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이 분다>라. 왜  제목이 바람이 분다일까 라는 의문은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풀린다. 폴 발레리의 시 '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 겠다..."라는 시에서 따온 제목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으니 말이다. 거장이라고 불리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신의 은퇴 작품으로 선택한 이 영화, 과연 그는 자신보다 대부분이 한참 어릴 관객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난 그것이 궁금했었다. 격변의 세월을 70년 넘게 사셨으니, 무언가 인생을 사는 후배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명확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그가 누군가. 세계에서 제일이라고 손꼽히는 애니매이션계의 거장 아니던가. 그런 그가 하고픈 말이 없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한 평생을 정리하면서 그는 분명 무언가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변명이건 사죄건 이해를 구하는 것이건 아니면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건 간에...영화관을 나오면서 들었던 가장 큰 느낌은 불쌍하단 것이었다. 그 시대를 살아갔어야만 했던 사람들이. 우리 나라 사람들이건 일본 사람들이건 중국 사람들이건 간에...그들이 누구이던가. 지진을 겪고, 전쟁에 휩쓸리고, 내란을 겪고, 이데올로기의 혼란과 가난과 무지와 절체절명의 폐허속에서 일어나야만 했었던 사람들 아니던가. 그 속에서도, 단지 미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신이 아직은 멀쩡하다는 이유로 꾸역꾸역 살아가야만 했었던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 겠다.'라는 시 구절에서 허무함을 읽는 것은 비단 나뿐인 것일까? 그 절망과 비참함과 수치심, 불안과 슬픔을 뒤로하고, 그럼에도 바람이 불어오니 살아봐야 겠다고 마음을 먹어야 했던 사람들의 심정을 우리가 어찌 알겠는가? 미야자키 하야오는 일본의 현재 세대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이런 시대를 살았었다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지만, 남는 것은 치욕과 파멸뿐이었고. 세월을 되돌아보니, 그렇게 살았던 시절이 후회된다고, 그럼에도 후회를 딛고 우리는 그렇게 한 세상을 살아냈으니, 너희도 살아라, 라고 말이다. 거기에 덧붙여 그는 전쟁이란것은 절대 안 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보내고 있었다. 우리 눈에 보기에는 그것이 수준에 한참 못 미친다는 것도, 그런 메시지를 보내는데 하필이면 제로센의 창조자인 지로를 주인공으로 했다는 것이 말이 되냐는 볼멘 소리가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가 바라본 시각에선 그것이 최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이 알고 좋아하는 최고의 것들을 모아 이 영화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그 누구도 자신이 모르는 것을 모아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애니가 그간 그가 만들었던 모든 작품들을 모아 놓은 듯한 인상이라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지 싶다. 이 영화에서는 붉은 돼지와 토토로와 코난과 포비와 나나가 보인다. 그가 평생을 사랑해온 모든 것이. 그리고 그는 그것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런지...이게 바로 내가 평생 하고 싶었던 말이야 라고. 그래서 이번만큼은 가상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 아닌, 전범이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는 지로를 내세운 것이 아닌가 싶었다. 더이상은 환상의 뒤로 숨고 싶지 않아서 말이다.

 

<진짜 사나이>에서 요즘은 실전 모의 전투에 레이저 총이 사용되는 것을 보고 웃은 적이 있다. 마치 어른들이 총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만약 저 총이 실탄을 장전한 실제 총이라면 그들에게 그런 여유가 묻어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일테니 말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전쟁에 나가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쟁에 나가는 것은 서 경석처럼 딸 바보 아빠일 수도 있고, 장혁처럼 성실한 근육맨일 수도 있으며, 샘처럼 호기심에 군대에 끌려 나온 사람일수도, 멋 모르고 차출된 아기 병사일수도, 어디에 세워 놓든 구멍 병사 신세를 면치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개인이라는 것은 역사의 거대한 물결 속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며, 그 무엇도 될 수 없다. 그저 우리 모두 하나의 나사에 불과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 속에서 정신을 차리면 되지 않았느냐, 왜 그런 악의에 가담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우리 인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우린 그렇게 강한 존재가 아니고, 강한 존재였던 적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경계하는 것이다. 우리의 지도자가 누가 되는가 라는 것에 대해. 그가 우리들을 어디든지 이끌고 갈 수 있다는 것을 잘 앎으로. 이 영화의 주인공인 호리코시 지로 역시 전후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 우수한 무기를 가졌을 때에는 그것을 통제/ 제어하는 보다 높은 도리, 의리의 마음과 과학 정신이 필요하다."고.

 

이 영화는 멋진 비행기를 만드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을 천재 비행기 설계자가  전쟁의 회오리 속에서 어떻게 이용당하게 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에게 과연 다른 선택이 가능했을까? 아니면 단지 우리는 천재인 그가 그런식으로 이용당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를 원망해야 하는 것일까?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지로에겐 얼마든지 다른 선택이 가능했어 보인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렇게 우수한 전투기를 만들어 낸 그에게 전쟁광의 혐의를 씌워야 한다. 하지만 개인적인 면에서 보자면, 그는 그저 최선을 다한 엔지니어에 불과할 지도 모르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자신의 최선이 그런 살상을 불러왔다는 것에 평생 지울 수 없는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인물일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 난 그것이 미야자키 하야오가 지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유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아마도 그렇게 살았을 것이 당연한 것이니 말이다. 이 노거장은 실은 우리는 보통 사람이었다고 , 그걸 알아달라고 애원하는 듯 느껴졌다. 웃고 떠들고 사랑하고 믿고 꿈꾸고 장난치면서 살아가고 팠던 인간들이었다고 말이다.

 

 

이 영화를 보기전에 가장 큰 두려움은 영화를 보는 도중에 일어나서 " 이봐! 너희들은 가해자야, 피해자가 아니라고~~! 웃기지 말라고 해"라고 소리치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나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반딧불의 묘>의 마지막을 보면서 어찌나 가증스럽던지, 그전까지 줄줄 울고 있었던 것을 되돌려 받고 싶었던 기억이 생생해서 말이다. 다행히도 이 영화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화질은 큰 화면으로 보길 잘 했다 싶게 생생하게 아름다웠고, 군데 군데 신경을 많이 쓴 흔적들에는 일본 사람들의 꼼꼼함과 완벽을 추구하는 집념에 감탄하고야 말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재미가 없고, 이야기의 주축을 이루는 일과 사랑과의 연결이 자연스럽지도 못하다. 전쟁의 참혹함을 다루면서도 인간들은 어찌나 순수한지 거의 믿기가 힘들었고, 영화속 내의 로맨스는 이미 가치를 오래전에 상실한 듯한 순애보를 다루고 있어서 헛웃음이 나더라. 우린 시대에 뒤쳐져 버린 듯한 그의 감성을 지켜 보면서 계면쩍음을 감출 길이 없어 하지만서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런 감성이 아니었다면 과연 그가 그 시대를 살아낼 수 있었을까라는 점이다. 당신은 어떨 것이라 보는가? 그런 시대에 미치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약간의 환상과 인간의 선의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그에게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이 그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그 만의 방공호였다면, 우린 그를 조금은 이해해 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왜냐면 그 가혹한 시대를 살았던 것은 우리가 아니니 말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에게 조금씩 빚을 졌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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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3-09-08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 우익의 초점은 늘 '잔인했던 일본의 만행'을 애써 외면하고, 불쌍했던 일본인들, 가난했던 시절, 지진... 전쟁과 원폭...으로 맞춰집니다. 당연한 거죠. 그런 우익조차 갖지 못한 한국이 불쌍한 거구요.

이네사 2013-09-09 11:46   좋아요 0 | URL
아, 예....
 

 

 

" 벽장속에 사는 괴물들, 그들이 원래 그렇게 무서웠던 것은 아니랍니다. 그들은 먼저 대학교에 가야 했죠."

 

이 두 문장으로 이 영화의 모든 것이 설명된다. 그렇다. 지금은<몬스터 주식회사>의 최강콤비로 불리는 마이크와 설리지만, 그들이 늘 그렇게 무서웠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에게도  무서움의 무자로 모르던 생판 무지렁 꼬꼬마에 불과한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단지 그들에게 있었던 것이라곤 언젠가 커서 아이들을 겁나게 무섭게 하는 전설의 괴물이 되었음 하는 희망과 꿈 정도? 외눈박이 작은 초록색 공 몬스터인 어린 마이크의 운명은 그가  몬스터 주식회사에 견학을 하러 온 날 결정이 된다. 잠자는 아이들을 놀래켜주러 출근하는 겁주기 대원의 늠름한 모습에 반한 마이크는 꼭 그 회사에 입사하리라 결심을 한다. 그런 마이크에게 겁주기 대원이 슬쩍 말을 흘린다. 자신처럼 되고 싶으면 겁주기 특성화 대학인 <몬스터 대학>에 가라고... 그 한마디에 깜찍함이라면 모를까 무서움의 대상으로 보기엔 한없이 부족한 어린 마이크는 불철주야 노력한다. 결국 그렇게 가고 싶어하던 몬스터 대학교의 입학을 하게 된 마이크,  입학을 했으니 이제 자신의 미래는 탄탄대로라고 그는 중얼거리지만, 과연 진짜로 그럴까 ? 

 

 

부푼 마음을 안고 신입생이 된 마이크에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대학이라는 곳이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탄탄대로는 커녕 그곳에서 살아남는다는 자체마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마이크는 그 특유의 극성으로  열심히 공부에 매진한다. 그렇게 혹독하게 자신을 몰아붙이는 그에게 눈에 가시같은 존재가 나타났으니, 그 유명한 설리반 가문의 아들 설리다. 재능과 외모만으로도 겁주기의 모든 것이 끝나는 그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음에도 겁주기에 관한한은 두려울 것이 없어 보인다. 재능은 없지만 열정은 넘쳐나는 마이크와 재능은 출중하지만 게으른 설리,스타일이 전혀 딴판인 둘은 만나자마자 서로에게 으르렁댄다. 천부적인 재능 하나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설리와 겁주기에도 전략이 필요하다고 믿는 마이크, 결코 접점이 없어 보이던 둘은 기말 고사에서 엮이는 바람에 둘 다 <겁주기 학과>에서 잘리는 사태를 맞이하고 만다. 그 누구보다 겁주기 대원이 되고 싶었던 마이크의 실망은 이마저만이 아니지만, 가문의 명예를 한 몸에 지고 있는 설리의 충격도 만만치 않다. 이제 한층 더 서로를 미워하게 된 둘은 학교 전통 축제인 <겁주기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 다시 원하는 학과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조건 하에 팀을 만들어 도전하게 된다. 일명 <울지마 깍꿍>팀명 하에 뭉친 마이크 이하 여섯명의 몬스터들은 자신들을 무시하는 몬스터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겠다고 흥분을 한다. 다만 문제라면 그들이 다른 몬스터들이 무시할만한 루저들의 모임이라는 것...투지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지만 재능이 한없이 달리는 그들이 과연 노력만으로 우승을 거머쥘 수 있을까? 낙천적인 마이크조차 회의를 갖는 가운데, 그들은 초반 탈락의 위기에 놓이게 되는데...

 

 

 

 

 몬스터들이 대학에 간다라니...일단 설정만으로도 흥미를 유발한다. 도무지 이런 상상력은 어디서 나오는지, <몬스터 주식회사>에서 그들의 기발한 상상력과 설득력있는 캐릭터들에 완전히 반했었던 나는 그들이 겁주기 대원 전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말에 솔깃하고 말았다. 그래, 그들도 초짜인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그 전에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완벽한 고수가 되기까지 지난한 여정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니 말이다. 그것이 인간이건 몬스터건 간에... 그래서 감정 이입하면서 몰입해서 보게 된 <몬스터 대학> 일단 대학 시절을 되돌아보게 해준다는 점에 좋았다. 내가 다닌 학교와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이긴 했으나, 설레임을 안고 대학에 입학을 하는 것은 꼬마 마이크와 비슷했으니 말이다. 그땐 대학이라는 곳이 얼마나 커보이던지...물론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적응이 되고 보면 별다르지 않게 생각되지만서도. 그땐 나도 마이크처럼 대학 입학만으로 인생이 저절로 풀릴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마이크처럼 곧바로 현실을 직시할 수밖엔 없었지만서도,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것을 다 가진 듯한 그 기분, 나쁘지 않았지 싶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당신, 대학에 입학했으니...이제 본격적으로 어른들이 사는 현실속에 발을 담그게 된다. 대학생이 되었다는 것은 아직 어른이라고 하기엔 미숙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의 영역에 머무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그래서 현실의 거대한 벽에 부딪힌 두 명의 몬스터, 그들의 각자의 아킬레스건으로 고민하는 모습에 공감이 갔다. 천부적인 재능은 없지만 머리는 있는 마이크와 천부적인 재능만 믿고 한없이 게으른 설리...불공평한 인생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이기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플레이가 아니라 팀 웍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마이크는 결단력과 지식으로 무장을 해서 오합지졸인 팀원들을 닥달하기 시작한다. 재능을 믿고 만사태평이던 설리는 자신이 이 무능집단의 팀원이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랴...자신이 지금 속한 곳이 바로 그곳인 것을. 결국 한 팀으로 거듭 나게 된 <울지마까꿍>! 최후의 관문에서 그들은 극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장벽에 마주치게 된다. 마이크가 아무리 좋게 봐줘도 무섭다기 보다는 귀엽다는 점이었다. 노력으로도 없는 재능을 생기게 할 수 없다는 현실에 마주한 <울지마까꿍>팀의 최후의 선택은 ? 과연 우리는 재능을 넘어설 수 없는 것일까? 거기에 대한 답이 궁금하신 분들은 영화를 보시길... 왁자지껄 소동속에서 두 시간을 보내고 나면 픽사에서 내놓은 답이 떡하니 차려져 있을 터이니 말이다. 1편에 비해서는 낫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망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기자기하고, 공감이 가는 이야기에, 설득력있는 캐릭터까지...대학생활을 싱그러운 모습과 함께 그들의 진지한 고민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좋지 않았는가 한다. 다만 문제는 아이들보다는 어른들이 이 영화에 더 잘 공감한다는 것 정도?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과 교훈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스토리인데, 어째 어른들이 더 공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즉, 8살짜리 조카는 공부니 재능이니 하는 것에 전혀 감흥을 받지 못한 반면, 나는 줄곧 심각하게 주제에 몰입해서 봤다. 어쩌면 재능이니 꿈을 실현하는 과정들인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미 그 시절을 다 보내고, 기회를 다 놓쳐버린 어른들의 감상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쁘지 않은 전개고 결론이었다. 아이가 이해를 하건 아니건 간에, 이런 이야기에는 언제나 조금은 귀 기울여봐도 좋을만한 점들을 담고 있으니 말이다. 시끌벅적한 한바탕 성장극을 보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 적어도 지루할 새는 없다. <몬스터 대학교>를 간접탐방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고 말이다. 완벽을 기대하지 않으신다면 적어도 재밌게 즐기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추신--마이크와 설리 역의 빌리 크리스탈과 존 굿맨의 목소리 연기는 적절한 캐스팅이었지 않는가 한다. 목소리와 몬스터들의 완벽한 조합이라고 할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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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 세 아이의 아빠가 된 그루는 이제 더이상 악당이 아니다.  과거 세상에서 제일 가는 악당이 되기 위해 오로지 한길만 달려 왔다면 이젠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이 한 몸 부서져라 한길을 달려 가고 있는 그에게 예전의 음침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과거의 그라면 그런 자신을 도저히 상상하지 못했을 터이지만,  지금 아이들과 함께 하는 그는 나날이 행복하기 그지 없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한없이 다정한 그루를 본 동네 여자들은 호시탐탐 그에게 추파를 보내오지만, 그루는 그런 그녀들이 부담스러울 뿐이다. 그때 그 앞에 수상한 여자가 나타난다. 루시라고 자신을 나중에 소개하는 그녀는 다짜고짜 그를 납치해 이상한 곳으로 데려 간다. 그곳에서 그가 듣게 된 소식은 < 악당 퇴치 전담 >부서에서 그를 스카웃하겠다는 것이었다. 남극에서 연구중이던 앰플을 악당에게 탈취되었는데 그것이 사용되는 날에는 세계 평화가 위험하다면서, 그루만큼 나쁜 악당은 여지껏 없었기에 그야말로 악당을 잡는데 적격이라고 그들은 선언한다. 이제 자신은 아빠라면서 처음엔 단호하게 고사를 하던 그루는 자신이 계획한 잼 사업이 과연 자신에게 맞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결국 자신이 가장 잘 하는 일을 해보자 라는 심정으로 <악당 퇴치 전담> 부서의 스파이가 된 그루는 루시를 파트너로 맞이해 쇼핑몰에서 잠복임무를 시작하게 된다. 이제 그 둘이 해야 하는 일은 과연 그들이 찾는 악당은 누구냐 하는 것. 그루는 악당만이 가질 수 있는 직감으로 살사 & 살사의 주인장을 의심하지만, <악당 퇴치 전담> 부서는 그의 조언을 무시한다. 한편, 파트너로 함께 일하게 된 그루와 루시는 서로에게 점차 호감을 갖게 된다. 둘이 함께 일하는 장면을 보게 된 아그네스는 둘이 사랑하는 것이냐며 두 눈이 왕방울만해 지는데...


< 좋은 아빠는 보면 알 수 있다의 끝판 왕--공주 요정이 되어서 아그네스 생일을 축하해 주고 있는 그루 >



< 전편의 조연에서 주연급으로 급성장한 미니언들. 2편에서 우리가 기대해봐도 좋은 것은 미니언들의 활약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부터 티저 영상으로 꾸준히 2013년을 상기를 시켜 주던 수퍼 배드 2가  드디어 우리앞에 상륙을 했다. 귀여운 미니언들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대하기 충분했는데, 과연 이번에는 이들을 어떻게 활용했을지 궁금하기 이를데 없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렇게 조연들을 잘 활용할 수가 ~~라면서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이 몽글몽글 솟아 나게 하던 영화였다. 특히나 1편에서 미니언들의 등장 분량이 적다고 불평하셨던 분들이라면, 기대하셔도 좋지 싶다. 이 2편에서 못다한 한을 마음껏 푸실수 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좀 지루할 타이밍이면 장면 장면마다 미니언들이 반전이라고 할만한 모습으로 등장을 해주는데, 그들이 무엇을 하는가가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웃고 떠들고 오~~하면서 탄식을 하게 되는 것은 주로 그들 덕분이었는데, 작년에 본 <아이스 에이지>에서 스크랫의 등장이 종종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에 비하면, 이 <수퍼배드>2에서의 미니언의 활용은 적절하고 재치 있었으며 기발하지 않았는가 한다. 자신이 창조해낸 미니언이라는 캐릭터를 어찌나 자유 자재로 이용하던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거기에 달라진 그루가 책임감 있는 아빠로 성장한 모습이나, 최고의 악당이고자 했던 그루를 개과천선하게 만들었던 세 자매의 귀여운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그루를 이해하게 만들었고,  그루에게 이제 필요한 것이 아내라는 것을 금방 눈치채게 만들었다. 거기에 그루의 새로운 파트너로 등장하는 루시와 새로운 악당으로 등장하는 악당의 정체등...아이와 함께 볼 수 있는 애니로써, 비교적 무난하게 사건 사건을 연결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지 않는가 한다. 지루할 새 없이 봤다. 재밌었고, 많이 웃었다. 특히나 미니언들의 활약에는 눈을 뗄 수 없었다. 무엇보다 행복해지는 영화라는 것이 마음에 든다. 마지막 장면을 보고 있는데, 이건 반드시 3편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다행히도, 3편을 만들 여지는 얼마든지 있어 보인다. 2편을 보면서 다음 편이 나오길 고대하게 된다는 것은 적어도 이 편이 실패는 아니라는 반증이 아닐런지...아마도 3편이 나오기 전에 미니언들을 주연으로 한 <미니언즈>가 2014년에 나올 모양이던데, 참으로 미국 사람들, 알뜰한 것 하나는 알아줘야지 싶다. 사람들에게 먹힌다는 건 또 어떻게 얍삭빠르게 알아가지고, 그걸 가지고 무언가를 만들어 볼 참인가 보니 말이다. 하여간 누가 주인공으로 나오던지 간에 다음 편을 기대하게 만들던 애니...아이들과 함께 보실 영화를 찾으신다면 적극 추천하고 싶다. 이 영화는 한국어 더빙으로 봤는데, 나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야 뭐, 워낙 스티브 카렐을 좋아하기 때문에, 나중에 자막으로 한번 더 볼 생각이다. <오피스>의 마점장, 스티브 카렐의 그루를 놓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적어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행복하게 만드는 애니, 아마도 이런 맛에 슈퍼배드를 사랑하는 것이겠지 싶다. 그루의 활약이 계속되기를 빌어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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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여자가 되는 법 - 영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영국을 발칵 뒤집어놓은 괴짜 칼럼니스트의 여자 생태보고서
케이틀린 모란 지음, 고유라 옮김 / 돋을새김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받아들자 마자 나는 언제나처럼 표지 맨 앞 쪽 날개에 쓰여진 저자 소개말을 먼저 읽기 시작했다. 한눈에도 괴짜임이 분명해 보이는, 나는 보통 사람들과는 많이 달라요...라는 표정의 저자 사진과 그리고 저자의 이름이 케이틀린 모란이라는 것, 그리고 그 아래 주르르 펼쳐진 저자의 이력서. 그런데 첫 문장을 읽는 순간, 내 머리속에서는 의혹의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야 말았다. 그 문장은 바로 이것이었다. <1990년, 15세의 케이틀린 모란에게 친구라고는 단 한 명도 없었다.>는...이른바 그때 그녀가 수퍼 울트라 괴짜 소녀였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라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괴짜라고 해도 친구가 단 한명도 없을 수는 없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무리 괴짜라고 해도 괴짜 친구가 있기 마련이고, 또 그런 괴짜를 참아주는 정상적이면서 멍청한 친구도 한 명 정도는 있는게 정상이다. 아시다시피, 인간사회는 대개 이성적이나 합리적으로 돌아가지 않는 면이 있기 때문에, 언제나 조금은 넉넉하게 괴짜를 받아주는 그런 여유가 있는 법 아니겠는가. 해서 나는' 에이~~말이 안 되지, 어떻게 친구가 한 명도 없나, 아무리 책을 팔기 위해서라지만 과장이 심했네.' 라며 표지의 주장을 간단히 일축해 버렸다.


 그로부터 몇 분 뒤, 겨우 책 두어쪽 읽어 내려 간 후, 나는 그 표지의 말이 한마디 보탬도 섞이지 않은 사실이라는걸 알게 된다. 왜냐면 그 짧은 시간 안에, 나는 그녀가 진짜로 싫어졌기 때문이다. 놀라운 능력이었다.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을 몇 마디 문장만으로도 쉽게 정나미 떨어지게 할 수 있다니 말이다. 내가 그런 마당이니 그녀를 가까이에서 접해봤을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했을 것이라는 건 안 봐도 훤했다. 와~~정말로 이런 사람이 존재하긴 하구나. 만약 소설이었다면 어디서 이상한 캐릭터를 창조했다고, 이렇게 밥 맛없는 캐릭터는 존재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 책은  저자가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게 분명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초장부터 저자에게 완전히 정나미가 떨어지고 나니, 이제 문제는 그 다음을 어떻게 읽어 내려 가야 할까라는 것이었다. 그저 내가 이 책을 읽고 싶었던 것은 여자가 된다는 것이 대한 공감을 얻고 싶었을 뿐인데, 그건 고사하고 튀어 나온 것은 온통 정신 사나운, 평소에 정신줄 놓고 사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여자의 한도 끝도 없는 넋두리였으니 말이다. 내 자신이 여성이긴 하지만  진짜 여자답다고 하기엔 한 50% 부족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기에, 그런 나를 위해서 진짜 여자의 개념 정의와 진짜 여자가 되기 위한 조언을 얻었음 했던 것이 이 책을 읽은 이유였건만,그 단순한 바람이 이렇게 크나큰 고통을 가져다 줄 줄 그 누가 알았으리요. 재난에 버금가는 대참사였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라면서 리뷰를 쓰기 위해 하는 수 없이 꾸역꾸역 읽어 내려 갔는데, 슬픈 내 예감은 종내 틀리지 않아 첫 문장의 인상이 끝까지 쭈욱 이어지더라. 물론 뒤로 갈수록 그나마 참고 들어줄만한 이야기를 하긴 하지만서도, 처음 1/3에서 하도 호들갑에 오도방정에 난리 법썩을 떠는 바람에 그마저도 진중하게 들어주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초반에 확실하게 나를 보내준 덕분이다.


그래, 여자가 되는 법? 그거 어렵긴 하다. 여자로 산다는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건 비단 여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자체가 어려운 것이다. 여자건 남자건 간에...이 저자는 살아가면서 아무 것도 겪을 생각 없이 태어난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가는 매 순간이 놀람이고 고통이고 비극이고 재난의 연속인지 모르겠지만서도, 그것을 마치 여자라서, 여자인 관계로 살기 힘들다는 양 극도로 과장해서 이야기하는데 이건 아니지 싶었다. 아이로 태어나 여자로 성장해 가는 과정이 때론 놀랍고 당황스럽고 불필요 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긴 하지만, 그게 살아가는 과정인걸 어쩌랴. 우린 그렇게 태어나 성장해 죽어가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이 저자가 호들갑을 떠는 만큼 그렇게 고비 고비를 끔찍하게 넘기지 않는다. 무난하게 이해하고 적응해 간다는 것이다. 이 여자 혼자 극단의 나라에, 하루종일 조증인 상태로 지내는게 아닌가 싶던데, 왜 저자는 여자가 거쳐가야 하는 모든 과정들이 상상할 수 있는 극단의 최악이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이며, 여자로 산다는 것 자체가 재난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렇다보니 여자로 산다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저자의 호들갑에 공감이 되긴 보단 읽는 자체가 기분이 상했다. 똑같이 겪는 증상일텐데도, 공감에서부터 삐걱대니 거기서 무언가를 들을만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는 아예 접는 것이 좋을 성 싶었다. 또 그랬고 말이다. 분명 그녀는 자신을 모든 여성들의 대명사쯤으로 생각하는 듯했는데, 여자인 내가 말하는데, 우리 이렇지 않다. 그녀가 독특한 것이다. 그것도 안 좋은 쪽으로만...공감이 되지 않았던 예를 들자면 이런 문장들...라면서 문장을 옮기려고 보니, 안 하는게 낫겠다 싶다. 이런 리뷰에 굳이 써넣을만한 문장은 아닌 거 같아서 말이다. 뭐, 궁금하시다면 이 책 전체가 다~~몽땅 다~~진짜로 별로 공감이 되지 않았다고 보심 된다. 공감이 갈만한 문장들도 이 작가분이 어찌나 오바하면서 호들갑을 떨어대던지...짜증이 났다. 생리나 출산에 대해 그렇게 난리 법석을 떨어대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우린 그저 조용히 우리의 삶을 살아가도 별 문제 없는데 말이다. 내가 받은 인상으로는 이 저자는 이런 책을 쓰면 안 되는 분이 아니신가 한다. 일단 그녀가 별로 진짜 여자같이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그보단 <수퍼 울트라 괴짜 여자>라면 그녀에게 정확한 타이틀이 될 것이다. 어째 꼬리잘린 여우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자신이 꼬리가 잘렸기에, 다른 모든 여우들에게 꼬리를 자르라고 설득하는...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으시는 분들은 내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서 이 저자를 싫어한다고 오해하실 수도 있겠다 싶다. 분명 말하지만 나 페미니스트다. 이 책을 읽은 이유도 이 저자가 강력하게 페미니스트를 주장한다고 하기에 읽은 것이었다. 이효리의 솔직 당당함에 매력을 느끼고, 남녀 평등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여성계의 대모들에게 늘 존경을 보내지 마지 않는 나였기에 이 책의 주제에 당연하게 공감하리라 그렇게 짐작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 책은 선배 페미니스트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오랜 투쟁, 진실을 알리기 위한 헌신, 무엇보다 그들의 명쾌하고 선명하며 군더더기 없는 통찰력을 한순간에 저 아래로 추락시킨 것 같아서 심히 불쾌했다. 그러니 제발, 진짜 여자가 되는 법이라는 책의 제목이 이 책에 어울린다고 말하지 마라. 그건 여성에게 대한 모욕이며,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조롱이다. 하여간 이 저자가 영국에서 잘 나가는 칼럼니스트라는 사실에 놀랐으며, 이런 내용이 번역되어 나왔다는 사실에도 놀랐다. 좋은 책들이 많고 많은데, 왜 하필 이런 책이 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어서 말이다. 간만에 입맛 제대로 버린 책, 그것의 제목이 진짜 여자가 되는 법이라는 것은 또 뭔 아이러니인지...그런데 나, 이 책을 보고 알았다. 난 조증에 걸린 여자를 진짜로 질색한다는 사실을...조증보단 울증이 낫다. 그리고 이 여자를 참아주는 남성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드렸다. 여자들도 참아 주지 못하는 여자를 견뎌내주는 남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때론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아마도 그래서 지구에는 양성이 존재하는 모양이다. 같은 성에서는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들을 다른 성이 참아 주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아마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멸종을 피하게 된 이유중 하나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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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wn to the Sea with Mr. Magee: (Kids Book Series, Early Reader Books, Best Selling Kids Books) (Paperback)
Van Dusen, Chris / Chronicle Books Llc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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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어 두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리뷰를 쓰려고 보니 아쉽다. 그러나 어쩌랴. 그 책은 이미 조카집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누군가 자신을 들여다 보기만을 열심히 기다리고 있을 터. 나처럼 게으른 사람이 사진 몇 장 찍겠다고 조카집으로  출동한다는 것은 단지 상상만으로도 피곤해지는 일이므로, 하는 수 없이 단지 설명으로 대신해 보고자 한다. 사진과 비교하자면 그다지 명쾌하게 머리속에 들어오진 않을지 모르겠으나, 다시 말하지만 다른 수가 없음으로...


이 책을 산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나를 위한 책 한 권을 샀는데, 만원이 넘지 않는 관계로 배송비를 내야 한다는 말에 뭘 사지?  싶었는데 생각나는 책이 없는 것이다.  해서 이 참에 조카를 위해 책 한 권 사주자 하는 생각에 고르게 된 것이 바로 Down to the Sea With Mr Magee! 다. 이 책의 저자를 예전에 알았던 것도 아니고, 이 책의 제목을 알았던 것이 아닌데, 그렇게 짧은 시간에 이 책을 선택하게 된 데는 아마존의 폭풍검색의 힘이 컸다. 어찌어찌 눌러대다 보니 이 책이 나왔는데, 리뷰어들의 평을 들어보니 괜찮다는 말이 많아서 선택하게 된 것.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도무지 어떻게 이 책에 다다르게 된 것인지 아리송하기만 하지만서도, 조카의 책이라면 고민에 고민을 하는 내 성격에 비춰 보지도 않은 책을 선택하게 된 데는 그만큼 만 원의 압박이 컸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다. 그야말로 무언가 사야 된다는 절박함이 처음 본 이 책을 사게 했다는 뜻이다. 그런걸 보면 나 역시도 참으로 공짜를 좋아한다 싶다. 하지만 이렇게해서 또 책 한 권과 모르던 저자를 알게 된 것이 그다지 나쁘다는 생각도 들지 않으니, 우연히 알게 된 사람과 평생 우정을 나눌 수가 있는 것처럼, 책이라는 것에도 때론 우연, 괜찮지 싶다. 몸을 사리면서 까다롭게 굴지 않아도 좋은 때가 있다는 것이다. 하여간 이 책을 사게 된 쓸데없는 잡설은 이쯤해서 접기로 하고...그렇게 엉겁결에 사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나 혼자 흐믓해져 버린 이 책의 리뷰를 제대로 써 보기로 하면,내용은 이렇다.


잘 생겼다고 보긴 힘들지만 선량하게 생긴 맥기씨는 그의 작은 개 디와 함께 바다에 나가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어느날 아침 그들이 일찍 일어났을때 이미 그들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결정하고 만다. 도시락을 싸서 바다로 나가자고 계획을 세운 것이었다.아침 6시 32분에 계획을 세운 그들은 7시에 벌써 차에 올라타 부두로 향하기 시작한다.  재빨리 보트에 올라 바다를 향해 신나게 항해를 하는 둘, 보기만 해도 즐거워 보인다. 시원한 바닷 바람을 맞아가며 바다를 즐기고 있던 맥기와 디의 눈에 신기한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50명의 고래들이 떼로 모여서 아침식사를 하는 광경이었다. 고래들이 꼬리를 퍼득대면서 물보라를 일으키는 장광을 지켜보던 둘은 자신의 배 밑으로 검은 그림자가 어리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것은 바로 청년 고래 한 마리.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심심해졌던 그 젊은 고래를 장난할 거리를 찾다 맥기씨의 보트를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보트 아래로 살금살금 다가간 청년 고래는 주둥이로 보트를 밀어 올리면서 깜짝 쇼를 한다.  맥기씨와 디의 반응에 신이 난 청년 고래는 자신의 고래숨구멍을 이용해 보트를 하늘로 올리게 되는데...과연 맥기씨와 디의 운명은?


일단 이 책의 장점은 익살맞으면서도 다정하다는 것이다. 단지 바다가 좋아서 보트를 타고 나간 인간 하나와 개 한마리가 장난을 좋아하는 고래와 마주치게 된다는 설정에서 아무도 크게 피해를 입지 않고 그저 소동으로 끝이 났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여기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다들 가만히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바다가 좋아 아침에 이미 모험을 하러 나가기로 결정한 맥기씨과 그의 충실한 개 디나 그렇게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장난을 치고 싶은 고래를 보면 그렇다. 종도 크기도 사는 곳도 다른 셋은 딱 한가지 면에서 닮았다. 삶을 재밌게 살겠다는 의지(?)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아침 나절에 바다에서 그렇게 충돌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대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는 고래의 장난은 과연 어떻게 끝이 났을까? 결론을 보면서 참으로 이 책은 동화책 답군 했다. 동화작가다운 설득력있는 상상력이라서 말이다.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절대 벌어질 수 없는 일이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의 묘미란게 바로 그런거 아니겠는가. 벌어질 수 없는 일들이 꼭 벌어질 수도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갖는 시기라는 것. 해서 바로 그런 장면들이 이 책을 동화책으로, 그리고 이 작가를 동화작가로 만든게 아닐까 싶었다. 설득력있는 상상이라는 것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능력은 아니니 말이다. 하여간 나는 대단히 만족하며 읽었다. 조카는 글쎄...요즘 만화에 빠져 사는 조카는 이 책이 동화책이라는 사실에 이미 썩 내켜하지 않는 듯 했으나, 적어도 책 내용 자체에는 이의가 없는 듯했다. 집에 가서 혼자 찬찬히 살펴 보다 보면 이 책의 매력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바람이고. 어쩜 이미 책 꽂이 한 켠에 세워져 먼지만 켜켜히 쌓게 될 운명을 기다리고 있는 잊혀진 존재가 되어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다. 좋은 책을 만나는 경험은  아무리 짧은 순간이고, 또 기억에서 잊혀진다고 해도 어딘가에 남아 있는 거라고 생각하니 말이다. 조카와 함께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시간을 나에게 선사했으니 이미 돈 값어치는 충분히 했다고 본다. 어쨌거나 첫 책부터 나에게 호감을 산 이 작가, 다른 작품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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