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 33일 -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는 시간 33일
바오징징 지음, 홍민경 옮김 / 시그마북스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새로운 사랑이 찾아오는 시간 33일이라...과연 그게 가능해? 라는 것이 제목을 들었을때의 첫 의문이었다.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진 것이잖아, 그런데 정리가 33일만에 가능하다고? 흠, 만약 진짜로 그게 가능하다면 주인공에게 어떤 비결이 있는 것일지 궁금했다. 나라면 3년이 지나도 " 어떻게 나에게?" 라면서 여전히 궁싯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니 말이다. 타인의 실연대책을 보면서 좀 배우고 싶었다. 더군다나 이 책을 원작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는데, 중국에서 히트를 쳤다는 소식에 더 솔깃해졌다. 많은 관객을 끌어모은 영화라면 분명 무언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해서 기대반, 괜한 기대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반인 심정으로 책을 읽게 되었는데...이거, 확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왜 이 책이, 그리고 영화가 히트를 쳤는지 말이다. 어떤 내용일지가 궁금하실테니 우선 내용 정리에 들어가보면 이렇다. 

 

27살의 웨딩플래너 왕샤오센은 7년간 사귄 남자친구가 자신의 베스트 프렌드와 함께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자신의 눈을 의심한다. 설마 설마 하는 추측은 사실로 드러나, 남자친구는 그간 둘이 6개월씩이나 사귀고 있었다며 이별을 통보한다. 한순간에 미래를 약속하던 남자친구와 가장 친한 친구 둘을 잃어버린 왕 샤유센은 이성을 잃고 마침 전화한 사장에게 막말을 해버린다. 얼씨구, 이제 직장까지 잃어버린 참이지만, 그녀의 아픈 마음에는 그마저도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행히 실연을 당해서 정신이 나갔다는 사과에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해주는 사장은 마침 들어온 진상 부자 고객을 그녀에게 전담시킨다. 자신은 실연을 당한 마당에 돈은 상관없으니 무엇이건 최고로 해달라고 하는 커플을 담당하게 된 왕샤오센은 자신이 그렇게 처량할 수 없다. 거기에 더 끔찍한 것은 그녀가 그간 재수없다고 생각해온 직장 동료 왕샤오졘이 그녀의 실연을 알아채고는 다정하게 구는 점이었다. 자신의 실연이 재밌나 싶어 그와 티격태격하던 왕샤오센은 자신이 그를 이유없이 미워만 했을뿐 그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는걸 알게 된다. 그라는 사람이 비로서 눈에 들어오게 되자 그가 그다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왕 샤오센은 그와 허물없이 지내게 된다. 까다로운 부자커플과 결혼을 준비하던 왕 샤오센은 예비신랑같은 잘 생기고 돈 많은 남자들은 왜 머리가 빈 성형 미인에 반하는 것인가가 궁금해진다. 남자 친구에 대한 미련이 불쑥불쑥 찾아와 그녀를 힘들게 하는 가운데, 그녀는 어쩌다 그렇게 좋았던 사이가 나빠진 것인지 의아하기만 한데...

 

실연 이후 33일의 경과를 일기 형식으로 그려내면서, 실연이 끝이 아니라 자신의 성장 계기로 삼던 영리한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중국판 < 브리짓 존스의 일기> 정도라고나 할까. 여성답지 않게 직설적인 대화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곧잘 상하게 하는 막가파 왕 샤오센,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알고보면 여린 구석이 있다. 7년동안 사귄 남자친구의 배신으로 실연을 하게 된 그녀, 제 정신이 아니여야 하는게 맞는 것일게다. 하지만 그녀는 서서히 자신의 정신을 추스려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을 자신에게 한다. 한때 그렇게 사랑했던 그가 어쩌다 자신에게 마음이 돌아선 것일까? 라는...그리곤 자각하게 된다. 그를 밀어낸 데에는 자신도 한 몫을 했다는 것을 말이다. 7년이라는, 그리고 애인이라는 틀에 박혀 자신이 그를 무심하게 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 그가 그렇게 진심을 토로하고 있던 순간에도 말이다. 그런 사실을 깨달아가면서 그녀는 비로서 실연이 그만의 잘못이 아니었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왕 샤오센은 비록 용서는 아닐지라도, 실연을 툴툴 털고 일어날 수 있는 마음의 정리를 해나간다. 그렇게 자신의 실연을 통해 사랑에 대해 관계에 대해 조금 많이 알게 된 그녀는 다짐한다. 다음에 사랑이 찾아오면 진짜로 잘해 보리라고 말이다. 과연 그녀의 다짐은 실현될 수 있을까? 마지막 페이지를 보면서 그녀를 응원하면서 책을 덮게 되던 책이었다.


장점을 들자면 일단 신선하다. 재치있는 전개로 <실연>이라는 , 다들 너무도 우려먹을대로 우려 먹어 식상하기 그지없는 소재를 참신하게 만들던데, 작가의 역량이 대단하지 싶다. 식상한 로맨스 소설류로 흐르지 않을까 싶었는데, 용케도 그런 함정을 피해가더라. 작가가 단지 머리가 좋은 건지, 아니면 개성이 워낙에 안드로메다급이신건지 아리송하긴 하지만서도, 특이한 사람이라는 점은 틀림없지 싶다. 이야기를 쉽게 써내려 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단 점수 왕창 따고, 주인공들의 캐릭터가 주변에 있을 법한 현실성 있는 캐릭터라는 점도 흥미를 끌게 한다. 주인공들이 주고 받는 대화가 거의 개그 수준이라는 것과 케미도 은근히 낭만적이란 점 또한 호감을 샀다. 전개가 빠른 점이나, 장면이 바뀔때마다 등장하는 톡 쏘는 듯한 반전도 읽는 재미를 더했는데, 같은 소재의 드라마 <개인의 취향>이 결국 식상하게 전개된 것을 생각해보면, 이 책이 왜 칭찬을 받는지 이해가 되실 것이다. 워낙 식상하지 않기가 힘든 소재를 식상하지 않게 풀어낸다는 자체가 박수를 받을만한 것이니 말이다. 거기에 왜 영화로 만들어졌을지 단박에 이해가 될만큼 대화들이 생생하고 재기 넘치는데, 누구나 겪는 실연이라는 소재를 적당히 현실적으로, 또 적당히 아프지 않게,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새롭게 재구성 하고 있는 것이 볼만하지 않았는가 한다. 무엇보다 재밌다. 사실 이런 분석이 불필요한 것이, 그저 재밌단 한 단어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실연을 당해 엉엉 울던 왕 샤오센이 미소를 찾게 되는 과정에서 누구나 공감을 하지 않기란 어려울 듯...감각적이고, 유치하지 않으면서, 쉽게 실연이란 과제를 잘 소화해내고 있었지 않나 한다.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상영한다면 한번 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이렇게 재기발랄한 원작을 어떻게 그려냈을지 궁금해서 말이다. 원작대로만 찍었어도 굉장히 재밌지 않을까 싶지만서도... 하여간 실연을 하신 분들이나, 실연과는 상관없지만 재밌는 책을 읽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 의외로 이 책 썩 괜찮다. 누구에게나 조금의 위로는 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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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쁜놈 모임" 에 출석해 ' 더이상 나쁜놈이고 싶지 않다'고 선언하는 랄프, 그의 발언에 동료 악당들은 경악하고 만다. >

 

8비트 게임인 <다고쳐 펠릭스>에서 30년간 부수는 역활을 맡아온 주먹왕 랄프, 그는 일때문에 악역을 맡고 있는 것임에도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자 일에 애착을 느끼지 못한다. 어디 그것뿐이랴. 30년간 함께 일해온 <다고쳐 펠릭스> 게임 등장인물들이 자기만 빼놓고 기념파티를 열자 랄프는 확실하게 삐지고 만다. 나쁜놈 모임에 가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랄프, 이제 더이상 나쁜 놈 하기 싫다는 그의 말에 동지들은 ' 나쁜 놈이 꼭 나쁜 사람이라는 뜻은 아니' 라면서 ' 나쁜놈으로 사는 것도 괜찮다'는 구호를 함께 열창해준다. 망치만 갖다대면 모든 것을 고치는 펠릭스가 점수로 메달을 따가는 것이 늘 부러웠던 랄프는 금메달을 따오면 동료 대접을 해주겠다는 동료의 말에 자신의 게임기를 벗어난다. 술집에서 어디가야 메달이 있을까 고민하던 랄프는 술이 떡이 된 < 히어로 듀티>의 전사를 만나게 된다. 버그를 없애면 금메달을 준다는 말에 히어로 듀티 전사복을 훔쳐 입고 <히어로 듀티 시티>에 잠입한 랄프는 어거지로 금메달을 따게 된다. 문제는 그가 금메달을 따고는 너무 흥분을 해서 버그를 밟으면서 시작된다. 전투기를 타고 버그와 함께 <슈가 러쉬>에 불시착하게 된 랄프는 그 와중에 금메달을 잃어 버린다. 금메달을 간신히 발견한 순간 슈가 러쉬의 이단아 내진 추방자인 페넬로프가 나타나 그걸 훔쳐간다. 페넬로프가 금메달을 가져간 이유는 그녀의 꿈인 경주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랄프의 금메달로 경주 참가비를 낸 페넬로프는 발로 페달을 움직이는 어설픈 경주차로 우승을 거머쥐겠다며 희망에 부푼다. 하지만 그녀의 참가 소식에 슈가 러쉬 국민들은 오류인( 게임기 내에서의 일종의 장애인 버전.) 그녀가 참가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면서 항의한다. 금메달을 찾아 슈가 러쉬 중심부에 들어온 랄프는 또래 소녀들에게 린치를 당하고 있는 페넬로프를 보게 된다. 도둑이라면서 쫓을땐 언제고 그녀가 가엾어진 랄프는 그녀를 구해준다. 그리곤 금메달을 되돌려 받기 위해선 우승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페넬로프의 우승을 위해 도와주기로 한다. 

 

한편, 랄프가 사라진 "다고쳐 펠리스"는 고장이 났다는 판정을 받고 퇴출 위기에 직면한다. 이에 펠릭스는 게임기의 운명을 걸고 랄프를 찾아 나서게 된다. 그의 흔적을 찾아 가던 중 <히어로 듀티>에서 칼 훈 병장을 만난 펠릭스는 랄프가 버그와 함께 슈가 러쉬로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버그가 번식을 하기 전에 잡아야 하는 사명이 있는 칼 훈은 랄프를 데려와야 하는 임무를 띠고 있는 펠릭스와 함께 <슈가 러쉬>로 향하는데...

 

 

< 다고쳐 펠릭스> 게임기의 랄프 동료들, 펠릭스가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다 고쳐 망치로 갖다 대기만 하면 빛이 반짝반짝 나는 새 것으로 고쳐지는 특성이 있다. 30년간 모든 것을 고쳐오기만 했던 펠렉스는 비록 체력은 약하지만, 유하고 너그러운 성품으로 모두에게 사랑받는 캐릭터다.> 

 

 

<히어로 듀티>의 여전사 칼 훈, 비극적인 과거가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탓에 버그라면 이를 가는 병사로 등장한다. 글리를 보신 분들이라면 단박에 알아챌만한 분( 제인 린치)이 목소리 연기를 하시는데, 가히 싱크로율 100%였다. 수 쌤(글리의 제인 린치 분)의 목소리가 워낙 개성적이라서 칼 훈이 등장하기만 하면  츄리닝을 입은 수가 오버랩 되는 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뭐, 감상에 방해를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중성적이고 냉정한 여전사 목소리로는 제인 린치가 적역었지 싶다. 목소리로만 따지자면, 수쌤보단 칼 훈이 비주얼로 더 어울려 보인다는 사실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일지...실제보다 애니가 더 어울리는 목소리라니 말이다.

 

 

랄프와 "깜찍이" 페넬로프가 처음 만나던 장면, 침입자와 도둑으로 처음 인사를 하게 된 두 사람은 의외로 서로의 처지가 비슷하다는 점에서 동지애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둘의 우정은 캔디 킹의 음모로 말미암아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도무지 게임기 속의 주인공들을 가지고 무슨 대단한 이야기가 나오겠어? 유치하거나 식상하거나 , 그도 아니면 지루하거나 할테지, 라는 생각은 영화가 시작되자 마자 단박에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세상이 가능했어 라는 감탄이 흘러 나올 정도로 내가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이야기가 줄줄이 이어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오락실 문이 닫히면 새롭게 시작하는 게임기안의 세상이라...게임기 속의 캐릭터들은 퇴근을 함과 동시에 게임기 센트럴 시티에 모여 마치 보통 인간들처럼 일상을 보낸다. 죽일 듯 싸워댔던 캐릭터들이 서로를 일으켜 세워주고, 다른 게임기속의 친구를 찾아가 놀기도 한다. 낮에 있었던 일에 대해 불평을 하면서 술 한잔을 걸치질 않나, 술 집 주인은 그들의 불평을 들어주는 것도 인간들과 너무 똑같아서 웃겼다. 거기에 미국 AAA를 본따 만든 <나쁜놈 모임>이란 발상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지...상상력의 끝은 어디냐고 묻고 싶을 정도였다. 거기에 악당역에 불만을 느낀 랄프의 이탈이라니, 이야기가 너무 자연스럽고 그럴듯해서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실제로 그런 가공의 세계가 진짜로 있는데 여지껏 나만 모르고 있었던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장점이 너무 많아서 일일히 나열하긴 그렇고, 대충 적어 보자면, 첫째로 이야기 전개가 자연스럽고 모순 없이 완벽했다. 어거지로 만들어 냈다거나 이어 붙인 듯한 느낌이 들지 않은, 마치 진짜로 있었던 일을 그려낸 듯 깜쪽 같더라. 어느 한 순간에 와서는 주춤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일사천리로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연결되는걸 보면서 감탄할 수밖엔 없었다. 스토리의 완성도에서 보자면 흠잡을데가 없지 않는가 한다. 그만큼 스토리가 탄탄했다는 말씀. 조금은 헐겁게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거 애니를 생각하면 놀라운 작품이었다. 이렇게 완벽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못했었으니 말이다. 가히 기대를 뛰어넘는 스토리였다. 둘째로는 캐릭터들의 연기가 압권이었다. 어쩜 그리도 표정 연기를 잘 하던지...일류 배우들의 연기가 부럽지 않더라. 목소리마저도 주인공 배역마다 적확하게 딱딱 맞아 들어가, 마치 실사를 보는 듯한 착각이 일어날 정도였다. 이번엔 자막으로 봤는데, 다음번에 본다면 더빙을 봐야 하나 고민스러울 지경이다. 오리지날이 워낙 출중하고 완벽해서,  더빙을 아무리 열심히 했다 해도 원작에 비하면 실망스러울 것 같아서 말이다. 세번째로는 감동적인 이야기라는 것이다. 처음, 난 더 이상 나쁜 놈을 하기 싫다고 말하던 랄프가 마지막에 나쁜 놈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말하는 과정 속에서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억지로 만들어낸 결론이 아니라, 주인공이 겪고 생각해서 만들어낸 교훈으로 느껴진다는 점에서 랄프를 사랑하지 않기란 어려웠다. 그만큼 살아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는 말이겠지. 네째로는 랄프를 비롯한 다른 주인공 세 명의 열전을 들어야 겠다. 넷의 앙상블이 정말로 좋다. 영화 처음엔 풀이 죽은 랄프에게만 눈이 가겠지만서도, 영화가 끝이 날 즈음엔 네 명의 등장인물 모두에게 정이 가있을테니 말이다.

 

하여간 시사회 장을 나오면서 감탄을 했다. 이 영화마저 이렇게 좋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어서 말이다. 요즘 보는 영화들마다 어쩜 그리도 한결같이 좋은지...신기할 정도다. 보통 4편당 하나를 건지면 잘 건졌다 하는데, 요즘 보는 영화들은 다들 각각의 개성이 넘치면서도 흥미로워서 보는 것이 즐겁다. 어제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도 어찌나 뿌듯하던지...랄프와 다른 주인공들의 매력에 흠뻑 빠져서 말이다. 이 추운 겨울에 훈훈하게 보내기에 적당한 영화이지 않았는가 한다. 웃고 즐기고 공감하고 감동받는 영화를 보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 다 여기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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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대의 비망록 - 사회주의적 낙관성으로 지켜낸 인간 존엄의 기록 패러독스 9
율리우스 푸치크 지음, 김태경 옮김 / 여름언덕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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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원으로 지하 활동을 하다 나찌에게 붙들려 교수형에 처해진 작가가 감옥에 수감이 되고 나서 부터 죽기 직전까지 몰래 남긴 글을 모은 것이다. 제목에서 카프카가 연상이 되어서 기피했던 책인데, 보고 나서는 왜 진작 보지 않았을까 하고 자책을 했다.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아름다운 책이었기 때문이다


율리.율리.율리....그가 그 지독한 고문을 당한 몸으로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 지 모르는 상황에서, 친절한 간수가 몰래 가져다준 종이와 연필로 이걸 써내려 갔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난 아마 진작에 읽었을 것이다. 그가 이 글을 쓰면서 자신의 목소리가 후대에 남을 거란 생각에 지독한 고통을 견뎠다는 것을 알았다면 벌써 읽었을 것이다. 그가 감옥이라는 공간안에서도 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것이지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기록했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미 읽었을 것이다.


 

우선 그의 서술 방식이 맘에 든다. 전혀 무겁지가 않기 때문이다. 체코의 카프카를 연상하면서 디립다 무거워서 읽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을 했는데, 그건 기우었다. 그는 선선한 말씨로, 그러나 최대한 경제적으로 상황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설명하고 있었다. 군더더기없는 글이지만 ,이 보다 더 완벽하게 감옥의 상황을 보여줄 수는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 그가 들려주는 감옥 안에서의 다양한 인간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인간적이란 것은...

겨우 50년 전의 이야기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이렇게 잔학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또 생각을 뒤집어 보면 지금 이런 일들이 세계 다른 나라에선 벌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인간이 보다 성숙하고 진화되길 빌어 본다. 그래서 율리가 --미래의 우리들이 자신들의 희생위에서 행복하길 바랬듯이--저 위에서 자신이 옳았다고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말이다.

 

 

한 고결한 영혼을 지닌 인간의 신념과 그가 목숨을 버려가면서 지켜내고 싶어하던 좋은 세상 ,인간에 대한 사랑이 절절히 박혀 있어 감동을 받지 않기가 어려웠다. 고문을 당하는데" 아버지 어머니 왜 절 이렇게 강하게 키우셨나요?" 라고 말하는데, 그런 그가 한없이 안스럽더라. 강해서 아름다웠던 한 사내의 거짓없는 절절한 독백이 얇은  책 사이 사이로 유려하게 유감없이 서술되고 있어 숨을 죽이고 본 책이 되겠다. 서정적이고,군더더기 없이 여백이 살아있는 생생한 글을 남기고 간 율리. 갑자기 울컥하게 만들고,입을 삐죽대다가 한숨섞인 탄사와 눈물이 흐르게 했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그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기란 힘들것이다. 원래 그의 글이 그러니 말이다.

잔혹함이나 찢어지는 슬픔이 없는 절제된 묘사에도 불구하고 ...이 지구가 이젠 이런 고귀한 인간들을 더 이상  만들어내지 못할 거란 생각에 우울하다.

고결하고 이타적이며 인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겠다는 신념으로 자신의 목숨을 바친  마지막 영웅들의 투쟁기.

감옥에 갖혀 고문을 당한 율리를 위해 종이를 주고 그 글을 모아 이 책을 내도록 해준 감옥의 간수를 보면서,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이 세상이 좀더 나은 방향으로 간다고 믿고 싶어졌다.

결국 인간적인것이,인간을 배려한다는 것만이 영원히 인간의 마음에 남아 영혼에 새겨질 거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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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불명 야샤르
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 푸른숲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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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을 눈여겨 보면 된다.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알 수가 없는 야사르란 뜻이니 말이다.

어떻게 하다 그렇게 된 것이냐 하면, 야샤르라는 작자가 호적상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의 전쟁에서 전사한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을 바로 잡기 위해 평생 이리 저리  뛰어 다니는 것을 그려낸 블랙 코미디 소설이다. 한마디로 야샤르의 주민등록 만들기 대작전이라고 보면 된다.

자신이 분명히 살아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 서류상 공식적으로는 죽은 사람이라니, 과연 그는 정확히 죽은 사람일까? 아니면 산 사람일까? 자신은 살아있다는 것을 알지만서도, 어디에서도 그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지 못한다면 과연 그는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사회적 죽음이라는 의미에서, 생사불명이 분명해 보이는 한 딱한 남자의 고생담이라고 보심 되겠다.


그의 고난이 찬 일대기를 들여다보면 이렇다.

초등학교입학을 거절 당한 것으로 시작해서,  (주민등록이 없어서)시작된 그의 고난은 결국 정신병원을 거쳐 감옥에 까지 이르게 되지만 , 결국 그 소동을 겪어가면서 야샤르가 순박하고 속기 잘하는 시골 촌뜨기에서 누구보다 부조리한 세상을 눈치껏 살아가는 사람으로 거듭나서 출감하게 된다는 장면으로 끝을 맺고 있었다. 그마나 순박한 시골 촌뜨기로 끝이 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나 할까. 요령껏 사회를 살아나간 노하우를 얻었다는 것이 오히려 안심이 되던 소설이었다.


터키정부의 부패와 무능한 단면을 보여 준다는 블랙 코메디인것 같은데,터키 국민이 아니라 그런지 실감이 나지 않는 다는 점이 단점. 아마 터키 국민이었다면 맞아 맞다. 애들 이렇게 무능해! 라고 하면서 박장대소를 하겠지만서도, 하여간 여기는 터키가 아니니 말이다.

오히려 야샤르를 골탕 먹이는 관공서 사람들의 무심함이 웃긴다기 보단  심각할 정도로 지루해서 내용에 비해선 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착한 사람이 계속해서 골탕을 먹는 걸 줄기차게 우려 먹는 모습을 그윽하게 바라볼만큼 무심장을 가진 사람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하여간 "악마의 시"를 옹호할 정도의 안목을 지닌 사람이라도--이 작가가 바로 그런 사람이랍니다.--자신의 책을 재밌게 쓴다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걸 알게 해준 소설, 하지만 이 책만 그러할뿐, 이 작가, 꽤 익살맞은 유머 소설을 잘 쓴다는 사실만은 알아주셨음 한다.


어쨌거나 미친듯이 웃고파 하시는 분들에겐 권하고프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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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씨네 가족
케빈 윌슨 지음, 오세원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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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헐리웃에서 비교적 잘 나가는 배우 애니 펭은 뜻밖의 사고로 인해 구설수에 오르게 된다. 선정적인 장면을 연기하라는 감독의 주문에 반항한다는 취지로 스탭들 앞에서 가슴을 드러낸 것이 사진에 찍혀 인터넷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인터넷에 그녀의 가슴 사진이 돌아다니는 가운데, 애니는 자신이 어떤 사람이건 간에 노출증 환자로 보일거라는 사실에 좌절한다. 더욱 심난한 것은 그녀를 취재하겠다고 나온 싸구려 기자와 섹스까지 하고 만 것, 그녀는 자신이 점점 절제력을 상실하고 있는건 아닌가 싶어 걱정스럽다. 스캔들이 일파만파로 퍼져나가자 숨을 곳이 필요해진 그녀에게 동생 버스터에게서 전화가 온다. 알고보니 그간 잘살고 있지 못했던 것은 그녀만이 아니었다. 책을 두어권 낸 작가이긴 하지만 그다지 팔리진 못했던 관계로 이것 저것 쓸데없는 기사를 쓰는 프리랜서 기자로 살아가고 있던 버스터는 감자총에 열광하는 퇴직군인들을 취재하다 감자총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는 사고를 당하게 된다. 얼굴이 반쯤 뭉개진데다 병원비까지 엄청 나온 버스터는 하는수 없이 부모님 집으로 가기로 한다. 그의 결정에 결사 반대하는 애니, 그 둘에게 부모님 집이란 감옥과 동일한 단어였다. 마뜩치 않음에도 절박해진 두 사람은 하는수 없이 마지막 기댈 곳으로 부모를 찾아가고, 자신들이 떠나갈 때와 별다름 없이 지내고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많이 늙기는 했지만 예술적 열정만은 그대로인 두 사람은 이제 애니와 버스터 둘이 왔으니 자신들의 예술을 완성시킬 수 있을 거라면서 흥분한다. 이에 몹시 기분이 상한 두 사람, 과연 둘에겐 어떤 과거가 있는 것일까?


전위 예술가인 펭씨네 부부가 그들의 성공을 처음 예감한 것은 애니 때문이었다. 자신들에게 별다른 예술성이 없다는 것을 자인하려던 즈음, 세상에서 가장 예쁜 아기였던 애니의 울음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이후로 자신들의 예술 퍼포먼스에 늘 함께 하게 된 애니와 버스터, 그들은 아이 A와 B로 불리면서 펭가족의 예술적 명성을 이어나가게 된다. 문젠 펭씨 부부가 예술가로써 성공가도를 이어간 반면, 애니와 버스터는 아이로써의 어린 시절을 잃어버리게 되어다는 사실이다. 아빠와 엄마의 전위 예술에 끌려 다니면서 원치 않았던 연기를 해야 했던 둘은 커나가면서 점차 현실을 알게 된다. 자신들이 부모의 자식이라기 보단 예술을 위해 이용되는 존재에 불과했다는 것을. 결국 어른이 되자마자 부모에게서 떨어져 나간 두 사람은 늙은 부모가 이젠 자신들의 존재를 인정해주었음 하는 바람이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꿈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만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부모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던 애니와 버스터는 엄마와 아빠가 실종이 되버리자 의문에 휩싸이고 만다. 절대 실종이 될리 없다는 둘의 주장과 달리 경찰에서는 그 둘이 강도살해범을 만난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처음엔 그럴리 없다고 부인하던 애니와 버스터는 엄마와 아빠의 실종 사건을 본격적으로 추적하게 되는데... 과연 펭씨 부부는 어떻게 사라진 것일까? 애니와 버스터 생각대로 그들은 그저 또다른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는 것일까? 펭씨 부부의 은사를 만난 애니와 버스터는 부모를 찾지 말라는 그의 말에 의아하게 생각하는데...


부모-자식간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던 소설이다.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한 사람도 아니고 부모 두 사람이 모두 아이들을 이용하고 학대하는데, 서커스단의 곰이 떠오르더라.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서방이 받는다고 하던가? 정신이 멀쩡한 아이들을 곰처럼 사육하면서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두 사람을 보자니, 애니와 버스터 둘이 그렇게 엇나가는 것도 이해가 갔다. 무엇보다 그들이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가서도 어떤 것이 정상인지, 도무지 경계를 모르는 것이 말이다. 아니, 부모 자체가 그런걸 모르니 자식들에게 가르칠 수 없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려나? 그렇다보니, 다만 부모에게서 인정을 받고 싶어하던 착한 아이였던 애니와 버스터를 그렇게 정신 나간 어른으로 성장하게 만든 펭씨 부부가 가증스럽기 짝이 없었다. 실은 교묘한 아동학대를 저지르고 있는 것임에도, 네가 예술을 알어? 라는 일갈로 외면할만한 사람들이니 말이다. 과연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알기나 하는 것일까? 자식들의 행복을 기원하며 사는 대부분의 부모들을 생각해보면, 자식들이 별난 행동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에 만족감을 느끼는 부부의 행태는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니지 싶다. 하지만, 그런 기행을 뻔히 바라보면서도 독자들은 바라는 것이다. 언젠가는 그 커플이 제대로 된 부모 노릇을 할 것이라는 기대 말이다. 부모라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자식들이 자신들의 이기적인 행동을 알아차릴 정도로 어른이 된 마당에 적어도 한번쯤은 자신들의 잘못을 과거를 회상하면서 반성해주지 않을까 했던 기대는 , 둘의 실종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과연 이 작가가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될지 ,궁금하신 분들은 읽어 보시길...


초반부터 중반까지의 전개가 신선하다.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모르는 두 남매를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과거가 궁금하게 만드는데 성공을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등장하는 두 남매의 부모는 왜 그들이 그런 어른이 될 수밖엔 없었는지를 논리적으로 수긍하게 한다는 점에서 완벽한 등장이었다.  인생을 말아먹을 수밖에 없는 부모밑에서 두 사람이 성장했다는 것을 개연성 넘치게 보여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 매력적인 도입부와 전개에도 불구하고, 중반 이후로 조금은 싱겁게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별로였다. 나라면 그렇게 열심히 부모를 찾아나서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왜 그다지도 열심히 부모를 찾아나서는지 이해가 되지 않더라. 한번 봉은 영원한 봉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려 한 것일까? 부모는 자식을 버릴 수 있어도 자식은 부모를 버릴 수 없다는 그런 관념때문인 것일까? 그렇게 당하고서도, 여전히 착해 빠진 주인공들이 별로 맘에 들지 않더라. 자식들의 순진함에 비해 부모대의 악랄함이 지나쳐서 그런지, 두 세대간의 불균형이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하여간 매혹적이고 기세등등한 도입부에 비하면 마무리가 힘이 빠진 듯하다. 뻔한 결론으로 흥이 가라앉는 듯한 기분이었으니 말이다. 읽고 나서도 결국 이 책은 무슨 말을 하려던 것이었는지도 의문이었다. 예술이 전부가 되면 곤란하다는 것? 아이를 이용하면 안 된다는 것? 예술을 한답시고 아이를 이용하는 철딱서니 없는 부모들을 고발하려는 것? 글쎄...그럼에도 그들이 잘 살아남아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서도, 감동을 받기에는 조금은 부족한 시도였지 않았는가 한다. 영화로도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아마도 <가위 들고 달리기> 정도의 정신나간 집안을 보여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을까 한다. 언제나 말하지만, 미친 자들에게서 과연 무엇을 배우겠는가. 미친 자들이 얼마나 우리를 미치게 하는가 라는 점? 그게 현실이건 아니건 간에, 일단 미친자들을 우리가 싫어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제 정신이 아닌 사람들을 바라보는게 재밌지도, 흥미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사실 말이다. 미친 사람들에게 길려졌다 탈출한 남매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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