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기억 속으로 매드 픽션 클럽
엘리자베스 헤인스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오로지 잊어 버리지 않기 위해서다. 이 책을 이미 읽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도서관에서 빌려 오는데 왠지 기분이 찜찜하더라 그것이었다. 분명 몇 페이지를 들춰봤을땐 안 읽은 것 같았었는데, 그럼에도 데자뷰라고나 할까. 이미 읽은 책인 듯한 기분이...설마 내가 아무리 기억력이 퇴보했다고 해도 읽은 책을 못 알아 보겠어? 아마 비슷한 류의 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서 그런 것일 거야.라고 나를 다독였건만...


그럼에도 책을 볼때마다 익숙하단 생각이 자꾸 드는 것이었다. 이상해...정말 익숙해~~그리곤 깨달았다. 내가 이 책을 몇 달 전에 이미 읽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넘 재미없고, 설득력도 없는데다, 말도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욕을 엄청나게 해 댄 책이라는 사실을. 리뷰를 쓸 일고의 가치마저 없다면서 그냥 망각속으로 밀어넣자 했던 것이었는데, 아마 그 망각속으로의 작업이 너무도 완벽하게 이루어진 모양이었다. 어떻게 10년도 아니고 몇 달 전에 본 책을 기억못할 수가 있단 말이냐. 그것도 재미없다고 그렇게 경악을 해 댄 책을 말이다. 나의 기억력이 예전같지 못하다는 사실이 이렇게 확인되는 순간 비참해지는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이 리뷰는 이 책이 좋다 아니다를 말하는 것이 아닌, 단지 , 다만 또다시 이 책을 집어드는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예방차원에서 적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 드리는 바이다. 이렇게까지 써놨으니, 적어도 이 책은 안 읽었다는 생각을 다시 하진 않겠지. 정말로 그러길 빈다. 도서관 가는 길마저 이젠 서서히 귀찮아 지는 이 시점에서, 읽은 책을 또 빌려 왔다는 것을 집에 와서 확인하는 것만큼 낭패는 없으니 말이다. 고르고 골라서 빌려온 책도 재미없으면 나를 탓하는 마당에, 이미 읽은 책을 빌려 오다니...이건 반칙이다. 그것도 재밌었던 책이라면 또 몰라. 재미없다고 학을 뗀 책을 또다시? 아~~~그런 일은 다신 발생하면 안 된다. 그러니 기억하도록. 나 이 책 읽었다. 오래전에. 그리고 물렸도다.이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지막 4중주

감독
야론 질버맨
출연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크리스토퍼 월켄, 캐서린 키너, 마크 이바니어
개봉
2012 미국
평점

리뷰보기

 

 

 

 

결성 25주년째를 맞게 된 현악 4중주단 <푸가>는 새로운 시즌을 맞이해 공연 연습에 돌입합니다. 평범하게 공연을 준비하던 그들의 일상은 하지만 첼리스트 피터의 파킨스병 발병으로 흔들리게 되죠. 다른 단원보다 30살이나 나이가 많은 피터는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면서 차분한 목소리로 은퇴를 선언합니다. 다른 단원들을 충격으로 휘청거리죠. 그나마 제 1 바이올리니스트인  다니엘은 냉정하게 현실을 받아들이지만, 피터를 아버지처럼 따랐던 비올리스트 줄리엣은 현실을 부정하고 회피하려 합니다. 줄리엣의 남편으로 그간 묵묵히 제 2 바이올리니트스를 맡아왔던 로버트는 이제 자신도 제 1 바이올리니스트를 해보겠다고 선언합니다. 한 자리에서 묵묵히 25년을 지낸 사이, 어쩌면 그들의 소리는 완성도가 높아졌을지 모르지만, 중년을 넘긴 그들에겐 말못할 갑갑함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비난을 해대기 시작합니다. 재능이 없다고, 열정적이지 못하다고, 겁쟁이라고, 무정했다고... 얼마전까지만해도 남들이 감탄할만한 완벽하고 탄탄한 결속력을 자랑하던 그들이었건만, 이제 남은 것은 서로가 서로를 견뎌내지 못한다는 진실 뿐입니다. 25년이란 세월이 무색하게 그들은 순식간에 붕괴되어 버리고 맙니다. 자신이 없더라도<푸가>의 명맥만은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던 피터는 중구난방으로 흩어진 단원들때문에 마음이 상합니다. 이렇게 되다보니 명맥을 잇는 것은 고사하고 현재의 <푸가>의 존립마저 위태로울 지경입니다. 과연 그들은 25주년 결성 기념 콘서트를 열 수 있을까요? 더군다나 피터는 그 콘서트를 자신의 은퇴 무대로 하고 싶다면서, 연주곡으로 가장 연주하기 어렵다는 베토벤 현악 4중주 14번을 해보자고 합니다. 바로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서 말이죠.

 

 " 베토벤 현악 4 중주 14번은 총 7악장인데, 각 악장이 연결되어 있어 연주자들은 중간에 쉬어선 안 되지. 이렇게 쉼없이 오래 연주하면 각 악기들의 음률이 서로 어긋나게 돼. 이럴땐 어떻게 해야 할까? 연주를 멈추어야 할까? 아니면 불협화음이 생겨도 필사적으로 서로에게 맞춰가야만 할까? 정답은 나도 몰라."

 

베토벤이 한 인간의 전 인생을 그리며 작곡했다는 14번은 시작부터 비통한 음색으로 연주자들이 감정 잡기가 쉽지 않은 곡이라고 합니다. 완벽한 결속력과 하모니를 자랑할때도 어려웠을 그 곡을 완전히 음률이 어긋나 버린 이 시점에서 그들은 연주해 낼 수 있을까요? 그들은 과연 어떻게 연주를 할까요? 


                                

세련된 각본, 연륜이 느껴지게 하는 배우들의 헉소리 나는 연기, 그리고 내내 아름답게 울려 퍼지는 베토벤의 선율까지, 삼박자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앙상블을 자랑하던 영화였다. 내용이 좋으면서도 재밌기는 어려우며, 인생을 이야기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기란 힘든 법인데, 이 영화는 그 두 개를 멋지게 해내고 있더라. 자극적이지 않은 , 어쩌면 지극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만한 이야기를 흥미를 잃지 않게 하면서 풀어 나가는 솜씨에는 감탄스러웠고, 그것을 그렇게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연결해 내는 점에서는 놀라고 말았다. 도무지 이음새를 발견해낼 수 없었을만치 물 흐르듯 그렇게 흘러 가던데, 이 영화의 중심 소재인 베토벤 현악 4중주 14번의 정신을 영화속에서도 구현하고 있었지 않는가 한다. 

 

인생이란 쉼 없이 흘러 가는 것, 연주곡 속에 들어있는 악장간 쉼이나 연극에서의 막간처럼 ,우리에겐 새롭게 재정비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저 달리고 달리고 달릴 뿐인데,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우리가 시작한 곳에서, 그리고 상상했던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 이 영화속에서도 인생의 끝과 중간에 선 <푸가>의 단원들은 정신없이 연주를 해야 할 상황에서 자신의 악기에 음률이 미묘하게 틀어져 버린 것을 알게 된다. 우리 대부분이 인생 어느 시점에서 깨닫게 되듯이 말이다. 그럴때 우리도 역시, 베토벤이나 피터가 했던 고민을 똑같이 하게 될 것이다. 과연 멈춰야 할까? 아니면 필사적으로 상대의 음률에 맞춰가며 연주를 해야 하는 것일까? 답은 결국 본인, 자신만이 내리 수 있는 것일 것이다. 왜냐면 우리에게 단 하나 주어진 것이 있다면 우리 각자의 인생뿐이니 말이다. 이 영화속에는 각기 자신만의 결론을 내리는 <푸가>의 단원들이 있다. 그들의 대답이 듣고 싶다시는 분들은 꼭 보시길...시간을 들여 볼만한 가치가 충분한 영화이니 말이다. 특히나 피터로 분한 크리스토퍼 웰켄의 연기는 감동 그 자체였다. 저 연세에 그렇게 대단한 연기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드문 축복인지, 또 그걸 볼 수 있는 우리 관객들에겐 크나큰 은혜였고 말이다. 나이듦의 미학을 제대로 보여주신 그에게 박수를... <디어 헌터> 이래로 그에겐 최적의 배역이자 최고의 연기였다고 생각되던데, 그가 멋지게 살아남아서 이런 연기를 보여준다는 자체가 넘 감격스러웠었다. 단지 연기를 잘 해서 아니라 인생의 연륜이 배여서 나온 연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인생에서 한 수 배우고자 하시는 분들이나, 감동적인 음악 선율과 함께 울려 퍼지는 품격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가족의 나라
양영희 지음, 장민주 옮김 / 씨네21북스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요즘 기억력이 예전같지 않아서 금방 읽고 난 참인데도, 이 책 제목이 <나의 조국>인줄 알고 검색을 해버렸다. 그러자 줄줄이 나오는 것은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관련 음반뿐. 엉? 나의 조국이 아니었어? 그 비슷한 거였는데? 그럼 뭐지? 라면서 책을 다시 들여다보니 <가족의 나라>란다. <나의 조국>과 <가족의 나라>라, 어감상으로 온도 차이가 현격하다. 어쩜 바로 그것이 이 작가가 이 책에서 우리에게 말하고 싶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조국에는 내가 들어가 있지만 가족의 나라엔 내가 없다는 것. 내가 진심으로 선택한 내 나라가 아닌, 내 가족들의 당신들 나라라는 뜻으로 말이다.  아마도 그런 언어적인 뉘앙스 때문에 제목도 저렇게 지어졌겠지 싶다. 이렇게 보면 말이라는게 참 오묘하다.  똑같은 말로 해석이 될 수도 있는 두 문장이지만서도, 실은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니 말이다. 그렇게 작가는 제목만으로 의미심장한 분위기를 풍기면서 우리를 자신의 인생속으로 초대를 한다. 과연 작가에겐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하, 뭐 이런 기구한 인생이 있나 싶지만서도. 그리고 이렇게 꼬인 인생들이 있나 싶지만서도. 이것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또 안타깝게도 우리 동포들에게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에 굉장히 놀라고 안타까웠다. 재일 조선인인 저자의 아버지는 조총련 간부로 일하면서 북한에서 선전하는 모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정치에 발을 들여놓고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홍보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저자의 아버지는 북한 귀국선에 아들 셋을 몽땅 실려 보내고 만다. 이십대에서 열 네살에 이르기까지, 아직은 부모의 슬하에서 더 성장해야 하는 시기에 덜컥 김일성 부자의 은혜로운 손 아래에 떨여져 버리고 만 것이다. 일곱살때 오빠 셋과 생 이별을 하게 된 저자는 그것이 그들의 인생에 그토록이나 큰 피해를 끼칠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저 낙원에 가서 좋은 사람들과--아니 마음 놓고 협력할 수 있고 차별받지 않을 수 있는 동포들과 함께--이상을 실현하고 삶을 개척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아들을 몽땅 북한에 보내고 난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북한에 대한 안좋은 소리에 귀를 닫고 살았던 저자의 가족들은 결국 진실과 맞닥뜨리고 만다. 북한은 절대 낙원이 아니며, 그보단 오히려 탈출이 허용되지 않는 거대한 사이비 정치 집단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이상한 나라에서 부모도 없이 적응해야만 했던 저자의 오빠들은 서서히 인생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큰 오빠는 조울증을 앓다 정신줄을 놔버리고, 둘째 오빠는 미인 아내에게 버림 받은 후 자식들을 챙기는 삶만으로도 감지덕지 하게 된다. 북한에서 엘리트로 성장한 세째 오빠는 살아남기 위해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면의 고통을 감출 수는 없어 괴로워 한다. 그런 오빠들과 가족들의 고통을 지켜보면서 저자는 분노하고 또 분노한다. 오빠들을 그렇게 비참하게 만든 북한 체제에 대해서 말이다. 이 책은 그런 저자 자신의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던 책으로, 그런 말도 안 되는 나라에서 삶이라는 것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행복하다는 말에 욱했다가도, 그렇게 말할 수 밖엔 없는 그들에 연민을 느끼고 , 더 나아가 아무리 자신이 고통스럽고 분하다 한들 살고 있는 사람들만 하겠는가 라는 미안한 마음이 골고루 들어가 있었다. 어쩌다 이 가족의 인생은 이렇게 구구절절해졌는지, 그것이 다른사람도 아닌 아버지의 결단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나도 아니고 아들 셋을 몽땅 , 당신의 조국이라지만 아들들에겐 전혀 낯선 곳인 북한에 그렇게 선뜻 내어주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니 말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정말 가슴을 쳐야 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이고, 그런 비뚤어진 과거를 살아내야 했던 것이 우리 아버지들의 운명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들도 왜 다정한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그때는 시대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들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순한 양처럼 단순했던 그들은 그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버렸고 말이다. 과연 이제와서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단 말인가. 정작 그런 일들을 기획하고 조종했던 사람들은 전혀 앞으로 나서지 않는 마당에 말이다.


아, 북한이 이런 사회였구나. 정말 끔찍스럽군. 이란 생각을 아니할 수 없게 만들던 책이었다. 그리고 6.25를 겪고 분단된 나라에 사는 우리 못지 않게 일본에 사는 재일 한국인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는걸 알게 해주었다. 사실 놀라웠다. 일본이라는 우리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부자인 나라에서 사는 한국인들이 이렇게 고루한 사상에 젖어서 가족을 지옥으로 가게 만드는 결정을 그렇게 쉽게 해버렸다는 사실이 말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어떻게 그같은 일이 벌어지도록 모두들 입 다물고 있었던 것인지 알 길이 없지만서도...누군가 자식들을 그렇게 보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아,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긴 했지만 당시엔 --70년대--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되었었다고 한다. 역시나 인간은...상식선에서 생각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인가 보다 싶다. 가장 극단이 오히려 진리가 될 수 도 있다는 것을 북한은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아직까지도....


이제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큰 오빠마저 죽은 지금, 저자는 예전에 만들었던 북한 체제 비판 다큐로 인해 북한에 더이상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정말 이제는 북한이 <가족의 나라>가 되버린 것이다. 아마도 이 책을 쓰면서도 저자는 조금은 북한이 변화하기를 바라고 또 바랐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쓴 이런 책이나 영화, 다큐가 거기에 도움을 주었음 좋겠다는 바람이었을 것이고. 왜냐면 북한이란 나라는 그녀가 저버리기엔 너무도 질긴 인연의 나라이니 말이다.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혈육들이 살고 있는 곳이기에 신경을 끄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거 아니겠는가. 그녀는 오늘도 피터지게 말한다. 북한은 이렇다고...거긴 변화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사람이라면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과연 누가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들을까? 우리가? 글쎄...소름끼치도록 답답한 나라가 북한이라는 것은 잘 알았지만, 그리고 내가 북한이 아니라 남한에 산다는 사실에 너무도 감사하게 만든 책이긴 했지만,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우리는 북한이 어떤지 과연 알고 싶을까 라는 생각에. 북한에 사랑하는 오빠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조카도 없는 북한에 대해 과연 우리가 진실을 알고 싶어할까? 그리고 그들의 변화가 어서 빨리 오기를 저자처럼 기도하게 될까? 그런 의미에서 어쩜 가족의 나라는 분단의 나라보다 훨씬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의 가족들의 비극이 한시바삐 사라지길 기도하면서 언젠가는 그 가족들 모두 모여 행복하게 사진을 찍는 풍경을 기대해본다. 아니면 적어도 저자의 조카 세대에서만은 저자같은 사람들의 노력에 힘입어 보다 개방된 사회에서 살게 되기를...적어도 북한에 사는 사람들이 바보는 아니니 만큼, 변화의 바람만 조금만 불어준다면 금세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해 보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이드 문 - 달이 숨는 시간,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7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내가 과연 이 작가, 마이클 코넬리에게 실망할 날이 오겠는가 라는게 늘 궁금했었는데, 그 의문을 야심차게 풀어줄 책이 되겠다. 그렇다. 그런 날이 오긴 하더라. 작가마다 작품에 따라서 들쭉 날쭉 작품성이 왔다 갔다 하는 거야 어느정도는 이해하지만서도, 이 작가의 세계관에 실망해보긴 이번이 처음이다. 아, 물론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코넬리에 한정해서...작가에게 실망한 적이야 뭐, 지금껏 넘치다 못해서 기억을 못할 정도고. 오히려 실망을 하지 않은 작가를 꼽으라면 그것이 더 간편할 것이다. 열 손가락으로 충분한 것 같으니 말이다. 그렇게 작가에게 실망을 하지 않기란 지극히 어렵다는 경험칙에도 불구하고, 난 믿었던 것이었다. 마이클 코넬리만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적어도 윤리적인 면에서는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내가 잘못 생각한 모양이다. 이래서 인생을 살아봐야 안다고 말하는 것이겠지. 표지에 <크라임 스리러의 마스터 마이클 코넬리, 그의 세계관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주인공, 캐시 블랙의 첫 등장>이라고 화려하게 묘사를 하고 있지만서도, 난 정말로 마이클 코넬리가 이런 책을 쓰실 줄은 몰랐다. 뭐, 여타의 다른 책에서도 희미하게나마 범죄자를 옹호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기는 했지만서도, 그게 어느정도는 인정할 만한 구석이 있었건만, 이번건 좀 도를 넘었지 싶다. 이 책의 주인공 캐시 블랙이 마이클 코넬리가 쓴 책들 중에서 유일한 여자 주인공이라고 하는데 절도범이라는 점에서도 실망이었고, 그녀가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범죄를 저지르다 결국 다른 선량한 사람들을 죽어나가게 한다는 점에서는 아연실색이었다. 아니, 어쩌다가... 주인공이 정의롭지도 않은 것도 모라자서 민폐형 범죄자여야 한단 말이냐, 라면서 작가에게 분통을 터졌다. 더군다나 여자주인공인데! 이럴때보면 꼬장꼬장한 내 성격이 독자일때도 그대로 드러나는 듯해서 웃긴다. 그냥 책은 책일뿐 하면서 재밌게 읽은 것으로 만족해도 될 것 같은데 말이다.


내용은 이렇다. 애인 맥스과 함께 신출귀몰한 절도 솜씨로 라스베가스 일대를 주름잡고 있던 캐시 블랙은 6년 전 큰 건을 하다 맥스는 죽고, 그녀는 감옥에 갇히는 대 참사를 겪게 된다. 가석방으로 일찍 감옥에서 나온 그녀는 LA에서 착실한 카 딜러로써의 삶을 새로 시작하지만, 사실 그녀가 LA에 정착하게 된 데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그녀와 맥스 사이에서 생긴 아이가 입양이 되어서 그 지역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멀리서나마  딸을 바라보는 것으로 삶의 이유를 찾고 있던 그녀는 딸의 가족이 멀리 이사를 가버린다는 말에 정신이 나가고 만다. 딸과 함께 살고 싶었던 캐시는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고, 그를 위해 오래전에 접었던 일을 다시 시작하기로 한다. 큰 아주버님인 레오의 중재에 힘입어 다시 절도의 세계로 들어선 캐시는 자신이 훔쳐온 돈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놀라고 만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그 돈의 행방을 쫓아 무지막지한 해결사가 뒤따라 오고 있다는 것. 자신의 완전무결한 솜씨에 흔적을 남겼을 리 없다고 생각하던 캐시는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모성애와 달 사이로 별 자리가 사라진다는 보이드 문, 즉 액운이 끼는 시간이라는 미신.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비밀처럼 엮여져 있던 소설이었다. 일단 흥미롭게는 읽힌다. 더군다나 이 양반, 절도를 이렇게 생생하게 생중계를 하시는지 놀라고 말았다. 어디서 이런 소재를 취재하셨는지는 몰라도, 절도에 관한한 치밀하게 사전 조사를 해서 이야기속에 집어넣으신 듯 했다. 그 덕분에 이 작가가 얼마나 이야기를 맛깔나게 하는지,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아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뭐, 단숨에 읽히기에는 모자람이 없긴 했지만, 문제는 내용이다. 절도범들의 사랑에, 그들의 자식 사랑, 그리고 그 덕분에 넘쳐나는 시체들...뭔가 어딘지 궁여지책처럼 보였다고 할까? 절도범들에게도 인간애가 있고, 자기 자식은 사랑한다는 것도 물론 있을 수 있겠으나, 그렇게 양심적인 사람들이라면 왜 평범하게 아이를 키울 생각을 못한 것인지, 그리고 결국 그렇게 자식에 대한 사랑이 출중해주신 덕분에 여러 사람 죽어 나가게 한다는 설정은 아무리 봐도 영 석연찮았다. 그러니까 자신의 욕망과 어리석음으로 많은 사람을 죽게하고 돈을 훔치는 이 주인공이 별로 아름답지 못하더란 말이다. 연민은 커녕 동조도 하고 싶지 않았다. 주인공에게 동조할 수 없는 , 주인공의 행동에 반발을 하게 만드는 추리 소설은 뭐, 더이상 이야기할 건덕지가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성공 여부를 떠나서 말이다. 그렇게 자신만 생각하는 주인공을 그래도 도와주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다 죽어 나가는 마당에 그녀만 살아남더라는 것도 영 별로였다. 원래 자기가 만든 쓰레기는 자신이 치워야 하는 법이라고 나는 단호하게 생각하는 편이라서 말이다. 왜 그녀가 만든 쓰레기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대신 곤욕을 치르고 그녀는 무사해도 괜찮다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하여간 영웅적이지도 인간적이지도 않은, 그저 모성애만 딥다 강해서 다른건 상관없다는 주인공을 만나서 기분이 상해버린 그런 책이 되겠다. 그래, 어린 아이를 키워보고 싶다는 엄마의 마음 가상하지. 하지만 연약한 아이가 아닌 어른이라 해도 생명권은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이보다 어른들의 생명이 값어치 없다고 생각하는 말도 안되는 계산은 아무리 추리 소설속의 가상의 이야기라고 해도 맘이 들지 않았다. 마이클 코넬리가 자신이 생명을 부여한 주인공들을 한번만 쓰고 버리는 일은 대개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책의 여주인공인 캐시가 다른 책속에서 다시 주인공으로 등장한 가능성이 없지 않아 보이는데...부디 바라건데, 그건 말아 주셨음 싶다. 절도가 유일한 재능인 이 주인공은 아무리 살펴봐도 ,그리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품어보려 해도 별 매력이 없으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끝까지 연기하라
로버트 고다드 지음, 김송현정 옮김 / 검은숲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제목만 봤을 때 내가 짐작한 내용은 이랬다. 우연히 계획된 사건에 휘말린 인기 배우가 자신이 연관된 것이 아니란 것을 증명하기 위해 끝까지 연기력으로 무장한다는 , 뭐...적어도 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만으로는 나는 그런 이야기 전개를 상상했더랬다.더군다나 기막힌 반전이 있다는 표지의 말은 또 그런 상상력을 부추기기에 충분하고도 넘쳤으니... 결론만 말하자면 이 책의 내용은 제목하고도, 표지의 그림하고도 , 그리고 내 상상하고도 전혀 상관이 없었다는 것이다. 언제 이 배우가 연기를 하는 장면이 나오려나 못내 기대를 하면서 지켜봤지만, 이건 그냥 어쩌다 사건에 휘말린 한물 간 배우의 이야기더라. 배우라고 해서 별다르게 재밌는 장면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가 출연한 연극이 유명한 진짜 연극이라지만서도, 영국인이 아닌 다음에야 그다지 흥미롭지도 않았으니 감이 올리 없고 말이다. 내용은 어쩌다 사이가 멀어져 이혼 소속중인 아내 제니와 다시 합치고 싶어하는 배우 토니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과거를 청산하고 제니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어하는 토니와는 달리 아내는 이미 다른 남자와 결혼을 약속한 상태, 더군다나 그는 대단한 부자에 친절하고 멋진 남자였다. 그런 상대를 보면서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미련이 남은 토니는 아내의 부탁으로 아내 주변을 어슬렁대는 사나이를 만나게 된다. 왜 아내를 스토킹 하는지 묻는 그에게 상대는 사실은 자신은 제니가 아니라 토니를 만나기 위해 그녀에게 접근했다고 말해온다. 자신의 팬이라는 말에, 그리고 제니에게 해를 끼칠 생각이 없다는 말에 안심한 그는 그를 믿어 주기로 하고, 다시는 제니에게 접근하지 말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다음날 제니는 그 남자가 다시 어슬렁 거린다고 토니에게 불평을 하고, 토니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의 한가운데에 영문도 모른 채 휩쓸리게 되는데...


보다 보면 한 순간이라도 재밌지 않을까...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봤는데, 단 한 순간도 재밌지 않았다. 이 책에서 가장 재밌는 곳은 아마도 표지가 아닐까 싶다. 적어도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을 듯한 분위기 정도는 풍겨주니 말이다. 책은 내내 무언가 대단한 음모가 있는 듯, 그리고 대단한 사건이 터질듯 긴장감을 고조시키지만, 사실 알고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허무하기 짝이 없는 그런 추리 소설이 되겠다. 그나저나 도무지 저렇게 멍청한 여자를 다시 찾아야 겠다고 오매불망 애쓰는 주인공이라... 이젠 눈이 높아져서 그런가,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자라면 적어도 여자가 보기에 이해가 갈 정도의 매력은 갖춰줘야 하는게 아닐까 싶다. 그저 외모가 다 받쳐 주는데, 단지 멍청한게 흠일 따름이다 라는건 진짜로 재미없으니 말이다. 뭐, 남자가 보기엔 그래도 재밌으려나? 이해가 팍팍 오고 말이다. 하여간 여자가 보기엔 별로 재미없던 책, 누가 재밌다고 해서 본 책인데, 나완 재미라는 면에서 눈높이가 달랐나 보다. 제발, 부탁이니 누가 정말 재밌는 책 좀 추천해주면 안 될까? 요즘 정말 심심한데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