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시계 -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매혹적인 심리 실험
엘렌 랭어 지음, 변용란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1년 4월
구판절판


1장 시계 거꾸로 돌리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으려는 의지가 아니라 찾아내고자 하는 소망이다.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11쪽

시계를 거꾸로 돌리거나 불가피함과 싸울 방법은 없다. 시간에 잠식당하면서 우리는 나이를 먹고 젊음의 활력은 추억이 될 뿐이다. 고질적인 병이 생겨 건강과 기력을 차츰 좀먹어 갈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기껏해야 품위를 잃지 않고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일단 병이 찾아오면 우리는 현대 의학에 의지하며 끝까지 희망을 가지려 노력하지만, 시간의 행진을 막을 수는 없다. 아니, 혹시 가능할까?-13쪽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나는 이후 오랜 시간 이 문제를 두고 고민했다. 그리고 결국 선택의 힘이, 그리고 그 힘으로 인한 개인의 통제력 증가가 동일한 노인들에서 서로 다른 결과를 낳았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꼭 들어맞는 사례를 제시할 수는 없었지만, 우리는 후속 연구로 이 믿음을 입증할 작정이었다. 우리의 연구가 이루어진 시점은 훗날 '뉴에이지' 운동이라고 불리게 되는 움직임의 초창기로, 미국 내 여러 연구소에서 인간의 몸과 마음을 연구하기 훨씬 전이었다. 좀체 뇌리에서 떠나지 않으며 나를 괴롭힌 의문 또한 이때 생겨났다. '비물질적인 정신에서 물질적인 육체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의 본질은 무엇일까?'-14쪽

우리는 쥐를 보면 맥박이 빨라지고 피부에 땀이 배어 나오면서 공포의 징후를 나타낸다. 또 소중한 사람을 잃는 상상을 하면 혈압이 상승하고, 누군가 구토하는 것을 보면 욕지기를 느낀다. 이처럼 우리의 몸과 마음이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 예는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만 그 실체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실험을 직접 실시한 우리에게도, 실험 참가자들에게 단지 조그마한 선택을 내리게끔 했을 뿐인데 그처럼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 후에 나는 선택을 내리는 과정이 의식의 집중(mindfulness)을 초래함을,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무심(mindlessness)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실험 결과를 의외의 것으로 받아들였음을 깨달았다.-15쪽

나는 몸과 마음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은 개념에 불과할 뿐, 둘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 시각이 더 유용할 수도 있음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정신과 육체를 본래대로 결합하여 다시 한사람이 된다면 우리가 마음을 어디에 두든 몸도 따라가게 될 터였다. 다시 말해서, 마음이 진정 건강한 곳에 있다면 몸도 따를 것이므로, 우리는 마음을 변화시킴으로써 몸의 건강도 변화시킬 수 있다. -15쪽

이어지는 의문은 한계에 관한 것이었다. 정신이 육체에 어느 정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갓 구운 도넛의 냄새를 맡으며 그것을 먹는 상상을 한다면 혈당 수치가 따라서 올라갈까? 평소 자신의 이빨이 아주 건강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정기 건강 검진에서 이빨 엑스선 촬영 결과가 더 좋게 나올까? 젊은 나이에 대머리가 되는 사람들은 스스로 빨리 늙는다고 여긴 나머지 생리적으로도 머리숱이 많은 사람들보다 더 나이 드는 양상을 보일까? 성형 수술을 받아 매일 아침 욕실 거울에서 보다 젊어진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여자들에게는 노화가 더 천천히 일어날까?-15쪽

가능성의 심리학

나의 관심사는 늘 무엇이 될 수 있을지의 가능성, 그리고 어떤 미묘한 차이가 그 가능성을 만들어 내는지를 알아내는 데 있었다. 시계 거꾸로 돌리기 연구는 사용하는 단어에 변화를 주고, 사소한 선택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또는 물리적인 환경에 미묘한 변화를 줌으로써 우리의 건강과 행복을 어떻게 향상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사소한 변화가 큰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으므로 우리는 불가능을 향해 자신을 활짝 열고 가능성의 심리학을 껴안아야 한다. -30쪽

가능성의 심리학은 우리가 할 수 있거나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즉, 현재의 상태에서 출발하기보다는 우리는 어떻게 그 목표에 도달할지 또는 그 목표를 향해 진전할 것인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생각을 조금 바꿀 필요가 있지만 일단 잠재성을 깨닫고 나면 그리 어렵지는 않다. 가령 '시도해 보지 않는 한 알지 못한다.'와 같은 간단한 문장을 살펴보자. 모두들 사용하는 표현이지만, 이 말이 얼마나 그릇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깨닫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는 시도해 봤음에도 불구하고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시도해서 실패하는 경우에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그 시도에서 사용했던 방법이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사실 뿐이다. 여전히 우리는 그 무언가가 불가능한 것인지는, 즉 우리가 해낼 수 없는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30~31쪽

우리는 질병이나 질환에 맞닥뜨렸을 때 현 상태에 적응하는 방법을 찾는다. 하지만 가능성의 심리학에서는 단순히 적응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 상태를 개선하는 방법을 찾으려 든다. -31쪽

건강과 관련해서 가능성의 심리학을 추구하면, 바라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성과 외에도 그 과정 자체가 우리에게 힘을 준다는 장점이 있다. 자기만의 임무를 갖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고, 전반적으로 보다 긍정적인 시각을 갖도록 해 주며, 다른 사람들도 전례대로 곧 무너지고 말 거라는 생각을 갖지 않게끔 해 준다. 또한,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해 또 다른 흥미로운 점들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시력의 '한계'에 대해 탐구하면서 나는 집에서 그동안 무시하고 있던 것들을 보게 돌지도 모르고(보고자 하는 새로운 시도를 통한 '보는' 행위), 새 소파를 사야 한다는 사실이나(전에는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너덜너덜해진 모서리를 발견하게 된다거나), 수년 전에 손을 떼긴 했지만 내가 벽에 페인트칠하기를 매우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도 있다. -32쪽

2장 통제력 되찾기

의학 서적을 찾아 읽고 여러 의사의 조언을 구하면서 그의 상태는 더욱 나빠졌다. 병세의 악화는 워낙 미미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는 하루하루의 차도에서 별 차이를 감지하지 못하고 자신을 속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의사에게 조언을 구해 보면 모든 것이 매우 빠른 속도로 악화되는 듯해다. 그럼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의사를 찾아가 상담을 했다. 그달 들어서 그는 또 다른 저명한 의사를 찾아갔는데, 그 명의는 그가 처음 만난 의사와 거의 똑같은 소견을 내놓았지만 약간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번 상담은 이반 일리치의 의구심과 공포를 더 악화시켰다. ......
옆구리의 통증은 계속되었는데, 갈수록 심해져 도무지 멈추지 않을 기세였다. 입안에서 느껴지는 맛도 점점 더 기묘하게 변해 가며 입에서 뭔가 역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고, 기력과 함께 입맛도 사라졌다.
- 레프 톨스토이(Lev Tolstoi),『이반 일리치의 죽음(The Death of Ivan Ilyich)』-36쪽

의사이자 저술가인 제롬 그루프먼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의사들이 더 나은 생각을 하려면 여러분이 우리를 도와야 한다. 우리가 언제 어떻게 제대로 생각하는지, 언제 어떻게 엉뚱한 길로 빠지는지를 아는 입장에서 여러분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이끌어 주어야 한다. ......의사 노릇은 정말로 어렵다. 하지만 환자 노릇은 훨씬 더 어렵다."-40쪽

통제할 수 없는 세상과 규정할 수 없는 세상의 차이를 이해하면 중대한 이점이 생겨난다. 무언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것이 일어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일어나게 하는 방법이 아직 알려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43쪽

건강 통제하기

30년 이상 연구를 해 오면서 나는 인간 심리에 관한 매우 중요한 진실을 발견했다. 바로 확신은 잔인한 사고방식이라는 점이다. 확신은 가능성을 외면하도록 우리 정신을 고정시키고, 우리가 사는 실제 세상과 단절시킨다. 모든 것이 확실할 때는 우리가 선택할 것이 없다. 그리고 의구심이 없다면 선택할 일도 없다. 우리가 확신에 차 있을 때는 인식하고 있든 아니든 간에 세상의 불확실성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껴안아야 할 것은 불확실성으로, 건강에 대해서라면 특히 그렇다. 불확실성을 염두에 둠으로써, 우리는 선택을 내리고 자신의 삶을 통제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44~45쪽

사고방식이 우리를 얼마나 제한하는지 우리 스스로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예로, 많은 사람들이 건강에 대해 흔히 가지고 있는 믿음 몇 가지를 살펴보자.

의학계가 가장 잘 안다. 물론 의사들이 우리보다 일반적으로 건강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확실한 것은, 나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나 자신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음을 감안할 때, 우리는 자신만의 관점을 유지하면서 의학계를 이용해야 한다.

건강은 의학적 현상이다. 우리가 지나치게 의학적이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우리는 슬픔을 경험하기보다는 우울해 하고, 밤에 고민을 하느라 '꼭 필요한' 8시간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스스로 강박증 또는 불면증 환자라고 칭한다. 어떤 일을 할 때는 필요에 의해서든 의미상으로든 하지 않는 다른 일이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인데도, 우리는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대신 스스로를 늑장 부리기 선수라 여긴다. 우리는 왜 자신에게 그러한 이름표를 -45~46쪽

붙이는 것을 정당하다고 여길까? 그리고 그 대가는 무엇일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건강한 경험을 의학적인 행위로 바꾸어 왔다. 거의 모든 행동이 병적이 상태나 증후군이 되고, 도전이나 어려움은 질병이 되며, 감각은 증상이 된다. 우리는 대부분의 경험을 병적인 상태 때문이라고 귀결 지으면서, 경험에 대한 이해를 제한한다.(사실 우리는 의사들이 더 잘 알 것이라고 믿어 처음부터 이해를 거부한다.) 그리고 그 병적인 상태가 적정 수준 이상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여긴다.

건강에 대한 통제력은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이해를 포기했던 이유들을 이해함으로써 회복할 수 있다. -46쪽

의식의 집중에 대한 강연에서 나는 종종 본인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아는 이가 있는지 묻는다. 그러면 대개 건강에 자신이 있는 누군가가 손을 흔들어 관심을 집중시킨다. 그 사람이 자신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알려 주면, 나는 수치를 마지막으로 확인한 것이 언제인지 묻는다. 대답은 늘 다르지만, 보통은 최소한 한 달 전이다. 나는 이렇게 대꾸한다. "그럼 그 뒤로는 먹지도 운동을 하지도 않았나요? 이제 다시는 수치를 확인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건강한 사람으로 죽겠군요." 이러한 대꾸는 언제나 웃음을 유발하지만, 사실은 매우 진지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의학계는 우리에게 콜레스테롤 수치 같은 숫자를 알려 주고, 우리는 마치 그것이 변하지 않을 것처럼, 최소한 다시 병원 갈 때까지는 변하지 않을 수치인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건강은 과거에 맞춰 고정되거나 과거 경험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46~47쪽

진단: 출발점

수년 전에 나는 제자였던 앤 베네벤토와 함께 이름표가 능력에 대한 우리의 감각에 미치는 영향, 즉 우리가 자발성 의존(self-induced dependence)이라 부른 현상에 대해 연구한 바 있다. 이 연구에서 우리는 일련의 실험을 통해 '보조'라는 직함이 우리 능력을 명백히 깎아 먹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이로부터 추정해 보면, 우리가 스스로 의사보다 지식이 적은 환자에 불과하다고 여길 때도 같은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실제로 의사 앞에서 우리 능력은 위축된다. 통제권을 다른 이에게 넘겨주고 나면 되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 경우에도 스스로를 무능력하게 여긴다. -50쪽

건강을 효과적으로 학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의학 정보에 반응하던 방식에 의문을 품어야 한다 의사들이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의학이 절대적인 진실의 집약체는 아니라는 점, 불치라는 말은 불확실을 의미한다는 점, 우리의 믿음과 관련된 외부 세계는 대부분 사회적인 구성물이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이제 우리는 언제라도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다. -51쪽

건강을 학습하려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가르침에 마음을 열고 큰 일 뿐만 아니라 작은 일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작은 변화도 시간이 지나면 중요성을 입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 어떤 일이 가능함을 알고 있으면서도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경우는 흔하다. 가령 살을 3킬로그램 삔다고 생각하면 엄청난 일로 느껴질지 모르지만, 30그램을 뺀다는 생각에 기가 죽을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는 30그램 만큼의 치유법을 찾아야 한다.-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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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이 만나러 갑니다
김제동 지음 / 위즈덤경향 / 2011년 4월
품절


(설경구) 이 감독님은 아마 또 그렇게 찍을 걸? 사람을 쫄게 하는, 일부러 극한 상황에 몰고 가는 그런 게 있거든. 이 감독님은 또 OK를 안 하셔. 왜 안 하시냐고 그러면 세상에 OK가 어디 있냐고 하시지. '야, 된것 같다'라거나 '뭐가 더 나오겠냐' 이러시지. <오아시스> 때는 캐릭터를 개에다 비유해 설명하시더라고. '암만 때리고 발로 차도 결국 주인 눈치 보며 슬금슬금 와서 꼬랑지 흔들어. 그게 홍종두야.' 설명 정말 죽이지? (정말 죽이네..) -188쪽

(설경구) 어떤 인물에 빠져 촬영하고 나면 그 인물이 나에게 찌꺼기처럼 남아 있을 때가 있어. 그래서 작품을 할수록 변태가 되나봐. 원래의 나와 내가 연기했던 캐릭터가 버무려져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거지. 우리 어머니는 영화하면서 애 다 버렸다고 하셔. 변뎍도 심해졌고. 내가 생각해도 난 참 순한 아이였는데. 잘 모르겠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뭔가를 표현하고 사는 직업인데 정작 내 감정은 어떻게 표현하고 살아야 할지 말이야.-188쪽

ㆍ『태백산맥』을 읽으면서 한 권 한 권 줄어들 대마다 아깝다는 생각을 했어요. 5권부터는 이제 반밖에 안 남았네 싶어 불안하더라니까요. 돈이 떨어졌는데 담배 몇 개비 안 남은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조정래) 『태백산맥』이랑 『아리랑』『한강』을 쓰고 났을 때 독자들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게 공통적인 독후감이었어요. 작가의 큰 기쁨이지. 역사의 진실을 보여주려고 의도했던 건데 바람직한 결과로 나타났으니까요. 마흔에 시작해서 대하소설 세 편 끝내고 나니 60이에요. 내 중년이 어디론가 증발한 듯 허무함도 있었지만 그래도 보람이 있었지요. -193쪽

ㆍ『태백산맥』은 집필하시면서도 수많은 협박과 공갈에 시달리셨잖아요. 게다가 영화화되면서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로 고발 당하시고....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게다가 오백 몇 십 가지 죄목이라뇨?

(조정래) 사법사상 가장 긴 고발장이었다지요 아마. 검찰에서 100여 가지로 줄이기는 했지만 그 죄목 하나하나에 객관적 자료를 못 대면 처벌받는다고 했어요. 결국 100% 다 객관적인 자료를 댔고 2005년에야 무혐의가 됐지요. 그전까지 빨갱이나 사회주의자, 빨치산은 흡혈귀다, 인간이 아니다, 악마다 이렇게 가르쳤잖아요. 내가 문학을 통해 가장 강력하게 하고 싶었던 말은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 그걸 인정하고 시작하자는 것이지요. 소하와 정하섭이 연애하는 것이 『태백산맥』의 첫 시작입니다. 남로당 간부 정하섭은 이런 애끓는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죠. 소설 덕분에 악마로 생각했던 대상이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중요해요. -193쪽

(조정래) 소설가 김훈 씨는 소화랑 정하섭의 연애 이야기를 따로 놓고 보면 『춘향전』을 능가한다고 썼던 적이 있어요. 내 소설엔 여성들이 굉장히 많이 등장해요. 그건 남녀가 함께 역사를 짊어지고 간다는 의미지. 『태백산맥』맨 마지막에 누가 살아남는지 알아요? 하대치와 외서댁이에요. 마찬가지 의미죠. 그런데 이걸 독자들이 알아채주길 바라는 거지. 내가 괄호 열고 설명을 써놓을 순 없잖아요. 소설은 상징과 생략의 미학이거든. -198-199쪽

ㆍ그런데 선생님은 어쩜 그렇게 여자의 마음을 잘 아세요? 감정선을 묘사해 놓으신 걸 보면 그 사람 속에 들어갔다 나오시는 것 같다니까요.

(조정래) 문학은, 특히 소설은 인간에 대한 탐구잖아요. 인간끼리 얽혀야 사건이 생기고 그게 쌓여 이야기가 진행되는 거예요. 개개인의 마음, 미세한 차이를 다 발견해야 하는 거지. 그러려면 정말 사람마다 가진 차이를 유심히 지켜봐야 하거든요. 그래서 내가 반 관상쟁이나 마찬가지예요. 내가 쓴 세 개의 대하소설에 나오는 인물만 1200여 명인데 다 달라요. 집사람은 나더러 귀신이래. -199쪽

(조정래) 어찌 보면 이 시대가 가장 불행해요. 일본 식민지 때 타인에 의해 말을 잃어버렸는데 지금은 우리 스스로가 우리말을 천시해요. 바깥을 나가보면 죄다 외국어를 우리말 발음으로 써놨는데 이게 무슨 짓인지……. 광화문 세종대왕상 뒤에 있는 꽃밭 이름이 '플라워 카펫'이래요. 이런 얼빠진 놈들이 있나. 스스로 식민언어정책을 펼치면서 식민지를 자초하고 있다니까.-200쪽

ㆍ요즘 노래는 좀 아세요?

(신영복) 못 따라가겠어요. 노래보다 춤이 우선인 것 같기도 하고, 가사를 들어보면 대부분 인간관계가 파탄된 것 같기도 해요. 뭐더라? '네가 떠나갔을 때 내가 울고 있을 줄 알았지? 착각하지 마.' 뭐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공감은 잘 안 돼요.


ㆍ예전 노래에는 감정이입이 그대로 됐잖아요.

(신영복) 노래 없는 세월을 살면서 팝, 재즈 가사집만 봤어요. 비틀즈 노래만 해도 엄청나잖아요. 변혁적이고 깊이도 있고요.-288쪽

ㆍ『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보면서 나는 이런 세월을 견디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20년 하고도 20일, 억울하고 분하지 않으셨어요?

(신영복) 그런 질문도 들어봤죠. 그런데 어느 시대나 역사적 격랑 속에 희생된 사람이 상당히 많아요. 지금도 이집트, 리비아에서 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있지요. 크게 보면 민족의 운명 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민족, 특정인에 대한 분노는 온당치 않아요. 20년을 견디는 힘은 하루하루 찾아오는 깨달음이었어요. 그래서 그 시절을 '나의 대학 시절'이었다고도 술회하지요. 뭔가를 깨닫는 삶은 견디기 쉬워요. 감옥에서 보면 나가는 날만 기다리는 단기수들이 더 괴로워했어요. 나 같은 무기수는 시간이 지난다고 빨리 나가는 게 아니니까 오히려 하루하루가 의미가 있었어요. 우리 삶도 그래야 해요. 성과, 속도, 효율…… 뭔가에 자꾸 도달하려고 하는데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거죠. 삶과 인생에 대한 생각이 부족하다 싶어요. -288-289쪽

ㆍ함께 뜻을 모아 가면 그 뒤가 길이라는 말씀이시네요. 역사의 결정권자 역시 언제나 민중이라는 것이고요. 그나저나 선생님 말씀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늘 직접적이거나 자극적인 단어가 없어요. 그런데 어떤 격한 말보다 훨씬 깊이 와 닿아요.

(신영복) 아녜요. 제동 씨처럼 행가늬 의미를 읽어주는 분이 많지 않아요. 전 제동씨의 그런 점이 돋보인다고 생각해요. 제동 씨 <토크콘서트> 가서 얼마나 감동받았는지 몰라요. 나는 학교 선생이라 개념적인 언어를 벗어나기 힘든데 제동 씨는 내가 하지 못하는 엄청난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내더군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토크콘서트>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92-293쪽

ㆍ전에 선생님께서 자유의 의미를 말씀하시길, 자기의 이유로 사는 것이라고 하셨잖아요.

(신영복) 반 에덴이 쓴 동화 이야기를 자주 예화로 들어요. 아버지와 아들이 길섶에 있는 버섯을 가리키며 '이게 독버섯이다'라고 말해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독버섯이 충격을 받아 쓰러지죠. 옆에 있던 친구 버섯이 위로하는 말을 들어보세요. '그건 사람들이 하는 말일 뿐이야. 식탁에 오를 수 없다, 먹을 수 없다는 자기들의 논리일 뿐인데 왜 우리가 그 논리를 받아들여야 하는 거지?' 우리 자신이 갖는 인간적 이유, 존재의 의미를 가져야죠. 신자유주의적 가치와 질서에 포획당한 환경에서 투철한 자기 이유를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293쪽

ㆍ자기 이유를 가지면 개인의 삶은 어떻게 달라지나요?

(신영복) 견딜 수 있는 힘, 자기 삶을 인간적으로 살 수 있는 힘이 생겨요.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거죠. -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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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4 0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5-25 0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비 딕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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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내가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리고 혈액순환을 조절하기 위해 늘 쓰는 방법이다. 입 언저리가 일그러질 때, 이슬비 내리는 11월처럼 내 영혼이 을씨년스러워질 때, 관을 파는 가게 앞에서 나도 모르게 걸음이 멈추거나 장례 행렬을 만나 그 행렬 끝에 붙어서 따라갈 때, 특히 심기증에 짓눌린 나머지 거리로 뛰쳐나가 사람들의 모자를 보는 족족 후려쳐 날려 보내지 않으려면 대단한 자제심이 필요할 때, 그럴 때면 나는 되도록 빨리 바다로 나가야 할 때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한다. 이것이 나에게는 권총과 총알 대신이다. 카토는 철학적 미사여구를 뇌까리면서 칼 위에 몸을 던졌지만, 나는 조용히 배를 타러 간다. 이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바다를 알기만 하면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언젠가는 바다에 대해 나와 비슷한 감정을 품게 될 것이다.-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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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치핀 - 당신은 꼭 필요한 사람인가?
세스 고딘 지음, 윤영삼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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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오늘날 지도자들은 지구온난화, 사회 안전, 고갈되는 자원, 기반 시설 유지관리와 같은 것을 걱정한다. 직장인들은 노후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한다. 

  100년 전 상황은 달랐다. 그때 지도자들은 지금 우리 눈에는 정말 이상하게 보이는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공장노동자를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과잉생산을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 (64p.) 

 

20세기 들어 생산기술이 급격하게 발달하자 자본가들은 큰 고민에 빠졌다. 물건을 살 사람보다 생산한 제품이 더 많아지면 어쩌지? 이제 문제는 생산이 아니라 소비였다. 당시 보통 가정은 거의 돈을 쓰지 않고 살았다.  

  1980년대 대부분의 10대들이 옷을 사는 경우는 어쩌다 한 번 정도였다. 신문, 잡지, 책도 거의 소비하지 않았고 화장품도 쓰지 않았다. 소수의 진짜 부자들만 물건을 한가득 살 뿐이었다.  

  보편적인 교육제도의 확대가 가져온 놀라운 부산물 중 하나는 상품 소비를 뒷받침하는 네트워크 효과였다. 학교나 마을에서 어떤 사람이 차를 구입하면 다른 사람들도 따라서 그것을 산다. 어떤 사람이 더 큰 집을 갖거나 신발을 두세 켤레씩 갖고 있으면 다른 사람도 따라 하고 싶어 한다. 

  이렇게 단 두 세대 만에 소비문화는 완성되었다. 원래는 전혀 존재하지 않던 생활양식이 생겨난 것이다. 남을 따라 물건을 사는 행동은 우리가 타고난 유전적 소인이 아니다. 최근에 '만들어진' 욕구일 뿐이다. (66p.) 

 

  사람들이 스스로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표준화된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공부하고, 고개를 숙이고 지침에 순응하게 된 오늘날의 상황이 놀랍지 않은가? 수십 년 동안 학교는 우리에게 공포, 공포, 더 많은 공포를 주입해왔다. 낙제 점수를 받을까 두려워하고,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백수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낙오할까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올바른 생각을 가진 선생들은 아이들을 이렇게 가르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스템은 다른 선택을 용납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도모하는 선생은 곧바로 제지당하거나 해고당한다.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하고 힘들고 고달픈 상황에 처한다.  

  사람들에게 혁신적인 일을 하도록, 교과성 나오지 않은 통찰을 갖도록, 예술적인 활동을 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시간도 많이 걸릴 뿐만 아니라 결과를 예측하기도 힘들다. 이와 달리 훈련과 반복과 공포는 뻔한 사실과 숫자와 순응을 가르치는 데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물론 우리에게는 학교가 필요하고 선생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학교다.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가르치는 것이 목적인 학교가 필요하다. 시키는 대로 잘하고 예상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최선'의 노력과 시도를 하는 사람에게 보상하는 진정한 선생이 필요하다. (70p.) 

 

  문제는 선생이 아니다. 린치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훌륭한 선생은 많다. 문제는 그러한 예술가적인 선생을 처벌하고 관료적인 선생을 보상하는 시스템이다. 

  28대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이렇게 말했다. 

  "진보적인 교육은 한 학급으로 족하다. 이런 극소수를 제외한 모든 학생들에게 진보적인 교육을 받는 특권을 줄 마땅한 이유가 없다. 어느 사회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특정 분야마다 제각각 힘들고 어려운 노동을 수행할 수 있는 노동력을 생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핀커튼(Pinkerton)이라는 잔인한 구사대 조직을 운영하고, 프락치를 양성해 노조를 파괴하고, 민간군사 조직인 내셔널가드를 동언해 노동조합의 파업을 폭력으로 분쇄한 앤드류 카네기 역시 노동자의 불만을 해소하겠다면서 다음과 같은 제한적인 교육을 제시했다. 

  "보라. 국민으로서 첫발을 내딛는 사람들의 볼품없는 삶을 보면 나약한 정치체제의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진정한 만병통치약은 단 하나라는 결론이 나온다. 바로 교육하고, 교육하고, 교육하는 것이다." (72-73p.) 

 

모범생과 모범직장인 

"저는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니 회사일도 훌륭하게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73p.) 

 

훌륭한 선생을 찾아서 

형편없는 선생은 평생 지울 수 없는 해를 입히기도 한다. 그래서 훌륭한 선생은 소중하다. 

  훌륭한 선생들이 자유롭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숙제를 내지 않아도 되는 학교, 시험에 얽매이지 않는 학교, 잡무에 시달리지 않는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한다. 출세와 관직에만 눈이 먼 형편없는 선생들은 내쫓아야 한다.  

  허무맹랑한 이야기처럼 들리는가?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학교가 여전히 뒤떨어진 노동자를 생산하는 관료조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형편없는 선생들이 여전히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런 선생들은 우리 사회를 위협하는 존재일 뿐이다. 

  참교육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선생을 비난하지 마라. 시험을 무기로, 성적을 무리고, 입시를 무기로 끊임없이 순응하는 노동자를 양산해내는 교육시스템을 비난하라. (7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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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Q정전 문학동네 루쉰 판화 작품집
루쉰 지음, 이욱연 옮김, 자오옌녠 판화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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