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per Man (Mass Market Paperback)
Pratchett, Terry / Harper Torch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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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디스크월드계의 공식 죽음의 사자인 Death 는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휴가를 가게 된다. 그동안 인간이 벌이는 일들을 냉정하게 바라만 보아 온 Death 는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기꺼이 인간사회 일원으로 잠입을 시도 한다. 칠순이 넘은 과부 노랭이 농부집에 우연히 들르게 된 Death는 일자리를 찾느냐는 말에 솔깃해 한다. 먹여주고 재워 주는 조건으로 농장에서 일을 하게 된 Death는 다들 힘들어 하는 추수에 투입이 되지만, 알다시피 추수라면 그의 전매특허 아닌가. 갈고리를 가지고 신공의 묘기를 보여주는 그에게 다들 놀라고 만다. 난생(?)처음 인간과 생활하면서 궁금증을 해소해 가는  Death , 그가 점차 인간 사회에 적응을 해가는 반면 , 이상한 기운이 감도는 그에게 사람들은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한편 Death의 스릴 넘치는 생활과는 달리 인간 세상은 시쳇말로 아수라장이 된다. 죽은 자를 거두어 가는  가 사라졌으니 안 그렇겠는가. 인간 사회에 소동이 발생하리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특히 130여년동안 죽음만을 기다리다 드디어 죽을 날짜가 도래하자 미리 거하게 쫑 파티까지 열고 죽음을 축하했던 마법사 윈들은 죽은 다음 날까지도 여전히 자신이 현세에 남아 있아 있자 펄펄 뛴다. 그간 비교적 착실하게 살아왔노라 자부하던 그는 죽음이 자신을 데려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현 상황에 대해 자존심 상해하고 분노하던 윈들은 혹시나 자신이 아직 죽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해서 다른 경로로 죽는 방법을 모색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는걸 알아낸 윈들은 결국 다른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죽음을 이렇게 경쾌하게도 다루다니..역시나 테리 프래쳇의 기발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 싶다. Death라는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 내곤, 그가 지극히 단순한 호기심을 가진 존재라는 설정 하나만으로, 그가 가진 호기심을 풀어가는 과정속에서 벌어지는 소동들을 지극히 유쾌하게 때로는 박장대소하게 만들면서 그려내고 있었다. 죽음을 다루는 자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며, 죽음을 다루다 보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냉정하기 그지 없는 존재가 될 수밖엔 없었지만서도, 어떤 면에서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그의 모습에 고개가 끄떡여 지도록 만드는 것은 그야말로 테리 프리쳇만의 신공일 수도... 하여간 인간이 죽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라는 것에 대해 이 책보다 더 유쾌한 소동은 못 본 것 같다. 게다가 죽음이 오지 않는다고 분탕질을 하는 마법사라니...정말 이 양반, 사람 웃기게 하는데는 일가견이 있으시다니까. 전혀 심각하지 않게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던 책으로, 중간중간 정말로 기발하게 폭소하게 만드는 테리 프레쳇의 역발상들이 돋보이던 책이었다. 죽음과 닭과의 실갱이라던가--세상에, 난독증 닭이라니,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당연히 죽을 줄 알고 숙연하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자신이 안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수치스러워 하던 마법사 윈들은 또 얼마나 기 막히던지... 도대체 내가 뭘 잘 못했냐고요를  한탄하던 순진한 마법사를 보면서 웃지 않기란 매우 어려웠다. 그나저나 기발한 상상력에 있어선 둘째 가라면 서러워 하고도 남은 작가 테리 프레쳇, 그가 지금은 치매에 걸려 투병중이시라고 한다. 그렇게 영민한 분이...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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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잘 모르는 아이들의 숨겨진 삶 - 당신 아이를 움직이는 또래 집단의 힘
마이클 톰슨 & 캐서린 오닐 그레이스 & 로렌스 J. 코헨 지음, 김경숙 옮김 / 양철북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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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EBS에서 해준 다큐 <불리>를 보곤 왕따의 심각성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됐다. 그동안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귓등으로만 흘려 들었었고, 종종 자살을 하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때조차 어쩌다 극단으로 치달은 사건이라고만 생각했지, 그것이 체계적으로 벌어지는 사건이라고는 생각을 못했었다. 그런데 왕따 현장을 실제로 보니 그 파괴력이 상상 이상이었다. 더군다나 그런 일들을 벌이는 아이들이 평범한 보통 아이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이 컸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경각하게 한 것 , 왕따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그 누구도, 어떤 어른도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더라는 점이었다.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무기력하게 모른 척 하기 바빴고, 부모는 부모대로 왕따를 당하는 자식들에게 어떻게 대응을 해 줘야 하는지 모르고 있더라.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앞에서도 그 모양이니 보통때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려나 아득해지는 장면이었다. 그들의 무능력은 상상 이상이여서, 아이들이 그 안에서 좌절감에 자살을 하는 것도 무리도 아니었다. 친구들에게 당해, 선생님은 도움을 안 줘, 부모는 부모대로 맞고 왔다고 야단을 쳐, 사면초가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한마디로 피해자를 도와 주기는 커녕 피해자를 더욱 더 피해자로 만드는 것이 왕따의 진행과정이었다. 왕따 당한 아이들이 자살을 하게 되는 것이 비단 아이들의 문제만은 아니라는걸 알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식겁했다. 그리고 반성이 됐다. 우리 어른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아이들의 문제라는 이유로 방치했다는 것에 대해.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보니 의아스러웠다. 왜 아직까지도 그 흔한 대응 메뉴얼 하나 없는 것일까 라는...왕따 당한 아이들에 대한 이슈들이 문제가 된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닌데도, 왜 아무도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 것일까 싶었던 것이다. 왜냐면 다들 " 우리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라는 말만 되풀이 할 뿐, 자신들의 행동을 어떻게 교정해야 할지에 대해선 감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무지가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자각이 되면, 무언가 조치를 취하는 것이 옳아 보이는구만, 다들 그저 예전에 수백만번은 했을 행동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기만 해요 "라고 토로하면서. 과연 그렇게 우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일까? 갑갑했다. 하지만 보기만 해도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걸 알아 내는건 어렵지 않았다. 일단 <불리>를 보면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점들을 보면 이렇다.


1. 선생님이 때리는 아이를 두둔하는 장면. 한 아이가 친구를 때리는 장면을 본 선생님이 둘을 부른다. 화해를 시키는 선생님. 때린 아이는 사과를 하면서 손을 내밀지만 맞은 아이는 화가 나서 손을 내밀지 못한다. 이때 선생님은 손을 내밀지 않는 아이를 야단친다. 자신은 맞았기 때문에 사과하고 싶지 않다는 아이의 말에 선생님은 이유가 있어서 맞았겠지 라고 한다. 이런 패턴들이 왜 자꾸 반복되는지 모르겠으나, 매맞는 아이들이나 매맞는 아내들, 그리고 매맞는 부모들의 경우는 늘 이런 식이다. 맞는 것도 억울한데 이유가 있어서 맞았을 거라 주변 사람들이 추측해 주는 것이다. 그들이 수치심에 입을 닫고 사는 것도 이상할게 없지 않나. 과연 이유가 있어서 맞았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왜 왕따에 대해 걱정하는 척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선생님들에게 왕따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은 있기는 한 것일까. 단지 아무 일 없이 하루가 조용하게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것은 아닐까.


2.부모들의 대응 자세. 자신의 자식이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도무지 눈치 채지 못하던 엄마에게 제작진이 그 장면을 보여 주었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날이 심해지는 왕따를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부모의 반응? 아이를 불러다 야단을 친다. 왜 맞고 사냐고 , 너는 입도 없냐고, 너를 곯리는 친구는 친구가 아니라고...자신의 아이가 남의 아이에게 당하는 꼴을 보려니 하도 억장이 무너져 그러는가보다고 짐작은 되지만서도, 아이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 주지 못하는 부모가 맘에 안 들었다. 난 당연히 아이의 상처를 먼저 보듬어 줄거라 생각했었으니 말이다. 부모는 아이가 문제를 집으로 불러 들인 것에만 신경을 쓰는 듯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아무 문제 없이 학교나 다니면 좋은데  왜 우리가 신경을 쓰게 하냐는 것이다. 그런 것 정도는 네 선에서 알아서 해결했어야지..라는 뉘앙스.


그렇다 보니 아이들은 기댈 곳이 없었다. 왕따 문제가 단지 아이들 문제라고? 아니다. 아이들을 귀찮아 하는 어른들의 문제기도 하다. 자살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놀라는 척 호듭갑만 떨다, 그 후론 까맣게 잊어 버리는 어른들의 문제다. 자살한 아이의 부모가 울면서 들고 일어날 때 나몰라라 하는 선생님들의 문제기도 하고, 그렇게 많은 개선책 건의에도 불구하고 늘 같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교육관계자들의 문제기도 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하고,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는 어른들의 문제라는 것이다. 왜 우린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면서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는 것일까. 조금만 손을 내밀면 보다 나은 해결책을 내어 놓을 수 있을 텐데도 말이다.


어른들은 잘 모르는 아이들의 숨겨진 삶. 이 책에서도 왕따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선 딱히 대답을 주지 못한다. 아니, 주었는데도 내가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읽기는 했는데, 아무리 봐도 왕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내 자식이 왕따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선 적절한 메뉴얼이라고 할만한걸 찾아 볼 수 없었다. 기대한 명쾌함이 아니라 어디서나 들을 수 있었던 흔하고 미적지근한 일반론만 있다는 것은 마법의 주문을 기대하면서 열심히 읽어 내려간 나에겐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이 책에선 아이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들여다는 본다. 관심이 있다는 뜻이다.  착하고 마냥 순수해보이는 그들이 왜 또래들에게는 그렇게 잔인한지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그리고 그것이 당하는 아이들에게 왜 그다지도 상처가 되는지도...더불어 그것이 그저 너희들은 착하게 살아라는 말로는 해결되지 않는 복잡한 성격을 띤 것이라는 점도.  그렇다. 개입을 해야 한다. 그들은 완전히 성숙한 어른이 아니니 말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왕따가 존재하는 걸 보면 아직은 미숙한 그들이 자신들만의 사회생활을 해 나가면서 그런 상황을 연출해 내는 것이 그렇게 극단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걸 이해해야 한다. 하니 상황이 악화되다 못해 통제불능이 되어서, 고통에 울부짖는 아이들이 나오기 전에 우리 어른들이 무언가 해야 한다. 다만 조건이 있다면 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명해 지기 위해선 좀 더 관심과 사랑을 갖고 그들을 들여다 봐야 한다. 사랑한다는 말 만으로는 부족하다. 행동이 필요하다. 그리고 간절히 바라건데, 누군가 적절한 메뉴얼을 만들어 주길 고대한다. 그러기 위해선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일단 정확하게 통찰하고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이 책의 저자 같은 심리학자가...매맞는 아내들의 심리에 대해 , 알콜중독자 가족들의 심리에 대해 , 그들의 상황이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심리학자들은 알려 주었다. 그것이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과 안도감을 주는지 짐작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공정함이란 그런 것이다. 모두를 안도하게 하고 설득한다. 그것처럼, 왕따에 대한 연구를 좀 더 해주시길 바란다. 지금의 선생님들처럼 소극적이고 모른 척 하는 자세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하는데는 어느 정도 게으름도 있지만 무지에서 기인한 것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니 누군가 알려 주시라. 어떻게 우리가 해야 하는지를...그런 시발점이 바로 이런 책이라는 생각에서 추천작으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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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이스트 - 아웃케이스 없음
조 라이트 감독,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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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사를 쓴다는 것외엔 인생에 다른 낙이 없는 삶을 살고 있던 LA 타임즈 기자 로페즈는 어느날 길 한 복판에서 연주를 하고 있는 거지를 보게 된다. 그의 이름은 나다니엘, 별 생각없이 나다니엘의 연주를 듣던 듣던 로페즈는 호기심 삼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뜻밖에도 그가 줄리어드 음대를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설마 라고 생각한 그는 줄리어드 음대에 문의를 해보고, 우여곡절을 거쳐 나다니엘이 진짜로 70년대 줄리어드를 다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70년대 흑인이 줄리어드를 다닌다는 자체가 대단한 것이었을텐데, 더군다나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나 제대로 된 뒷 바라지를 받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입학이 된 것이었다. 그만큼 음악적 재능이 뛰어 났었다는 말씀. 하지만 재능이 워낙 뛰어나서였을까? 그는 2학년으로 올라갈 즈음 정신분열증을 앓게 되면서 발작을 일으키게 된다. 결국 학교를 자퇴하게 된 그는 집으로 돌아가 치료를 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악화만 되어 가는 정신병에 가족들은 지쳐 나가 떨어지게 된다. 결국 오십줄이 넘어 LA의 떠돌이로 살고 있는 나다니엘,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음악만은 놓치 않고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알게 된 로페즈는 그를 도와 주기로 결정을 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길거리 생활을 해온 나다니엘은 그의 진심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처음 조금만 도와주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한 로페즈는 정신병자를 돕는다는 것이 쉽지많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감동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한 베스트셀러 원작을 각색해서 만든 영화다. 현재 연기를 가장 잘 하는 일급 배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제미이 폭스가 주연을 맡았고, 클래식 음악이 배경으로 떠돈다. 아마추어가 연주를 한다고 해도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베토벤과 바흐의 작품들이다. 이런 세가지, 좋은 원작과 뛰어난 배우들, 그리고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배경 음악...이 세가지를 가지고도 이 영화는 구제를 하지 못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영화는 끔찍했으니 말이다. 심지어는 이 영화의 목적이 원작을 말아 먹는 새로운 경지의 표본이 되고 싶어 제작된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원작에서 감동을 받았떤 부분들은 남긴없이 잘려 나가고, 새롭게 투입된 장면들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이야기는 뚝뚝 끊겨 나가기 일수고, 개연성은 개나 줘 버린 형편없는 대본을 가지고 연기를 하다보니 연기 하는 배우들이 안스럽기 그지 없었다. 저런 대본을 가지고 설득력 있는 장면을 만들어 내기 위해 애를 쓰는 배우들을 보자니 배우도 아무나 하는게 아니지 싶더라. 하지만 그들의 열연에도 살리지 못하는 것이 있으니...도무지 이건 누가 와서 연기를 한다고 해도 살릴만한 작품이 아니었지 싶다. 하여간 원작을 너무 심하게 말아 먹어서, 보는 내내 끔찍하단 생각이 떠나지 않았던 작품. 누구보다 원작가가 아쉬워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가 나다니엘의 이야기를 기삿거리로 썼을 때는 정말로 그를 도와주고 싶었던 마음에 쓴 것이었으니 말이다. 한 거지를 도아주겠다는 영웅심리가 아니라. 그런 진심이 제대로 보여지지 못한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원작은 정말로 좋은데...이 영화에 혹 실망하신 분이라면 원작을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원작자의 따스한 심정이 올곧이 느껴지실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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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분야에서 최강이라 자부하는 전직 특수부대원들로 구성된 팀" 익스펜더블" , 그들은 자신들을 익스펜더블--소모적인--이라고 자조하지만서도, 본인들의 실력에 있어서 만큼은 최상이라고 자부한다. 돈만 준다면 어디든지 뛰어들어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응용해서 한 판 신나게 펼쳐 놓는데는 그들을 따라갈 자가 없다. 납치된 중국인 백만장자를 구해 오라는 미션에 참가한 그들은 고물 비행기와 전차로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교본을 보여 주는 듯 마음껏 화력을 퍼붓고 돌아온다. 물론 건강하게 살아있는 백만장자와 함께... 한바탕 했으니 이제 쉴까나 했던 그들은 미스터 처지의 등장으로 새로운 미션에 투입된다. 산속에 추락한 비행기 안에 위험한 물건이 있는데, 그걸 찾아 오라는 것이었다. 여자를 데리고 가라는 말에 뜨악했던 대원들은 하지만 예상대로 모든 것은 수월하게 풀려 나가재 마음을 놓는다. 무사히 물건을 회수하고 돌아오려는 찰나, 그들은 빌레인 이라는 악당의 습격을 받게 된다. 난데없는 매복 공격에 물건을 빼앗긴 것은 물론, 젊은 대원마저 잃은 팀원들은 복수를 하겠다고 다짐을 한다. 그들이 빼앗아 간 것이 구 러시아가 숨겨 놓은 플로토늄을 숨긴 지도라는걸 알게 된 익스펜더블 일행은 그 광산으로 날아간다. 그리곤 광산 주변 주민들이 빌레인 일당에게 사로 잡혀 노예처럼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여자와 어린 아이만 남은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을 도와 줄 것을 익스펜더블 팀에게 요청한다. 하지만 빌레인 일당과 용병들을 상대하기엔 익스펜더블 팀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과연 그들을 숫적 열세를 어떻게 만회할 것인가? 익스펜더블 팀이 용병들과 싸우고 있는 사이 빌레일 일당은 플로토튬을 팔아 치우기 위해 공항으로 떠나는데...

길게 쓸만한 줄거리가 없었음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인상적이었던 것들만 몇 자 적어보자면...

1. 노장들의 투혼이 눈물 겨웠다. 예전엔 한 명 씩 주연으로 나오시던 분들이 이렇게 떼거지로 나오는걸 보면서 안스럽다고 해야 하나, 그나마 감회가 새롭다고 해야 하나. 헷갈리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나이가 들었음에도 액션을 할 정도로 몸을 가꾸셨다는 점을 높이 사야 한다는 것은 알겠지만서도, 그래도 느껴지는 세월에 안스러운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더군다나 영화가 내내 구식으로 진행된다. 몸으로 직접 부딪혀 가면서 찍은 영화라는 것. 달인의 경지에 이른 노장들의 액션은 그자체로 군더더기 하나 없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들이 자신들을 박물관 감이라고 자조하면서도, 그래도 일선에서 아직도 뛸 수 있는 자신감의 원천이 바로 그것일 듯...

2. 공항에서 악당과 익스펜더블 팀이 맞짱을 뜨는데, 지나가는 승객들은 생각 하지 않고 그냥  일단 마구 쏴 댄다. 어찌나 섬세해 주시던지...민간인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더라는 점에서 놀랍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보통은 그 정도야 당연히 생각해줘야 하는데 말이다. 이 영화에선 그런 것 쯤은 아주 자연스례 무시하고 넘어가는데 웃고 말았다. 한마디로 생명 존중 사상은 이 영화에선 전혀 상대할 가치가 되지 못하다는 것이지. 그런 면에서는 악당이나 익스펜더블 팀이나 막상막하, 복잡할 것 없이 일단 아무 생각없이 때려 부셔대는 그들이 단순해서 좋더라. 영화의 장르에 따라서는 단순한 것이 미덕이 될 수도.


3. 자칭 외로운 늑대로, 많은 장면에 등장하진 않으시지만,  등장하실때마다 존재감 하나는 확실하던 척 노리스...이 영화의 씬 스틸러로 임명하는 바입니다.

4. 그래도 줄거리가 있게 만들려 애를 쓴 티가 역력했다. 그마저도 없으면 마구 마구 아무 생각없이 쏴대는 그들의 총질이 의미가 없어 보였을 것이 뻔했으니 말이다. 하여간 간신히 대략적인 줄거리만 세우고, 나머진  총질로 채우고 있다고 보심 되는데, 아마도 배우들도 대사를 해야 하는 씬보단 액션 씬이 더 편했을 듯 싶었다. 야. 신난다. 이제 막 싸워도 된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아, 이런 까먹을 뻔 했다. 총만 나오는건 물론 아니다. 종종 칼도 나오고, 발차기, 대포, 쇠사슬도 등장하긴 한다. 개개 주인공들이 자신의 특성에 맞게 한가닥씩 보여준다는 것이 특징이나, 영화가 끝날쯤 되면 총소리에 적응이 되어 놀라지 않게 될 정도로 총질만은 다들 열심히 해준신다고 보심 될 듯... 

결론? 절대적으로 so so 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무엇보다 남자들이 좋아할만한 영화가 아닐까 한다.남자들의 우정과 남자들이 더 잘 이해할 듯한 유머가 산재한 영화였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지치지 않고 터져주는 화력이 있으니 남자들이 좋아할만도.. 내가 왜 이걸 보고 있는걸까 내내 궁금해 하면서도 그럭저럭 본 걸 보면 여자들이 보기에 무리없이 만들어 지긴 한 것 같다.하나  여자들이 좋아할까 라는 것은 미지수. 그럭저럭 지루하지 않게 보는 거랑 좋아하는 거랑은 다른 것이니까. 그럼에도 so so 작에 넣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공들여 만들었다는 뜻이 아닐런지...배우들의 액션 연기만은 일품이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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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박세형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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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볼라뇨의 현란한 글발과 동시에 한계를 엿볼 수 있게 해준 단편집이다. 총 14개의 단편들을 모아 놓은 것인데, 가장 인상적이고 마음에 들었던 것은 맨 처음 등장한 " 센시니 " 였다. 사실 이 작품만 읽었는때는 어쩌다 내가 아직까지  볼라뇨의 진가를 발견하지 못했는가 한탄할 정도였다. 그만큼 완벽했다는 말씀. 물론 그런 탄식은 그 다음에서부터 서서히 허물어 갔지만서도, 하여간 '센시니'의 내용은 이렇다. 


< 가난한 이십대 시절 우연히 응모한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탄 나는 내가 존경해 마지 않던  센시니라는 작가 역시 우수상을 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같은 공모전에서 상을 탔다는 사실에 흥분한 나는 주소를 물어 그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렇게 시작된 그와의 펜팔은  내가 예상치 못한쪽으로 전개 되어 나가지만 오히려 나는 신이 난다. 우습게도 우리가 나눈 편지 대부분은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였고, 그 정보라는 것이 바로 다양한 공모전에 대한 것이었다. 존경하옵는...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문학에 대한 거창한 대화를 나눌줄 알았던 나는 오히려 허세가 전혀 없는 그의 태도에 , 그리고 나를 자신과 같은 처지의 동료로 대해주는 그의 가식없음에 반하고 만다. 같은 소설을 가지고  다른 공모전들에 꾸준히 응모하고 있다는 센시니는 나에게도 그렇게 해볼 것을 권유한다. 어차피 주최자들은 응모작들을 읽지 않는다면서 말이다. 그렇게 가난과 기성세대에 대한 조롱으로 시작된 센시니의 공모전 응모는 적어도 그에게 돈을 벌어다 주고 있었고, 이젠 그의 조롱에 나도 함께 동참하게 된다. 공모전에 대한 정보 외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던 나는 점차 센시니의 가족사에 대해 듣게  된다. 기자인 그의 장남이 실종되었다는 것과 그가 막내딸을 무척이나 사랑한다는 것까지... 그후 센시니는 무덤가에서 발굴된 50여구의 시체중에서 장남의 것으로 보이는 시신을 발굴했다는 소식을 전해 오고, 그 후  아르헨티나가 민주화된 시점에 아들의 실종을 확인하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그와의 연락은 끊어지고 만다. 우연히 그가 사망했다는 부고를 접한 나는 나중에 그의 딸이 집으로 찾아오자 아무말 없이 그녀를 집으로 들인다. 그리곤 그간의  자초지종에 대해 묻게 되는데......>

 

독재에 대한 저항으로 날로 격화되어 가는 문인들의 고초, 되는대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 낙오자 , 살인자, 우울증 환자, 섹스 중독자, 마피아등 인간의 삶이 어떻게 망가지고 피폐해지고 있는지, 인생이라는 거대한 조류 앞에 인간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던 단편집이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단편의 특징이라면 그가 만난 사람의 인생 역정을 끝까지 조망해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짦은 단편안에서도 평범하지도 비범하지도 않은 인물들이 어떻게 일그러지고 망가져 가는지 인생 전체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그건 그가 오랜 시간에 걸쳐 인간을 예리한 관찰력으로 관심있게 지켜본 사람이여서 가능했던게 아닐까 라는 추측을 하게 한다. 찰나가 아니라 그들의 결말까지 보여주는걸 보면 인생을 조망하는 시야가 넓다는 것도 그만의 장점. 그걸 보면 아마도 그는 인생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끊임없이 궁금해 한 사람이지 않을까 싶었다. 인생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과 통찰력이라. 그가 어쩌다 작가가 되었을지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런 장점들에 비해 한계라면 현실에 대한 냉소가 지나쳐 보인다는 점? 때론 조롱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인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 그래서 누구보다 사랑하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게 하는 작가였다. 한마디로 인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고나 할까. 왜 그가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지는 뭐, 굳이 물어봐야 할 필요도 없는 일이겠지만서도, 만약 그가 아주 아주 늙었을때까지 살아있었다면 어떤 글을 썼을까 궁금해지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조롱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 인간성에 대한 믿음을 다소나마 회복할 수 있었을까? 내진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그의 현실에 대한 통찰에는 감동을 받았지만, 그가 그려낸 현실에는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탈출구라고 해야 하나 ? 통로라고 해야 하나, 그런게 없어서. 어쩌면 그가 그려 낸 현실이 진짜 현실에 근접한 것일 지도 모르겠지만서도, 내리막만 존재하는 암담한 현실이란 받아 들이기는 커녕 읽는 것조차 버거웠다. 아마 그 자신도 출구없는 자신의 소설에 숨이 막혀 하진 않았을지... 하지만 그는 거짓말을 하는 작가는 못되었으니, 감동이 없는 소설을 쓸 망정 지어내지는 않겠다고 다짐했을 작가의 고집을 안스러워 해야 할지 아니면 박수를 보내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쩜  후기 작품에는 그 고집을 꺽지 않고도 감동적인 소설을 써 냈을 수 있었을지 모르니, 나중에 확인을 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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