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팅 시티 - 괴짜 사회학자, 뉴욕 지하경제를 탐사하다
수디르 벤카테시 지음, 문희경 옮김 / 어크로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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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뉴욕은 어떤 도시일까?

뉴욕에서 살아보기는 커녕 여행조차 가 본적이 없다.

내가 아는 뉴욕은... 뭐랄까..? 미드나 영화에서 본 것이 전부다.

 

꽤 오래전에 수디르 벤카데시의 괴짜 사회학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내가 사는 삶과 다른 도시/다른 삶을 사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이 책을 쓰는 수디르 벤카데시도 수디르 벤카데시가 연구하는 사람도 내가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국가에서 내가 못 하는 언어(내가 영어에 능통한 것은 아니니까)로 내가 알 수 없는 삶을 살고있다.

나에게 이 책의 저자도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사람도 내가 전혀 모르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괴짜사회학을 읽고 시간이 5년 정도 지났다.

수디르에게는 10년의 시간이 흘렀고, 연구의 배경은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바뀌었다.

수디르가 연구하는 집단도 변화가 되었다.

모집단도 훨씬 커지고 사회/경제적 배경이 빈곤층 뿐만 아니라 부유층/지배계급도 포함되었다.

바뀌지 않은 것은 수디르가 진행하는 "연구"의 집단이 마약거래와 성매매 등 지하경제에 속한다는 것이다.

 

매우 단순하게 생각해서 빈곤층은 어떻게든 살기 위하여 지하경제에 뛰어들었다.

본국에 있는 가족을 미국에 데리고오거나 가족이 본국에서 살게 만들려고 돈을 보내기 위해서.

영어에 능통하지 않거나 저학력층이라 임금노동자가 될 수 없어서 지하경제에 뛰어들었다.

그러다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 돈을 거의 벌 수 없는 환경이 된다면

(지하경제 내에서) 시도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새로운 일을 찾다가 결국 죽거나 그 사회에서 매장이 된다.

 

부유층이 지하경제에 뛰어드는 이유는 아주 다른데 무언가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부유층은 고학력자이기에 임금노동을 할 수 있었고 꽤 괜찮은 직업을 구할 수 있었다.

꽤 괜찮은 직업이지만 부유층인 그들이 계속해서 하기에 따분한 일이었고,

원하는 만큼의 돈을 벌 수 있지는 않았다.

부유층은 자신이 배운 것을 활용하여 일며 마담뚜의 역할을 하여 지하경제에서 나오는 (위험한)돈을 잘 벌게 된다.

 

차이점은 돈의 액수와 함께 마담뚜와 실제 성매매노동자의 계층차이고

공통점은 현금으로 결제가 되니 그 돈을 세탁을 하거나 현금보관을 해야하는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뒤로 갈 수록 제일 화가 났던 점은

부유층/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4년제 대학을 졸업한) 마담뚜는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여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자금을 모아 뉴욕과 성매매라는 환경을 뛰어넘을 수 있지만

빈곤층은 그것이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물론 빈곤층도 다른 지역으로 가서 다른 일을 할 수 있지만 결국 계속해서 빈곤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수 많은 기회를 주지만 그 기회의 질이라는 것이 계층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도.

 

지하경제/성매매/마약은 나의 삶에서 보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이다.

내가 보려고 노력한 지하경제/성매매/마약은 실제로 경험한 것이 아니라

책에서 읽은 것이나 남에게 들은 이야기 뿐이다.

지하경제/성매매/마약가 이 세상에 없는 것이라 부정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내가 놓치고 있는 무언가라고 생각한다.

지하경제/성매매/마약 때문에 무너지는 삶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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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 & 아도르노 :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 지식인마을 30
신혜경 지음 / 김영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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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인 개념을 단순하게 도식화 할 수 있는데는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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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 & 아도르노 :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 지식인마을 30
신혜경 지음 / 김영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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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사진의 작은 역사를 읽고 난 뒤

좀 더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하여 이 책을 읽었다.

벤야민과 아도르노의 만남과 죽음, 생애에 있어서 발전되는 철학의 과정을 단편적으로 읽으면서

설명을 덧붙여서 쓴 것은 사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지 도서관에서 빌려읽은 책에서 전에 빌려간 누군가가 형광펜으로 밑줄을 쳐 놓은게 아주 많이 거스리기는 했지만.

그리고 중간중간 나오는 깜짝퀴즈와 지식플러스는 책을 읽는데 왜 이리 방해가 되던지.ㅡ.ㅡ

 

책을 읽고 난 뒤 "문화산업"이라는 것이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서)양날의 칼이라나는 것과

(별 의미있어서 쓰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어떤 생각으로 "문화산업"이라는 것을 조정하여도

그게 예술가의 삶에 어떤 차이가 생기느냐는 다른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화"가 "산업"으로 취급되어지는 것이 사실이고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나쁘고.

 

"문화"라는 것을 아주 넓게 포괄하면 정치/경제/사회/예술/도덕/종교 인류(혹은 인간)의 삶을 전체적으로 지칭하는 개념일 텐데

이것을 "산업"으로 표현하는 것이 인류(인간)의 삶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산업"이 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생각도 들었다.

 

뭐 그냥 주변을 둘러봐도 교회/절/성당 그외 기타 등등의 종교가 교인을 늘리려고 마케팅에 아주 열심히이고

마이클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책이 대히트를 치면서 서점가에서는 도덕을 책으로 팔기 시작했고

정치는 원래 돈 ㅡ.ㅡ 이었고.

 

아쉬운 점은 뒤에 나온 대화부분에서 문화산업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그 단어의 해석을 매우 좁게하여

"예술"/"대중문화(라고 불리는 영화나 매스미디어)"로 이야기를 한다.

-대중문화라는 것이 온전히 예술영역에 넣기는 그렇지만 아무튼 약간이라도 미학적인 부분을 조작하여 사회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 할 지라고-

물론 짧은 책에서 문화의 개념을 예술과 그것이 미치는 한정적인 것이라고 좁게 해석이 되어 있기도 하고

좁게 해석된 것에서 점차 큰 개념을 섞어서 이야기를 하기는 했어도

아무래도 아쉽지 않나 싶다.

또 이 대화부분이 다른 개념을 주장하는 4명이 모여 100분토론처럼 토론을 벌이는 형식이고

많은 사람이 이해하도록 쉽게 쓰기는 했지만

나는 둘 다 공감할 수가 없어서.

 

그래도 전반적인 개념을 약간이라도 도식화 할 수 있게 해주어서 땡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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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사진의 작은 역사 외 발터 벤야민 선집 2
발터 벤야민 지음, 최성만 옮김 / 길(도서출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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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예술의 복제와 예술의 기술적 복제는 원칙적으로 다름을 주장한다. 기술의 발전 이전의 예술의 복제란 모사의 개념으로서 예술가지망생의 기본기 습득 내지는 자신의 예술을 널리 알리려는 예술가의 다작 개념이었다. 이것이 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복제가 되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복제란 말 그대로 인간의 발명으로 인한 기술이 발전하고, 예술의 복제가 사람에 의한 모사의 수준이 아니라 복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초기에는 (다양한 종류의) 판화에서 활자의 개발로 인한 인쇄술 발전으로 넘어갔다. 판화와 활자라는 매체는 예술을 대중화 하는데 약간의 기여를 했을지는 몰라도 초기의 예술이란 아직 상위계층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1820~40년 사이 사진술의 발명(1827년 조세프 니엡스의 사진술, 1839년 다게르 사진술)으로 인한 자연(nature) 복제가 생기게 되었고, 이는 판화나 활자 인쇄보다 짧은 시간에 예술을 창조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유통시킬 수 있게 되었다. 1900년대 이후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사진을 통하여 대중이 예술작품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사진의 발명 이전에도 예술의 복제가 빈번히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포함한 여러 화가는 예술가로 들어가는 초창기에 모작(模作, 남의 작품을 그대로 본떠서 만듦)을 통하여 자신의 기술의 발전시켰다. 허나 대다수의 사람이 모작에 대해 원본(=진퉁)은 그대로 있고 모작된 예술은 위조품이라는 낙인으로 원본보다 아래에 위치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사진의 발명으로 인하여 달라진 점은 기계적 조작으로 인간이 볼 수 있는 한계보다 더 빠르게 혹은 느리게/확대해서 볼 수 있다는 것과 원본(필름, RAW파일)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원작(진퉁)을 생산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대중이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에 위치하여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음악/영상/사진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예술이라는 고가품을 상류계급만 영위하는 것이 아니라 돈과 권력이 없는 사람 또한 동등한 위치에서 예술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예술작품이 상류층이 가지고 있던 전통에 의한 권위로 향유되지 않고, 일반 대중의 삶과 함께 하게 되었다.

예술(과 원본의 기술적 복제품)의 대량생산은 전통(귀족의 소유물과 원작의 권위)을 뒤흔들었다. 책에서도 쓰여 있듯이 아벨 강스가 외친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화될 것이다.(이하 후략)”라는 말이 실현되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연극무대(원작) 뿐만 아니라 영화(기술복제)로 만들어져 상업화로 유통되었고, 렘브란트는 일생이 영화로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특유의 빛과 명암처리는 현대의 사진가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베토벤 또한 그의 일생이 영화로 만들어졌으며(카핑 베토벤, 불멸의 연인, 에로이카), 세계 각국의 클래식 거장의 음반에 다양한 버전으로 녹음되어 대중이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예술의 대중화 이전의 예술이란, 시대와 민족에 따라 달라지기는 했어도 특정한 아우라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초창기 예술이 주술/종교의식과 관련된 예술이었던 것과 관련이 깊고, 아름다운 예술을 추구했던 르네상스 시대에는 유일한 원본이라는 가치에서 주는 의식적인 아우라가 있었다. 이에 반해 사진술의 발전과 함께 사회주의라는 현상이 새롭게 나타났고, 주술/종교의식과 르네상스 시대에서 중요했던 아우라의 개념과는 별개로 예술이라는 것은 복제를 지향하게 되었다. 의식을 바탕으로 둔 예술이 아닌 실천과 정치가 바탕이 된 예술이 된 것이다.

주술과 종교라는 의식이 바탕에 있던 예술은 그 가치가 태초부터 신성한 것이었고, 예술작품에 다가갈 수 있는 사람도 한정적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로 그 바탕이 바뀌었음에도 예술작품이란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의 소유였다. 주술/종교적인 예술과 르네상스의 예술은 특별한 경우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기는 하였지만 그 빈도는 현저히 낮았다. 이에 반하여 기술적으로 복제 가능한 예술의 경우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는 전시/상영 빈도가 이전의 예술의 비하여 훨씬 많다.(헐리웃 영화가 세계 여러 국가에서 동시개봉/상영 된 사례)

저자 발터벤야민은 그리스 예술과 현대 예술은 정반대에 위치한다고 쓴다. 그 이유에서 그리스 예술은 영원한 가치를 만들어 내는 조형예술(조각, 회화, 건축)을 만들어 내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면 현대 예술은 재반복(재촬영)과 편집으로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영상예술을 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있을 수 없는 가정이기는 하지만 그리스 시대에 사진기술과 영상기술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그리스 예술이 조형예술에만 머물렀을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또한, 영화를 비롯한 영상예술이라는 것이 연출과 편집에 의하여 다양한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어떤 연출가에 의해서 완성된 영화가 개선 가능성을 위하여 다시 편집하는 과정을 거치겠느냐하는 부분이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DVD용 감독 편집이나 국가마다 다른 검열기준에 따라 재편집이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그것이 개선 가능성을 때문이 아니지 않을까? 게다가 조형예술 또한 개선가능성을 위하여 실제 작품에 들어가기 전 밑그림을 수정 한다던가 혹은 채색을 할 때 덧칠을 하는 부분이 있지 않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아예 이해하지 못 한 것 일수도 있다-

또한 저자는 사진의 발명과 영상기술의 발명이 예술의 의미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이유는 실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복사하였음에도 현실과 거리가 먼 동화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나는 다양한 렌즈를 통하여 사람의 눈과 다른 프레임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가 설명한 사진이 그림에 대한 복제와 영화스튜디오에서의 복제의 차이에 대한 점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진기와 영상촬영 카메라가 렌즈를 통하여 세상을 보고, 렌즈의 화각에 따라 확대/축소가 가능하고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과 비교하였을 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이 몇 컷의 사진과 동영상의 차이, 상황에 따라 사진은 연출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영화스튜디오는 연출이라는 점이 다르기는 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광고촬영을 위한 사진스튜디오에서도 연출이라는 것이 되지 않나? 오히려 같은 조건의 광고촬영을 위한 사진스튜디오와 영화스튜디오에서의 복제의 차이 혹은 사진다큐와 영상다큐에서의 복제의 차이를 설명하였으면 내가 더 이해하기 슆지 않았을까? 물론 배우의 입장에서 연극과 영화에서의 연기가 복제/심리적인 이유/반복성 때문에 차이가 난다는 것은 오히려 앞서 나온 사진촬영과 영상촬영의 차이점보다 이해하기 쉬웠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영화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한다. 영화 촬영이 전문가 뿐만 아니라 일반이라 불리는 사람도 쉽게 접근하여 제작할 수 있고 비록 소규모 단위이겠지만 연극이 무대 위로 불러낼 수 없는 것을 관객의 상상으로 채우려 한다면 영화는 실제를 촬영하여 인위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 연극 무대 위에 코끼리가 올라오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엄청나가 어려운 일이라 인형 등으로 대체한다면 영화에서는 어떻게든 코끼리를 찍어서 보여주니까 화가와 영상촬영 카메라맨의 차이점을 이야기 하는데 있어 왜 마술사와 외과 의사를 비교하였는지 모르겠지만, 화가가 전체적인 것을 한 폭의 그림으로 보여주려 한다면 영상촬영 카메라맨은 단편적인 영상을 편집이라는 기술로 엮어 보여줄 수 있는 일종의 조각보를 만든다는 데 있다. 다만 화가의 그림보가 기술적인 복제가 가능하여 여러 곳에서 동시 상영할 수 있는 영상이 다수의 대중에게 더 쉽게 보여질 수 있고, 그러다보니 다수의 사람은 실제 사람의 눈으로 보는 현실적인 그림보다 렌즈의 화각과 편집으로 인하여 왜곡된 어떤 영상/사진을 실제 현실과 혼동하게 된다.

끝으로 가면 영화와 다다이즘, 전쟁의 심미안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어떤 의미인지 이해 할 수 없다. 무의미의 의미와 인류 스스로 비극에 대한 구경을 하려 한다는 것은 무의미와 비극이 어떤 개인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의 작은 역사

 

레오나르도 다 빈치로부터 알려졌던 카메라 옵스큐라는 니에프스와 다게르의 작업 성공으로 인하여 현실화되었다. 카메라 옵스큐라가 발명되고 나서 초창기 10년은 예술가에게 도움이나 영감을 주는 존재였지만 상업화되기 이전이었다. 명함판 사진이 발명되고 난 뒤 이 명함판 사진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 나타났다.(주로 이전에 초상화를 그리던 화가)

허나 사진을 예술로 보는 시각은 부정적이었는데 책에 인용된 라이프치히 신문의 한 부분 같이 예술은 신이 부여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노력을 통하여 창조하는 것이지 한낱 기계로 찰나의 시간을 조작하여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1800년대에는 사진을 현상하는 것도 너무 비쌌기에 한 동안 사진은 화가의 그림을 도와주는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몇몇 화가가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의 초상사진과 사진가 자신의 가족사진을 습작으로 찍어놓았고 이것은 지금과는 다른 배경/공간으로 인하여 예술적인 느낌을 준다. 저자는 인간의 눈과 카메라의 렌즈는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카메라가 인간의 눈으로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촬영하는 것보다 세포의 조직을 확대하거나 한 사물을 비현실적으로 왜곡해서 촬영하는 것이 인간이 신비스러운 체험을 할 수 있게 하며 진실에 가깝다고 이야기 한다.

초창기의 초상사진은 모델이 오랫동안 부동자세로 포즈를 취하고 있어야 했기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묘지 같은 곳에서 촬영을 하였다. 이는 라이프치히 신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사진이 찰나의 시간을 조작하는 것이 아닌 인간이 지닌 최소한의 노력이라 볼 수도 있다-그것이 라이프치히 신문에서 말한 예술의 일반론과는 다르다고 할지라도-.

초상사진의 기술이 나날이 발전함에 따라 수공업적 수련을 쌓은 많은 초상화가가 초상사진가가 되었다. 사진 앨범의 범람과 함께 (사진이 찍히는 모델이 장기간 노출에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배경과 내부 장식이 생기게 되었다. 이런 배경은 상당히 인위적이었는데 그 인위적이라는 느낌 때문에 아우라가 생겼다고 저자는 말한다. 과거 초상사진에서 보여 지는 예술성과 아우라는 초상사진가가 돈을 벌기위한 수단에서 생겨난 것이지 그 이상은 아니다.

오히려 기술에 얽매이는 탓에 화가보다 창조성을 발휘할 방법이 마뜩치 않은 사진가는 카메라의 렌즈의 특성을 살려 초현실주의를 선택하였다. 아젯은 사람이 없는 골목/비어있는 안뜰과 테라스 등 공간에서 인간을 소외시킴으로서 사진의 초현실주의를 창조하였다.

저자는 예술로서의 사진사진으로서의 예술이 다르다고 느끼며 예술작품이 사진으로 복제하는 과정이 어떤 체험을 사진으로 만드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말을 한다. 어느 날부터 사진은 회화를 대신하게 되었다. 다만 과거 화가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걱정했던 회화의 한 영역-초상화, 풍경화-등의 영역을 대신하게 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진이 가지고 있는 찰나를 기록하는 그 능력을 살려서 아무 생각 없이 넘어가게 되는 순간을 초현실적으로 남기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사진이 예술의 영역에 들어가느냐의 문제는 나에게 상관이 없는 일이다. 오히려 내가 사진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가 더 큰 문제이다. 사진이라는 것은 초반에는 개인의 노력이 아닌 어떤 형상을 있는 그대로 옮기는 기계였을 것이다. 사진기를 활용하여 사진을 예술로 만든 것은 인간의 노력이다.

저자가 누누이 썼듯이 카메라의 렌즈는 인간의 눈과 다른 형상을 포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인간이 볼 수 없는 순간을 카메라의 렌즈는 포착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상업사진이나 명함판 초상사진이, 50mm렌즈가 보는 것이 인간의 눈이 볼 수 있는 것과 무엇이 크게 다르냐고 의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렌즈는 인간의 눈을 모방하여 만든 것이고, 오히려 인간의 눈이 한낱 기계보다 더 뛰어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애초에 인간의 눈과 기계가 다름이 분명한데 그것을 굳이 비교하려고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50mm렌즈의 화각이 인간의 눈의 화각과 비슷하다고 해서 50mm렌즈로 찍은 사진이 인간의 눈으로 보는 세상과 올바르게 똑같은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상업사진이나 명함판 사진은 그 프레임 자체가 비현실적인데 왜 그것이 현실과 같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찍는 스냅사진이 사냥감을 찾는 사냥꾼과 무엇이 다르냐는 물음에는 비록 사냥꾼이라 할지라도 타당한 이유와 먹이를 잡는 능력이 있다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덧붙여 사진을 찍는 행위에 대하여 다수의 사람이 총을 쏘는 것에 비교한다. 나는 이 비교에 대하여 반대한다. 재미로 생명을 죽이는 행위가 어떻게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여 예술로 승화해보려는 행위가 어떻게 같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비교하는가? 취미로 재미삼아 예술을 한다고 할 때, 그 예술에 목숨을 건 사람이 기분 나쁘게 생각할 여지는 충분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떤 것은 보고 손가락을 누른다는 행위가 일치한다는 이유만으로 취미로 생명을 죽이는 행위와 예술을 지향하는 행위를 비교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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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복제와 예술의 기술적 복제는 원칙적으로 다름을 주장한다. 기술의 발전 이전의 예술의 복제란 모사의 개념으로서 예술가지망생의 기본기 습득 내지는 자신의 예술을 널리 알리려는 예술가의 다작 개념이었다. 이것이 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복제가 되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복제란 말 그대로 인간의 발명으로 인한 기술이 발전하고, 예술의 복제가 사람에 의한 모사의 수준이 아니라 복사가 되었다는 것이다. 초기에는 (다양한 종류의) 판화에서 활자의 개발로 인한 인쇄술 발전으로 넘어갔다. 판화와 활자라는 매체는 예술을 대중화 하는데 약간의 기여를 했을지는 몰라도 초기의 예술이란 아직 상위계층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1820~40년 사이 사진술의 발명(1827년 조세프 니엡스의 사진술, 1839년 다게르 사진술)으로 인한 자연(nature) 복제가 생기게 되었고, 이는 판화나 활자 인쇄보다 짧은 시간에 예술을 창조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유통시킬 수 있게 되었다. 1900년대 이후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은 사진을 통하여 대중이 예술작품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사진의 발명 이전에도 예술의 복제가 빈번히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포함한 여러 화가는 예술가로 들어가는 초창기에 모작(模作, 남의 작품을 그대로 본떠서 만듦)을 통하여 자신의 기술의 발전시켰다. 허나 대다수의 사람이 모작에 대해 원본(=진퉁)은 그대로 있고 모작된 예술은 위조품이라는 낙인으로 원본보다 아래에 위치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사진의 발명으로 인하여 달라진 점은 기계적 조작으로 인간이 볼 수 있는 한계보다 더 빠르게 혹은 느리게/확대해서 볼 수 있다는 것과 원본(필름, RAW파일)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원작(진퉁)을 생산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대중이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에 위치하여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음악/영상/사진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예술이라는 고가품을 상류계급만 영위하는 것이 아니라 돈과 권력이 없는 사람 또한 동등한 위치에서 예술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예술작품이 상류층이 가지고 있던 전통에 의한 권위로 향유되지 않고, 일반 대중의 삶과 함께 하게 되었다.

예술(과 원본의 기술적 복제품)의 대량생산은 전통(귀족의 소유물과 원작의 권위)을 뒤흔들었다. 책에서도 쓰여 있듯이 아벨 강스가 외친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화될 것이다.(이하 후략)”라는 말이 실현되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연극무대(원작) 뿐만 아니라 영화(기술복제)로 만들어져 상업화로 유통되었고, 렘브란트는 일생이 영화로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특유의 빛과 명암처리는 현대의 사진가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베토벤 또한 그의 일생이 영화로 만들어졌으며(카핑 베토벤, 불멸의 연인, 에로이카), 세계 각국의 클래식 거장의 음반에 다양한 버전으로 녹음되어 대중이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예술의 대중화 이전의 예술이란, 시대와 민족에 따라 달라지기는 했어도 특정한 아우라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초창기 예술이 주술/종교의식과 관련된 예술이었던 것과 관련이 깊고, 아름다운 예술을 추구했던 르네상스 시대에는 유일한 원본이라는 가치에서 주는 의식적인 아우라가 있었다. 이에 반해 사진술의 발전과 함께 사회주의라는 현상이 새롭게 나타났고, 주술/종교의식과 르네상스 시대에서 중요했던 아우라의 개념과는 별개로 예술이라는 것은 복제를 지향하게 되었다. 의식을 바탕으로 둔 예술이 아닌 실천과 정치가 바탕이 된 예술이 된 것이다.

주술과 종교라는 의식이 바탕에 있던 예술은 그 가치가 태초부터 신성한 것이었고, 예술작품에 다가갈 수 있는 사람도 한정적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에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로 그 바탕이 바뀌었음에도 예술작품이란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의 소유였다. 주술/종교적인 예술과 르네상스의 예술은 특별한 경우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기는 하였지만 그 빈도는 현저히 낮았다. 이에 반하여 기술적으로 복제 가능한 예술의 경우 일반 대중에게 공개되는 전시/상영 빈도가 이전의 예술의 비하여 훨씬 많다.(헐리웃 영화가 세계 여러 국가에서 동시개봉/상영 된 사례)

저자 발터벤야민은 그리스 예술과 현대 예술은 정반대에 위치한다고 쓴다. 그 이유에서 그리스 예술은 영원한 가치를 만들어 내는 조형예술(조각, 회화, 건축)을 만들어 내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면 현대 예술은 재반복(재촬영)과 편집으로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영상예술을 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한다. 여기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있을 수 없는 가정이기는 하지만 그리스 시대에 사진기술과 영상기술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그리스 예술이 조형예술에만 머물렀을 것인가 하는 부분이다. 또한, 영화를 비롯한 영상예술이라는 것이 연출과 편집에 의하여 다양한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어떤 연출가에 의해서 완성된 영화가 개선 가능성을 위하여 다시 편집하는 과정을 거치겠느냐하는 부분이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DVD용 감독 편집이나 국가마다 다른 검열기준에 따라 재편집이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그것이 개선 가능성을 때문이 아니지 않을까? 게다가 조형예술 또한 개선가능성을 위하여 실제 작품에 들어가기 전 밑그림을 수정 한다던가 혹은 채색을 할 때 덧칠을 하는 부분이 있지 않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아예 이해하지 못 한 것 일수도 있다-

또한 저자는 사진의 발명과 영상기술의 발명이 예술의 의미 자체를 바꾸어 놓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 이유는 실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복사하였음에도 현실과 거리가 먼 동화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나는 다양한 렌즈를 통하여 사람의 눈과 다른 프레임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가 설명한 사진이 그림에 대한 복제와 영화스튜디오에서의 복제의 차이에 대한 점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진기와 영상촬영 카메라가 렌즈를 통하여 세상을 보고, 렌즈의 화각에 따라 확대/축소가 가능하고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과 비교하였을 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이 몇 컷의 사진과 동영상의 차이, 상황에 따라 사진은 연출되지 않은 것도 있지만 영화스튜디오는 연출이라는 점이 다르기는 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광고촬영을 위한 사진스튜디오에서도 연출이라는 것이 되지 않나? 오히려 같은 조건의 광고촬영을 위한 사진스튜디오와 영화스튜디오에서의 복제의 차이 혹은 사진다큐와 영상다큐에서의 복제의 차이를 설명하였으면 내가 더 이해하기 슆지 않았을까? 물론 배우의 입장에서 연극과 영화에서의 연기가 복제/심리적인 이유/반복성 때문에 차이가 난다는 것은 오히려 앞서 나온 사진촬영과 영상촬영의 차이점보다 이해하기 쉬웠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영화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한다. 영화 촬영이 전문가 뿐만 아니라 일반이라 불리는 사람도 쉽게 접근하여 제작할 수 있고 비록 소규모 단위이겠지만 연극이 무대 위로 불러낼 수 없는 것을 관객의 상상으로 채우려 한다면 영화는 실제를 촬영하여 인위적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 연극 무대 위에 코끼리가 올라오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엄청나가 어려운 일이라 인형 등으로 대체한다면 영화에서는 어떻게든 코끼리를 찍어서 보여주니까 화가와 영상촬영 카메라맨의 차이점을 이야기 하는데 있어 왜 마술사와 외과 의사를 비교하였는지 모르겠지만, 화가가 전체적인 것을 한 폭의 그림으로 보여주려 한다면 영상촬영 카메라맨은 단편적인 영상을 편집이라는 기술로 엮어 보여줄 수 있는 일종의 조각보를 만든다는 데 있다. 다만 화가의 그림보가 기술적인 복제가 가능하여 여러 곳에서 동시 상영할 수 있는 영상이 다수의 대중에게 더 쉽게 보여질 수 있고, 그러다보니 다수의 사람은 실제 사람의 눈으로 보는 현실적인 그림보다 렌즈의 화각과 편집으로 인하여 왜곡된 어떤 영상/사진을 실제 현실과 혼동하게 된다.

끝으로 가면 영화와 다다이즘, 전쟁의 심미안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어떤 의미인지 이해 할 수 없다. 무의미의 의미와 인류 스스로 비극에 대한 구경을 하려 한다는 것은 무의미와 비극이 어떤 개인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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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스터디를 시작해서 읽고 발제인데 망했다.

아놔.. 더 노력해야 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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