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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양장) -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 이야기
설흔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평점 :
홍일점. 익숙하다. 스무 살 부터 지금까지 주욱, 내 주변엔 남자가 많다. 보통 많은 게 아니다. 아주 많다. 대학에 갔는데 신입생 50명 가운데 10명이 여자다. 그런데 그게 '이변'에 속했다. 여자 신입생은 1년에 한 두 명이 보통이고 아예 없는 경우도 많았으니까. 토목공학과는 우리 건축공학과보다 더했다. 체육대회 때 토목공학과는 여자 선수가 없어서 쩔쩔매는데 우리 과는 여학생을 빌려줄 수도 있었으니까. 이후로 여자 후배들이 점점 많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건축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거의 남자다. 일터에서도 홍일점, 밥 먹으러 가서도 홍일점, 술 마실 때도 홍일점... 지금은 그냥 일점.
집에 가면 반대다. 딸-딸-딸-아들, 그 중에 딸 둘이 결혼해서 딸-아들-딸, 딸-딸,을 낳았다. 그래서 집에 가면 늘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많다. 일터에는 남자들이 드글드글, 집에는 여자들이 드글드글. 이런 경우, 여자도 잘 알고 남자도 잘 알 수 있는 환경이라고 짐작할 수 있겠지만.. 내 경우, 이상하다. 이도 저도 꽝이다. 남자들 틈에 있을 땐 남자들을 잘 모르겠고 여자들 틈에 있을 땐 여자들을 잘 모르겠다.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는 두 남자 이야기다.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 두 남자의 글과 우정을 소재로 한다.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나는 '남자'에 대해 알게 되길 기대한다. 남자와 남자는 서로 어떻게 친해지는지,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게되는지.. 그런게 궁금하다. 꽤 오래 남자들과 일하면서도 내가 풀지 못하는 한가지가 있는데, 남자들은 결코 '협력'하려 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남자들 간에는 물론이고 남녀가 섞였을 때도 다를게 없다. 남자들 간에 수평 관계는 보기가 힘들다. 항상 위 아래가 있는 것 같다. 그게 본능이라면, 남자들 간에 우정이란 어떻게 가능한가? 이 책에서는 두 남자의 '글이 우정이 되고, 우정이 역사가 된다'고 하니 기대를 걸고 읽어도 좋지 않겠나.
결론부터 말하자. 인생은 짧으니 어찌 우정을 마다할까. 인생은 짧으나 벗이 있어 아름답다.
이옥의 글도 좋고 김려의 글도 좋다. 이옥의 아들 이우태의 글도 좋다. 우정도 좋다. 지금은 보기 힘든 우정이다. 글도 좋고 우정도 좋고 다 좋은데 책 읽는 내내 '여자는 정말 살기 힘들었겠구나, 똑똑한 여자는 더 힘들었겠구나' 싶은 생각이 떠나지 않은걸 보면 나도 어쩔 수 없는 여.자.다. (아, 이 대목에서 왜 '여자만' 장어구이 음식점이 생각나는 것이냐.) 그래서. 내가 어쩔 수 없는 '여자'라서, 사실 두 남자의 우정이 절절히 와 닿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그런 우정을 마다할 이유야 없지만, 사랑과 마찬가지로 우정도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것이니, 내가 한 쪽 역할을 해야할 것인데, 내가 나를 모르겠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 관계는 '어려울 때' 알아보는 법인데, 나는 내가 어려울 때 스스로 숨어버린다.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없다. 그래서 여태 일점, 사랑이든 우정이든 이루지 못하고 이렇게 '일점' 인가보다.
책은 재밌게 금방 다 읽어놓고 리뷰 끝이 왜 이리 칙칙한지. 에잇. 칙칙한데 별 하나 빼야겠다.
작가 의도는 성공했다. 별은 하나 뺐지만, 이 책으로 인해 나는 앞으로 이옥과 김려의 작품에 관심을 갖고 찾아볼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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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1. 본문에 언급된 이옥과 김려의 글은 『선생, 세상의 그물을 조심하시오』(심경호 옮김, 태학사 2001), 『유배객, 세상을 알다』(강혜선 옮김, 태학사 2007), 『글짓기 조심하소』(오희복 옮김, 보리 2006)에서 주로 인용했다. 「백운필」은 『고전 산문 산책』(안대회 옮김, 휴머니스트 2008)에서 인용했다. 인용된 글은 필요한 경우 부분적으로 고쳐 썼다.
2. 이우태가 읊은 글은 임광택의 「하휴행(夏畦行)」과 홍신유의 「우거행(牛車行)」이다. 두 글 모두 『조선후기 여황문학 연구』(강명관 지음, 창비 1997)에서 인용해 썼다.
3. 읽히지 않는 고전 문학은 의미가 없다. 이 글은 독자들이 이옥과 김려의 작품에 관심을 갖고 읽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집필했다. 두 사람이 쓴 작품의 실제 집필 시기와 집필 의도는 이 글에서 설명된 내용과 다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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