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스리스와 히컵의 활약으로 버크 마을에 평화가 찾아온지도 오래, 이제 20살 성년이 된 히컵에게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겨난다. 투스리스와의 활공 능력은 나날이 발전하고,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여친이 된데다, 마을에서 존경까지 받고 있는 이 마당에 무슨 고민이 있을까 싶지만서도, 그의 고민거린 바로 다름아닌 그의 아빠. 버크 마을의 족장인 스토이크는 이제 그 무거운 임무를 히컵에게 물려주겠다고 안달이 난다. 날아 다니기도 시간이 모자란다고 항변하는, 버크 바깥 세상을 날아 다니면서 지도를 만드느라 바쁜 히컵에겐 마을의 족장이라는 명함이 족쇄이자 그나큰 무게로 다가온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도 한번 고집을 세우면 마이동풍인 스토이크는 아들의 말을 이번에도 듣지 않으려 한다. 그런 소소한 마찰로 사이가 안 좋아 밖으로 나돌던 히컵은 이상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드래곤 헌터라고 말하는 그들은 드라고를 위해 드래곤을 잡고 있다면서, 버크의 드래곤 모두는 이제 드라고의 차지라고 말한다. 그 말을 전해들은 스토이크 역시 드라고의 악행을 들려주면서 그를 얕잡아 보지 말것을 주문한다. 드라고란 말에 무조건 전쟁을 선포하는 스토이크에게 먼저 평화를 제안해보자고 말하는 히컵, 그는 드라고는 말이 먹히는 상대가 아니라는 아빠의 충고를 무시하고 드라고는 찾으러 투스리스와 나선다. 그리고 이어 만나게 된 이상한 드래곤 무리들...처음엔 드라곤의 일당인줄 알았던 히컵은 그 드래곤 라이더가 자신의 엄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알고보니 그녀의 엄마 역시 드래곤과 평화를 주장하던 화평파. 결국 자신의 말이 먹히지 않자 드래곤의 편에 서길 택해 그들의 왕국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20 년만에 난데없이 엄마를 만나게 된 히컵은 비로서 자신이 누구를 닮았는지 깨닫게 된다. 감격스런 모자 상봉을 뒤로하고, 이제 드라고를 상대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버크 마을 사람들. 과연 히컵 가족은 드라고를 물리칠 수 있을 것인가? 드라고는 드래곤을 제압하기 위해 알파 공룡을 데리고 오는데...



4년동안 기다려온 드래곤 길들이기 2 ! 오랫동안 기다렸다는건 알았는데 벌써 4년이나 지났는가 싶고. 4 년이나 지났는데도 여전히 드길1편의 감동이 생생한 것을 보면 명작의 감동은 영원하지 싶다. 오랫동안 기다려온만큼 실망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컸었는데, 일단은 합격점이다. 1편만큼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실망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 무엇보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속도가 1편과 비슷한 것이 참으로 고맙더라. 이야기를 성급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지루하지도 않게 차분차분하게 풀어가고 있던데, 그건 아마 이야기 자체에 자신감이 있어서일 것이다.  몇 달 전 <리오2>를 보면서 무엇보다 속도에 실망한 나로써는 전작과 그다지 차이나지 않는 속도감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리오2는 여기 저기 조급한 흔적이 뚜렷해서, 별로 재밌지 않은 이야기를 포장하려고 애를 참 많이도 썼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해서 4년간의 차이가 남에도 전작의 후속작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던 드래곤 길들이기 2는 연작으로써의 매력을 제대로 살리고 있었지 않는가 한다. 만약 후세들이 나중에 드래곤 길들이기를 본다면 그들이 4년이나 차이나는 형 동생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할 수고 있겠다 싶을 정도로. 함께 만들어진 작품으로 알 정도로 다르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것이 드래곤 길들이기 1에 감동 받은 사람들에겐 참으로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그것을 만든 사람이 그것을 계산하고 한 것이든 아니든 간에 잘한 연출력이지 싶다. 비유를 하자면 같은 장인에게 만든 작품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명성이 퇴색되지 않은 전성기의 장인의 솜씨를 보는 듯해서 좋았다는 뜻이다.


거기에 새로운 서사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죽은줄 알고 있던 엄마의 등장, 성년으로 가는 통과의례 과정에 서 있는 히컵의 불안,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줘야 하는 때가 왔다고 판단한 아버지의 무리수와 그에 당연히 따르는 갈등,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따뜻한 동료, 귀여운 투스리스의 각성, 말이 아닌 행동으로 설득시켜 나가던 버크 마을 청년들의 행동력까지...새로운 볼거리가 많다는 것이 좋았다. 거기에 눈을 호강시키던 수많은 드래곤 무리들의 화려한 영상에 4DX로 관람했더니 알게 된 비행감까지... 신나게 즐겼던 한 판 영화가 되었다고 보심 되겠다. 거기에 어떤 각도로건 귀엽기만 한 투슬리스의 모습이라니,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극중 한 사람이 비극적으로 퇴장을 하게 되었다는 것과 성장한 히컵이 앞으로 어떤 활약을 보여줄지 하는 기대보단 더이상 귀엽지 않겠구나 싶어 이래저래 아쉬움이 남더라는 것. 좋아하는 캐릭터가 죽으면 일반적으로 가까운 이웃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때만큼 기분이 다운되는데, 이번에는 중요한 캐릭터가 사라지는 바람에 기분이 안 좋았다. 그의 호방한 모습을 이젠 다시 못 본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워서. 거기에 족장이 된 히컵이라니...과연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가 될지 상상이 안 된다. 과연 어린아이와 함께 볼만한 만화로 나올만한 이야기가 있을런지 노파심이 생긴다. 그럼에도, 드래곤 길들이기 3을 기대하게 되는 이유는 투스리스 때문이다. 과연 그의 성장와 능력은 어디까지일까? 그리고 나이트 퓨리 종족중에서 살아남은 것은 투스리스가 유일한 것일까? 그게 참 궁금했다. 그것을 다음편에서 보여준다면 미소를 지으면 내 달려가지 않을까 싶은데, 모르겠다. 다음편에서 그런 것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될지는...하여간 결론은 볼만했어요. 재밌었답니다. 역시나 투스리스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아요. 라는 것이 되겠다. 다음편이 빨리 나와주길 고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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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소시오패스 - 차가운 심장과 치밀한 수완으로 세상을 지배한다
M. E. 토머스 지음, 김학영 옮김 / 푸른숲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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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다 저렇다 말만 많을 뿐 정확히 그 실체가 잡히지 않는 소시오패스에 대해, 소시오패스 자신이 우리는 이렇다! 라고 알려 주는 책. 과학자들의 이런 저런 관찰에 근거한 추측이 아니라, 본인의 경험치에서 나오는 실전서라는 점에서 명료함이 이 책의 장점이다. 소시오패스에 궁금한 점이 많았던 나로써는 일거에 궁금증이 싸악 해소되는 깨달음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했는데, 이러저러한 심리학서를 읽으면서도 뭔가 미진해, 무언가 빠진 것 같다는 느낌을 이 책을 통해 해소했지 싶다. 내가 그동안 잘 모르겠다고, 명확하게 이해가 안 간다고 하던 것도 무리는 아니더라. 왜냐면 소시오패스를 연구하는 심리학자들 역시 소시오패스에 대해 막연한 데이타만 나열하고 있었을뿐, 정확한 실체는 몰랐던 것 같아 보이니 말이다. 

 

특히나 나는 그간 소시오패스가 보통 사람과 다른 일련의 특징들이 존재할뿐, 자페아처럼 극적으로 다른 존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는데, 작가의 말을 들어보니 자신들 역시 그렇다고 한다. 그러니까, 자폐아가 마음 맹인 것처럼 그들은 일종의 도덕맹으로, 인간의 도덕심이나 양심이라는 것이 천부적으로 내재해 있지 않다고. 그게 자신에게만 해당하는게 아니라, 타인이 그렇다고 해도 경악하거나 막으려 하지 않는다니 적어도 공정하긴 하다 싶다. 그들의 성향이 그렇다고 인정을 하고나니,  우리가 " 아니, 인간이 어떻게 그럴수가~~! " 라면서 혀를 차는 대부분의 사건들이 갑자기 확 이해되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우리 보통의 인간과 사고체계 자체가 완전히 다른 존재들이라서, 같은 인간이라는 선상에서 두고 바라보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양심을 따르거나, 거짓말을 부끄러워 하거나, 폭력적인 것을 두려워 하거나, 미래를 계획하거나, 자신의 한 행동을 두고 후회하는 일은 없다고 하니 말이다. 무엇보다 소시오패스들이 폭력이나 위험에 도전하는 성향이 있으며, 그것을 통해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개의치 않는다는 것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난 적어도 인간이라면 자신의 목숨 정도는 아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극단적인 상황을 즐기고, 그것을 위해선 무엇을 건다고 해도 아깝지 않다고 하니, 확실히 소심한 보통 사람들하고는 거리가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현재 성공한 변호사이자 촉망받는 법학 교수인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법조인들이나 금융종사자들, 대기업 CEO나 정치가들 사이에 소시오패스가 많을 것이라고 추측 한다. 그것도 밑바닥이 아니라 대부분 성공한 사람들일 것이라는 것이 그의 진단. 양심이 없고 도덕이나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며,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상황을 자유자재로 조정하고 통제하는 것에 희열을 느끼며, 이간이나 경쟁을 좋아하고, 폭력성향이 농후하며,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는 누구를 희생시킨다고 해도 --가족이라고 해도--꺼리지 않고, 치밀한 수완가에 위험을 기꺼이 껴안는 그들의 성향 자체가 성공 하기에 적당한 조합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보통 사람들과 다른 자신들의 성격을 성적인 性的 매력으로 탈바꿈함으로써, 주변 사람을 성을 무기로 쉽게 쥐락퍼락 조종하는 자신감이 충만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이 책을 보고 알았다. 소시오패스임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지표로 성에 대한 정조 관념이 희박하다는 점( 그게 무엇?) 과 문란 ( 상대나 상황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다는 점을 꼽던데, 수긍이 가는 말이었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보통 사람들은 타인의 소시오패스 성향을 알아차리기는 어렵다고 한다. 그들 자신이 나서서 밝히지 전까지는 말이다. 왜냐면 우리가 보기에 그들은 그저 주변에 특이하고 수완이 좋은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질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니 예전에 <내가 그림이 되다.>라는 책에서 루시안 프로이드가 카사노바를 가르켜 " 그는 소시오패스였군!" 했다는게 생각났다. 얼마나 정확한 통찰이란 말인가. 진실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능수능란한 사기꾼이자 바람둥이로써, 그가 악랄했던 만큼 치명적인 매력을 지녔을 것이라면서 사람들에게 로망이자 영웅처럼 떠받들여지고 있는 지금, 그가 어딘가 이상한 사람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찬사와 경외하는 소리에 묻혀 제거 되기 쉽상이다. 그런데 소시오패스의 말을 들어보니 그는 단지 성공한 소시오패스의 전형적인 예일 뿐이라는게 분명하더라. 과거의 예를 봐도 그러하니, 요즘에도 우리가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어쩜 당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우리는 절대 그들을 알아볼 수 없다. 우리에겐 그들을 알아차릴만한 유전자가 원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소수이긴 하지만 보통의 인간과는 분명히 다른 자질을 타고 태어난 사람들의 집단으로, 소시오패스는 어렸을때부터 자신을 교묘하게 숨기는 연기를 하면서 살아간다고 한다. 자신의 본능을 그대로 드러냈다간 일치감치 배척될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없는 사회성을 주변을 보면서 열심히 습득해 연기한다고. 그러나 종종 경악할만한 사건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름으로써, 사회 뉴스면으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는데, 상황이 어떠냐에 따라서 그들은 극단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아서 생기는 일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자신들은 연쇄 살인범인 사이코패스완 다르다고 주장하는 저자는 소시오패스 역시 인간의 한 종임을 이해해달라고 간곡하게 전한다. 다르긴 하지만 잘 다루면 치명적으로 위험한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또 분명히 그들의 자질이 필요한 곳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하지만 알아는 두라고, 소시오패스가 어떤 사람인가 라는 것을. 그리고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무리 그나 그녀가 자신을 잘 숨긴다고 하더라도, 단서를 흘릴 수 밖엔 없다고 하니 정색하고 곰곰히 따져 보라고 한다. 그들의 잔인하고 도를 넘는 농담이 농담이나 허세가 아니라 진담일 수도 있다고 하니 말이다. 예를 들자면, 과거 마이크 타이슨이 자신의 전처의 폭행 혐의를 묻는 기자의 말에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남을 조종하길 좋아하고, 거짓말을 잘 한다고. 그리고 복싱 경기 도중에 상대 홀리 필드의 귀를 물었다. 상대의 귀를 무는 것이 굉장히 드문 일이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종종 소시오패스들은 아무런 원한이 없어도 그런 상상을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시길. 상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실천에 옮기기도 한다는 것을 말이다.

 

소시오패스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나, 정말 이상한 사람들에게 당해서 정체를 확인해 보고 싶다시는 분들이 읽으시면 좋을 듯...이보다 소시오패스의 성향에 대해 명쾌하게 분석하고 있는 책은 찾아보기 힘들 것 같으니 말이다. 저자 자신이 소시오패스 전문가라는 사람들조차 우습게 보던데--그거 아니거든? 넌 우리를 잘 모르고 있는 거거든? 하면서--그렇게 보자면 인간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혀 주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무엇보다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한다. 이런 고백서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인간에 대한 이해가 풍성해지지 않을런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난 우화가 개구리와 전갈에 대한 이야기였다. 강을 건너고 싶어하는 전갈을 위해 친절한 개구리가 나선다는 이야기. 나를 찌르면 안 돼, 라고 개구리는 다짐을 하고, 전갈은 약속을 했지만, 강은 다 건너기 전 전갈은 개구리를 쏜다. 아니 왜? 죽어가면서 이유를 묻는 개구리에게 전갈은 말한다. 왜냐면 그게 바로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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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센던트
카우이 하트 헤밍스 지음, 윤미나 옮김 / 책세상 / 2014년 1월
평점 :
절판


재작년 영화를 먼저 접하고 나서 책으로 만나게 된 케이스. 영화를 보면서 이 작품은 책이 더 좋지 않을까 싶었는데, 읽어보니 역시나 그렇다. 영화를 먼저 봤기에 망정이지, 책을 먼저 보고 나서 영화를 봤더라면 원작을 못 살렸다고 실망할 뻔했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어울리지 않는다.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아내가 알고보니 그간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더라, 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남편 역에 조지 클루니가 연기를 했는데, 아시다시피 그의 비주얼이 바람난 남편으로 설득력 있어도 오쟁이 진 남편으론 아니질 않는가. 보는 내내 저렇게 좋은 남편을 두고 바람이 났다는 끔찍한 아내가 이해가 안 가서 고개를 갸우뚱 했었는데, 책을 보니 단박에 이해가 간다. 설득력에 있어서만큼은 책이 더 나았다는 말씀. 인물을 설명하는 것이나 자연스러운 전개, 인물들 간의 충돌 등도 책이 훨씬 더 자연스럽다. 영화속 배우들의 연기가 딱히 부족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왜 실제로 보여주는 것보다 머리속으로 상상하는 것이 더 그럴듯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그럴듯해 보이는 이유를 들자면, 일단은 아내의 모습이 책 속에서는 이런 저런 설명들을 통해 완벽하게 그려지는 반면, 누워있기만 한 아내의 과거를 통해 추리를 해야 하는 영화속 모습속에선 아내가 비교적 긍정적으로 그려질 수밖엔 없었다는 것이 설득력을 반감시키고 있지 않았을까 한다. 현실주의자 남편과 쾌락주의자 아내의 조합이라는 시한폭탄 같은 부부 사이를 책 속에서는 잘 보여주고 있었던 반면, 영화속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더라는 것이다. 왜냐면 바람을 피우긴 했지만 그래도 아내가 비교적 멀쩡한 사람 같아 보였으니까. 착한 아내와 착한 남편이 문제를 일으킨다는 설정은 아무래도 관객들을 설득시키기에 부족하다. 왜냐면 이 세상에는 나쁜 남편과 나쁜 아내들이 넘쳐 나기에 그들의 불협화음이 쉽게 이해되는 반면, 좋은 아내와 남편의 경우는 왜 굳이? 라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아무리 이혼이나 불륜이 흔하다고 해도, 부부가 다들 결혼에 대해서만큼은 노력할만큼 노력하고 , 인내할만큼 인내한다는 것이 사실 아니겠는가. 해서 책 속에서 입체적으로 묘사된 아내와 남편, 그리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비로서 이야기가 딱 맞아 떨어진다. 도저히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말이다. 

무엇보다 작가의 자신감이 대단한듯 싶다. 군더더기없이, 집중력도 흐트러지는 법 없이 끝까지 사람들의 내면을 독자에게 설명하는데, 억지스러운데가 조금도 없다. 보통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과장하게 되거나 공감이 가지 않는 허황된 이야기를 지어내게 마련인데, 이 작가분은 도무지 그런 기색이 없더라. 다른건 몰라도 작가로써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태어난 분 아닌가 싶다. 첫번째 장편 소설이 이 정도라면 다음편을 충분히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싶을만큼 대단한 통찰력이던데, 종종 궁금하다니까. 어떻게 이런 작가가 탄생하는지 말이다. 타고난 재능일까, 노력일까, 아니면 열정인 것일까, 작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도대체 당신은 어떻게 컸냐고...어떻게 컸길래 이런 이야기의 직조가 조금도 힘들어 보이지 않는 것이냐고.

 줄거리는 이미 영화를 통해 충분히 들으셨을테니 생략하기로 하고, 영화를 보신 분이라고 해도 책을 읽으셔도 좋지 않을까 한다. 이런 작품은 줄거리보단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시키고, 작가가 주인공을 통해 생각들을 피력해 나가는가가 중요하기 때문에, 줄거리를 안다고 해도 책을 읽는 재미가 반감되지는 않을 듯하다. 물론 처음 읽는 것이라면 어떻게 나아갈지 조마조마하면서 지켜보는 재미가 있을테지만서도...일류 여류 작가의 탄생을 알린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듯한 책으로, 이 책을 읽고 나니 하와이에 가고 싶어졌다. 작가가, 여기는 천국이 아니라고, 여기에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점은 다르지 않아, 인생이 가져다 주는 갖가지 고통과 슬픔과 고뇌에 면죄부를 받는건 아니라고, 자연 경관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그것을 중화시키지는 못하며, 때론 아름다운 자연 경관마저도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눈길을 사로잡지 못한다고, 했다고 해도 말이다. 아마 내가 하와이에 산다고 해도 맷 킹처럼 밖에 바람이 부는지 파도가 치는지 알지 못한채로 하루 하루를 보낼 가능성이 120%일 것 같기는 하지만서도, 그럼에도 부러움을 감출길이 없더라. 작가에게 익숙해져서 그저 한낱 배경이 되어 버린 하와이가...비극을 읽으면서도 배경에 눈길이 돌려지고 그것에 위로가 되는 것도, 하와이에 산다고 해도 일상이 천국이지는 않다는 작가의 자조가 엄살처럼 느껴지는 것도 다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보면 환상이야말로 정말로 깨기 힘든 편견인 듯 싶다. 어느정도는 진실이 담겨져 있어 듣는 사람들이 남모르게 수긍하게 되는 편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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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여자 코미디언인 에이미 포울러가 목소리 출연한다는 말에 솔깃했다가, 칠면조가 주인공이라는 말에 과연 칠면조가 귀여우면 얼마나 귀엽겠어? 거기에 미국 추수 감사절 이야기라니, 뭐 공감이 되겠어 라는 생각에 기대를 접었다가, 그 후에 들려오는 이야기로 재밌다는 후기담이 솔솔 들려 오길래 정말로? 라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보게 된 영화. 물론 여기엔 터키 예고편을 본 조카의 강력한 권고가 한 몫을 했다. " 재미 없대요" 라는 나의 초치는 말에, " 재밌어 보이던데, 재미없다고 해도 난 볼거여요", 라고 정면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는데 넘어갔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그리고 꼭 보여준다고 철썩같이 약속해온 트랜스포머 4 를 단지 입소문에 형편없더라는 말에 재미없다면서 안 보여준 과거가 있음을 우리 둘 다 잊지 않고 있었기에, 분노한 조카와 제발 저린 나 사이에 합리적인 중재처가 필요한 시점이긴 했다. 하긴 보기도 전에 재미 없다고 거두절미하고 못 보게 하면 얼마나 서운하겠는가. 그래서 결론은? 역시나 보고 나서 말을 해야 한다는 것. 보기 전에 미심쩍었던 것들이 보고 나니 확 정리가 되면서 결국 재미는 영화라는 것이 증명되었으니 말이다.  서론이 길어지는 관계로, 대충 이야기를 정리해보자면...



그렇다. 천진하게 나 어쩌다 특공대 가입하게 된 거임? 하고 묻고 있는 이 칠면조 녀석이 바로 레지이다. 태어날때부터 뭔가 다른 칠면조와 달랐던 그는 다른 동료들에게 옥수수를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주인이 먹이를 많이 주는 이유는 추수 감사절날 잡아먹기 위해서라고 호들갑을 떨면서 알려주지만 동료들은 마이동풍이다. 오히려 유언비어를 날포한다는 이유로 왕따 신세가 된 레지는 추수 감사절 시즌이 찾아오자 재수없이 떠벌린 죄로 희생양이 되어 동료들에 의해 등떠밀려 나가게 된다. 이제 나는 죽었구나 하는 그 순간, 레지는 자신이 추수 감사절의 특별한 이벤트로 대통령이 살려주는 한마리의 칠면조에 당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길로 백악관으로 들어가 화려한 삶을 살게 된 레지는 자신이 드디어 팔자가 폈다고 안도한다. 하루가 다르게 백악관 생활에 적응해 나가던 그에게 어느날 불청객이 찾아온다. 제이크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칠면조는 ' 위대한 칠면조님' 께서 레지를 찾아 칠면조 구하기 프로젝트에 나서라는 계시를 내리셨다면서 레지를 납치한다. 백안관의 유유자적한 삶에 완전히 만족하고 있던 레지는 제이크의 말에 펄펄 뛰면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만,  결국 그와 함께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는 모험에 나서게 된다. 그들의 목표는 첫번째 추수 감사절에 칠면조를 먹는 전통을 없애는 것. 과연 그들은 수백만의 동료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까? 레지는 자신은 절대 특공대 과가 아니라면서 칠면조를 잘못 골라왔다고 주장하는데...

일단 칠면조들이 이렇게 귀여울 수가 있다니, 하면서 재밌게 본 영화가 되겠다. 식상하진 않을까 내진 유치하지 않을까 했는데, 적어도 그 두가지 악습에서는 자유로워 보인다. 거기에 이야기도 억지스럽거나 하지 않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이야기라를 생각이 들게끔--특히나 아이들에게는--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꾸며댄 것이 주효했다. 이야기가 하도 자연스럽게 흘러가서 어떻게 이런 상상을? 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더라. 그냥 원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플어놓는 듯한 분위기. 바꾸어 말하면 그만큼 이야기에 자신이 있었다는 말씀. 거기에 캐릭터의 성격이 분명한것도 마음에 든다. 똑똑하지만 소심하고 별난 레지와 막가파에 2분의 기억력을 지녔지만 누구보다 특공대스러운 제이크, 거기에 1681년 선조 칠면조들의 영리함과 가족애라니...감동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더라. 미국 명절의 전통을 그린 것이라서 조금은 낯설지 않을까 했는데, 이야기를 이해하는데는 별 상관없었지 싶다. 물론 미국 사람들이라면 명절과 관련해서 더 의미있게 보아졌겠지만서도 말이다.

해서 듣도 보도 못한 애니라고 의심하던 내가 부끄러워지던 작품으로, 수작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영화관에 봐서 보기에 돈 아깝지 않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작품 정도만 되어도 영화관 나들이를 망설이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아마도 이런 작품 수준까지도 만든다는 것이 쉬운 것만은 아니겠지. 하여간 기대하지 않고 보았는데, 재밌어서 더 호감을 갖게 된 터키, 칠면조들의 요절복통 호들갑 만땅인 가족 영화라는걸 기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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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물어 가는 여름/ 아카이 미히로


  유괴범의 딸이 유명 신문사에 취직이 내정된다. 이를 알게 된 경쟁사는 큰 일이나 난듯 이를 문제 삼고, 이에 당사에서는 20여년전에 일어난 사건을 재조명해보기로 결정을 한다. 몇년전 큰 사고를 일으켜 한직으로 물러난 전직 기자 가지는 사건을 알아보라는 상부의 지시에 이유를 몰라한다. 다른건 몰라도 이제와서 사건의 진상을 밝혀봤자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 때문이다. 무엇보다 유괴범이 몸값을 들고 달아나는 과정에서 사고로 죽어 버리는 바람에 그 사건에 어떻게 발생했고, 아이는 도대체 어떻게 한 건지 알길이 없었던 터였다. 당시 가장 크게 사건이 이슈화된 것은 유괴된 신생아의 행방을 결국 알아낼 수 없었다는 것때문이었다. 과연 당시 유괴된 아이는 모두의 추측대로 살해된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아이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일까?



범죄자의 딸--그것도 파렴치하기 짝이 없는 유괴치사 범인의 자식--을 자신들의 체계속에 너그럽게 포용한다는 착한 척하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마지막까지 끌고가던 다분히 감상적인 톤이 두드러지던 추리 소설이다. 무엇보다 가히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사건의 실상을 풀어내던 기자 가지의 기지가 놀라웠다고 해야 하나. 쓴웃음이 난다고 해야 하나, 거의 아무런 단서도 남아있지 않는데도, 그저 사람들의 반응만으로 사건을 뚝딱뚝딱하고 풀어낸다는 것에 혀를 차고 말았다. 충격적인 반전을 위해 사건을 만들어낸 듯한 인상이 짙다는 것도 이 책에 대한 호감을 반감시키고, 사건에 관련된 아들딸들이 나중에 아는 사이가 되어 만난다는 것도 너무 작위적이다. 세상이 좁다고 해도 그렇게 좁을리는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자연스런 전개를 기대하시지 않고 집어드신다면 그럭저럭 읽힐만한 퀄리티. 하지만 인간에 대한 통찰이나 흥미진진한 전개 뭐, 그런 것은 기대하지 마시길...



 ★★★☆☆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프리모 레비


 

프리모 레비의 책을 읽고 한번이라도 감동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색하고 기다렸을 책. 이 책을 보면서 비로서 난 그가 왜 자살을 택할 수 밖엔 없었을지 이해하게 되었다. 거의 강박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유대인 학살에 정신을 빼앗기고 사시는 듯 하던데, 과연 인간이 다른 인간을 성토하면서 얼마나 오랫동안 제 정신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는가. 난 그가 몇 권의 책을 통해 그의 원한과 고통과 분노와 애닮음을 어느정도는 털어내셨을 거라 생각 했었는데, 이 책을 보니 오히려 그 도가 점점 심해졌던 것이 아닌가 싶더라. 무엇보다 그 특유의 초연함을 잃은 것 같아 안타까웠다. 어떤 인간도,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남을 미워하면서 살아갈 수 없으니 말이다. 그건 정신이 피폐해지는 일이고, 거기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점에서 다른 무엇보다 파괴적이다. 그가 자신을 아우슈비츠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것은 결국 죽음밖에는 없었겠구나, 싶어 그가 가여웠다. 그가 모든 것을 뒤로하고 이젠 평화를 찾으셨기를 ....



 ★★☆☆☆  탐정 매뉴얼/제더다이어 배리


 갑자기 내가 난독증에 걸린줄 알았다. 읽기가 하도 힘들어서. 다른 책을 읽을때는 멀쩡하던 해석 기능이 이 책을 들기만 하면 멈춰 버리는 마법에 걸린게 아닌 이상, 이 책을 재밌다고 하는 사람들을 난 믿지 못하겠다. 왜냐면 재미는 커녕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쩔쩔 매야 했기 때문에. 딱 초반 몇 페이지는 흥미를 끌어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분명 앞으로 나가긴 하는듯한데, 거의 제자리를 맴맴 도는 듯한 전개가 책 읽는 것을 끔찍하게 만들고 있었다. 지루하다는 말은 이 책에는 오히려 과분한 단어이다. 지루하다는 것은 그나마 어떤 맥락이라도 있다는 뉘앙스가 있으니 말이다. 두서없고, 횡설수설에, 산만하고 뜬금없으며, 이상한 탐정의 나라에 온 듯한 현실성 없는 이야기는 내가 이 책을 제대로 읽고 있기나 한건지 의심하게 만들더라. 아무리 읽어도 아무것도 남지 않는 신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긴 했다. 너무 취했거나 너무 졸려서 몸이 안 움직여줄때의 갑갑함을 기억하시는지. 제 정신인 상태에서 가위눌림을 겪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추천. 하지만 제정신인 상태에서 재밌는 독서를 하고 싶다시는 분들에게는 비추.


 ★★★☆☆ 학교의 슬픔/ 다니엘 페낙


 이 책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꼴찌에게 희망을! 이란 문장이 되겠다. 학창 시절 끔찍한 열등생이었다는 저자가 당시를 회상하면서 과연 점수로 아이의 미래를 평가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냐를 묻고 있던 책. 초반 자신이 열등생이었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모두를 걱정시키는 열등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세계적인 작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을 저자는 회상한다. 그건 바로 자신의 숨은 재능을 알아봐 주거나 지식에 대한 열정을 심어준 몇몇 선생님들의 공이었고. 해서 그는 아이들의 미래를 현재의 점수로 단정짓는 우를 범하지 말 것을 어른들에게 충고한다. 문제는 그것이 학교 밖에서는 너무 잘 보이지만, 학교란 독특한 상황속에서는 보이기가 어렵다는 점. 아마도 대부분의 선생님들의 딜레마가 아닐까 싶었다. 좋은 선생님이 되고자 하는 선한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듯한 책. 특히나  열등생의 심리를 명료하게 보여준다는 것에 주목하시길. 그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는 유용한 정보 같아 보이니 말이다.하긴 누가 그보다 열등생에 대해 잘 알겠는가. 어린 시절엔 열등생이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열등생을 가르친 선생님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사람이니 말이다. 어떤 아이들이건 보다 많이 이해해달라는 말을 하기 위해 자신의 열등생 시절을 아낌없이 털어 보여준 이 점잖은 노신사에게 공감의 미소를 짓지 않기란 힘들지 않을까 한다. 다만 초반의 신선함을 지나면 같은 말을 반복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이 책의 단점인데, 그건 읽는 사람이 가려서 읽으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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