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이 조조에게 말하다 1 -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다 심리학이 조조에게 말하다 1
천위안 지음, 이정은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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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천위안은 현대 심리학의 관점에서 삼국지에 나오는 캐릭터를 재해석하고 있는데 그 첫번째 인물로 조조를 골랐다. 조조는 중국의 한 왕조가 멸망한 후 제갈량이라는 막강한 상대에 맞서 자신의 왕국을 세우는 데 성공한 인물이다. 내가 삼국지를 읽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에 나와있는 일화나 각 캐릭터의 상황에 대한 이해력이 떨어져 저자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 하였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삼국지를 꼭 읽어보길 바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치적으로 처세술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할 수 있는지 다심 한 번 깨닫게 되었음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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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의 손길 페르세포네 × 하데스 3
스칼릿 세인트클레어 지음, 최현지 옮김 / 해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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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포네×하데스 시리즈의 마지막 책을 읽으면서 한국보다는 미국이 성적지향에 대해서 보다 오픈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만 산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이라는 성정체석을 가진 작가라면 일반적으로 자신이 집필한 소설에 이렇게 다양한 성적지향을 가진 캐릭터가 수없이 나오지 않는다. 페르세포네×하데스 시리즈의 주인공이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이며, 그에 따라 성적 장면을 묘사한 장면 역시 이성애 중심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아폴론이 동성애 성향이 더 강한 바이섹슈얼로 묘사된 것이나 하르모니아의 캐릭터를 범성애자로 지정하고 주요캐릭터이자 페르세포네의 친구인 시빌이 하르모니아의 파트너가 되게 한 것은 한국소설에서 보기 힘든 지향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큐큐퀴어단편선 등을 통해 다양한 성적지향과 LGBTQAI에 대한 시도가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시스젠더 헤테로섹슈얼이라는 정상성을 강요하는 문화권에서의 창작물과 비교적 오픈되어있는 문화권에서의 창작물의 결은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의 모든 사람이 다양한 성적지향과 LGBTQAI에 오픈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한국인 중에서도 물론 다양한 범주의 사람이 많지만 결과론적으로 미국의 문화가 비교적 LGBT-friendly한 것은 사실이다.

악의의 손길에서는 그리스로마신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티타노마키아가 다루어진다. 앞서 두 권의 책에서 지속적으로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그리스로마신의 주신과 티탄 신족의 전쟁을 다룬 티타노마키아는 한국에서는 별로 알려져있지 않지만 유럽어권에서는 꽤나 중요한 신화 중 하나이다. 한국의 단군신화급이랄까? 페르세포네의 어머니 데메테르 역시 티탄 신족이나 티타노마키아에서 그리스로마신의 주신 제우스, 포세이돈, 하데스의 편을 들고 그 이유를 '티탄 신족 보다 더 인간적'이라서라고 들고 있다. 하지만 사실 그리스로마신의 12주신 모두 티탄 신족이다. 개인적으로는 그저 권력을 잡은 자가 새로운 신이 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페르세포네×하데스 시리즈에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반신(半神) 테세우스와 그의 조직 트라이어드는 새로운 티타노마키아를 꿈꾼다. 신이 없는 세상에서 스스로 신이 되고 싶은 것인지, 테세우스 스스로 이야기 한 것 처럼 더 큰 선(善)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보다 인간적인 삶을 살기 위해 비인간적인 방법을 택한다면, 그것은 옳은 것인가?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적'이라는 것이 '오직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인가? 인간이 원하는 것은 신과 같은 삶인가? '신과 같은 삶'이라는 것이 영원히 죽지 않는 젊음, 평안하게 살 수 있는 권력과 돈, 마음의 평화 중 어떤 것인가? 단순하게 생각하면 페르세포네×하데스 시리즈는 그저 성적인 끌림으로 만나 두 사람의 진정한 사랑으로 맺어진 결혼이지만 결말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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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멸의 손길 페르세포네 × 하데스 2
스칼릿 세인트클레어 지음, 최현지 옮김 / 해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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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가 업로드 되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 하였지만, 페르세포네×하데스 시리즈 1권 어둠의 손길을 읽은 직후 2권 파멸의 손길과 3권 악의의 손길을 연이어서 읽었다. 2권 파멸의 손길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소설의 분량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나 스칼릿 세인트클레어라는 작가는 전반적으로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이었다. 캐릭터의 특징이나 어떠한 신(scene)에 대한 모티브를 그리스로마신화에서 영감을 얻고 차용한 것은 맞지만 그것을 자신만의 생각과 스타일로 다시 재생산하고 현대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표현해내는 것은 매우 좋은 능력이다.

어떠한 예술작품이 단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하나의 시리즈라면 모든 시리즈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와 함께 각 시리즈를 나타내는 주제가 따로 있기 마련이다. 내가 생각했을 때, 페르세포네×하데스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는 신의 권능과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내용이라고 생각하지만 파멸의 손길의 주제는 삶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는 페르세포네의 친구 렉사의 죽음을 각기 다르게 받아들이는 주변 사람과 히아킨토스의 죽음으로 인해 고통받은 아폴론의 감정으로 알 수 있다. 삶과 죽음은 그 누구도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이다. 죽음을 다스리는 신이라고 할 지라도. 인류 역사 속에 상당히 많은 사람이 그리고 지금까지도 죽음을 극복한 영원한 삶을 얻기 위하여 노력한다. 불로초를 찾으려고 하였던 진시황은 물론 각종 SF소설과 영화에서는 죽지않는 복제인간이나 사이보그를 만들기도 하고 죽지도 늙지도 않는 신이라는 존재를 만들어 등장시키기도 한다. 과학과 의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수명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그 누구도 죽음이라는 것을 정복하지 못 하였다. 죽음이라는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어찌 보면 불가능한 일이다. 페르세포네는 친한 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 하여 거래를 하고 신이라는 아폴론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자 스스로를 죽게해달라고 빌기도 한다.

삶과 죽음은 연결이 되는가? 실제로 영혼이 존재하는가? 죽음 이후의 사후세계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환생이라는 것이 가능한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상상이고 아무것도 없는 무(無)로 돌아가고 먼지만 남는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다만, 우리는 삶을 지속하기 위해 어떤 것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할 때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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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경험의 본질 - 이탈리아의 프리미엄 브랜드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리카르도 일리 지음, 명선혜 옮김 / 유엑스리뷰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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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실물경제분야에 대해 잘 모른다. 예전 보다 다양한 분야의 도서를 읽으면서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실물경제에 대해 문맹에 가까운 수준의 지식을 가졌는지에 대해 통탄을 하고 있다. 사회과학, 인문학, 동물학, 동물행동학, 문학에 대해서는 어렸을 때 부터 꾸준한 사고와 도서의 확장이 되었건만 실생활에 필요한 실물경제에 대한 것은 갈 길이 멀다.

한국인에게는 이탈리아 커피로 잘 알려져 있는 일리 커피가 속해있는 폴로 델 구스토의 회장 리카도르 일리의 책을 읽으면서 실물 경제 분야에서 수익을 위한 단기 목표가 아닌 회사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의 지속적인 고용 창출, 지역 내 산업 육성, 같은 지역이나 자국 내 위치한 산업이 아닐지라도 기업과 연계되어 있는 물품을 생산하는 지역의 생산 가능성 등 다양한 분야의 장기 목표를 바라보는 것에 새롭게 공부하게 되었다. 기업의 입장에서 단기간에 최대한의 수익을 내어 투자자에게 받은 투자를 상회하는 금액을 돌려주고 기업의 이익을 회수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단기 이익에만 급급하다 보면 해당 분야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위한 미래 지향적인 투자는 거의 못 하게 된다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단기적인 이익을 높이기 위해 재생산 없는 벌목을 하거나 노동자에게 과도한 업무를 부과하여 산재가 일어나는 가시적인 손해와 함께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신뢰도를 잃어 추후에는 기업 자체가 파산을 하고 회생이 불가능한 수준이 될 때도 있다.

폴로 델 구스토는 가족 기업으로 운영을 하다 보니 폐쇄적이라는 비판을 받을지는 몰라도 투자자에게 이익을 분배하고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한 단기 목표가 아닌 그룹 전체가 지속가능한 목표를 지향할 수 있는 구조를 띌 수 있다. 일례로 기업이 신뢰를 얻는 집단의 1순위가 투자자가 아닌 기업에서 일을 하는 노동자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기에 노동자의 처우 개선에 힘을 쓰고 지속적으로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게끔 고민을 한다. 노동자가 자신의 자녀에게 해당 그룹에서 일을 하라고 추천할 수 있을만큼의 신뢰를 주는 것이다. 어떤 업체는 '부모님의 원수가 그 기업에서 일을 한다고 하여도 도시락을 싸들고 다니며 절대 가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듣는데 폴로 델 구스토처럼 가족에게도 일을 해보면 좋겠다고 믿고 추천을 할 수 있는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는 사실 단기 이익이 아닌 장기적인 기업의 이미지와 지속적인 고급 인력의 유입의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폴로 델 구스토에서 생산하는 와인, 커피, 초콜렛 등의 원자재를 생산하는 지역과 환경에 대해서도 상당히 지속가능한 목표를 가지고 바라본다. 와인, 커피, 초콜렛은 현지 농부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여 그 농장이 지속적으로 운영이 될 수 있도록 고려하고 환경이 파괴되지 않도록 고민한다. 품질 좋은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공급을 받아야 품질 좋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품질 좋은 제품을 생산한다는 것은 제품을 소비하는 사람에게도 기업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지만 기업에서 일을 하며 제품 품질에 관여하는 노동자에게도 자부심을 줄 수 있다. 게다가 원자재를 생산하는 농장주에게도 안정적인 소득원이 생기는 것과 동시에 무리하게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제품을 생산하도록 힘을 쓰는 것이 진정한 환경보호일 수도 있는 것이다.

브랜드 경험의 본질을 읽으면서 한국에서 유행처럼 번져나가는 ESG열품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코로나 직후 시작된 ESG 열풍은 환경을 보호하고, 기업 운영을 청렴하게 한다는 홍보가 되고 있지만 실제로 폴로 델 구스토 그룹처럼 지속가능한 목표를 수직적, 수평적인 신념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ESG를 하면 홍보가 되니까, 기업 평가가 좋아져서 투자를 받을 수 있으니까의 문제가 아닌 조직 내외부에서 신뢰를 쌓는 수평적, 수직적 신념과 지속가능한 목표를 공유해야하는 것이 아닌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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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금 1 - 왕의 목소리
임정원 지음 / 비욘드오리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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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금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때 있었던 궁궐 내 시종이다. 일반적으로 임금을 시종하며 전갈하는 일을 맡았는데 15세 이하의 남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왕의 말을 전하는 일이다 보니 상황이나 직위에 따라 왕을 곁에서 바로 모시는 일이 많았을 수도 있고 그만큼 어느 정도의 견제나 정치적인 이슈의 중심에 서있는 인물이 있었을 수 있다.

소설 중금은 경종와 경종의 동생 영조,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에 이르는 소설이다. 야사에는 경종이 독살설이 끊임없이 적혀있고 이 독살설의 배후에는 언제나 영조가 등장한다. 이후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는 정사에 적혀있는 내용도 워낙 드라마틱하고 어느 정도는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사도세자가 영조에게 죽임을 당한 연유도 있기 때문에 소설이나 드라마로도 각색이 많이 되는 것 같다. 연산군과 광해군 만큼이나 소설, 영화, 드라마의 소재로 많이 쓰이는 조선 임금이 영조와 사도세자가 아닐까싶다.

영조와 사도세자가 등장하는 역사소설이나 영화는 늘 주조연의 결말이 꼭 좋게만은 끝나지 않고 중금도 마찬가지이다. 백성의 삶을 평화롭고 안정적으로 만들고 싶은 희망은 언제나 그 대립각에는 권력을 가지고 위로 올라가고 싶은 누군가의 욕망과 얽혀 쉽게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중금도 그렇다. 백성의 평화나 안정은 언제나 중요한 부분이지만 권력을 가지고 있는 누구가는 자신의 삶만이 중요하다. 소설을 읽으면서 어느 시대나 권력만 따로 노는 나라는 없을진대 백성이던 민중이던 시민이던 남의 삶은 상관 없고 오직 자신의 삶과 안위만 중요한 사람이 나라를 망치고 있다. 세상에 권력만 따로 노는 나라는 없고, 혼자 잘 산다고 모든 것이 다 잘 된 것은 아니다. 중금이 중요했던 이유는 사람의 삶을 보다 좋게 만들기 위한 누군가의 희망이 중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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