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 룩 어웨이
린우드 바클레이 지음, 신상일 옮김 / 해문출판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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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없는 아침>의 작가가 쓴 책이다. 초반부터 작가 이름부터 들먹이는 이유는 전작하고 묘하게 비슷한 점이 있어서 그런다. 그건 리뷰 말미에 언급할 생각이니 나중에 쓰기로 하고...내용은 이렇다. 기자 데이빗 하우스는 이래저래 걱정이 많다. 부패한 정치가를 뒤쫓는 일도 만만찮은데, 거기에 자기가 몸 담고 있는 신문사가 망해가는 중이지, 행복한줄 알고 있었던 아내는 우울증이 시달리고 있다지, 심증을 갖고 기사를 써도 외압으로 내보내면 안 된다지.. 이래 저래 일에 치여 육아에 치여 아내 걱정에 치여 몸과 마음이 고달프던 그는 아내가 가족끼리 놀이 공원에 놀러 가자고 하자 망설임없이 오케이 한다. 아내의 기분이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를 했기 때문이다. 네 살짜리 아들과 아내 잰을 데리고 놀이 공원에 간 데이빗은 한 눈을 파는 사이 누가 아들을 데리고 간 것을 알고는 경악을 하고 만다. 아들이 타고 있는 유모차를 찾아 미친 듯이 공원을 찾아 다니던 그는 다행히도 유모차에 안전하게 자고 있는 아들을 발견하게 된다. 아들을 찾았다는 다행감에 젖어 있을 사이도 없이 그는 이제 아내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며칠전 자살을 시도 하려 했었다는 말을 아내에게서 들었던 데이빗은 아내가 아들을 잃었다는 생각에 자살을 하러 간 것은 아닐까 우려한다. 다시 미친 듯이 아내를 찾아 헤매던 그는 결국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한다. 신속하게 아내를 찾아주려 하던 형사들은 데이빗의 말에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어디에서도 아내가 공원에 왔다는 증거를 포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잰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이 뉴스에 실리고, 그녀의 얼굴을 알아본 사람들이 경찰서에 제보 전화를 하기에 이른다. 아내의 그간 행적을 쫓던 형사들은 그녀가 우울증을 앓았던 적이 없었을 뿐더러, 다른 사람들에게 우울하다는 내색을 비추지도 않았으며, 남편이 어딘가 특별한 곳으로 데리고 간다고 자랑을 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제 형사들에게 남은 것이라곤 남편을 족쳐서 그녀를 어디에 묻었는지 알아보는 일밖엔 없는 듯 보이는 시점이 되었다는걸 알게 되자 데이빗은 경악하고 만다. 아내가 실종된 것만으로도 기겁하겠는데, 이제 그녀를 살해하고 사건을 조작했다는 누명까지 쓰게 생겼으니 말이다. 자, 과연 누구의 말이 옳은 것일까? 그리고 만약 데이빗이 아내를 살해한 것이 아니라면 그녀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살아있는게 아니라면 왜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 그것도 사랑스럽게 그지 없는 네살박이 아들을 두고... 데이빗이 팔팔 뜀에도 의혹을 지울 수 없는 가운데, 형사들은 잰이 다니던 회사 동료가 같은 날 실종되었다는 사실에 의문을 갖게 되는데...


초반부터 몰입해서 보게 하더니만, 끝까지 궁금증을 갖게 만들던 스릴러 소설이다. 행복하게만 보이던 삼인 가족에 그늘이 드리운다는 설정부터, 우울증이 걸린 아내를 어떻게 해서든 보살펴 주려 하는 남편과는 달리 아내는 그만 어느날 사라져 버린다. 그것도 남편이 살해한 것이 아니겠는가 라는 뚜렷한 암시를 남긴 채...여기서 독자들은 헷갈리게 된다. 이런 이렇게 선량하고 멋있어 보이던 남편이 아내 살인범이었구만이라고. 하지만 명백한 증거 앞에서도 펄펄 뛰는 데이빗을 보면, 또 그게 아닌 것 같다 이거지. 과연 누가 맞는 것일까? 데이빗, 아니면 아내? 그걸을 찾아가는 것이 이 소설의 묘미로, 이렇게 스케일 크게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했던 소설이었다. 하여간 적어도 끝까지 주인공들의 결말이 궁금해서 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책임에는 틀림없지 싶다. 다만...


그래도 가족인데, 넘 심하다. 별 탈 없이 부부로 산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극악으로 상대를 사지에 몰아 넣는다는 설정에는 기가 질리는 기분이었다. 이 정도라면 싸이코패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 그런 사람이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고, 거기에 아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하긴 유영철도 자기 자식만은 사랑했다고 하더라 만은...하여간 도를 넘는 사기 행각이 그다지 맘에 들지 않았다. 거기에 또 별로였던 것이, 이 작가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스타일이다. 전작 <이별 없는 아침>에서 가족 전체를 실종시키더니, 이번엔 아내를 깜쪽같이 실종시킨다. 아마도 이 작가는 누군가가 흔적없이 사라지는 것에 무척 재미를 느끼는 듯...처음엔 신선하고 특이하게 생각되었지만, 두번째에선 왜 이야기가 반복되는가 싶다. 물론 이 책 속에서만 보자면 무척 흥미로운 소재였긴 하지만서도, 다음에도 이렇게 누군가를 깜쪽같이 없어지게 하는 트릭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가실 것인가 우려되는 것이다. 좋은 작가란 모름지기,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기도 해야 하니 말이다. 뭐 .이것도 생각해보니 내가 걱정해야 할 일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마이클 코넬리도 생각해보면 비슷한 이야기들의 연속이긴 하니 말이다. 그걸 보면 어디까지나, 문제는 얼마나 완성도 높게 쓰는가가에 달린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이야기는 잘 지었다. 작가의 다음 작품도 기대해 본다. 다음번엔 제발, 누군가를 실종시키는 걸로 시작하진 마셨음 ...왜냐면 두 번째 보니까 조금 식상해져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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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인의 고백 우먼스 머더 클럽
제임스 패터슨.맥신 패트로 지음, 원은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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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소설을 좋아함에도, 그리고 여성임에도 좀처럼 정을 붙일 수 없었던 <우먼스 머더 클럽> 시리즈의 한 편이다. 고백하건데, 이 시리즈의 책은 다 한번씩 건들여 보긴 했다. 하지만 완독한 것은 이번이 처음. 그걸 보면 아무래도 다른 책들보다 나았는가 보다. 재미가 없으면 그대로 책을 덮어 버렸을테니 말이다. 내용은 두 가지로 진행된다. 길거리 성자라고 불리던 늙은 거지 한 명이 처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그리고 변태적인 일상을 일삼던 상류층 사람들이 죽은 채로 발견되는데 문제는 어떻게 죽었는지 알길이 없다는 것이다. 연쇄 살인의 이유나 동기는 커녕 살해 방법조차 알 길이 없자 경찰 이하 사람들은 난감해지기 시작한다. 과연 두 사건은 어떻게 해결이 날까? 


길게 쓰려 했지만 길게 쓸만한게 생각나질 않는다. 그럭저럭 읽으만은 하지만 다소 산만한 구석이 있고, 출연 여성들, 탐정 4인방의 지리멸멸한 인연 찾기도 식상하기만 했다. 오히려 그 부분을 뺐더라면 더 재밌었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 작가분 남자분이 아니실까 싶던데, 과연 여자 넷의 애정 심리를 잘 표현해 낼 수 있을실지 궁금하다. 지금까지 보기엔 그다지 신빙성 있어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다. 조금은 어색하고 미심쩍어 보인다고 할까. 역시나 동성의 심리는 동성이 가장 잘 알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아무래도 본인이 아는대로 쓰면 되니 말이다. 이성의 경우는 상상력을 가미해야 되는 것이라서, 그게 맞는지 아닌지 도무지 알 길이 없는거 아니겠는가. 하여간 그런 저런 이유로 몰입이 조금 안 되던 <우먼스 머더 클럽> 아마도 그래서 재미가 덜한게 아니었을런지. 어쨌거나 이 책에서 가장 장점을 꼽으라면 길거리 성자 거지가 살해되었다는, 사건이었지 싶다. 그 자체만으로도 무언가 호기심을 끌어 당기는 것이 있었으니 말이다. 적어도, 초반에는, 무언가 흥미로운 일이 벌어질 듯한 그런 느낌이...왔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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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트
나이젤 슬레이터 지음, 안진이 옮김 / 디자인이음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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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국의 유명한 인기 요리사라는 말만 듣고 읽어보게 된 책. 영화로도 만들어 졌는데, 왠지 본 사람들이 그렇게 썩 추천하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이상하다 했더니만, 다 이유가 있었다. 만약 본문에 충실하게 영화를 만들었다면 분명 보기 껄쩍지근했을 테니 말이다. 아니, 뭐, 충실이 아니라도 비슷하게만이라도, 내진 약간의 뉘앙스만 풍겼다고 해도 보기가 심히 거북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책을 읽는 내 기분이 그랬으니 말이다. 난 밥 먹을때 똥 이야기 하는 사람을 제일 싫어 하는데, 바로 이 분이 그런 분이 아니실까 싶었다. 이야기를 어떻게 가려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분이라고나 할까. 보면 글을 못 쓰시는 분은 아님에도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것은 어쩜 그의 품성에 이상이 있다고 봐야 하는게 옳은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사이코패스처럼 자신이 뭐가 이상한지 모른다는 것. 작가에게 균형감이란게 생명이라는 말, 내가 어딘선가 했던가? 그렇다. 균형감이 최고다. 그거 없으면 아무리 글 잘 써도 고개가 갸우뚱 하기 쉽상이다. 물론 글도 못쓰면서 균형감도 없는 사람이 태반인 이 마당에 글을 잘 쓰는 것만이라도 쳐줘야 하는게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는데, 어쨌거나 나는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 아니고, 재미로 책을 읽는 사람으로써, 글 잘 쓴 것 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내용도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솔직하되, 남세스럽지는 말 것. 그거 어른들이 어렸을 적부터 아이들에게 가르치는거 아닌가? 말을 가려 하라는 것과 분위기 파악하라는 것도 말이다.


흠. 그렇게 보니 이 작가 양반 다른건 몰라도 가정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은 절대 아니다. 그걸 내내 토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니까. 뭐, 그러고보니 영국에서는 가정교육이라는 개념이 없는가도 모르겠다. 물론 이 작가 양반이 보시면 그게 뭔 소리냐, 우리 집 가정 교육이 어때서 라고 하시겠지만서도, 부모 없는 사이에 맡겨둔 8살짜리 아이에게 거시기를 만져 보라고 하는 삼촌을 둔 집안이면 가정 교육이 엉망인거 맞다. 그것도 그 사람만이 아니라 두루두루 그런 사람들이 넘쳐 나는걸 보면, 그런 것이 이 집안 내력인지도 모르겠다 싶다. 그러니까 , 이 책은 음식에 대한 이야기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거시기에 대한 이 작가 양반의 기나긴 편력을 서술한 책이라고 되니 말이다. 진짜로 잊을 만하면 그 거시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심히 짜증이 났다. 왜냐면 그 이야기라는게 배설 수준의 이야기였음으로. 누가 도대체 남이 똥싸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겠나 이 말이다. 안 그래?


하여간 이야기를 들어보니 동성애자에 치우친 양성연애자 이신 것 같던데, 어렸을 적 음식이라면 재능도 열정도 없었던 엄마 밑에서 성장한 저자가 어떻게 기나긴 음식의 항연 속에서 요리사라는 자리를 찾아 가게 되었는가 라는 걸 이야기 하고 있던 책이다. 이 책의 최대 아이러니는 그에게 진짜 음식이라 할만한걸 먹게 해준 사람이 그가 미워해 마지 않은 그의 새엄마라는 사실이다. 엄마가 오랜 투병 생활끝에 사망한 뒤, 가정부로 들어왔던 여자는 결국 그의 새 엄마가 되는데, 음식 솜씨가 형편 없는 정도가 아니라 최악이었던 엄마에 대한 추억과 그녀와 정반대로 음식솜씨는 최상이었지만 결코 가까워질 수 없었던 새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쭈르르 나열된다. 혹시나 독자들이 지루해할까봐 거시기에 대한 그의 경험담을 사이사이 끼워 놓으면서.그렇게 보자면 이 작가의 관심사는 평생 두가지에 국한되었던게 아닐까 싶다. 음식과 거시기라는..뭐, 보통 사람들도 대충 그러고는 살긴 하지만서도, 이 작가분처럼 뚜렷하게 그 두가지로 귀결되지는 않지 않던가. 하여간 남들보다 특이한 인생을 사신것만은 맞지 싶다.


이 책을 보면서 음식과 섹스가 닮았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고 보니 원초적이라는 점에서 둘이 닮은 것도 같다. 해서 음식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섹스에도 관심이 많을지 모르겠다 생각이 이 작가를 보니 들더라. 하도 예사롭지 않은 경험들을 하시고 그걸 또 꼬박꼬박 기억해 놓는걸 보면 말이다. 흠. 여자가 보기엔 구역질 나더라. 그리고 사내 아이가 이렇게 키워지나 싶어서 놀라기도 했고 말이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분명 아동성추행인데, 당하는 어린 작가 본인은 그걸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했다. 분하거나 억울하거나 그런게 아니라, 재밌는 에피소드로 탈바꿈 하는걸 보곤 소름이 끼쳤다. 이 작가 분이 아직 살아계신가는 모르겠는데, 내 말하건데, 이 양반 곁에는 절대 내 아이들을 가까이 두지 않겠노라. 그가 어떤 짓을 벌일지도 모르고, 그것보다 더 끔찍한 것은 그게 나쁜 일인지도 모를 가능성이 크니 말이다. 침소봉대한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으나, 하여간 구역질 났다. 이것이 소설도 아니고 자서전이라는 것에 더. 이 책으로 만든 영화가 맛있는 케익과 각종 음식들이 넘쳐 남에도 추천을 꺼리는 것도 이해가 가지 싶다. 나라도 역시 뭣 밟은 그런 기분이었을 테니 말이다. 하여간 요리사에 대한 심한 편견을 심어준 책. 그래서 내가 요리사가 되지 않은 것에, 재능도 없는 것에 감사하게 만들었던 책이 되겠다. 그러게 신은 완벽한 모든 것을 주시진 않은가보다. 한가지 재능에 찬탄하다 보면 그것에 딸린 부작용에 충격을 받아야 하니 말이다. 아마도 그게 세상 사는 이치기도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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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고개의 목매달아 죽은 이의 집 1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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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3대째 의사집안인 신흥 명문가 호겐 가를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야요이는 부잣집 딸네미로 자라나 막무가내 말괄량이인 손녀 유카리가 납치되자 은밀히 긴다이치를 부른다. 자신의 집에 원한이 있는 사람들 소행이라면서 손녀를 조용히 찾아 달라는 야요이의 요청에 긴다이치는 긴장을 한다. 한편 혼조 사진관의 주인장 혼조는 이상한 의뢰를 받고는 어리둥절해진다. 미모의 여성이 찾아와 한 밤중에 호겐가의 병원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니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을 한 것. 도무지 폐허가 된 집에서 무슨 결혼식을 한다는 것이냐 이상하게 생각한 혼조는 그러나 손님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곳에 간다. 눈 딱 감고 사진만 찍고 오자고 생각했던 혼조는 그 과정에서 오히려 더 의구심이 증폭되고 만다. 결국 자신의 궁금증을 참지 못한 혼조는 긴다이치를 찾아가 이 요상한 사건의 내막을 알아주십사 부탁하게 된다. 그 신부가 유카리가 아닐까 의심한 긴다이치는 그녀를 찾기 위해 사방에 알아보나, 정작 호겐가에서 손녀가 돌아왔다면서 의뢰를 취소한다.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 되는 것 같이 보였으나, 며칠 뒤 호겐 가의 폐허가 된 병원터에서 사람의 목이 풍각처럼 매달려 있는 것이 사진사 혼조 일행에 의해 발견된다. 긴다이치는 목이 잘려 살해된 사람이 바로 유카리를 납치한 사람이며, 그가 오랫동안 호겐 가에 원한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이유는 그의 의붓 어머니가 그 병원에서 목 매달아 자살한 것을 두고 매정한 호겐 가의 탓이라고 여겼던 것인데, 계모에 이어 그녀의 의붓자식도 같은 장소에서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우연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과연 둘의 죽음은 우연이었을까? 그리고 과연 목을 뺀 나머지 몸은 어떻게 된 것일까? 그리고 그 남자를  죽인 범인은? 사건 자체의 충격적인 영상은 모두를 경악시키지만, 사건이 워낙 예사롭지 않다보니 몇 몇 주변 사람들을 취조하다 미궁에 빠져 버리고 만다. 그 누구도 딱히 범인이라고 단정할만한 증거를 잡지 못한 채, 그 사건은 영구 미제 사건이 되는 듯 했으나, 20년이 흐른 뒤 긴다이치는 다시금 혼조의 의뢰를 받게 된다. 그는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 하고 있다면서 아무래도 20여년 전의 그 사건때문이 아닐까 싶다고 주장하는데...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을 하도 봤더니만 조금 식상해서 안볼까 하고 있었는데, 안 보면 후회할뻔했다. 그의 작품들 중에서는 그래도 탑 3에 들만한 작품성이 아닐까 싶다. 재미면에서도 그랬지만 몇 대에 걸쳐 벌어지는 복잡한 가계도를 이용해, 세월을 뛰어 넘는 가족안의 비극적인 유산에 대해 잘 풀어놓고 있었지 않는가 한다. 누가봐도 요코미조 세이지 작품이라고 할만큼 그의 특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는데, 반복되는 그런 특징들마저 신선하게 보이게 할 정도로 매력적으로 다시 쓰여지게 했다는 점이 세이시의 필력을 입증한다. 어째 리뷰를 쓰고 보니, 술술 잘 읽는 것 치고는 버벅대는 듯하다. 하여간 재밌다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보심 된다고. 추천드리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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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길로 돌아갈까? - 두 여성작가가 나눈 7년의 우정
게일 캘드웰 지음, 이승민 옮김 / 정은문고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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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재밌을 것 같지 않은 제목에 눈길이 간 것은 행간에서 읽은 캐롤라인 냅이라는 이름때문이었다. 어디에서건 어느때 들려지건 간에 내겐 잊을 수 없는 이름, 충격적일만큼 글을 잘 써서 한번 읽고는 이름을 외울 수 밖엔 없었던 이름. 캐롤라인 냅... 그녀가 이미 몇 년 전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때는 얼마나 안타깝던지, 아마 내 가까운 친척이 돌아가셨다고 해도 그렇게 마음이 아프진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본적이 없는 사람임님에도, 거기에 이미 죽은 사람임에도, 단지 내가 그녀에게 아는 것이라곤 그녀가 쓴 책 몇 권 읽은 것 뿐임에도, 캐롤라인 냅은 내 뇌리에서 쉽게 지워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만큼 그녀는 강렬했고, 솔직했으며 독특했다. 그녀의 무자비할 정도로 가혹한 글들을 통해 나는 어느 여류 작가에게서도 얻어내지 못하는 위로를 얻었고, 공감을 느꼈으며, 그녀가 누구보다 가깝게 생각되었다. 아마도 내가 그녀를 그렇게 가깝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고통에 대해 조금 안다는 사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고통을 정확하고 예리하게 주시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것에 대해 완벽하게  끝장을 내기 전까진 자신을 내려 놓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녀의 그런 지성적인 태도와 집요함이 난 마음에 들었었다. 왜냐면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이기에...늘 고통 앞에서 주춤대며 망설이는 나에게 그녀는 자신의 고통의 크기를 보여 주었고, 그 고통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용기를 보여 주었기에. 그녀는 자신이 완전한 실패작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으나, 내가 보기에 그녀는 현실 속의 영웅이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드링킹>을 보면서부터 그녀가 이젠 좀 행복해졌기를 바랐었다. 이런 고통과 갈등과 처절한 사투를 뒤로하고 이젠 편안하게 살기를 말이다. 그러다 <남자보다 개가 좋아>라는 책을 보고는 그녀가 멋진 동반자 개 루실을 얻었다는 말에 매우 흐믓했었다. 그녀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진 말이다. 2002년 41살의 나이로 폐암으로 그녀가 사망했다는 말을 들은 나는 <남자보다 개가 좋아>에서 그녀가 썼던 구절에 신경이 쓰였다. 자신이 고통스럽게 죽어갈 때 과연 누가 나를 지킬까 라는...가까운 친구도 애인도 남편도 없었던 그때, 그녀는 자신에겐 루실이 있으니 쓸쓸하게 죽지는 않을 거라고 썼었다. 그것이 자신에게 굉장한 위로가 된다는 뉘앙스를 담아. 물론 그 말은 개가 얼마나 충실하며, 사랑하는 사람의 죽어가는 순간을 담담하게 지킬 수 있는 애정이 있는 동물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지, 진짜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이란 것을 가정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면, 자식을 먼저 두고 떠나길 원하는 부모가 없듯, 냅에서도 가장 두려운 일이 자신이 그녀의 개 루실보다 먼저 떠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인생이란 원래 바라던 대로 풀려가지 않는 법. 그래서 그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말을 들었을때 내가 걱정한 것은 두 가지 였다. 하나는 냅이 외롭게 죽어갔을까 라는 점과 루실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라는 것. 어디에서도 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없었기에, 답을 얻는 것을 불가능 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곳에서 답을 들려 준다고 나타났을때 내가 얼마나 반가웠을지 짐작이 되실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 책에 꽂힌 것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임에도 캐롤라인 냅의 친구라는 사실만으로 덥썩 손을 잡고 싶어지던 그녀, 이 책의 저자 게일 캘드웰이다. 


우선은 그녀가 이런 회고록을 내어 준 것에 무척 고마웠다. 이책을 쓰는 것이 그녀에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슬픈 과정이었던지 간에, 나는 실제로 그녀가 이 책을 써 냈다는 것에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왜냐면 냅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었으므로, 그리고 그녀가 이렇게 세상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는 것이 허무했었다. 난 알고 싶었다. 그녀가 책속에서 미처 드러내지 않은 모습은 어떠한지. 글에서 보는 겸손함과 극도의 자기 절제력을 감안하면 분명 그녀는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면만을 보여줬을 것이었다. 최악을 보여주면서, 최고의 모습은 쑥쓰러워서, 내진 자신에게 그런 괜찮은 자질이 있는지 알지 못해서 보여주지 않았을 것이란 것이 내 짐작이었다. 그리고 그런 내 직감은 이 책을 통해 옳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녀는 정말로 대단히 매력적인 여자였던 것이다. 자신이 그렇게 매력적인지 이해하지 못하는...아마도 그런 점 역시 그녀의 매력중 일부에 속했겠지만서도.


이 책은 두 여류 작가가 나눈 7년간의 우정을 그린 책이다.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나고, 8살 차이가 나는 언뜻 보기에 공통점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둘은 개를 통해서 가장 친한 친구가 된다. 그 둘의 우정의 연차가 7년밖에 되지 않는 것은 그 중 한 명인 냅이 죽었기 때문이다. 평생을 함께할 친구라고 생각하고, 늙어서 서로에게 기댈 수 있을 줄 알았던 우정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끝이 난다. 그 누구의 동의도 얻지 않은 채. 죽음이란 그렇게 무정한 것이다. 타협도 안 되고, 되돌릴 수도 없으며, 게일이 말했듯이 거대한 부재를 남겨 놓은 채, 그곳에서 활보하라고 산 사람을 밀어넣고는 그만이다. 만약 죽은 이를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우린 그것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그 안에 떨어져 벌벌 떨면서 이 고통이 언제쯤 끝이 날까 두려워할 뿐... 그리고 깨닫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살아있고, 기억이 남아 있는 한 계속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렇게 사려깊고 우아했던 냅이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때 자신보다 남편이나 게일이 더 상처를 입을 것을 걱정한 것은 얼마나 정확한 예견인지. 물론 그것은 죽음 이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우리의 단순한 추측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르지 말이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게일 캘드웰은 10년이 지난뒤 이 책 속에서 비로서 그녀를 추억한다. 그녀의 모든 것과 그녀와 나눈 우정, 그리고 함께 나누었던 그 풍부했던 삶의 여정들과 남겨진 자의 비통한 슬픔까지...그래서 사람들이 없다고 단정하는 여자들의 진한 우정에 대해 우리에게 들려준다. 말이 더 하고 싶어서 먼 길로 자진해서 돌아가는 단짝 두 친구에 대해서.


이 책을 보면서 우선 가슴이 아팠다. 마치 내가 게일인 것처럼. 아니 게일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라면 견딜 수 없었을 것 같으니 말이다. 그런 고통을 묵묵히 견디어낸 게일이 대견해 보였다. 물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긴 하지만서도... 둘째는 냅이 외롭고 쓸쓸하게 죽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서 안도했다. 폐암 진단을 받은 지 7주만에 사망을 했다는데, 그 동안 많은 사람들에 둘려싸여 간병을 받았다고 한다. 알고보니 역시나 냅은 엄살장이였더라. 그녀 주변에 그녀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았는데, 그걸 알아 차리지 못했다니, 어딘지 그녀 답다. 거기에 20대와 30대를 자신을 파괴하는데 몰두하는 듯 보였던 파괴 성향이 40대 즈음엔 강렬한 삶의 의지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좋았다. 그녀의 책을 보면서 늘 그녀가 불행해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었는데 말이다. 그녀가 삶의 방향을 선회해서 어느때보다 살고 싶어했다는 것은 어찌보면 아이러니이지만 내게는 위로가 됐다. 왜냐면 나는 그녀가 이놈의 세상, 더이상 살고 싶지 않았는데 잘 됐다 라면서 죽어갔음 어쩌나 걱정했었으니 말이다. 난 그녀가 그런 식으로 삶을 마감하지 않았음 했다. 누구보다 아름답고 영리하며,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해야 하는 여자였고, 이미 넘치도록 시행착오와 고통을 겪어낸 사람이었기에 나는 그녀가 어느 시점에서는 평화를 찾았기를 바랐었다. 그런 내 생각은 아마도 그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염원이었는가 보다. 그녀의 장례식엔 비가 오는 날임에도 사람들이 넘쳐 났었다고 하니 말이다. 만약 그녀가 그걸 봤더라면 수줍어 하는 성격에 그다지 달가워 하진 않았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자랑스러워 하진 않았을지. 자신이 그렇게나 사랑받는다는 것에 대해 말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알게 되었는데 냅은 죽기 전에 사랑하던 연인과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루실은 그에게 맡겨지고. 그녀의 강렬했던 삶을 생각하면 죽음의 잔인함만 뺀다면 완벽한 결말이다. 그래서 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이만하면 나쁜 죽음은 아니라고 말이다. 안도했다. 그녀를 좋아하는 독자로써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가지 명백한 것은 우리는 그녀를 영원히 그리워 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녀가 살아 남아서 계속 글을 썼더라면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해주었을지 나는 궁금해 할 것이다. 그녀에겐 남들이 갖지 못한 특별한 재능이 있었으니까. 게일이 그녀와 더이상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것에 절망하는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나침반을 잃어버린 그런 허전한 심정이 아닐런지...우리 모든 여성들에게 나침반이 되주었던 냅. 그녀가 평안하게 영면하시길. 그리고 이젠 아마 루실도 죽었지 않을까 싶은데, 이봐~ 루실! 천국에서 냅을 만났거든 그녀를 잘 보살펴 주렴. 그녀 덕분에 우리의 삶이 조금은 충만했었다는걸 우리가 잊지 않고 있다고도 전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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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wbee 2013-07-28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캐롤라인 냅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책을 찾아보다가 발견했었죠~
생각만큼 그녀의 책이 팔리지 않았던데, 이렇게 만나니 반갑네요.

이네사 2013-07-29 12:15   좋아요 0 | URL
아, 그래요? 하긴 좋은 책이라고 해서 잘 팔리는건 아니니까 말이죠.
아마 안 읽은 사람이 많아서 그럴 거여요. 한번 일어보면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텐데 말이죠.
리뷰가 길어졌죠?원래 이렇게 길게는 안 쓰는데, 더군다나 주절주절 감상적인 톤으로 말이죠.
그런데 냅이니까, 냅이라서 이렇게 되더라구요. 그 특출난 재능이 아깝기도 하고.
50대, 60대의 냅은 어땠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죠. 아마 그녀를 아시는 분들은 다들 그런 마음이셨을 싶네요.
하여간 냅을 사랑하신다니, 저도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