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나는 4남매의 둘째다. 

나는 24살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내 나이 33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향년 65세.

나는 34살에 자영업자가 되었다.

나는 35살에 독립했다.

나는 40살에 여기에 왔다.

12년 전이다.


나는 46살에 떡볶이 장사를 하겠다고 가게 자리를 알아보러 갔다가 커피 장사를 시작했다. 괜찮았다. 10년 안에 땅 사서 집도 지을 거라 다짐했다. 코로나로 상황이 변했다. 너무나 빠르게 변했다. 당장 먹고 살 일이 막막하다. 묵혀둔 자격증을 들먹였다. 나는 나를 먹여살리겠다고 건축사사무소를 냈다. 


어쩌다,

내돈내산 책만 읽는 습관에,

내돈내산 밥만 먹는 습관에,

내돈내산 집만 짓겠다는 고집으로 장농면허 될 뻔하였는데, 흐흐흐, 코로나 덕분?..이라기엔 코로나, 너무 지겹다만, 하여간에 커피가 나를 먹여 살릴 줄 알았더만, 코로나가 살렸?...는지 어쩌려는지, 아무튼 사무소를 내자마자 입찰이 걸려서 일도 하나 했다. 모름지기 건축설계 이쪽은, 땅과 자본을 소유하신 지체 높은 양반네들께서 하해와 같은 은총으로 일을 맡겨주기 전에는 좀처럼 일감을 얻기 힘든 분야라는, 얄팍하지만 100년이 가도 썩지도 않을 비니루같은 선입견으로 내가 내 눈을 가리고 살아온 것을, 에효(알고보니 건축 설계도 입찰로 일을 딸 수 있었던 것이었던 것!) 이제라도 알았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좀 해보려는데, 으아, 뉴스가 뉴스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건물 붕괴, 처참한 현장 소식이 너무 자주 들린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경우를 몇 번 당해봤고, 뭐 하나, 정말 아무것도 아닌 쬐끄만 거 하나도 책임지지 못하면서 자리만 지키고 있는 경우를 몸서리치게 싫어라 하는 나로서도, 으으, 우짜까나 우짜까나, 답답해 미치겄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답답해 미치겠다 하면서도 미역국에 밥 말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책도 사고 

답은 안 나와도

그래도 또 두드려보는, 

지금은 이런게 

나다.



* 협회에서 발행하는 이번달 건축사신문을 훑어보다가 '논설위원 함인선의 건축생각'을 읽고, 이런 제안을 할 정도면 뭔가 책도 내지 않았을까 싶어 알라딘에서 검색해 보았다. 오오~ 이런 책이 나온다. 『건물이 무너지는 21가지 이유』, 당장 주문해야지. 어쨌든 뭐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자는 게 요즘 나의 생존비법(씩이나.. 필요한 시절)이다. 







「안전은 '정신승리'의 문제가 아니라 '비용'의 문제다.」라는 말을, 잊지않으려고, 늘 들고다니는 수첩에다가 꾹꾹 받아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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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7-10 15: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에고 힘내세요 ㅜㅜ
어제 아시는 사장님도 잠 한 숨 못잤다고 합니다.
거리두기 취지는 좋으나 말이 안되는 규칙들 때문에요 ㅜㅜ
힘내세요~ 다들

잘잘라 2021-07-10 16:39   좋아요 2 | URL
초딩님도 힘내세요^^
시원한 수박 한 통 사러 나갑니다.
저녁엔 얼음동동 냉면 한 사발~~

초딩 2021-07-10 18:27   좋아요 0 | URL
수박으로 건배해요~ ㅎㅎㅎ

2021-07-10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10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10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7-10 2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시골 농부의 둘째딸로 태어났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지역 신문사 수습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열 여덟 살이었다. 나이로 보면 아버지뻘인 신문사 소유주이자 지역의 유력한 사업가였던 남자가 나에게 퍼부은 애정공세를 받아들여 임신을 했지만, 그는 두번째 부인과 이혼소송 중이었고 나는 그와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아이는 낳기를 원했고, 방법을 찾아냈고, 아이를 낳기 위해 고향을 떠났다. 


스무살에 미혼모로 타국에서 아들을 낳아, 아이는 위탁 가정에 맡기고 나는 곧 먹고 살 길을 모색하였다. 직업 학교에 들어가 타이핑, 회계, 속기, 비즈니스 서신 작성법 등을 배운 것이다. 능률적이고 활기 넘치며 붙임성 있는 성격으로 나는 어떤 직장에서도 어렵지않게 적응했다. 타이핑, 속기에 능했으며 영어와 독일어 서신 작성도 문제 없었다. 


나의 매력에 빠진 남자와 스물 다섯 살에 결혼했다. 그 사이 아들은 위탁가정에서 시골 친정집으로 옮긴 상태였다. 남편은 아홉 살 연상으로, 나와 사귀기 전에는 부인과 이혼 절차를 밟고 있었다. 나는 친정부모님이 맡아주셨던 아들을 데리고 직장 상사이자 이혼남인 남자와 새로운 가정을 꾸린 것이다. 


결혼한 지 3년 만에 딸을 낳았다. 네 명의 가족이 된 후 서른 한 살 무렵 다시 종일제로 일하기 시작했다.


내 나이 33살에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나는 전쟁에 관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국가기밀 정보기관에서 편지 검열 일을 하기도 했다. 


내 나이 44살에는 아들의 아들이 태어났다. 이른바 할머니가 된 것이다. 


내 나이 46살에 남편이 죽었다. 55세, 사망 원인은 알콜중독이었다.


내 나이 55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내 나이 63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내 나이 68살에 오빠가 죽었다.


내 나이 80살에 아들이 죽었다.


나는 96살이 되던 해 1월, 잠자는 동안 세상을 떠났다.


나는 남편이 죽은 뒤로 50년을 더 살았고,

아들이 죽은 뒤로는 16년을 더 살았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 간호사 두 명과 의사 한 명, 그리고 내 딸이 그곳에 서있었다. 


결혼 전 내 이름은 아스트리드 에릭손,

결혼 후 내 이름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나는 『삐삐 롱스타킹』을 쓴 작가다.


나는 평생 사람들과 편지를 주고 받았다.

나는 매일 글을 쓰고 책을 읽고 편지를 쓰고, 이야기를 생각했다. 아직도 수없이 많은 곳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듣는다. 세상을 떠나서도 내가 살아있는 이유다.


그들에게 사랑을!

그들에게 평화를!!

그들에게 편지를!!!



1952년 11월, 아스트리드는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다. "일요일 저녁에 군보르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는 카린과 북부 공동묘지로 가서 스투레의 묘비 앞에 촛불을 켰어요. 만성절이니까요. 거의 모든 묘지마다 타오르는 촛불이 어둠 속에서 참 아름답게 빛났어요. 그리고 엄마, 난 모든 비석에 적혀 있는 비문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그들이 몇 살에 세상을 떴는지 살펴봤어요. 스투레만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게 아니란 걸 자신에게 납득시키려는 듯이 말이죠. 맙소사, 정말 많은 사람들이 너무 일찍 숨졌어요!" 

-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285p.)



날짜가 없는 1961년도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루이제, 울적하고 좌절감을 느끼면서 편지를 쓰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만 그래도 난 이 편지를 끄적거리고 있어. 너의 답장으로 위로받고 싶으니까.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뭔가 긍정적인 답을 듣고 싶어. 혹시 생각나는 게 있다면 말이지. 나는 모든 것이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 느껴져. 어쩌면 이 어두운 나라에 햇볕이 들지 않기 때문인지도 몰라."

-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446p.)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을 읽고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을 읽고 『사라진 나라』도 읽고, 읽었지만 읽고 또 읽는다.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뭔가 긍정적인 답을 듣고 싶어. 혹시 생각나는 게 있다면 말이지.'


맙소사, 정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일찍 숨졌어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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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21-07-08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잘라님 얘긴 줄 알고 몰입해 읽다가 으잉? 했잖아요~ㅎㅎㅎㅎ

잘잘라 2021-07-09 00:23   좋아요 0 | URL
붕붕툐툐님께 사랑을~~ 평화를~~~!!!
 


눈보라 치는 날 길이 얼어붙은 바사 공원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아스트리드가 발목을 삔 것이다. (중략) 의사는 뼈가 부러지지는 않았으나 발목이 나을 때까지 4주 동안 푹 쉬라고 했다. - P195

오늘로 결혼한 지 13년이 됐다. 그 옛날 얼굴을 붉히던 신부는 이제 누워 있는 신세가 돼 버렸는데, 이 생활은 확실히 금세 지루해진다. 아침마다 누군가 훈제 연어를 곁들이 빵과 차를 가져다주고, 침대도 정리해 주니 좋긴 하다. 하지만 밤이면 스투레는 옆에서 쿨쿨 자는데 나는 압박붕대 때문에 발목이 화끈거리고 가려워서 도통 잠들 수가 없다. 나는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를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삐삐 롱스타킹 이야기를 쓰고 있다. - P196

1944년 4월, 카린(딸)에게 입으로 들려주던 삐삐 이야기를 종이에 적으면서 아스트리드는 그 당시에 글을 쓸 때 일반적이던 손글씨나 타자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대신 1926~27년 스톡홀름의 바록 직업 학교에서 배우고, 여러 직장에서 변호사나 교수, 사무실 관리자들과 일하면서 익숙해진 멜린식 속기법을 활용했다. - P196

속기에 필요한 도구는 펜과 노트뿐이라서 침대에 누워서도 일할 수 있었다. 그 방식은 침대를 벗어나기 어려운 아마추어 작가가 머릿속에 들어 있는 내용을 적어 내리기에 안성맞춤이었으므로 아스트리드는 이후 작가 활동을 하면서 모든 초고를 속기로 작성했다. 그중 상당수는 침대에 누워서 썼다. - P197

1947년 12월 13일의 전쟁 일기에는 이렇게 적었다. "침대에 누워서 삐삐 3권의 내용을 몇 줄 적고 있다." 1952년 『스톡홀름스티드닝엔』 기자가 제일 좋아하는 옷이 뭐냐고 묻자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야 물론 잠옷이죠. 이제 스웨덴 사람들은 내가 너무 게을러서 침대에 누운 채 그을 쓴다는 사실을 다들 알게 되겠군요."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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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7-08 1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저 자세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 어깨 무지하게 아픈데..... 하고 저의 어깨를 두들깁니다. ㅎㅎ

잘잘라 2021-07-08 12:32   좋아요 1 | URL
어깨가 아파도 저 자세, 지금 몹시 하고 싶은 자세입니다~!!^^
 
끝과 시작 (리커버)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 대산세계문학총서 62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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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 『끝과 시작』에서,

「언니에 대한 칭찬의 말」 전문





언니에 대한 칭찬의 말


우리 언니는 시를 쓰지 않는다.

아마 갑자기 시를 쓰기 시작하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시를 쓰지 않았던 엄마를 닮아,

역시 시를 쓰지 않았던 아빠를 닮아

시를 쓰지 않는 언니의 지붕 아래서 나는 안도를 느낀다.

언니의 남편은 시를 쓰느니 차라리 죽는 편을 택할 것이다.

제아무리 그 시가 '아무개의 작품'이라고 그럴듯하게 불린다해도

우리 친척들 중에 시 쓰기에 종사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언니의 서랍에는 오래된 시도 없고,

언니의 가방에는 새로 쓴 시도 없다.

언니가 나를 점심 식사에 초대해도

시를 읽어주기 위해 마련한 자리는 아니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녀가 끓인 수프는 숨겨진 모티프가 없이도 그럴싸하다.

그녀가 마시는 커피는 절대로 원고지 위에 엎질러질 염려가 없다.


가족 중에 시 쓰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그런 가족들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결국 시인이 나왔다면 한 사람으로 끝나진 않는다.

때때로 시란 가족들 상호간에 무시무시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세대를 관통하여 폭포처럼 흘러간다.


우리 언니는 입으로 제법 괜찮은 산문을 쓴다.

그러나 그녀의 유일한 글쓰기는 여름 휴양지에서 보내온 엽서가 전부다.

엽서에는 매년 똑같은 약속이 적혀 있다:

돌아가면 이야기해줄게.

모든 것을.

이 모든 것을.



* * * 

약속 이행.

약속 이행 현장.

약속대로, 언니는 돌아와 이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었다.

이제 남은 것은 언니의 동생인 내가,

들은 이야기를 기억해

잘 살고,

다른 동생에게 엽서를 쓰고,

돌아가면 이 모든 것을 이야기해줄게, 약속하고,

약속을 지키는 일이다.

약속 이행.

멋지다.

돌아가면
이야기해줄게.
모든 것을.
이 모든 것을.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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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과 시작 (리커버)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 대산세계문학총서 62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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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두꺼운 시집. 우리집에 있는 시집은 거의다 1cm 미만인데 이건 2.45cm 정도니까 두 배로 두껍다. 두꺼워서 더 좋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 『끝과 시작』에 기대어 버티는 2021년 여름 장마철. 으아.. 비 진짜 많이 오네. 온세상 물바다. 축축하다. 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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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07-07 13: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 디자인때문에 눈길이 갑니다.

잘잘라 2021-07-07 14:10   좋아요 2 | URL
언뜻보면 작은 서랍장 같지만, 이런 저런 생각하면서 들여다보았더니 서랍식 관짝 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비가 참 많이 옵니다.

바람돌이 2021-07-07 14: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방금 천둥 번개 침요.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어요. 집에는 어이 갈까 잠시 고민..... ㅠㅠ표
이 시집 표지 진짜 좋네요., 아 저는 표지 성애자인데.... 시집은 어려워서 잘 안읽는데 말이죠. 갖고싶다 갖고싶다. 시 말고 책 표지가..... ㅎㅎ

잘잘라 2021-07-07 15:14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 집에 가시게 비야 비야 비야 오지 말아라, 장마비야 오지 말아라, 🎵🎵🎵
시도 좋아요. 아니, 시가 더, 훨씬 더 좋아요. 바람돌이님! 믿어주세요!!!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