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거짓말 세 마디 ㅣ 네버랜드 우리 옛이야기 26
이용포 글, 김언희 그림 / 시공주니어 / 2008년 11월
옛날 어느 마을에 한 재상이 살았어.
이 재상은 백 년 묵은 여우도 속아 넘어가고,
천 년 묵은 귀신도 속아 넘어갈 거짓말을 좋아했어.
거짓말을 아무나 하나. 곰 앞에서 온몸에 꿀을 바르고
춤을 출 만큼 배짱이 두둑하고, 호랑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던
토끼를 낚아챌 만큼 꾀가 많아야 하지.
(*아무렴. 거짓말을 아무나 하나~ ㅋㅋ)
재상에게는 아끼는 딸이 하나 있었어.
마침 사윗감을 찾던 재상은
'거짓말 세 마디에 딸을 주겠노라!'
대문에다 큼지막한 방을 붙여 놓고 거짓말쟁이를 기다렸지.
딸을 준다는 말을 듣고 한 사내가 나타났는데,
오래된 똥 덩어리를 금 덩어리라 속여 팔아먹고
고양이를 호랑이 새끼라 속여 팔아먹고
꺼어억! 트림해 놓고 천둥 친다 하늘 쳐다보고
뿌우웅! 방귀 뀌어 놓고 옆 사람에게 손가락질하고
배 속에서 나 계집이요, 해놓고 사내로 태어나
자나 깨나 거짓말이요, 입만 열면 거짓말을
늘어놓는 사내였어. 거짓말이라면 자신 있는지라
대문을 벌컥 열고 재상 앞으로 나섰지.
"어디 거짓말 한 자락 들어 보세."
재상이 잔뜩 기대를 하고 사내에게
거짓말을 재촉했어.
사내는 신 나게 거짓말을 늘어놓았지.
첫 번째 거짓말도,
두 번째 거짓말도 훌륭했어.
"허허허! 거짓말 한번 푸짐하구나!"
이제 한 번만 더 거짓말을 하면 사내는
재상의 사위가 될 수 있었지. 하지만 재상은
세 번째 거짓말이 끝나기도 전에 퇴짜를 놓았어.
"듣자 하니 참말이 아닌가. 거짓말을 듣자 했지,
내 언제 참말을 듣자 했던가? 그만 돌아가시게!"
내로라하는 거짓말쟁이들이 재상의 집 앞에 몰려와
차례를 기다렸어. 거짓말 세 마디로 재상의 사위가 될 수 있다니
너도 나도 달려든 거지. 허나 재상은 두 번째 거짓말까지는
재미있게 듣고 세 번째는 어김없이,
"듣자 하니 참말이 아니가. 거짓말을 듣자 했지,
내 언제 참말을 듣자 했던가? 그만 돌아가시게!"
하고 돌려보낸단 말이야.
그러던 어느 날, 한 떠꺼머리 총각이 소문을 듣고 재상의 집을 찾았어.
"어디에 사는 뉘신가?"
재상은 총각을 훑어보며 물었지.
예의 바른 총각은 재상의 질문에 깍듯이 대답했어.
"깊은 산골에 사는 총각이옵니다."
"깊은 산골이라면 끼니도 때우기 어렵겠구나."
"아니옵니다. 사시사철 하루도 굶지 않고 배불리 먹고 있사옵니다."
"그럴 리가? 산속에 먹을 게 얼마나 있다고!"
"한나절 사냥이면 한 달은 먹고도 남을 짐승을 잡을 수 있사옵니다."
"한나절 사냥으로 한 달을 먹고도 남는다?"
"그렇사옵니다."
"어디, 그 사냥 방법이나 들어 보세."
"우선 커다란 망을 만들어 백두산 꼭대기에 올라가옵니다."
"올라가서?"
"망 속에 만리풍을 넣고 산 아래로 던지면……."
"던지면?"
"데구루루 데굴데굴 데구루루 데굴데굴 구르고 굴러서
토끼, 노루, 사슴, 멧돼지…… 짐승이라는 짐승은
죄다 망에 치여 죽사옵니다."
"에이, 이 사람. 거짓말하지 말게."
"첫 번째 거짓말이었사옵니다."
"하하하! 젊은 사람이 거짓말 한번 대단하다!"
재상은 오랜만에 한바탕 껄껄대며 웃었어.
그러자 총각은 주머니에서 대추 한 움큼을 꺼내어 재상에게 내밀었지.
"드셔 보시오소서. 아주 맛난 놈이옵니다."
"대추가 아닌가?"
"예, 그렇사옵니다. 은진미륵 덕분에 얻은 대추이옵니다."
"은진미륵 덕분에? 그 이야기 좀 들어 보세나."
"길을 가다가 은진미륵 옆을 지나는데."
"지나는데?"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이 자란 대추나무 한 그루가 서 있기에."
"하늘까지 닿는 대추나무라?"
"마침 허기지던 차에 잘됐다 싶어 따 먹으려는데."
"예끼, 이 사람, 하늘까지 자란 대추를 어이 따누?"
"막대기 끝에 갈대를 묶어 은진미륵 콧구멍을
간질간질 간질여 주었더니……."
"그랬더니?"
"에에에취!"
"어이구, 깜짝이야!"
"은진미륵이 재채기를 하니까 대추가 우두두두
열 말이 넘게 떨어졌사옵니다."
"푸하하하!"
재상은 점잖은 은진미륵이 재채기하는
모습이 떠올라 웃음을 참을 수 없었어.
"거짓말 한번 통쾌하다!"
"두 번째 거짓말이었사옵니다."
재상은 총각이 만만치 않은 인물임을 눈치채고
이번에는 어떤 거짓말을 해도 넘어가지 않으리라
마음을 단단히 먹었지.
그런데 총각이 갑자기 대청마루로 올라서더니
안방으로 들어가 벌러덩 드러눕지 뭐야.
"아니, 이런! 썩 나오지 못할까?"
재상이 버럭 소리를 질렀어.
"나가다니요. 여기가 제집이온데 어디를 가겠사옵니까?"
총각이 능청스레 대답했어.
"뭐, 뭐라? 여기가 자네 집이라고?"
재상은 너무나 어이없고 화가 나서
붉으락푸르락 어쩔 줄 몰라 했지.
총각은 재상에게 계약서 한 장을 보여 주며 말했어.
"재상 어르신의 증조할아버지와 제 증조할아버지께서 절친한 사이셨는데."
총각의 말에 재상은 하마터면 '거짓말하지 말게!' 하고 말을 할 뻔했어.
"어르신의 증조할아버지께서 제 증조할아버지로부터 돈 십만 냥을 꿔 가셨지요.
여기, 증서에 돈을 갚지 못하겠거든 집을 내놓아야 한다고 적혀 있사옵니다.
돈으로 주시렵니까? 아니면 집을 주시려는지요?"
재상은 화가 나서 소리를 버럭 질렀어.
재상이 자기도 모르게 총각의 말이
거짓말임을 인정하고 만 거야.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미 늦어 버렸지.
별 수 있나!
약속을 했으니 총각을 사위로 삼을 수밖에!
그리하여 총각은 재상의 딸과 혼인을 했지.
재상의 사위가 된 총각은 행복하게 잘 살았대.
가끔 거짓말로 재상을 즐겁게 해 주면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