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보은 [dts](2disc)
모리타 히로유키 감독 / 대원DVD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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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다 못해 지루하기까지 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하루는 17살 고등학생이다. 남들은 보통으로 해내는 일들도 어리버리한 탓에 망쳐 버리기 일쑤인 그녀는 지각 대장에 짝사랑 전문가, 그리고 일이 잘못 되어 가는데 선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고를 당한 고양이를 구해준 것이 자신을 위험으로 몰아넣을 줄은 그녀도 몰랐을 것이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보은이란 감사의 표시로 무언가 좋은 것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정말 불길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지내는 이 하루 양의 고양이 보은 사건의 정밀 분석에 들어가 보기로 하자. 그녀는 왜 그런 일에 휘말리게 되버린 것일까?

지각한 날 가뜩이나 심사가 뒤틀어져 길을 걷고 있던 하루와 하루 친구는 선물을 입에 물고 가는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신기해 한다. 그 고양이가 어쩌나 지켜보고 있던 하루는 트럭이 지나가는데도 길을 건너는 고양이를 발견한다. 순식간에 라크로채로 고양이를 채버린 하루, 고양이를 살렸다는 안도감도 잠시, 그녀는 땅바닥에 떨어진 고양이가 두 발로 일어나서는 툭툭 몸에 묻은 흙을 털어내는 것을 보곤 경악한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란 것은 그 녀석이 하루에게 말을 걸었다는 것, 고맙다면서, 지금은 바빠서 그냥 가지만 언젠가 꼭 이 은혜에 보답을 하겠다면서 걸어가는 고양이. 하루는 자신이 꿈을 꾼 것인지 착각을 한 것인지 헷갈린다. 집에 돌아와 고양이가 자신에게 말을 했다는 말을 하자 하루의 엄마는 하루가 어렸을 적에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면서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 내가 어렸을 적엔 그렇게 순진했던 적이 있었더랬구나 했던 하루는 그 날 밤에 신기한 광경을 목격한다. 고양이들의 퍼레이드가 자신의 집 앞까지 온 것, 거기의 중심에 앉아 있던 고양이 대왕은 오늘 하루가 구해준 고양이가 자신의 아들인 고양이 왕국의 왕자였다면서 꼭 보은을 하겠노라는 말을 하고는 떠나간다. 그저 꿈이겠거니 했던 하루는 다음날 이상한 일들에 휘말리면서 그것이 꿈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고양이들의 보은 사태에 어쩔줄 몰라하던 하루는 어디선가 들여오는 아름다운 목소리에 주목하게 된다. 그녀 왈, 이 사태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모퉁이에 있는 고양이 사무소를 찾아가라는 것, 어디 수상한 것이 한두가지여야지, 미심쩍기는 마찬가지지만 속는셈치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하라는데로 따라간 하루는 거기서 고양이 탐정 바론을 만나게 된다. 어떤 귀족보다 더 귀족다운 풍모를 풍겨대는, 겉멋의 대가 바론은 기꺼이 하루의 의뢰를 맡아 주기로 한다. 이에 하루를 따라서 고양이 왕국에 들어간 바론 일행, 고양이 대왕은 하루를 자신의 며느리로 삼으려 준비를 하고 있었고, 하루를 얼떨결에 서서히 고양이가 되어버린다. 고양이도 좋지만 자신은 인간이 더 좋다고 말하는 하루에게 보은은 물릴 수 없다면서 단호한 고양이 대왕, 과연 하루는 어떻게 이 난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서 보게 된 만화 영화. 처음엔 신기한 맛에, 그리고 중간엔 어떻게 전개될까 궁금해서 끝까지 보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평가하자면 지루했다. 고양이지만 그래도 목숨을 건져 주었는데, 본인의 의사에 반해 결혼을 강요하는 것도 그렇고, 그것이 여의치 않자 자신의 아내가 되어달라고 주장하는 고양이 대왕의 행태는 한심하기 이를데 없었고, 난데없이 나타나 하루의 고양이탈화를 막아주는 어여쁜 시종 고양이나 바론의 등장 역시 뜬금없이 느껴지긴 마찬가지...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흐르는게 아니라, 이리저리 이야기를 억지로 만들어 낸 듯한 기분이 들어서 별로였다. 과연 무엇이 고양이 보은이란 것이냐? 라고 물어보고 싶었던 영화. 하지만 단 한가지 고양이를 인간처럼 생각하는 상상력만큼은 대단하지 싶다. 그리고 고양이 사무소를 찾아가는 골목길 여정이 디테일만은 훌륭했다. 진짜로 고양이는 뒷골목 인간이 다닐 수없는 길로 다니는 버릇이 있는 동물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디테일이 전체적으로 지루한 줄거리를 구원해줄 수는 없는 듯...디테일은 디테일일 뿐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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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 노트
리차드 아이어 감독, 쥬디 덴치 외 출연 / 20세기폭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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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퇴임을 1년 앞두고 있는 교사 바라라(주디 덴치 분)의 유일한 낙은 사람들의 은밀한 비밀을 일기에 적어 놓는 것이다.  학생들에 대한 애정 나부랭이가 있는 척도 하지 않는 그녀, 자신이 남들과 다른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통에 인기가 없는 그녀의 지루한 일상에도  미모의 미술 선생님 쉬바가 부임해 보면서 변화가 생긴다. 투명한 피부에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쉬바, 언뜻 완벽해 보이는 쉬바의 집에 초대되어 간 바라라는 그녀가 늙다리 남편과 되바라진 십대 딸, 그리고 다운 증후군 아들을 돌보느라 형편없이 지쳐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꽉 막힌 결혼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쉬바는 15살 제자와 불륜에 빠지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바라라는 비밀로 해주는 댓가로 쉬바에게 집착하기 시작한다. 시도 때도 없이 쉬바를 불러대는 바바라, 영문을 모르는 가족들은 그런 바바라가 끔찍하기만 한데...

 

인생을 그다지 잘 살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두 여인에 관한 영화였다. 외로움에 질린 노처녀로 상대에게 너무 집착한 나머지 그들을 몰아내는 바라라와 암담한 결혼생활에 숨이 막혀 자신의 어린 제자와 바람이 나는 쉬바. 영화는 쉬바의 일탈과 그 일탈을 알게 된 바바라가 쉬바의 인생을 파멸로 몰아가는 과정들을 탄탄한 심리묘사를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바바라의 일기를 통해  자신의 몰락의 전모를 알게 된 쉬바가 그녀에게 " 당신은 사랑이 뭔지도 몰라." 라고 말하던데, 둘 다 사랑이란게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란 점에선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었다. 영화의 압권이라면 단연 극단적인 성격 이상자들의 드라마를 너무도 설득력있게 그려내는 두 여배우들의 연기를 들어야 할 것이다. 주디 덴치나 케이트 블라쉬 둘 다 어떤 역을 맡겨줘도 그 인물 그대로 진짜처럼 연기하는데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참 ,연기 하나는 탁월하게 잘 하지 싶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의문이 든 것은 쉬바가 피해자로 그려진다는 점이었다. 물론 바바라의 성격이 워낙 삐뚤어져서 둘을 굳이 비교하자면  바바라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더 크긴 했지만, 15살자리 제자와 바람이 난 선생님을 딱히  피해자로 봐야 하는 것일까? 만약 쉬바가 남자 교사고, 그 15살짜리 제자가 여자라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커다란 죄인데도, 제자가 남자아이란 이유로 별 일 아닐 수도 있는 일을 크게 만든다는 뉘앙스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흠. 서양사람들이라 역시 섹스에 관대한 것일까? 아님 남자 아이의 성을 보호해줘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일까? 과연 쉬바는 악랄한 바바라의 희생양에 불과한 것인지 보고 난 지금도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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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를 위한 밤 데이브 거니 시리즈 2
존 버든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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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에서 은퇴한 뒤 시골에서 아내와 한적한 전원 생활을 즐기고 있던 데이브 거니는 동료 형사 잭의 전화를 받고는 심란해진다.  4개월동안 답보 상태인 살인 사건이 하나 있는데, 도와줄 수 없겠냐는 것이었다. 무슨 사건인데 그럴까 이야기나 들어보자 했던 거니는 사건 자체에 흥미를 느끼게 된다. 결혼식날 모든 하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두막에 들어간 신부가 목이 잘린 채 발견이 되었다는 것이다. 살인자로 지목된 멕시코인 정원사는 그 시간 이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이웃 유부녀와 함께 종적을 감춘 뒤 여태 잡히지 않은 상태였다. 어떻게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것도 헬기까지 동원 총 5대의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와중에 살인이 벌어질 수가 있는지, 더군다나 목을 잘라 식탁위에 올려놨을 정도로 잔인하게 살해할 이유가 무엇인지 경찰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사건 자체에는 흥미가 가지만 형사일을 다시 하고 싶지 않았던 거니는 살해된 여자의 엄마를 만나본 뒤 마음의 동요를 느낀다. 자식을 잃는다는 것이 어떤 심정일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누구도 사건의 트릭을 풀지 못한다니 내가 한번 풀어볼까 싶어 나섰던 거니는 우선 아내의 무언의 압박에 갈등한다. 누구보다 조용하게 살고 싶었던 거니의 아내는 남편이 그들의 조용한 일상에 어둠과 소란을 끌어들이는 것이 심히 못마땅하다. 하지만 거니도 어쩔 수 없는 것이 미스테리를 푸는 것이야말로 그가 제일 잘 하는 일이고, 재밌어 하는 일이니 어쩌겠는가. 거니는 자신도 알 수 없는 불가항력에 이끌려 사건을 캐고 다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일단 주변을 탐문해본 거니는 신부 질리안이 모두가 혐오하고 식겁해하는 여자였다는걸 알고는 의문이 증폭된다. 더 이해가 안 가는 것은 그렇게 이기적이고, 문란하며, 성폭력 가해자이기도 한 열 여덟의 질리언과 결혼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신부가 졸업한 고등학교의 교장이란 사실이다. 그는 거부에 천재라고 소문이 난 정신과 의사였다. 질리안이 비록 대단한 미인이라고는 하지만 정신과 의사가 그렇게 제 정신이 아닌 여자와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가운데, 그 여자를 죽인 멕시코 정원사 역시 신랑이 불법 체류자를 3년동안 봐준 케이스였다는 것을 알고는 의문에 휩싸인다. 유난히 사람을 보는 안목이 없는 정신과 의사인 것일까? 아니면 그저 운이 없는 피해자에 불과한 것일까? 거니는 그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다. 처음엔 질리안의 죽음만을 수사해 나가던 거니는 질리안이 다니는 학교 졸업생 가운데 실종된 사람이 몇몇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이 실종된 방식이 질리안과 비슷하다는걸 알게 된 거니는 자신이 어쩜 연쇄 살인범을 쫓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는 식은땀이 흐른다. 과연 질리안을 죽인 범인은 멕시코 정원사일까? 그는 과연 어떻게 살인을 하고도 무사히 도주할 수 있었던 것일까? 불법체류자인 그가 잡히지 않은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퍼즐을 푸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복잡한 그에게 무능한 형사들마저 도움을 주지 못하는데... 

 

<658, 우연히>를 인상적으로 본 탓에 , 같은 작가의 새로운 책이 나왔다고 해서 반가운 마음에 보게 된 책이다. 일단 전작때처럼 장이 시작할때마다 범인의 시로 시작하는 것이 여전하고,--뭐, 같은 작가니까 당연한 것인가?.--아내와의 갈등이 여전히 사이드 매뉴처럼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별로긴 했다. 그것들이 꼭 연속작품에서 보고 싶을 만큼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마도 연작이란 면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갑작스럽게 바꾸는 것이 어렵기는 했겠다 싶긴 하다. 하여간 전작들의 느낌을 이 작품에서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신선함을 덜 느끼게 해주지 않았는가 한다. 아마 이 작품을 존버든의 첫 작품으로 읽는 사람들은 좋기만 하구만 뭐가 문제야 할지도...처음 읽는 것과 두번째 읽는 것은 또 다른 것이니 말이다. 거기에 살인이 지나치게 잔인한 점과 그것이 연쇄 살인으로 이어진다는 점등이 사건을 어쨌거나 크게 키우는 작가의 성향에서 벗어나지 않은 듯한 점도 별로였다. 추리 소설의 묘미는 수법이 얼마나 잔인한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잔혹하게 살해되었는가 하는 점이 아니라, 그 트릭을 어떻게 풀어가는가에 있는 것이니 말이다. 요즘 보면 추리 소설이 지나치게 잔인해 진다는 점이 아무래도 추리 소설의 묘미를 반감시키고 있는게 아닐까 한다. 피범벅이 되었다고 해서 그 소설이 더 재밌어 지는건 아닌데, 작가들이 모두 이 정도로 수위를 높이지 않으면 주목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내 말하지만 좋은 추리 소설은 피로 사람을 경악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로 사람을 설득시켜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쨌건 이런 저런 단점들이 눈에 뜨이긴 했으나, 그 외엔 집중력이 내내 일정하게 유지된다던지, 누가 범인일지 추측하기 어렵게 만든다는지 하는 점등은 여전히 탁월했지 싶다. 결론이 조금 약하다 싶긴 했지만서도, 그건 중반을 넘어서면서 판을 너무 크게 키운 작가 탓인듯...그나마 판을 이렇게도 크게 키워놓고도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작가의 역량을 다시 보게 되었다 할 정도니 말이다.  아마 내가 작가라면 분명 이걸 어떻게 수습할지 난감해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난 작가가 못되는 것이겠지만서도...뭐, 해서 그럭저럭 내려진 결론에 그냥 만족하기로 했다. 압박이 심해지던 중반과 다소 허무한 결론 사이에 조금 균형은 맞지 않는다 싶긴 했지만서도, 적어도 신부를 살해한 독창적인 수법을 고안해 냈다는 점에서 만큼은 박수를 받을만 했다고 보여지니 말이다. 어쨌거나, 나는 다시 데이브 거니의 3편을 기다려 볼란다. 이 정도의 퀄리티라면 충분히 기다려볼만하니 말이다.

 

그런데, 한국 제목도 꽤 괜찮았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원제 역시 그럴싸하다. Shut Your Eyes Tight 이라...반전을 그대로 제목으로 쓰다니, 하여간 존 버든 이 사람,  영리한 작가가 맞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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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계의 전설적인 스카우터 거스 로벨은 타자가 공을 치는 소리를 듣고도 자질을 알아보는, 직업적인 면에서는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과 봐도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안목이 진가를 발휘하던 것도 과거의 것이 되어버린지 오래, 늙은 데다 시력마저 나빠지고, 거기에 성격마저 고집불통인 그를 구단에서는 은퇴시키고 싶어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퇴물취급을 받을 수밖엔 없게 된 것은 인터넷의 발달, 영화 <머니볼>에서 봤다시피, 오클랜드 ' 애스렉티스' 구단 성공에 자극을 받은 많은 구단들은 이제 컴퓨터를 이용해 선수들을 데려오고 있었다. 즉, 육체노동에 가까운 --물론 다분히 예술적인 면이 가미된--야구계에서도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몰아내고 있었던 것, 해서 대표적인 아날로그 스카우터인 거스가 설자리를 잃어버린 것은 어쩜 당연한 것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거스 본인이 현재의 흐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해서 명예롭게 은퇴하라는 친구 피트의 조언을 뿌리치고 그는 자신의 마지막 스카우팅 여행에 나서게 된다. 그런 그가 못내 못미덥던 피트는 거스의 딸 미키에게 아버지를 도와줄 것을 부탁한다. 이에 최연소 파트너가 되기 위해 하루 종일 일에 매달려 사는 변호사 미키는 화가 난다. 6살때 엄마를 여윈뒤 아버지 손에 자란 그녀는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릴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인지 아버지의 사정을 봐주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녀는 마지못해 아버지의 여행에 동참하기로 하는데...



아버지를 따라 나선 여행에서 미키는 한때는 잘 나가는 투수였지만 어깨가 나간 이후 스카우터로 전향한 죠니를 만나게 된다. 야구를 좋아한다는 공통점때문에 금세 친해진 두 사람은 하지만 관계를 맺는 법을 잘 알지 못하는 미키 때문에 진전을 보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미키는 아버지와의 여행에서 드디어 오래동안 해묵었던 갈등을 터뜨리기에 이른다. 왜 자신을 버렸냐는 질문에 거스는 그저 회피만 할뿐 대꾸를 하지 못한다. 과연 이대로 부녀의 갈등은 해결되지 못하는 것일까? 그 해 최대 대어라고 일컫는 고교 선수의 스카웃을 둘러싼 거스의 이견으로 인해, 그렇잖아도 간당간당한 거스의 위치는 발판을 잃을 듯 보인다. 그럼에도 거스는 꿋꿋하게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는데...

영화 <머니 볼>과 정반대되는 주장을 하고 있던,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것을 찬양하던 영화라고 보심 되겠다. 수치는 선수를 알려 주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눈과 귀로 파악하는 수밖엔 없다. 손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으며, 모든 것은 수고를 들여서 제대로 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라는것을 설파하고 있던 영화였으니 말이다. 재밌는 것은 머니볼을 볼때는 그 말이 맞는 것 같다가도, 이 영화를 보니 또 이 영화에서 하는 말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머니 볼>이 ' 구세대를 가라, 우리 신세대는 보다 합리적이고, 수학적인 계산으로 야구를 하겠다'는 선언이라면, 이 영화는 '야구는 손과 발로 뛰는 것이지 수치로 모든 것을 내다볼 수 있는 게임이 아니' 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과연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헷갈리긴 한다. 아마 둘 다 옳을 것이다. <머니 볼>에서는 관습적이고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야구계에 경종을 울려대는 것이었다면 , 이 영화에선 현장에 나가보지도 않고 컴푸터만 두둘겨서 얄팍하게 승리를 이뤄내려 하는 신 스카우터들의 행태를 고발하고 있다는게 다르다면 다를 뿐. 둘 다 옳은 지적이고, 둘 다 그럴듯하다. 다만, 디지털로의 대세는 이미 거스릴 수는 없는 것이고, 재능을 알아보는 아날로그적인 안목은 컴퓨터가 분석해낼 수 없는 것이라는 점에서 둘의 관계를 배타적인것으로만 보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지 싶다. 다시 말해 둘 다 옳지만 결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장점이라고 한다면, 잔꾀는 소용이 없다. 모든 성과는 정석대로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소박한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한다. 우린 모두 손쉬운 대박을 꿈꾸고, 머리를 잘 쓰는 것에만 흥미를 갖는데, 그렇지 않다고. 진정한 승리란 자신의 몸을 움직여서 하는 것이라는 것을 들려준다는 점이 좋았다. 뭐랄까. 진실해 보였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재밌었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아니다. 식상하기 그지 없는 부녀의 갈등에, 노쇠한 늙은 아버지를 비추는 연민어린 시선, 신구 갈등의 뻔하디 뻔한 전개, 미키와 죠니의 난데없는, 그리고 새로울게 없는 로맨스는 어쩌면 영화를 이렇게 상투적으로 찍으셨을까 의아하게 만들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너무 늙은데다, 지끔껏 맡았던 배역에서 별로 달라지지 않은 성격 묘사에 흥미를 잃기 충분했고, 섹시한 매력 정도는 풍길줄 알았던 죠니 역의 저스틴 팀버레이크는 지극히 단순한 배역에 내가 다 안스러울 지경이었다. 미스 캐스팅이거나, 적어도 배우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예가 되지 않을까 한다. 거기에 미키역의 에이미 아담스... 그래도 내가 이 배우에게만큼은 기대를 걸었는데,  늙어가는 중이라는 것만 확인했을 뿐, 해서 피기도 전에 지는 꽃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 안타까웠다. 그래, 한 물 갔다고 여겨지는 아날로그를 찬양하는 것은 좋다 이거다. 하지만 그럴려면, 적어도 그 아날로그가 신선하고 재밌고 참신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야 할 거라는 점을 잊고 있었던게 아닐까? 그러니까, 무조건 과거가 좋다는 말로는 설득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멋진 배우들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을 생각이었다면 보다 탄탄한 시나리오를 가지고 시작했더라면 좋았을텐데 라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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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조건 - 사람은 무엇으로 행복을 얻는가
바스 카스트 지음, 정인회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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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독일에서 활발하게 활동중인 저널리스트이자 심리학자인 저자가 현대인들의 행복찾기 조건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책이다. 현대인들은 --특히 독일을 위시한 서구 유럽은--그 어느 때보다 부유해졌는데,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자유가 주어졌는데, 왜 그들은 과거보다 행복하지 못한 것일까? 라는 의문에서 출발한 저자는 인간에게 주어진 많은 선택 사항이 오히려 행복에는 방해가 되는게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이른바, 최상의 것을 선택하려다 보니 결국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것! 수많은 선택기회와 자유가 행복을 가져준다는 것은 실은 인간의 오해이자 착각이라는 점을 조심스럽게 설파하고 있는 책이다. 이해가 되지 않으신다고? 예를 들어보자.


저자는 더 완벽한 남자를 찾아, 더 나은 여자를 찾아 줄창 헤매기만 하다 결국 싱글 신세가 된 자신의 친구들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뿐만이 아니다. 일하느라 바빠서 아이 갖는 것을 미루던 한 부부는 이제 아이를 가져보려 하자 임신 불능이라는 의사의 선고를 받는다. 낙담한 그들을 보면서 저자는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수십년 전만 하더라도 그런 일들은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성년이 되었으면 결혼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았고,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아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으니 말이다. 말하자면, 그들에겐 선택이라 할만한게 없었던 것이다. 그저 그들 부모가 살았던 방식 그대로 살아가면 그만이었을 뿐. 문제는 그들이 현대인들보다 더 행복하다 느꼈다는 것. 해서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질색 할만한 "선택의 자유 없음" 이 오히려 행복하는데는 낫다는 것이 바로 이 저자의 주장이다. 즉, 행복은 선택을 잘 하는가에 있다기 보단 그 결정을 얼마나 충실하게 따라가는가에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완벽하고 최선의 것을 선택하기 위해 마냥 기다리고 고르는 것이 종국에는 시간 낭비일 수 있다는 것, 그는 그것을 심리학 실험에 의한 충실한 데이타를 가지고 독자들을 설득하고 있었다. 이봐, 많은 선택이 주어진다는 것이 행복을 보장해주진 않아. 어쩌면 행복은 선택을 잘 한 것에 있는게 아니라, 일단 선택을 한 뒤 얼마나 충실하게 그걸 따라가는가에 있는지도 몰라. 하니, 항상 더 좋은 기회가 오지 않을까 싶어 늘 망설이고만 있는 당신, 당신은 결국 제자리 걸음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라는 것이 이 저자가 하려는 말의 골자다. 어느 정도는 수긍이 되지 않는가. 실제로 주변에 더 나은 기회를 잡으려다 백수에 노처녀 노총각이 되는 사람들도 많으니 말이다. 기다리다 보면 좋은 사람이 나타나겠지 라는 백일몽에 사로잡혀 살긴 하지만, 결국 그들에게 남는 것은 고양이 아니면 개 정도? 뭐,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서도, 그래도 인간으로 태어났으면 남들 하는건 해보면서 사는게 좋지 않냐고 이 저자는 말하고 있었다. 실제로 부부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행복할 가능성이 훨씬 더 많고 말이다. 물론 잘못 만났을 시 불행해질 가능성도 훨씬 더 많지만서...그건 일단 논외로 하고.


거기에 저자는 부가 사랑이나 행복과는 반대조건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얼핏 이해가 안 가는 이 명제는 이렇게 생각해보면 확 이해가 되실 것이다. 돈이 많으면 인간에게 기댈 필요가 줄어들고, 당연히 사랑에 덜 의지하게 된다.  왜냐고? 그거야 돈으로 사면 되니 굳이 다른 인간들에게 상호 도움을 받고 자시고 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해서 부자들이 이기적이고, 세상사에 초연하고, 인간에게 별 관심이 없는 것도 일면 당연한 것이라고 한다.이해가 안 간다고? 아니, 그건 실제로 그렇다. 가난한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의 환경에 더 민감하고 다정하다. 자신 역시 언제든지 그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돈이 없다는 공백을 연대의식으로 메꾸어 나간다. 반면 부자는 자기 잘난 맛에 살기 때문에 굳이 타인에게 의존할 생각도, 그들에게 연민이나 사랑을 구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아직도 선뜻 이해가 안 되신다면, 달동네와 고급 아파트 단지를 생각해 보심 되겠다. 달동네에선 이웃끼리 거의 경계선이 없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고급 아파트에선 옆 집에 누가 사는지 몰라도 사는데 지장은 없다. 오히려 모르는 것이 더 편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관계를 맺는 자체가 귀찮다고 생각하기 쉽상이니 말이다. 그것이 현재 독일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고 한다. 과거 친밀했던 가족 관계가 나라가 부유해짐에 따라 빠르게 붕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친밀함의 부족은 공허함을 불러오게 되고, 결국 불행한 나만 남게 되는 악순환에 갇히게 된다. 돈이 많으면 뭐하나, 그저 외롭고 공허한 나홀로 앉아 TV나 인터넷만하고 있는 처지라면 말이다. 저자는 현 독일의 그런 세태를 바라보면서, 그렇게 흘러 가고 있는 방향에서 벗어나길 촉구하고 있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면서 말이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싶다. 우리 선조들이 그렇게 죽어라 노력을 해서 얻어 놓은 다양한 선택의 기회와 부가 정작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는건 얼마나 아이러니 한가? 미시적인 시야에서 본다면 그의 견해는 틀리지 않다. 실제로 수많은 선택들 속에서 길을 잃고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일생을 마치는 사람들의 경우나,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비인간적이 되어가는 모습들 역시 심심찮게 볼수 있는 일이니 말이다. 굳이 데이타를 들이대지 않는다 해도 수긍이 가는 의견이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 해서 그의 말이 100% 옳은가? 라면 또 거기엔 동의 못하겠다. 왜냐고?


이 책을 읽다 보니 독일의 현재 문제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무엇보다 가족의 붕괴. 다들 각개로 흩어져 홀로 편하게 살길 원하지, 가족 단위로 뭉쳐서 희생하기는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로 외로워 죽으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권리나 이익을 포기하기는 싫어한다. 위기 상황에서 인간에게 기댈 수 없다는 것이 너무 명백하기에 발달하는 것은 보험이요, 애완동물 관련 사업이니... 그가 로망으로 바라보는 사회는 가족들끼리 뭉쳐서 오손도손 살아가는 사회다. 가난하다해도 좋다 이거다. 서로가 서로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준다면 말이다. 개인주의? 그게 뭔 소용있나? 행복해지질 않는데? 라고 저자는 말하더라. 아마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이 저자가 놓친게 있다. 가족 단위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사는게 힘든건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극단적인 개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저자가 보기엔, 좀 없이 살아도 가족들끼리 뭉쳐 사는 사람들이 좋아 보일지 모르겠지만서도, 그곳에는 인간의 개성이 부정되지 않나... 아마 개성이라는게 살아남을 기회조차 주지 않을 것이다. 그건 또 사는데 별로 재미가 없지. 그렇지 않겠어? 가족 단위가 물론 분명 이 험한 세상의 안전한 그물망이 되어 준다는 점은 인정하지만서도, 거기에도 댓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이 저자는 놓치고 있는게 아닐까 싶었다. 결론은? 어느 사회나 인간은 행복하기 힘들고,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법이라는 것, 그리고 균형감각이 중요하다는 것. 어째 이러고 보니 삼천포로 빠진 느낌이 드네...


쉽게 읽힌다. 너무 많은 선택들 속에서 망설이기만 하시는 분이나,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사시는 분들이라면 한번 들어보심도 좋을 듯. 새로운 시각을 트이게 해줄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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