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P
내가 마지막으로 존을 만나러 프린스턴에 갔을 때, 나는 그와 오랫동안 산책을 했다. 그의 목소리가 작아서 놓친 말들이 많았는데, 연로한 그에게 자꾸 다시 말해달라고 부탁할 수가 없었다. 이제 그는 이 세상에 없다. 나는 더 이상 질문을 할 수도 없고 내 생각을 이야기할 수도 없다. 그의 생각이 옳은 것 같다고 말할 수도 없고, 그의 생각이 내 평생의 연구를 이끌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가 양자중력의 미스터리에 가장 근접한 사람이었다는 내 생각을 말할 수도 없다. 이제 그는 지금 이 곳에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의 시간이다. 기억과 추억, 부재의 고통, 그것이다.

128P
그렇다고 고통을 유발하는 것이 부재는 아니다. 고통은 애정과 사랑에서 시작된다. 애정이 없으면, 사랑이 없으면 부재의 고통도 없을 것이다.

129P
존과 브라이스는 내게 정신적 아버지였다. 갈증에 시달리던 내가 그들의 아이디어에서 시원하고 맑은, 마시기 딱 좋은 물을 찾았다. 존과 브라이스에게 감사한다. 우리 인간은 삼정과 생각으로 산다. 우리는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있을 때 대화를 하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피부를 스치면서 감정과 생각을 교환한다. 이런 만남과 교환의 네트워크를 통해 성장한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교환을 위해 굳이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에 있을 필요는 없다. 서로를 연결하는 생각과 감정들은 바다를 건너는 것도 어렵지 않고 수십 년의 세월을, 어떤 때는 심지어 수세기를 건너뛸 수도 있다.

140P
세상의 기본 문법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그냥 어떤 식으로든 ‘등장‘하는 것이 상당히 많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 고양이는 우주의 기본 요소에 포함되지 않는다. 지구 곳곳에서 불쑥 ‘등장‘하기를 반복하는 복잡한 것이다.

▪︎ 풀밭에 있는 청소년 무리. 이들은 무슨 게임을 할지 결정하고 팀을 짠다. 우리는 이렇게 했었다. 무리 중에서 가장 적극적인 친구 두 명이 차례로 팀원을 선택하고 홀짝 맞추기로 어느 편이 먼저 게임을 시작할지 정했다. 이 지루한 과정이 끝나야 두 팀이 만들어졌다. 이 과정 전에 두 팀은 어디에 있었을까? 그 어디에도 없었다. 팀을 정하는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다.

141P
▪︎ 높은 산에 오르면 흰 구름에 덮인 계곡이 보인다. 구름 표면은 하얗게 빛이 난다. 계곡 쪽으로 걸어가보자. 공기가 점점 습해지고 뿌옇게 흐려진다. 하늘은 이제 더 이상 푸르지 않고 어느새 구름이 듬성듬성 낀 곳에 다다른다. 선명한 구름 표면은 어디로 간 걸까? 사라졌다. 사라지는 과정은 점진적으로 나타나고, 안개와 고지대의 깨끗한 공기를 구분하는 ‘표면‘ 따위는 없다. 아까 본 것은 환영인가? 아니다. 멀리서 보았던 광경이다. 잘 생각해보면, ‘모든‘ 표면이 그렇다. 단단한 대리석 탁자는 내가 원자 정도의 작은 크기가 된다면, 안개처럼 보일 것이다. 가까이 가서 보면 세상 사물들이 ‘모두‘ 뿌옇게 보일 것이다. 산이 사라지고 평원이 시작되는 곳은 정확히 어디일까? 어디서 사막이 끝나고 사바나가 시작될까? 우리는 세상을 커다란 조각으로 잘라놓았다. 우리는 세상이, 중요한 개념들이 상당한 규모로 ‘등장‘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169P
오랫동안 방치해둔 나무 더미를 예로 들어보자. 이런 나무 더미는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가 아니다. 왜냐면 탄소나 수소같은 구성 성분들이 아주 특별한(‘질서 있는‘) 방식으로 결합하여 나무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엔트로피는 이 특별한 조합이 깨져야 성장한다. 아무가 불에 타면 이 결합이 깨지는데, 나무를 형성한 특별한 구조에서 나무의 구성 요소들이 분열하고, 엔트로피가 맹렬하게 증가한다.(불은 사실상 절대 되돌릴 수 없는 과정이다.) 그런데 나무는 스스로 타기 시작하지 않는다.무엇인가가 높은 엔트로피 상태로 갈 수 있는 문을 열어줄 때까지는 낮은 엔트로피 상태로 남아 있다.

171P
생명체도 유사하게 상호 뒤얽힌 과정들로 구성되어 있다. 광합성은 태양으로부터 받은 낮은 엔트로피가 식물에 쌓이는 과정이다. 동물은 음식을 섭취하는 방식으로 낮은 엔트로피를 먹고 산다.(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엔트로피가 아니라 모두 에너지라면, 우리는 음식을 먹지 않고 사하라 사막의 뜨거운 열기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할 것이다.) 살아 있는 모든 세포 내부는 복잡한 화학 공정들의 네트워크로서 낮은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문을 여닫는 구조물이다. 분자들은 촉매처럼 공정들의 얽힘을 촉진하거나 반대로 억제하기도 한다. 각각의 모든 공정에서 엔트로피의 증가는 모든 작용을 가능하게 한다. 생명은 서로 촉매작용을 하는,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는 과정들의 네트워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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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별이 쉬운 나무도감
국립수목원 지음 / 지오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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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사 교재 구입. ‘식별이 쉬운‘ 나무 도감. 초판 1쇄 2010년 6월 25일, 초판 15쇄 2024년 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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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041p.)  시간여행과 스토리텔링


  이 과정은 두 가지 능력, 즉 우리 마음의 두 가지 독특한 능력에서 시작된다. 인간은 머릿속으로 과거와 미래를 방문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우리는 노련한 시간 여행자이자 숙련된 이야기꾼이다. 이 두 가지 능력은 삶에 후회를 일으키는 인지적 이중 나선을 형성한다.


   '세계 후회 설문조사'에 제출된 수많은 후회 중 하나를 살펴보자.


아버지의 뜻에 굴복해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지 않고, 내가 선택한 분야의 학위를 취득하겠다는 내 소망을 따랐더라면 좋았을 거라 생각해요. 그랬다면 내 인생은 지금과는 다른 궤도에 올랐을 겁니다. 더 큰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꼈겠죠. 


  이 몇 마디 말속에서, 버지니아에 사는 이 52세 여성은 두뇌의 놀라운 민첩성을 발휘한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한 그녀의 머릿속에서 과거(자신이 교육과 직업 사이에서 고민하던 수십 년 전 젊은시절)로 돌아간다. 일단 그곳에 도착하면, 그녀는 실제로 일어난 일(아버지의 바람에 굴복한 사실)을 '부인'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원했던 대로 대학원 과정에 등록하는 대안으로 대체한다. 그러고는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앞으로 달려간다. 하지만 그녀가 과거를 재구성했기 때문에 도착했을 때 마주하는 현재는 조금 전 떠나온 현재와는 크게 다르다. 새로 단장된 그 세상에서 그녀는 만족감과 성취감을 느낀다. 


  시간여행과 허구의 조합은 인간의 초능력이다.


(중략)


(045~046p.)  시간여행을 하고 사건을 다시 쓰는 한 쌍의 능력은 후회 과정의 동력이다. 하지만 후회와 다른 부정적인 감정을 구별하는 두 가지 추가 단계를 더 거치지 않으면 이 과정은 완성되지 않는다. 첫째, 비교한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52세 여성으로 돌아가 보자.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신이 바라던 대로 대학원에 진학했더라면 좋았을 거라 생각한 사람이다. 그녀가 단지 현재 처한 상황이 비참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거라면 어떨까. 그것만으로는 후회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 감정은 슬픔, 우울, 혹은 절망이다. 타임머신에 탑승해, 과거를 부정하고, 암울한 실제 현재와 어쩌면 있었을지 모를 현재를 '비교'하는 일을 해야만 그 감정은 '후회가 된다'. 비교는 후회의 핵심에 있다. 


  둘째, 비난을 평가한다. 후회는 다른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잘못이다. 영향력 있는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이 표현하는 후회의 약95퍼센트는 외부 환경이 아니라 자신이 통제했던 그 상황과 관련이 있다.


  후회에 사로잡힌 버지니아를 다시 생각해보자. 그녀는 자신의 불만족스러운 상황을 상상의 대안과 비교하고 부족한 점이 있다는 생각에 빠진다. 이 단계가 필수이긴 하지만 부족함을 느끼는 것 자체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녀를 후회의 영역으로 완전히 밀어넣는 것은 그 결정과 행동을 한 것이 그녀 자신이라는, 대체 불가능성이다. 그녀 자신이 고통의 원인이다. 그래서 후회는 실망 같은 부정적인 감정과 다르고 훨씬 더 고통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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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핑크 후회의 재발견 - 더 나은 나를 만드는, 가장 불쾌한 감정의 힘에 대하여
다니엘 핑크 지음, 김명철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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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THE POWER OF REGRET(2022), 후회의 재발견, 다니엘 핑크 지음, 김명철 옮김, 제1판 1쇄 2022년 9월 15일, 제1판 11쇄 2024년 12월 3일. 값18,000원, 알라딘 판매가 16,200원. 음.. 1판 1쇄를 사지 않은 것을 후회함. 세상 따뜻한 인생 조언. 후회를 말할 용기를 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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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에 본 거 중에 제일 좋았던 거,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 아님. 작정하고 주문했던 책? 아님. TV 설연휴 특선 영화? 드라마? 예능? 다 아님. 다 아니고 그럼 무엇이당가? 그것은 바로, 바로오- 눈! 눈! 함박눈! 밟을 때마다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내는 누우우우운!

작년, 재작년에 못 보고 3년 만에 보니까 어찌나 반갑던지, 휴게소마다 들러서 눈 구경하고 사진 찍어댐. 사진을 올리려고 보니 어... 사진 속 내 모습 이게 나라고? 우앙ㅠㅜ 안되겄네. 사진은 패쓰!

금요일 오전에 볼 일이 있어서, TV 끄고 나가려고 리모컨을 들었는데 마침 [스즈메의 문단속]을 시작하는 거임. 무슨 내용인가 궁금해서 잠깐만 본다고 리모컨 든 채로 TV 앞에 서서 보다가 결국 앉아서 다 보고 일어남. 오호~ 이 영화 훌륭함. 막 막 아름다운 경치, 반짝반짝 윤슬, 자전거, 낭만, 철학, 문학, 여행, 우정, 의리, 삶, 죽음, 지진, 재난, 생계, 가업, 취업 얘기까지 나오구 막 막 그런게 만화영화에 다 이렇게 들어있다니, 이렇게나 자연스럽게?!!

넷플릭스에 있으면 한번 더 보려했드만 없구만..
그렇다고 돈 내고 보기는 그렇고,
돈을 쓴다면 아무튼 책을 사야겠지비?
근데 뭐 이래 많은강?
만화도 있고 소설도 있고?
음.. 고민되누만.
그렇다면은
내일 다시 생각해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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