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가 판형을 바꾸었다. 베를리너판이라고 크기가 확 줄었다. 독자들이야 '어 뭐야 바뀌었네.영 낯선데..옛날께 좋지않아? 아닌가? ' 이정도 생각하겠지만 판형을 하나 바꾸는 거는 회사 전체가 몇 달 동안 시끄러울 일이었을게다. 실무팀들의 작업도 꽤나 늘었을 것이고 편집기자들도 새로운 판형에 맞는 효과적 레이아웃을 꾸려내느라 앞으로도 좀 고민할 것 같다. 

중앙일보에 '미네르바'의 옥중 인터뷰가 실렸다. 

요즘 안토니오 그람시의 전기와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을 읽고 있다고 한다.  

아마 이 두 권이 아닐까 싶다. 

미네르바 옥중도서로 베스트셀러가 될까?  

난 이딴짓은 좀 안했으면 좋겠다. 대통령이 최근에 읽는 책 하면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된다. 미네르바때도 그가 추천하는 책들은 또 베스트가 되었다. 굳이 그 책이 나쁜 책들은 아니지만...유명인이 한 마디하면 어울렁 더울렁 부화뇌동하는 건 별로 아름답지 않다. 

 

개인적으로 문화주의자로서의 그람시를 먼저 알게되었다. 대개의 문화연구가들이-특히 영국의 버밍업 문화주의자들-그의 사상과 실천의 절반 도만 절체하여 강조한다고 비판을 받는다.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한국에서의 그람시 수용이 그런 과정을 거쳐왔기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독자가 나머지 반의 부분을 따로 찾아내면서 비판,또는 첨가하면서 읽어야 한다. 잘 거론되지 않는 나머지 그람시의 반쪽은 레닌주의적 그람시와 평의회공산주의적 그람시다. 실제 우리가 경험하는 자본주의 현실에서 그람시의 헤게모니를 필두로한 문화주의적 접근의 유용성이 잊혀진 그람시보다 더 적실해 보이기때문에 아마 이런 현상이 나오지 않았나 싶다. 나 역시 그람시 책은 몇 권 봤으나 의 평전은 읽지 않았다. 심심할때..한번 

중앙일보의 미네르바 기사를 보면서 나는 옥중 미네르바에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낀다. 정말 그렇다. 

 농담이지만 설마 그가 '옥중수고'를 남기겠다고 하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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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아버지는 감나무를 심다 돌아가셨다. 어제, 그가 살던 창고 같은 집 뒤편 몇년 전 먼저 가신 할머니 곁에 뉘여드리고 왔다. 살아서 할머니를 그토록 아끼셨으니 이제 두 분이 함께 봄이 오는 고향 땅을 내려 보실 성 싶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이제 내게 4분의 조부모들은 모두 가신거다. 친할아버지는 아버지 20살때 돌아가셨으니 내게 그분은 처음부터 사진 속의 인물이었다. 그 다음으로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젊은 시절부터 당뇨로 고생하셨다. 사람이 앉은 자리에서 나무토막처럼 쓰러지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내게 보여주신 분이다. 쿵하고 말이다. 물론 그 때 돌아가신 건 아니다.  외할머니는 5년전쯤 돌아가셨다. 그 때 외갓집 식구들은 "외할아버지가 극진히 돌봐주었으니 여한은 없을거다." 라고 말했다. 90살은 넘기고 100세를 도모해보던 친할머니는 어처구니 없이 바지를 갈아 입으시다 옷을 밟고 넘어지셔서 그 길로 시름시름 앓으셨다. 마취자체를 해주려 하지 않았다. 설령 마취를 해도 깨어날지 확신이 없고 수술이 성공적이어도 거동하시긴 힘들다고 했다. 가족회의 결과 그냥 집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했다. 집으로 모신 후 1주일정도를 의식이 오고 가는 길 위에 계시다가 돌아 가셨다. 2년전 일이다.  

외할아버지는 향년 89세셨다. 며칠 전 까지만 해도 노래방에 가서 '눈물 젖은 두만강'을 멋지게 부르실 정도로 정정하셨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 감나무 70수를 산에다 심으셨다. 아들들이 그렇게 말렸지만 아무도 못막았다.  "내가 죽고 나서도 너희들이 나중에 감따면서 내 생각한번 하고 좋을거구만..."이라고 하셨단다. 혼자 감나무를 심으시다가 갑자기 심장에 무리가 오신거다. '아..가슴이 답답하다.' 하시면서 구급차로 속에서 운명하셨다. 비교적 짧고 편안한 죽음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일제시대때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나오셨다. 나름 촌에서는 엘리트셨던 셈이다. 자식들도 많았고 또 농사일도 잘되어서 나름 그 동네에서는 부농축에 끼었다. 할아버지는 새로운 실험을 좋아하셨는데 대게 일본의 선진 농업기술을 자신의 밭에서 실험해 보신 거다. 딸기나 수박같은 것들을 일본 책 보고 그 동네에서 처음하셨던 분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된 사실인데 돌아가시기 몇 해 전까지 컴퓨터로 주식트레이딩까지 하셨단다. 바짝마르고 허리가 굽은 노인이 컴퓨터로 나도 못하는 트레이딩하는 걸 생각하니 괜히 웃음이 났다.  

내가 마지막으로 외할아버지를 뵌 건 아내와 결혼하고 외갓집에 인사드리러 갔을 때다. 그러니가 이미 3-4년전이다. 외할아버지는 원래 살던 집-그 곳에서 거의 한 평생을 사셨다-은 농삿일을 이어받은 자식에게 주고 당신은 1km쯤 떨어진 산 속에 창고같은 집을 짓고 사셨다. 자식들이 내려오라해도 그곳이 편하다며 식사 후에는 매번 그리로 들어가셨다. 거기서 개와 양,소 그리고 집 뒤편에 있는 할머니의 산소를 벗삼아 계절을 보내셨다. 아내와 인사드리러 갔을 때 할아버지는 '곱다' 라며 아내의 손을 꼭 잡아주셨다.아내는 외할아버지를 좋아했다. 그 분이 산 속에 있는 밭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그냥 잘 찍은 사진이나 그림 같았다. 왜 있지 않은가? 강단있게 살아온 한 농부의 굵은 주름을 찍은 그런 흑백사진들...그런데 외할아버지는 정말 그랬다. 그 분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외손자인 내가 꼼꼼히 알턱은 없다. 하지만 분명히 그런 이미지를 풍기신 건 사실이다. 그 때 사진기가 있었다면 몇 장 찍어 놓았을터인데.. 

외할아버지의 상여를 따라서 그 산을 올랐다. 할아버지 살던 집에는 주인대신 몰려온 사람들에 놀란 강아지들이 연신 짖어댔다. 외할머니 산소 옆까지 올라가는 길에 산을 깍아 놓은 밭이 있었다. 그 위에 양을 먹이기 위해선지 그냥 맨땅으로 두기가 그래선지 보리 싹이 제법 올라와있었다. 아직 이른 봄인데도 마치 봄의 중턱쯤 온 듯 초록빛이 완연했다. 보리싹 사이로 무릎 높이만한 어린 감나무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심어져있었다. 굽은 허리에 더러운 옷으로 혼자서 감나무를 심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 눈에 어릿했다. 잠시 코 끝이 징해졌다. 그리고 '어린 보리싹과 어린 감나무가 한 동안 할아버지를 적적하게 해드리진 않겠구나.' 생각했다.  

우리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점점 외갓집과 멀어진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방학때면 기다려지던 외갓집.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그곳은 추억의 장소로 변한다. 내게도 그렇다. 나는 앞으로 살아생전 그곳을 몇 번이나 더 가보게 될까?  

오는 4월에 아이와 함께 가려고 했었는데 외할아버지는 이제 그곳에 계시지 않는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에나 가볼 수 있겠지.... 감나무와 외할아버지를 남겨두고 산을 내려왔다. 왠지 아내와 함께 갔던 4년전 어느날 처럼 밭 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할아버지가 오히려 내게 '잘 가라'고 손짓해주시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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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찬이의 감기바이러스가 온 가족에게 모두 퍼졌다. 그런의미에서 가족은 고통을 함께 하는 연대다. 나와 아내는 목에 이글거리는 불로 만든 알사탕이 하나 박혀있는 상태다. 침을 넘길 때 마다 목이 따끔 따끔한게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월요일에 몸살로 부터 시작되어서 이제 목으로 넘어왔다. 잠시 후에 병원에 다녀와야겠다. 그나저나 병원에도 가지 못하는 아내는 어쩌나... 상태가 나보다 낫긴하고...나보다 병원의존도가 낮은 사람이니... 

2주전에 은행을 다녀오다 새로뽑힌 노조위원장과 부딪혔다. '어..안드래도 전화해서 좀 만나자고 그럴려고 했는데 잘됐어요.' '사무국장은 다른 사람에게 맞겼구요. 그래도 집행부 일 좀 도와줘요' 

나는 위원장을 귀찮게 하지 않기 위해서 그냥 쉽게 '그러지요'라고 대답했다. 지난 번 페이퍼에서 이이기했던 자아 비판때문이다. 완전히 등돌리기 힘든 상황에서 괜히 '하네 마네' 귀찮게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위원장은 반가운 목소리로 '그럼 ..어떤 부장을 할 건지는 그냥 제가 정할께요'라고 하고 냉큼 사라졌다.   

내가 맡게 된 건 이름도 무시무시한 '교섭쟁의부장'이다. 뭐 별거 아니다. 그냥 있는 자리에 이름 박아 넣는 거다. 이번 노조 전체 인사의 면면을 보고 어떤 한 인사가 '인격자들'을 보고 뽑았네..라고 했단다. '인격'이라는 말에 훅하지 말자. 그건 그냥 '유순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내가 봐도 위원장부터 면면이 실제 작업 현장에서 일하는 것을 봐도 성품 자체로 유순한 사람들이다. 나 역시  좀 별나보여도 인간 관계에 있어서 그다지 까탈스럽게 굴지는 않는다. 싫은 사람들 하고는 그냥 형식적을 지내니까 무슨 평가네 마네를 할 일도 없다. 어쨋거나 유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노조여서 대외적으로 큰 기대는 없고 아마 집행부 회의에서 또 기타 의견자로 내 의견이 개진될 수 밖에 없을 듯 보인다. 

오늘 저녁에 노조 위원장 취임식이 있는데...사회를 봐야한다. 그런데 목이 아파서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야 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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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항 선생의 홈페이지가 '규항넷'이란 걸 오늘 알았다. 워낙 잘 안돌아다니다보니..그리고 딱히 김규항에 더 열광해야할 일도 없으니 모르는게 당연하다. 이런 글을 문득 보았는데...내가 지난여름부터 주구장창했던 이야기여서 반갑다. 그리고 이제 예찬이도 어린이집을 가기 시작했기때문에 '교육'문제에 대해 실재적 고민에 들어갔기때문에 더 그렇다.

 사람의 일이란



2009년 오늘 한국에서 이명박 씨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범주는 꽤 넓다. '자본주의 이후'를 소망하는 좌파에서부터 '상식의 회복'을 말하는 자유주의자들까지, 최소한의 양식을 가졌다 자부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의 얼굴만 봐도 진저리를 친다. 그들에게 '이명박'이라는 이미지는 악(惡)이라기보다는 추(醜)에 가까운 듯하다. 그런데 이명박 씨에게 진저리를 치는 그들은 정말 이명박과는 다른 사람들일까? 그들은 정말 이명박과 다른 가치관과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여러 사례가 있겠지만, 거창한 이야기 말고 우리 아이들 이야기를 해보자. 이명박 씨가 대통령이 되고 0교시, 우열반, 보충학습 따위를 실시하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이 우리 아이들 다 죽인다!"고 들고일어났던 걸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암묵적으로 혹은 공공연하게 해온 것들이다. 고등학교 아이들은 8시 이전에 등교하지만 1교시는 8시 40분에 시작한다. 그 4~50분이 0교시다. 영어 수학은 '수준별 수업' 따위 이름으로 우열반이 공식 운영되며 '방과 후 특기적성'이라 포장한 보충수업은 상위권반이 따로 있다. 일 년에 네 번 보는 교육청 모의고사는 바로 일제고사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부모 가운데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그들은 스스로 오랫동안 용인해온 일을 이명박 씨가 하려하자 그리 정색을 하고 들고일어난 걸까? 그러나 사실 이건 우리가 '교육문제'라 부르는 일 전반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명박의 교육정책을 성토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 가운데 제 아이의 실제 교육에서 이명박의 교육과 차이를 보이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차이라면, 그들은 불편한 얼굴을 하고 이명박 쪽은 흔쾌한 얼굴을 한다는 정도인데, 당사자인 아이들에게 그건 차이가 아니다.
사람이란 참 약한 존재라서 어떤 사회 체제 속에서 살아갈 때 그 체제에 조금씩 감염되는 속성이 있다. 그 체제에 거부감을 느끼거나 비판적인 사람도 완전히 그 체제를 거부하지 않는 한 다르지 않다. 민주화 이후, 혹은 김대중 정권 이후 본격화한 신자유주의 광풍이 가져온 여러 사회변화 가운데 가장 비극적인 건 거의 모든 한국인들이 자본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에 감염되었다는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정직하게 일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이어져 온 행복의 기준과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이 파괴되었다. 아이들이 사람이 아니라 경쟁력 있는 상품으로 키워지는 풍경이나 이명박 씨가 압도적인 표차로 대통령으로 뽑힌 건 그 자연스런 결과들이다.
결국 오늘 이명박과의 싸움은 두 이명박과의 싸움일 수밖에 없다. 내 밖의 이명박과 어느 새 내 안에 들어와 내 삶의 지배하고 있는 이명박. 두 이명박과 동시에 싸우지 않는 한, 아무리 뜨겁고 거대한 싸움을 벌인다 해도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내 안의 이명박이 세상을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이다. 설사 이명박 씨를 대통령에서 물러나게 한다고 해도, 결국 수많은 내 안의 이명박들이 모든 걸 되돌려 놓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 이명박 전선에 선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는 적이 한가하게, 혹은 맞지만 비현실인 이야기로 들릴 지도 모르겠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이명박과의 싸움이 너무나 긴박하기 때문이다. 그 긴박함을 당연히, 전적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그 긴박함이 내안의 이명박과의 싸움을 생략해도 좋을 만큼, 그래서 이 소중한 싸움을 헛수고로 만들어도 좋을 만큼 절대적인 건 아니라는 사실 또한 우리는 당연히, 함께 인정할 필요가 있다. 사람의 일이란, 참 간단치가 않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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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예찬이가 자는 사이에 아내에게 허락(ㅜㅜ)을 받고 보수동에 갔다왔다. 6개월만에 다녀온 것 같다. 가는 곳은 대게 두어군데다. 시간이 늘 부족하기 때문에 천천히 완상하지는 못한다. 그 날은 책방 한군데만 가서 1시간 남짓 보냈다. 보수동에서 그나마 책정리가 잘되어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름은 모른다. 이름을 몰라도 책방 앞에가면 찾을 수 있다. 책 배열이나 공간구조같은 것들이 책방의 이름보다 오래 기억되기 때문에 굳이 외우려하지 않는다.  

음악과 관련된 책을 몇 권 보다가 결국에 딱 마음에 드는 책은 없어서 서너권을 다시 내려놓았다. 인문사회과학 책 중에는 괜찮은 것들을 건졌다. 지금 당장 읽을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냥 내려놓은 책들도 있다. 저렴한 가격을 생각하면 미래를 대비해서 비축해놓는 것도 나쁠것 같지는 않다만 말이다. 다음에 언제갈지 모르는데 아마 그 때쯤이면 그 책들은 다른 주인을 찾아갔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니 오늘이라도 다시 찾아가서 라이언 일병들을 구해내야하는 것 아닌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간질거린다. 

헌책방의 책가격은 대개 정가의 50% 수준이지만 그것도 책의 절판유무, 책의 보관정도 등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나는 헌책방에서 굳이 책값을 깍지 않는다. 아저씨가 알아서 조금 할인해주면 고맙고 아니면 만다. 대신 카드는 좀 되었으면 좋겠다. 카드를 거부한 것은 아니지만 '현금이면 좋지요.'라고 현금선호를 보인다. 하기야 대게 상인들이 그렇긴 하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간 보수동에서 구한 책들... 

 ....그외

 이미지가 없는 것들

 

 

<전복적 스피노자> ,<미니아 모랄리아>,<문화사회학이론을 향하여>는 새책에 가깝다. 50% 정도 가격에 구했다. <예술과 인간가치>는 구판인 '이론과 실천'판이다. '이론과 실천'에서 만들어내는 미학책들은 예전부터 좋아라 했다. 강정인의 <소크라테스,악법도 법인가>와 스탠필드의 <칼폴라니의 경제사상> 그리고 안토니오 그람시와 관련된 얇은 책을 한 권 샀다. 그람시는 한국에서는 20년전 사람이어서 요즘은 거의 출판계에 출몰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내가 헌책방에 가면 가끔 만나게 된다.   

8권의 가격은 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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