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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올리비에 여행 - 수채화판 실크로드 여행수첩
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 프랑수아 데르모 그림, 고정아 옮김 / 효형출판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이번엔 그림을 그리는 친구와 함께 예전에 갔던 길을 다시 떠났다.
도보여행때 우연히 만나 우정을 나누었던 사람들을 만나겠단 희망을 품고서...
여행을 끝낸 뒤 그는 말한다.
<"이번엔 자동차로 다시 1만 2천킬로미터 구간을 여행했는데 어땠습니까?"라는 가상의 질문에 대해 진심을 다해 대답해보려 한다.허세나 위선을 떨지 않고, 실망감을 희석시키려 하거나 ,남에게 터무니없는 것을 믿게 하려고 꾸미지도 않고, 더욱 냉철하게,이번 여행에서는 실망감을 느꼈다고 고백하고 싶다...어쨌거나 '다른 사람들처럼 여행하는 것'은 내 취향에 전혀 맞지 않았다.모터가 달린 차가 싫고,주유소가 싫고, 기계, 속도,소음,무관심과 익명성이 떠도는 커다란 도로가 싫다.제발 내 말을 믿어달라.내가 애정을 갖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그런 여행은 내 삶의 리듬도 내 세상도 아니다.숨을 쉬고 살기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은 느림이고, 무엇이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고,풀길을 따라 어슬렁거리며 몽상에 젖는 것이다.찌르레기의 비행,어릴 때 먹었던 솜사탕처럼 뭉게뭉게 짙게 깔린 산등성이, 자기 일을 하느라 바쁘게 내 앞을 지나가는 전갈--하물려 전갈마저--나처럼 풀밭위를 돌아다니는 방랑자.이런 모습들이야말로 내 마음에 드는 것이다.내 삶의 리듬은 과거의 리듬이라고 할 수 있다." >
마지막 장의 이 말을 읽고 나자 비로서 숨이 좀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그는 알고 있었다. <나는 걷는다>가 벤츠급이라면 이 책은 스카이 콩콩이라는 것을.
이 책은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책이 아니다.
그보단 욕심 없어 보이는 아름다운 삽화를 그려준 화가 프랑수아 데르모의 책이다.
그는 그저 데르모를 안내해준 가이드에 불과해서, 편한하고 동행이 있는 이번 여행에서 그가 얻은 것이라곤 과거 길동무들을 만난 감격스런 해후를 했다는 것이 전부였다.
내가 그나마 안도한 것은 62세의 나이에 도보 여행을 나설 정도로 자아가 깨어 있던 올리비에가 그 책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냉정한 현실감각은 잃지 않았더라는 점이었다.
가보기 전까진 그 길이 어떨 지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아마 올리비에도 자신의 취향과는 전혀 맞지 않을 것이 분명한 이 여행을 떠난 것이었을 것이다.
가보니 별로였다.
여정이 별로니 당연히 책 내용도 볼것이 거의 없다.시간을 낭비했고, 실망 했으며, 자신이 과거에 싫어했던 것은 여전히 싫어한다는 것을, 무엇보다 자신은 고독이 맞는다는 것을 서글프게 인정해야 했을 것이다.
그래도 좋다.그가 자신을 속이지만 않는다면 ,그가 가진 연륜의 지혜로 독자를 속이려 한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그 나이에도 여전히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감추려 들지 않는다면, 내게 그는 여전히 <나는 걷는다.>를 쓸 만한 사람으로 기억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