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 - 우리는 왜 부정행위에 끌리는가
댄 애리얼리 지음, 이경식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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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한 철학자의 불륜을 논하는 책을 읽으면서 그가 도덕론은 뺀 채 현상 그자체로 다루는 것을 보면서 신선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엔 경제학자가 거짓말을 논하면서 도덕성에 대해  말한단다. 언뜻 조합이 엇갈린 것처럼 느껴진다. 철학자가 도덕성에 대해 논하고, 경제학자가 현실에 대해 한마디 해야 할 것 같은데 말이다. 하지만 학문을 하는 입장에선 굳이 그런 구분선이 없는 것인가 보다. 즉 개인차가 있을뿐 학문 자체엔 경계선이 없다는 뜻이겠지. 어쨌든 저자가 보통 사람들이 거짓말에 말려 드는 이유를 궁금하게 여기게 된 계기는 엔론 사태 때문이라고 한다. 엔론의 컨설턴트로 일했던 지인을 만난 저자는 그가 자진해서 거짓말을 했었다는 고백에 주목하게 된다. 엔론이 침몰할 줄 몰랐던 지인은 자신의 작은 거짓말이 커다란 해가 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저자는 엔론 사태가 주역 3인방의 거대한 거짓말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은폐해준 수많은 직원들의 소소한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라는걸 알게 된다.한마디로 그들은 자신이 조금만 눈을 감아준다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엔론 사태는 그들의 희망사항대로 움직여 주지 못했고, 결국 눈깜짝할 사이에 타이타닉호처럼 침몰해 버렸다. 지켜보던 사람들을 모두를 경악하게 하면서 말이다.


여기서 저자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된다. 습관적이고 병적인 거짓말쟁이가 아닌 우리네 보통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거짓말에 동참하게 하며,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여전히 자신을 착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고. 왜 우리가 거짓말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일단 연구가 그다지 필요한 질문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그게 나를 위해서건 타인을 위해서건  그렇다. 물론 알아챈다 해도 사는데 지장이 없는 소소한 거짓말에서부터, 나중에 알게 되면 분노를 사게 되는 심각한 거짓말까지 정도의 차이야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가 거짓말의 홍수속에 살고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거짓말을 하지 못하게 한다면 우린 아마도 어마어마한 침묵속에서 살게 될 지도 모른다. 가능하지도 않지만, 가능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도 의문이다. 거짓말이 순기능을 할때도 분명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보니, 이 저자가 의문을 품는 것도 우리가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한다는 것에 있지 않았다. 그가 궁금해 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거짓말을 하게 되며, 분명하게 자신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여전히 자신을 착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였다. 한마디로 거짓말에 있어, 내가 하면 로맨스요 네가 하면 불륜인 이유는 무엇이냐고 묻고 있는 책이었다. 그렇다면 저자의 궁금증인 착한 사람들이 부정행위에 끌리는 이유는 무엇이며, 또 그럼에도 자신의 정체성에 그다지 손상을 입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행동 경제학자인 저자는 우선 우리들이 거짓말을 하게 되는 이유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비용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이익을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건 아니라는 것이다.하지만 발각될 위험이 적고, 돈과 거리가 멀며, 유혹에 노출되는 강도가 높아질 수록 거짓말을 하게 될 경향이 증가하는건 사실이란다. 쉽게 말해 횡령이나 주가 조작등의 화이트 칼라의 경우, 잡히기도 쉽지 않고, 돈이라는 실체와 거리가 멀며, 유혹에 늘 노출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그들이 가로채는 억대 단위의 액수에도 불구하고  잡히고 난 뒤 자신을 범죄자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할지도 모른단다. 자신의 손에 피가 묻지 않았을시 자신을 살인자로 생각하긴 어려운 법이니 말이다. 재밌는 것은 유혹에 노출되어 있는 정도에 따라서, 그리고 누군가 감시하는 눈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서 거짓말을 하는 횟수가 달라진다는 점이었다.  한마디로 기회가 있는 한, 그리고 잡히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한 우리들은 손쉽게 거짓말의 세계로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양심이나 선량함때문이 아니라, 잡힌 다음에 벌어질 일들의 편익이 거짓말로 벌어들이는 편익보다 크다는걸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약간 찔리긴 하지만 일리있는 분석이지 싶다.


그 외에 저자가 주목하는 거짓말의 이유로 경제적 동기나, 자신이 처한 상황이 피곤하고 급박할때, 그리고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낮을때를 들고 있었다. 거기에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경우, 즉 자신을 속이는 메카니즘에 대해서도 고찰을 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로는 우리가 자신을 괜찮은 사람이라고 인식하고픈 마음 때문이라고 한다. 대체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근사하고 똑똑하며 괜찮은 인간성을 지닌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니 말이다. 다만 이것은 다 주변의 소소한 거짓말장이들에 한정된 이야기이고, 그외 저자는 상습적이고 습관적인 거짓말장이들에게도 주목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 중엔 비교적 창의적인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말하자면 창의력이 없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을 합해 보자면 우리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할 수 없음에 안 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한마디로 거짓말도 능력차였던 것이다. 양심차라기 보다는...


그렇게 보자면 결국 우리 인간에게 언제나 도덕적인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사소한 거짓말들은 사실 그다지 해가 없기도 하다. 인생을 살아나감에 있어 상대를 배려하기 위한 거짓말이 필요할때도 있고, 상황과 상대를 봐가면서 행동하는 유연함은 우리를 더 인간적으로 만들기도 하니 말이다.  우린 기계가 아니질 않는가. 하지만 거짓말에 유용한 기능이 있다고 한들, 우리가 분명 경계해야 할 부분은 소소한 거짓말에서 벗어나 거대한 거짓말에 목격하게 될 때이다. 가짜 학위가 들통났음에도 여전히 그것이 조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에서부터 ,학살을 일삼고도 자신은 마음이 여린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독재자에 이르기까지...우리가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그들의 거짓말이 별게 아니라고 동조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들의 눈을 크게 뜨고 지켜봐야 하는게 아닐까 한다.


거짓말에 대한 이러 저러한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는 책이다. 어찌보면 대단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어렵게 풀어내고 있는듯 보였는데, 아무래도 저자가 학자이다보니 상식적인 이야기라도 꼼꼼하게 데이타를 마련해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게 아닐까 싶다.자신의 논거를 뒷받침할만한 증거를 들이민다는 점에서 나쁠 것은 없지만서도, 그런 점이 오히려 발목을 잡힌 듯한 인상이랄까. 뻔한 이야기라도 증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은, 자신의 통찰력을 호쾌하게 풀어놓는데 방해가 되는 듯 보였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소설가들이 직관이나 통찰력으로 파악해내는 이야기가 오히려 더 적확하고  명쾌하다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하는 것일까? 당연한 귀결일까? 증명해야 한다는 걸림돌이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보면 소설가들만큼 천재적인 사람들도 없지 싶다. 학자들의 수십년에 걸친 데이타가 소설가들의 문장 한 귀절에도 못 미칠때도 있으니 말이다.  회사에 변호사들이 들락달락대면서 규율이 어쩌고 저쩌고를 외치면 그 회사는 망한 거라고 하던데, 증거에 매인 학자들 역시 비슷한게 아닐까 싶다. 거기에 경제학자가 도덕성을 주장하다니, 조금은 떨떠름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경제학자라면 현상을 분석하는 사람들이지 이상을 주장하는 사람이여셔는 안 된다는 관념 때문인지 어색하더라. 하긴 그보단 이 저자는 너무 순진해서 세상을 너무 이상적으로 보고 있는게 아닐까 싶은 점이 더 미심쩍었지만서도. 명석한 학자인 저저를 순진한 사람으로 보게 한다는 점에서 일단 이 책에 대한 신뢰는 그다지 높지 않지만서도, 그럼에도 소소한 거짓말을 늘어놓는 착한 보통 사람들에 대한 설명이나, 범죄적인 거짓말을 늫어놓으면서도 여전히 본인을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상습적인 거짓말장이들에 대해서는 분석 자체는 그럴듯했다.하니, 기대치를 낮추고 보시면 유익하게 보실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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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혹시 궁금해 할지도 모르는 " 남자 스트리퍼의 세계" 를 보여주고 있던 영화다. 주인공 마이크는 낮에는 건축일을 하지만 밤에는 클럽에서 '매직 마이크'란 이름으로 스트립쇼는 하는 스트리퍼다. 맞춤 가구점을 내기위해 열심히 돈을 모으는 그, 하지만  꿈을 이루는 길은 아직까지 멀기만 하다. 꿈을 이루겠다는 일념으로 마이크는 닥치는대로 성실하게 일을 해나가지만 모든 스트리퍼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마이크와 우연히 알게 되어 스트리퍼의 세계로 입문한 아담은 곧 그의 재능을 인정받아 승승장구하게 된다. 꿈을 잃어버리고 방황중이던 19살의 풋볼 특기생에게 자신이 무언가를 잘 할 수 있다는걸 알게 되는 것은 신나는 일이었을 것이다. 스트립쇼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일뿐, 그외 클럽의 나쁜 환경에 물들 생각이 없었던 마이크와 달리 아담은 곧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마약과 섹스와 돈 맛을 알게 된 아담은 아니나 다를까 사고를 치게 되고, 이에 아담의 누나 브룩은 마이크에게 펄펄 화를 낸다. 애를 버려놨다는 브룩의 분노에 마이크는 그간 눈 감고 있었던 스트리퍼의 세계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오~~ 난 스트립쇼가 정말 재밌을 줄 알았다. 그게 그렇게 지루한 것인줄 그 누가 알았으리요. 아마도 이 영화를 본 남성분들은 여자들이 꺅꺅 소리를 치니까 정말로 좋아서 그런갑다. 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인정할건 인정하자. 처음 박력있게 무대에 등장하는 씬은 인상적일지 모르나 , 그 다음부터는 똑같은 반복에 지루해진다. 이야기는 없고 행위만 있는 춤은 진실로 보링(boring)하더라. 몸짱에 잘 생긴 남자들이 꽝꽝 울리는 음악에 맞춰 옷을 벗으면서 춤을 추는데도 전혀 재밌지 않다니, 의외였다.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보단 오히려 그들이 어떻게 그 지루한 반복을 이겨내는 것일까 그게 궁금했다. 제 정신을 가진 인간이라면 정신줄 놓기 딱 알맞던데...그들이 타락하는 것도 이해가 됐다. 남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직업이라지만, 그들은 전혀 즐겁지 않았을테니 말이다. 자신들에게 무언가 보상을 해주고 싶겠지. 그것이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남성 스트리퍼의 세계에 대해 숨기는 것 없이 보여주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틀림없지만, 깊게 파고 들어간 것 같지는 않다. 살짝 미화한 느낌이랄까. 그러니까 그들이 절대로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은 스트리퍼가 기본적으로는 섹스워커라는 것이다. 아무리 포장을 해도 그 사실엔 변함이 없었다. 마이크가 낮에는 성실한 직업인이라는 것도, 돈을 많이 번다는 것도,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것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남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환상조차 그 점을 바꾸어 놓지는 못했다. 그래서 밤에는 제왕이나 된 듯 호령하는 그들도, 낮이 되면 모르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여자들이 비록 색다른 경험에 환호를 보낸다 해도 그건 그저 그때뿐이다. 그것도 한 번 보면 질려 버리는 경험 말이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채닝 테이텀이 한때 스트리퍼 생활을 했고, 그 시절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던데, 아마 그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더이상 스트리퍼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벗어날 수 있었을 정도로 성공했기 때문이 아닐런지...


<폴 몬티>급의 이야기를 기대하신 분이라면 기대를 접으심이 좋다. 주인공의 성장 영화라고 말들 하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눈요기용 영화다. 춤 추고 옷 벗고 근육이 얼마나 탄탄한지를 보여주는 것 외엔 별다른게 없다. 그걸 2시간 가까이 보게 되면 두 가지는 확실히 알게 된다.  아무리 좋은 몸매라도 나쁜 시나리오를 구제하긴 힘들다는 것과 전개될 건덕지가 없는 이야기는 결국 반복에 갇혀 지루해질 뿐이란 것을 말이다. 채닝 테이텀과 매튜 맥커너히, 맷 보머등 미남 스타들이 등장해 스트립 댄스를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울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더라. 그나마 채닝 테이텀과 매튜 맥커너히는 다행히도 자신의 매력을 충분히 어필하고 있었지만, 맷 보머 같은 경운 안스러울 지경이었다. 말하건데 그는 옷을 제대로 다 ( 페도라까지! ) 갖춰 입었을 때가 훨씬 더 매력적이다. 그걸 보면 <폴 몬티>는 얼마나 영리한 영화인가!  대단한 미남도, 몸짱도, 레전드급으로 춤을 잘 추는 사람도 나오지 않았음에도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채닝 테이텀이 춤을 잘 춘다고 해도, 진솔하고 공감이 가는 캐릭터에 비길 순 없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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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무덤의 남자
카타리나 마세티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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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을 잃은 35살의 사서 데시레와 엄마를 잃은 노총각 농부 벤니는 묘지를 들락달락 대다 낯을 익히게 된다. 처음 서로를 꺼림칙해 하던 둘은 상대에게 뜻밖의 미소를 발견하면서 관계가 발전하게 된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둘이 묘지에서 만났다는 것도, 배경 차이가 심하다는 것도 잊고 순식간에 친해져 버린다. 사랑에 서툰 두 사람에게는 기적이라고 할만큼 극적인 전개였기에 둘은 이 사랑을 언제까지나 지켜 나가고 싶다. 다만 문제는 섹스는 지나치게 좋은 반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둘의 차이가 좁혀지긴 커녕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  해서 이제 둘은 사랑을 위해 상대가 바뀌기만을 기도하게 된다. 나를 사랑한다니 그 정도는 해주겠지 했던 둘의 기대는 왜 내가 너를 위해 그런 것까지 해야 하는데? 라는 반발에 직면하게 된다. 결국 한치의 양보도 없이 자신의 삶을 지키려는 두 사람은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는데..


음. 이제, 신종 로맨스 소설은 이렇게 쓰는가 보군? 책을 내려 놓으면서 든 생각이다. 영화에서라면 아마도 둘 중 하나가 변하는 것으로 결말이 났을 것이다. 여자가 사서를 하면서 농장을 하는 남자를 돕던지, 아니면 남자가 여자가 사는 도시로 이사를 오던지... 현실적이진 않지만 해피엔드다. 그것에 비하면 이 책은 현실적이다. 사랑도 하고, 섹스도 기가 막히게 좋지만, 자신을 희생하거나 포기할 생각이 둘에겐 아예 없다. 오히려 팽팽하게 상대에게 변신할 것을 강요한다. 사랑한다면 그까짓것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않겠느냐는 논리다. 둘 다 어찌나 고집스러운지, 상대가 기껏 타협점이라고 내놓은 제안들도 퇴짜 놓기에 바쁘다. 그것 가지고는 성에 안 찬다는 것이다. 완전히 획기적으로 바뀌거나 나를 위해 전부를 포기하기 전에는 함께 할 수 없다고 선을 긋는다. 이쯤 되면 이 둘이 가야할 길이 어디가 될지 점쟁이가 아니라도 점치기 어렵지 않다. 결별... 그리곤 생각한다. 다음번에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비슷한 사람을 만나는게 좋겠다는...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거기까진 그래도 이해할만하다. 썩 만족스러운건 아니었지만서도, 각자 논리에서 생각하면 그럴듯하니 말이다.


만일 그 지점에서 이 책이 결말이 났더라면 이 책을 그렇게 싫어 하진 않았을 것이다. 냉소적인 뉘앙스로 ' 신종 로맨스'라는 말을 붙이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런데 이 책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결말로 숨겨 둔 내용이 더 있었던 것이다. 바로 데시레가 갑자기 벤니의 아이를 갖겠다고 난리를 친다는 것. 그녀 왈, 함께 살 수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아이는 낳아 키울 정도로 벤니를 사랑한단다. 어이가 없어서... 그게 숭고한 사랑이자 희생 정신이라고 이 작가는 생각하는 것 같던데,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거기에 데시레가 무식하다고 구박을 해도 전혀 밀리지 않고 이성적으로 생각만 잘 하던 벤니가 갑자기 정신이 나간 데시레에게 동조하는건 또 뭐란 말인가? 과연 남자들 중에 너는 필요없고, 너의 씨만 필요해! 라는 여자의 요청에 흔쾌히 승낙할 사람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내가 남자라면 당연히 기분이 나쁠 것 같은데 말이다. 헤어졌음 그것으로 끝이지 어디서 들이대냐고 화를 내고, 애가 장난이냐고 호통을 쳐야 마땅해 보이는데도, 이 주인공은 황송해 하더라. 참으로 한심해 보였다. 난 인간이 아니냐고, 나를 전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냐고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 것일까? 만약 남자들에게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게 정상이라면, 그거야말로 실망이다. 나는 무엇도 아닌 씨뿌리개에 불과하단 선언과 마찬가지니 말이다. 


어쩌면 로맨스 소설이란 열등감은 높고, 자아 존중감은 낮으며, 철이 들지 않는 사람들이 벌이는 사랑 환상곡을 일컫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사랑은 하지만서도 어떻게 사랑을 해야 하는지 도무지 짐작도 못하는 사람들의 기형적이고 가학적인 사랑 모습을 진저리나게 미화하는 것일지도... 그걸 사랑이라고 포장하는 작가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오해하고, 평생을 철들지 않는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겠지. 사랑한다면 현명해 지라고.아니 사랑하게 되면 현명해진다고, 그런 걸 말하는 소설은 있을 수 없는 것일까? 그런건 현실적이지 않다고? 설마...이 세상에 행복한 커플이 얼마나 많은데...어떻게 그런 이야기가 현실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신이 당신 자신을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여긴다고 해서 사랑을 조롱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 하여간 신종 로맨스 소설의 공식이, 너는 필요없고, 아이만 있으면 돼! 라는 컨셉이라면 난 반대하고 싶다. 아이는 남편을 비롯한 여러 친척들과 더불어 키우는게 좋다. 아이를 위해서 말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분명 아이는 엄마의 외로움을 치유하기 위한 애완용 동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도 안 되고, 그것이 사랑의 근사한 대용물이나 결과물이라고 생각되어져서도 안 된다. 왜냐면, 아이에게는 그것이 한번뿐인 인생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부모의 부속물이 아니란 뜻이다. 그러니 제발, 당신들의 인생 문제를 아이로 해결하려는 우는 범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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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허풍담 1 - 차가운 처녀
요른 릴 지음, 백선희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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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책이 미친듯이 웃고 싶어서 고른 것이라는 걸 알려 드리고 싶다. 책을 받기도 전에 그런 기대를 하면 좋지 못하다는걸 알지만서도--기대가 큰 만큼 체감 실망감도 상승함.--그럼에도 저런 표지에, 저런 제목을 달고 나온 책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하나밖엔 없다. 웃기게 생겼다는 것! ( 일단 눈 반짝) 거기에 기필코 웃고 말겠다는 강력한 염원과 의지까지 ( 두 주먹 굳게 꽉 쥐고) 동반해 주니 도무지 당장 읽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해서 내 손에 들어오게 된  책, 결론만 말하자면 별로 웃진 못했다. 언제 나를 웃겨줄 건가요? 웃겨주긴 하실 거죠? 란 기대로 끝까지 읽어 내려 갔건만  웃음이 나오진 않더라. '미친듯'이는 언감생심이고, 그냥 헤~ 두 번이 다였다. 허풍담이란 제목이 딱히 틀린건 아니니 사기라 할 순 없지만서도, 그렇게 외치고 싶었던 건 사실이다. 특히나 " 허풍선이 남작 " 을 읽은 이래로 허풍하면 자동 반사적으로 웃음을 실실 쪼개는 버릇이 있는 나로써는 당황스런 경험이었다. 뭐? 과장하지 말라고? 웃을 준비 다해 놓고 대기하고 있는데, 하나도 웃기지 않아 봐. 얼마나 뻘쭘한데...예의상으로라도 웃어 줘야 할 것 같은데 나 혼자 박자를 놓치고 있는 듯한 기분이랄까. 이래서 오래 살고 봐야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서도, 어쨌거나 신선하긴 했다. 부정적인 의미로 다가....아이고, 날씨가 하 덥다보니, 추운 북극 나라의 허풍을 읽고 있노라면 더위도 짜증도 한꺼번에 물리칠 수 있지 않을까 했었는데, 그건 그저 바람에 그치고 말았으니...오호 통재라다. 그러게 애초에 기대를 많이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표지를 보는 순간 <럼두들 등반기> 가 연상 되자 그만 이성을 잃어 버렸다. 이럴때 보면 자동반사가 딱히 믿을만 하진 못하단 말이지...


내용은 그린랜드 북동부 그 넓디 넓은 땅에 떨어져 살고 있는 소수의 사낭꾼들에 대한 이야기다. 상상해 보라. 남한 절반 정도의 땅에 고작 서른 명 정도가 흩어져 사는 모습을. 서울에 하나, 부산에 하나, 대구에 하나...주요 도시에 딱 한 명씩만 사는 거라고 생각해보면 그들이 얼마나 외롭고 고독하게 살고 있는지 짐작이 되실 것이다. 거기에 1년의 반은 밤, 나머지 반은 낮인데다 온통 주위를 둘러 봐도 하얀 눈과 빙산이란다. 그들이 제정신으로 살고 있다면 그게 아마도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렇게 제 정신을 가지고는 살아갈 수 없는 가혹한 환경에 노출된 사람들이 각자의 기벽과 순진함으로 일상을 살아내는 모습을 담은 것이 이 책이다. 해서  읽다보면 어디까지 거짓말이고 어디까지 진실인지가 내내 헷갈린다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북극이라는 곳이 워낙 극단적인데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마저 정상과는 거리가 먼, 그냥 먼게 아니라 멀디 먼 사람들이다보니, 이 책이 허풍담이 아니라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게 아닐까 의심스러워 진다고나 할까. 일단 이 책을 쓴 저자의 의도가 '그곳의 사냥꾼들이 들려준 놀라운 체험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였다고 하니, 어느 정도는 진실이 바탕되어 있지 않을까 짐작은 된다. 그렇게 북극에서만 가능한 소소한 사실을 베이스로 깔고, 그곳에서 살아가기 위해 갖가지 적응력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들의 소동들을 보여줌으로써, 작가는 북극이라는 곳에서만 가능한 허풍담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예를 들어 보자면...외로운 나머지 수닭을 애완견처럼 기르던 헤르버트는 고독을 치유하는 방법으로 친구의 끊임없는 수다만한게 없다는걸 알게 된다.(알렉산더, 순회 방문) 그린란드에서 민병대를 조직하겠다는 야무진 야심을 품고 왔던 중위는 며칠만에 현실을 깨닫게 된다. 다소 난폭하긴 했지만, 매우 효율적이라는게 증명된 방법으로..( 중위 길들이기, 개인적으로 제일 재밌었음.) 매스 매슨은 검은 머리 빌리암에게 가공의 처녀에 대한 상상권을 판다. 빌리암은 비요르켄이 그녀와 사랑에 빠졌다고 주장하자 , 정숙한줄 알았던 그녀가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났다는 사실에 충격을 먹는다.( 차가운 처녀) 죽은 친구 얄을 위해 즐거운 장례식을 준비했던 친구들은 술취한 백작을 관속에 넣고 수장시킨다.나중에 정신을 차린 사냥꾼들은 살아난 백작에게 나사로란 별명을 지어준다. (즐거운 장례식) 문명의 척도라 할 수 있는 화장실을 그린란드에 도입함으로써 생겨난 해프닝을 그린 것(절대 조건)등을 들 수 있다. 총 10개의 이야기가 있는데, 어떤 것은 재밌고, 어떤 것은 끔찍하며, 어떤 것은 기괴하지만, 흥미로웠던 점은 배경이 북극이다 보니 어떤 것도 정상이라 할만한게 없었다는 것이다. 해서 허풍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거짓말이 줄줄이 이어지지만서도, 누가 알겠는가? 그것이 거짓인지 아니면 진실인지...당신이 그곳에 살아보지 않았다면 모르는거 아니겠는가. 어쨌거나 독특한 북극환경에 적응해 살아가는 고독하고 착하며 순박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것이 비범하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비록 웃기긴 못했다 해도...그것이 아직까지도 <럼두들 등반기>와 비슷한 의뭉스러운 코미디이지 않을까 기대한 나에게는 아쉬운 대목이었다. 역시 기대를 많이 하는게 아니었다.


현재 3권까지 나온 시리즈물이다. 원작은 10권까지 있는데, 출판사에선 향후 반응을 봐서 나머지를 출간할 모양인가 보다. 이 책을 읽기전에는 3권까지 내처 읽고, 그 후 출판사에 4권 출간 압박용 메일을 신나게 보낼 생각이었는데, 일단 그건 다른 독자들에게 맡겨야 겠다.  2권과 3권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뭐라 하기 곤란하니 말이다. 설마 1권이 제일 재밌는건 아니겠지?그렇담 진짜 실망인데...그나저나 표지 뒷면을 보니, 이 책이 7세부터 100세 노인까지 강력 추천한다고 쓰여 있더라. 도무지 어떤 기준에서 그런 말이 나온 건지 의문이다. 북극에선 7살 아이들에게 이런 글을 읽어주나?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조상들의 이야기라면서 베드타임 스토리로 들려주고? 뭐, 북극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서도, 절대 절대 우리나란 아니다. 만약 이걸 7살 아이에게 읽어줬다간, 나중에 고소를 당할지도 모른다. 정신성 외상에 의한 트라우마를 주장하면서. 거기에 아무리 너그럽게 봐줘도 걸작이라는 말은 못하겠으니, 부디 표지에 쓰인 모든 문구들을 그대로 믿지는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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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뿌리는 자 스토리콜렉터 8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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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에서 돌아온 형사 피아는 공항에서 사건 호출을 받게 된다. 풍력 에너지 개발 회사인 윈드프로에서 경비원이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허겁지겁 반장 보덴슈타인을 대신해 현장으로 달려간 피아는 살인 사건이 아닐까 추측하지만, 도무지 술주정뱅이에 가난한 경비원을 누가 살해했을지 짐작이 가질 않는다. 그럼에도 의심스러운 사람이 없는건 아니었으니 바로 회사 사장인 타이센, 피아는 그가  경비원을 살해하지는 않았다 해도 뭔가 숨기는 것이 있다고 직감한다. 하지만 그가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 피아는 회사 관계자들을 수사하던 중 그 회사의 주변이 그동안 시끄러웠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회사에서 발주하려는 풍력 발전소를 반대하는 지역 시민 단체와 알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시민 단체를 이끌고 있는 재니스는 과거 그 회사에서 잘린 직원으로 복수심에 겨워 회사를 망하게 하기 위해 발악을 하고 있었다. 재니스의 행동이 하도 극단적이다 보니 그의 행동을 의심하는 가운데 또 다른 살인 사건이 터져 버린다. 바로 시민 단체의 열성 단원으로, 그의 땅이 발전소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서 그간 회사로부터 거액의 제의를 받고 있던 사람이었다.  과연 그를 죽인 것은 누구일까? 유산 상속을 노린 그의 자녀들일까? 아니면 개발을 하는데 눈에 가시처럼 구는 그를 제거하고팠던 회사측일까? 피아는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두 사건이 의외로 연결이 되어 있는건 아닐까 추측을 해보지만, 둘을 연결해줄 실마리를 딱히 찾지 못해 애를 먹는다.


한편, 생각지도 못하게 아내에게 버림 받은 뒤 방황하던 반장 보덴슈타인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암담하기만 하다. 자신이 우울하다는 것은 알지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길이 없는 그에게 구세주처럼 한 여인이 나타난다. 그녀는 바로 니카, 경비원 살인 사건을 수사하던 중 만나게 된 그녀에게 그는 한 눈에 반하고 만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만난 사람과는 엮이지 않는다는 원칙때문에 주저하는 그에게 그녀가 찾아온다.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이 있다고 바들바들 떨면서..천천히 그녀의 과거를 듣게 된 보덴슈타인은 처음엔 반신반의하지만 점차 그녀의 말을 믿게 된다. 그녀를 지켜 주겠다고 다짐하는 보덴슈타인, 이런 사실을 알게 된 피아는 화를 내면서 그의 어리석음을 질타한다. 자신을 믿지 못한다고 펄펄 뛰던 보덴슈타인은 혼자만이라도 니카를 보호하겠다면서 그녀와 스위스로 여행을 떠나는데...


넬레 노이하우스, 참 특이한 이름이다. 절대 한번에는 못 외우지 싶은, 그보단 진짜 본명일까 싶기도 하다. 하여간 작년에 이 작가의 책들이 인기를 끌었었는데, 그때는 소 닭 보듯 하다 어떻게 이 책이 손안에 들어왔는데, 의외로 재밌었다. 왜 인기가 있는지 알겠더라. 처음부터 독자를 잡아채더니만, 끝까지 밀어 붙이는 박력이 대단하다. 이야기 자체도 탄탄하고 말이다. 이렇게 밀도 높기도 쉽지 않은데, 여성 작가가 쓴 글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만치 이야기를 끌어가는 폼새가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실제 형사들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끔 사실적인 묘사들도 그렇고, 인물에 대한 통찰력이 있는 점도 마음에 든다. 추리 소설이다 보니 인간의 본성에 대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도 ...그렇게 끝까지 밀어 붙이는 작가는 별로 없는데, 이 작가 예사롭지 않았다. 가정 주부가 쓴 것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만큼 심리도 완벽하고, 수사를 하는 과정에도 무리가 없다. 요즘 여성 작가들을 보면 남성들 못지 않게 터프하다. 여성 작가라면 말랑말랑하고 말도 안 되는 로맨스 소설이나 쓴다고 생각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간 듯. 해서 새로운 거물 여성 추리 작가의 탄생을 반기면서...이 작가의 책들은 앞으로도 다 볼 생각이다. 이거, 은근히 봐야 할 추리 소설 시리즈가 늘어나는데...그것들을 따라 잡는 것만으로도 한 해 독서량을 채우지 않을까 걱정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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