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어당은 <생활의 발견>에서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여행'에 대해 말한다. 담장을 넘지 않고 사유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여행이다. 만물동근(萬物同根)이라 하여 모든 것이 한 뿌리에서 나오고 하나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굳이 담장 밖을 넘지 않아도 세상의 이치를 깨우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하안거 해제를 한 선가의 스님들이 화두정진하는 것도 그와 같은 이치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관념을 통한 여행이 온전하다고 생각치는 않는다. 먼저 개인의 부덕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태공 '여상' 이 낚시로 세상을 구한것 처럼 호숫가에서 세상을 알만한 내공이 부족해서이다. 하지만 나보다 더 못난 인간들은 실제로 결코 살아생전 그런 경지에 이르지도 못하면서도  도가풍의 서적 몇 권과 참선 몇 번에 마치 그 경지 언저리를 이해한다고 믿는 인간들이다. 화두를 부여잡고 있다 보면 어느날 문득 '돈오'한 것 같은 마음이 든다고 한다. 경박한 젊은 스님들은 그 때 더 이상의 가르침은 필요없다면서 하산하려 한다. 큰 스님들에게 죽비 한 대 제대로 맞으면 돌아오는 스님들도 있고, 자존심 강한 스님들은 '자신의 깨우침'을 믿고 산문을 나선다. 대한민국 국정 교과서가 사람들에게 '속류 유물론"을 잘못 박아 놓는다면 스스로 관심이 불러 일으킨 섯부른 공부는 '속류 관념론' 을 한 단계 높은 경지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우를 범한다. 

관념의 여행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해도 산 속 야생화들이 내뿜는 향기를 느낄 수는 없다. 잠시 걸터앉은 평상에서 발을 쭉 뻗었을때 날아가는 노독의 그림자를 볼 수 없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굵은 주름살이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여행은 언제나 석고처럼 굳어져가는 몸의 모든 감각을 되살려낸다. 뜨거운 아스팥트를 걷는 발바닥이 어떻게 아릿한지, 귓 밑으로 흐르는 땀방울이 얼마나 간지러운지, 바람이 내 머릿결을 어떻게 쓰다듬는지....여행은 반복적인 일들로 화석화 되어가는 도시인들에게 사람이 얼마나 사방으로 감각을 펼칠 수 있는 존재였는지 알게 한다. 나는 그래서 여행이 좋다. 묶여 있던 모든 근육들이 어색하게 기지개를 편다. 처음에는 부자연스럽게 몇 번 팔을 돌려보지만 이내 적응된다. 그리고 들판을 뛰어다니던 조상들의 유전자가 내 몸에 있음을 확인시켜 주듯이 기억 속의 DNA가 좌심방의 펌프질과 함께 동맥 사이로 뛰쳐나온다. 여행은 그래서 좋다.

나의 휴가가 사실 조금 더 아날로그가 되길 나는 바란다. 그렇지만 당장에 쉽지는 않다. 내가 세상의 의무들을 조금 더 충실히 해 놓고 난 이후에는 그런 시간들이 올 것이다. 나는 조급해 하지 않으려고 다독인다. 아름다운 젊은이들이나 나보다 먼저 많은 의무들을 감내해낸 사람들의 여행기를 볼 때면 늘상 마음이 앞선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시간이 있는 법임을 안다. 그것은 봄처럼 더디온다. 내가 재촉한다거나 염원한다는 행위는 그닥 상관이 없다. 물론 그것이 내게 왔을 때 멀뚱멀뚱 지나치게 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 마음의 채비를 할 수 있는 것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이번 휴가는 하동에서 며칠, 무주에서 며칠, 청주에서 며칠을 보냈다. 가는 마다 산은 깊었고 잎새는 빗방울을 맞아 더욱 짙었다. 아름다운 세상을 더 많은 사람들이 조금 더 아름답게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매미는 우리가 가는 모든 여행지를 따라다닌 친구였다. 지상에서의 짧은 시간을 우리 가족과 함께 해준 매미가 잘 되길 바란다. 몇 년이 지나고 나면 그 매미의 자식들과 함께 여행을 하고 있을게다.도시는 목소리 높은 말매미들이 점령했지만 아직 시골에는 어린 누이의 목소리처럼 카랑카랑한 참매미들이 많이 있다.

아이가 있는 집은 대개 그렇지만 여름 휴가는 아이를 위한 것이다. 어디를 가든지 'Baby First' 이다. 하루의 동선도 여유있게 잡아야하고 잠시 머물 곳도 그렇다. 여행 중에 카메라의 렌즈는 아이의 일거수 일투족을 담는다. 백 여장의 사진 속에 정작 내가 등장하는 장면은 두 세컷 뿐이다. 아이는 쌍계사 계곡에서 첨벙첨벙 방개처럼 놀았고 비 내리는 청학동에서 슥슥슥 땅강아지처럼 산길을 올랐다. 삼성궁을 내려가는 동안 등에 닿는 아이의 통통한 볼 느낌도 좋았다. 무주에서 아이는 팬션 앞에 피어 있는 해바라기가 바람에 움직이는 것을 보고 즉석에서 안무를 했다. 어깨를 으쓱하더니 해바라기의 떨림처럼 몸을 좌우로 움직였다. 일명 '해바라기 춤'이다. 팬션 주인은 아이의 춤사위를 보고 파안대소를 지으며 앞선 손님이 주고간 숯불장작 고구마를 건네주었다. 처음 타본 케이블카에서 아이는 아닌 척 했지만 내심 긴장했다. 산 정상은 운무의 바다였다. 고사목들이 마치 김정희의 <세한도>처럼 보였다.

청주에서 하룻 동안 일명 '액자 휴가'를 얻었다. 너무 피곤했던 탓에 가져간 책은 채 두 장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오랜만에 <풍월당>에 들러서 몇 장의 음반을 샀다. 늘 틱틱거리지만 사실 오랫동안 내 팬클럽임에 분명한 풍월당 실장이 주는 향긋한 커피향도 좋았다. 새로산 음반은 풍월당에서택배로 부쳐주기로 했다. 휴가가 끝난 오늘쯤 도착할터이다. 압구정 CGV에서 영화 <다크나이트>를 흐뭇하게 보았다. '명불허전'이다. 읽어낼 텍스트도 무척 많다.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자웅동체'같은 '배트맨/조커' 라는 캐릭터다. 돈은 많지만 아직 머리가 덜 깨인 배트맨만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 책머리에 괴테를 인용한 이런 글이 나온다.

".... 그래서 결국 너는 누구란 말이냐? " 

"나는 영원히 악을 원하면서, 영원히 선을 행하는 힘의 일부이지요."  -괴테, <파우스트>

이 말은 그 반대로 읽어도 마찬가지다. '영원히 선을 원하면서도, 영원히 악을 행하는 힘'으로도 말이다. 배트맨의 가장 큰 실수는 '악'을 섬멸할 수 있다고 믿는 의지이다. 물론 정의를 이루려는 작은 바람에서부터 시작했겠지만 시종장 알프레드의 말처럼 '선을 넘었다.' 는 것이다. 히스레저가 맡은 조커라는 캐릭터는 너무 매력적이어서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돈'보다 '메시지'를 중요시여기는 악이다. 그러니까 정작 상대하기 힘든 것은 '사욕'을 달성하기 위해,'돈'을 중요시 여기는 '대한민국의 보수우익'들이 아니다.(이 놈들도 상대하기 힘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정작 힘든 상대는 '악무한의 악'으로 그 '메시지'를 전달하려 다른 무엇일지도 모른다. 영화에는 '게임이론'도 등장하고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해서도 말한다. 또한 프레임을 걷어차는 방식의 '탈주'에 대해서도 언뜻 이야기한다. 마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살인마 안톤 쉬거의 동전던지기를 거부한 여인처럼 말이다.

서울에서 알라딘의 몇 몇 분을 만났다. 생각했던 이미지와 유사하면서도 또 조금 씩 다른 면들이 있어서 재미있었다. 사람이란게 늘 그런것이다. 글 속에 나타난 자기는 언제나 미화된다. 그렇지만 실재에서는 그 사람의 향기가 난다. 그것은 철장 속의 동물과 초원에서 만나는 동물을 만나는 것 만큼이나 다르다. 전자가 더 안전하고 편안하지만 실재 모험을 즐기는 나에게는 후자가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준다. 하여간 술을 잘 못하시는 분들에게 '소맥'을 몇 잔 드린 것이 부담스럽지 않으셨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편안하고 즐겁게 잠들었다... 시냇물 위에 종이배를 띄워 놓고 넘실거리는 좋은 꿈을 꿨다.  

다음날 창문을 열었더니 조금 흐렸다. 마치 눈이 금새라도 올 것 같은 날씨였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날씨다. 출근길 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쉰다' 라는 통쾌함같은 것을 느끼고 싶었지만 그날은 국가공휴일이었다... 부드러운 카페 라떼같은 웃음으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힘들겠다구? 그렇지 않다. 일상의 소중함은 그것 자체로 중요하다. 여행의 즐거움이  그 자체로 소중한 것 처럼 말이다. 언제나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지만, 우리는 그 때 그 때 인생의 가장 정점을 지나고 있다. 모든 순간이 어쩌면 '구름 속에 잠시 고개를 내민 빛'과 같은 시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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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중입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아...목요일이구나. 그러면 5일만에 인터넷에 들어왔습니다.ㅋㅋ

부산에서 하동으로 ...하동에서 무주를거쳐 지금은 처갓집인 청주에 있습니다.

어제 와이프 친구집에 가서 '소맥'을 심하게 마시고....(나원 집에서 소맥을 맥이는 동네라니 .흐흐)

어제는 폭우가 쏟아지더니 오늘 아침은 날씨가 좋군요.

오늘은 휴가 중의 휴가....일종의 '액자 휴가'라고 할 수 있는 날입니다.

오늘 낮에 서울에 올라간답니다.  ...사실 계획이 없습니다. 원래 올라가면서 그냥 전화합니다. 가끔 친구들은 이러지요.

"야...띠바야...오랜 만에 올라오면 미리 연락 좀 해라. 오늘은 선약이 있잖아...언제 내려가냐?...내일 안돼. 하여간..새끼.. "

오늘도 몇 번 이런 이야기를 들을가능성이 있지요.ㅋㅋㅋ

이번 휴가도 대략적인 스케쥴은 있었지만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했으니 오늘도 그럴 생각입니다.

...서울에서 뵙고 싶은분들도 있지만... 괜히 시간을 정했다가 미안한 일이 생길까 두려워 그냥 올라갑니다. 이러다 아무일 없어지면 그냥 어디 시원한데 가서 책이나 보지요,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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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4 10: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웽스북스 2008-08-15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가중의 휴가, 액자휴가, 개념이 재밌어요, 근데 정말 와닿는다는...
서울은 잘 다녀가셨는지요

드팀전 2008-08-16 11:48   좋아요 0 | URL
네...재미있었습니다.

세실 2008-08-15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청주에 오셨다 가셨군요~~~ 좋으셨지요? ㅎㅎ

드팀전 2008-08-16 11:48   좋아요 0 | URL
아직 청주에요.^6 일요일 오전에 내려갑니다.
 

**18년전에 대학생이던 나는  kbs 에 가서 시위를 했었다.  일종의 지원 시위였다. 로비에 앉아서 방송독립의 구호를 외치고 함께 노래를 부르고 했었다. 오늘은 그날이 생각난다. 18년만에 경찰이 공영방송에 쳐들어갔다. 예나 지금이나 독재정권이 믿는 것은 경찰의 폭력이다. 뉴스 화면을 보니 내가 아는 몇 몇 분들이 경찰에 달려가더라...

이 놈들을 어떻게 해야할지... 

참담한 직원들 "KBS 심장부가 유린됐다"<BR>이사회, 정연주 사장 해임제청안 통과


기사입력 2008-08-08 09:26 |최종수정2008-08-08 15:12 기사원문보기


[오마이뉴스 송주민 기자] 특별취재팀   취재 : 장윤선 송주민 박유미 장일호 기자 / 총괄 : 김병기 기자 사진 : 권우성 기자 동영상 : 김윤상 박정호 기자 / 총괄 : 이종호 기자 편집 : 권박효원 기자  

정연주 사장 해임을 위한 KBS이사회가 열리는 8일 오전 사복경찰 수백명이 여의도 KBS본관 1층 입구로 노조원들을 밀어내며 진입하고 있다.
ⓒ 권우성  


8일 오전 정연주 사장 해임을 위한 KBS이사회가 열리는 여의도 KBS본관에 경찰 수백명이 토입된 가운데, 이사회 개최와 공권력투입에 항의하던 직원들이 본관 3층 이사회실앞에서 경찰에 의해 끌려나오고 있다.
ⓒ 권우성  
  [최종신 : 8일 오후 2시 30분]   직원들 '공영방송 KBS 사수 직원행동' 구성... "다음주 월요일 직원총회"

KBS 이사회(이사장 유재천)는 8일 낮 12시 40분경 제589차 임시이사회를 개최해 정연주 사장에 대한 감사원 해임요구에 따른 해임제청 및 이사회 해임사유에 따른 해임 제청안을 의결했다.

이날 이른 아침부터 이사회의 부당 개최를 저지하겠다고 나선 KBS 직원들은 이 소식에 참담함을 감추지 못했다. 일부 직원들은 눈물을 뿌리며 "당신들이 공영방송 KBS의 이사가 맞느냐"고 울부짖기도 했다.

KBS 이사회의 부당한 결정에 항의하는 직원들은 이날 오후 2시 현재 서울 여의도 KBS 본관 2층 시청자광장에서 '흔들리지 않게' '동지가' '님을 위한 행진곡' 등의 민중가요를 부르며 울분을 삭이고 있다.

이번 이사회의 결정에 항의하는 직원들은 직능단체와 지역지부 등의 협의를 통해 '공영방송 KBS 사수 직원행동(가)'를 구성하기로 했다. 일단 KBS 구성원들이 내부 직능단체장(PD협회, 기자협회, 경영협회 등) 4명, 지역지부장 4명, 노조 중앙위원 3명 등 11명이 낸 호소문에 동의해준다면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선언하고 즉각 활동에 돌입하겠다는 태세다.

양승동 KBS PD협회장(PD연합회장)은 "다음주 월요일 낮 12시 KBS 민주광장에서 직원총회를 열 계획"이라며 "이 자리에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이 본격화화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8일 오후 KBS 정연주 사장의 해임제청안을 통과시킨 유재천 이사장(사진 중앙 흰머리)이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이사회가 열렸던 KBS 본관 3층 회의실을 빠져나오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에 앞서, KBS 이사회는 ▲경영수지 적자 구조화 ▲인사관리 난맥상과 자의적 인사권 행사 ▲방송의 공정성 훼손 ▲개인이익을 위한 권한남용 ▲관리부재·기강해이 ▲국가1급 보안시설 보호의무 방기 등 모두 6가지 항목을 들어 정연주 사장에 대한 해임요구 제청안을 가결했다.

이사회는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불러온 정연주 사장은 실패를 호도하기에 급급했다"며 "급변하는 디지털 매체환경에서 KBS의 밝은 미래를 예비하기 위해 이 결의안을 의결한다"고 밝혔다.

정연주 사장은 이날 오후 4시 이사회 결정에 대한 입장을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할 예정이다.

경찰은 이날 모두 31개 중대 2480명의 전의경을 동원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KBS 직원들은 90년 5월 '방송민주화 투쟁' 이후 경찰이 본사의 심장부까지 유린한 것은 18년만에 처음이라고 분노하고 있다.

이날 사복경찰 200여명은 KBS 이사회가 열리는 본관 안에서 새벽 6시부터 들어와 진을 치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KBS 직원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8일 오후 KBS 정연주 사장의 해임제청안을 통과시킨 KBS 이사들이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이사회가 열렸던 KBS 본관 3층 회의실을 빠져나오고 있다.
ⓒ 오마이뉴스  


8일 오후 KBS 정연주 사장의 해임제청안을 통과시킨 KBS 이사들이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이사회가 열렸던 KBS 본관 3층 회의실을 빠져나오고 있다.
ⓒ 오마이뉴스  


8일 오후 KBS 정연주 사장의 해임제청안을 통과시킨 KBS 이사들이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이사회가 열렸던 KBS 본관 3층 회의실을 빠져나오고 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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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8-08-08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찰이 왜 저기서 저러고 있답니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해가 안갑니다. -_- 명령이라고, 제 밥벌이라고, 광주에 투입돼 시민들을 '학살'한 이들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Mephistopheles 2008-08-08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론과 방송 장악을 뒤에서 소근소근하다가 이젠 아주 대놓고 하는군요..
갈때까지 갔다는 또 다른 표현이겠죠.

soyo12 2008-08-09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제 어디까지 갈 건 지.....
참담하고 답답하고.......정말 벽에 막힌 기분입니다.
 



영화의 원제목은 'Things we lost in the fire' 이다. 우리 말로 바꾸어도 달라 질게 거의 없는 착한 번역이다.

이 영화는 국내 극장에서 개봉하지 않았다. 지난 달인가 곧장 DVD로 출시되었다. 그러나 동네 비디오가게에 가서 시를 읊듯이 낭낭한 목소리로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 주세요.라고 하면

주인이 '그게 뭔데요?' 라고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영화의 두 주인공은 흑진주 할 베리와 사령관 '체' 의 베니치오 델 토로이다.

워낙 알려지지 않은 영화여서 간략하게 줄거리를 좀 이야기해야겠다.

영화의 첫 장면에는 'X-파일'의 히로인 데이비드 듀코브니가 나온다. 그의 극 중 이름은 브라이언이다. 그는 굉장히 착실하고 가정적이며 사려깊은 가장이다. 오드리(할 베리) 와의 사이에 10살 먹은 여자 아이와 물에 머리 담그기를 두려워 하는 6살의 남자 아이를 두고 있다.

그에게는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절친한 친구가 있다. 마약 중독자 제리(베네치오 델 토로)이다. 브라이언은 제리에게 유일한 친구이다. 모든 사람이 제리를 포기했을 때 조차 브라이언은 그에 대한 우정을 져버리지 않는다. 오드리는 그런 남편이 못마땅하다. 

제리의 생일날,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브라이언은 제리에게 간다. 싸구려 모텔에서 마약에 쩔어 있는 제리를 만나고 브라이언은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들에게 줄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말이다. 그런데 공원에서 한 여자를 두드려 패는 남자를 본다. 그를 저지하려는 브라이언. 남자는 갑자기 총을 꺼내든다.

영화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장례식장을 찾아온 제리. 오드리와 제리는 이것이 첫 만남이다. 오드리는 제리에게 당신을 싫어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조금만 더 있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며칠 후 오드리는 제리의 모텔을 찾아가서 창고로 들어와 살라고 말한다.

과부와 죽은 남편 친구의 로맨스일까? ...아니다.

이 영화는 '상실'을 다루는 영화이다. 여성감독 수잔 비에르는 잔잔한 삶에 파멸시키는 충격적인 사건을 대하는 개인들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그녀는 감각적인 클로즈업을 사용하고 바디캠이나 핸드핼드 카메라를 이용해서 조용하지만 상처로 흔들린 주인공들의 심리상태를 묘사한다. 특히 눈이나 손같은 부위에 대한 세심한 클로즈업이 빈번히 사용된다. 반면에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내에서 상실감을 극대화시킬수 있는 롱샷등을 통해 할 베리의 처연한 마음을 그려낸다.

영화에서 오드리와 제리는 둘 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이다. 오드리는 소중한 남편을 제리는 세상의 유일한 친구를 잃었다. 오드리는 불면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제리를 침실로 불러들인다. 통속적인 상황인가? 그렇지 않다. 오드리는 정말 잠을 자고 싶었을 뿐이다. 남편이 잠들기 전에 귓볼을 만져주었듯이 제리에게 그렇게 해달라고 요구한다. 제리는 그렇게 한다. 물론 성적인 긴장감이 도는 장면들이 몇 군데 있다. 그러나 감독은 그 지점에서 살짝 씩 현명하게 비켜나간다. 

오드리의 딸이 제리에게 '아빠가 되면 안되겠냐?' 고 묻는다. 제리는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마치 브라이언이 없었던 것 처럼 만들어서는 안되지않겠냐고 말이다. 영화 내내 감독은 이 약속을 지킨다. 그렇지만 의리의 돌쇠같은 스트레오타입화 된 방식은 아니다.

오드리는 제리가 점점 브라이언의 영역으로 침범하는 것에 분노한다. 당연히 그렇지 않겠는가? 감독은 오드리의 이중적인 감정을 잘 잡아낸다. 한편으로는 제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면서도 또 제리가 브라이언의 영토를 침범하게 될 까봐 두려워하는 그런 것 말이다.

이 둘은 '상실'이라는 커다란 트라우마 앞에서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를 돕니다. 이것이 눈에 보이는 어떤 것으로 뚜렷이 들어나지 않는 것이 이 영화의 장점이다. 마치 시간을 찍어내듯이 그렇게 상처와 싸우고 상처와 화해해 가는 과정을 그린다. 감독의 섬세한 연출의 미덕이 그곳에 있다.

영화의 제목은 브라이언 네 집에 있었던 화재와 관련이 있다.

<단테 신곡 강의>를 쓴 이마미치 도모노부의 책에는 유명한 가브리엘 마르셀과의 개인적 일화가 잠깐 소개된다.  신곡에서 단테는 베아트리체의 입을 빌어 '신이 인간에 준 가장 큰 선물이 자유의지'라고  말한다. 마르셀은 작별 인사를 하러간 도모노부에게 묻는다 "그런데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선사할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이 있지.그게 뭔지 알려나?".....도모노부가 머뭇거리고 있자 마르셀은 이렇게 말한다. " 수많은 것들이 사라져 버린다. 인간이 인간에게 주는 모든 물건들은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아름다운 추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라고 말이다.

 영화 <우리가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은 가브리엘 마르셀과 이마미치 도모노부의 짧은 에피소드를 영화로 만든 것 같다. 영화는 그런 가르침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절망' 앞에선 인간들의 모습을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 더 주목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삶과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도 함께 말이다. 영화는 말미에 브라이언이 말한 '좋은 것은 받아들여' 라는 글귀로 끝맺는다. 현실이 지옥같아도 결국 그것을 헤쳐나올 수 없는 '지옥'으로 만드는 것은 진정 '좋은 것'을 잃었을 때이다. 그 좋은 것이 이름이 '믿음'이든 '사랑'이든 '희망'이든....정할 나름이다.

잔잔하지만 아름다운 영화다. 언젠가 '상실'을 경험했던 사람들에게라면 더더욱. 할 베리와 델 토르의 연기는 훌륭하다. 특히 델 토르의 마약과 담배로 뇌의 절반 쯤 빈공간으로 만들어 버린 듯한 연기와 눈빛은 인상적이다.

 나는 이 영화를 와이프와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와이프가 좋아할 만한 영화다. 확실하다.

p.s) 최근에 출시되었지만 동네 DVD 가게에 이 영화가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을 듯 하다. 평소에 별로 권장하는 방식은 아닌데...희안하게 포털 검색해보면 120분 가량되는 영화 전체를 바로 띄워놓은 곳들이 있다. 문제가 될 듯 한데...하여간 대담한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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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6 2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가끔 엄살을 부린다. 지나고나면 항상 그것이 '엄살'이었음을 자인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스스로 부끄러워진다.

물론 어떤 일이 처음 시작될 때 실재로 능숙한 사람들보다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군대가서 가장 힘든 시기는 이등병이고, 회사에서는 수습사원일 때다. 사람들의 관계, 업무의 특성, 조직의 문화, 일의 숙련도 등이 모두 현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그렇다.

 경제학 교과서 흉내내서 이야기하자면 ,1단위 처리하는데 요즘 같으면 1시간이면 될 것을 그 때는 무려 4시간쯤 거렸다. 매일 12시 퇴근하는 일상이 이어지다보면 '사는게 뭔가? '싶기도 하고, 이거 ' 언제까지 이럴 수 있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TV프로그램 '생활의 달인'들 처럼 몸은 거짓말을 잘 하지 않는다. 한 번에 100장의 만원권을 짚는 '달인'처럼은 안돼도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일과 도구가 손에 붙는다. 그러면 그 때부터는 조금 편안해진다. 피아노 배울 때 지겨운 체르니를 그렇게 가르치는 이유도- 그것 때문에 음악의 즐거움이 날아가기도 한다지만- 그런 것때문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엄살'은 일종의 '자기과장' 이다. 부정적 차원의 과장이다. 자기의 고통을 극화시키는 것이다. 능동적 차원의 과장은 '허풍'이다. 실재로 별거 아니었는데도 한 스푼 운의 도움을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는 것과 유사하다. 최선도 잘 다하고, 목숨도 잘 걸고, 하늘을 두 쪽 내기도 잘 한다.

물론 세상에는 이 악물고도 견디기 힘든 고통이 분명히 있다. 또한 자기의 고통이 최고의 고통이라는 통속적인 말도 있는 것을 안다. 그런 것들을 말하는 바는 아니다. 결국 엄살은 내 마음 속의 어린 소년이 징징거리면서 달래달라고 울먹이는 거다. 허풍은 그런 소년에게 아부하는 것이다. 나이 40이 다 되어서도 가끔 그런 짓을 하는 것을 보면 '어른'이 된다는 것이 '평생 도전 과제'로 썩이나 괜찮은 목표라는 생각이 든다. 괜찮은 '어른' 만 된다면 짧은 인생이 안타깝지만 나이 들어 조금은 덜 억울할 것 같다.

나는 가끔 일이 힘들다고 징징거린다. 그런데 바깥에는 일을 못찾아 새벽 시장을 떠도는 사람들이 연일 늘어나고 있다.....

나는 가끔 풍족하지 못하다고 징징거린다. 그런데 오늘도 자기 몸의 두 배가 넘는 리어커를 끌고 여름 한 낮을 개미처럼 기어가는 노인들을 본다. 더운 여름에 3평 짜리 방에서 서로 등에 짜증을 부려대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가끔 세상이 날 이해하지 못한다고 징징거린다. 그러나 세상의 이해를 받지 못하고 사형대의 외로운 길을 홀로 걸어간 수많은 영혼들을 알고 있다.....

나는 가끔 내가 한 옳바른 일을 과장해서 쟁쟁거린다. 그러나 철저히 고립된 도청, 한 낮의 정적은 상상하기 조차 끔직해 한다.....그 분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나는 가끔 내 분노를 과장해서 쟁쟁거린다. 그러나 한 겨울에 혼자 도는 꽹과리 소리처럼 허공을 맴도는 소리일 뿐이다.....

어쨋거나 나는 '자기 과장'의 달인이다.

내 경험, 내 행동, 내 앎,그리고 내 아픔을 과장하지 말아야 한다. 그건 사실 거대한 산맥들 아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돌맹이 하나 만도 못할 지도 모른다. 그것이 '과장'의 벽만 넘는다면 산맥 앞에 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새벽 1시가 눈 앞이다. 들어가야지...

아이와 아내가 자고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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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8-08-07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비슷한데요. 과장에다 연민도 추가해주세요.^^ <다크 나이트>를 보고 오느라 이 시간 댓글이네요. 명불허전이어서 기분은 좋습니다. '과장'이 아닌 영화를 보는 즐거움...

드팀전 2008-08-07 09:05   좋아요 0 | URL
전 이번주 바빠서 못봤어요. 다음주는 휴가인데 그때 볼 수 있을까나..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믿음직 하군요.
'자기연민'도 자기의 슬픔을 과장하는 것 중 하나겠거니 합니다.^^
제 연극하는 여자 친구가 그걸 '감정의 설사'라고 말하더군요.

Arch 2008-08-07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제가 부린 엄살을 누군가 짚어서 엄살이라고 말해주면 뜨끔하기보다 속상했었는데. 뜨끔을 좀 더 느끼고 감정의 설사(탁월한 비유네요.)를 탈탈 털어낼 수 있다면 좋을텐데. 전 이 페이퍼에 뜨끔했어요.

드팀전 2008-08-07 17:49   좋아요 0 | URL
^^ 제게 하는 소리니까...뜨끔하실 것 까지는 없지요.
누구나 살면서 여러번 이런 생각들을 하잖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