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악한 늑대 스토리콜렉터 16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김진아 옮김 / 북로드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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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우누스 시리즈의 두 히어로인 형사 보덴슈타인과 피아. 각 편에서 각자의 개인적인 사생활로 고통을 겪어야 했던 두 사람은 이제 평온하고 침착한 일상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 고통스런 이혼 과정을 험난하게 거쳐낸 뒤 드디어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진 보덴슈타인은 과거 아내와 함께 살던 집을 팔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갈 계획을 세운다. 피아는 동물관장인 크리스토프와의 동거가 기대보다 자연스러워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그 둘 앞에 새로운 사건이 배당된다. 뜨거운 여름날 강위로 갸날픈 소녀의 시체가 떠올랐던 것이다. 부검을 해본 결과 오랫동안 학대를 당해왔을 거란 소리를 들은 피아와 보덴슈타인은 그녀를 위해서 반드시 범인을 잡겠다고 다짐을 하나 , 그들의 기대와는 반대로 수사는 진전을 보지 못한다.범인은 고사하고 죽은 소녀의 신원조차 밝혀내지 못했으니 말이다. 한편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비열한 짓도 마다하지 않은 방송인 한나는 자신의 상담사가 자신에게 연락을 취해오자 어리둥절해 한다. 꼭 방송에서 다뤄줬음 하는 사건이 있다는 말에 혹했던 한나는 사건의 내용을 들은 뒤 경악한다. 그 사건을 방송에서 다룰시 파장이 엄청날 것이라고 한나는 자신하지만 한나의 오랜 지기인 볼프강은 그녀가 섣불리 무모한 사건에 뛰어 들어든 것은 아닌가 하면서 걱정을 한다. 그의 걱정이 기우가 아니라는 듯, 한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심하게 폭행당한채로 발견된다. 거의 죽을 지경이 된 그녀는 병원으로 실려가고, 형사들은 그녀가 왜 그렇게 잔인하게 폭행당했어야 했는지 의문을 품지만 도무지 단서를 발견되지 않는다. 거기에 걸려온 제보 전화에 달려간 경찰은 한나의  심리상담사 역시 죽어 있는 것을 알게 된다. 한나와 심리 상담사의 연결 고리를 알아보던 피아와 보덴슈타인은 전 갱단이었던 프린츨러와 몰락한 변호사 로테문트가 그 둘의 주변을 맴돌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둘이 살인범이 아닐까 싶어 추적해 봤지만 로테문트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 사건은 다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고 만다. 한편 과거 피아의 형사 반에서 찌질한 루저 역을 도맡아 하던 벤케는 내사반으로 이동이 되었다면서 후환을 두려워 하라고 협박한다. 이에 피아는 보덴슈타인에게 피해가 갈까 걱정이 되지만 의외로 그는 벤케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이 모든 사건이 정신 사납게 이어지는 가운데, 과연 누구를 믿어야 하고 누구를 믿지 말아야 하는지 다들 감을 잡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형사들 서로도 상대를 믿지 못하는 가운데, 피아는 학창시절 동창이 자신의 어린 딸이 성추행을 당한 것 같다면서 상담을 해오자 당장 달려 가는데...


역시나 넬레 노이하우스였다. 어쩜 이리도 이야기를 막힘 없이 술술 서술해 가는지...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장면의 전환이 하도 자주 이뤄지는 바람에 다소 짜증이 나고 혼란스러운 점이 있긴 했지만서도, 이야기의 혼란없이 쭉 사건의 전개를 빨리 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말이다. 그럼에도 이야기를 마치 정교한 직조물처럼 짜내가는데는 허를 내두르고 말았다. 다른건 몰라도 저자가 상당히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이 작가의 책을 읽어나가면 나갈수록 굳히게 된다. 이렇게 긴박감있는 이야기를 꾸준이 양산해 내시다니, 이 얼마나 은혜로운 작가란 말인가. 믿고 보는 스릴러 소설 작가가 별로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여름에 넬리 노이하우스 같은 작가야말로 우리에겐 든든한 방공호 같은 분이 아닐까 싶다. 특히나 여성 작가인데도 인간에 대한 통찰력이 녹녹치 않다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든다. 피아와 보덴슈타인을 두 톱으로 해서 이야기를 끌어 가면서도, 다른 여타의 등장인물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는다는 것 또한 마음에 들고. 다만 이번 작품에서 걸리는 점이 있었다면 아동성범죄를 다뤘다는 것이다. 이 작가 저 작가가 다루어서 이젠 너무 식상한 소재, 그럼에도 볼때마다 여전히 불편한 소재를 또다시 그녀가 다뤘다는 것이 별로 마음엔 들지 않았던 것이다. 왜냐고? 왜냐면 이런 작품들이 아무리 많이 나온다고 해도 그런 범죄는 여전히 극성을 부릴 것이고, 그렇다보니 이런 작품을 통해 얻는 것이라곤 아동범죄자들에 대한 극도의 불쾌감 내진 경멸감이 전부가 아닐까 싶어서 말이다. 끔찍한 현실에 대해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다. 연쇄 살인이나 마약 같은 범죄로 뭐, 내가 할수 있는 일이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아동범죄만큼은 뭐랄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으니 말이다. 아마 그런 정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찬가지 아닐런지...모르겠다. 아동성학대를 당한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어른이 되서 어떻게 살아갈까? 우리는 그들을 차마 바라보기 힘들다는 이유로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취급하는데 말이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들도 어디선가 이 삶을 영위하고 있을텐데, 과연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싶어서. 그들의 고통이 있는 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왜 아동성범죄자들은 근절될 수 없는 것인지,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자랑하고 다니는 가운데, 그들의 뻔뻔함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무기는 과연 무엇이 될 것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다. 사악한 늑대에 맞서서 우리는 그저 연약하고 무기력한 양일 뿐일까?  암담한 심정이다. 그리고 더이상 생각을 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기도 하고. 작가도 사람이기에 아마 이런 소재를 다룬다는 것이 쉽지많은 않았을텐데, 그런 거부감을 깼다는 점에서 이 작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어떤 책보다 쓰기 힘든 소재였을텐데, 이만하면 잘 마무리 한게 아닐까 한다. 결론 부분에서 다소 어리둥절한 부분이 있긴 했지만서도, 뭐, 소설이 꼭 완벽해야 하는 법은 없으니까. 특히나 이 작품에서 놀란 점은 벤케를 다룬 새로운 시선이었다. 이 작가가 보통 작가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게 했던 장면으로, 인간에 대한 통찰력만큼은 이 작가를 믿어도 좋겠다라는 믿음을 가져다준 장면이었다.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책을 읽어 보시길. 넬레 노이하우스의 작품은 다른 무엇보다 등장인물들이 성장을 하고 변화한다는 것이 참 마음에 든다. 현실속 어디쯤에 있는 듯한 그런 곳을 상상하게 한다고나 할까. 죽어있는 시리즈가 아니라 성장하는 시리즈라는 면에서 다음 작품이 또 기다려 진다. 다음 작품도 빨리 나와주길 작가에게 채근해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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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의 왕도 - 세계의 부모들에게 배우는 반전 육아법
메이링 홉굿 지음, 박미경 옮김 / 예담Friend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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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전문가가 아닌한, 일단 아이가 태어나고 난 다음에 아이를 키울 생각을 하면 당황부터 하는 것이 보통 어른들의 정서다. 육아에는 완전 초보인 왕초짜 부모서부터, 조카들이 크는걸 보았기 때문에 이젠 육아에 관해서라면 자신이 있다고 자부하는 고모나 이모 삼촌이라도, 새로운 아이의 등장은 언제나 사람들을 긴장시킨다. 육아에 관한한 단언하건데, 단언할만한게 별로 없다. 왜냐면 아이들은 저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이 아이에게 적용되는 것이 다른 아이에겐 무용지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내 첫번째 조카는 유아기때 안아주는 것과 이불 그네를 엄청나게 좋아했지만, 두번째 조카는 안아서 재워 주는 것보단 세워서 돌아다니는 것을 선호하고, 이불 그네를 해주면 악을 쓰면서 운다. 첫번째 조카를 비교적 무난하게 키웠다고--키웠다기 보단 옆에서 지켜 보는 것이 다였지만서도---자부하던 나는 두번째 조카를 맞이하면서 첫번째 조카때 습득한 육아 지식이 대부분 쓸모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실망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처럼, 새 아이에겐 그에 맞는 새로운 육아법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 사실은 육아에 관한한 매너리즘에 빠질 수가 없겠다는 장점이 있기도 하지만, 과거의 경험이 별반 소용이 되지 않는다는 좌절감을 의미하기도 했다. 다 새로 배우고, 다 새로 업데이트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겨우 8년만에 말이다. 10년도 아니고, 100년도 아니며 고작 8년...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두 아이를 보면서 육아가 힘든 것은 어쩜 사람들의 개성이 다 다르듯, 아이들의 개성 역시 다 다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엄마를 만들었다는 신화같은 말이 어느정도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싶더라. 왜냐면 아이들 각자에게 맞는 육아방법을 기꺼이 고민하고 파악해낼 사람이 엄마 외엔 전무하기 때문이다. 그런걸 보면 엄마들이 육아를 힘들어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한 인간에게 맞는 사랑법을 찾아 낸다는 것이 보통 어렵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마나 엄마에겐 아이에게 향한 무한한 애정이 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엄마들은 오늘도 고민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 내 아이에게 맞는 것일까? 과연 이렇게 해도 괜찮은 것일까? 내가 지금 이렇게 한 행동이 내 아이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면 어떻게 하지 싶은 불안감에 시달리는 것이야 말로 어쩜 엄마들에게 가장 힘든 과제일지도 모른다. 불안감만큼 사람을 잡아 먹는 것도 없으며, 불안감만큼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것도 없으니 말이다. 적어도 영유아를 키우는 엄마들에게는 말이다.


여기 이 책의 저자 역시 그런 엄마중 하나다. 미국으로 입양을 갔었던 대만계 미국인인 저자는 30 중반이 넘어서 딸을 낳으면서 어떻게 하면 잘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된다. 딸을 낳기 전까지 전세계를 누비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왔던 저자는 자신이 다녔던 이곳 저곳의 육아 방식이 천차만별로 다르다는 것에 주목하게 된다. 미국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심지어는 기겁할만한 일들이 다른 나라들에선 당연하거나 오히려 칭찬받아 마땅한 덕목이 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면,아르헨티나 부모들은 아이들이 밤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는다고 해도 그다지 개의치 않아 했다. 프랑스에서 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케냐 부모들은 유모차를 불필요 하거나 성가신 것으로 여겼고, 중국인들은 기저귀를 키우지 않은 채 돌이 지나면 배변 훈련을 시작했다. 아랍인들은 대가족을 고수한 채 개인주의라는 개념의 싹을 잘라 버렸고, 티벳인들은 임신부들을 존귀하기 대접하기로 유명했다. 일본인들은 아이들이 싸우건 성기를 가지고 아이들 사이에서 자랑을 하건 중재에 나서지 않았고,폴리네시아 부모들은 아이들과 놀아준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멕시코 부모들은 아이들이 어렸을때부터 온갖 집안일을 돕게 하도록 시켰고, 똑같은 교육을 받는 미국에서도 서양 아이들보단 동양 아이들의 성적이 더 좋았다. 도무지 이런 일들은 왜 생기며, 그렇다면 육아에 관한한 절대적인 기준은 없는 것일까? 내진 어떤 것이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는데 도움이 되는 것일까 라고 저자는 질문을 시작한다. 그리고 이 책속에서 저자는 자신만의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유연하게 아이를 키우자는 것이다. 어떤 것도 절대적인 것은 없으며, 어쩌면 미개하고 몽매한 나라의 육아 방식인 것 같아 보여도 알고보면 나름의 의미가 있으며, 육아에 관한한은 그들이 맞을 수도 있다고 저자는 생각하는 듯했다. 자신이 생각한 것을 자신의 딸인 소피아에게 적용해보면서 말이다.


일단 저자의 시도 자체가 흥미로웠다는 것만은 인정해야 겠다. 이렇게도 나라마다 다른 육아 방식이 존재하고, 그것이 다른 나라 사람이 듣기엔 이상하게 들릴지 모름에도 , 그 나라와 민족간에서는 나름의 역활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이니 말이다. 즉, 나라마다 이런 저런 방식이 있고, 그것이 비록 다른 나라 사람이 보기엔 경악할만한 것이었다고 해도, 전세계 부모들이 자신들의 아이를 사랑한다는 점에서만큼은 다르지 않으며, 그렇다면 아이를 키우는데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것을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 이해할만한 논지다. 이렇게 키우건 저렇게 키우건 간에, 아이들이 정신병자가 아니라 사회의 일원으로 잘 성장해주고 있다는걸 감안해 본다면 저자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려오기도 한다. 즉, 육아란 지극히 사회적인 경험이며, 그들이 처한 환경에 따라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변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보다 유연한 잣대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키우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라는 그런 말을 저자는 하고 있었다. 꼭 밤 8시가 되기 전에 재워야 하고, 돌이 되면 아이를 다른 방에서 재우고, 배변 훈련은 아이가 원하는 시기까지 기다리고, 아이와 놀아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도 아이를 키우는데는 별 지장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저자는 전세계 부모들의 육아방식을 고찰한뒤 결론을 내린다.  그런 그녀의 말에는 나도 어느정도는 공감이 갔다. 일례로 아이를 포대기에 업고 다니는 우리나라 육아 방식에 서양인들은 놀라움을 표했으나, 지금은 아동심리학자들이 말하지 않는가. 그것이야말로 아기들에게는 안정감과 동시에 애착심을 발달시키는 동력이 된다고 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서양식 육아 방식보다는 동양적인 껴안음이 아이들에겐 더 낫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었다. 포대기를 실제로 사용하는 나라에 살고 있는 나로써는 전문가의 주장에 동조하는 바다. 포대기를 둘둘 감싸안고 아이와 함께 하는 외출만큼 즐거운 경험도 없으니 말이다. 어른에게 그럴진대 아이들에게도 비슷한 애착심이 형성되지 않을까 난 늘 생각해왔었다. 그렇다보니 서양식 육아 방식이 절대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서양식 육아는 통제적이고 강압적이며 지나치게 개인적인데다 아동 학대에 가깝다시피 고립적이라는 저자의 견해에 고개를 끄떡일 수밖엔 없었다. 실제로 나 역시도 그렇게 느끼는 바가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저자가 말미에 밝혔듯이 저자는 의사도 아니고 아동 전문가도 아니다. 인류학자나 과학자는 더더군다나 아니다. 그저 가족을 위해 올바른 일을 하고픈 평범함 엄마다. 바로 그것이 이 책의 한계다. 즉, 참조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저자의 견해에...그냥 호기심삼아 이런 저런 나라에서는 아이를 이렇게 키운데, 라는 정도의 이야기꺼리는 될지 모르겠으나, 그것이 육아에 도움이 되는 어떤 유익한 정보를 준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몇몇 장면에서는 소름이 끼쳤다. 분명히 일본의 극렬하고 잔인한 왕따를 어린 시절부터 부추기는 것이 분명한 일본 유치원의 장면을 보고는 갈등을 해결하는 법을 배우게 한다고 해석하는 것이나, 멕시코 아이들이 어른들과 동등한 노동을 하면서도 행복해 한다는 주장에 일말의 의심도 없이 동조하는 것이나, 동양 아이들이 집안의 어마어마한 압박속에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간과되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그것이 페해가 눈에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옳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통찰할만한 눈이 저자에겐 없었다. 그것은 저자가 자신이 스스럼없이 밝힌대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도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육아에 관한한 모든 것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경향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닐까도 싶었다. 즉, 자신이 해본 것은 모조건 괜찮은 것이고, 그것에 대한 비난이나 훈수에 저자는 반박을 하고 있었을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뭐라고? 그거 어떤 어떤 나라에선 아무렇지도 않은 건대, 왜 여기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실제로 그렇게 해도 잘 자라나는 아이가 있다구요, 라면서 말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해도 저자에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실제로 이 저자는 좋은 엄마이고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지만서도, 이 세상에서 가장 대하기 힘든 부모는 자신이 아이에게 하는 것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들의 시야엔 완벽하게 옳은 것이기에, 도무지 다른 사람들의 견해가 들어간 틈이 주어지지 않은 완고한 사람 말이다. 육아에 있어 유연함을 주장하는 사람에게 의외로 완고함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재밌는 아이러니 아닌가. 그런데 실제로 내가 이 저자에게 발견한 것은 유연함이라기 보단 자신이 하는건 대부분 옳다는 고집이었다. 심리학자나 아동 전문가 내진 과학자들이 그간 일궈낸 성과를 일거에 쓰레기로 만들면서, 그딴건 다 필요 없더라. 그냥 과거 어른들이 키우는 방식대로 하면 되지 않느냐, 아이를 키우는 것에 관한한 어쩌면 과거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른다고 말이다. 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이란 말이냐.실제로 전혀 그렇게 못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이 저자는 상상도 하지 못한듯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천진난만한 사고가 이 책을 심심풀이용 서적정도로 만들고 있었다. 아마도 이 책을 아동 전문가가 본다면 소름이 돋아 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렇게 위험한 발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하면서 말이다. 해서 이 책을 읽어본 결론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육아의 왕도는 어디에도 없더라는 것이었다. 어쩜 그건 당신 각자가 찾아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표지 전문에 쓰인< 전문가의 말에 지치고, 주의의 훈수에 질린 당신에게 권한다>는 말에 혹해서 보게 된 책이건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이런 마음이 되더라. 내 차라리 전문가의 말에 지치련다, 라는...주위의 훈수도 내 기꺼이 듣겠다. 그것이 아무리 지치고 혼란스럽고 질린다고 해도 아이를 위한 것이라면 들어주련다. 그런 말들 속에서 단 하나의 귀중한 정보를 얻는다고 해도 헛된 수고가 아닐터이니 말이다.이런 비전문가의 사이비 조언에 현혹 당하는 것보다는 그나마 나은게 아닐런지...물론 이 저자의 말이 다 틀린건 아니였지만서도,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저자는 정말로 전문가가 아니란 것이다. 저널리스트일뿐이다. 우리가 아플때 의사를 찾아가야 하는 것처럼, 적어도 육아에 관해 무언가 괜찮은 육아 지침을 얻고자 하신다면 전문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시라. 정말로 그들은 나보다 , 당신보다, 그리고 이 저자보다 낫다. 귀동냥을 할 생각이라도 그들에게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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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가 없는 월요일 작가의 발견 5
아카가와 지로 지음, 유은경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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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제목에 혹했다. <상사가 없는 월요일>이라니, 뭔가 재밌는 일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거기에 이 책을 읽은 리뷰어들이 재밌다고 다들 한마디씩 하시고...해서 주저없이 보게 된 책, 결론만 말하자면 제목을 들었을때 내 머리를 스친 갖가지 잡다한 재밌을 것 같은 느낌들이 이 책 안에는 없다는 것이다. 내가 예상하고 기대했던 재미는 이 책 속엔 없었던 것.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이 책의 저자가 일본의 최고( 이 말은 그냥 서비스삼아 붙인걸로 치고, 왜냐면 일본 소설을 많이 읽은 편은 아니지만, 이 작가보다 추리 소설을 잘 쓰는 사람은 많이 봤으니 말이다. 최고라는 말을 붙이기엔 다소 어정쩡한 글발이었음으로, 최고라는 말은 그냥 아무 생각없이 아부 삼아 붙인걸로.) 추리 소설 작가라는것을 알게 됐다. 추.리. 소. 설.작.가.....이 말을 처음부터 명심했었어야 했는데, 난 추리 소설 작가라고 해도 유머 소설을 쓰지 않는 법은 없으니까, 그저 어떤 추리 소설 작가가 막간삼아 추리 소설 대신 회사를 무대로 한 유머 소설을 쓰신 줄 알았던 것이다. 딱히 유머 소설까지는 아니래도 일상을 다룬...직업인들의 다양한 애환들을 본격적으로 다뤄줄만한 내용으로...내용을 까놓고 보니 전혀 그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약간은 속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더군다나 저 표지...누가 저 표지를 보면서 이게 추리 소설이라고 짐작이라 하겠는가. 무척 재밌는 유머 소설일 것이라, 라고 짐작을 하지. 하여간 재밌는 구석이 전혀 없어서 무척 실망한 채로 책을 내려 놓을 수 밖엔 없던 작품이 되겠다. 더군다나 표지 뒷편에 쓰여진 책에 대한 한마디들은 어쩜 이리도 한가지도 맞는게 없단 말이냐. 놀라고 말았다. 그래도 대충 거짓말들은 쓰지 않는데, 이건 아무리 읽어봐도 지금 내가 읽은 이 책하고 매치가 되지 않는다. 아마도 다른 책을 읽고 서평을 써달라는 것을 이 책에 갖다 붙인게 아닐까 싶다.<놀라운 반전과 은근한 매력>따위는 있을래야 있을 수 없고, 동료들에게도 이 책은 절대 권할 생각이 나질 않는다. 동료들에게 눈총을 받고 싶은 생각이 없는 한...키득키득 웃다 보면 애틋해지고, 조마 조마 마음을 졸이다 보면 유쾌해진다는데, 정말 이 책을 읽고 그런 감상이 생긴 것인지 진지하게 묻고 싶다. 왜냐면 나는 전혀 그런 현상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말이다. 거기에 두근거리는 긴장감이라니...단숨에 읽힌다, 라고 하시던데, 긴장감은 커녕 돈이 아까워서 하는 수 없이 며칠에 걸쳐 아득바득 읽었다. 주문한 음식이 너무 맛 없다는 것을 알고는 실망했음에도, 돈이 아까워서 꾸역꾸역 먹을 때의 그 심정으로 말이다. 도무지 이 책의 뒷편에 실린 리뷰어들은 어디서 섭외를 한 것인지 궁금하다. 책을 읽기는 읽으셨을텐데, 어디서 이런 과장법을 습득하셨을지, 모두들 이런 사람들만 모아 놓은 것만으로도 출판사가 대단하다 싶다.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무언가를 쓰게 할때 적어도 말이지. 어느정도는 진심으로 쓰게 마련인데, 이 사람들은 광고로 쓰일 것이니 진심따위는 필요 없다고 생각한게 아닐런지... 하여간 이 책 상사가 없는 월요일이라서 다들 빵바레 울리고 신나게 회사 말아먹자, 뭐 그런 류가 아니라는 것을 주지하셨음 좋겠다. 추리 소설이다. 다만 다른 추리 소설과 차이가 있다면 다른 책에서는 주로 타겟이 가족이나 애인 뭐, 그 정도지만 이 책에서는 회사 동료들이나 직원들이라는 것이 다르다면 다르다고나 할까? 일하기도 바쁜 마당에 이렇게 동료들을 상대로 등을 치려고 아득바득한다고 생각하니 오싹함보다는 피곤함이 밀려온다. 이걸 보고 알았다. 적어도 회사에서는 별 일 없기를 바라는것이 보통 사람들의 심정이라는 것을. 왜냐면 그곳에는 진짜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이니 말이다. 쉬는 것도 아니고, 놀러온 것도 아닌,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러 오는 사람들. 적어도 그들이 동료들 때문에 함정에 몰리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는 것. 왜냐면 일단 직장을 다닌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일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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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라이트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9 RHK 형사 해리 보슈 시리즈 9
마이클 코넬리 지음, 이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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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은퇴생활에 어느정도 적응이 된 해리는 형사 시절 시간이 없어 손대지 못한 미해결 사건을 파헤쳐 보기로 한다. 심심풀이 삼아 사립 탐정 노릇에 나선 것이지만,  누구보다 그가 잘 하는 일이기에, 그리고 그 누구보다 진지하기에 사건을 대하는 그의 심정은 형사시절과 다름이 없다. 그 첫 케이스로 걸린 것이 바로 엔젠라 벤턴사건. 영화사에 근무하던 젊은 여성이 집앞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성폭행처럼 비춰지도록 꾸며지긴 했지만, 성폭행은 없었다는 사실이 알려 지면서 혼선이 초래 된다. 초동수사때만 해도 금방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던 그녀의 사건이 미궁으로 빠져든 것은 그녀가 살해될만한 요소를 발견하지 못한 때문도 있었지만, 그 사건후 발생된 무장 강도 사건 때문이기도 했다. 그녀가 근무하던 영화사에서 보관하던 현금이 무장 강도들의 손에 의해 탈취된 것으로, 그 사건의 여파가 워낙 컸던지라 한 젊은 여자가 쓸쓸하게 죽어갔다는 사실은 유야무야 묻히고 말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해리에게서 그 사건을 빼앗아 간 두 형사가 비극적인 사고로 인해 한 명을 죽고, 한 명은 전신바미가 된 것은 그 사건이 저주받았다는 오명을 쓰기에 충분했다. 해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미해결 사건 파일 속에 묻혀 있었던 것을 이제 해리가 구해 내고자 한다. 과연 4년간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한 사건을 그가 해결할 수 있을까? 그가 사건에 대해 이리 저리 묻고 다니자 마자 FBI의 대 테러국에서 그에게 관심을 보인다. 이에 해리는 이 사건뒤에 자신이 파악하지 못한 거대한 모종의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건 아닌가 의심을 하게 되는데..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은 대걔 재밌고, 늘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작품만큼은 정말로 재밌고 멋졌다. 정확한가는 모르겠는데, 내가 본 코넬리의 작품들 중에서는 가장 재밌었지 않았는가 한다. 어쩜 그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안도감때문인가는 모르겠지만서도 말이다. 왜냐면 늘 외롭고 고독해 보이던 이 남자에게 드디어 가정이라고 할만한게 생기는걸 보게 되서 말이다. 이런걸 보면 여성 독자들이란 감성적인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양이다. 주인공이 조금 행복해질 가능성이 있어 보이니까, 더 책이 마음에 든다고 하는걸 보니 말이다. 뭐, 어쩌면 그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특정 시리즈에 마음이 가고, 주인공에 정이 들다보면 왠지 그들의 불행이나 고독이 마치 내 동생에게 일어난 일인양 노심초사 하게 되는게 정상이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만큼은 객관적인 평가가 다소 불가능하지 싶다. 해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다들 해리에게 드디어 찾아온 따스한 빛에 감격할 수밖엔 없을테니 말이다. 뭐, 객쩍은 감상은 이제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하고, 전반적으로 보자면 마이클 코넬리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난 것으로, 침착하고 어딘지 서글퍼 보이는 해리 보슈가 은퇴한뒤에 여유자적 사건을 해결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던 소설이다. 형사 뱃지가 없는 탓에 이것 저것 구걸을 하다시피 정보를 캐내야 하는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이리저리 머리를 써 가면서 사건에 충실하게 다가가는 모습이 여전히 해리답다는 생각이 들더라. 오히려 그의 매력은 사립탐정이 되었을때 더 한 듯 싶다. 뭐랄까. 한결 더 여유가 있어 보였다고 할까? 물론 외로운 코요테처럼 홀로 궁시렁 대면서 다니는 것이 궁상맞아 보이는 점도 있었지만서도 말이다. 그럼에도 그의 한결같은 침착함, 자유로움, 다정한 성품, 타인을 배려하는 것들이 해리를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요소지 싶다. 그의 매력이 두드러지게 발산되던 영리한 작품. 그 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등장해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도 흥미로웠다. 전신마비 환자가 되어 아내에게 학대를 당한다고 주장하는 전직 형사, 과거 FBI의 잠입 형사로 해리와 한때 격돌한 적이 있던 FBI요원의 애처로운 사랑 이야기도 주목을 끌지 않았는가 한다. 해리 시리즈의 특징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해리가 있고, 그의 동료들이 있고, 그리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고...그들이 모두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가 다 설득력있고, 각자의 개성이 있다. 그래서일까? 마이클 코넬리의 책을 읽가 보면 넓은 세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또다른 세계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 아마도 그래서 그의 책이라면 언제나 실망을 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들게 되는 모양이다. 흥미진진한, 몰입감 넘쳐 주는 추리 소설을 읽고 싶다시는 분들은 읽어 보셔도 좋을 듯..거기에 해리가 어떻게 그가 잃었던 빛을 찾아가는지 하는걸 보는 것은 덤이다. 특별히 마이클 코넬리가 이 작품에서 해리에게 선사한 선물~~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신 분은 찾아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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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여관 - 아리스가와 아리스 미스터리 단편집 작가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3년 1월
평점 :
품절


나랑은 이 작가가 안 맞는가보다. 무섭지도, 트릭이 대단한지도, 신선하다고도 느껴지지 않았으니 말이다.어렸을때 들었던 전설의 고향, 먼 길을 떠나는 선비가 폐가에 들어가는 것처럼 이 작가 역시 낡고 어두운 여관에 들어간다...까진 그럴듯했는데. 그 다음이 없다. 그게 아쉬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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