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최근에 읽었던 책들 중 하나는 '큐큐퀴어단편선'의 네 번째 책인 《팔꿈치를 주세요》였다. 이런저런 통로로 퀴어 문학을 읽은 적은 꽤 있었으나 단행본 전체가 퀴어 문학으로 이루어진 책을 읽은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황정은 작가의 단편이 실려있어서 구매한 책이었는데, 잘 몰랐던 작가들의 단편도 볼 수 있었고 현재 퀴어 문학이 어떤 흐름에 있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독서였다. 읽으면서 눈에 띄었던 점은 '퀴어단편선'이라고 이름 붙이지 않았다면 퀴어 문학인지 알 수 없을 법한 작품들이 여럿 있었다는 것이다. 성별을 특정할 수 없도록 서술된 것도 그렇고(물론 황정은의 소설에서 인물들의 성별이 두드러지지 않는 것은 뉴스가 아니다), 적어도 소설 속의 세계에서 그들의 사랑은 '퀴어(queer)하다'는 시선을 받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작품들을 읽으면서 나는 문득, 오래 전에 들었거나 떠올렸던 질문을, '퀴어 문학에서 사랑은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떠올렸던 것이다.















  〈2018, 퀴어전사─前史·戰史·戰士〉에서 김건형은 한국의 퀴어 서사를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한다. 1. 여성의 죽음을 겪은 남성이 여장을 통해 세계/여성을 이해하고자 하는 서사(주로 90년대의 작품을 말한다). 2. 청춘기에 동성애를 거쳐 성장한 인물의 후일담. 3. 퀴어의 자리를 박탈하려는 적/담론들과의 윤리적 대립(필자는 황정은의 〈뼈 도둑〉과 윤이형의 〈루카〉를 예시로 든다). 4. 생존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레즈비언 서사. 5. 퀴어 예술가가 삶을 서술하는 서사. 주로 요즈음 우리가 퀴어 문학이라고 접했던 것은 3, 4, 5번의 사례들일 것이다. 3번의 경우 퀴어라는 정체성이 자신의 사랑을 박탈당하는 이유가 되어 이를 되찾기 위해 분투하는 서사를 취하기 때문에 퀴어 서사라는 것이 명백히 드러난다. 4번의 경우 인물들이 레즈비언이라는 점은 드러나지만 이 정체성은 소설 속 세계의 위기(주로 사회경제적 위기를 가리킨다)에서 인물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불안정한 위치에 있음을 보여주는 장치로 기능한다. 달리 말하면 현실의 생존 문제나 경제적 위기가 성 정체성의 문제를 압도해버린다는 것. 5번의 경우는 "세계를 게이라는 인식론을 거쳐서 바라본다는 뚜렷한 자의식"의 서사이기 때문에 인물들의 성 정체성과 그들의 세속적인 일상을 전면에 드러내는 것을 가장 중요한 화제로 삼는 것처럼 보인다. 퀴어 서사의 흐름과 유형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결국 내가 계속 해결하지 못한 질문은 '문학에서 퀴어의 사랑을 다룰 때, 그것은 보편적인 사랑의 형태로 다뤄야 하는가, 아니면 '퀴어'라는 정체성이 부각되도록 다뤄야 하는가?'인 것이다.















평론가 김은 심사평에서 오감독의 영화를 두고, 성적 소수자의 고통을 잘 형상화해 동성애를 보편적 사랑의 경지로 끌어올린 수작이라고 평했다. 그들은 모두 보통 사람들이 누구이며 그들이 하는 보편적인 사랑이 뭔지 너무 잘 알고 있는 눈치였다. 동성애자들이 뭐 얼마나 특별한 사랑을 하고 산다는 건지, 동성애자인 나조차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이성애자가 연루되면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 박상영,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퀴어의 사랑을 보편적인 사랑의 형태로 다룰 때, 그것이 이루어낸 문학적 성취와 별개로 고민에 빠지게 되는 지점은, '퀴어의 사랑이 보편적 이성애와 다르지 않음을 호소해야만 사회가 인정하는 사랑의 담론에 편입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4번 유형의 작품들에서 세계의 재난과 계급적 위기가 성 정체성의 문제를 압도할 때, 사랑을 이뤄내고자 분투하는 과정에 우리가 주목하는 것도 그 분투에서 보편적 사랑의 형태와 숭고함을 발견하게 되는 까닭이다. 3번 유형의 작품들에선 퀴어라는 정체성이 사회 구조가 그들의 사랑을 위협하는 이유로 자리하지만, 거대 담론과의 투쟁에서 숭고한 비극의 주인공이자 윤리적 주체로 올라서는 결말은 퀴어가 치명적으로 취약하고 박탈된 존재로 그려져야 "이성애자의 소비욕을 만족시켜"(〈자이툰 파스타〉)줄 수 있다는 사실을 내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5번 유형과 같은 작품, 이토록 진솔하고 세속적인 퀴어의 삶을 보여주는 작품만이 퀴어의 사랑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일까? 여기에도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건, 내가 종종 그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느꼈던 불만족 때문일 것이다. 지나치게 방만하다고 느껴지는 서사, 한껏 과잉된 감정들, 응축과 세공을 거치지 않은 것 같은 문장들에서 느꼈던 불만족들.














  《팔꿈치를 주세요》에 담긴 이야기들 대부분도 퀴어 서사, 라는 것을 전면에 드러내지는 않는데, 그렇다고 이 작품들이 김건형의 분류에 잘 들어맞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2018년의 분류였으니 당연한 것이겠지만. 소설에서 이들의 사랑은 보편적이지만 작가는 이들을 윤리적 숭고함의 자리에 위치시키지 않는다. 사랑의 시작, 연인의 일상, 위기 등을 심상하게 다루고 있을 뿐. 개인적으로 중년(혹은 노년)의 사랑을 특유의 담담한 서술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황정은의 단편을, 중년의 신체적 변화와 사랑, 그리고 소위 하위문화라고 일컬어지는 소재를 끌어왔다는 점에서 박서련의 단편을 눈여겨보았다. 두서없이 풀어놓았던 나의 고민과는 상관없이 큐큐의 퀴어단편선은 계속될 것이고, 퀴어 문학도 꾸준히 나아갈 것이다. 퀴어 서사가 한국문학의 새로운 분기를 만들어내며 분출하기 시작한 만큼, 사랑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담은 서사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이는 퀴어 서사가 다루는 고민을 짚어내기 위해 나도 그만큼 시야를 넓혀가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여전히 현실은 그들의 자리를 흔쾌히 내어주려 하지 않고, 공고한 현실에 균열을 내기 위해서는 더욱 많은 이론과 이야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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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서울리뷰오브북스 1호》의 이슈는 '안전의 역습'이었다. 'ISSUE RE-VIEW'의 처음을 장식한 것은 김홍중 교수의 〈무해의 시대〉였고, 이 글은 최은영의 《내게 무해한 사람》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진희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을 때,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갈 때, 볼펜을 이리저리 돌릴 때 미주는 자신이 진희를 안다고 생각했다. 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지. 그리고 그럴 수도 없을 거야. 진희와 함께할 때면 미주의 마음에는 그런 식의 안도가 천천히 퍼져 나갔다.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 그때가 미주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196

















  김홍중의 진단으로 보면, '무해한 사회'에 대한 지향은 21세기 한국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로 형성된 안전에 대한 욕망의 결과물이다. "사회적 삶은 '이웃에게 무해하라'라는 새로운 인륜적 명령으로 재구성되고 있는 듯이 보인다. 피해에 대한 공감, 가해에 대한 분노, 그리고 무해에 대한 의지가 일상적 삶을 지배하고 있다."(24쪽) 안전과 무해에 대한 "강도 높은 욕망은 진실, 도덕, 미학의 규범 그 자체를 찢고 변형"(26쪽)시키고 운동을 이끌고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을 바꿔나간다.

  '우리' 중 누군가의 죽음은 광범위한 애도를 낳았고, 죽음을 야기한 유해의 구조에 책임을 묻는 분노 어린 집합 행위가 발생하였다. 이것은 반복적 파동으로 물결치며,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사회 공간에 풀어 놓았다.

  왜 장애인이 비장애인보다, 왜 가난한 청년들이 부유한 부모를 만난 자들보다 더 많은 사고를 겪어야 하는가? 왜 여성이 남성보다 더 쉽게 살해되어야 하는가? 왜 택배 노동자의, 콜센터 직원들의, 요양원 수용자의 호흡기는 바이러스에 더 쉽게 노출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사회적 평등을 '안전의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자유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신체가 몰래 촬영되어 불법 사이트에 공개될 것을 걱정하지 않을 자유,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지 않고 연애를 할 수 있는 자유,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지 않고 연애를 할 수 있는 자유, 혹은 라돈에 의한 저선량 피폭을 걱정하지 않고 침대에 누울 수 있는 자유가 아닌가? 왜 안전을 누리지 못하는 자들은 동시에 자유를 상실할 수밖에 없는가? (우리는 '안전으로부터의 자유' 혹은 '자유로부터의 안전'이라는 매우 독특한 관념에 도달했다.) 우리가 누군가와 연대한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삶의 위험, 불안, 공포를 함께 겪는 자들의 연대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불안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과 싸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불안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과 싸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안전이 결핍된 존재자들의 새로운 연대, '무해의 연대'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27~28)

















  이러한 관점에서 김홍중은 21세기의 정치를 '생명정치'의 시대, 위험사회의 틀로 바라볼 수밖에 없음을 역설한다. 우리는 사회가 우리의 생명을 보호하기를, "신체에 가해지는 환경의 유해성을 통치"(24쪽)하기를 원하고, 전방위적인 안전망을 구축하기를 원한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장하는 데 실패한 권력에 우리는 완강히 저항하고 '탄핵'한다. 팬데믹 상황에서 안전을 향한 욕망은 더욱 증폭된 듯하고, 욕망하는 우리는 "관리되는 세계의 완벽한 합리성"(30쪽)을 기대하는 위험사회의 시민과 닮았다. 하지만 파놉티콘과 같은 위험사회를 비판해 온 유럽의 비판적 지성들과 달리(김홍중은 여기에 슬라보예 지젝과 조르조 아감벤을 포함시킨다), 김홍중은 '무해'라는 시대적 키워드에서 "유사한 위험을 공유하는 타자들과의 연대감"(33쪽)을 발견한다. '우리가 겪는 유해'에 대한 인식에서 '우리가 가하는 유해'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가는 것, 이러한 인식을 공유하며 여러 형태의 유해와 위험을 걷어내기 위해 새로운 실천을 감행하는 것. 이 흐름 속에 페미니즘이 있고, 장애에 대한 이해와 권리투쟁이 있고, 비거니즘과 동물 해방이 있다. "무해를 향한 욕망이 강해질수록, 인간이 환경에 가하는 유해에 대한 윤리적 인식은 그만큼 더 선명해져 간다. 무해의 감각에 눈뜬 자는 자신의 생명이 유지되기 위해 다른 존재의 삶이 삭감되어야 한다는 이 사태를 윤리적으로 성찰하지 않을 수 없다."(34쪽) 이러한 성찰에 레비나스가 이야기하는 윤리학이, "내가 있는 자리는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었던 자리의 점유"(34쪽)라는 윤리적 인식이 있다. 윤리는 점차 인간 너머로 확장되어 가고, 내가 보장받는 무해가 타자에게도 보장되길 바라는 연대의식이 있다고 김홍중은 보는 것이다.
















  김홍중은 '무해의 시대'를 바라보며 윤리적 연대를 찾고 있지만 과연 우리 사회의 무해지향성은 거기로 나아가고 있을까? 팬데믹 상황에서 우리가 시시때때로 보았던 뉴스들은 "봉쇄된 자아의 순수성에 대한 환상, 완벽한 면역 체계에 대한 비현실적 열망, 비자기非自己에 대한 무조건적 거부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과도한 '안전주의'"(33쪽)에 더 가까웠던 것이 아닌가? "어떤 사람이 재정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의료서비스에 얼마나 접근할 수 있는지, 어떤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는지, 혐오에 얼마나 노출되어 있는지, 어떤 형태의 가난을 겪었는지/겪고 있는지, 어떤 제도와 정책의 영향을 받으며 살고, 어떤 정책이 부재한 채로 그 부재의 영향을 받으며 사는지 등등이 전부 명命의 조건"(황정은, 《일기》, 34쪽)인 사회에서 우리는 나의 안전만을, 나의 무해만을 신경쓰며 거리두기라는 이름 아래 울타리만 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김홍중의 주장에 마냥 동의할 수 없는 것, 무해의 시대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나의 부정편향 때문일까? "팬데믹은 다른 무엇보다도 한 사회의 구조를 드러내는 재난"(황정은, 《일기》, 35쪽)이듯이, '안전'과 '무해'는 우리 사회의 인식론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어임에는 틀림없다. 김홍중이 '무해'에서 발견한 낙관론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타자를 향한 윤리적 예민함이 필요하다는 것, 그것만이 위험사회에서 "타자와의 건강한 관계를 맺을 능력을 상실한 '후기 자본주의의 나르시시즘적 주체'"(30쪽)로 전락하지 않는 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위험사회》를 읽어봐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비인간의 얼굴들, 도처에서 ‘우리도 살고 싶다, 죽이지 말라‘고 외치는 이 얼굴들도 이제 외면할 수 없다. 고통의 자리는 역동적으로 분열되어 간다. 거기에는 절대적 경계도 없고, 특권적 위치도 없다. 더 괴로워하는 존재는 언제나 어딘가에 있으며, 반드시 우리 앞에 나타난다. 무해의 시대는 고통이 회피되는 시대가 아니라, 이제껏 인정되지 못했던 새로운 고통을 기왕의 것들과 연결하는, 강인하고 질긴 망網이 엮어지는 그런 시대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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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11-13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이런 수준의 서평들이 올라오나보네요.... (..... 지적이긴 하지만 마음이 멀어진다...ㅋㅋㅋ..) 인용된 부분들로 김홍중님의 글 전체를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듭니다. 아직 절판이 안되어 있다면 구해봐야겠어요. 지금 시점에서 제가 가장 사랑하는 소설인 <내게 무해한 사람>으로 시작한다니...그 이유 하나만으로..
이 소설을 읽어보셨나요? 저는 최은영이 관계에서 무해한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욕망의 무의식을 들여다 보고 있다고 느꼈어요. 무해한 존재는 가능하지 않을뿐더러 상처주지 않겠다는 의도가 배태하고 있는 나르시시즘에 대해서도 선명하게.. (그러니까 무해를 표방한 제목이고 표지이지만, 무해함을 비트는 소설로 읽었는 데... 이후의 담론들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갸웃. 뭔가 유행처럼 무해무해 이렇게 간 건 아닐까 싶은.) 인물들은 계속 실패하고 시간이 지난 후에야 어렴풋이 알게되요. 소설을 읽는 내내 그 감정들이 너무 선명했고, 이 소설의 감정을 내가 거의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거의 완벽하게 위로 받은 느낌이었다지요.(그렇지만 소설이 가리키는 방향은 ‘쉽게 이해하지 않을 것‘ 이라는 아이러니).. 이걸 어떻게 설명하려고 하니까 굉장히... (에효...) 어렵네요.......... 제가 감상적(?)으로 읽은 소설에서 ‘윤리적 연대‘라는 말을 끼우니 호기심이 매우 동하는군요. 그러니까 예민해진 나머지 관계자체로 부터 끊임없이 달아나는 저는... 후기 자본주의의 나르시시즘적 주체 그 비슷한 걸까요?

아무 2021-11-14 17:31   좋아요 1 | URL
크게 이슈 리뷰와 책 리뷰, 에세이로 나뉘어져 있고, 이슈 리뷰에 저런 글들이 많이 올라오는 편입니다 ㅎㅎ 0호랑 1호에서 김홍중의 글을 보고 혹해서 《은둔기계》를 샀는데, 프롤로그만 읽어봤지만 도전하고픈 마음을 불러일으키더라구요. 예전에 겨울서점에서도 다룬 적이 있어서 궁금해하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김영민의 먹물누아르‘ 시리즈가 웃기고 재미있었는데, 2호부터는 나오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조금 아쉽...
김홍중이 《내게 무해한 사람》을 가지고 온 건 이 시기의 키워드가 ‘무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일 뿐, 그 후에는 전혀 다루질 않았습니다. 저도 예전에 읽었을 때 너무 좋았는데(개인적으론 《쇼코의 미소》보다 좋았던), 이 느낌은 너무나 감정적인 것이어서 어떻게 리뷰로 정리를 못하겠더라구요.. 그래서 올리지 않았더니 내용이 차츰 가물가물해지고 있습니다 ㅎㅎ 그래도 처음으로 〈그 여름〉과 〈모래로 지은 집〉을 읽었을 때의 감동은 잊을 수가 없어요..
˝후기 자본주의의 나르시시즘적 주체˝라는 건 위험사회의 시민을 향한 슬라보예 지젝의 비판을 재인용한 것이었습니다. 김홍중은 부정하지만.. 저 비판은 어떤 점에선 한병철이 꾸준히 전개하는 논지와도 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구조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기 쉽다는 뜻으로 저는 항상 읽는데, 그러니까 항상 읽는 사람으로 정신 바짝 차려라! 라는 뜻으로 저는 (제 맘대로) 해석합니다. 그게 꾸준히 읽는(또는 읽어야 할) 이유 중에 하나겠죠?😊

공쟝쟝 2021-11-14 20:13   좋아요 1 | URL
댓글로 인용해오신 학자분들 (한병철 등등)의 텍스트를 읽어본적이 없어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느낌 아니까 ㅋㅋ) 김홍중의 낙관론에 던진 물음표에 제가 푹 찔렸거든요. 관계에서 조심스러워지려는 노력이 관계를 포기하는 방향으로 제가 자꾸 나가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 드는 바람에… 여튼, 저는 이 리뷰 읽고 동해서 리뷰오뷰북스 0권 1권 중고에서 구입해봅니다 ㅋㅋ
정신 바짝 차려라ㅋㅋㅋ 읽어야할 이유로 좋네요 ㅋㅋ
 
서가 이사를 꿈꾸며

6.

그저께는 오랜만에 책탑을 정리했다. 바닥에 쌓기 시작한 책탑은 한 번 쌓기 시작하면 정리하기가 쉽지 않아 새로 들어온 책은 재배열되지 않고 계속 위로만 쌓이게 된다. 그러다보니 균형이 맞지 않아 나의 뒤척거림 한 번에 책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일도 잦았다. 간만에 큰 맘을 먹고 책탑을 재배치하면서, 마음 먹은 김에 바닥에 쌓은 책을 조금이나마 줄여보자는 생각으로 책장도 정리를 시작했다. 이래저래 무사히 정리를 마쳤지만 책탑이 줄어든 것 같지는 않다. 이렇게 책탑까지 정리를 한 것이 이례적인 일이라 사진을 몇 장 찍어두었다. 본가에 있는 내 방과는 규모도 책장 크기도 천지 차이인지라 얼마나 더 쌓일지를 생각하면 암담하기만 하다.
















다 읽은 책은 쌓이는 대로 바로 택배로 보내버리기 때문에 지금 가지고 있는 책 중에 90%는 읽지 않았을 것이다. 읽지 않고 끌어안고 있는 책 중에는 새해에는 꼭 조금씩 읽기 시작해서 완독하자고 다짐했던 책들도 있다. 주로 누구나 읽었을 거라 생각하지만 나는 읽지 않은 (벽돌)책들이 대부분이다. 여전히 그 책들은 책장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번 주의 나는《타타르인의 사막》을 다 읽었고, 《서울리뷰오브북스 2호》를 드디어 펼쳤으며(이미 3호가 나온 지 오래이고 곧 4호가 나올 것 같다), 공쟝쟝님의 엮인글을 보다가 '무해함'이라는 단어에서 《서울리뷰오브북스 1호》에 실린 김홍중의 글(<무해의 시대>)이 떠올라 '무해'에 대한 간단한 단상과 함께 정리해보려 하였으나 생각보다 《일기》의 리뷰가 잘 써지지 않아 뒤로 미뤄두었다(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일기》의 리뷰는 처음으로 한글이 아닌 에버노트에 쓰고 있고, 컴퓨터로 쓰기 → 앱으로 종종 보면서 어색한 부분 찾기 → 다시 컴퓨터로 수정하기의 루틴을 반복하는 중이다. 오늘 처음으로 로지텍 블루투스 키보드(k380)를 사용해 보았고(지금도 사용하고 있다), 노트북 자판과 사뭇 다른 위치 감각에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다...


책들을 정리하고 보니 은근히 모이기 시작한 시리즈들이 많은데, 다행히 나는 누군가가 1권을 선물하면 그것을 전부 사야 할 정도의 책수집벽을 가진 것은 아니어서 전체를 모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리즈는 그리 많지 않다. 몇 개만 나열하자면 이렇다.


1. 조르주 페렉 선집(수집완료)—문학동네 컬렉션이 있지만, 펭귄클래식코리아에서 나온 《사물들》과 《W 또는 유년의 기억》, 열린책들에서 나온 《임금 인상을 위해 과장에게 요구하는 기술과 방법》까지 모아야 시리즈가 완성된다. 다 모았으나 내가 읽은 건 《사물들》, 《어느 미술애호가의 방》, 《공간의 종류들》뿐이다.













































2. W. G. 제발트 전집(수집완료)—여기저기에 쪼개져 있는데, 제일 많은 지분을 차지하는 건 역시 문학동네 쪽이다. 창비에서 나온 책은 구판본을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개정판이 (저렇게 깔끔하게) 나와서 새로 구입했고, 《공중전과 문학》도 마찬가지이다.






























3.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수집중)—가장 열심히 모으는 것 같지만 이 중 몇 권이나 읽을 수 있을지(아니, 읽을 능력이 될지) 알 수 없는 책들. 《일반 기호학 이론》은 앞부분을 읽다가 너무 어려워서 덮어두었고, 제대로 읽어본 것은 《장미의 이름 작가 노트》와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정도다. 내가 무엇을 안 샀는지 헷갈릴까봐 따로 메모를 해두는 컬렉션이기도 하다..


(x가 구입한 것이고, 빈칸은 아직 구매하지 못한 것이다.)


이 외의 시리즈들은 많아도 다 모으겠다는 생각까지는 미치지 않는 것들이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안토니오 타부키 선집, 조르조 바사니 선집, 워크룸프레스의 제안들 시리즈 등등... 언제나 책을 둘 공간을 고민해야 하는 입장에선 이 정도에 그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한편, 지난주에 했던 주문 중 여태껏 오지 않은 책들이 있었다. 한 권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최근에 이제는 준비가 되었나 싶어서 알라딘에 들어가 본 나는 처음 보는 광경을 목격했다. 출판사에서도 재고가 없어 제작 중이라는 알림을.



현재 알라딘에 들어가 보면 《여름 별장, 그 후》는 일시품절 상태라고 뜬다. 제작 중이라는 것은 한 쇄를 새로 찍고 있다는 것일까, 아니면 한 권만 만들고 있다는 것일까? '모던 클래식' 시리즈를 하나씩 철수시키고 있는 듯한 민음사의 행보를 보았을 때는 한 권만 만들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한 명의 고객을 위해 그렇게 비효율적인 일을 할까 싶기도 하다. '모던 클래식' 시리즈 중 일부는 점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편입되고 있고(이것도 이름이 널리 알려진 작가 한정인 것 같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판형과 문장 부호 표기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안 좋은 소식이다. 더 사라지기 전에 '모던 클래식' 시리즈를 그러모아야 하는 것일까?


책장 정리에 대한 이야기에서 책에 대한 푸념으로 끝나는 페이퍼가 되었다. (나만 못 지킬까 전전긍긍하는 듯한) 연재에 대한 아이디어가 전혀 없는 시기가 (오래) 있고, 아이디어는 많지만 산만하고 아득한 상태로 정리되지 않아 쓰지 못하는 시기가 있는데, 오랜만에 후자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미 시간이 늦었으니 《일기》에 대한 감상을 조금이라도 끄적이러 가야겠다. 다음엔 조금 더 단정한 글을 연재하길 스스로에게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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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1-10-30 09: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귀여운 민트 알람시계도 이뻐요!!! 남의 집에 있는 책 보는 건 왜 이렇게 재밌을까요?? 더구나 이렇게 정성스런 페이퍼를 접하면 더 그런 것 같아요. 글은 나중에 쉬는 시간에 읽어 볼게요!!

아무 2021-11-01 19:10   좋아요 0 | URL
저 시계를 산 지 벌써 5년이 되어가네요. 알람 기능은 금방 고장이 나서 지금은 시간 확인용으로만 씁니다^^ 구경 중의 제일은 책장 구경인 것 같기도😉

공쟝쟝 2021-10-31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페이퍼도 참 좋으네요. 역시 페이퍼엔 책탑사진이 첨부파일로 들어가야 제 맛입니다. 그나저나 아무님의 책장은... 누가봐도 너무 문과적 문과적 문과적 책장이라고 하실 수 있겠습니다. 전 그래도 주식책이랑 비트코인 책 있음... 지난 달에는 김상욱의 양자역학 책도 구입.. (뭐래) 아무튼 책 수집이나 읽기에는 집착하지 않으나, 좋아하는 작가의 제목은 다 꿰고, 읽은 책에 대한 정리를 좀 해야 읽은 것 같은 느낌, 적어도 내 책장을 파악하고 있어야 안심이 됨(나만 아는 책장 범주화?!) 이런 것들은 저만 하는 것이 아니었더라는사실을 발견해 살짝 안도하며.
제 생각에는 말이죠. 글은 역시 잘 쓰려고 하면 절대 쓸 수 없습니다. 잘쓰려는 마음의 글을 살짝 미뤄두고, ‘이런 글‘을 쓰시기를 권해요. ㅋㅋㅋ ‘주간‘ 아무르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아무 2021-11-01 19:13   좋아요 1 | URL
이 댓글을 보고 분명 과학책도 좀 모았는데?라고 생각하고 찾아보니 과학 관련 책들은 전부 책탑의 맨 아래에 있네요? ㅋㅋㅋ 주식과 비트코인은 제가 정말 1도 몰라서 이제는 종종 걱정을 하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살아가는 데 무리는... 없겠죠? 읽은 책에 대한 정리도 꼬박꼬박 해야 하는데 그것도 참 큰일입니다. 메모를 열심히 안 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구요(내용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훨씬 많음). 응원과 격려에 감사드리고, 저도 ‘주간‘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ㅎㅎ
 
















5.

요즘 읽고 있는 황정은의 『일기』 중 「민요상 책꽂이」에는 책갈피에 대한 이야기가 잠시 등장한다. "도톰한 집게 모양의 책갈피나 복잡한 형태로 종이를 깨무는 클립 책갈피는 도대체 뭐하자는 사물인지 모르겠다. 그걸 종이에 끼우고, 끼우는 단계에서 이미 종이가 구겨지거나 하는데, 책을 덮으면 책 무게에 눌려 책갈피에 물린 종이가 꼬집힌 것처럼 구겨지고 앞뒤 종이에도 집게나 클립 모양으로 자국이 남는다. 오래두지 말고 얼른 독서를 끝내면 될 일이지만 독서는 중단될 때가 많다."(82쪽) 이 부분을 읽다가 문득, 내가 쓰고 있던 책갈피를 보았다. 이번 신간을 구매하면서 굿즈로 함께 판매하던(증정이 아니다. 마일리지를 내야 하니까) 소위 팝업 책갈피를.




나도 금속 책갈피나 클립형 책갈피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데, 이번 기회에 한번 이용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함께 구입(그렇다. 마일리지를 냈으니까)한 것이었다. 『일기』의 색깔과 맞기도 하고. 몇 차례 사용한 뒤 내가 얻은 결론은 '역시 못 쓰겠다.'는 것이었다. 자석으로 책장을 집는 구조인데 이미 고무자석부터 두껍고, 집게형이니까 두께도 두 겹이 되니 책을 덮었을 때 매우 거슬린다. 가방에 책을 항상 넣고 다니는 입장에서 책 바깥을 비집고 나오는 책갈피는 구겨짐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그러니 더욱 정이 안 갈 수밖에. 작가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힌 유형의 책갈피를 굿즈로 함께 내놓은 건 왜일까?


작가와 달리 나는 책갈피를 많이 모으는 사람이다. 편리함과 필요도 이유이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예뻐서. 신간이 나올 때마다 주는 책갈피를 덥석덥석 모으는 시기는 넘겼지만 종종 동네서점을 들렀을 때 예뻐서 눈길이 가는 책갈피엔 손을 내밀게 된다. 그럼 지금까지 내가 모은 책갈피는 얼마나 될까?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책장 한 켠에 쌓아둔 책갈피를 하나하나 진열하기 시작했다.




몇 개는 어떤 책 속에 얌전히 잠들어 있겠지만, 읽다 말고 오랫동안 방치한 책의 책갈피는 종종 빼고 있으므로 이것이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 과거의 나는 책갈피에 대한 뚜렷한 호불호가 있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나, 지금의 나는 플라스틱이나 코팅된 책갈피보다는 종이 책갈피가 좋고, 종이 책갈피도 지나치게 빳빳하면 싫다. 너무 두껍지 않으면서 빳빳하지 않고 책 바깥으로 삐져나오지 않고 그 안에 있는 듯 없는 듯 표시만 내주는 것... 그리고 예뻐야 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양장본에 흔히 달려있는 가름끈인가 싶지만, 전집류가 아니라면 나는 양장본과 문고본 중 문고본을 고르는 사람이다. 어쩌라는 것인지.















이렇게 무수히 많은(개수를 세진 않았다) 책갈피를 나는 잘 쓰고 있는 것일까? 책을 읽으면서 갈피를 잡는 데 쓰진 않고 수집가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고민은 '독서가가 아닌 장서가가 되고 있는가'라는 고민과 겹치는 듯하다.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학문이 본래 '여가'라는 뜻을 가졌듯이, 여가가 없는 이들은 텍스트를 읽을 틈이 없다."(강유원, 『책과 세계』, 6쪽)고는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핑계처럼 들린다. 총기와 끈기와 열기는 점차 사그러들고 있고, 끝나지 않을 숙제처럼 쌓여있는 책들을 보며 몸서리칠 때가 있다. 가장 애정하는 작가 중 한 명의 신간을 찬찬히 읽으면서, 그 책이 떠올리게 해준 책갈피들이 다시 내가 갈피를 잡고 매진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인지를 생각한다. 항상 바쁜 와중에 짬을 낼 수 있는 시간 활용법에 대해 고민하지만, 그것보다 필요한 건 알고 싶다는 마음가짐, 그리고 '책읽기의 괴로움'에서도 재미(흥미가 아니다)를 찾을 줄 아는 마음일 것이다. 어쩌다보니 책읽기를 장려해야 하는 직업을 갖게 된 터라 "무턱대고 읽으라고 하니까 읽지 말고 책읽기가 재밌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저 말은 나에게도 적용되는 것이기도 하다.


『일기』로 돌아와서, 절반이 조금 넘게 읽고 느낀 바는 '황정은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구나'라는 것이다. 에세이에 흐르는 정조(調)와 소설의 그것이 마치 하나인 것 같다는 인상은 세계를 바라보는 작가의 (윤리적) 태도가 곧 소설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것이 소설세계가 좁아진다는 비판을 낳을 수도 있겠으나(나에게도 약간의 염려가 있다), 나는 소설부터 에세이까지 일관된 그 태도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이성복, 「그날」)는 일은 없겠구나, 당신은 더 민감하게 아프고 세계의 병듦을 말하겠구나, 라는 안도감을.





여담) 책갈피에 대한 이야기에는 포스트잇 플래그에 대한 언급도 있는데, 나는 이 이야기를 직접 들은 적이 있었다. 2019 서울국제작가축제에서 사인을 받을 때, 내 책에 빽빽하게 붙어있는 플래그를 보자 그는 본인도 책을 읽을 때 자주 쓰는데 썩지 않더라...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 썩지 않는 플래그를 열심히 사고 붙이고 있다. 때때로 기억하기 위해 붙이는 것인가, 아니면 언제고 돌아보겠지라는 마음에 붙이고 보는 것인가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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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1-10-25 17: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두 플래그 이야기에 뜨끔 했어요. 책갈피를 모으시는 이웃분들이 있군요. 이렇게 또 새로운 책에 딸려오는 부수적인 취미들을 하나 알아갑니다. 아무님의 황정은 리뷰는 찾아서 읽게됩니다. 심상치 않은 가을바람…! 건강하시기를. 총총~

아무 2021-10-25 22:55   좋아요 3 | URL
가끔은 수집벽이 생긴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황정은 작가의 책은 가급적 리뷰를 쓰려고 노력하는데, 돌이켜보니 『연년세세』를 읽고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네요... 찾아서 읽어주심에 감사드리고, 앞으로 좀더 부지런해져서 분발(?)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가을 날씨가 정말이지 심상치 않네요. 오락가락... 공쟝쟝님도 건강 잘 챙기시길 바랍니다. 그럼 저도 이만 총총...

그레이스 2021-11-05 16: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아무 2021-11-07 21:02   좋아요 1 | URL
오늘에야 당선된 걸 알았네요😅 감사합니다^^

초딩 2021-11-07 1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아무 2021-11-07 21:03   좋아요 1 | URL
네 감사합니다😊 주말 잘 마무리하시길 바라요^^
 

4.

어제 부모님 집으로 내려왔다. 이러저러한 우려가 없지는 않았으나 같은 수도권...이라서 엄명을 받고 내려오게 되었는데(지하철로 2시간 30분 거리), 이곳의 분위기도 매우 한산하고 썰렁하다. 내려올 때마다 항상 가는 카페를 왔는데, 언제나 절반은 채워져 있던 넓은 공간에 한 팀만 있었다.















집으로 내려올 때는 항상 집에 둘 책을 가방 한가득 챙겨서 오게 된다.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읽었거나 당분간 읽을 일이 없을 것 같은 책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택배로 보낸 책들이 상자에 그대로 담겨 나를 반기므로 가져온 책과 상자 속 책을 꺼내 서가 정리를 하는 게 첫번째 일과였지만, 이번에는 일거리 때문에 노트북을 챙기게 되어 내려와서 읽을 책만 챙기게 되었다. 첫번째 일과가 간소화된 셈이다. 내려와서 읽을 책 역시 무게를 고려하게 되므로 서울에서 읽고 있던 벽돌책은 생략하고 적당한 분량의 책을 고르게 된다. 그래서 읽은 책이 아니라 읽고 있는 책이 자꾸 늘어나는 것인가.















크지 않은 서가이지만 읽은 책은 많지 않아서(북플은 내가 가진 책의 1/4만 읽었다고 알려준다) 둘러보면 읽고 싶은 욕구를 부르는 책들이 자꾸 생겨 올라갈 때를 고민하게 된다. 이번에 내 눈길을 끈 것은 『예술가들의 파리』 시리즈와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였다. 두께 때문에 가져다 놓고 다시 못 올라가는 책들. 이런 책이 한둘이겠냐마는, 이런 생각을 매번 할수록 서가 이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 같이 든다. 하지만 서가가 가까워지면 내가 더 읽을 수 있을까, 더 열심히 모으게 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읽기보다 모으는 데 치중(또는 집착)하고 있는 몇 개의 시리즈를 보고 있자니 더 그렇다(조르주 페렉 선집이나 움베르토 에코 마니아 컬렉션 같은 책들).

언젠가는 한 곳에 모이게 될 때도 있겠지 생각하며 이제 읽어야겠다. 카페에 있을 시간도 그리 길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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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가 이사를 꿈꾸며2—5년차 원룸 생활자의 책장
    from 아무님의 서재 2021-10-29 23:04 
    6.그저께는 오랜만에 책탑을 정리했다. 바닥에 쌓기 시작한 책탑은 한 번 쌓기 시작하면 정리하기가 쉽지 않아 새로 들어온 책은 재배열되지 않고 계속 위로만 쌓이게 된다. 그러다보니 균형이 맞지 않아 나의 뒤척거림 한 번에 책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일도 잦았다. 간만에 큰 맘을 먹고 책탑을 재배치하면서, 마음 먹은 김에 바닥에 쌓은 책을 조금이나마 줄여보자는 생각으로 책장도 정리를 시작했다. 이래저래 무사히 정리를 마쳤지만 책탑이 줄어든 것 같지는 않다.
 
 
막시무스 2020-09-30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가 참 단정하네요! 책 읽는 즐거움이 저절로 생기겠어요!
행복한 추석명절 되십시요!ㅎ

아무 2020-09-30 18:01   좋아요 1 | URL
실상 1년에 열 번도 보지 못하는 서재입니다..^^;; 막시무스님도 추석 잘 보내세요~

scott 2020-09-30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술가들의 파리 시리즈 저도 눈독 들이고 있던 책들이네요. 두께에 놀라고 가격에 놀라고 ㅎㅎ 컴퓨터 옆에 가지런하게 꽃혀 있는 책들은 가장 가까이두고 보시는 책들인가봐요추석연휴 가족들하고 따스하게 보내세요

아무 2020-09-30 23:24   좋아요 0 | URL
아 저건 사실... 책장에 자리를 더 만들어보려고 벽돌책을 최대한 다 꺼내서 책상에 진열한 겁니다. 양쪽에 북엔드를 세우고...^^;; 가장 가까운 책들이 되어야 할 텐데.. ㅎㅎ
추석 연휴 잘 보내세요~^^

syo 2020-09-30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책장은 엉망진창인데, 아무님 서재는 손대면 손 베겠어요! 깔끔!

아무 2020-10-01 00:26   좋아요 0 | URL
많이 넣기 위해 정리를 열심히 한 경우입니다. 조그마한 공간이라도 만들고자.. 서울의 제 방은 저렇게 깔끔하지 않아요^^;;

공쟝쟝 2021-10-26 09:42   좋아요 0 | URL
그러게...... 진짜 책장 정갈하시네요 🤭나와 다른 종족이다...

아무 2021-10-27 09:29   좋아요 1 | URL
지금 제 방은... 허허..^^;; 조만간 시즌2를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scott 2020-12-31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님 서재방에 2021년 연하장 놓고 가여
2021년 새해 행복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2021년 신축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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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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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복많이 받으세요

아무 2021-01-12 00:04   좋아요 1 | URL
축하 감사합니다. 연말연시를 이런저런 일에 치여보내느라 확인하지도 못했었네요^^; scott님도 새해에 건강 잘 챙기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