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피오의 꿈은 세명의 주인공(만리우스, 올리비에,쥘리앵)들을 내세워 남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의 역사적 부침을 켜켜히 씨줄 날줄처럼 촘촘히 엮어간 약간은 골치 아픈 소설입니다.
5세기 로마가 멸망해 가고 있는 시기의 교주(만리우스),14세기 흑사병이 창궐하던 유럽의 시인(올리비에),20세기 2차 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 고전학자(쥘리앵)들은 만리우스가 쓴 책"스키피오의 꿈'을 매개로 시대를 넘어서 연결이 됩니다.
만리우스의 책을 읽은 올리비에는 그를 이해하고,올리비에의 시를 읽은 쥘리앵은 그 둘을 이해하게 되는 방식이죠.
작가는 각각 주인공들의 운명적인 연인들(소피아,레베카,줄리아)과 친구들과 우정들을 현실속의 사람들처럼 실감나게 보여주면서,읽어가는 독자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도록 합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인간을 이해하는 것이란 ?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은? 신이란? 영혼이란? 진실이란,정의란?..."
하지만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이 작가가 그런 물음에 어느 정도 확신에 찬 목소리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일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가 들려주는 그 해답들이 제겐 좀 충격적이었읍니다.
제가 막연히 생각하던 것들을 그는 한발 앞서 결론까지 내리고 있었거든요.
이성과 영혼의 문제에 대한 그의 생각들이 특히나 그랬지만, 그의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인간의 행동에 대한 통찰력, 지성,우정,보다 적은 희생을 위해 사람들이 취하게 되는 계략들,잔인해서가 아닌 필요하기에 할 수 없이 광폭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인정 받고자 하는 열의가 오해를 받고, 비열한 저의가 후대에 고결함으로 추앙받는 과정들,사랑의 광기가 몰고 오는 무책임성, 아름다운 사랑이 보여 주는 이해와 희생,알고자 하는 열의가 가져다주는 문명의 이어짐,유대인들과 이교도들에 대한 기독교들의 박해의 역사들등...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그는 천천히 쉬지 않고 길을 걸어가는 당나귀처럼 꿋꿋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무거운 주제들을 쉽게 써내려 가면서도 격을 잃지 않더라는 것에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어요.
역사, 철학, 신학,고고학,인간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재밌게 보실 수있을 겁니다.
지적이고,줄거리가 중요하다기 보단 한줄 한줄 씌여진 대화들과 문장들을 음미하며 읽어 가야 하는 쉽진 않은 책이란 것도 염두에 두시길.
단,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 작가가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이여서,결론이 늘 착하고 기독교적이며 낭만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런 통찰력과 격조에도 불구하고 통속소설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듯 보이네요. 살만 루시디와 비교를 한다면 루시디는 절대 안 착해서 걸작을 만들어 내고,이 작가는 착해서 수작에 그치는게 아닌가 싶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