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앙>서평에 대한 우석훈의 답변이다...^^

우연히 그런 생각을 했는데,-꼼꼼한 것은 아니다.- 우석훈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녹색'을 이야기하고, 제한적 '탈주'를 이야기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물론 더 근본적인 이유는 그가 쉽게 쓰기 때문이다. 그의 '녹색'과 '탈주'는 논쟁거리가 된다. '탈주'는 복잡한 문제니까 관두고 '녹색'은 '상식'이니까 받아들여야 된다면 나와는 다르다. '당신이 당신의 가치를 상식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닫힌 체계를 선점한 자의 자의적 폭력이 될 수 있다.'  

정치경제학을 넘어 사회경제학으로
[이재영에 답함] 시대의 전위와 한국형 파시즘 성공 시나리오
 
 
 

<레디앙>의 지면을 빌어 개인적으로 내가 한국에서 가장 '믿는' 이재영 선배의 질문에 답하는 몇 가지 얘기를 해볼까 한다. 몇 가지 질문에 대한 직문직답의 형태는 아닐 것 같고, 이래저래 책 뒤에 에필로그 형식으로 달고 싶었던 얘기들의 일부를 이번 기회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1. 에피소드, "우리는 지는 법이 없습니다"

졸저 『괴물의 탄생』은 "우리는 지는 법이 없습니다"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88만원 세대』에서부터 시작한 4권짜리 '한국 경제 대안 시리즈'의 마지막 문장이니까, 굉장히 많은 문장들과 표현 중에서 고르고 고른 문장이라는 점을 먼저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 더 고백을 하자면, 이 표현이 바로 이재영의 표현이었다는 점이다.

시기를 회상하면, 『88만원 세대』를 결국 <레디앙>에서 출간하기로 하고, 이광호 대표가 출간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승용차를 팔았던 그 시점 어느 때의 일이다. 그 무렵, 우리는 모두 너무너무 돈이 없었고, 당장 집 밖으로 나오기 위한 차비도 주머니에 없던 일이 종종 있던 그런 시절이다.

나도 예금이 다 떨어져서 누군가가 밤에 잠깐 보자고 할 때에 택시비가 없어서 "오늘은 못 나간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생활을 꾸리기가 어려웠었는데, 그 때 이재영도 당장 하루 살기가 빡빡했다. 그 어느 즈음에 이재영의 통장에 원고비 20만원이 들어왔다.

그때 그 시절

그 때 "난 지는 법이 없다"라고 이재영이 말했었는데, 그 얘기가 참 재밌었다. <레디앙>은 운영이 불가능한 상태라서 상근하던 기자들을 떠나보내고 있었고, 이광호와 이재영 둘이 겨우 사무실을 지키고, 몇몇 필자들은 원고비를 '후불' 즉 외상으로 하더라도 <레디앙>을 지켜야 한다고 기고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한국 경제 대안 시리즈'의 1권 이후의 책들이 <레디앙>에서 나오지 못하게 된 것은, 순전히 출판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1, 2권이 동시 출간되었었는데, 1권의 출간비를 대기에도 <레디앙>은 벅찼고, 첫 출간이라서 이래저래 어려운 일들을 해결하느라고 그 뒤에 2권이 나올 때에야 겨우 1권이 나오게 되었다. 1주일 차이지만, 사실은 개마고원의 2권이 1권을 추월해서 먼저 나오게 되는 소소한 사고도 벌어지게 되었다.

그 시절에 "난 지는 법이 없지"라고 하는 이재영의 낙천적인 표현들은 휘발성이 강했던 것 같다. 대선이 끝나고, 이명박 정부로 넘어가면서 몇 개의 독자 모임 같은 곳에서 나는 "우리는 지는 법이 없습니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꽤 오래된 나의 독자들 중에 일부는 다른 곳에서도 그 표현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어쨌든 이 시리즈의 마지막 결어는 <레디앙> 그리고 이재영과 함께 어려운 시기를 같이 넘어갈 때, 그 때 우리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말이었다. 이 기회를 빌어, 다시 한 번 이 표현의 원저작권이 이재영에게 있음을 밝히고 싶고, 다시 한 번 그의 낙천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

2. 시대의 전위는 어디에 있는가?


   
 
 
 
졸저 『괴물의 탄생』에서 노골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학부 대학생용 교재 정도로 수준을 맞추고자 했던 이 책에서 던지는 가장 큰 질문은, 시대의 전위는 어디에 있는가라고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회를 빌어 노골적으로 표현하면, '노동자 정당'이 시대의 전위인가, 아니면 다분히 아카니즘적이며 생태주의적인 공동체 혹은 직접 민주주의의 작동 요소인 풀뿌리 민주주의의 다층적 구조를 만드는 것이 전위인가,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10년 전에 유행했던 표현대로라면 cummunalism이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코뮌에 해당하는 것들을 만드는 것이 보다 더 전위적이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내가 가지고 있고, 그런 점에서 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로 이어지는 논의 축보다는, communism-communalism-코뮌적인 것, 그렇게 이어지는 논의의 축을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사회주의와 사민주의 논쟁보다는, 지역-풀뿌리-공동체-생태로 연결되는 논의와 활동들이, 만약 '신좌파'라는 개념을 설정한다면 훨씬 더 전위적이지 않을까라는 것에 내 생각이 더 끌렸다. 아직은 이 문제에 대해 답하기에 내 스스로도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지만, 이 책을 준비하면서 줄곧 후자의 논의 축을 생각했다.

전체 시스템보다 '요소'가 중요 

본문에서는 '제3부문'이라고 표현을 하였는데, 사회경제이든, 시민경제이든, 혹은 최근의 UN 용어대로 NGO(비정부기구)-NPO(비영리단체)가 되었든, 이런 것들을 만들어내는 시도들이 어쩌면 경제적인 의미에서든 혹은 정치적인 의미에서든 더 전위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좀 하고 있다.

스웨덴이든, 스위스든, 아니면 독일형, 프랑스형, 혹은 일본형 생협모델이든, 아니면 이재영이 얘기한 북부 이탈리아든, 중요한 것은 전체 시스템이라기보다는 '요소'들에 있다고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 요소들은 <자본론>에는 나와있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충분히 계급적인 것은 아니지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에 공통으로 발을 걸치고 있으며, 반자본 혹은 비자본적이며, 동시에 자본주의적 축적이 고도화됨에도 불구하고 보존되거나, 재생산되거나, 확대되거나 혹은 '재발견'되는 요소들이 과연 전위적인 것인가, 아니면 계급 사이의 충돌에서 우연히 등장했지만 결국은 사라질 것들이 전위적인가라는 것에 대한 판단이 문제의 핵심일 것 같다.

나는 '재발명(reinvented)'된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것들은 나라나 문화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사회적인 요소' 그리고 '공공선'의 요소로서 자본 관계에 개입하며, 정치적 결정은 물론 국민경제의 작동에도 개입하며, 점점 더 중요한 요소로서 기능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한국자본주의의 외부

이런 점에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전위적이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내부에 "다른 것도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요소가 아직 충분히 전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보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작은 목소리로, 최소한 한국 자본주의의 외부를 볼 필요가 있다고 소곤거리고 있는 셈이다.

자, 상상해보자. 노조가 만약 스웨덴이나 프랑스의 경우에서 종종 발견하듯이, 그 스스로 일종의 생협을 가지고 노동자협동조합과 같은 형태를 띄게 되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 것인가?

이것은 노동계급에 대한 배반인가, 아니면 또 다른 경제에 대한 요소를 노조 내에서 스스로 잉태시키는 일인가? 나는 오히려 지금의 민주노총이 스스로 소비자협동조합 같은 것을 잉태시키는 것이 더 전위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3. 녹색당과 정치운동

90년대 이후로 한국에서 시민사회와 진보정당 운동 사이에 묘한 협조와 갈등 그리고 질투와 도전 같은 것들이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시절에 유행했던 단어를 다시 환기해보면, '정치운동'이라는 단어와 '운동정치'라는 단어가 있었다.

정치 자체가 운동이라는 흐름은 시민사회 내부에서 '정치세력화'와 '녹색당 창당'이라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났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로 두 개 전부 현실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였고, 지난 대선 때 열린우리당에 대거 입당하는 정도의 결과를 낳게 되었다.

어쨌든 그런 흐름 속에서 '운동정치'라는 단어는, 점잖은 표현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는 상당한 비판력을 가지고 있던 단어였다. 참여연대나 환경운동연합과 같은 메이저 시민단체는 사실 운동을 표방하면서도 결국은 준정당의 위상을 가지고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는 이 단어는, 아무리 학술적이거나 개념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어도 '노빠'라는 단어와 같은 의미이다.

운동을 표방하면서도 결국 권력을 만끽하고, 여차하면 '감시와 참여'라는 미사여구를 뒤집어쓰고, 정부 내의 높은 자리나 탐하는 것 아니냐라는 의미의 단어이다.

'운동정치'와 '노빠'

이러한 현실 속에서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시민운동의 정치세력화는 열린우리당 근처로 수렴하려는 하나의 힘과 훨씬 더 좌파 쪽에서 활동의 영역을 찾으려는 녹색당 흐름, 두 개의 힘으로 분화되었었다. 물론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두 개 다 상처만 남은 실패가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현실적으로 3~5% 정도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는 것 역시 엄연한 현실이다. 아마 한국에서 녹색당이 창당이 되고, 그 클라이막스에 달한다면, 10% 정도를 대변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세력과 진보신당 혹은 민주노동당의 관계는 과연 어떻게 전개될까? 졸저 『괴물의 탄생』에서 전개되는 세계관은 다분히 녹색당적인 정책 대안이고, 그런 점에서는 현재의 진보정당과는 구분되는 논의의 세계이기도 하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힘들이 기계적으로 진보신당에 합류하게 되는 일은 현재로서는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한국의 녹색당 운동은 많은 활동가 혹은 시민들을 대변하는 스타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그래서 어떤 특정한 인사들이 진보신당의 녹색정치를 지지한다고 표명하여도 현실적으로 영향력을 미치기가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녹색의 대안적 정책 틀과 한국경제 대안

원래 녹색의 작동방식이 좀 그렇기는 한데, 한국에서는 특별히 더 대중스타 혹은 많은 활동가들이 인정할 수 있는 인사가 없던 형태였기 때문에 더 그렇다. 즉 '협의' 혹은 '협상'을 한다고 하더라도 할 수 있는 대상이 없다는 말이다. 누구와 얘기하면 될까? 그런 사람은,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설령 더 많은 것을 양보하고 협상을 한다고 해도, 그 대상이 없다.

두 번째는, 여전히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이 녹색을 표명한 사람들과 꿈 그리고 이상을 공유하기에는 그 철학적 틀이 너무 협소하다는 점이다. 이것 역시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일이다.

녹색당이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녹색당이 구현해보고 싶었던 정책적 틀에 관한 논의가 한국 경제 대안 시리즈에서 소박하게나마 전개해보고 싶었던 얘기들이다.

이 정도면 이재영의 대부분의 질문에 몇 가지 간접적인 답변은 되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기회에 '파시즘'과 '중산층'에 관한 내 견해를 제시하는 것으로 이 답변을 마무리하고 싶다.

4. 우정과 환대

'우정과 환대'라는 표현은, 내년부터 집필할 본 시리즈 중 세 번째 시리즈인 '국가의 기본'과 몇 개의 번외편에서 키워드로 사용하기 위해서 최근 준비 중인 표현이다.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몇 개의 논의그룹에서 '환대'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몇 개의 논의를 해보았는데, 생각보다는 중요한 개념인 것 같다. 참고로 작년과 올해, 내가 썼던 일련의 책들은 '생태'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MB 파시즘이라고 원래는 이름붙이고자 했던 그 정치체계는 한국에서는 오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 졸저 『괴물의 탄생』의 또 다른 결론 중의 하나이다. 올 가능성은 다분했었는데, 이명박 자신이 파시즘적 인간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정치사회구조는 물론 문화적 정치까지도 한국은 파시즘을 향해서 달려가는 중인데, 불행히도 이명박은 '불안한 중산층'을 유혹할 수 있는 아무런 인간적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파시즘 시도는 하지만, 정치체계로서의 파시즘은 등장하지 않고, 다만 경찰국가로서의 전환, 즉 폭주하는 경찰 현상 정도를 보게 될 것 같다.

'증오'와 '편가르기'

그렇지만 한국 경제의 위기는 생각보다 깊고, 향후 2~3년 동안 한국의 사회문화에서 특징적으로 등장하게 될 것은, '증오'와 '편가르기'가 될 것 같다. 이것은 파시즘의 또 다른 전형적인 요소들인데, 경제는 계속해서 어려워지면서도 중산층은 물론 민중들까지도 '증오'라는 감성적 요소를 특징적으로 가지게 될 것 같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대단히 매혹적이면서 인간적 매력에 가득 찬 소위 '아름다운 인간'이 등장하면, 대단히 빠르게 한국형 파시즘이 완성될 것이라는 게 내가 잠정적으로 가지고 있는 파시즘 시나리오이다.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시기가 '불안한 중산층'의 동요에서 시작되어 민중들까지 그 '증오'를 공유하면서 완성되었다고 할 때, 거의 유사한 형국이 2010년에서 시작되어 2012년에 마무리되는 그 정치의 계절이 이런 파시즘의 전개가 극성에 달하게 될 것 같다. 그 때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런 게 내가 던지고 싶은 질문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에 맞서는 '환대의 경제'는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 졸저 『괴물의 탄생』에서 '제3 부문'으로 표현된, 자본과 국가에 환원되지 않는 요소를, '환대의 경제'라는 이름으로 다시 한 번 세밀하게 그려보고 싶다.


'한국 경제 대안 시리즈'라는 이름으로 마무리한 첫 번째 시리즈 이후 나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시리즈에서 이에 대한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 물론 아직은 뿌옇게 요소들만 볼 정도다. 나는 그렇게 눈이 밝은 사람인 편은 아니다.

'우정과 환대'라는 거울을 가지고 우리 스스로를 비추어보면 과연 어떤 모습이 보일까?

그렇게 정치경제학을 넘어 사회경제학이라는 새로운 장으로 가보고 싶기는 한데, 과연 진보신당과 민주노동당에서 사회경제학이라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아직은 답하기가 쉽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 앞선 페이퍼에 이어진다. <레디앙>에 우석훈의 <괴물의 탄생> 서평이 올랐다. 일종의 질문 형식을 띠고 있다. 설령 우석훈을 좋아한다하더라도 이런 '비판'에 직면해야 한다. 우석훈의 대안은 '생태경제학'이다. 거기에 자신의 범주를 일종의 '코뮌'의 선 위에 정치시킨다. '코뮌주의' 자체만으로도 이미 넘쳐나는 범주들과 시각들이 있기는 하지만 우석훈은 '근대적 범주'에 대한 '탈근대적 범주'로 '코뮌'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대안을 위치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가 '공산주의자가 될 수 있다면 나는 공산주의자다' 라고 했던 것은 그런 '코뮤니스트'로서의 개념인 셈이다.

이재영의 서평에는 우석훈의 주장에 대해 제기할 수 있는 문제들이 들어있다. 우석훈이 인기가 있고 옳은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또다른 올바른 이런 비판들도 함께 고민하면서 읽어야된다. 


파시즘 가능성 높지 않다
[서평] 『괴물의 탄생』을 읽고…우석훈에게 보내는 질문
 
 
 


우석훈의 한국경제 대안시리즈 네 번째 책이자 완결인 『괴물의 탄생』은 우석훈의 눈으로 살펴 풀어 쓴 경제학사이다. 우석훈은 토마스 홉스, 애덤 스미스로부터 시작하여 이명박 정부 경제관료들까지를 칭찬하거나 통박한다.





   
 
1부는 세계경제고, 2부는 한국 자본주의고, 3부는 대안인데, 그 각각의 사회경제 상황을 설명하며 이런저런 학파나 유명한 경제학자들이 어떤 학설을 펼쳤는지 소개하고 자신의 비평과 주장을 곁들인다.



우석훈이 좋아하는 경제학자들



‘경제학자’라는 초점으로 이 책을 읽어보면 우석훈이 좋아하는 외국 경제학자는 하이에크와 폴 로머이고, 주목하는 한국 경제학자는 백남운과 장하준이다.



“하이에크의 매력적이면서도 교양 넘치는 책들을 직접 읽어보시면, 지금 한국의 ‘잃어버린 10년’을 주장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그 주위에서 ‘747 경제’를 주창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유쾌하지 않고 황당하면서도 잔인한 민족패권론자인지 좀 이해가 가실 겁니다.



… 그에게는 보편주의와 휴머니즘이 가득합니다. 최소한 하이에크만 제대로 읽어도 3~5%의 사람들만을 위하는 한심한 경제 비전을 제시하고, 또 그걸 강행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나는 로머의 논문들 몇 개에 남겨진 흔적을 내 나름대로 해석하는 걸로 박사가 된 셈이다. … 로머와 나는 학자로서 가는 길이 전혀 다르고, 나는 그보다는 생물학적인 패러다임과 진화 현상과 시스템 이론 쪽으로 더 많이 이동했다.



… 그러나 시리즈 첫째권의 작업이 어느 정도 완결되어갈 즈음, 로머에게 배운 것들이 나에게서 사라지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에너지와 자원은 덜 쓰고, 지식과 문화는 더 많은 국민경제’, 그야말로 로머의 출발 지점과 전혀 다르지 않는 결론이 아닌가?”



외국이론이나 소개하는 조순, 정운찬



우석훈이 백남운과 장하준을 꼽는 이유는 하이에크나 로머처럼 호오(好惡)의 관점 때문이 아니라, 자기 이론 없이 외국 이론을 그저 소개하고 적용할 뿐인 조순이나 정운찬, 이한구 같은 한국 경제학자들과 대비되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한국 경제 위기 온다’는 주장은, 백남운이나 장하준이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공부하지 않는 ‘무식한 극우’ 탓에 크게 기댄다.



“이 시점에서 지금 한국의 우파 혹은 극우파들 역시도 경제적 돌파구를 찾아내기 위한 진지한 논의들이 있어야 할 텐데, 실제로 그런 논의를 하고 고민을 하는 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



… 이렇게 3~4년 더 소모적인 논쟁을 하다가 결국 국민경제가 감당하기 어려운 공황을 만나게 되리란 게 지금 우리를 음산하게 기다리는 운명이 아닐까 싶다.”



『괴물의 탄생』은 우석훈의 다른 글들처럼 교양이 넘쳐나고, 도전적 문제의식으로 번뜩인다. 그리고,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거가 적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드물지 않고, 스스로 던진 화두가 그의 산만함 속에서 흔적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논거 부족, 화두의 실종



아래는 『괴물의 탄생』에서 우석훈이 펼친 주장에 대한 의견이나 질문이다. 우석훈이 당장 보충 설명을 해주어도 좋겠고, 지금 어렵다면 나중에라도 공부하여 알려주길 바라고, 우석훈 아닌 어느 누구라도 『괴물의 탄생』을 읽으며 잠시 생각해보길 바란다.



가장 먼저, 우석훈판 경제 위기론의 전제 중 하나인 이명박 정권이 극우파라는 진단. 한국 우익의 역사적 근원이 좌익과의 격렬한 전쟁을 통해 형성되었고, 그 이후의 태도 역시 극우 반공이었고, 근래에는 극우 경제론을 수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의 ‘말 정치’가 아닌 구체 정책들이 남미나 동남아의 우익들과 많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인도네시아 수카르노나 이집트 나세르와는 또 무엇이 다를까? 가장 최신의 우익인 이명박 정부에서조차도 제3세계의 매판 우익들과는 달리 국가주의와 인민주의 전통이 잔존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극우’라는 진단으로 인해 현실 정치경제학에서의 섬세함을 잃는 것은 아닐까?



다음, 한국 경제시스템을 ‘건설 파시즘’으로 읽는 문제. “한국 자본주의의 대부분을 사실상 장악한 건설 파시즘이고, 그 수장은 현재 이명박이지만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교체될 수 있으며, 그 실체는 해체의 과정을 겪기 전까지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건설 파시즘'이란 독해의 위험성



우석훈이 비판하는 지방 토호들의 성격, 그리고 생태운동의 대립자로서 ‘건설’을 반정립하는 것은 타당하지만, 한국 자본주의의 현 단계 또는 국면을 ‘건설족’ 정도로 이해하는 것은 위험하지 않을까? 1980년대까지만 해도 건설-부동산이 유한계층의 불로소득원이나 비생산적 투기행위로 치부되었던 데 비해 지금에 이르러 어지간한 소득 가진 사람들의 ‘재테크’인 데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지금 한국의 건설-부동산 붐 양상은 지자체와 토건족이 주도했던 일본의 버블보다는 외환위기 전 영국이나 스웨덴, 현재의 미국처럼 금융자본의 움직임에 철저히 연동돼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명박의 대운하 역시 ‘건설’이라는 사업 부문의 문제가 아니라, 거대 자본의 투자와 운용이라는 본질에 따라 언제든지 부문 변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셋째, 경제 위기 문제. 책 곳곳에서 약간씩 다르게 서술되고 있지만, 우석훈은 이명박 정권 말기나 다음 정권 초기에 1980년이나 1998년 같은 공황이 올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는데, 논거가 많이 부족하다. “많은 사람들이 … 다음번 공황은 조금 앞당겨질 거라고 예측하는 편이다”라는 설명은 너무 불친절하다.



1980년은 중화학공업으로의, 1998년은 정보통신산업과 신자유주의 금융으로의 이행 과정이었는데, 그렇다면 다음 공황은 어떤 것으로의 이행에서 생겨나는 것인지? 주기적 순환을 넘어 1980년과 1998년과 같이 거대한 사회 변동을 불러올 ‘공황 에너지’는 무엇인지?



넷째. 파시즘 문제. “한국에서의 파시즘은 ‘건설자본 + 성장주의’라는 두 가지 축이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여러 가지 대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들을 억압하고, 정치 지도자와 2~3% 정도의 경제 엘리트가 나머지 국민들을 끌고 가는 상황 정도”라면 굳이 ‘파시즘 온다’고 질겁할 일도 없겠지만, 어쨌거나 책 곳곳에서 비감한 비관을 내비치고 있으므로 그 가능성을 짚어 보자.



파시즘 가능성이 크지 않은 이유



파시즘이 되려면 정치적 극단으로 치우칠 만한 경제적 위기와 파시즘을 추진할 사회 계층, 정치세력이 있어야 한다. 경제 위기 문제는 잘 모르겠지만, 계급 계층 문제에서는 파시즘화의 가능성이 크지 않다.



비정규직과 영세자영업자 같은 중하위 근로계층의 곤궁이야 폭발 직전이고 그들이 좌익을 경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사회의 지배자인 대자본은 지금 방식으로도 충분히 지배 지속 가능하고 행복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일당독재’의 가능성이야 높지만, 그것은 파시즘이 아니라 한국판 자민당 시대의 개막이지 않을까?



또, 파시즘은 우익을 위협하는 좌익의 도전 또는 실험이 좌절된 데 이은 반동일 텐데, 그런 위협과 실패가 전혀 실재한 바 없으므로 한국 우익에게는 파시즘이라는 반동의 유혹도 크지 않다. 무엇보다도 파시즘은 권익 유보를 상쇄할 만한 국가주의적 목표에 대한 ‘국민적 합의’인데, 그게 과연 무엇일까?



다섯째, 우석훈이 대안모델로 제시하는 스위스는 많이 흥미롭고 베껴올 게 많을 듯싶다. 나는, 한국이 지나치게 중앙집중적이므로 분산자치적인 스위스에서 영감을 얻어야 한다는 우석훈의 주장을 경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석훈이 스위스의 고졸자 마에스트로 시스템을 거론할 때 조금 멈칫거리게 된다.



섬유산업에서 곧장 거대 장치산업과 정보통신산업으로 넘어간 한국을 보고 있자면,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고숙련 노동자를 실업자로 내모는 현황을 보면 왜 한국에 정밀가공 기계산업이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만, 이런 건 1970년대의 ‘Made in West Germany’에서 유래된 것이 아닌가?



김나지움-마에스트로에 힘입어 세계 최대 수출국이었던 독일이 지금은 한국 대학보다도 경쟁력이 뒤진다든가, 그래서 스웨덴이나 핀란드만 못하다는 일각의 진단도 그저 무시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제3섹터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들



우석훈이 들고 있는 스위스의 상품 이름들 - 에망탈 치즈, 골드문트, 스마트카 같은 것들이 또 한 번 멈칫하게 한다. 이런 고부가가치 명품들은 사실 스위스보다는 북부 이탈리아가 더 본산이라 할 텐데, ‘좋은’ 스위스와 ‘나쁜’ 이탈리아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리고 고부가치 산업이 먹여 살릴 수 있는 경제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끝으로, 제3부문. 공공부문이나 시장부문의 크거나 작음보다는 제3부문의 과소(寡少) 지표가 더 현격한 한국 경제의 특징이므로, 우석훈의 주장처럼 그 방향에서 여러 활로가 찾아질 것은 분명하다. 다만, 우석훈이 들고 있는 유럽 선진 나라들의 제3부문이 어떤 사회문화적 전통에서 확립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사회적 기업’ 육성사업을 펴는 노동부나 ‘제3섹터’를 주창하는 시민단체들은 제3부문을 ‘좋은 일’ 정도로 오해하거나 오해하도록 하며 ‘계도’하고 있는데,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 제3부문은 그런 작위적 노력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국민국가 자본주의에 흡수되지 않은 전자본주의 또는 비자본주의적 커뮤니티의 경제활동으로 자연스레 형성된 것이다.



극도의 연방주의-꼼뮨주의를 취하고 있는 스위스나 아직도 분리독립의 꿈을 접지 않고 있는 바스크, 막부에 대항하는 영주-자민당에 대항하는 공산당 지자체의 일본에서 제3부문이 흥하고 있는 사실이 그런 이유 때문은 아닐까?



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특수한 제3부문은 어떻게 형성되어야 하는가? 두레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인가? 여성들 사이에서는 세대를 초월하여 지속되고 있는 부조 조직 계(契)는 무엇인가? 왜, 생협은 도시지식중산층의 전유물로 치부되고 있는가?

 


2008년 10월 06일 (월) 09:09:48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8-10-13 2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승주나무 2008-10-14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레이당의 서평은 인상적으로 잘 봤습니다. 우석훈이 4부작을 썼다면 저도 우석훈 4부작을 써보려고 하는데, 우석훈 비평분석이 4번째 계획입니다. 아직 괴물이 출몰할 분위기는 되지 않은 것 같아서~ 잠수중인 잠룡 ㅎㅎ
 

** 우석훈의 <괴물의 탄생>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의 '한국경제 시리즈'의 마지막편이 <괴물의 탄생>이다. 우석훈은 C급 경제학자라고 스스로를 칭한다. 경제학의 역사와 어마어마한 경제사상사의 이름들과 비교하면 C급은 C급이다. 물론 우석훈의 팬들에게 이런 평가가 작가의  '겸손'이거나 아니면 '비난'정도로 들리겠지만 말이다. 우석훈은 대중적인 글쓰기로 나름대로 독자층을 확보한 학자다. 그의 책에서 나온 <88만원>세대는 이제 '고유명사'가 된 듯 하다.

 

 

 

 

나는 우석훈의 책을 그다지 읽지 않았다. 내게 리뷰상을 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이후에 그의 책을 본 적이 없다. 남들 다 본다는 <88만원세대>도 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석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논지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우석훈의 발견'은 삭막한 인문서적 시장에서는 깜짝 놀랄 만한 일이지만 그의 '주장'은 그렇게 '깜짝 쇼'는 아니기 때문이다. 

사르트르가 그랬던가 '베스트셀러는 모두가 읽기 때문에 나도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내게 '우석훈의 책'이 그런 느낌을 준다.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나는 가끔 <88만원세대>를 봤냐는 질문을 받는다. 아니면 우석훈의 다른 책들 <촌놈들의 제국주의> <명랑이 너희를...>들은 봤냐는 질문은 받는다. 아니라고 하면...질문한 이는 약간의 자부심과 함께 '그 책 꼭 보세요. 정말 좋아요' 라는 이야기를 한다.  "... ..."

이런 무언의 압박-진보적 인사면 한 권 쯤은 꼭 봐야할 것 같은 우석훈에 대한 열기-때문에 그의 '한국시리즈' 마지막인 <괴물의 탄생>을 사고야 말았다. 다른 책들에 밀려 있어서 그냥 화장실에 앉아서 몇 장 씩 넘겨봤다. 기획의도처럼 쉽게 씌여져 있는건 사실이다. 경제사상사에 대한 이야기가 대략 전반부였고 후반부는 한국의 현실과 이에 대한 우석훈의 대안이 나와 있는 듯 했다. 아직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는 전제를 감안하고 들어준다면, 그렇게 '감동! 우석훈' 할 만한 내용은 없어보였다. 물론 내가 경제사상사를 배웠던 -지금은 뉴라이트의 핵심인물로 활약하시는- 그 분에 비하면 훨씬 쉽게 이야기하는 것은 맞다. 우석훈은 학부 수준으로 썼다는데, 요즘 대학생들에 비해 과거 대학생들의 수준이 높았는지, 아니면 나를 가르쳤던 그 선생이 강의에 재능이 없어,지루하게 이야기했는지 모르겠다. 어쨋거나 우석훈이 무척 쉽게 글을 쓰고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1부는 경제학자를 중심으로 경제학의 흐름들을 따라가보는 것이 가장 좋을 듯 하다. 대게 애덤스미스의 <국부론> 부터 시작된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08-10-13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석훈씨 책 하나도 안봤는데 늘 읽어야 한다는 압박에만 시달리고 있는 1인입니다. ㅠ.ㅠ

드팀전 2008-10-14 09:14   좋아요 0 | URL
^^ 그게 일종의 베스트셀러의 압박이지요.사실 어떨때는 그런 압박때문에 독서계획에 차질이 생기기도 합니다. 우석훈의 글은 기획자체부터 '대중성'을 염두에 두었고, 한국의 경제라는 현재적 문제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에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괴물의 탄생>은 책도 얇습니다.

마들렌 2008-10-15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당장 사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길안내요
 







대한민국 중산층 ‘잔인한 10월’ [중앙일보]


금융위기 직격탄 장영학씨 3가지 고민
“분위기 휩쓸려 손댄 것들이 모두 상투 … 전문가도 기다려라 말뿐 … 속수무책”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여겨온 중견업체 임원 장영학씨. 미국발 금융위기가 주택 마련, 재테크, 자녀교육 기반을 온통 헝클어뜨려 놓았다. 딱히 시원한 해결책도 보이지 않아 답답한 마음에 그는 요즘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김태성 기자]


관련핫이슈


 

중견 유통업체 임원 장영학(45)씨는 자신이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중산층이라고 생각한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지구촌으로 확산하면서 그는 요즘 세 가지 고민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라고 털어놨다.

“무엇보다 대출을 끼고 산 아파트 값이 속절없이 떨어지고 반대로 대출이자는 치솟는 바람에 손해 보고라도 지금 팔아야 할지 잠이 안 옵니다. 이미 반토막 난 주식형 펀드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기에다 자고 나면 뛰는 환율에 미국에 연수 보낸 딸을 불러들여야 할지….”

만날 걱정이지만 어느 하나도 시원한 해결책이 안 보여 답답함만 쌓여가고 있다고 했다. 장씨는 “되돌아보니 주변 사람들의 분위기에 휩쓸려 재테크 한답시고 잘 모르고 손댄 것들이 모두 상투를 잡은 것 같다”며 “찾아보면 나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 가격이 거의 정점에 이른 2006년 말 경기도 용인 수지에 아파트를 샀다. 강북 집을 판 돈 2억7000만원에 대출 3억원을 보태 무리하게 51평짜리를 5억7000만원에 샀다. 그는 “당시에는 그렇게라도 집을 사지 않으면 나만 ‘부동산 잔치’에 끼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며 “교육 여건도 강남 쪽이 좋아 그렇게 결정했다”고 말했다. 집을 산 뒤 1년 동안 1억원 이상 올라 장부상으로는 이자를 치르고도 남는 장사였다.

하지만 올 초부터 집값이 슬금슬금 내려가기 시작해 지금 시세는 구입가보다 더 떨어졌다고 한다. 국민은행 조사에 따르면 이 아파트 시세는 약 6억원. 하지만 인근 공인중개사가 “급매물은 5억원 이하짜리도 많다”고 하는 말에 화병이 생길 지경이다. 그간 대출 이자로 나간 돈만 4000여만원. 그의 연봉은 7200만원 정도. 담보대출 금리가 최근 10%까지 올라 이자 부담도 견디기 힘들 정도가 됐다.

“유일한 바람으로 아파트를 팔아 그간 들어간 부대비용만이라도 건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 주변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앞으로 1억원 이상은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해 난감합니다.”

주식형 펀드는 2007년 말에 가입했다. 코스피지수가 2000포인트가 넘어 펀드에 들지 않으면 바보라는 말을 듣고 뒤늦게 뛰어든 것이 화근이었다. 결혼하고 얼마 있다가 들어놓은 10년짜리 저축성 보험을 때마침 타 4500만원이 생겼다. 그 돈을 들고 증권사를 찾아가자 창구 직원이 자원 부국인 브라질이 유망하다며 ‘브릭스 펀드’를 권유했다. 그게 지금은 반토막 났다.

두 아이를 둔 그는 중학교 1학년인 큰딸을 지난해 8월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보냈다. 친구들이 미국·캐나다·호주로 다들 유학 갔다며 하도 졸라 마지못해 허락했다. 기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학교라 학비도 싸다는 말에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당시 환율은 달러당 920원대였으나 지금은 1400원을 넘나들고 있다. 매달 보내는 홈스테이 비용 800달러도 큰 짐이 돼 버렸다. 한 달에 70만원 정도 하던 송금액이 요즘은 100만원을 넘었기 때문이다. 용돈·책값 등 생활비까지 다 따진다면 1년 새 송금액이 거의 2배나 늘어났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며칠 전 전화로 딸에게 돌아오는 게 어떻겠느냐고 묻고는 둘 다 울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신문에 나오는 금융전문가들의 조언이 도움이 될까 해서 열심히 읽어보지만 한결같이 “지금은 일단 기다릴 때”라는 말뿐이라며 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김시래 기자

.....................................

이 기사의 인물이 실재인물인지 현 금융위기의 한 전형으로 예를 든 것인지 잘 모르겠다. 금융위기가 사실 남의 일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결코 그렇지 않다.'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면 이런 쉬운 예도 괜찮을 듯 하다. 이번 위기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렇지만....가장 영향을 안받는 사람은 지리산에서 토굴 파놓고 사는 사람들 밖에 없다. 그 외에는 누구나 다 여러 형태로 영향을 받는다. 이 참에 경제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도 좀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위의 기사를 보니까..도대체 중산층이 어딘가 싶다. 물론 본인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하지만 사실 이건 이 신문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범위이자, MB정권이 생각하는 '중산층'의 개념과 유사해 보인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겠다고 50% 이상의 돈을 대출받는 투기심리, 강남의 집값 상승을 염두해 두고 담보대출을 해주는-즉 부동산 거품을 불려온-은행권의 행태 등등....이 기사에는 너무 당연시 하지만 개별 행동 하나 하나의 욕망과 동기를 살펴보는 시각이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그냥 모든 것은 주어진 당연한 것이고 그 결과의 실패가 '눈물'이 날 뿐이다. 그렇게 이 신문이 숭상하는 '시장자유주의'에 기대면 '일말의 동정'도 필요없는 것 아닌가?  모든 '투자'는 '수익'과 '손실' 사이를 왔다 갔다하는 게 원칙이니까. 그리고 '투자'만 하고 늘 '이익'만 보는 '자본주의'는 유아적인 욕심꾼들의 자본주의 아닌가?

미국 간 딸에게 돈을 보내주지 못해서 통화하다가 눈물이 난 대목에서는 나도 눈물이 살짝 났다. 그래서 어제인가 20대 주부가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면서 두 아이에게 유서처럼 남긴 글에 흘렸던 눈물은 싹 닦아주게 만든다. 그 27살의 어린 엄마는 ' 신발이 작아 발이 아프다는데도 신발을 사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달러 올라서 가만있어도 20만원씩 더 나간다.짜친다.(부산말이다)  미국에서 들어와라.'

'신발을 사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신발이 작아서 발이 아프다는데도...발이 아프다는데도'

눈물 나는 가을이구나.

힘차게 투쟁하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에링 2008-10-11 0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일보 기자 연봉으로 어디 저 분이 고소득층으로 보였겠어요?

드팀전 2008-10-11 06:12   좋아요 0 | URL
중앙일보이에요..^^ ㅋㅋ
 

르 클레지오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사실 수상 발표 앞부터 심심치 않게 그가 유력하다는 보도가 흘러나왔다.

르 클레지오는 한국문화에 대해 깊은 관심이 있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이화여대에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에서 아예 살기까지 했다. 단지 살았다는 것 만이 아니라 그는 진짜 한국문화를 사랑하는 듯 보인다. 언젠가 국내 잡지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스크린 키드로서 자신의 삶과 영화 제작에 대한 의욕을 보였다. 그리고 한국영화에 대한 칭찬과 애정어린 비판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마 그 인터뷰가 그의 책 <발라시네>와 관련된 것으로 기억된다.

내게 르 클레지오를 알려준 사람은 내가 예전에 '황순원' 리뷰에 쓴 적이 있는 S형이다. 형이랑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르 클레지오'라는 이름을 언급했다. 나는 그를 잘 몰랐던 터라 '그가 누군데요?' 라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그 사람을 모를 수 있어?' 라며 눈을 동글동글 떳다. '현재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걸' 이라고 말했다.

원래 소설을 그다지 좋아라 하지 않았고, 특히 번역투의 문장이 싫었던 내게 '르 클레지오'는 낯설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잊었다. 하여간 '르 클레지오'라는 이름은 그 때 입력된게 사실이다. 그 이후 몇 년이 지나고 서점에서 두리번 거리다가 '르 클레지오'의 이름을 다시 만나게 되기까지 잊고 있었다. 서점에서 내가 다시 만난 르 클레지오는 아주 촌스러운 표지의 <사막>이었다.

매혹적이었다.

이후 나는 <사막> 이라는 책을 여러 명에게 선물했다. 지금 내 옆에서 사는 아내에게도 선물했다. 결혼과 함께 '서재 결혼시키기'를 하고 난 다음에 그 책은 처조카에게 보내는 박스안에 들어갔다.지금 이 책은 품절상태인데 르 클레지오의 노벨 문학상 수상과 더불어 다시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후에 르 클레지오의 초기작인 <조서>를 봤다. 민음사 시리즈에 포함되어 있다.그리고 프리다 칼로에 대한 관심으로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를 봤다.

르 클레지오의 수상소식이 반갑다.  열심히 선물했던 책이 떠올라서 더욱 그렇다. 밀려 있는 책들때무에 르 클레지오를 바로 읽지는 않겠지만 몇 권을 보관함에 넣어야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웽스북스 2008-11-28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이요. 이것 때문에 사막을 샀는데, 정작 들어있는 게 옛날 판본이어서 드팀전님께 땡스투를 못하고 사는 게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요. 그래서 이렇게, 말로라도 '땡스투'를 남깁니다. 잘 읽을게요 ^_^

드팀전 2008-11-29 07:43   좋아요 0 | URL
^^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