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일요일들 - 여름의 기억 빛의 편지
정혜윤 지음 / 로고폴리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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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일요일 아침의 게으른 시간 속에서, ‘언제였더라! 그때 참 좋았었는데’ 하고 저절로 떠오르는 기억들, 그 기억들 속에서 근심은 힘을 잃고 사라진다. 현실의 속박들도 잠시 사라진다. 졸음 속에서 여행을 한다. 미소와 즐거운 회상, 기쁨들이 함께한다. 시들지 않는 즐거움이 함께한다. 마음은 다른 것이 아니라 다시 그런 기쁨을 누릴 수 있기를 갈망한다. 이렇게 기억 속에 떠오른 날들을 인생의 일요일이라고 이름 붙였다. (물론 일요일에 쓰기도 했지만) 덩달아 편지는 일요일의 편지가 되었다." _8쪽


"일요일에 저는 제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고 있어요. 일요일에 제 삶은 산산이 흩어지지 않고 제 안에 모여요. 일요일에 저는 상처에 붕대를 감듯 저를 아름다운 것으로 칭칭 감아요. 일요일에 저는 기억과 꿈을 연결시켜 보려고 해요. 일요일에 저는 삶의 열매를 따요." _1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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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 작가는 일요일에 글들을 썼다고 했다.

일요일이면 편지를 썼다고.

일요일을 그렇게 썼다고, 그래서 그것이 인생의 일요일들이 되었다고.

아름다운 일요일에, 나른하고 조용하게 앉아서 자기 자신의 조각들을 이어붙여가며 지난 좋은 기억들을 불러 적었다고 했다.


유럽에 여행 가고 싶다.

거기는 일요일 냄새가 나는가 보다, 좋은 글을 쓰려다가 보니 흐르는 쪽이 유럽에 여행갔던 기억들이라니.(유럽 한번도 안가봄...)

정말 진심 빈들빈들대면서 제법 오랫동안 유럽엘 가고 싶다아아아아.


"우리가 머물고 깃들 시간, 그곳에 머리를 눕히고 어깨를 기대고 싶은 시간. 야! 여기 좋다. 우리 여기서 쉬었다 가자. 여기서 좀더 머물러야겠어. 여기서 긴장 풀고 짐을 내려놓자. 크게 숨 쉬자! 이렇게 살아보는 것도 괜찮구나! 이렇게 기쁨을 느끼는 시간을, 저는 그 시간을 일요일의 시간이라고 불러요. 회복하고 건강해진 시간, 마음에 충실한 시간요. 지금 제 야망은 결코 작지가 않아요. 저는 일요일이 되고 싶어요." _22쪽


나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일요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월요일 오전이거나, 수요일 오후쯤이지 싶다.

한낮의 우울을 봐주지 못했다.

내가 그 손을 콱 움켜쥐어 주지를 못했다.


다음 일요일까지 다섯개의 밤이 남았다고 달력을 보며, 얼마나 스스로에게 수다스러워 질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정혜윤에세이 #에세이 #수필 #여름의기억 #빛의편지 #여름의기억_빛의편지 #일요일 #여행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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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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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전 시대에도 그랬듯 다 대의명분이 있었다. 그는 그따위 것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남들이 그런 것을 놓고 떠들든 말든,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하루하루를 마치는 것이었다. 그는 생존의 기술자가 되었다. 어떤 면에서는 모든 이들이 그렇게 되었다. 생존을 위한 기술자들." _12쪽


"이런 시대에 사람들은 항상 충분히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할 위험에 처해 있었다. 사람들을 충분히 공포에 몰아넣는다면 그들은 뭔가 다른 것, 축소되고 줄어든 것이 되었다. 즉, 단지 생존을 위한 기술이 되었다." _128쪽


누구든지 살기 어려운 때가 있었다, 시대가 어려운 때가 있었다.

그 어떤 인생도 평온하지 않고, 누구든 생존 자체가 고난인 때였다.

그때의 소련이 그랬다고 했다.

안다는 이유로 핍박받고, 배운 것이 죄가 되고, 예술 성향인 것이 손가락질 받는.


신부가 부모가 지어 온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 소년은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가 되어버렸다.

작곡으로 어느정도의 밥벌이는 가능하게 된 어느 날, 그가 공연하던 오페라에 혹평이 날아들었다. (공산당 위쪽 사람들의 관람이 있은 직후였다.)

이윽고 공연은 중단 통보를, 음악은 불가심의를 받게 된다.

원인도 모르는 채로, 주변의 작곡가들과 음악가들 이웃주민들이 한밤중에 끌려가서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사라진 이들은 군주주의자, 테러리스트, 간첩이라고 불릴 뿐이었다.

그는 승강장 옆에서 잠을 잤고, 작은 가방을 꾸려 두었으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그가 아는 것은 지금이 최악의 시기라는 것뿐이었다." _91쪽


"스탈린의 러시아에는 이 사이에 펜을 물고 작곡을 하는 작곡가 따위는 없었다. 이제부터는 두 가지 종류의 작곡가만 있게 될 것이다. 겁에 질린 채 살아있는 작곡가들과, 죽은 작곡가들." _75쪽


승장기 옆에 앉은 작곡가의 가방위에 먼지가 앉듯이, 그냥 저냥 음악을 만들었다.

체제를 칭송하는 체 했다.

물론 아이러니의 아이러니까지 뒤섞은 음악이었지만, 듣지 못하는 귀는 듣지 않았다.

(레닌의 신경제정책이 시행되고는 <2천억 년 뒤에 지상천국이 온다네>라는 곡을 쓰며, 그조차도 너무 낙관적이라고 자평했다.)


공포와 수치의 시대를 겪고, 살아내고, 시대의 소음을 다 들은 작곡가는 어느 새 스탈린 시대를 '살아' 온 거의 몇 안되는 예술계 인물이 되어 있었다.

새로운 시대의 소음이 또 시작되고는, 드미트리는 당의 지도자들에게 설득된다.

당의 대표해서, 나라를 대표해서 서방에 이 체제를 노래할 예술가가 그리고 연설가가 되어 주기를, 당의 사람이 되기들.


'공포의 노예'가 되어 '살 수 밖에 없었던', 시대와 장소를 잘 못 골랐던 작곡가.

'생존'에 대한 문장들이 자꾸만 손목을 잡아챈다.

그는 살고 싶었다.

결국 그는 서명을 한다, 입당원서에 그들이 쥐어 준 선언문에 연설문에 펜을 얹고 혀로 핥았다.


"갈릴레오의 시대에, 한 동료 과학자/ 갈릴레오 못지않게 어리석었다./ 지구가 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먹여 살려야 할 대가족이 있었다.// 그러나 시대마다 과시하는 방식이 있다/ 가장 고집 센 자들이 가장 똑똑하다." _216쪽


"또는 그는 인간 영혼의 파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삶은 흔히들 말하듯 들판을 거니는 것이 아니다. 영혼은 셋 중 한가지 방식으로 파괴될 수 있다. 남들이 당신에게 한 짓으로, 남들이 당신으로 하여금 하게 만든 짓으로, 당신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한 짓으로. 셋 중 어느 것이든 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하다. 세가지가 다 있다면 그 결과는 거부할 수 없는 것이 되겠지만." _239쪽


"이런 것이 우리를 위해 삶이 구상하는 비극들 중 하나일지 모른다. 늙어서 젊은 시절에는 가장 경멸했을 모습니 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_233쪽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러니한 음악으로 밖에 할 말을 못하던 사람.

소심한 반항들도 결국은, 승강기 옆에서 지새운 밤들과 동료들의 사라짐의 공포속에서 아마도 생의 의지 외에는 모든 것을 놓아버렸을 지모를 비운의 음악가.

무너져 내리고 말라죽어버린 뒤 인간의 안에서 썩어가며 풍기는 악취, 아니 환상.

 

국가는 예술가 드미트리 드미트리예비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체제의 꼭두각시가 되어버렸다.

 

실화 배경인 소설이라 더 애잔.

그때의 소련이 그랬다고 했다. 한 때의 한국이 그랬다고 했다.


#줄리언반스 #줄리언_반스 #시대의소음 #다산책방

#소설 #쇼스타코비치 #드미트리쇼스타코비치 #소련 #러시아 #국가 #체제 #소음 #시대 #작곡가 #음악가 #예술가 #냉전 #시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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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피부 여행 - 생명의 보호벽, 피부에 관한 놀라운 지식 프로젝트 매력적인 여행
옐 아들러 지음, 배명자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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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신체의 최전방, 피부. 피부에 대한 기초지식 습득에 매우 도움이 될 책.

피부 이야기가 나오면 화장품 추천인거 아니냐요?

댓츠 어 노-노.

이 책은 피부타입에 따른 화장품 추천이 전혀 아니다, 메이크업 추천은 더더욱 아니다.


태양과 세균, 바이러스, 상처 등등 스트레스로 늙어가는 피부에 대한 정보성 책이다.

독일 피부과전문의인 작가는 피부에 관한 의학정보를 말 그대로 '이보다 더 쉬울 수는 없게' 술술 풀어 놓는다.

그렇다, 모든 응용문제는 탄탄한 기초에서 그 풀이를 가져온다, 결국. Back to basic!

책의 속 표지에 리얼하게 그려진 '피부의 세가지 층' 그림이 이 책이 얼마나 베이직에 가까운지를 다시 한번 일깨운다.

아아 그랬지, 진피-표피-피하조직의 세 개 층이 있었지.

"피부는 수많은 장기 및 단기 거주 손님들에게 보금자리를 제공하고, 미생물 손님들은 감사의 표시로 문지기 역할을 해준다. 출입구를 통제하지 않으면 어중이떠중이 불청객들이 너무 많이 피부 안으로 들어올 것이기 때문이다. 문지기 미생물은 해로운 불청객을 쫒아낼 방어 물질과 긴밀히 공조해 중요한 방어 임무를 수행하고, 더 나아가 면역 체계를 단련시키는 교관 구실도 한다." _32쪽


알기 쉽고 이해하기 쉽도록 중간중간 직관적으로 그려진 일러스트들이 귀엽기까지 하다!


표피는 온전한 피부보호벽으로 존재하다가 순차적으로 사라질 운명이 대하여 감내하고 색소침착 등 피부색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기저막은  점, 기미, 상처와 흉터, 튼자국의 존재의 원천이 되며,

진피는 피부의 신경망 역할을 해내며, 땀과 호르몬 또는 체취 등의 신체분비물에 관여하고 있다.

또한 피하조직은 셀룰라이트를 비롯한 지방의 존재에 유관하다.

여기서 랜덤 질문: 여자의 셀룰라이트가 남자의 그것보다 도드라지게 시각적으로 띄는 이유는? 두구두구. 답은 책 123쪽에 일러스트와 함께 전격공개!


"행복한 사람은 스트레스호르몬 수치가 아주 낮고 맑은 피부를 갖는다. 스킨십을 하면 옥시토신이 분비되어 행복감을 준다. 말하자면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행복이 피부로 드러나고, 사람들은 그의 피부에서 행복을 본다. 그리고 이것은 나이와 상관없다." _364쪽


"삶의 많은 것이 의식 밖에 있다. 매사에 정신력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신은 신체적 증상에도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 피부는 우리에 대해 많은 것을 폭로한다. (...) 우리의 심리 상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우리가 주위 사람들에게 항상 보여주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_356쪽


피부를 맑게 행복하게 늙지 않게 보존 (또는 유지) 하려면, 햇빛과 과도한 활성산소 생산에 유의할 것!

몸과 피부를 사랑하는 방법으로 피부에 좋은 음식도 챙길 것.



사족1: 나의 행복에 대한 이슈는 부족한 스킨십이었나!!

사족2: 아 나 오늘 자외선차단제 까먹었다...😨

사족0: <매력적인 피부 여행>이라는 제목에서 매력적인 것은 피부인가, 피부로의 여행인가?? (띄어쓰기 잘 못 읽는 사람, 나)


#옐아들러 #옐_아들러 #매력적인피부여행 #매력적인_피부_여행 #와이즈베리


#인문 #지식 #피부 #여름철 #피부관리 #스트레스 #상처 #문신 #자외선 #선크림 #여드름 #지식프로젝트 #독서 #책 #읽기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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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고양이
샘 칼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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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WHAT GREATER GIFT THAN THE LOVE OF A CAT? (고양이의 사랑보다 더 큰 선물이 무엇인가?) - 찰스 디킨스" _37쪽


#샘칼다 #그남자의고양이 #그_남자의_고양이 #CatsandMen #북폴리오


그림만으로도 위로.

급 고백, 나는 랜선집사/종이집사다.

마음과 눈동자가 피투성이라고 느껴질 때는- 고양이 이미지를 무한대로 검색한다.


그대들은 그 눈길로 나를 쳐다봐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야.

한겨울에는 고양이 사료를 한봉지씩 들고 다니기도 했다.

날이 따뜻하다면 어떻게든 살아남을 아이들이 추위에 굶고 다닐까봐.

몇 년전엔가는 산고양이가 공동육아를 요청해 왔는데, 차마 해주지 못한 일도 있다.

(실은... 나는 실은 동물털 알러지가 있어.)


그리고 마침내는 캣맨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은 작자(?)들의 이야기, 이 책을 손에 넣었다.


"수많은 세대의 앞서가는 남성들은 고양이라는 종에 이끌려왔다. 우리는 연대의 의미로 주홍 글씨를 자랑스럽게 단 채, 고양이를 키우는 미친 남자로서 고양이를 사랑하는 자매와 함께 선다." _1쪽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차마 밝히지 못하고 슬쩍슬쩍 밖을 훔쳐보며, 스스로의 이미지를 이해하려 애쓰는 남성들이 너무 많다. "이게 정상일까?", "내가 괴상한가?", "네 친구와 가족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두려워 마시기를, 이 책 속에는 당신의 친구가 많다." _3쪽


나는 이토록 아름답게 수 놓여진 주홍 글씨를 본 적이 일찍이 없었다.

정말이다.

10세기 웨일스의 왕, 13세기의 술탄으로부터 시작된 캣맨의 역사는 우리가 아는 마크 트웨인 (작가), T.S.엘리엇 (시인), 칼 라거펠트 (디자이너),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가) 등등등을 비롯 끝도 없이 이어진다.

(상기의 순서는 책의 컨텐츠의 차례 중 내 눈에 띄는 것 위주로 나열함)

아,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도 캣맨이지!! (찡찡이의 집사)


어떤 이는 고양이 작명에 대한 시를 썻고, 고양이 사진집을 냈으며, 고양이를 두번째 부인으로 삼고 싶어 한 이도 있었다고 한다.

아무튼간 그 고양이에 대한 애정들이 뚝뚝 떨어진다.

거기에는 작가의 일러스트- 남집사와 고양이의-가 그 애정도를 더한다.

...작가도 최소 캣맨.


"나는 독서를 사랑했다. 음악 듣는 것을 사랑했다. 그리고 고양이를 사랑했다. 이 세가지. 그래서 나는 외동아들이었지만,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알았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_87쪽

 


 

그야말로 냥밍아웃의 교본이자, 고양이의 능력찬사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겠다.


#냥밍아웃 #고양이 #고양이책 #그림책 #일러스트북 #아트북 #일러스트레이션 #읽기 #독서 #캣맨 #찡찡이 #대통령


어제는 피투성이가 되어서 고양이를 수십장 찾아봤다.

나 역시 누군가가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친구가 되리라.

고양이는 위로, 고양이는 영감, 고양이는 희망, 고양이는 사랑, 고양이는 순수...

주문처럼 웅얼거리며, 수도 없는 고양이 움짤을 봤다.

그리고 이 책의 일러스트들을 다시 훑었다.


고양이가 언젠가는 세상을 구원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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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없이 어찌 내게 향기 있으랴
도종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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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도종환 #너없이어찌내게향기있으랴 #RHK #알에이치케이


"오늘 내가 한 그릇의 우동을 다 먹지 못하고 가는 게 하나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다 먹고, 다 누리고, 다 쓰다 가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생은 언제든지 다 하지 못한 것이 남아 있는 채로 마감될 것입니다. 주어진 만큼 살다가 가는 것입니다. 내 앞에 차려진  밥상을 다 먹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내 욕심입니다. 생의 다른 열차를 갈아타야 할 때가 오면 내가 하던 일, 내게 주어진 역할, 내가 다 마치지 못한 책을 남겨 두고 우리는 가야 합니다. 다 채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조금 남기고 가도 큰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_46쪽


나는 고전적 의미의 수필을 좋아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그치만 다른 누군가도 충분히 겪었을 만한 경험을 놓고, 자신만의 체험감상(이라고 쓰고, 일상에서의 찰나의 깨달음이라고 읽는)을 덧붙이는.
현실에서 형이상학적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쓴, 그런 글들을 아낀다.

딱 교과서에서 배웠을 법한 그런 고정적이고 고전적인 양식의 글.
박지원의 산문집 <그렇다면 도로 눈을 감고 가시오> (학고재)을 애정하는 까닭도 그 이유다.


그러니까, 누구나 일상을 겪는다.
생활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공감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생각을 깨는 도끼가 되기는 어렵지.


시인의 산문집이 그래서 좋았다.
고리타분하다고 할지로 모르겠다.
어떤이는 '뭐 이리 교훈을 주려고 하냐, 하나하나에 뭘그렇게 저자는 감탄하고 심화하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요즘의 산문집들과는 조금은 다른 이 냄새가 굉장히 즐거웠다고 말하고 싶다.
조금은 낡은, 그렇지만 먼지 냄새는 또 아닌, 두꺼운 냄새.


"여러분도 여러분의 마음을 집으로 데려오세요. 고요한 거처로 마음을 불러들이세요. 밖으로 떠돌며 정처 없이 헤매는 마음을 마음의 거처로 불러들이세요. 잡을 수 없는 것을 붙잡고 지키도록 끌려다니는 마음을 풀어주세요. 그리고 쉬게 해주세요. 가장 편하게 쉬면서 가장 깊어지게 만드는 곳이 어디인지 그곳을 찾으세요." _92쪽


비 온 뒤 산사에서 새벽, 그런 것들을 풍기는 산문집을 잘 읽었다.

겪음의 끝에서 시인이 찾아낸 도끼같은 날카로움을, 우리는 차라리 읽음의 끝에서 욕심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었다.


그리고 굳이 사족같은 말을 더하자면, 시인이라 역시나 글 자체가 예쁘다.


"은빛 달도 고요히 떠 있고 바람도 숨을 가만가만 내쉬고 있는 새벽입니다. 차가우면서도 고요한 겨울 아침 풍경을 새들도 가만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저 새들이 머지않아 어둠의 얇은 막을 부리로 쪼아 터트릴 것입니다. 금이 간 어둠 사이로 천천히 빛이 스며들어 번지고 새소리가 그 틈새로 울려 나올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날이 시작될 것입니다." _124쪽


#수필 #산문 #도종환산문집 #꽃 #향기 #숲길 #위로 #읽기 #책 #책읽기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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