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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크로싱>이 개봉했다.
식량난과 의약품 부족으로 한 집의 가장이 국경을 넘는다. 그 사이 아픈 아이 엄마는 죽고 아이만 홀로 북한에 남겨진다.
아버지는 중국 공안에 쫓기다가 브로커를 만나게 되고 북한의 아내가 이미 죽었으며 아이가 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안다.
돌아가야 한다. 아이를 그곳에 홀로 남겨놓을 수는 없다.
하지만 아이 역시 아버지를 찾아 길을 나서고...
운명은 그렇게 얽힌다.
이 영화가 시사회를 했을 때 가장 적극적 관심을 보인 것은 <조선일보>와 미국이다. 이들이 왜 영화<크로싱>에 관심을 가졌는지는 뻔 하다. 조선일보는 북한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시종일관 북한 정권의 부도덕성과 독재정치를 걸고 있다. 북한의 생생한 실상이라는 말이 그들의 기사에서 수십번 나온다.
지난 5.28 조선일보 데스크의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한국 국민들이 북한인권과 탈북자들의 처참한 현실을 외면하는 것은 그 실상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10년 동안 햇볕정책으로 북한의 진실은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 (중략) ... '크로싱'은 지금까지 북한을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 가운데 북한의 현실에 가장 근접한 영화로 탈북자들은 평가하고 있다. ....진실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하고 사랑하게 만들 수 있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은 더 이상 북한의 현실을 몰라서 역사 앞에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 ... (중략)
.. "한 핏줄을 나눈 우리 대한민국 국민과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우리 형제의 비극은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 대통령은 중국의 최고 지도자에게 탈북자의 강제북송을 중단할 것을 당당하게 요구할 때도 됐다."
형용모순이다. 마치 "햇볕정책" 으로 인해 북한의 실상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식이다. 그러면서 북한의 참상에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나서자고 이야기한다. 마치 기독교에서 불쌍한 사탄의 무리를 인도하자는 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물론 그냥 모른 척 하고 있는 것 보다는 낫다만 저들이 말하는 '북한'에 대한 이야기는 진정한 '인권'이나 '인류애'보다는 자신들의 반공주의 대북관에 근거해 있다. 그러므로 영화 <크로싱>에서 정작 중요하게 읽어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강 건너 불보듯 하고 있다.
조선일보가 스펙트클로서의 '북한의 비참'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저 '전시로서의 비참' 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북한정권을 악'으로 규정하는 힘을 모으자는 이야기를 실제로 하고 싶은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북한의 치명적인 식량난'이다. 거기에는 좌와 우/북한과 남한 같은 개념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죽어 넘어가는 사람들 앞에서 그건 사치다.
지난 주 <한겨레 21>은 특집으로 북한 식량난 문제를 다루었다. 한겨레는 지난 주 촛불의 시민적 역동성을 이야기 했고 이번 주에는 드디어 촛불의 시민대오에 들어 와 있는 수많은 깃발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층 진보한 거다. 성적 소수자,양심적 병역거부자. 다함께, 채식주의자.노동자...시민의 이름 아래 자신의 깃발을 들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섹션으로 다루었다.
그러나 그 촛불안에 북한 문제를 다루는 사람은 없다. 사실 이명박은 북한 식량 지원을 머뭇거리고 있다. 미국과 정부 내에서도 북한의 식량난이 치명적이란 것을 알고 있다. 100만톤 가량의 지원 분중에서 50만톤은 미국이 선적하기로 했다. 한국 정부는 조건을 달고 있다. "먼저 북한이 지원을 요청할 경우" 라고 말이다. 북한은 또 북한대로 기를 세우고 있다. "남한이 지원하겠다고 하면.."
이렇게 하루 하루를 버리는 동안 사람들은 쓰러질 것이다. 결국 이것도 이명박의 문제중에 하나이다.그런데 이명박을 밀어붙이기 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은 곧 죽음과도 연결된다.
<한겨레 21>에 지난 주에 실린 인터뷰는 이 문제가 상당히 다급한 사안이라는 것을 알게한다.
가끔 알라딘에도 계시는 분들을 위해 미리 말해두자...나는 북한의 정권을 개뼉다귀같은 독재 정권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북한을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이유는 둘째 치고라도..
나와 같은 언어를 쓸 줄 아는 아이가 배가 고파서 굶어 죽는다는데.....다른 뭐가 더 중요한가.
촛불집회로 온 국민이 모여든 이 시점에 이것도 '분파주의'라고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주로 바보같은 사람들이다.
나는 이걸로 무슨 모금같은 걸 주도할 주변머리는 되지 못한다. 대신 관심있는 사람들은 노력해서 지원할 수 있는 사이트를 찾으면 된다. 나는 원래 '유니세프' 쪽 지원을 했는데 북한어린이 지원 캠페인이 지금 벌어지고 있지 않아서 다른 사이트를 찾았고 그 쪽으로 일시 지원했다. 북한 문제를 중심적으로 다루는 '좋은 벗들'이나 '굿 네이버스' 그외 다른 몇 몇에서 긴급지원에 들어가고 있다.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 kbs나 mbc에서 보도할 것이다. 그 다음에 하는 것도 좋지만 그 사이도 아이들은 죽어갈 지 모른다.
“하루라도 서두르면 한명 더 살릴 것”
북한 식량지원 긴급 캠페인 진행 중인 오태양씨 인터뷰
해맑은 얼굴은 그대로였다. 수줍은 미소도 변한 게 없었다. 그런데도 뭔가 달라 보였다. 2006년 6월부터 꼭 22개월 동안 인도 동북부 비하르주 가야시 외곽 둥게스와리에서 달리트(불가촉천민) 주민 지원활동을 하고 돌아온 오태양(34)씨에게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힘’이 느껴졌다. 돌산으로 둘러싸인 오지에서 40℃가 넘는 더위 속에 2년 가까이 우물을 파고 마을길을 닦았다니…, ‘포스’가 쌓이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게다.
5월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정토회관 사무실에서 오씨와 마주 앉았다. 그는 말없이 ‘정토회 청년직능국 사무국장·긴급구호단장’이란 직함이 박힌 명함을 내밀었다. 지난 2001년 12월 불살생이란 종교의 가르침에 따라 “차마 총을 들 수 없다”며 양심의 명령에 따라 병역거부를 선언했던 그다. 병역법 위반으로 1년3개월 수감생활을 했고, 낯선 이국땅에서 1년10개월 봉사활동을 했다. 모두 3년3개월을 그렇게 지냈으니 ‘병역의 의무’를 갈음할 만하겠다.
지난 4월 귀국 직후부터 그는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하다”고 했다. 사이클론 피해를 입은 버마(미얀마) 지원활동에, 중국 쓰촨성 지진피해 지원사업까지 ‘긴급구호’가 필요한 대형 재난이 잇따른 탓이다. 그리고 ‘북한 식량지원 긴급 캠페인’이 운명처럼 오씨에게 맡겨졌다. 그가 건네준 캠페인 자료에는 ‘너의 배고픔을 알지 못했구나, 미안하다 동포야!’라고 씌어 있었다.
예년과 비교해 올해 북한 식량 사정은 얼마나 나쁜 건가?
=통일부의 추정치로도 100만t가량이나 부족하다. 북한은 배급사회다. 배급체계에서 100만t이 모자라면, 부족한 식량을 어디서 가져올 수 있겠나. 메울 길이 없다. 지난해 큰 수해가 났기 때문에 농업 생산량이 뚝 떨어졌다. 수해 자체도 큰 문제였지만, 그로 인해 식량난이 극심해지면서 벌써부터 굶어죽는 이들이 나오고 있다. 미국이 50만t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나머지 50만t은 외부에서 지원을 해줘야 한다. 지난해 추수해서 비축해둔 식량은 다 떨어진 상태고, 씨감자 등은 7~8월이나 돼야 수확을 한다.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다. 아사자가 나오고 있는 곳은 대부분 지난해 수해 피해가 컸던 지역이다. 올해 상황이 나쁠 거라는 건 기실 지난해부터 예견됐던 바다.
대북 식량지원 활동과 인연이 깊은 걸로 안다.
=(한동안 말이 없다가) 사실 요즘 가슴이 많이 아프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도 나고. 1996년 대학 3학년 때 처음 북한의 처참한 실상을 접했다. 그해 4월부터 <한겨레>가 굶주리는 북녘동포 돕기 모금운동을 했다. 기사를 보면서 매일이다시피 울었다. 어떤 날은 신문을 보다가 너무 눈물이 나서, 타고 가던 지하철에서 내려 역 벤치에 앉아 한참을 혼자 울기도 했다. 친구·선후배와 함께 모금운동에 참여했다. 내가 한 끼 줄이고 한 숨 덜 자면서 한 사람 더 만나면, 동포 한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는 마음이었다. 외세가 침략한 것도 아니고,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먹을 게 없어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고 있다. 10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번엔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도록 내버려둬선 안 된다.
당시엔 북한 지원활동에 대한 반감도 많았을 텐데.
=거리에서 모금활동을 하다 따귀를 맞기도 했다. (웃음) 북한에 식량을 지원해주면 군량미로 쓴다고 얘기하는데, 군복을 입었어도 굶주리는 동포 청년이다. 그들도 먹어야 산다. 이념의 테두리를 조금만 벗어나면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얘기다. 1990년대 중반 식량난 때는 일부지만 북한에 대해 이상적으로 바라보는 경향도 있었고, 다른 쪽에선 오로지 적대감만 갖고 북한을 바라보는 부류도 있었다. 요즘도 남쪽에선 “먼저 요청해야 준다”고 말하고, 북쪽에선 “먼저 제안하면 받을 용의가 있다”고 맞선다. 10년 전이나 비슷하단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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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의 배고픔을 알지 못했구나. 미안하다 동포야!’ 정토회가 마련한 ‘동포의 밥상 체험’ 행사가 열린 5월29일 서울 인사동 들머리에서 한 외국인 여성이 북한 주민들이 먹고 있는 풀죽을 맛보고 있다. (사진/ 한겨레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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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대북 인도 지원에 대한 여론은 나아지지 않았나?
=물론 많이 바뀌었다. 남도 북도 마찬가지다. 통일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북한에 수해 등 긴급재해가 발생하면 도와줘야 한다는 여론이 90%가량 나온 것으로 안다.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을 똑같이 바라볼 필요는 없다. 민족을 넘어 인류적 관점에서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먹을 게 없어 굶주리고 있는 이웃을 돕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게다가 한민족이다. 지금 북한 식량난을 돕는 건 결국 우리 미래를 지키는 일이다.
‘긴급 캠페인’은 어떤 식으로 진행하고 있나?
=오늘 부산항에서 밀가루 200t을 선적했다. 다른 대북지원 단체들도 노력하고 있다. 일단 민간 차원에서 옥수수 1만t을 만들어보려 한다. 1만원이면 옥수수 20kg을 살 수 있다. 이 정도 양이면 5인 가족 기준으로 한 달을 연명할 수 있다. 하지만 1만t으로는 20만 명 분도 안 된다. 미국에서 지원 식량이 오기까지 버텨내지 못한다. 핵심은 우리 정부다. 정부가 움직여야 한다. 6월에 접어들면 아사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하루라도 일찍 지원을 결정하면, 그만큼 많은 목숨을 살릴 수 있다. 식량 20만t을 긴급지원해야 10년 전의 비극을 막을 수 있다.
정부는 북쪽이 공식적으로 지원 요청을 먼저 해야 한다고 고집하고 있는데.
=궁금하다. 정말 상황을 모르고 있는 건지, 알면서도 머뭇거리고 있는 건지. 북한 식량난의 실상에 대한 자료가 없는 것도 아니다. 혹 실상을 잘 알고 있음에도 당분간 대북 지원을 하지 않는다는 내부 입장이라도 정한 건가? 미국도 지원하는 판에, 같은 민족이자 통일을 준비하는 사이에 ‘먼저 요청하면 주겠다’고 고집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더구나 지금 상황에선 정치적으로 우리 정부가 고립될 수도 있다. 북-미가 정치적으로 빠르게 다가서고 있다. 북한으로선 식량지원도 받기로 한 마당에 미국하고만 대화하면 그만이다. 결국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는 설 자리가 없게 된다. 가장 어려울 때 지원을 안 하고서 나중에 대화하자고 나서면 북이 쉽게 응하겠나? 대북 식량지원은 물론 인도적인 문제지만, 정부로선 정치·외교적으로도 필요한 일이란 얘기다.
“사람이 배고파서 죽는다는 걸 상상하지 못하겠다. 굶다가 죽을 수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없다. 그 과정에서 굶어죽는 이가 느낄 고통을 헤아릴 수 있을까? 북녘 동포들이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 오씨는 이날 아침식사로 동료들과 함께 꽁보리밥과 멀건 소금국을 먹었다고 했다. 점심에는 아침에 먹었던 보리밥 남은 것으로 죽을 쑤고, 밀가루만 조금 들어간 물수제비를 띄워 먹었다. ‘동포의 밥상’을 체험하기 위해 옥수수죽과 시래기죽, 감자 몇 알, 보리밥 등으로 일주일치 ‘메뉴’를 짜놨단다. 옥수수죽만으로 일주일을 버텨보려 했는데, 쌀이나 보리보다 옥수수값이 턱없이 비싸 포기했단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고통받는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잖아요.” 오씨가 다시 맑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