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인상은 항상 배신한다 - FBI 심리학의 첫 번째 충고
메리 엘런 오툴 & 앨리사 보먼 지음, 유지훈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원제를 직역하자면 <위험한 직감> 정도? 인간인 우리는 자신의 직감을 믿지만 실은 그게 얼마나 믿음직스럽지 못한 것인가를 설명해주고 있던 책이다. 전직 FBI 최고의 프로파일러였던 저자는 세상을 들썩이게 했던 연쇄 살인마들을 직접 만나 보기도 하고, 잡기도 하면서 그들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상식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 연쇄 살인범을 만나면 우리들이 직감적으로 무언가 틀렸다고 생각할 것이라는, 즉 본능이라는 레이다가 작동을 해서 즉각적으로 알아볼 것이라는 것은 전혀 맞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우리가 상상하는 험상굳게 생기고, 변태적이고 험악한 분위기를 팍팍 풍기는 사람이 연쇄 살인범이기는 힘들다고. 연쇄살인범들은 잘 생기고, 친절하고, 신사답고, 인사 잘하고, 좋은 이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우리네 보통 이웃들 중에 연쇄 살인범이 있다고 보면 된다는 것. 해서 연쇄 살인범을 잡고 나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우린 전혀 그걸 몰랐어요~~ 라고. 그는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여요. 도 그렇고...요즘 < 이웃 사람>이라는 영화를 하고 있던가 보던데, 그 영화를 안 봐서 뭐라 하긴 그렇지만서도, 의심스러운 사람은 오히려 범인일 가능성이 적다고 한다. 실제로 범인을 만나서 취조를 해보면 정말 이 사람이 그런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란 말이지? 라면서 취조하는 사람 조차 헷갈릴 정도라고. 끊임없이 이 사람은 연쇄 살인범이다, 변태다라는걸 되새기지 않는다면 그냥 악수를 하고 풀어주고 싶을 정도로 세련되고 점잖으면 친절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놀랍지 않는가? 


해서 이 저자가 하려는 말은 이것이다 .직감을 믿지 마라. 끊임없이 의심하고 의심하라. 특히나 전과가 있는 사람의 경우는 의심하고 의심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것을 함부로 간과하지 마라는 것이었다. 자신이 사람을 잘 알아본다고 믿는 사람이나, 무턱대고 사람을 믿는 사람들은 조심할 것. 그러다 당하면 본인들만 손해니 말이다.


첫인상을 믿지 말라고, 연쇄 살인범등 싸이코 패스들은 절대 당신이 알아볼리 없다는 것등은 잘 알겠다. 이 저자의 말에 의하면 수년간의 단련이 아니라면 직감만으로 그들을 알아본다는건 어불성설이라고 한다. 그만큼 그들은 변장의 달인이고, 그들의 정체성중의 하나가 전혀 죄책감이나 감정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죄 때문에 행동이 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이 범죄를 계획하는 치밀함을 생각하면 당신들이 그걸 알아보고, 막을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고.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건 미디어가 만들어 낸 환상이라고 한다. 자신들 같은 수사반원들도 못 알아차리기 일쑤고, 잡고 나서도 그들의 친절해 보이는 모습에 깜빡 속는다고 하니 말이다. 죄를 지었으니 눈을 못들고 못 마주칠 것이라는 생각도 잘못 된 것이라고. 그들은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아주 똑바로 당신의 눈을 들여다 본다고 한다. 취조장에서 형사들을 마주하고 있어도 말이다. 재밌지? 우린 그래도 그들이 조금은 뉘우친해요.라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데 말이다. 아예 그런건 기대도 하지 말고, 그저 잡혀 준것에 대해서만 감사하라고. 그리고 평범한 당신이 그들을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는 절대 절대 상상하지 말라고 한다. 진짜로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프로파일과 연쇄 살인범이 실체는 다르니 말이다.


범죄자들에 대해 우리들이 전혀 눈치챌 수 없다는걸 알려 준다는 점은 좋았다. 나는 그래도 살인범 정도를 만나면 느낌이 이상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다는 군. 흠...우리 이웃들 중에서도 그런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고, 하지만 단언컨대 당신은 절대 그를 못 알아볼 것이라고, 오히려 그가 굉장히 좋은 이웃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99%라고 한다. 참으로 놀라운 세상이다. 역시나 수사관들의 눈에 비친 세상은 험악하기 그지 없더라. 범죄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선 최소한 영약해져라 라고 말하던데, 말하자면 잘땐 문을 잠그고 잔다든지, 처음 만나는 사람을 호감이 가는 인상이라는 이유로 마음껏 믿어서도 안 된다는 든지, 그가 실수로 내뱉은 이상한 말들은 그냥 넘겨선 안 된다 든지. 뭐 ,그런 것들, 한마디로 경계를 하면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가 이 책의 장점. 그 외에 아무리 읽어봐도 그런 사람들을 어떻게 구분해 내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있지 않다. 아마도 그런 사람들은 한번에 알아보는 그런 메뉴얼은 어디에도 없는 가보다. 하여간 첫인상을 믿지 말것, 그것만 알아 둔다면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을 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 없는 내 인생
이자벨 코이셋 감독, 사라 폴리 외 출연 / 덕슨미디어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스물 셋에 나 없는 내 인생을 계획해야만 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열 일곱에 만난 첫사랑과 결혼해 딸 둘을 두고 있는 앤은 그럭저럭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물론 반 백수 상태인 남편을 대신해 야간청소부를 해야 하는 것이나, 트레일러에 살고 있는 가난이 심난한건 사실이지만, 사랑하는 두 딸과 남편이 있어서 그 정도는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녀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앤의 엄마는 왜 일찍 결혼을 해서 사서 고생을 하냐고 닥달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녀 자신이  자신의 인생을 바꾸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  비록 젊은 시절의 자유와 행복을 만끽하지 못했지만, 그녀에겐 그보다 소중한 가족이 생겼으니 말이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씩씩하게 살아가던 그녀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난소암 말기이며, 치료도 불가능하다는 의사의 진단...죽음 앞에 간당 간당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 그녀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죽기 전에 무엇을 해야 할지 ,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목록을 적기 시작한다. 그리곤 천천히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하는데...

담담하게 자신의 삶을 정리하던 여인의 용기가 돋보이던 영화였다. 스물 셋이라...그 나이라면 인생에 대해 한번쯤 어리광을 부릴만도 한데,  너무 일찍 철이 들어서 그런가 인생의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 들이는 장면이 공감이 되면서도 안스럽더라. 그 나이에 인생에 더 이상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 왠지 내가 그녀에게 잘못이라도 한 듯 그렇게 미안했었다. 과연 나라면 그녀처럼 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러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만약 내가 그런 처지라면 그럴 수 있는 용기가 있었으면 했다. 쉽진 않겠지만 죽음을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일테니까. 그나저나 주인공은 어쩜 그리도 쉽게 자신의 삶을 내려 놓을 수 있는지...내겐 그게 참 신기했다. 대걔는 그 지경에 되어서도 살기 위해 발악을 하는게 보통인데 말이다. 그 발악 끝에 주변 사람들을 다 지치게 하고 질리게 만드는게 흔히 보는 광경인데 말이다. 정서상, 그렇게 차분하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사회가 우리는 되지 못한다. 아니, 그건 어디나 마찬가지일까?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때에 삶에만 집착하면서 결국 모든 것을 놓치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봐 왔던가. 그런면에서, 차분하게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던,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간 이후에 살아갈 사람들을 배려하던 그녀의 배려와 담대함이 아름다워 보였다. 내가 내 죽음 앞에서 그렇게 담대할 수 있기를 ...나 없는 내 인생이 너무 참담해서 주변 사람들을 들들 볶는 우는 범하지 말기를, 그런 바람이 들게 하는 영화였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던 장면...치료를 거부하는 앤에게 주치의가 조언을 한다. 치료는 안해도 좋으니 병원에 오라고. 죽는 것도 쉽지 않다고. 고통을 겪지 않도록 내가 도와주게 해 달라고. 삐쩍 말라서 하나도 멋있어 보이지 않던 남자였는데, 그 순간, 그가 그렇게 멋져 보일 수 없더라. 역시 인간은 외면이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말이 나오는가로 멋짐이 판가름되는 것 같다. 아무리 못 생긴 사람이라도, 그렇게 인간적인 말을 내 뱉으면 그냥 잘 생겨져 보인다. 그렇게 보자면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은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일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엄마 시즈코상 - 가장 미워하고 가장 사랑했던 이름
사노 요코 지음, 윤성원 옮김 / 이레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엄마 시즈코 상>은 치매에 걸려 구십의 나이에 돌아가신 엄마를 회고하는 수필집이다. 알고 보니 이 책의 저자가 <백만 번 산 고양이>의 저자라고 한다. 전혀 연결되지 않은 이미지라 깜짝 놀랐는데,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유능한 일러스트레이트 작가인 저자를 엄마인 시즈코씨가 한번도 자랑스러워 하거나 응원한 적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저자의 이야길 종합해 보니 시즈코씨란 분은 이런 사람이 아니셨을까 싶다. 자신만 중요한 나머지 자식이 어떤 일을 하고 성공을 하건 별 관심이 없었던 사람,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관심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자식을 하소연이나 분풀이의 도구 정도로만 여기던 사람 말이다. 흠... 누구든 자식의 이런 고백을 듣게 되면 일단 좀 불편할 것이다. 자식을 위해 온전히 자신을 희생하는 <엄마를 부탁해>의 엄마도 불편하지만, 이렇게 극단적으로 자신만 아는 엄마도 처지 곤란이니 말이다. 사람들은 사실 그런 엄마가 존재한다는 것마저 별로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현실이 그러한 것을... 것도 드물지 않게 말이다.

 

자식이 어렸을 적엔 손찌검에 모진 정신적 학대를 하고, 그 자식이 커선 잘 되는 것을 기도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자식이 잘 되가는 꼴을 눈꼴시어 하고, 늙어서는 자식집에 얹혀 살면서도 오히려 주변에 자식 사위 욕을 하고 다니며, 딸이 남편에게 맞고 산다는 하소연에 그럼 맞고 살라고 조언해준 사람, 딸이 이혼하자 네가 잘못해서 그렇게 됐다고 비수를 꽂던 사람... 바로 그 사람이 저자의 엄마다. 엄마가 그렇다보니, 저자는 늘 엄마와의 관계에 있어 긴장과 불화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그나마 가장 사이가 좋을때가 멀리 떨어져 살아서 별 볼 일이 없었을때라고 하니, 참 할 말이 없다. 평생 그렇게 평행선을 유지하면서 살았다면 좋았으련만, 엄마에게 노년은 찾아오자 , 저자는 엄마와 원치 않는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남의 집에 얹혀 살면 성질이라도 죽일 것이지, 늙었어도 괄괄한 성질머리는 버리지 못한 엄마는 딸의 집에서도 편지풍파를 일으킨다. 하는수 없이 엄마를 요양시설에 모시게 된 저자는 자신과 엄마의 관계가 왜 그렇게 일그러졌을까 곰곰히 생각해 본다. 엄마라면 피부가 닿는 것조차 끔찍했다던 저자는 엄마가 치매에 걸려 본래의 성질을 모두 잃고 나서야 비로서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치매에 걸린 엄마가 다른 보통의 엄마처럼 온순하고 친절해졌기 때문이다. 치매에 걸려 정신줄을 놓고 나서야 엄마에게 가까이 갈 수 있었다니, 작가는 자신의 아이러니가 수치스러웠을 것이다. 대개의 경우는 그 반대여야 정상이니 말이다. 그렇게 자신을 학대한 엄마를 용서하고, 그런 엄마에게 잔인했던 자신을 용서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안타까웠던 것은 그렇게 극악스럽던 엄마를 미워하는 자신을 저자가 몹시 부끄러워했다는 점이다. 만약 그녀가 요즘 사람이었다면 다른 각도에서 엄마를 조명하고 이해했을텐데...그녀 역시 봉건적 시대의 산물이라서 그런가 부모가 어떤 대접을 한다해도 자식은 온당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는 사대 정신에 잠겨 있는 듯했다. 부모란 무엇일까? 나는 부모란 자식이 사회로 나가 한 사람으로써 살아나갈 때까지 성장하도록 보호해주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부모의 핵심 의무라 할 것이다. 만약 자식이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했다면, 예를 들어 부모가 자식을 이용하는 관계였다거나, 학대의 대상이었을 시엔 아무리 피로 맺어진 혈육이라 해도 관계가 일그러지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식을 학대했거나 성장을 방해한 부모는 자신이 그 역활을 제대로 못했다는 점에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그런 부모를 둔 자식들이 성인이 되어서 알길 없는 분노와 우울감에 사로잡혀 사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것뿐인가? 그것도 억울한데 그들은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다는 배은망덕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려야 한다. 과연 그들에게 탈출구는 가능할 것인가?  웬만큼 자존감이 높지 않은 사람이라면 탈출을 꿈꾸지도 못할 것이다. 그것이 단지 의지의 문제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엄마의 목을 졸라 죽이고 싶다는 친구의 말에 오히려 그 친구를 부러워 한다. 왜냐고? 그녀 자신은 엄마의 몸에 손도 대기 싫기 때문에 목 졸라 죽이는 것은 상상도 못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이런, 하...정말 안스러웠다. 부모와의 관계가 좋은 자식들이라면 상상하지 못할 일일지도 모르겠지만서도, 어린 시절 학대를 견디면 자랐던 자식들이라면 아마 공감하기 어렵지 않은 대목일 듯하다. 아니, 당연하다. 자신을 보호해주기는 커녕 이용만 해 먹는 사람에게 누가 가까이 다다가고 싶겠는가? 부모와 자식 간이 아니라면 한 공간에 있고 싶은 마음조차 없을텐데 말이다. 그런데도 부모 자식 간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경우라도 그 연을 끊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고리타분한 사고라니...

 

그래서, 나르시스트적이고 제멋대로인 엄마와의 갈등에 고민하던 저자가 치매에 걸려 얌전해진 엄마와 화해를 하는 과정은 감동스럽다기 보다는 안스러웠다. 일반 가정이라면 치매에 걸려 점차 희미해져 가는 엄마의 모습에 절망할텐데, 이 저자는 엄마가 치매에 걸려 본인이 생각하는 상냥한 엄마에 가까운 사람이 되자 한없이 기뻐한다. 그래서, 본인은 감사해 마지 않는 모녀 화해의 모습에 난 마음이 상하고 말았다. 그건 사실 정상이 아니니 말이다. 하여간 인간이란, 이렇게도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것이 어려운 것인가 보다. 특히나 부모의 경우는,있는 그대로의 엄마를 인정하고,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는 것이 쉬운게 결코 아니다. 그런면에서 이 작가의 용기에는 박수를 보낸다. 비록 그녀가 자신의 처지를 잘 이해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런 고백을 내 뱉은 것만으로도 본인으로썬 무척 힘든 일이었을 테니까.

 

그나저나 매맞는 아내들이 수치심에 맞는 사실을 숨기는 것처럼, 맞고 자란 자식들이 오히려 엄마를 두둔하는 것은 수치심과 관련이 있는게 아닐까. 어떤 경우이건 간에 엄마를 미워한다고 말하는 것은  자식이 잔인하고 못된 사람이라는 것처럼 들리니 말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 책은 전적으로 동양적인 사고에서 나온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똑같은 일들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서구 사람들이 겪었다면 이 저자가 고통스러워했던 죄책감을 정신분석학적으로 분석해 명쾌하게 해명해 줬을 것이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엄마가 엄마 노릇을 하지 못했을 시에, 자식이 그녀를 엄마라고 느끼지 못하는건 오히려 당연한 거라고... 이 책의 저자는 결국 자신의 문제를 명쾌하게 분석하지 못한 채 엄마에 대한 회한을 묻어 버렸다. 이 책을 쓰셨을 당시 암 투병 중이셨다고 하니, 이미 돌아가시지 않았을까 싶은데, 만약 아직 살아계시다면 그녀에게 말하고 싶다. 엄마에 대한 죄책감을 던져 버리시라고. 그것은 당신의 몫이 아니라고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 없는 일주일
조너선 트로퍼 지음, 오세원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아내가 직장 상사와 바람이 나는 바람에 세상이 뒤집어지는 경험을 하고 있는 조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누나로부터 듣게 된다. 자신이 벌이고 있는 드라마만으로도 버거워 죽겠는데, 돌아가신 아버지가 유대식 7일장인 시바를 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니, 조니는 아연실색이다. 아버지가 종교적인 사람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다. 물론 가끔 자신들을 닥달해 시나고그에 데리고 가긴 했지만서도, 그게 종교적인 믿음이 있어서라기 보단 그저 자식들과 무언가를 하고 싶으셨던 것이라고 짐작했었던 조니는 자신이 그간 잘못 알고 있었나 어리둥절해진다. 아버지의 유언에 깜짝 놀란 것은 비단 그만이 아니여서, 형제들 모두 어떻게 시바를 치뤄야 할지 난감해 한다. 장례식을 치르는 직계 가족들만 허둥댈뿐, 조문객들은 침착하기 그지 없는 시바를 치르면서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은 그간 못푼 회포를 풀기 시작한다. 그간 떨어져 살면서 각자의 드라마를 찍고 있던 가족들은 한자리에 모이면서 과거의 울분과 현재의 고통으로 서로를 할퀴기 시작한다. 누구보다 아내가 상사와 불륜을 저지르는 장면을 목격한 조니의 트라우마는 상상을 초월한다. 어떻게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할 만큼 망가진 그를 보면서 가족들은 도움을 주는 한편 정신 사납게 하는데도 일조를 한다. 한때 촉망받은 운동선수였지만, 사고로 인해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 받곤 촌구석에 갇혀 살아온 형은 조니를 볼 때마다 원망의 눈길을 지글지글 보내 온다. 아기를 가지려  별별 노력을 다했건만 여전히 되지 않은 임신으로 상심한 형수는 조니에게 야릇한 눈길을 보내오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아득바득 살고 있는 누나는 남편에게 그렇게 무시를 당하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게 사는지 존경스러울 정도다. 집안의 사고뭉치인 막내는 자신보다 한참 연상인 약혼녀를 장례식장에 데려 옴으로써 개차반 집안의 대미를 장식한다. 어쩜 그리도 한결같이 엉망인지...루저라는 것이 그 집안의 특징이라도 되는 듯 제 정신인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신기한 가운데, 그런 그들이 7일동안 어디도 가지 못하고 장례식장을 지켜야 한다니... 시한폭탄이 째깍 거리는 소리가 들려 오는 듯하다. 보통 가족이라고 해도 그 정도의 압력이면 없던 갈등도 생기게 마련인데, 이 가족이 어디 보통 가족인가? 언제 분노가 폭발할 지 분위기 살벌한 가운데, 조니의 전처가 찾아와 그의 아이를 가졌다고 고백한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엄마가 레즈비언이며, 옆 집 아줌마와 연인 사이라는 폭탄을 터뜨리자, 드디어 가족들은 서로를 향해 난타전을 벌이기 시작하는데...과연 이 콩가루 가족은 어떻게 시바를 끝낼 것인가? 이들에게 행복한 미래란 가능한 것일까?


아버지의 장례식을 계기로 모인 4남매가 각자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인생을 향해 앞으로 나아간다는 나름 모범적(?)인 전개를 보여주던 가족(!) 소설이다. 아버지의 장례식이나, 그를 받아들이는 가족들의 냉소--이 집안의 트레이드 마크임--, 아내의 불륜, 유아 심리학자인 엄마가 아이들에게 끼친 해악, 엄마와 아빠의 평범하지 않은 관계, 그리고 풀리지 않은 앙금이 남아 있는 조니와  형 사이의 과거, 매력적인 사내긴 하지만 책임감없는 어른으로 성장해 버린 막내를 보는 안타까움등등...개성이 넘친다는 말은 한없이 겸손한 것이고, 그보단 맹랑하고 대책없던 가족들의 장례식 성장기라고 보심 되겠다. 첫장면부터 심상치 않더니만 마지막까지 표현하기 쉽지 않은 사건들을 시원시원하게 풀어내던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문제가 없는 가족 구성원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는 가운데 능력껏 할 수 있는 소동들의 극한을 보여주면서, 그럼에도 그들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섹스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게 적나라해서 읽기가 조금 부담스럽긴 하지만, 현대 가족의 초상을 이보다 적나라하게 그려내기도 힘들다는 생각으로 재밌게 읽었다. 작가 특유의 냉소적인 유머감각이 압권으로, 극악을 달려가는 등장인물들 간의 충분히 낯을 붉힐 수 있는 갈등들을 유머 감각과 재치로 무난하게 넘겨 내는 솜씨가 관전 포인트다. 막 나가는 가족들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한가롭게 읽으라고 쓰여진 책은 아니다. 나름 통찰력에 깊이가 있는 편, 다만 섹스에 대한 표현 수위가 비교적 상세(?)한 편이라, 적나라한 표현에 얼굴이 붉어지시는 얌전한 분들은 들지 않으심도 좋을 듯 하다. 소설 자체적으로 본다면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사연을 테이블 위에 다 올려 놓고  갈등을 풀어간다는 점에서 화끈해서 좋았다. 일상 생활에서 이렇게 극적으로 자신의 갈등을 풀어낸다는 것은 아마도 거의 기적에 가까울 듯....상상력 만으로 만들어 낸 것임에도 어쩜 그리도 설득력있게 풀어내던지, 작가에게 점수를 왕창 주고 싶었다. 적어도 신선하고 특이하긴 했다. 물론 이렇게 정신 사나운 가족들이 진짜로 실제할까 의문스럽긴 했지만서도. 그렇게 가상이라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게끔 생생하게 표현해내던 묘사력이나 박력있는 전개 역시 소설의 개연성을 높여주고 있었지 않나 싶다. 한마디로 실제로 벌어지는 상황을 생중계받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잘 썼다는 말씀.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것이 아버지의 장례식 7 일 안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다. 제목 그대로, 당신없는 일주일 동안~! 멋지지 않는가. 가끔은 이렇게 치고 박고 하면서 풀어낸 갈등도 멋지다니까. 혼자 숨어서 풀려 했다간 결코 풀어내지 못했을 그런 갈등을 가족들과 함께 풀어간다는 점에서 아버지의 장례식이 의미가 있었던게 아닐까...그렇게 보니, 결국 아버지는 대단하셨다가 이 이 책의 결론이란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가족 만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랙 아이스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2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마이클 코넬리의 < 블러드 워커>가 하도 재밌어서 그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은 마이클 코넬리의 비교적 초기작으로, 데뷔작 이후에 쓴 책이라는 말에 좀 어설프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물론 지금의 노련함이 없긴 했지만 힘들여 쓴 듯한 테가 역력한 것이, 지금처럼 성공한 작가가 되기 위한 디딤돌 같은 작품이 아니었을까 한다. 더불어 그가 자신의 작품 주인공들을 그저 일회용으로 사용하는게 아니라, 마치 연작의 여러주인공들처럼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 책의 주인공인 해리 보슈의 경우만해도 그렇다. 그는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의 주인공인 마이클 변호사의 이복동생으로 나온다. 이책의 주인공이 다른 책에서는 자문역이거나 형제거나 친구거나, 뭐 이런 상황인데, 작가는 궁극적으로 LA란 도시를 배경으로 거대한 연작을 쓰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했다 .말하자면 책으로 쓰는 연속 드라마라고나 할까? 흥미로운 구성이고, 자신의 주인공들에게 애정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칭찬할만한 시도란 생각이 든다.

 

잡담이 길었다. 내용은 이렇다. 호텔에서 일주일전에 죽은 듯한 시체 한 구가 발견된다. 경찰 무선기로 그 소식을 전해 들은 형사 보슈는 그가 얼마전 실종된 경찰관 무어일거라 직감한다. 마약 소속 전담 팀장이었던 그는 내사과의 조사를 받을거란 소식이 전해진 뒤 사라졌었다. 그와 일면식이 있었던 보슈는 무어의 죽음을 캐보기로 하나, 엽총으로 머리가 날라간 시체는 자살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었다. 침입 흔적이 없는 방안에 지문이라고는 무어의 것뿐이고, 더군다나 뒷 주머니에서 나온 유서 한장은 자살일수밖엔 없다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무어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그의 아내를 찾아간 보슈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만다.

 

한편 무어가 실종되기 전에 자신에게 서류를 남겼다는 사실을 알게된 보슈는 흥분한다. 마약 똘마니의 살해 사건을 수사하고 있던 보슈는 무어에게 조언을 구했고, 뜻밖에도 그는 그에 대한 조사를 해주었던 것이다. 자살할 마음을 먹은 경찰이 자신에게 서류를 넘길 정도로 정신이 온전했다는 사실에 보슈는 의문이 생긴다. 더군다나 무어가 실종하기 전 익명의 멕시코인 시체를 발견했으며, 그 사건이 유야무야 넘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보슈는 뭔가가 잘못 되었다 생각을 하게 된다. 실종된 멕시코인 명단이 없나 찾아보던 보슈는 익명의 멕시코인이 무어의 고향 사람이며, 그곳이 신종 마약인 블랙 아이스의 본거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보슈는 무어가 타살된 것이며, 그의 죽음은 마약 거래와 관련이 있을거란 생각에 멕시코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는 마약 왕이라는 교황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는데...

 

작가가 노련하기 전이라 좀 지리하게 끌고 가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스토리 자체는 탄탄했다. 마이클 코넬리가 그냥 하루아침에 작가가 된 사람이 아니며, 또 노력해서 작가가 된 사람도 아니라는걸 알게 해준 작품이 되겠다.--다른 말로 하면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다는 뜻--아버지가 없이 자란 아이였던 보슈가 자신과 같은 처지인 무어의 죽음을 캐 나가는 과정이 압권, 단지 추리 소설로써도 괜찮지만, 사람들의 사연을 다루는 솜씨 역시 탁월하지 않았는가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