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 속에서 살았다. 독서는 흔히 한 책을 골라서 그 속을 처음부터 끝까지 여행하는 일로 묘사되지만, 내 경우에는 그것은 물론이거니와 아예 그 속에 터를 잡고 산 책들도 있었다. 몇번이나 다시 읽었던 책들, 그러고는 이후에도 종종 그 세계에 들어가고 싶고, 그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고, 그 작가의 생각과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아무 쪽이나 펼쳐 들곤 한 책들이었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이 그랬다. 어슐러 K. 르 귄의 어시스 시리즈, 프랭크 허버트의 《듄》, 더 나중에는 E. M. 포스터, 윌라 캐더, 마이클 온다치, 어른이 된 후 다시 읽은 몇몇 동화책, 더 이전에는 문학적 가치가 미미한 숱한 소설들이 그랬다. 사방 지리를 속속들이 아는 그 영토들 속을 나는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줄거리를 알고자 딱 한 번 읽고 마는 책에서는 낯선 감각이 보상이라면, 그 영토들에서는 친숙함이 보상이었다. - P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