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담배
짐 자무시 감독, 이기 팝 (Iggy Pop) 외 출연 / 영화인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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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자는 일이 그다지 많지는 않다. 그런데 이 영화는 자느라 3번 만에 간신히 다 볼 수 있었다. 중간 중간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버려서 뒤로 감아서 다시 보고, 뒤로 감아서 다시 보고, 2배속으로 보다, 4배속으로 보다...한번 더 누르니 100배속이 나오더라. 하하하...난 100배 속 기능이 DVD에 있는 줄 오늘 처음 알았네. 하여간 그런 기능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절대 절대 다 볼 수 없었을 영화!  기대 많이 하고 본 영화인데, 내가 그럴 줄은 정말 몰랐다. 하지만 영화가 졸리게 하는걸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나도 자고 싶진 않았단 말이다. 하여간 왜 이렇게도 지루하던지...만일 내가 제작자라면 , 절대 이 감독에겐 돈 줘가면서 영화 찍으라고 안 할 거라는 결심을 하기에 충분한 영화였다. 뭐, 예술 영화가 내 취향이 아니여서 그런가는 모르겠지만서도 말이다.


내용은...? 언급할게 없고.

빌 머레이 보려고 본 영화인데, 빌 머레이 마저도 있으나 마나한 본인 역으로 잠깐 나올 뿐이었다. 영화관에서 봤다면 진짜 억울해 했을 것이다. 팝콘이 아니라 의자를 집어 던졌을 지도...9년전 영화인데, 로베트로 베니니 정말 어려 보이는 구나. 역시 남자는 머리가 있어야 하나보다. 이기 팝 아저씨는 볼때마다 느끼는 건데 , 아무런 분장이 없어도 마약 중독자 같다. 그건 어떻게 교정이 안 되나? 아니면 진짜 마약 중독자? 케이트 블란쳇은 연기를 잘 하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나오는 역마다 어째 밥 맛 없는 여자로 나온다는 거지. 인상이 너무 쎄서 그런가? 이젠 얼굴만 봐도 질린다. 좋은 역도 좀 맡아 주셔요 라고 부탁하고 싶었다.

나 커피광이고, 담배는 안 피우지만, 이 영화를 보고 있자니 담배 안 배우길 잘 했다 싶었다. 커피 마시면서 담배 피우는게 별로 멋있어 보이지도, 맛있어 보이지 않아서다. 물론 애연가들에겐 그림만으로도 환상적일 수도 있겠지만서도, 내겐 맛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더라. 대신 세상 다 산 듯한 허무함은 느껴지던데, 둘을 함께 안 해봐서 모르는 것일까? 하여간 커피 하나 마시면서 그렇게 세상 끝간 데 다 간 표정을 짓는 것들이 이해가 안 갔다. 도무지 왜 그래야 하겠는가. 그저 커피 마시는 것 뿐인데. 안 그래?


거기에 배경에 불과해야 할 커피와 담배가 주연으로 나오니 그들이 조금은 어색해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난 이런 연기 진짜 떨려요. 내가 잘 하고 있나요? 어색하진 않구요? 라고 커피잔이 외치고, 담배 연기들이 물어보는 듯했어. 화면속에서 어색한 나머지 벌벌 떨고 있는 연기자를  발견하게 되면 말이지 , 일단 공감이 어려워진다. 가공이라는 생각이 퍼뜩 드니까. 그런 점에서 커피를 침묵하게 하고, 담배를 떨게 만든 이 영화, 난 반대하고 싶다.


하~ 뭐, 다른건 다 그렇다고 치고, 그런데 이 영화가 코디미라네? 하하하.....이게 코미디라는게 어쩜 코미디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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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라이 픽션 - [초특가판]
나카노 히로유키 감독, 카자마 모리오 외 출연 / 드림믹스 (다음미디어)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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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배속으로 보다, 결국 4배속으로 봤다. 그럼에도 어찌나 느린지 4배속이 안 되는 줄 알았다. 이걸 진짜로 봤다면 아마 굉장히 지루해서 포기했을 듯 싶다. 사무라이들이 칼을 들고 설치긴 하는데, 그다지 무섭진 않다. 오히려 코미디풍을 약간 가미한 탓에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흥미로운 것은 코미디풍을 가미했는데도, 별로 웃기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 알 수 없는건 어디선가 이 영화를 본 듯 싶다는 것이다. 분명 처음 보는 영화인데도...아마 내가 여지껏 본 사무라이 영화들의 짜집기라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사무라이 영화라면 나올만한 클리쉐들이 쉴새없이 나오니 말이다.

당해낼 자가 없는 무사의 출현, 그의 주변은 늘 쉼없이 일이 꼬이는 바람에 시체들만 양산이 되고, 결국 그는 영주의 보검을 들고 튀기에 이른다. 가신의 멍청한 아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 하는 바람에 친구들이 죽어 나가고, 그 아들은 친구의 죽음을 복수하겠다면서 박박 우겨댄다. 그런 멍청한 친구를 말려대면서 생명은 소중한 것이여를 외치는 숲속 은자와 그의 양딸. 결국 은자는 무사를 처지하고, 멍청한 아들은 양녀와 결혼을 한다는 그런 이야기. 정말 너무 뻔해서 헛웃음이 나올 지경. 그나저나 난 왜 이 영화를 끝까지 본 것이냐? 라고 나에게 묻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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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두번째 무라카미 라디오 무라카미 라디오 2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 / 비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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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의 기분에, 바다 표범의 키스" 라니....책을 펼치기도 전에 호기심이 생긴다. 도무지 어떤 내용이길래 저런 제목이 붙었을까 하고. 설마 아무런 연관도 없는데, 제목을 멋지게 지으려고 쓴건 아니겠지? 라는 의구심도 없진 않았는데, 읽어보니 그런건 아니였다. 진짜로 채소의 기분을 궁금해 하고, 바다 표범의 키스에 대해 말하는 내용이 있었으니 말이다. 그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더라면, 절대 궁금해 할 생각이 없는 내용인데도, 하루키상이 말씀하신다고 또 솔깃해 하는걸 보니 우습다. 사실 대단한 재능이긴 하다. 그렇게 설득력 있기도 쉽지 않으니 말이다. 너무 잘 하니까 얄미울 정도다. 물론 만약 이런 말이 그의 귀에 들어간다면 그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 나를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라고 하실지도 모르겠지만서도. 하여간 나, 이 작가 별로 사랑하고픈 마음은 없는데도, 새로운 책이 나왔다고 하면 여전히 궁금해 하는건 왠지 모르겠다. 모른 척 외면을 하고 싶어도 눈길이 간다. 특히나 저런 제목을 단 책이라면...아마 저자가 하루키 상이 아니라고 해도 호기심이 생기긴 했을 것이다. 어딘지 산뜻하지 않는가? 범상찮은 제목이다. 그나저나 저런 작명 센스는 도무지 어디서 나오는걸까? 나이가 들어도 감각만큼은 변함이 없으신 모양이다. 근  30년동안 문학계를 뒤 흔든 작가 답지 않은가. 그의 소설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말을 하긴 해도, 그가 글을 잘 쓴다는 점에서만큼은 나도 이의가 없다. 


무엇보다  그의 글은 선동적이다. 독자로 하여금 몰입을 하게 하는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일례로 난 양배추 샐러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 사박사박 실처럼 가늘게 썰어서 사발에 수복하게 담아놓고 혼자서 그걸 다 먹어 버린다'는 문장을 읽고 있노라면 갑자기 이 세상에서 양배추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같이 느껴진다. 그는 전혀 설득하고픈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나혼자 설득이 되어서는 난리 부르스다.  그가 교주거나 광고쟁이가 아니라는건 얼마나 다행인지...그의 재능이 세상에 나쁜 쪽으로 쓰였을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니 말이다. 어쩌면 그가 자신의 재능을 글에만 한정한 것은 지극히 감사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서론이 길었다. 뭐, 걱정하실 필요는없다. 어차피 본론에 나가야 할 내용이 그다지 길지 않으니 말이다. 이 책은 저자가 <1Q84>를 끝내고 난 뒤, 심신이 지친 마음을 달래고자, 오랜만에 에세이를 함 써봐? 라는 생각으로 집필하게 되신 거라고 한다. 제목을 <두번째 무라카마 라디오>로 해서 1년간  <앙앙>이란 잡지에 연재한 것인데, 어깨에 힘빼고, 편안하게 쓴 것이니 그렇게 봐달라고, 특별히 주문하신다. 읽어보니 진짜로 그래 보인다. 일단 < 앙앙>이란 잡지가 십대에서 이십대 여성을 겨냥한 것이다 보니, 눈 높이를 위해서라도 심오하게 쓰면 안 됐을 것이다. 길이도 짤막짤막, 어려운 단어도 없고, 그냥 신변 잡기 정도의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그런 이야기들이 주야장천 이어진다. 작가가 에세이가 굳이 무거워야 할 필요 있냐고 물었듯이, 이건 그냥 미장원에서 머리 하면서 기다릴 때, 아무 생각없이 페이지 휙휙 넘기면서 읽기에 딱인 그런 글들이다. 머리를 오래 굴리지 않아도 그냥 감각적으로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는 그런 글들, 머리속에 잔상이 오래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없진 않지만, 실은 읽고 나면 아쉽게도 남는게 아무것도 없는 그런 글 말이다. 해서 하루키 상의 에세이를 좋아하시는, 특히 <먼 북소리>정도의 퀄리티를 기대하셨던 분들이라면 기대를 내려 놓으심이 좋을 것이다. 아니면 책을 내려 놓으시거나. 그의 감각이나 탁월한 안목,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리게 할 줄 아는 능력, 그렇게 성공했음에도 나는 여전히 마이너리티라고 주장하는 것만큼은 여전했지만서도, 저자가 서론에서 밝혔듯이, 이 책은 가볍게 읽으라고 쓴 에세이다. 작가가 그렇게 말했음에도 뭔가 심오하지 않다고 불평 불만을 터뜨린다면 그건 본인의 독해력에 문제가 있는 거겠지. 그럼에도, 작가가 무라마키 하루키다. 아무리 가벼워도 읽을만은 할거란 뜻이다. 신변 잡기라고 해도 흥미롭게 들려오는 부분이 있을 것이고, 그가 워낙 보통 사람과는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그의 시야에 잡힌 세상을 엿보는 부분도 분명 재밌긴 하다. 한마디로 설렁설렁 가볍게 읽기 좋은 수필집이다. 저자가 무게 잡지 않고 썼기 때문에 독자 역시 무게 잡고 읽을 필요가 전혀 없는...어찌보면, 이 짜증나는 여름, 아무것도 읽히지 않는다고 고민이신 분들에겐 안성맞춤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술술 읽히니 말이다. 노고가 필요없는 독서가 필요하다시는 분들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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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앤디 워홀을 너무 빨리 팔았다 - 예술가, 컬렉터, 딜러, 경매회사, 갤러리의 은밀한 속사정
리처드 폴스키 지음, 배은경 옮김 / 아트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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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미술계에 뛰어든 저자는 12년간의 집념 끝에 2002년 오매불망 갖고 싶어하던 앤디 워홀의 작품을 손에 넣는다. 안목은 있으나 가난한 (여기서 가난함은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비교우위를 말하는 것임.) 미술상인 그로썬  대단한 쾌거요 자부심이었다. 좋은 작품을 알아보는 눈이 있다해도, 돈이 없기 때문에 늘 구경꾼이나 중계꾼에 머물러야 했던 그가 드디어 주인공이 되는 기회를 잡은 것이니 말이다. 돈 대신 집요한 끈기와 기회를 포착하는 순발력으로 앤디 워홀의 작품을 얻게 된 것이라는걸--다른 말로 고생 고생해서-- 잘 알고 있던 그는 어떤 작품보다 그 그림에 애착을 갖게 된다. 절대로 팔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하던 그는 뜻밖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쇼핑에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는 여자와 재혼을 했더니만,  생각지도 못한 재정난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결혼을 살리느냐 그림을 파느냐의 갈림길에 서게 된 그는 일단 결혼이라도 살려 보자는 심정으로 그림을 팔기로 한다. 마침 미술 시장은 회복세의 기세를 넘어서 호황의 기미를 보이고 있었고, 무엇보다 앤디 워홀의 그림들이 상종가를 치고 있었다. 경매 시장에서 자신이 기대보다 더 높은 가격에 팔게 된 그는 최고가에 팔았다는 사실에 안심을 한다. 그림을 떠나 보내는 섭섭한 심정을 뒤로 하고, 자신이 산 가격보다 7배나 되는 가격에 팔았다는 사실에 저으기 만족했던 그는 그 이후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한다. 자신이 팔 당시 37만 달러였던 작품이 2년 뒤 240만 달러가 되는걸 지켜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30년간 미술 시장에 몸을 담고 있었던 그로써도 전혀 예측을 할 수 없었다던 미술 시장의 광풍기, 과연 2000년대 중반엔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왜 갑자기 그림들의 가격은 그렇게 비싸진 것일까? 거기엔 모종의 그럴듯한 설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라면서 저자는 곰곰히 그 시절을 회상한다. 그렇다면 과연 그림들의 가격이 그렇게 천정부지로 뛰어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그 때가 미술계가 노골적으로 미술 시장으로 변화한 시기라고 진단하면서, 그림=예술성=돈으로 환산되는 과정들을 한편으론 흥미진진하게 다른 한편으론 가슴 아프게 지켜 보는데...


가난하지만 안목은 있다.= 좋은 그림을 보는 눈은 있지만 그걸 살 수는 없다로 귀결된다. 아마도 거기에 이 저자의 비극이 내재해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걸 알아봐도, 그게 내 소유가 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니 말이다. 쉽게 말해 그림의 떡이다보니, 아무리 바라봐도 배가 부르지 않다. 해서 처음 ' 열심히 일하면 나도 언젠간 저런 그림을 소유할 수 있을 것' 이란 기대로 미술 시장에 뛰어 들었던 저자는 점차 현실의 가혹함을 깨닫게 된다. 미술 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안목이 아니라 자본력이라는 것을 말이다.  돈이 재주를 부리고 , 돈이 돈을 불러 들이는 광경들을 목격하면서 저자는 점차 지쳐 가기 시작한다. 아무리 그가 노력을 한다고 해도 따라가기는 커녕, 소외감만 더 커져갔기 때문이다. 물론 그도 한때는 안목도 없고, 무식하고, 속물 근성에, 괴팍한 성격, 그림을 예술 작품이라서 사는게 아니라 단순히 돈을 쓸데가 없어서 사는 사람들에 대해 냉소와 비판의 칼날을 겨누었었다. 아마도 그땐 그가 아직도 "언젠가는..." 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시절이리라. 하지만 점차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게 되면서 그는 인정하게 된다. 그가 아무리 그들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해도 작품을 소유하는 것은 그가  아니라 그들이라는 것을. 거기다 그의 기를 더 꺾어 놓는 진실이 또 하나 있었다. 그가  작품을 소유할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그 자신이 속물에 허영덩어리였기 때문이었다는 것 말이다. 가식덩어리에 그림에 대한 이해가 전무했던 여자에게 빠지지 않았더라면, 적어도 앤디 워홀의 작품은 그의 손에 남아 있었을테니 말이다.


그는 이제 인정한다. 그가 다시 앤디 워홀의 작품을 손에 넣기란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가격이 너무 올라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지경에 올랐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아직도 부족하다는 듯 부자들은 날마다 돈을 싸들고 최고가 가격 경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뒤에 붙은 동그라미를 세는 것만으로도 지쳐 버리는 숫자들로 말이다. 그런 사태를 씁쓸하게 바라보면서, 저자는 그런 광풍이 미술에 대한 대중성과 낭만을 없애 버렸다고 한탄한다. 미술 시장이 부자들의 투자 수단 내진 돈 잔치의 장이 되어 버리면서 그림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묻는 사람조차 없어 지게 되어 버렸으니 말이다. 


결국 그에게 남은 것은 작품이 아니라, 아내와 이혼을 한 뒤, 앤디 워홀을 팔았던 것을 처절하게 후회하게 된 과정들에 대한 기억들 뿐이란건 아이러니 하지 않는가. 30년간이나 미술계에 몸 담은 사람으로썬 허망한 현실일 것이다. 호사다마라고, 그는 그 비통한 심정을 억누르고 회한에 찬 그 3년간을 기록해 나간다. 그것이 바로 이 책<나는 앤디 워홀을 너무 빨리 팔았다.>이다. 전작의 신선함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필력만은 전작 못지 않다. 유려하게 이야기를 엮어내는 솜씨는 여전히 녹슬지 않았다는걸 보여주고 있었다. 해서 재밌게 쉽게 쉽게 읽힌다는 점이 장점. 내부자의 시선에서 보통 사람들은 접근하기 힘든 미술 시장의 면면들을 보여준다는 점도 흥미롭고, 미술 시장이 아직도 보통의 계약서가 아닌 구두와 신용으로 진행되며 거래된다는 등 소소한 정보들을 알게 되는 점도 좋았다. 그렇게 거액의 돈이 오고가면서 거래 방식은 여전히 전근대적인 방식을 따르고 있다니, 지금보다 소송이 많이 일어나지 않는다는게 놀라울 뿐이다. 그외에 그의 시선에 잡힌 미술계의 잡다한 뒷담화들도 흥미로웠다. 기업인화 되어가는 현재 유명 화가들에 대해 그만의 견해들을 살짝 들려 주던데, 다른 사람들에게선 듣지 못했던 이야기라 신선했다. 이 양반, 다른건 몰라도 미디어에 의해 조장된 환상이나 신화를 까뒤집는 면에 있어서만큼은 알아줘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미술계의 뒷담화론에 그칠 수 있는 책을 절묘하게 품위있게 살려 내는 것이 바로 그의 미술에 대한 통찰력과 지식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만만하게 볼 수 없다는 뜻. 어쨌거나 현재의 미술계의 흐름에 대해 저자 역시 잘 적응이 되지 않아 보이는 뉘앙스엔 안심도 되더라.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싶어서 말이다. 그렇게 장점이 많은 책이긴 했지만 다만 단점이라면, 저자의 두번째 작품이 되다보니, 저자가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보단 그에 대해 잘 알게 된다는 것이 별로였다. 그에 대한 매력이나 환상이 깨지는 기분이였다고 할까. 전편에서 저자 자신이 누구보다 속물을 혐오하는 모습에 통쾌해 했었는데, 들어보니 그가 미술계에 발 담게 된 이유도, 여전히 그들에게 빌붙어 사는 이유도 그 자신이 속물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추측은 나를 씁쓸하게 했다. 그 역시 땀 흘리지 않고 돈 벌고, 거들먹거리며 살고 싶어 미술 시장에 뛰어든 불나방에 지나지 않았다. 하긴 누가 그렇지 않겠는가 만은...아마도 그런 자신의 모습을 인정한다는 것이 본인으로써는 무척이나 자존심 상하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그가 성공한 분야가 미술계가 아니라 출판계라는 것은 얼마나 특이한 반전인지. 아마도 그는 자신의 재능을 잘못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잘 하는 분야와 하고 싶은 분야가 다를때도 얼마든지 있는 것이니 말이다. 어쨌거나 탐욕스런 미술시장에 숨막혀 하던 그가  미술에 대한 애정을 되찾는 모습이나, 드디어 허영기없는 여자를 만나게 되는 것등은 조금은 안심이 되는 대목이었다. 추세로 보건대, 아마도 다음번엔 파는 과정이 아니라 무언가 사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로 책을 내지 않을까 예상을 해보면서...하지만 리처드 폴스키님! 제발 다음엔 앤디 워홀 이름은 제목에서 빼 주셔요! 이미 당신은 앤디 워홀을 너무 우려 먹었으니 말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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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4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24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7-24 1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요통 탐험가
다카노 히데유키 지음, 박승희 옮김 / 부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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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만 봐도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난다. 저자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지는, 오죽 아팠으면 책까지 썼을까 걱정하게 만드는 그림이다. 파란색으로 눈물 한방울까지 그려 넣었던데, 사실적이라고 마구마구 우기고 싶은 그림이었다. 아마도 다카노 히데유키 자신도 이 표지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을지...딱 그만의 엉뚱함이 살아있어서 말이다. 일본 원본에는 어떤 표지가 쓰여져 있는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한국판이 더 맘에 들어 했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요통을 그려낸 내용이라는 것을 짐작하기에 충분한 표지였으니 말이다. 그림만 봐도 웃긴다는 것도 작가의 성향과 무관하지 않고...


음. 표지에만 이렇게 찬사를 보내면 곤란한데 말이다. 이 책은 표지를 그린 올드 독의 정 우열님 책이 아니라 다카노의 책이니 말이다.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되지 싶어서 얼른 급하게 내용으로 선회해 보자면...글쎄. 전 세계 오지를 오지랖 넓게 종횡무진하고 돌아다니셨던 다카노가 요통에 걸리셨다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오지 탐험가인 그가!  무식하게 몸 하나 굴린 댓가로 얻어낸 글로 먹고 살아가시는 분이란걸 익히 아는 독자로써 걱정이 앞설 수 밖엔 없었다. 하지만 뭐, 암도 아니고 고작 요통이라는데,  그럭저럭 알아서 고치겠지, 현대 의학이 이처럼 눈부시게 발전했는데, 요통 하나 못 고치겠는가 했건만, 문제는 그렇지가 못하더란 것이다. 한국보단 의료 시설이 더 나을 것 같은 일본에서, 그것도 불치병도 아닌 요통때문에, 그래도 비교적 배웠다는 다카노가 이렇게 시간을 하염없이 낭비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이탈리아 영화인 <나의 즐거운 일기, Caro Diario, Dear Diary> 에 보면 감독인 난니 모리티가 피부병으로 고생하다 결국 1년 반만에 암이라는걸 알게 되는 과정이 나오는데, 이게 남의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카노 역시 단지 요통 때문에 별별 곳을 다 전전하고, 별별 진단을 다 받아보게 된다. 그가 요통때문에 지난한 1년 8 개월의 지루한 세월을 보내게 되었을 줄 그 누가 알았으리요. 그런데 더 놀라운 점은 그 소동을 겪었음에도 그가  끝내 왜 자신이 요통을 앓게 되는지 병명조차 알아내지 못했다는 것! 와 ~~ 정말 할 말 없게 만드는 현실이다. 사이비 치료원에서, 접골원, 카리스마 치료사, 정형외과, 동물병원장, 야매 침술사, 심지어는 당신은 전혀 아픈게 아니라 꾀병일 뿐이다라고 다그치는 심료 내과까지 고루 고루 섭렵해 주었는데도, 자신의 병명조차 알아내지 못했다니 말이다. 적어도 우리나라는 이 정도는 아닐거야라고 생각하고 싶었지만서도, 모르지. 내가 요통을 겪어본 것이 아니니 말이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요통치료계를 전전하게 된 다카노가 자신의 생생한 치료 경험을 늘어놓고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그는 자신을 요통이라는 밀림에 갖혀 방황하는 탐험가로 그려내고 있더라. 앞 날이 불투명한 투병 생활을 밀림에 비유하고 자신은 그것을 헤쳐 나가려 노력하는 탐험가로 그린걸 보면 직업 정신이 대단하신 분은 틀림없이 싶다. 그런데 슬픈 것은 우스개 소리라고 자신을 요통 탐험가라 이름 붙였지만서도, 실은 요통을 치유하기 위해 전전하는 과정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다카노는 유머 감각이 워낙 출중하셨던 분이니만큼  이런 기나긴 투병생활에도 지치지 않을 수 있었겠지만서도, 일단 아프기 시작하고,  평소엔 알지 못했던 상황들을 겪고 헤쳐 나가야 하는 상황에 몰리면, 다들 억울하고 분하고 기 막히고 짜증나고 당황하고 식겁하고 서럽고 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리곤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안 아픈게 최고라는...아픈 걸 당해낼 장사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해서 명랑한 목소리로, 이런 저런 대접을 받았다네 라고 투덜대는 그가 내내 안스럽게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투병기는 원래 아무리 잘 쓴다고 해도 그 억울함을 감출 수는 없는 것이니 말이다.


그나저나 리뷰가 한국어로 작성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안심이 되는지... 왜냐면, 이 책을 읽어보니 이 양반, 인터넷 리뷰에 약하시단다. 약간의 부정적인 평에도 금방 주눅이 든다고 하시던데,  그걸 보곤 내가 일본어를 못하는게 얼마나 다행이냐 싶었다. 나, 이 작가, 다카노 히데유키를 격하게 아끼는 독자다. 그런데 아무리 그를 격하게 아낀다고 해도, 이 책은 다른 책에 비해 약했다는 점에서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미안하다. 하지만 약한걸 어쩌란 말이냐 ! 당신이 아무리 노력을 하고, 날고 긴다는 작가라고 해도 모든 작품에서 성공할 수는 없지 않은가. 너무 실망하지 않으셨음 하고, 그보다 앞서 그가 한국어를 못한다는 사실이 이렇게 안심이 될 수 없다. 그래, 다카노 아저씨, 모든 작품이 다 괜찮을 수는 없어요. 그죠? 그럭저럭 유머가 살아 있긴 했지만서도, 요통을 치료 하는 과정에서 속이 터지긴 하셨겠지만서도, 그럼에도 치료법이나 병명조차 모르신다고 하니 동정이 가긴 하지만서도 말이죠. 그래도 다른 작품에 비하면 조금 약발이 떨어지는 듯 보였어요. 앞으로 계속 이러면 어떡하지 살짝 걱정이 될 정도로 말이죠.하지만 믿어 보아요~~ 당신은 금방 제 페이스를 찾아낼 것이라고 말이죠.


그나마 다행스럽던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한국의 인세로 치료비 걱정을 덜었다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정말 다행이다. 내가 산 책들이 다카노의 불안을 줄여주는데 쓰여졌다는 것이. 뭐, 생각해보면 치료비로 쓰인게 별반 소용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지만서도 말이다. 하여간 빨리 요통이 나으셔서, 자신의 화려한 탐험으로 복귀하셨음 좋겠다. 무식하게 쏘싹거리고 다닐 걸 생각하면 조금 걱정이 되긴 하지만서도, 그게 다카노의 트레이드 마크인걸 어쩌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걱정이 되니, 다카노씨, 앞으론 몸 걱정도 해가면서 여행 하시길 바라겠어요. 몸이 최고 재산 아니겠나요? 2 년동안 충분히 경험하셨겠지만, 심하게 아프면 병원은 별로 소용이 없다니까요. 그저 아프지 않는게 최선이라는 것을 오늘도 내일도 꼭 꼭 명심하시길...그래야 좋은 작품 오래오래 쓰실거 아니겠어요. 이상, 오래도록 당신의 작품을 읽고 싶은 독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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