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으로 대학을 다니고 있던 하나는 강의실에서 늑대처럼 홀로 떨여져 앉아 있는 '그' 를 만나게 된다. 외로운 처지의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지고, '그'는 어렵사리 자신이 늑대 인간이라는 것을 밝힌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것 정도는 무섭지 않았던 하나는 임신을 하고, 곧 연년생 아이 둘이 태어난다. 눈과 비가 오던 날 태어났다고 아이들의 이름을 유키와 아메로 지은 두 사람은 행복에 젖는다. 하지만 둘째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그만 사고로 죽고 만다. 늑대가 어떻게 어른이 되는지 전혀 아는게 없던 하나는 늑대 아이를 어떻게 홀로 키우나 걱정이다. 유일하게 남겨진 '그'의 흔적인 운전 면허증을 보면서 하나는 다짐한다. 비록 혼자일 지라도 아이들 잘 키워 내겠다고, 그러니 지켜 보라고 말이다.

하지만 역시 늑대 아이를 키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본인들도 자신이 인간인지 늑대인지 헷갈리는 듯한 아이들은 화가 나거나 신이 나면 순식간에 늑대로 변해서 뛰어다니기 일수다. 늑대로써의 본성이 그대로 남아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을 최대한 사람들의 이목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던 하나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머나먼 시골로 이사를 간다. 결심을 단단히 하고 온 사람들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나간다는 산골에서 하나는 빈집을 수리하고, 텃밭을 가꾸면서 아이들을 키워 나가기 시작한다. 처음엔 하나 가족을 삐딱하게 바라보던 사람들도 하나의 진지함과 열성에 감화되어 점차 그녀를 도와주기 시작한다. 하나가 산골에서 점차 자리를 잡아나가는 사이 아이들 역시 무럭무럭 자라난다. 외향적이고 겁이 없는 큰 아이 유키는 부산하기 그지 없고, 둘째 아메는 남자 아이임에도 내향적이고 소심하다. 학교 갈 나이가 되자 유키는 엄마를 조르고 졸라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다. 절대 늑대로 변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고 학교에 다니게 된 유키는 곧 학교에 적응해서 신나해 하지만, 아메는 좀처럼 누나처럼 적응하질 못한다. 결국 초등학교의 마지막 학년쯤 되자 둘의 차이는 인간과 늑대의 간격만큼 벌어지게 된다. 늑대가 되어 숲에서 살고 싶은 아메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들 속에서 살고 싶은 유키, 둘의 갈등을 지켜 보면서 엄마는 알지 못할 불안감에 떨기 시작하는데...

<유키와 아메의 어린 시절, 놀다가 집을 어질러 놓은 현장을 보고 계심>          

 <하나 가족의 행복한 한때, 그들이 아직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할 수 있었던 때>

늑대와 인간 사이에 아이가 생기고, 그 아이들을 엄마 혼자서 힘들게 키운다는 이야기의 영화다. 맨처음 영화가 시작되면서 드러나는 화면이 압권이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오는 장면도...어떻게 저렇게 섬세하고 아름답게 표현을 할까 입이 안 다물어 질 정도로 장관이다. 하지만 애니는 영화다. 그림이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이야기도 재밌어야 한다는 뜻이다. 해서 이야기가 어떻게 풀려나갈지 궁금했었는데 ,일단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전개해 나갔다는 점에서는 다행이지 싶었다. 특히 하나가 아이들을 위해 산골로 가게 되면서 적응하는 과정들이 볼만했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양육 전쟁만 그린줄 알았는데, 오히려 산골에서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들이 더 흥미진진하게 묘사되고 있었지 않나 한다. 마치 이야기는 이렇게 풀어나가는 것이야 하는 듯, 서두르지 않으면서 하나와 산골 사람들과의 관계가 점점 친밀해지는 과정들을 정겹게 그려내고 있었는데, 그것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결국 영화 초반엔 엄마 혼자 키워낼 수 있을까 한없이 걱정되던 두 아이가 조금씩 조금씩 인간 꼴을 갖춘 어린이로 성장해 가는 모습이 훈훈했다. 거기에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보는 건 덤!  불가능해 보이던 미션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해낸 엄마에게 박수를, 하지만 그렇게 대견한 그녀에게 마지막 관문이 남아있었으니, 바로, 그 아이들의 반쪽 유전자는 늑대라는 것, 해서 자신의 본능을 잃어버리지 못한 아메는 결국 엄마와의 충돌이 불가피하게 된다. 과연 하나는 무엇을 선택하게 될 것인가?

                          <아이들의 키를 재고 있는 하나,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이런 장면들이 익숙하실 것이다.>


아이들을 키웠던 12년이 꿈이나 동화같았다고 말하는 한 엄마의 회상기다. 딸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 양육기는 늑대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라는 변칙성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키우시는 분들에게 아주 아주 익숙하게 들려온다. 늑대의 아이건 인간의 아이건 간에 키우는 것이 쉽지 않은건 마찬가지니 말이다. 그래서 자신이 낳은 아이가 결코 자신과 같을 수 없으며, 언젠가는 그를 보내 줘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 가는 하나의 여정이 매우 쉽게 공감이 되었다. 아이를 놔주는 것이 올바른 길임을 , 자신이 아무리 막고 싶다해도 막아선 안 되는 것임을 결국엔 받아들여야 하는 것 또한 어른이 해야 할 일이니 말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더 보호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누구에게나 때가 오는 법 아니겠는가. 그가 자신의 길을 간다고 나섰을때 막아설 순 없다는 것을 , 설령 그것이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엄마라 할지라도 말이다.


걸작이라는 말에 보긴 봤는데, 그저 괜찮다 하는 정도였다. 그래도 중반까지는 재밌게 보긴 했는데, 중반 이후로 마무리가 어째 밋밋하게 흐르는 듯했다. 아무리 내가 낳은 아이라도 나와 다른 존재이니 그의 성장과 선택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주제에는 백번 공감하지만서도, 다만, 그것이 그다지 감동적으로 다가오진 않더라. 아마도 내가 그걸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해서 그런 것인진 모르겠지만서도, 아니면 엄마인 적이 없어서? 하여간 모자의 이별 장면에 눈물을 흘리시는 분들도 있는데 나는 전혀 상관없이 말똥 말똥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든 불평 하나. 누가 이걸 전체 연령가로 해놓은 거야? 이게 전체 연령가라니, 그럼 유치원생이 봐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란 말야? 적어도 12살이나 15살은 되어야지나 이해가 될 듯 싶은 영화를 전체 관람가로 해놓다니, 7 살인 조카랑 갈까하다 혼자 갔는데, 보는 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데리고 갔었다간 매우 미안해 하면서 영화관을 나왔을 테니 말이다. 하니, 제발, 전체 관람가는 진짜로 전체가 관람할 수 있는 것에만 붙여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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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도 따뜻한 햇살에서 - 텃밭 옆 작은 통나무집 88세, 85세 노부부 이야기
츠바타 슈이치.츠바타 히데코 지음, 오나영 옮김 / 청림Life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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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표지를 들면 정면으로 사진기를 바라보고 수줍게 웃고 계신 두 할머니 할아버지가 눈에 뜨이는데, 그들의 미소가 싱그럽기 그지 없다. 저렇게 깨끗하게 나이드는 것도 쉽지 않은데, 노동으로 군살 없는 몸매에 선한 표정이 이들이 얼마나 인생을 잘 살아왔을지 쉽사리 짐작하게 한다., 나이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했는데, 이분들이야말로 그 말에 조금도 동요하지 않을 분들이 아닐런지 싶다.


어렸을 적, 내가 가장 많이 심부름을 가는 곳은 할머니 댁이었다. 할머니 댁에 이런 저런 심부름을 하러 가면 , 그때가 언제가 되었든 할머니는 나를 반기시며 벌떡 일어나 냉장고를 뒤지고, 장독대에 다녀오고, 옥상에 있는 텃밭에 올라가 먹을만한 것들을 따오셨다. 그리곤 정말 순식간에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뚝딱하고 내오셨다. 내가 밥을 먹었다고 해도 언제나 다시 먹여서 보내려 하시던 그 고집을 난 한번도 꺽지 못했다. 거기에 밥을 먹었다고 해도 여전히 들어가게 만들던 할머니의 음식 솜씨는 가히 동네에서 전설급이었다. 대단한 재료가 들어간 것도 아닌데도, 힘들여서 만드는게 아니라 그냥 설렁설렁 하시는 듯한데도, 어쩜 그리도 맛있던지...내가 살아오면서 먹었던 어떤 고급 음식점 요리도 따라하지 못하는 할머니의 요리들은 내가 어릴 적을 회상할때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할머니의 그 부지럼함과 선량함, 그리고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야말로 내가 할머니를 좋아하는 이유였고, 그런 할머니를 볼때마다 늘 의문이었다. 왜 할머니는 저렇게 부지런하게 사실까? 이제 늙으셨으니 조금은 게으름을 피워도 좋을텐데...하지만 할머니는 중병이 들어서 드러눕지 않으시는한 결코 손에서 일을 놓으시려 하지 않았다. 이 책을 보면서 난 할머니가 떠올랐다.  뜨거운 여름의 한 낮만 아니라면 하루종일 동동 거리면서 일거리르 찾아 다닌다는 두 할아버지 할머니 부부의 일상이 자연스레 내 할머니를 연상하게 했기 때문이다. 어찌나 바지런을 떠시면서 1년을 보내시는지...200평이 넘는 밭에 할아버지가 직접 설계해서 지었다는 ( 할아버지의 직업은 전직 건축가!) 소박한 집에서 두 노부부가 한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해서 자신들만이 아니라 주변에도 챙겨줄만큼의 먹거리를 직접 생각해 내는데, 그 체계적임에 놀라고 말았다. 그저 소일삼아 하는 심심풀이가 아니라, 밭을 구역 단위로, 계절을 시간 단위로 쪼개서 그들은 조금의 낭비도 없이 그렇게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그 1년을 모은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책을 읽기 전엔 주변에서 흔히들 보는 그렇고 그런 보통 할머니 할아버지쯤으로 생각했다가 이 양반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삶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 분들은 절대 보통분들이 아니었다. 겉으로는 그래 보일지 모르지만서도 말이다.


일단 결혼생활 60여년동안 싸움 한번 해본 적이 없다 하니, 요즘이라면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충돌 없이 산다는게 좋은건지, 내진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선 논외로 하더라도, 적어도 큰소리 내면서 싸움을 하는게 좋을게 없다는 점에서 두 분의 지혜가 놀랍다. 거기에 아무리 부부라지만 서로를 배려하면서 늙어간다는 것이 어디 흔한 일이랴.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배려하고, 할머니를 그런 할아버지를 존경하고...부부 단 둘이서 살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게 오손도손 살고 있는 모습을 보려니 저절로 숙연해졌다. 아~ 삶이 이렇게 단순하고 소박하며 아름답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만은 이란 생각이 들게 하시는 부부였다. 하여간 누가 그들을 보건 간에 아마 인상을 찌프릴 일은 전혀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때문에 나의 삶이 반성이 되면 되었지 말이다. 아마도 평생 서로에게 감정의 적금을 많이씩들 부으셔서, 지금 그렇게 마음의 부자로 사시는 것이겠지 싶다.


20대를 지나 30대를 넘어서고 나면 슬슬 걱정이 된다. 죽는 것도 그렇지만 늙어 가는 것에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까 그런 것 때문에 말이다. 늙는 것을 생각할때마다 즐거운 것은 없고, 오로지 나쁜 일만 있을 것 같아서 미리 겁부터 났는데, 이 두 부부를 보고 나니 희망이 보이는 기분이다. 이렇게 늙어갈 수 있다면 늙는다는 것도 나쁘지 않지 싶다. 죽어가기 전까지 힘들여 일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으며, 남에게 나눠 주는 삶에 감사하고, 즐거워 한다면 어쩜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바쁘기만 한 젊은 시절과는 달리 인생을 진짜로 즐길 수 있는 시기가 바로 노년이 아닐런지... 그런 희망을 갖도록 모범 답안을 보여 주던 츠바타 노부부, 두분의 행복한 일상이 지금처럼 무리없이 이어져 나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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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라이프 SE - (다큐멘터리 '동' 수록)
지아 장커 감독, 자오타오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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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중국이 얼마나 거대한 나라이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인지 어렴풋이 헤아리게 된 영화다. 그들의 무심한 듯한 표정 속에 살아 있던 인정들, 눈이 시릴 정도의 어마어마한 절경들이 화면을 가득 메우지만, 그곳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살아내느라 경치는 안중에 없다. 아내를 찾아온 남자와 남편을 찾아 온 여자, 둘의 사람 찾기, 인생 찾기, 행복 찾기는 안스러울 정도로 절박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원하는 것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어차피 그것이 인생이 아니던가. 해피엔딩이란 환상속에서나 존재할 뿐, 현실속의  해피 엔딩이란 잠깐동안 스쳐 지나가는 찰나에 불과할 지 모른다. 중국의 절경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고,세상은 놀라움 투성이지만, 눈을 들어 그것을 바라볼 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 조차 드문 현실, 삶에 치이고, 배반당하며, 오해 받고, 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극히 건조한 톤으로 들려주고 있었다. 삼협을 유유히 흐르는 무심한 강물처럼, 사람들의 인생 역시 그렇게 흘러 가고 있나니...느리게 흘러가는 영화의 박자에 몸을 맡기고 보지 않는다면 필시 지루하게 느껴질 영화. 볼 때는 전혀 불만이 없었음에도 , 아쉽게도 보고 나니 기억에 남는게 없다, 물론 중국 삼협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잊기란 지난한 일이므로 그건 빼고서 말이다.

 

 
이 영화의 일등 공신은 중국의 경치였다. 우리가 아무리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에 대해 거품물고 떠든다고 한들, 중국의 자연에 비하면 명함을 못 내밀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던 장면.  아무리 충성심에 우겨댄다고 해도 우린 그들의 스케일에 비하면 소박한 정원에 불과하더라....중국인들의 만만디, 그들의 저력, 그들의 자부심, 그들의 오만함, 그들의 거만함이 순간 이해가 됐다. 개인으로 중국인은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지만, 나라로써 중국은 결코 아무것도 아닌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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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전 - 거장들의 자화상으로 미술사를 산책하다
천빈 지음, 정유희 옮김 / 어바웃어북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거장들의 자화상으로 미술사를 산책하다>라는 표제가 딱 들어 맞는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인데, 사진이 나오기 전에는 그림이 아니라면 자신의 모습을 후대에 남기는 방법이 없었겠다 싶다. 그런데 다른 누구도 아니고 자기 자신이 화가라면? 자신을 그리는 것이야말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 아니었을까. 일단 모델료가 공짜인데다, 내킬때마다 아무때나 그릴 수 있으며, 이런 저런 포즈를 취하라고 까다로운 주문을 할 필요도 없고, 완성이 되고 나면 자신에 대한 선물이 될터이니 말이다. 다른 직업군과는 달리, 그들의 얼굴이 영생을 얻는다는 점에서는 어쩜 화가라는 직업이 갖는 특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후대에까지 얼굴을 남긴다는건 지극히 한정된 사람에 한해서나 가능했었으니 말이다. 거기에 자기 자신의 얼굴을 그리는 것이니, 얼마나 잘 알고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서 그렸겠는가. 그렇다 보니, 이 책의 마지막 편에 해당하는 <거장들의 자화상 컬렉션>을 들여다 보는데, 감탄이 절로 흘러 나왔다. 그 다양한 얼굴들에, 생동감 넘치는 표정들, 그리고 화가 개인들의 특성에 따른 화법들이 사진에선 볼 수 없는 진정성과 동시에 개성을 느끼게 해줬다. 재밌는 것은 자화상을 그렇게 늘어 놓으니 화가 자신의 화법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굳이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고 해도 화가 자신의 서명이 그림 안에 들어있는 듯 했으니 말이다. 저자가 책 권두에 자화상만으로도 미술사를 한 번에 흝어볼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갔다. 한마디로 자신의 화풍과 개성을 전력을 다해 불어넣은 것이 자화상이었다. 그들이 그것들을 그릴 적에 어떤 의도로 그렸는가는 화가가 아닌 나로써는 짐작 못하겠지만서도, 적어도 한가지만은 분명했다. 그들이 그린 것은 비단 자신의 얼굴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다. 마치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이게 내가 가진 모든 것이야. 어때? 괜찮지 않아? " 라고...


표제에 쓰인 미술사를 산책하다라는 말에서 보듯, 거장이라 불릴만한 화가들의 자화상을 두루두루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거기에 약간의 살을 붙여, 그 화가에 대한 이력이나 화풍, 그리고 인생사까지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어, 그를 전혀 모른다고 해도 이해를 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고 있었다. 많은 화가들을 소개하려다 보니, 그들 각자의 약력이 간소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조금은 아쉽긴 했지만, 만약 진지하게 파고 들었더라면 아마도 이 책 두께로는 바로크 시대도 넘지 못했을 것이다. 페이지의 압박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타협이었을 것이라는 뜻. 


등장하는 화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름만으로도 반가운 화가들이 주르르 이어진다. 저자가 자화상에 빠지도록 이끈 장본인이라는 알브레히트 뒤러부터 시작해서, 현자에 가장 근사치로 보이는 다빈치, '초상화는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고 있는 한스 홀바인 2세, '플란더스 개' 의 화가 루벤스, 읽히는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철학하는 화가 푸생, 말년에 돈이 떨어지자 궁여지책으로 자화상을 주로 그린 렘브란트, <만종>의 주인공 답게 화려하지 않은 자화상을 남긴 밀레, 자화상을 무대 삼아 연기를 하고 있던 구스타프 쿠르베,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그로 인해 고통을 받았던 반 고흐, 죽음의 그림자를 달고 다닌 뭉크, 몽환적인 화풍이 그대로 드러나던 샤갈, 창작에 있어서만큼은 치열했던 피카소, 그리고 미친것이 확연히 드러나는 그림을 그리던 달리까지...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니 미술사 전체를 한번 휙하고 둘러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거기에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림을 이해하는데 일조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화가들마다 자화상을 그린 시점들이 제각각 달랐기 때문에 자화상을 통해서 그들의 인생을 개괄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인상적이었다. 인간으로써, 그들의 인생이 어떻게 풀려 나갔는지 그림만으로도 추측해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 책을 보고난 느낌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화가들은 천재다! 라는 것? 어쩜 그리도 그림을 잘 그리는지, 그들의 섬세한 표현과 무자비한 개성들, 도저히 인간이 그려낸 것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은 완벽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런 재능들이 별다른 교육 없이도 붓을 잡은 지 수년만에 만개해서 자신만의 족적을 남긴다는 사실은 놀랍기 그지 없었다. 우리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도 그들의 그림을 보면서 절로 경배하게 되는 게 바로 그때문이 아닐런지. 도무지 감출 수 없는 , 아니 감춰지지 않는 재능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거장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남자라는 것도 흥미로웠다. 음악적 재능과 마찬가지로, 회화적인 재능도 남자 뇌와 관련이 있는가 보다 싶어서다. 예전에 읽은 책에서 집안에 화가나 음악가가 많으면 자폐아가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고 하던데, 아마도 필시 그런 연관이 있는게 아닐까 한다.  미켈란젤로가 자폐아의 전형적인 증상을 갖고 있었고, 아마도 사방트였을 거라 추측하는 기사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데, 그럴듯하다 싶다. 아, 이야기가 옆으로 샜네. 하여간 그림들이 너무 아름답다. 다른 미술사 책을 보면 그림들이 흐릿해서 알아보기도 힘들다는 것이 불만이었는데, 일단 도상들이 뚜렷해서 좋았고, 저자가 선택한 그림들이 다들 각각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녀서도 좋았다. 이 저자의 의도대로, 가장 적은 가격에 거장들의 자화상 전람회를 관람하시고 싶으신 분들에게 안성맞춤일듯... 왜 이 저자가 다른 것도 아닌 자화상에 매료되었을지 이해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한다. 아마도 저자에 공감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는걸 아시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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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암투 한가운데서 점점 광기가 극에 달하고 있던 광해는 자신의 대역을 찾아 올 것을 도승지 (허균)에게 명한다. 암살 시도에 대비, 자신 대신 편전에 두게 하기 위함이다. 허균은 어렵사리 기방집에서 광대 노릇을 하고 있던 하선을 발견하곤 그를 데려 온다. 왕조차 헷갈릴 정도로 왕과 똑같은 외모에 목소리. 곧 진짜 왕은 정부를 찾아 궁을 빠져 나가고, 하선은 돈 몇 냥에 하룻밤 왕 놀이를 하게 된다. 그러던중 왕이 양귀비에 취해 쓰러지는 사태가 벌어지고, 국정 공백에 따른 혼란을 우려한 도승지와 조 내시는 하선을 데려와 며칠 땜빵 왕으로 세우기로 한다. 영문도 모른 채 끌려온 하선은 본격적인 왕 대역에 돌입하게 된다. 궁의 법도를 전혀 모르는 하선은 처음 이런 저런 실수를 하지만, 그런 실수마저 그간 까칠한 왕을 상대하면서 지쳐가고 있던 궁궐 사람들에겐 단비처럼 느껴진다. 독기가 좔좔 흐르는 표독스런 왕이 아니라 웃기도 하고 나인들에게 자상하게 하문도 하는 광해가 그들에겐 친근하기 이를데 없다. 한편 광대 출신의 하선을 근엄하고 광기 충만한 왕으로 보이게 만들어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미션에 돌입한 허균은 바쁘기 그지 없다. 진짜 왕이 없는 사이 그간 미뤄왔던 대동법과 호패법을 실시하려던 허균은 대신들의 반발에 부딪히고, 하선은 그런 각료들의 싸움이 이해 되질 않는다. 영문을 모르는 자신이 싫어 조내시에게 야간 학습을 받은 하선은 법의 취지에 공감하고 자신이 나서서 일을 추진해 나가기로 한다. 세도가들의 권력 싸움에 눈치를 보느라 왕도 미처 하지 못했던 일들을 단순 무식한 하선은 신나게 일사천리로 밀어 붙이기 시작하는데...


< 하선이 허균에게 왕 노릇을 자문받고 있는 중, 처음엔 그저 꼭두각시에 불과했던 하선은 왕 놀이에 익숙해져 가면서 조금씩 왕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게 아니라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보다 적절한 말이 있을까 싶었다. 영화는 왕 자리에 질릴 정도로 오래 앉아 있던 결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왕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명색이 왕이라지만 독살당할까 두려워 밥 한끼 마음 놓고 먹지 못하는 형편이니 그가 미쳐 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해서 암살 시도에 대비, 단지 왕과 닮았다는 이유로 왕 역활에 낙찰된 하선은 왕 노릇이 생소하고 신기하다. 처음엔 허균이 시키는 대로, 본분을 잊지 않은 자세로 시키는 대로만 하던 하선은 점차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한다. 어떤 메뉴얼에도 따르지 않는, 그저 자신 역시 백성이기 때문에 백성을 위하는 정책을 지지하게 된 광해에게 주저란 없다. 전혀 왕이 될만한 재목이 아니었건만, 왕 자리에 앉아 있다 보니, 왕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낸 것이다. 하선이 진짜 왕보다 유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단순무식했다는 점도 있었다. 그에겐 왕이 가소로운 권문세가들도, 떼거지로 몰려와 반대를 외치는 선비들도 무섭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하선으로 하여금 왕의 목소리를 내게 한 것은 그에게 상식이 여전히 통했기 때문이다. 진짜 왕에겐 오래전에 흔적 없이 잊혀져버린 그 상식 말이다. 해서 하선이 갑자기 진짜 왕 역활을 하는 바람에 졸지에 붕 떠버린 대신들은 왕을 제거하기로 모의를 한다. 대신들과의 충돌이 예상되자, 허균은 하선에게 진짜로 왕이 되고 싶다면 그렇게 만들어 주겠다고 제안을 하는데...

                  <이 영화의 주역들, 이 넷의 앙상블이 의외로 볼만하다.>

하층민에 불과한 광대 하선을 왕으로 세우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15일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광대 하선이 왕이 되어가는 에피소드들을 중심으로, 그가 진짜 왕보다 더 진짜 같은 왕이 되어 간다는 나름 성장 스토리. 진짜 왕과 가짜 왕 전혀 다른 두가지 역활을 전혀 다르게 보이도록 만든 이 병헌의 연기도 일품이었고, 그외 조내시를 연기하신 장광님이나, 허균의 류승룡의 명품 연기 역시 영화의 몰입도를 높이고 있었다. 특히나 카리스마 넘치고 광기 좔좔 흐르는 인정머리라곤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왕과 눈물 바람이 잦은 마음 약한 광대 하선이라는 극과 극의 캐릭터를 이질감없이 소화해 낸데 이병헌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동일인의 연기가 아닌 정말로 두 사람이 연기를 한 듯 보였으니 말이다. 이병헌이 연기에 있어서만큼은 진지하고 잘한다는걸 보여주는 것 같아서 반가웠다. 그외 전혀 웃길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도, 오히려 그때문에 더 웃기던 조내시와 가짜 왕  하선을 쥐잡듯 잡던 판단력 빠른 허균이란 캐릭터도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으로 내가 허균이라는 사람을 좋아해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지만서도, 허균 이란 인물이 우리나라 역사에 존재하고, 그의 이름이 여전히 화자된다는 것은 무척이나 흐믓했다. 아마도 요즘 사람들은 그런 공리에 별 관심이 없겠지만서도...

 자칫 사극은 지루하고 촛점이 흐트러지기 쉬우며 전개가 느려져서 몰입이 쉽지만은 않은데, 이 영화는 적어도 그런 기우는 말끔히 해소하고 있지 않았나 한다. 에피소드들로 소소하게 웃기는 장면들과 어깨에 힘빼고 주고 받는 개그같은 대사들로 재밌게 볼 수 있다는 점이 장점. 다만 아쉬운 점은 별로 감동적이진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미 우리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 가는지 알고 보기 때문에 더이상의 상상의 여지가 없다는 점도 한 몫 했겠지만서도, 어쩐지 마음을 확 끌어 당기는 무언가가 조금은 부족해 보였다. 그럼에도 단 한 장면, 마음을 울린 장면이 있다면 마지막에, 허균이 나룻터에 나와 두손을 얌전히 모으고 다소곳이 정중하게 인사를 할 때였다. 그것이 바로, 백성을 위하는 우리 왕에게 우리가 취하고 싶은 자세와 마음가짐이 아닐런지...그런 왕을 기대한다는 것이 이미 현실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것인가 싶어 착잡하기 이를데 없었지만서도, 그래도 언젠가는 우리 국민들 모두가 그렇게 한 마음으로 고개를 수그리게 만드는 수장을 만나게 되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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