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트 키즈 - 패티 스미스와 로버트 메이플소프 젊은 날의 자화상
패티 스미스 지음, 박소울 옮김 / 아트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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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려서 보게 된 책이다. Just Kids 그냥 아이들이었지, 라는 뉘앙스로 제목을 해석한 나는 이젠 제법 나이가 든 저자가 젊은 시절 자신의 치기어린 모습을 보여주려나 보다 했다. 틀린 말이 아니질 않는가. 어른이 되었다고 좋아하는 20대가 실은 얼마나 어렸는지 나중에 생각해보면 부끄러워지 일쑤니 말이다. 나의 20대 역시 다르지 않았기에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해서 제목의 공감때문에 보게 된 책, 읽으면서 안타까웠던 것은 내가 음악에는 문외한이라서, 저자인 패티 스미스란 사람을  전혀 모른다는 점이었다. 그나마 그녀의 이름은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이라도 났지만서도, 이 책에서 Just Kids 의 다른 축을 담당하는 로버트 메이플소프란 사람은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하니, 패티 스미스란 현대 여성 락커의 지존이라는 분이 자신의 젊은 시절의 소울메이트인 로버트를 회상하는 이 책이 내겐 애시당초 그다지 감동을 받을만한 구석이 없었다. 아무래도 잘 아는 사람들이라거나, 관심이 가는 사람이었다거나 , 더 나아가 팬이었다면 이 책의 한 문장 한 문장이 분명 소중하게 느껴졌을테니 말이다. 아무런 정보 없이 그저 제목이 괜찮단 이유로 책을 읽게 되면 또 이런 함정이 있다. 하여간 아는 만큼 보이기 마련이라서, 알지 못하면 뻔히 보면서도 자신이 무엇을 보는지 모를 수 있다는 것은 옳은 말이다. 그러니 이 책에 대한 리뷰는 내가 마치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수준 내지는, 별 감흥없이 문장에 대한 독해만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봐주셨음 한다. 그저 책 자체만으로 평가한 것이지, 팬으로써의 사심이 조금도 들어있지 않다는 뜻이다. 그도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무엇을 하시는 분들인지도 몰랐고, 한번도 그들의 팬인적이 없었을 뿐더라, 이 책을 읽고난 후에도 그들의 팬이고 싶은 생각이 없는 사람이 쓴 리뷰이니 말이다.

 

이 책은 미국의 60년대와 7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냈던 두 사람이 어떻게 혼란과 좌절을 이겨내고 문화의 아이콘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가를 보여주고 있던 자서전이다. 패티 스미스의 음성으로 기록된 이 자화상은 또한 한 남자에 대한 사랑의 찬가이자 애도이기도 하다. 패티의 소울메이트였던 로버트가 89년에 에이즈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성애자 여자와 게이 남자의 조합이라...언뜻 접합점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 만나게 된 계기는 이렇다. 자라온 고향이 갑갑해진 패티는 학교를 때려 치우고 거의 무일푼인 상태로 뉴욕에 간다. 찾아가려던 친구는 이사를 가고 들고간 돈마저 떨어지자 패티는 거리에서 노숙자 신세가 된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로버트를 만난 패티는 그날로 동거에 들어간다. 로버트 역시 자신의 예술을 완성시키기 위해 집을 떠나 뉴욕에 자리를 잡으려 하던 참이었다. 가난한데다 의지할 데는 없고,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생활에, 예술에 대한 열정을 넘쳐나고 , 중성의 분위기를 풍기는 등 공통점이 많았던 둘은 곧 사랑에 빠지고 만다. 하지만 둘의 사랑은 얼마못가 좌절을 맞게 된다. 로버트가 자신이 게이인지 양성애자인지 혼돈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한다면서도 냉랭한 로버트가 이해가 되지 않던 패티는 곧 그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이해를 하게 된다. 당시 시대 분위기상, 자신이 게이라는 점에 무척 수치심을 가지고 있었던 로버트 는 왠만하면 패티와 부부로 살아가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육체적으로 남자에게 끌리던 그는 결국 자신의 성정체성을 찾아 가게 된다. 결국 헤어지게 된 두 사람은 각자 서로의 길을 가게 된다. 로커이자 시인으로써 이름을 알리게 된 패티, 자신의 예술혼을 사진에 담게 된 로버트는 둘이 처음 만났을 때는 상상하지 못한 성공을 서서히 이뤄 나가게 되는데...

 

70년대를 풍미했던 이젠 전설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주루륵 나온다. 앤디 워홀, 밥 딜런, 지미 헨드릭스, 윌리암 버로스, 앨런 킨스버그 기타등등 70년대를 주름잡은 문화 아이콘은 거반 다 나오는 듯했다. 그들과 다 친구였고, 그들과 영향을 주고 받았으며, 덕분에 이런 저런 일화들을 이 책 안에 가득했는데, 사실 그저 기록이라는 것 외엔 그다지 의미는 없는 듯하다. 내가 젊었을때 지금은 전설이 된 고인을 만나봤다 정도? 우정을 오래, 그리고 의미있게 이어가기엔 만남의 시간이 부족했었으니 말이다. 왜냐고? 다들 마약이니 기타등등해서 요절해 버렸으니 안 그렇겠는가.  이 책을 보면서 예술가라는 것도 어떤 직업군 못지 않게 위험군이라는 생각이 들던데, 종국엔 패티 주변의 사람들이 다들 죽어나가더라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그것도 자살이나 마약 중독, 그리고 에이즈로...저자가 그런 환경속에서도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던데,  아마도 그 덕분에 이런 책도 쓸 수 있었던 것이지 싶다. 그녀 외엔 이런 글을 쓸만한 사람이 남아있지 않으니 말이다. 하여간 그렇게 엉망진창인 생활들을 하면서도 무언가를 창작해내었다는 사실이 지금와 생각해보면 놀랍다. 더군다나 그것들이 지금에도 그렇게 대단한 무엇이었다는걸 생각해보면 말이다.

 

70년대 미국의 문화를 통해 당시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나, 저자의 기대만큼 둘의 관계가 매력적이지 못했다는 것은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까 한다. 물론 둘이  좋은 연인이자 친구였고, 동반자였다는 사실은 명백해 보였지만, 그 둘을 보면서 감탄하게 되진 않더라는 것이다.  서로의 창작물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다는 둘, 아마도 진정한 의미의 소울 메이트였을 것이다.  서로를 인정하면서도 다름을 이해했던 두 사람의 우정, 존경스럽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은?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그들에게 가진 인상일 것이다. 편견이라기 보단 그저 인상, 다시 말해 내겐 그들이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그들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더해지더라. 내가 결국 그들에 대해 별로 알고 싶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도 그 연장선상일 것이다. 그러고보면, 결국 모든 것은 매력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정말로 많은 매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어쩜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그저 타고 태어나는 자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그나저나, 아놔~~나 이 리뷰 이렇게 길게 쓴거야? 짧게 쓰자고 했는데 말이다. 책 제목이나 이 리뷰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이 책의 다른 주인공인 로버트의 사진들은 지극히 가학적인 동성애를 그리고 있었다고 한다. 예전에 어떤 책에서 게이를 수치스러워 하는 사회 분위기가 그들이 자신을 열등하고 무가치한 존재라고 느끼게 만든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로버트도 그런 사람들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다보니 만약 그가 지금 2010년을 살아가는 게이라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 궁금해졌다. 그때보단 더 행복하지 않았을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보다 긍정적이지 않았을지 라는 것...그리고 아마 예술관 자체도 조금은 달랐지 않았을까 싶다.  변태적이라 할 수 있는, 가학-피학적인 동성애를 즐겨 찍었다는 그를 생각해보면 말이다. 하긴 내가 뭐 어떤 것이 더 낫다라고 말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긴 하겠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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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 이후 , 아프간 동굴에 은신하고 있다고 추정되어 온 오사바 빈 라덴의 행방을 쫓는 미국 CIA의 노력은 계속되었지만 정작 그를 찾는 것은 요원하기만 하다. 어쩜 이리도 못 찾을 수가 있을까, 혹시 죽은 것은 아닐까 라는 소문마저 돌던 2011년 어느날,  미국 정보부는 알카에다 일원 하나를 취조하다 뜻밖의 정보를 얻게 된다. 파키스탄의 수도인 이슬라바마드의 외곽에 한 거물이 요새처럼 가옥을 지어놓고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인공위성과 갖가지 장비를 통해 그 가옥을 면밀히 조사한 CIA 정보분석관 비비안은 그곳이 그들이 그토록 찾아 헤맨 빈라덴의 근거지가 아닐까 추정하게 된다. 문제는 그곳이 아프간이 아닌 동맹국 파키스탄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고, 그 주변에는 군사기지와 군사학교가 밀집한 곳이었다는 사실이다.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달겨 들었다가 아니란 것이 밝혀졌을 시,  최소한 외교 문제화, 최대한 전쟁을 불사하게 할만한 커다란 문제가 될 것이 뻔했던 것이다. 그걸 잘 아는 CIA의 부국장은 비비안의 강력한 권고에도 그곳에 특수부대를 파견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보다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내게 오라는 부국장의 말에 할 말이 없는 비비안, 그녀 조차도 가옥 주변을 가끔 산책하는 192 센티미터의 사내가 오사마라는 심증은 있어도 그가 정말 오사마 빈 라덴인가 하는 것에는 확신을 할 수 없었다. 워낙 보안이 철통같아서 사진 한 장도 찍을 수 없었던 탓이다. 그렇게 몰아붙이자는 비비안과 신중해야 한다는 윗선간의 실갱이가 늘어지는 가운데, 몇 초 간의 영상 판독으로 그곳에 빈 라덴이 숨어 있다는 확증을 얻게 된다. 이제 남은 일은 특수부대를 파견하는 것, 미리 그곳에서 진을 치고 있던 특수부대원들은 자신들이 잡으러 가는 사람이 오사마 빈 라덴이라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데...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던 작전을 현장을 보는 듯 보여주던 영화다. 생생한 현장감이 압권으로,어렵지 않게 작전을 따라갈 수 있었다는 것도 좋았다. 그래, 일명 작전명 제로니모... 2011년 5월의 어느날 아침 우리들은 미국이 드디어 오사마 빈 라덴을 잡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었다. 그때 내 느낌은 어, 오사마 빈 라덴이 정말 실존 인물이었네? 라는 것과 그렇게 신출귀몰하게 숨어 있더니만 어떻게 발각이 된 것일까? 라는 의문이었다. 911테러와 별 관련이 없는 내가 그런 의문을 가졌다면, 911에 누구보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았던 미국 사람들이 궁금해했을 것이라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결국 그 모든 사람들의 궁금증을 말끔하게 해소해주기 위해 만들어진 이 영화는 어떻게 오사마 빈 라덴을 미국이 잡을 수 있었는지를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결론만 본다면 아주 쉬워 보이는 작전같아 보이지만서도 ,실은 그 이면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고민하는 CIA의 직원들이 있었고, 타국에서 신속하고 깔끔하게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한 특수부대원들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보기 전에는 조금은 감상적이지 않을까, 내진 작전을 처리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기에 지루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건 기우였다. 아주 건조하고 절제된 톤으로, 코드명 제로니모가 어떻게 시시각각 전개되어 나갔는지를 보여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희대의 테러범이라는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다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이해하기 쉽게 늘어놓았다는 점만은 박수를 받아도 좋지 싶다. 최대한 감정을 자제한 결과 오히려 더 좋은 영화가 된 것이 아닐까 한다. 어설프게 애국심에 강조를 했다거나, 영웅심리에 기댔었다간 우스운 영화가 될 수도 있었는데, 영리하게 그 함정은 피해나간 것 같다. 전쟁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보기 부담이 없을 정도로 건조하고 담백하게 이야기를 끌어 나간 점이 장점. 오사마 빈 라덴의 최후가 궁금하신 분들은 보셔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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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 살아남은 것들을 향한 탐험
피오트르 나스크레츠키 지음, 지여울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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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에 잠이 든것까진 좋았다. 문제는 새벽 3시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는 것이다. 과연 새벽 3시에 일어나서 할게 무엇이 있다고 말이다. 남들 다 자는데 인터넷 혼자 하고 있기도 뻘쭘하고, 그렇다고 드라마나 영화를 보기도 영 내키질 않고. 잠을 청해 보려 이리저리 뒤척여 보지만 그럼에도 잠이 오지 않는다면 , 답답하고 분한 마음 부여잡고 일어나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다. 책 읽는 것... 다만 이때 주의해야 하는 점은 그 어느때보다 책이 아주 아주 재밌는 것이여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고? 일단 단잠에서 깨어났단 것만으로 이미 기분이 잡쳐있을 가능성이 100% 이니 말이다. 그렇다보니 그 시간대에 내 손이 잡힌 책들은 왠만해서는 아작나기 마련이다. 인내심이 바닥났을때 무언가를 좋게 보기란 참으로 어려운 법이니 말이다.

 

어제도 그랬다. 해서 새벽 3시에 눈이 떠졌을때 큰일 났구나 싶었다. 왜냐면 잠 들기전, 요즘은 볼만한 책이 없다면서 툴툴대다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흐,  이걸 어째... 짜증나는 가운데 하는 수 없이 주변에 널부러져 있는 책들을 살펴 보았다. <어떻게 살 것인가>--괜찮기는 한데, 도무지 언제쯤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해 알려주려나? <토르소 &토르소> --정말로 이걸 다 읽고 싶어? < 나쁜 대학, 우리 아들 대학 보내기 사생결단 프로젝트>--제목까진 그럴싸했는데 말이지...<스티븐 킹 11/22/63>--스티븐 아저씨가 글을 열심히 쓰신다는 것은 알겠어, 그런데 요즘은 그저 열심히 쓰는게 다라는게 문제지. <산티아고 :푸드러버의 순례길> --그나마 읽어볼만 하긴 한데, 아까 읽다 잤더니 더이상은 읽고 싶지 않아. <야수의 정원 >--아마존 선정 2011년 최고의 논픽션이라곤 하는데, 정말인지 의심스러워~ <미국의 아들>--이건 정말 읽어야지, 다만 지금 말고,나중에... <부모와 아이 사이>--중반을 넘어서니 그 말이 그 말 같던데, 이거 꼭 완독해야 할까? ....

 

그렇다보니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바로 이 책 " 가장 오래 살아남은 것들을 향한 탐험" 이었다. 뭐, 하는수 없지, 어쩌겠어, 이것밖엔 안 남았는데, 라면서 마지못해 읽기 시작했는데. 이거 의외로 재밌지 뭔가. 뜻밖에도 말이다. 전혀 재밌어 보이지 않아서 구석에 처 박아둔 책이 가장 재밌을 줄 그 누가 알았으리요. 하여 새벽 3시에 눈 비비고 일어나 세수도 하지 않고 이불속에 엎드려 비몽사몽 읽어 내려 가던 와중에 점차 짜증이 썰물처럼 사그러 드는걸 느낄 수 있었다. 결국엔 앉은뱅이 밥상까지 가져와 진지하게 읽게되고 말았다. 잠 자는 것보다 책이 더 궁금해져서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책은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일까? 대략적으로 한번 리뷰를 해 볼까나?

 

일단 이 책의 저자인 피오트르 나스크레츠키님이 유능한 사진가에 해박한 박물가이며 -특히 여치 분야에 전문가임--지극히 현실적인 환경보호주의자에 매력적인 작가라는 사실을 아셔야 한다. 그의 내력을 알고 나면 이 책이 어쩌다 이렇게 훌륭해 졌는가 단박에 짐작이 되실테니 말이다. 작가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어렸을 적부터 자신의 호기심의 대상이던 "살아있는 화석"에 대한 의문때문이었다고 한다. 기나긴 지질학적 시간동안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동식물이 존재하며, 이런 동식물의 몸과 행동에 과거의 지구 모습이 담겨져 있다는 주장을 맨처음 한 사람은 찰스 다윈이었다. 인간이 존재하기전 원시의 지구를 상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과학자들을 매료케 했던 이 개념은 하지만 과학이 점차 발전되면서 정확히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무리 현재의 모습이 고대의 화석과 똑같다고 해도, 실은 기나긴 세월동안 그대로인 경우는 없다고 하니 말이다. 조금씩 조금씩 진화의 과정을 거쳐서 약간씩은 변형된 형태로 현재에 이른 것이라 하니, 어쩌면 살아있는 화석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들은 과거의 흔적뿐일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고대의 유물인 화석과 너무도 닮아있는 생물체를 만난다는 것은 인간에겐 너무도 신기한 일인지라, 저자는 이들을 "잔존 생물" 혹은 "유물 생물" 이라 명명한 뒤, 전세계를 돌아다니면 그들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 탐험의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가 지구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것들을 찾아 탐험에 나선 오지들은 대충 이러하다. 지구에서 가장 고립되고 오래된 장소인 뉴기니와 뉴질랜드, 그리고 남아공의 핀보스와 서큘런트 카루 지대, 그외 서 아프리카의 레퓨지아 숲, 남아메리카의 기아나 순상지, 그리곤 얼음귀뚜라미붙이를 찾아 캐나다로 날아간다. 그것만이 아니다. 짝짓기를 위해 육지로 나오는 투구게를 찍기 위해 미국 동부 해안으로 날아간 그는 마지막 탐험지로 보스턴의 자신의 집 주변인 이스타부룩 숲을 택한다. 가장 오래 살아남은 것들을 찾아 지구 끝까지 해매고 다녔지만, 가장 가까운 곳에서도 과거 지구의 자취를 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아, 이 숨가쁜 여정이여. 그리고 그 험난한 일정이여...여행을 하면서 작가는 동료가 동굴에서 굴러 떨어지는 광경도 목격하고, 말라리아에 걸려 몇달 간 죽을 고비를 넘기며, 자꾸만 바다에 빠지는 나무 늘보를 만나기도 한다. 소매치기도 당하고, 도둑 취급도 당해가며, 공항 직원들의 노골적인 의심에도 한마디 변명도 못하면서 세계 전역을 빨빨 거리면서 돌아다닌다. 그저 멋진 생물체들을 직접 보고 사진을 찍는다는 일념하에 말이다. 그의 열정이 어찌나 강렬하던지, 그가 이런 여행을 준비하면서 얼마나 설렜을지가 눈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생생한 열정으로 만들어 낸 탐험집이다보니, 이 책이 이렇게 흥미진진해진 것도, 매혹적인 이야기가 줄줄 이어지는것도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자연스러운 것도 당연한 것도 절대 아니지만서도 말이다. 거기에 비단 작가의 열정만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작가의 글솜씨 역시 만만치 않아서 요령있는 설명과 재치있는 전개,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어깨에 힘 쫙 뺀 문장들은 이런 종류의 책이 어려울 것이라는 선입견을 부수고 있었다. 보통 이런 책에선 기대하지 않는 자질이었기에 놀라움이 컸다고 보심 되겠다. 그냥 대충 써갈긴 건조한 설명이 전부일 거라 생각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고 매혹적으로 들리게 만드는 작가의 입심보다 더 이 책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그의 엄청나게 아름다운 사진들이었다. 정말로 사진들이 하나 하나 다 압권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생명체들을 여지껏 몰랐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질 정도로 눈길을 사로잡는 것들로 넘쳐났는데, 그걸 렌즈를 통해 담아내는 작가의 솜씨는 가히 명불허전이었다. 얼마전 내셔널 지오그라픽 사진전을 보면서 느꼈던 감동을 이 책을 보면서도 느낄 수 있었는데, 이런 생명체들을 찾아내는 눈도 눈이지만서도, 그걸 이처럼 선명하게 담아내는 작가의 재능에는 두손 두발 다 들 수밖엔 없었다. 이런 사진 어떻게 찍나요 라는 질문에 총론적인 설명만 해주시던데, 실제로 찍는 과정을 들어보니 보통 복잡한게 아니더라. 이 작가가 자신의 사진에 자부심을 가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싶었다. 하여간 그가 이 책 안에 수록해 놓은 생명체들을 언급해 본다면...


벨벳으로 만든 헝겊 인형 같던 서아프리카의 아트와 공룡 거미, 투명한 몸체에 선명한 장미빛 내부로 치장한 뉴기니 단각류. 나무잎과 거의 식별이 불가능한 가랑잎 벌레, 턱 길이만 자신의 몸 2배인 엑시마우스 사슴벌레, 녹색 몸체에 분홍색 눈과 빨간 수염을 가진 분홍눈 여치,투명한 녹색 몸체로 이끼 덮인 뉴기니 숲속에서 완벽하게 위장이 가능한 투구 여치, 투명한 날개를 펼치고 나뭇잎 표면에 달아붙어 자신의 몸을 숨기는 매미충, 흡사 장난감으로 만든 것이라고 해도 믿을 듯한 남아공의 테이블마운튼 바퀴벌레, 강렬한 검은색과 빨강색의 조화로 자신의 몸에 독성이 있음을 만천하에 자랑하는 거품메뚜기, 덤블의 말라 비틀어진 가지와 도저히 분간이 안 되던 쌍뿔거리 거미와 우아함의 결정체인 서 아프리카 살모사, 어디를 봐도 흠잡을 데 없는 이끼 모양의 거미, 보석같은 아라노이트라 캄프리드 게이(거미류) 죽은 잎을 완벽하게 흉내내는 죽은 잎 사마귀 암컷(녹색)과 완벽하게 아름다운 매끄러운 재질의 갈색 나뭇잎 날개를 달고 다니는 죽은 잎 사마귀 수컷의 우아한 자태는 동일한 종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었다. 그외에 선명한 코발트 블루의 날개가 넋을 잃은 정도로 아름다운 가이아나의 모르포 메엘 라우스, 자외선에 노출되면 초록색으로 빛이 난다는 전갈등은 이 지구가 얼마나 매력적인 생명체로 가득한 곳인지, 그리고 우리가 그걸 얼마나 모른 채 살고 있는지 새삼 확인하게 해줬다.  피사체들의 아름다움이나 특별함이 곳곳에 묻어나던 사진들은 저자가 이 생명체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고 열정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알게 해줬다. 이런 사랑이 아니라면 그렇게 아름다운 사진이 나올 수는 없었을 테니 말이다. 아, 물론, 사진 작가다운 유능함이 있는 분이라서 그런 열정도 가능한 것이었겠지만서도 말이다.


책을 덮으면서 어쩌면 이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은 동물과 식물, 그리고 곤충들을 소개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바로 이 저자란 생각이 들었다. 그의 해박한 식견도 식견이지만, 그의 무모한 열정이 아니라면 도저히 나오기 힘든 책 같아 보였으니 말이다. 아름다운 사진들만 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지적인 모험이 될 터이지만서도, 저자가 곤충학이 전공인 관계로 곤충 사진이 많다는 점은 미리 알아두심 좋을 듯하다. 사진만 본다해도 해될 것은 없지만, 사진만 보면 좀 으스스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곤충을 싫어하시는 분들이라면 특히나 더...사진이 아름답다고는 하나 저자의 설명과 함께 봐야 시너지 효과를 제대로 내는 책이라는걸 알아달라는 것이다. 저자의 설명을 들으면서 보면 전혀 징그럽지 않은 피사체지만, 설명 없이 보게 되면  기겁 할만한 사진들도 있었으니 말이다. 역시나 인간은 전염되기 쉬운 존재인가보다. 저자의 해맑고 순수한 열정에 공명이 되다보니, 징그러운 뱀이나 전갈, 바퀴벌레마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는데 말이다. 물론 실제로도 무척 아름다운 생명체였지만서도. 하여간 찬찬히 내용과 함께 사진을 들여다 보시면서 이 지구상의 매혹적인 생명체에 대해 경외심을 갖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동물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후회없는 독서 경험이 되실듯...


그나저나, 나 세상에서 바퀴벌레 제일 싫어하는데, 이 책을 보곤 바퀴벌레도 바퀴벌레 나름이라는 것을 알았다. 진짜 이게 바퀴벌레라고? 할만큼 아름다운 것들이 많았으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것들을 모으고 싶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서도, 특히나 투명한 몸체에 장미빛 내용물로 채워진 단각류를 보면서, 만약 바퀴벌레가 저렇게 생겼다면 우리가 비명을 질러가며 때려잡을 일은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해가 안 되신다고? 그건 사진을 보심 단박에 이해가 가실 것이다. 그외에도 투구게가 전갈류라는 사실이나, 빙그레 미소짓는 나무 늘보가 아기를 닮았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박물학자가 되려면 온갖 기후에 빨리 적응하는 신체도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질병을 두려워 해서는 안 되겠더라. 직업병이라고 해야 할까? 저자가 조심에 조심을 해도 풍토병이니 전염병에 걸려 고생을 하는 걸 보니 말이다.  덕분에 나중에 조카가 박물학자가 된다고 하면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말려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너무 고생을 하는걸 읽으려니, 따땃한 방에 이불 뒤집어 쓰고 누워 책을 읽는 것이 황송해지더라. 하여간 넘치는 사랑과 열정으로 이 책을 이렇게 훌륭하게 만들어 낸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 지구가 이렇게 풍요로운 곳이었음을 알게 된 것은 한 밤의 불면증이 자아낸 최고의 수확이 아닐런지...이런 책만 있어 준다면 종종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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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림이다 -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 현대미술가 시리즈
마틴 게이퍼드 지음, 주은정 옮김 / 디자인하우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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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맥클린의 <빈세트>를 들을때마다 " 이 세상은 당신같이 아름다운 사람을 위한 곳이 아니"라는 가사에 울컥하곤 한다. 이상도 하지? 누구보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그려낸 사람을 우리가 정작 박대했다는 것이 말이다. 우리에게 이 지구가 얼마나 놀랍도록 아름다운지 보게 해준 사람에게 우리가 돌려준 것이라곤 배신과 조롱과 비난밖에 없었다는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의 눈에 잡힌 젠체하지 않는 소박한 아름다움에는 열렬히 찬사를 보내면서도 인간 고흐에 대해선 박정한 우리들을 보면 얄밉다는 생각마저 든다. 아마도 우리인간은 천성적으로 은혜를 모르는 무리인지도 ... 어쨌거나 고흐를 사랑하셨던 분들은 기뻐하시라! 다시 그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하니 말이다. 이른바, 회화의 시대로 회귀할 것이라고 이 책의 공저자인 데이비드 호니크가 말씀하신다. 어? 진짜로? 어떻게?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일단 이 분의 말을 들어보심 좋을 것이다. 화가로 평생을 살아오셨고, 현재도 현직 화가인 그가 평생의 통찰을 담아 논조를 펼치고 있으신 것이니 말이다.  현대 미술은 난해하거나 재수없거나 추하다고 생각하신 분들은 반가운 소식이지 않는가 한다. 다시금 우리가 이해 가능한 그림들이 주류를 이룰 것이라고 하니 말이다. 어쩌다가? 라고 생각하신다면 현재 주류인 현대 미술에 대한 염증이 점차 증가되는데다가,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화가들의 반성이 뒤따라서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한다. 제대로 된 그림을 그려보자는 운동인 것이다.  해서 처음엔 왜 저런 제목을 달고 나온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었는데, 내용을 읽어보니 핵심을 압축한 좋은 제목이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정말 다시 그림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다른 누구도 아니고 팝 아트스트이자 포토 콜라주의 창시자라는 데이비드 호니크가 회화로 회귀할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니, 어찌된 영문일까? 내용을 조금 들여다 보기로 할까?

 

우선  데이비드 호니크가 누군지 모르다고 하시는 분들도 이 책을 읽는데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 드린다. 나 역시도 그의 이름을 이 책에서 처음 들어봤지만서도 읽는데는 상관이 없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아무런 선입견없이 읽게 된 것이 더 낫지 않았는가한다. 책 자체만으로 평가를 하게 되는데다, 조금은 수다스러운 노 화가에 대해 새로 알아가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었고 말이다. 그나저나 이 양반, 70이 넘은 나이이신데도 어찌나 활기가 넘치시던지...그 왕성한 지적 호기심과 열정, 사물을 분석하는 날카로운 통찰력에는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화가로써 남들과 차별되는 개성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인데, 그것만이 아니라 본인의 미학적인 관점을 명확하게 설명할 줄 안다는 점에서 감명을 받을 수 밖엔 없었다. 첫인상과는 달리 그는 꽤 비범한 화가였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천재? 또 그걸 남들에게 명확하게 설명할 줄 아는 능력이 있고 말이다. 화가들의 표현력이란게 상대적으로 그림에 한정되어 있을 것이라는 나의 편견은 단숨에 부셔지고 말았으니... 이 양반이 워낙 똑똑해서 말이다. 하여간 별 내용 있겠어? 했던 나의 심드렁함은 초반을 넘어가면서 열렬한 열정으로 바뀌었으니...그가 진실로 들어줄만한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재적인 시각에 평생에 걸친 사색, 그리고 언제나 현역이라는 열정이 만들어낸 이야기들이였으니 그렇지 않겠는가. 그가 자신만의 철학을 이야기 하는 순간 저절로 집중이 되더라. 누구라도 그 정도의 경지에 오르면, 그가 어떤 말을 하건 간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법이니 말이다. 행운인지 아니면 기적인지, 그의 대화 상대가 이 책의 저자인 마틴 게이퍼드라는 것은 정말로 다행스런 일이었다. 그의 대화 상대로 이보다 더 적절할 수는 없어 보였으니 말이다. 대화를 해본 세상의 모든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대화를 잘 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기술이다. 상대의 말을 헤아리면서, 상대가 하려는 말을 막지 않고, 정확히 그가 하려는 말이나 행간에 숨겨진 말까지 끄집어 내주면서 대화를 나눈다는건 쉽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그런데 바로 이 책의 저자가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최고의 화가와 최고의 인터뷰어의 만남이라고나 할까.  단지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눈 것밖에는 없는데 그것을 이토록 풍성한 내용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인터뷰어의 자질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데이비드가 하려는 말을 정확히 꿰뚫고 있는 것은 물론이요, 그가 더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주고,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정신 바짝 차리고 경청하고, 그의 심중을 이해하려 늘 생각하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겸손하고 진지해 보였다. 그렇다보니 데이비드 호니크가 그를 예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지 싶다. 자신을 이렇게 깊이있게 이해하는 상대가 안 예뻐보일리 없으니 말이다. 

 

하여간 환상의 조합으로 만나게 된 두 사람이 짝짝쿵을 맞춰가며 나눈 대화들을 정리한 것인데, 골자만 추려본다면 다시 회화로 돌아갈 것이라고 예언하는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생각을 설득력있게 펼치고 있는 책이라고 보심 된다. 거기에 호니크 자신이 창작하는 과정이나 뜨문뜨문 엿보이던 그의 사생활, 그리고 영국의 외딴 시골에서 그가 자신의 고향을 그리게 된 사정이 들어가 있었다. 오랫동안 타지 생활을 하던 호니크는 말년이 되자 고향에 정착 해서, 현재 고향의 사계 연작을 그리고 있다고 하는데, 그의 시선에 잡힌 고향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가는 책 곳곳에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으니 궁금하시면 보시길... 참, 책 표지에 보이는 멜빵 바지를 입은 분이 바로 데이비드 호니크씨다. 지적이고 자신의 주장이 확실한 거장과의 대화를 엿듣는 귀중한 기회를 잡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절호의 기회일 듯...다시 예전처럼 회화로 돌아갈 것이라는 호크니의 주장에, 처음엔 글쎄? 라는 미심쩍은 심정이었는데. 읽어가다 보니 그의 주장에 열렬하게 동조하게 되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라, 알고보니 나 역시도 현대 미술엔 그다지 애정이 없었나보다. 나야 뭐, 뭐니 뭐니 해도 고흐나 모네의 그림이 좋으니 말이다. 거장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명쾌해서인지 이해나 설득이 쉽다는 점이 장점.  내가 아무리 헛소릴 떠든다고 해도 이 책에 대해 감이 안 잡히실 분들을 위해 밑줄 그은 말 몇 문장을 적어 놓았으니,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한번 이 책을 읽어보심도 좋을 듯...

 

<밑줄 그은 말들>

호니크; 내가 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작은 드로잉 몇 점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며칠 동안은 아침에 그곳에 가서 그저 20분 동안 서 있다가 이곳으로 곧장 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머릿속에 놀랄 만큼 많은 것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보는 것이 정해집니다. 그리고 그밖의 많은 것들을 무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네는 나는 이것을 보겠다고 결심했을 겁니다. 물에 반사되는 구름을 실제로 어떻게 볼 수 있을까, 하고 말이지요. 그 후 10~15분 동안 기억력이 아주 많이 좋아질 것입니다. 상상해 보셔요. 이른 아침 모네가 한 일은 수련이 핀 연못으로 걸어 내려가 담배 몇 대를 피우며 그곳에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돌아와 그림을 그린 것이죠.--105

 

반 고흐는 사진 촬영을 위해 자세를 취하려 들지 않았습니다만, 그 이후로 다른 모든 예술가들을 찍은 사진이 존재합니다. 이는 예술가들이 사진가를 위해 포즈를 취해주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반 고흐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진을 높이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내 추측으로는 그는 세계가 사진처럼 보인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점에서 나느 그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진이 실제를 포착한다고 믿고 있지요. 사진은 실제를 조금은 포착하지만 그렇게 많이 포착해내지는 못합니다. 반 고흐는 그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보기엔 반 고흐의 작품과 세잔의 작품이 세계를 보는 인간의 시각과 보다 가깝습니다. 세잔이 브그로가 정직하지 않다고 언급했을 때, 그는 우리는 그런 식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대상의 위치를 의심하는, 보다 세잔적인 방식으로 봅니다.--121

 

반 고흐가 그린 아를 주변의 들판을 찍은 사진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을 겁니다. 꽤나 따분하하고 평이한 풍경이지요. 반 고흐는 우리로 하여근 카메라 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게 합니다. 그의 많은 작품들과 그 주제가 된 풍경을 실제로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제 풍경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흥미롭지 않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반 고흐에게 물감과 캔버스를 주고 미국의 가장 따분한 모텔 방에 일주일간 가두어 둔다 해도 그는 황폐한 욕실이나 낡은 상자를 그린 놀라운 회화 드로잉을 완성할 것입니다. 나는 반 고흐가 어떤 것이든 그릴 수 있고, 그것을 매력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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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남자가 팻입니다.>

쓰레기 봉지를 입고 열심히 뛰고 있는 이 남자, 어딘지 이상해 보인다고 생각하신다면 맞게 보신 것이다. 생긴건 멀쩡하게 생겼지만 실은 이 남자, 팻 솔리타노의 인생은 지금 이보다 더 엉망일 수 없다이니 말이다. 8개월전 그날따라 집에 일찍 들어온 팻은 아내가 외간 남자와 바람을 피우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만다. 그것도 자신의 결혼식날 울려 퍼졌던 음악을 틀어놓고 말이다. 어떤 남자가 그걸 보고 제 정신이겠는가 만은, 팻은 더군다나 조울증을 앓고 있으면서도 본인은 그걸 자각하지 못한 상태였다. 심하게 욱한 그는 상대 남자를 죽지 않을만큼 패버렸고, 그길로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다. 엄마의 간청으로 8개월만에 퇴원을 하게 된 팻은 이 어둠속에서 한줄기 빛을 찾겠다면서 이제 희망이 보인다고 난리다. 다만 문제는 그의 한줄기 빛이란 것이 바로 별거중인 아내와 합치겠다는 것이라서 말이다. 그녀는 이미 바람이 났던 남자와 함께 살고 있다면서 이젠 놓아주라는 가족들의 애원에도 팻은 귀등으로 흘려듣고 만다.  부부사이의 일은 부부만이 아는 것이 것이며 그누구도 그들의 사랑을 막을 수 없다고 단언하는 팻, 과연 그는 사랑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티파니...> 

친구집에 초대를 받은 팻은 티파니를 만나게 된다. 남편이 사고로 죽은 뒤 한동안 정신줄을 놓고 살았던 그녀는 식탁에서도 독이 오른 전갈처럼 닥치는대로 독침을 쏘아댄다. 결국 식사도 다 마치지 못한 채  나오게 된 둘, 팻은 만난지 몇 시간이 되지도 않았는데 섹스를 하자는 그녀의 말에 식겁하고 만다. 자신은 유부남이라면서 거절하는 팻에게  따귀를 날리는 그녀, 그날 이후로 티파니의 스토커짓이 이어지고 팻은 당황하고 만다. 서로를 바라보기를 미친 사람 바라보듯 하던 둘은 어쩌다 데이트에 나서게 된다. 남편이 죽은 후 회사 사람 모두와 자는 바람에 해고되었으며 그 뒤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티파니 말에 팻은 눈이 왕방울만해진다. 바람난 아내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한다고 철썩같이 믿는 팻이나 허전해서 모든 사람과 잤다는 티파니나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둘 다 미친 정도가 비슷해 보이는구만, 팻은 그래도 자신이 그녀보다는 정상이라고 뿌듯해 한다. 덜 미친 입장이라며 티파니를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팻,  티파니는 그런 팻이 가소롭기만 하지만 그럼에도 아내를 못잊어 절절 매는 팻이 가엾어 그를 도와주기로 한다. 팻의 아내에게 편지를 전달해준다는 조건으로 함께 댄스 경연대회에 참가하자는 제안을 하는 티파니, 팻은 아내와 합치겠다는 일념으로 마지못해 댄스 연습에 나서게 되는데... 과연 이 둘의 운명은? 

 

 

 

그리고 그의 가족들>

팻이 왜 어쩌다 정상이 아니게 되었을지--뭐, 유전이라고나 할까?-- 조금은 짐작이 가게 하던 팻의 엄마 아빠 되시겠다. 아들이 인생을 망치지 않고 제정신을 찾아 가길 바라는 두 사람은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도 아들을 잡고 놓치 않는다. 아들이 아내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엔 없었던 두 사람은 아들이 그저 현실을 자각하기만을 바라는데, 과연 둘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 것인가?


조울증에 섹스 중독에 걸린 두 사람이 주인공이다. 조울증을 앓고 있는 남자는 약을 먹는걸 싫어하며 아내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망상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그것이 그가 걸어다니는 시한폭탄이 된 이유다. 자신처럼 선량한 사람을 남들은 몰라준다면서 남자는 서운해 하지만, 그가 그럴수록 주변 사람들의 못미더움은 더해져 간다. 여자는 또 어떤가? 자신이 창녀처럼 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멈출 수가 없다. 남들이 원하는 것을 아낌없이 주지만, 문제는 그녀가 아침이면 언제나 텅 빈채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 둘이 서로를 알아본다. 미친 사람 둘이 상대가 얼마나 미쳤는지 알아본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 둘은 상대의 내면에 있는 고독과 외로움, 그리고 서글픔을 이해해준다. 판단하는게 아니라... 갈데까지 가 본 자만이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얼마나 고통이 심했으면 그렇게 되었을까 하는, 그러면 안 되지 라는 비난이 아니라... 과연 둘은 어떻게 될까? 남자는 강박증에서 여자는 중독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영화는 (주변에 흔치 않게 존재하지만 쉬쉬하고 모른 척하는 )정신병이라는 한없이 암울한 소재를 가지고 너무도 밝고 설득력있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었다. 처음엔 이런 소재를 끔찍하지 않게 찍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싶었는데, 영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이거 왠걸, 이야기를 너무 흥미진진하고 참신하게 풀어가고 있는게 아닌가. 그것도 현실성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쩌면 저렇게 할 말을 다하면서도 웃기고,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남세스럽기 않고, 제 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주르르 나오는데도 사랑스럽던지,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거기에 훈훈하지 감동스럽지 로맨스보단 코미디가 강세라고 봐질 정도로 웃겨 대지, 영화가 끝나자 박수가 터져 나오는데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잘 만든 로맨스 코미디 흔치 않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좋다. 팻을 연기한 브래들리 쿠퍼는 그가 이렇게 연기를 잘 하는 배우였어? 라고 다시 보게 만들었는데 , 특히나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자각하지 못하면서(사람들의 설명에 맹한 표정을 지음) 티파니가 정신 나간 것은 재빠르게 캐치해내는 장면들에선 진짜 그가 조울증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깜쪽같았다. 또 현재 최고 핫한 배우중 하나라는 티파니 역의 제니퍼 로렌스는 왜 남자들이 그녀에게 열광하는지 이해가 가더라. 착한 몸매나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달라져 보이는 신비한 얼굴도 물론 주목을 끌었지만 연기 역시 그에 못지 않아서 말이다. 대배우들하고 연기를 하는데도 전혀 꿀리지 않는 집중력은 그녀가 왜 현재 주가를 높이고 있는지 짐작하게 해줬다. 거기에 로버트 드니로~~아, 오랜만에 보니 많이 늙으신듯했지만, 연기를 어찌나 감칠맛나게 하시던지 감탄하느라 한탄할 새가 없었다. 과연 노병은 죽지 않았구나 싶었고, 푼수같은 노인역을 넉근하게 소화해내시는 모습이 든든하기 짝이 없었다. 아직은 이 친숙한 얼굴을 더 볼 수 있겠구나 싶어서 말이다. 특히나 마지막에 아들에게 해주는 충고는 감동 그 자체였는데, 티파니를 찾아온 전 직장동료에게 팻이 해준 말과 함께 가장 인상적인 대사였다.


하여간 결론은 매우 잘 만든 재밌는 영화라는 것이다. 스토리는 신선하고 참신했으며, 배우들의 연기는 탁월했던데다, 연출 역시 튀지 않게 잘 풀어나가고 있었으니 말이다. 자연스런 이야기 전개에 오버하지 않는 연출과 연기, 영리한 대사 ,강요하지 않는 웃음등이 압권이었지 않나 한다. 훈훈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원하신다면 보셔도 좋을 듯...거기에 웃긴다. 정신병자를 다룬 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웃은건 <밥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를 본 이래로 첨인 듯...암울한 소재를 밝게 연출해준 감독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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