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한 문장] “어둠은 저주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 김희연

“어둠은 저주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빛을 가져와야 어둠을 벗어날 수 있다.”
-유시민

유시민 전 의원의 말입니다. 오래오래 이 말을 가슴에 새기고 있었는데 이번 촛불집회가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됩니다. 집회 현장에서 아무리 악다구니를 해도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불편합니다. 정작 지금 필요한 것은 저주 같은 악다구니가 아니라 어둠을 이겨내는 빛과 같은 희망, 평화, 의지인 것 같습니다. 자, 다시 한 번 우리 건승하는 그날까지 평화롭게 나아갑시다!

...........................................

나는 유시민을 싫어한다. 그 전 까지는 그냥 저냥 했다. 그가 지지난번 대선과 총선에서 민노당을 겨냥해 '사표론'을 짖껄일때 부터 결정적으로 돌아섰다. 그 이데올로기 효과는 물론 괜찮았다.

그런데 저 말은 유시민이 했건 누가 했건 옳은 말이다. 

김희연이 누군지는 모르겠는데-아마 독자겠지-

하여간 허구헌 날 하는 '저주의 악다구니'는 '자기 만족' 과 '포퓰리즘' 의 화학적 결합을 만들 위험이 있다. 그렇다고 '저주의 악다구니'가 필요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저주의 악다구니'는 다분히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상업주의적 문화와  유사한 부분이 있다. 쉽게 말해서 '하다 보면 무감해지고' 그렇게 되면 '더 강한 저주'가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 앞의 '이명박'이라는 '적' 또는 '악'을 넘어서야 한다.

나는 요즘 80년대 영국상황에 상당히 관심이 간다. 센스쟁이들은 유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국의 대처,보수당 그리고 신자유주의는 대처를 3선 까지 만들어 주었다. 또한 대처의 실각은 보수당 반대세력과 반유럽주의에 기인한다. 결국 대처의 재무장관 존 메이저의 집권까지 합치면 무려 18년간 대처리즘이 영국을 지배한다. 그리고 집권을 위해 나선 노동당의 토니블레어 역시 '대처의 아들', '부시의 푸들' 을 자처할 수 밖에 없었다. 일명 '제 3의 길' 이라는 굴복(?)....

마치 지금이라도 국민 투표를 하면 이명박을 쫓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저주파'들과 나는 생각이 다르다. 언젠가 페이퍼에도 남겼지만

지금 이명박 탄핵 국민투표하면 진보진영은 -기대와 달리- 완전히 박살난다. (정말 궁금하면 한 번 해보자고 건의하던지) 이명박이 탄핵되지 않으면 이명박은 '그래 너네들이 하자는 데로 국민의 뜻을 물었다.1년도 안되어 했는데 그 정도면 세계사적 용단이다. 국민이 나를 선택했다. 그러므로 너네들은 이제 찍소리 하지 말아라' 이렇게 나온다. 그러면 진보는 모든 카드를 다 쓴 상황에서 뻘되는 거다. 이게 바로 모든 혁명가들이 그렇게 주의시켰던 '극좌모험주의'의 끝이다. 그런데 진보신당의 홈페이지에선가...개인이 쓴 글인지...당의 글인지 모르겠으나 이런 류의 글을 봤다. 무덤파고 싶은 거다. 그래도 '정의'의 편이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는 '소신파'라고 믿겠지.

역사에서 뭘 배웠는지 묻는다면....

91년 분신정국이후  마지막 잔불에 찬물을 끼얹었던 것이 아마 '정원식 외대 사건' 이었을것이다. 당시 사태를 바라보는 외신보도가 가장 정확했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정권의 앞잡이 선생에게 계란 던지는 것이 그렇게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아야할 만한 일이 아니었을테니...그렇지만 보수언론이 만든 이미지와 그에 영향을 받은 대중은 '유교적'인 스승관을 이데올로기로 이용하면서 잔불을 확실히 진압했다.

당시 이것이 사전에 계획되었다는 의구심도 있었다. 분란이 날 곳을 정원식이 찾았고 또 카메라 기자들이 대거 함께 했다. 계란떡된 정원식의 이미지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내 먼 기억에 당시 '외대 총학생회'가 학생운동 내에서도 비난을 받았다고 알고 있다. 그들의 그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이 적들에게 어떻게 이용될지에 대해 전혀 파악하지 않았다는 점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저주'는 충만했으나 '무능'했다는 것이다. (...정세를 파악한다는 것은 어쩌면 모든 혁명의 조건의 첫번재 계명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레닌은 1910년 7월에 '기다리라'고 했다. 또 모든 멘세비키와 볼세비키 다수가 '후진국 러시아'에서 혁명이 불가하다 할 때 그는 또 반대로 갔다.

이명박이 5년내에 쫓겨나지 않고 어쩌면 그 정권의 연장이 10년을 갈 수도 있다는 디스토피아적 생각도 든다. 그래서 그렇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저주'하는 것 말고 어떻게 해야하는 가를 찾아야 하는 것이 진보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적들을 우습게 보지말자. 실재적으로도 그들은 만만치 않다. 숫자나 권력이나 지지기반 모든 면에서...

적들은 사방에 만연하고 또 진보 안에,또 내 안에도 혼재한다.

“어둠은 저주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빛을 가져와야 어둠을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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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7-28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뭐 그냥저냥이던 유시민이었습니다. 근데 제가 결정적으로 저 인간 참 끝장났군 했던건 조금 생뚱맞지만 노무현 탄핵당시 국회에서 울고불고 난리치던 그의 모습을 봤을때였지요. 뭐 싸울거리는 맞았지만 그가 언제 노동자들의 탄압을 앞에두고 그렇게 울고불고 싸워봤을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촛불시위를 거친 우리는 예전의 우리가 아니겠지만 이것이 정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해서는 낙관과 절망이 늘 교차합니다. 말씀대로 지금 국민투표를 한다면 아마도 진보진영은 와장창 깨지겠지요.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진보진영이 좀 더 엄정한 시선으로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봐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BELLA CIAO...<안녕 내사랑> 이라는 뜻입니다. 이탈리아 반파시스트 파르티잔들의 노래입니다. 들어보면 '아...이 노래' 하실 겁니다. 민요를 따온 노래라고 하는데 '인터내셔널가' 처럼 세계 각 국에서 각국의 언어로 불립니다.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첫번째 화면--

 

잘 생긴 체 게바라보다 이름 모를 파르티잔과 병사들에 눈이 갑니다. 그들의 삶, 사랑, 가족...

두번째 화면--

첨바왐바의 노래에 맞추어 지난WTO 반세계화 시위를 붙였네요.

세번째 화면--

현재 우리의 모습입니다. 좀 길기도 하고 노무현대통령에 대한 회고적 애정이 묻어있어서 꼭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잘 만들었군요.

 

"역사란 무엇인가? " 라는 질문을 다시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도..

이제 진짜 시작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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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8-07-22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무현은 말은 똑바로 해요. ㅡ..ㅡ;

팥쥐만세 2008-07-25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 내사랑 잘보고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노무현 싫어하는데.... 선동을 잘하네요. 구구절절 말이야 맞는 말이죠.
 

아...미치겠다. 정말...

쪽팔린 짓만 하는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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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수요일에는 회사노조에서 상경투쟁을 한다.

당연히 가야하는데 수요일은 업무상 빼도 박도 못하는 날이다. 남이 대신 해줄 수도 없고 기한은 반드시 맞추어서 납품해야 하는 일이 있다.

오는 9월에는 대규모 파업이 예상된다. 파업이 대안도 아니지만 뾰족한 답이 없다는 노조 위원장의 말에 서글픔이 묻어 있다. 9월에 임시국회가 열리면서 이것 저것 나를 압박할 많은 법들과 시행령들이 통과될 것이다.

왜 상경투쟁을 하느냐?

그건 이명박때문이다.

이명박이 어떻게 했냐구?

..나쁘게 일을 몰아가고 있다.

 

 신나게 욕도하고 비난도 하지만

내게 아무런 피해가 없는 그런것과 다르다.

 이명박을 쥐박이라 욕하고 잡아죽이자고 해도

 월급은 그대로 나오고, 연말 보너스가 그대로 보장되고,

 불특정 다수에 속해서 목소리 하나 더 얹는데

 내게 무슨 큰 피해가 있겠는가?

오히려 '훈장'이 될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저 사람은 '진보적'이야 '의식' 있어.

..

이명박이 내 직장을 잃게 만든다.

 농담이 아니다...이런 추세라면 이명박이 물러나기 전에

내가 직장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꼭 나만이 아니라...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누구든.

....

 그래서 나는 '흥분' 하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말이다.

이건 냉혹한 것이다. 돌파해 나가지 않으면 길바닥에 나앉는거다.

.... 

길바닥에 나앉는다는 것에 대해 두려운 꿈을 꾼적이 있다. 실제 IMF때 늘어난 노숙자들을 보면서 내가 저 자리에 있지 않으라는 보장을 못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물론 그렇게 무력하게 나앉지는 않겠지만...)

이런 위기감이 늘 상 내 주변에는 팽배하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그렇게 읽을 수 밖에 없었던 것도 그 위기감때문이다.)

내가 알라딘에서 가끔 심심할 때는 

그런 '위기감'이 늘 코 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거다. 아니면 있어도 '탈세속화'하여 이미 대범하거나(또는 대범한 척 믿거나), 그도 아니면 8월에 물가에 가 있는 것을 이런 '위기감'과 동일시 하는 사람이 많거나....

물론 '위기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곧 겪게 될 지도 모를 절박함을 매일 만나는 분들도 계시다. 하지만 정말 '절박'해진 자는 알라딘 같은데 글을 쓰는 여유를 가질 수 없다. 나 역시 나를 둘러싼 상황이 그 끝으로 가면 글을 쓸 수 없을 게다. 그 때가 오지 않길 바랄 뿐이다. 

'위기로움' 과 함께 더불어 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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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08-07-21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야말로 적과의 동침이군요.
드팀전 님의 글에서는 다른 창을 볼 수 있어 좋아요^^;
 

창비주간 논평에 '서구의 68혁명을 떠올리며 촛불을 본다' 라는 부산대 사학과 유재건 교수의 글이 올랐다.

마지막에 몇 몇 부분에서는 생각이 다르다. '정치의 복원'과 '일상정치의 투쟁'이 비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유교수의 글을 '일상영역에서의 투쟁'이라는 측면에서만 바라보면 될 듯하다. 그리고 현재적 의미를 배제한 채 '정당수렴론'이라고 '하며 정치 불신'으로 이어지는 것은 옳지 않다. 진중권은 '어떤 당이든' 촛불 이후에 '정당'활동에 참여하라라고 말한 정도다. 유재건교수의 뜻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지만 '촛불'에 아부하는 것 만이 '촛불'을 위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의 우리를 준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자축'이 아니라 '질타'일 지도 모른다. 

모든 사회 운동은 좌절의 연속이고 또 다른 부활의 연속이다.

EBS의 영상은 68의 문화적 성격과 그 변화의 결과에 대해 말한다. 언젠가 나 역시 68의 토대 위에 서 있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EBS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68의 정치사회적 성과와 문화적 성과에 대해 구분하고 난 다음에 희망적인 부분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그걸 이해하지 않으면 논리적으로 '모든 혁명은 당장에 성공과 실패 여부에는 상관없이 어떤 변화를 만들기 때문에 모두 성공적이다' 라는 결론으로 가버리는 환원론적 함정에 빠질 수 도 있다. 감정적으로 이런 분위기를 이해할 수는 있겠으나 그러면 도대체 '공부'를 왜하나? 우리는 이미 사람이 '동물'이라는 엄청난 진리를 알고 있는데...

 

      

             
 




서구의 68혁명을 떠올리며 촛불을 본다  
창비주간논평. Comments (0)

유재건 / 부산대 사학과 교수

그간 촛불항쟁을 서구의 68혁명(혹은 운동)과 비교해 그 유사성에 주목하는 글들이 간혹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사건을 알려진 역사적 사례에 비추어 이해하려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다. 물론 68운동은 역사적 배경에서 지금 우리와 크게 다른데다, 나라마다 특유의 발전과정을 보이기 때문에 곧바로 비교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아마도 상당히 정교하고 복합적인 역사적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기왕에 유사성 여부가 거론되는 마당이니, 촛불항쟁의 새로움을 약간 넓은 시야에서 명확히한다는 제한된 취지에서 한번 비교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싶다.

서구의 68운동에는 촛불항쟁에 자연스레 오버랩되는 면모들이 많이 있다. 당시까지 자율적 주체로 인정받지 못했던 젊은 세대의 자발적 주도,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 축제와 저항의 결합, 생활정치의 발견, 활발한 토론문화, 참여민주주의의 극적 진전, 대학 교육체제 비판, 다양한 문화적 발산 등이 그것이다. 심지어 미국 언론보다 더 친미적인 슈프링거 같은 보수 언론제국에 맞선 수차례 대규모 시위와 언론사 공격은 우리 현실의 닮은꼴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분명 68운동은 거리의 정치를 통해 그때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방식의 삶을 실험하고자 했고 당대로선 무척 창의적이고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하기도 했다.   

68운동의 새로움과 딜레마

그러나 그 운동은 당대의 정치적 맥락에서 급진적인 해방을 목표로 한 저항운동이었다. 우선 그것은 혁명에 대한 과거의 기억에 압도당한 면이 있었고, 이 때문에 자신들이 추구한 새로운 대안적 가치와의 충돌을 계속 경험했다. 빠리의 5월사태만 보더라도 저항방식은 오랜 혁명전통에 따른 것으로, 거기엔 프랑스대혁명에서부터 1871년 빠리꼬뮌의 바리케이드 그리고 1917년 러시아혁명에 대한 기억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비장한 과거의 추억과 미래의 상상력 간 긴장이 계속된 것이다. 게다가 그 운동목표는 새로운 사회변혁이 일국적 차원에서 가능하리라는 막연한 환상에 근거한 것이기에 내내 모종의 딜레마에 처해 있었다.

그 결과 68운동의 저항은 점차 폭력이냐 비폭력이냐의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68운동의 역사학자 길혀홀타이(I. Gilcher-Holtey)는 급진성과 폭력성에서 비롯된 갈등이 운동의 붕괴에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는 운동가들 내에 좌절감이 확산되는 데도 크게 일조했다. 프랑스 68혁명의 절정이었던 5월이 지나고 치러진 6월의 선거는 오히려 드골주의자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결국 폭력/비폭력 여부가 운동세력 내에 갈등지점으로 잠복해 있었고, 운동은 끝내 분열, 과격화와 고립화의 덫에 걸렸다. 그 좌절로 인해 일부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우리는 승리하지 못했다. 천만다행이다" 같은 냉소가 퍼지기도 했다.

세계 도처에서 발생한 68운동은 흔히 실패에도 불구하고 세계사를 크게 바꾼 혁명으로 인식된다.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구좌파 모두를 겨냥했던 이 운동은 한편으로 체제 내에 포섭되어 길들여지기도 하고, 다른 한편 체제 전반에 스며들어 의미있는 사회변화, 더 나아가 세계체제의 변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 운동에서 나온 새로운 감수성은 새로운 사회운동들을 낳고 참여민주주의를 한 단계 비약시킨 것이 사실이다.

촛불항쟁, 시장만능주의에 맞선 민주주의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촛불항쟁과의 결정적 차이를 말하는 것이 좀 싱거워진 셈이다. 우선 촛불항쟁의 이념적 토대가 68운동과 전혀 다르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국민 건강권과 검역주권 요구는 곧 다수 '국민'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이기에, 전혀 급진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68운동은 급진적이고 변혁적인 운동으로, 촛불항쟁은 온건한 민주주의 또는 혹자의 주장대로 '대한민국 민족주의' 운동으로 대비시킬 수 있을까?

그렇게만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촛불항쟁의 밑바닥에는 탐욕스런 시장만능주의에 맞서는 민주주의, 건강한 삶이 위태로워진 시대에 맞서 생명과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이 점을 인식하는 것은 무척 긴요하다. 오늘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보통 사람들이 공유하는 이런 민주주의의 힘으로도 무력해지지 않고 제동을 거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오직 급진주의만이 변혁적인 것은 아니며, 현 세계체제의 제약하에서는 다수 국민이 참여하는 중도적이면서도 변혁적인 노선이 가능하고 때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것이 지구 차원의 민주주의에도 기여하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의 촛불항쟁만 하더라도 이미 미국사회 내의 쇠고기 안전에 경종을 울린 바가 있고, 앞으로 동물성 사료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나아간다면 세계 차원의 생태적 자각을 일깨우는 데 일조할 가능성도 있는 운동이다. 현재 우리 운동은 소위 '5대 의제'(건강보험·공기업 민영화, 수돗물 민영화, 교육자율화, 대운하, 공영방송)뿐 아니라 한층 진보적인 의제를 포함한 다양한 과제들에 직면해 있는데, 이들 과제의 해결 하나하나가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동시에 세계자본주의의 변화에 얼마간 기여를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68혁명과 촛불항쟁은 아주 다른 방식과 정도로 자본주의 세계의 해악에 저항하는 것일 수도 있다.

불행이라 할지 행운이라 할지 우리에게는 도와주는 존재가 있다. 불교에서는 방해하는 인연, 즉 내게 비록 해를 입히지만 나 스스로를 단련시키고 원(願)을 놓지 않게 도와주는 존재를 '역행(逆行) 보살'이라 한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이 나라 민주주의의 '역행 보살'이다. 대통령은 하필이면 의식주, 건강, 환경 등 하나같이 생명과 인권의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정책만 골라 하겠다는 태세이다. 이를 제어하는 일이 앞으로 시급하지만, 대통령 스스로가 다수 국민으로 하여금 민주주의와 생명 그리고 인권의 근본문제에 관해 판에 박힌 공부가 아닌, 실질적인 공부와 수행을 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물론 우리가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것은 '뼈저린' 일이지만, 이번에 그는 경제성장과 이윤추구에 목매고 살아온 우리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는가?

세계사적 사건으로서의 촛불항쟁

촛불항쟁은 그 평화적 시위양태로 볼 때 68혁명과 비교할 것도 없이 이미 놀랍고도 새로운 세계적 사건이다. 우선 촛불시위 주체들의 행동에는 68혁명의 운동가들과 달리 과거에 대한 얽매임이 신기할 정도로 없다. 80년 광주와 87년 6·10항쟁도 추억의 모델이 아니며, 2002년 효순-미선 촛불집회, 2004년 대통령탄핵 반대운동 때에 비해서도 그 양상은 두드러진 변화를 겪었다. 무엇보다 괄목할 만한 것은 디지털 네트워크를 활용한 소통과 연대였다. 이를 통해 대중의 광범위한 참여와 높은 토론문화가 가능했고, '거리의 정치'와 '싸이버공간 정치'의 결합은 68혁명을 비롯한 그전의 어떤 운동보다도 수준 높은 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탈중심적 성격 또한 뚜렷한데, 이제 운동 지도자들 대신에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헌신적인 도우미들이 존재할 뿐이다. 이같은 지도부 부재가 과연 어느 때나 바람직할지는 의심의 여지가 있지만, 이 현상 자체는 참으로 새로운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수만, 수십만에 이르는 대규모 인파가 아무 사고 없이 밤새도록 평화적인 시위를 한다는 것, 또 두달이 넘도록 평화를 지켜나가는 것은 세계 역사 어디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더 대단한 것은 이것이 때때로 경찰의 자극과 도발을 견뎌낸 것이라는 점이다. 제발 좀 변질되었으면, 제발 좀 폭력이 나와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정부와 보수언론의 강박은 이제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대중의 울화를 돋우고 과격화와 고립화의 덫을 놓는 세력은 낡은 패러다임의 전선을 상상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대중이 그 패러다임을 넘어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촛불의 정치는 68혁명이 걸려든 고립화의 덫을 피하고 있을 뿐 아니라 68의 패배와 좌절로 인해 자연스레 강화된 정당정치 수렴론과 대립된다는 점에서, 68 패배의 주요 원인과 주요 결과의 덫 양자를 피해가고 있는 셈이다. 사실상 운동의 정치를 제도적 후진성의 증거로 간주하고 정당정치로의 수렴을 주장하는 우리 지식계 일각의 논의는 68혁명의 좌절로 인한 순치(馴致)를 선진성의 징표로 삼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이렇듯 촛불항쟁이 국민 다수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평화시위를 통해 생명과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주의를 지켜가는 운동이라면, 이제 68운동과 촛불항쟁은 다른 면이 두드러진다. 타리크 알리의 《1968―거리행진》(1968: Marching in the Streets)의 우리말 제목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은 68에는 아주 적확한 것이지만, 우리 앞에 분노의 나날만 있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68혁명 때와 정반대로 정부가 오히려 '명박산성'이라는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7월 5일 국민승리선언 이후로 정부의 벽창호식 강경대응은 점입가경이다. 정부가 스스로 표방하는 자유민주주의를 계속 훼손하지 않고는 버티지 못할 정도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는 촛불의 승리를 인정하기보다 무력화하기 위해 전선을 아예 진창으로 만들고 있다. 이것은 국민이 그 진창에서 같이 뒹굴다가 허탈과 분노로 지치거나 고립되기를 바라는 저열한 기획으로 보인다. '우리가 이미 이겼노라'는 국민승리선언은 그 진창에서 같이 뒹굴지 말고 우리가 이룩한 성취를 바탕으로 좀더 느긋하고 유쾌한 새 단계의 싸움으로 나아가자는 뜻일 것이다. 더구나 촛불항쟁이 세계사적으로도 선진적인 아름다운 사건이 될 조짐임을 자각한다면, 더 즐겁게 싸우는 일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2008.7.16 ⓒ 유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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