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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06-13 1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흣. 저는 지난주 바빠서 한 주 쉬었어요. 내일은 회사가고. -_- 일요일에나 종합해서 한번 올려야지.

드팀전 2008-06-13 22:56   좋아요 0 | URL
^^

가넷 2008-06-13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 나와서 많이(?) 읽혔던 빨간책은 중역이였나요?...

드팀전 2008-06-13 22:58   좋아요 0 | URL
김수행 교수님 책은 영어중역이었다고 하더군요..

mong 2008-06-14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는 지금 읽고 있어요.
드팀전님 리뷰가 궁금해지는데요? ^^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언제고 다시 읽고 싶어요.
여름은 '재즈와 맥주'의 시간에 심하게 공감해요
저도 맥주를 잘 마시면 더 좋을텐데요 흑

드팀전 2008-06-14 22:52   좋아요 0 | URL
몽님이 먼저 리뷰를 쓰실 듯 하네요

낭만인생 2008-06-19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이 참 재미있네요.. 잘 읽고 갑니다.
 

“한국 변혁운동 과학화, ‘자본’에 답 있다”
국내번역 2개뿐…원전 제대로 다뤄 ‘문헌적 정본’ 겨냥
“사회모순 해결 향한 노동운동·촛불집회의 과학적 무기”
 
 
한겨레 한승동 기자 이종근 기자
 








 



 
올해 봄 <교수신문>이 학회지와 계간지 편집위원들을 상대로 광복 이후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단연 카를 마르크스(오른쪽 사진)의 <자본론>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그만큼 자본론은 많은 이들에게 친숙한 존재다. 하지만 자본론만큼 제대로 읽어 본 사람을 찾기가 드문 저작도 흔치 않을 것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독일 노동운동사를 공부하고 1991년부터 동아대에서 강의해온 강신준(54) 교수(경제학·왼쪽)가 <자본>(1-1, 1-2. 도서출판 길 펴냄)이란 이름으로 마르크스의 주저를 다시 번역해 냈다. “국내총생산 규모가 세계 10위권에 들어간 경제대국에 인류지성사의 최상급 고전 반열에 든 <자본> 번역본이 겨우 2개뿐이라는 건 초라한 일일뿐더러, 우리 사회의 문화적인 낙후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강 교수는 말했다. 하지만 현실사회주의가 저문 지 20년에 가깝고 ‘퇴물’ 취급을 당한 마르크스가 강단에서조차 거의 사라져버린 우리 현실에서, 왜 지금 다시 <자본>인가?


마르크스 ‘자본’ 번역한 강신준 교수


“그 의미를 두 가지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문헌적 정본 만들기인데, 이 땅에선 아직 제대로 된 독일어 원전 번역본이 없었다. 이론과실천사가 낸 <자본>은 이른바 ‘운동권 빵잽이’ 6명이 번역을 나눠 했는데, 그 번역초고 최종점검이 내 손에 맡겨졌다. 제1권은 심각한 문제가 있는 부분만 손봐서 냈고, 제2권과 3권은 내가 1990년까지 따로 번역했는데 그나마 모두 절판됐다. 영어판 중역본인 비봉출판사판도 한계가 있다. 독일 관념철학을 토대로 한 변증법적 유물론 부분은 매우 논리적이다. 영어로는 이 부분을 옮기기 어렵다.”

또 한 가지 의미는 우리 현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 노동운동에 문제가 많다. 내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건 최근 민주노동당이 둘로 쪼개질 때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이 주로 인적 갈등 때문에 갈라섰다는 점이다.”


‘과학의 문제’ 강조한 마르크스





<자본>이 나온 배경을 생각하면 그것은 더욱 문제가 된다. 19세기 유럽에서 번성한 노동운동은 결국 실패로 끝난다. 특히 1848년 혁명 때는 파리와 빈이 노동자들 적기로 뒤덮이고 정규군이 쫓겨날 정도였는데도 실패한다. 왜? “마르크스는 그때 결론을 내렸다. 세상의 변화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의 문제다, 과학적 논리를 토대로 삼고 과학의 지렛대로 무장하지 않는 노동운동은 실패한다고.”

우리 노동운동도 과학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강 교수의 주장이다. “변혁운동의 최고급 활동이 정당운동이다. 유럽에선 최근의 민주노동당 같은 사태가 발생하면 강령 논쟁이 벌어진다. 강령이란 노동운동의 과학적 프로그램이다. 잘못됐으면 바꾸든가 삭제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의 ‘종북주의’ 논란에도 강령 차원의 논쟁은 없었다.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 진행된, 그 엄청난 동력을 지녔던 노동법 개정투쟁 때도 과학적 프로그램이 없었다.”

마르크스가 주목한 것은 “지독한 가난”이었다. 그것은 17세기 이전에는 없던 ‘역사적으로 특수하고 이상한’ 가난이었다. “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자가 왜 가난한가? 그것은 노동력 상품의 부등가교환 때문이며, 노동운동의 실천적 과제는 그것을 바로잡는 일이다. 교환이 사회적 합의과정이라면 교환을 바로잡는 방법도 사회적 합의에 따라야 한다. 이 사회적 합의란 다수에 의한 결정을 뜻하며 그것이 곧 민주주의의 실행이다.”

촛불시위도 그런 맥락에서 의미를 짚어낼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정치부문의 민주주의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달성됐으나, 경제부문은 대혁명으로 권력을 쥔 부르주아의 독재가 확립됐다. 정치적 민주주의를 맛본 대중이 경제부문의 민주주의도 요구하게 되는데, 이 경제적 민주주의가 바로 사회주의다. 자본주의는 1929년 대공황 이전까지 독재 상태로 방치됐으나 대중의 저항과 내부모순 때문에 유지될 수 없는 상황이 됐고, 케인스 체제는 바로 이런 내부모순을 완화하기 위한 과두체제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임노동세력으로 구성돼 있는데, 원래 금융자본이 제일 힘이 세다. 케인스 체제는 이 세 세력이 힘을 나눠 갖도록 국가가 강제한 것이다. 2차대전 뒤 30여년간 이 체제는 번영을 구가했다. 그런데 1970년대 두 차례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수익률이 떨어진 금융자본이 균점을 깨고 자신이 우위에 서는 자연상태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게 신자유주의고, 그것은 민주주의 붕괴와 독재 상태로의 복귀로 귀결됐다. 지금 한국의 촛불시위는 경제학적으로 보면 거기에 대해 다시 민주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국가가 확실히 발을 빼고 조정역할을 방기하는 신자유주의를 철저히 추구한다. 촛불시위는 거기에 대한 저항이다.”


경제부분 과감하게 풀어 써


결국 노동운동이나 촛불시위나 불합리한 모순으로 고통당하는 현실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바로잡자는 것이고, 그것이 곧 민주주의의 실천이며, <자본>은 그것을 위한 과학적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게 강 교수 생각인 셈이다.

그는 사실상 독재를 합리화한 민주집중제 따위를 들고 나온 볼셰비즘을 반쪽 사회주의, 사이비 사회주의라 비판했다. <자본> 번역출간의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레닌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문제의식과도 관련이 있다.

<자본>엔 신자유주의에 대한 답도 들어 있단다. “노동자의 임금을 산업자본이 빼앗아 가고 산업자본의 이윤을 이자 형태로 금융자본이 또 빼앗아 간다. 이자라는 건 기생소득이다. 기생소득이 숙주소득을 넘어서면 붕괴한다. 그런데 우리 기업 중에 별로 이익을 내지도 못했으면서 빚을 내서 주주에게 배당하는 빚잔치를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게 신자유주의다. 빚내서 배당하는 신자유주의는 애시당초 시한부 생명이었다. 우리는 그 다음을 논의해야 한다. <자본>은 그 다음 구상에도 필수적이다. 촛불시위 이후도 대비해야 한다.”

번역은 쉽게 읽히게 만든다는 데 역점을 두었다. 특히 경제 부분은 과감하게 풀어서 우리식으로 옮겼다. “‘상품’ 등 제1권 앞부분은 논리적이고 철학적이어서 딱딱하지만, 중반 이후 공장법 등 역사적 사례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오늘날 우리 사회에 그대로 적용해도 될 만큼 생생하고 재미있다.”


글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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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기점으로 예상했던 6.10집회가 끝나고 숨고르기 시점이다. 그래서인지 오늘자 (6.12) 한겨레는 재미있는 기사가 많다.

# 홍세화의 세상속으로 "벽창호 정부를 넘어 생활혁명 준비해야" (내가 이번 집회를 보며서 이탈리아에서 죽은 어떤 이를 뒤적이고 싶었던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니었을까)

# 광화문 스티로폼 논쟁 "컨데이너 넘자" "안된다" 5시간 토론끝 민주주의 쌓았다.(역사에서 수없이 반복되었던 주제다. 영화로 많이 알려진 '말콤X' 와 '마틴 루터 킹'의 대립도 이렇게 볼 수 있지않을까. 하워드 진은 <미국 민중사>에서 실제 말콤X가 피억압 흑인들의 정서를 더 많이,더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평한다. 80년 서울의 봄 ,서울역 앞의 '무림'과 '학림' 논쟁도 이런 목록에 들어갈 만한다. 이런 류의 역사만 모아놓아도 제법 괜찮은 책 한권이 나올 듯 하다.)

#6.10이후 어떻게 뜨거운 논쟁 "국민이 빈손으로 촛불 끄진 않을텐데..(촛불이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과 촛불 피로증을 돌파할 수 있을까에 대해 쓰고 있다)

#학계시민단체 긴급좌담 "촛불대행진 그 이후" ...."국민주권 힘보여준 촛불혁명이었다." "진보세력 좌표찾는데 새 동력 될 듯" (새로운 형태와 성격의 집회에 대한 동의와 급격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제갈물리기로 본다. 또한 참석자들은 이명박 정권 퇴진이라는 것은 국가적 불행으로 실제 일어나기전에 이명박의 인식전환을 요구한다. 특히 '자본의 세계화에 맞선 세계적 사건으로 남을 것' 이라는 말은 분명하다.)

#촛불이 움직인 미국 민심 "광우병전수검사를...." (미국소비자 단체와 뉴욕타임즈등의 언론에서 수출 미국소의 검역 문제점 등 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는 기사다. 이런게 국제연대라는 것 아니겠는가)

 

..................................

안그래도 복잡한데 시국이 시국이다 보니 생각이 더 많아진다. 하루 종일 무언가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무언가에 복무하고 있는 느낌이다. 신자유주의에 탄력받아 일상에서 끊임없이 압력카드를 꺼내고 있는 회사,그리고 답답한 노조, 매주 해결해야하는 일상의 업무, 집에서 하는 육아 보조 등등 등....

 어제는 새벽 1시에 퇴근했다. 와이프와 예찬이는 이미 잠들어 있구...와이프는 정성스레 갈아놓은 토마토 주스와 함께 먼저 잔다는 수고했다는 글을 남겨놓았다.

머리 대면 1분인 나이지만 어제는 잠들기까지 좀 걸렸다. 내가 하는 말로 '업무 잔상'때문이다. 거기에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들까지...

생각해보니 이래저래 끼어들고 질문하고 댓글달고 그랬던 것 같다. 별 주제넘은 짓이고 생각만 더 가중하는 일이다. 복잡한 머리를 털고 싶어졌다.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했다.

니코스 카잔찬키스의 말이었던가...'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유' .....실제 두려워할 것도 많고 바라는 것도 많다.그래서 자유롭지도 못하다.

어쨋거나 지지배배 거리는 불필요한 짓으로 부터는 자유롭기로 하자. 그게 아무짓도 아니다. 시간만 잡아먹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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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2008-06-12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도 재미있던데요.^^;; 그거 보고 한참 낄낄 거렸습니다.ㅋ 드팀전님 취향이 아닐수도 있겠지만요.
 

촛불 집회가 정점은 지난 듯 하다. 이명박이 정신못차리고 악수를 계속 두지 않으면 어제 만큼의 숫자를 조만간에 다시 끌어모으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이명박이 가장 두려워 했던 날도 비교적 조용히 지나갔다.

이명박에 대한 욕은 계속 높아지고 높아져서 이제 태산에 이른다. 일상적인 자리에서나 알라딘에서나 이명박에 분노하고 거품 물지 않으면 비투사적 행위가 된다. 어제 회사에서 어떤 이는 몇 가지 생각나는 점들을 이야기했더니 내가 한 마디하면 열마디의 거품을 물으며 이명박이나 대운하나 다 물리쳐야 한다...국민이 나서야 한다...이 개같은 이명박...그런다.

내가 나중에 그냥 듣고만 있었던 것은 "그 개같은 이야기를 다 아는데..." 왜 게거품을 물면서 광분하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개같은 이야기를 비슷하게 공감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외치는 것이 가진 개인정치적 의미는 무엇이냐는 것이다. 동료의식을 만드는 단계는 지나지 않았는가 ..생각하면 일단 개같은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린다. 두번째는 나는 그런 개같은 상황에 반대하는 정의로운 시민이다. 세번째 나의 이명박에 대한 분노는 너무 높아 게거품을 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개같은 이야기를 하는 인간들 앞에서 게거품 물수 있다. 그런데 비슷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만 그 사실을 아는양 게거품을 무는게 도대체 상대방의 고막에 무리를 주는 것외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그런 질문을 했다. "대운하때에 과연 이만한 사람들이 모일 것인가? 위대한 시민들이 거기에 공감하고 지금처럼 나와주겠는가? 아니라면...어떡게 해야하는가? 이정도가 모이지 않으면 밀릴게 뻔한데..그럼 지금 어떡게 해야하는가 " ....의외로 답은 간단했다.

"국민들이 이번에 깨우친게 있으니까 아무래도 다르지 않겠어요? "

게거품이 꺼진 자리에 남는 것이 이렇게 허망하다면 도대체 무엇을 더 도모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사람은 다시 이명박이 개xx라는 것에 분통터뜨린다.

나는 시민들의 이런 분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뒤적인 그람시 책의 한 귀퉁이에는 이런 시민들의 소아적인 형태의 투쟁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구절이 있다. 그람시 시대 이전의 맑스주의자들이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 바로 그 점이었다.

나는 시위에 참가하지 못하는 날이나 집에서 책을 보는 날에는 그런 생각들이 머리를 어지럽힌다.컴퓨터가 중환자실에 있어서 아프리카같은 것은 엄두도 못낸다.

시민, 노동자, 다중, 운동, 계급, 역사, 연대, 대중, 당, 조합,  정치...

 그런데 온고지신이라고 이 모든 것이 '역사' 속에서 한번쯤은 유사한 형태로 반복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마샬 버먼이 <맑스주의의 향연>에서 '마치 어제 태어난 사람들 처럼 역사와 서 있는 곳을 외면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실없다고 비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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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8-06-11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민들의 분노가 정점에 이르렀는데도... 아무런 타협안을 내놓지 않고...
제가 419 민주화 1세대라는 둥, 헛소리를 지껄이고, 미친소 문제도 전혀 해결의 기미가 없으니... 이제 기말고사 기간이 임박했지만... 촛불은 계속 들어야 할 듯 싶네요.
특히나 kbs에 대한 감사에 들어간 일 같은 걸 보면, 전방위적인 '전면전'의 시기가 닥치는 듯 싶습니다. 촛불과 인터넷 투쟁이 '국지전'보다는 '전면전'에 유리하기도 합니다만...
조선일보 몰빵 때리기나 방송국 지키기, 한나라당 압박하기...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없는 국민들 참 피곤하게 하네요.

드팀전 2008-06-12 00:03   좋아요 0 | URL
그런게 모두 '진지전'인듯 보입니다...'전면전'이란게 결코 그렇게 쉽지가 않은 문제지요. 안하는게 아니라 못하는 것일겝니다.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