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not  gentle into that good Night >

그 좋은 밤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마라.


늙은 자는 날 저물 때 열내고 몸부림쳐야 하리니.

빛의 소멸에 분노,또 분노하라.

 

종말에 다다른 현명한 자들은 어둠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될것이나

그들의 말들로는 번개도 가르지 못하는 까닭에,그들은

순순히 그 좋은 밤 속으로 들어가진 않을것이다.

 

선한 자들은, 마지막 파도가 지난 후,얼마나 밝았는가 하며 운다.

그들의 연약한 행실들이 녹색 포구속에서 춤추었을지도 모르나니.

빛의 소멸에 분노,또 분노하리라.

 

달아나는 해를 붙잡고 노래하던 길들여지지 않은 이들은

뒤늦게 알고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슬퍼 하리니.

그 좋은 밤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말라.

 

죽음에 가까와진 진중한 이들은 눈이 멀게하는 빛을 볼 것이며

멀은 눈도 유성처럼 불타고 명랑할 수 있음을 알게 되리니.

빛의 소멸에 분노,또 분노하라.

 

그리고 당신, 내 아버지,그 슬픔의 높이에서

당신의 강렬한 눈물로 나를 저주, 축복하십시오.내 기도하노니.

그 좋은 밤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말라.

빛의 소멸에 분노 또 분노하라.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Old Age should burn and rave at close of day,

Rage,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Though wise men at their end know dark is right,

Because their words had forked no lightning they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Good men,the last wave by,crying how bright

Their frail deeds might have danced in a green bay,

Rage,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Wild men who caught and sang the sun in flight.

And learn, too late,they grieved it on it's way,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Grave men, near death,who see with blinding sight

Blind eyes could blaze like meteors and be gay,

Rage,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AND you,my father,there on the sad height,

Curse,bless me now wlth your fierce terars,I pray.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

Rage,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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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여행
얀 코스틴 바그너 지음, 유혜자 옮김 / 들녘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살인이 제일 쉬웠어요...라고 말하는 살인자의 이야기다.

그렇다고 <묻지마 살인>을 저질러 시체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책은 아니고, 살인2번에 피곤해서 봐준 살인 미수 한번으로 비교적 시체수는 경미한 편이다.

살인수법도 지극히 고전적이라 (때려 죽인것과 총살) 엽기적도 아닌,주포인트를 살인자의 심리상태를 밝히는데 둔 책이었다.

 

주인공인 마크는 언젠가는 소설을 쓰겠다는 꿈을 지닌 ,현재는 과거 유명인들의 자서전을 대필해 주고 있는 작가다.

그에겐 다른 사람들을 모르는 장기가 있으니 그에겐 살인이 너무도 자연스럽다는 것.

살인이 쉽다는 것에 신이 난 그,마치 신처럼 남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것에 재미를 들인다.

 자신에게 잘 해주는 사람들을 살해하고,피곤해서 죽이려다 만 사람에게 운이 좋았다고 거들먹 거려가면서...

그럴 듯했던 것은  자신이 죽여 놓고서도 나중에 그가 자기를 아꼈었더라는 말에 감동받아 눈물을 흘리더라는 것이었다.마치 그를 죽인 것이 자신이 아닌 양,진심으로 감동을 하던 그를 보자니,나르시스트의 절정을 보는 듯해 섬뜩했다.

거짓말을 밥먹듯하고,이유 없이 살인을 해대면서도 양심의 꺼리낌이 전혀 없으며, 단지 잘한다는 이유로 잡히기 전까진 살인을 멈추지 않을 , 순간의 충동이 이끄는대로 충실히 사람들을 이용하고 버리던 그.

다른 인간들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 존재하거나 사라져야 하는 피사체에 불과하기에,더불어 사는 삶이란 끼여들 틈이 없는 유형의 인간이었다.행복이란 추상명사는 그에겐 글자그대로 추상적일뿐이었다.아마도 지금 이 지구상 어딘가엔 ,마크와 닮음꼴인 인간이 활개를 치고 다닐 테지?

충동에 굴복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개략적인 단서를 얻을 수 있던 책.

그러나 재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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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L 2007-07-31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덱스터 라는 미드를 봤는데 그와 비슷한 부류인가보군요 ㅎㅎ 저역시 이해할수는 없더라구요

이네사 2007-07-31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덱스터가 그래도 더 멋져 보이는 면이 있을 거여요.
덱스터는 사람을 죽이기는 하지만 이용하진 않잖아요.
이 책의 주인공은 그런 면에선 개차반과라서 매력이 없더라구요.
덱스터가 아마 더 재밌었을 거여요.

tnwjd93 2008-03-21 0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빌려서 봤는데, 정말 재미없더군요... 뭐가 긴장을 놓을 수 없다는 건지..비유같은 것도 번뜩이는 게 하나 없고..
 
불릿파크 - 존 치버 전집 1
존 치버 지음, 황보석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존 치버에 대해 알아보다 마침 이 책이 번역이 돼 나왔다는 말에 반색을 했다.

미국에서는 꽤 평이 좋던 작가와 책이라 기대 잔뜩하고 본 책이다.

 

미국의 중산층을 상징하는 불릿 파크(탄환 저장소)라는 마을에 사는 두 이웃, 네일즈와 해머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소설이다.

일부 일처제를 줄기차게 신봉하는 네일즈는 화이트 칼라 직장인으로 가족의 안락과 칵테일 파티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소시민이다.

안락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집집마다의 불행을 커튼으로 가리고 살아가는 불릿파크, 네일즈는 그곳이 천국이라며 자랑한다.그러나 모든 것이 잘 풀려나가야 하는 천국과는 달리,그의 아들 토니는 학교를 때려 치우더니 아프다는 핑계로 방에서 나오질 않고, 그의 아내는 그와의 잠자리를 거부한다.직장을 혐오하던 그에게 남은 탈출구는 알약(마약)뿐,그는 남몰래 마약에 의존해 출퇴근을 한다.

 

불릿 파크에 방금 이사온 해머.사생아로 태어난 그는 겉으로는 예의 바르고 사려 깊은 인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신병적인 증오와 냉소와 사람에 대한 무관심을 지니고 있는 위험 인물이다.

그는 속물에 자신의 생활에 지극히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 듯한 네일즈를 보고는 그를 살해하겠다고 결심을 한다.부르조아의 위선과 부패에 대해 경각심을 주기 위해 예수같은 희생양이 필요하단 이유로...과연 그의 살해 음모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행복하기 위해 노력에 노력을 하지만 어긋나기만 하는 인생살이에 조용히 지쳐 가는 네일즈.

그런 네일즈의 겉만 보고 속물 부르조아의 표본이라면서 그를 살해할 것을 결심하는 해머.

기괴하고 우울하며 암담한 미국의 현대사회의 단면을 제대로 투영해 보여 주는 책이었다.

우선 문체가 다른 소설과는 격이 다르다는 것이 눈에 확 들어온다.얼마나 속도감있게 글을 쓰던지 단편의 대가라는 닉네임에 걸맞게 짧은 호흡에 척척 자신이 하고픈 말을 다다다 하고 있었다.

그렇게 거침없는 문체로 박진감 있게 부조리한 일상과 허물어진 정신을 설득력있게 보여주고 있었는데,너세네이얼 웨스트(메뚜기의 하루,미스 론리하트)나 카슨 메컬리스(마음은 외로운 사냥꾼)그리고 아서 밀러(세일즈맨의 죽음)와 꿰를 같이하는 작가가 아닌가 한다.



통찰력있고,어조는 건조하지만 주저함 없는 단호함에,냉소적인 톤으로 미국 사람들에게 네가 아무리 행복한 척을 해봐라.그래봤자 니들 불행한거 ,니들 위선 떨고 사는거, 속으로는 초라한거,속물인거 내가 다 안다니까...라는 말을 하고 있는 존 치버.

월튼네 사람들은 환상에 불과해.라고 말하는 그가 난 약간은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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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토니 모리슨 지음, 김선형 옮김 / 들녘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어떤 내용이길래 사랑이란 제목을 붙였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아무런 접두사도 없는 단지 "사랑"이라?

 사랑에 대해 토니 모리슨이 어떤 말을 하려고 할지 조금 궁금하긴 했지만,솔직히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난 모리슨의 서사적인 말투를 싫어한다. 물론 '빌러브드'에서는  책 안에 생명력을 불어 넣고 신화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데 그 말투가 딱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거의 모든 책에 등장하는 뭔가 신비하고 신화적이며 앞으로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거라는 암시를 주는 그런 말투가 상투적으로 들리기 시작한지는 이미 오래됐다.
또  별거 아닌 걸 가지고 부풀리고 있구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고 또 그게 틀린 적이 별로 없다.

왜 그녀는 자신만의 틀에서 벗어날 생각을 못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과거와 같은 수작을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과장하는 버릇들,기름끼 쫙 빼듯 그런 말들만 걸러 낸다면 그녀의 책이 진실해 보일거라 생각이 들지만,개인적으로는 그녀의 문체를 받아 들이든가 말든가를 택하는 것만이 남은 듯하다.

 이야기는 11살짜리 소녀 히드가 그녀의 절친한 친구  크리스틴의 할아버지와 결혼을 하게 되면서 시작된다.(줄거리가 시간순으로 전개되지는 않음.)마을을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인 호텔의 주인인 트리스틴의 할아버지 빌 코지는  당시로는 드물게 성공한 흑인으로 ,쉰살이 넘는  그가 11살짜리와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도 아무도 그를 말릴 만한 사람이 없었다.
신혼 여행에서 돌아온 히드는 그 동안 벌어진 일들을 친구에게 말하고 싶어 안달을 하며 크리스틴에게 달려 가지만 ,친구는 그런 그녀를 싸늘하게 외면하는데...
그로부터 시작된 둘 사이의 질투, 증오, 냉대,혐오는 둘의 인생을 철저히 파괴 시키고, 결국 늙고 병들어 둘 만 저택에 남겨져서 까지도 서로를 파괴시키려 머리를 굴리게 된다.

여러 사람들의 인생역정들이 촘촘히 엮여져서 단지 두 소녀의 우정(사실은 사랑)만을 다룬 책이라고 볼 수는 없다.대체로 인생을 불행하게 산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이상 불행할 수 없게 서술되고 있다.토니 모리슨이 행복한 사람들에 지면을 할애하는 것은 극히 드물다는 것과  지치고 불행하며 고난을 겪을 대로 겪은 사람들을 더 불행해 보이게 하는데 대단한 자질이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그녀의 단단하고 단호하며 매끄러운 글 솜씨와 그녀만의 통찰력 역시 그대로 였고.
그런데 ,난 이 책이 별로였다.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으니까.
사랑? 뭐가 사랑이란 말인가? 그녀가 사랑에 대해 말을 했단 말인가? 이 책에선 못 본 것 같은데...
그녀가 여기서 언급하는 사랑은 다분히 억지스럽고, 이 책을 위해 제조해낸 사랑 같아 보인다.
그녀 생각엔(?)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먹힐 것이라고 믿었을지 모르지만, 언제나 그런 극단적인 사랑만을 사랑이라고 내세우는 그녀에게 이젠 반격하고 싶다.
어디 서로를 찢겨 발기고 아프고 서로를 망가뜨리다 파국에 이르러야 만족하는 것만이 진정한 사랑이더냐?
아프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라고 하는 그녀만의 사랑 타령,다분히 가학적이기만 그녀의 사랑타령.사랑하기에 살인도 불사한다는 빌러브드에서의 사랑방식이 어떻게 40년이 지나도 그대로인지 모르겠다.대단하지 않으면 ,눈에 확 뜨일만큼 엽기적이거나 ,색다른 것이 아니면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신물이 난다.
그녀 자신이 이 책에서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경쟁을 벌인다고 말한다.
더 위대한 사랑,대단한 사랑,남들이 해보지 못한 사랑을 한다고 자랑하기 위해 인생을 망치지만, 언제나 더 위대하고 대단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에 그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
그녀는 그녀의 책도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과 같다는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게 틀림없다.

어쨌거나 그녀의 격조는 살아 있는 책이었다.
사랑에 대한 신화를 쓰고 싶었지만 실패한 듯 보이는 책이긴 했지만.언젠가는 토니 모리슨의 책을 읽고나서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이 글을 쓰면서 궁금해진다.불가능할까? 현재 아동 문학책을 쓰시고 계신다니 또 모르겠다.

설마 어린아이를 상대로 불행을 설파하시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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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vil Wears Prada (Paperback, Reprint)
로렌 와이스버거 지음 / Anchor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1.이 책을 읽기전 영화가 나왔다.그래서 블러그 이웃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먼저 접할 수 있었는데 ,난 그들의 평을 들으면서 재밌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처한 위치에 따라 그 영화를 대입해서 보더라는것.

중간 관리자이상의 지위를 가진 사람들은 여주인공 '안드레아'를 못마땅하게 여겼고,--기껏 키워줬더니 말야,그런 기회가 어디 흔할 줄 아니?--, 안드레아처럼 말단 직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그 영화를 한없이 슬프게 봤다.--우린 노예가 아니란 말여요!!!--하면서.

그래서 난 이 책이 몹시 기대되었었다.내가 누구 편을 들지가 궁금해서...

 

2.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짐작컨대 책이 훨씬 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책 자체로는 흠 잡을데 없는 수작이기 때문이다.이야기는 탄탄하고 등장인물들은 개성이 넘치는 데다 살아 있는 듯 말하고 돌아 다니며 ,군더더기 없는 글솜씨에 정보도 새롭고 풍부하니 이 정도면 로맨스 소설로 치부하기엔  아까울 정도다.

사실 이 대로만 만들었다면 졸작이란 평을 들을만한 구석이 전혀 없다.

줄거리는 일자리가 간절히 필요했던 안드레아가  RUNWAY잡지사의 편집장 미란다의 비서로 취직되면서 시작한다.

사람들은 그 자리가 여자들의 꿈의 직업이라면서 부러워 하지만,RUNWAY잡지(패션 잡지)를 들여다 본적도 ,미란다가 누구인지 알지도 못했던 안드레아는 그저 일자리가 생겼다는 사실에 기쁠뿐이다.

하지만 곧 ,그 꿈의 직업이라는 것이 살아있는 지옥이자 악몽이라는 현실을 파악하게된 그녀는 살아 남기 위해 그리고 더 나은 꿈을 펼치기 위해 이를 악무는데...

과연 그녀는 그곳에서 살아 남을수 있을 것인가?

 

3.<안드레아 >--23살 짜리 대학을 갓 졸업한 비서.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커서 남의 시중을 든다는 것도, 들어야 한다는 것도 상상 못하는 여자.보수적이고 영리하나 아직은 사회경험이 전무한 상태.세상 사람들이 다 친절하고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며 고맙다고 꼬박꼬박 인사를 하고 바쁘건 안 바쁘건 전화를 받으면 ' Hello나 Hi '정도의 말은 날려줘야 한다고 믿음.

속물과 패션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음.

<미란다 >--지식도 연줄도 돈도 없이 야먕 하나로 미국 유수의 패션잡지의 편집장이 된 여자.당연히 편집증이 있고,안하 무인이며,자신의 모든 생각을 --자신이 점심을 먹고 싶은지 아닌지 까지--비서들이 읽어낼 수 있다고 믿는 망상증 환자.속물이고, 남들의 속물근성을 잘 이용할 줄 알며, 무자비하고 자신의 욕망에 철저히 충실해야 한다고 믿는 자아 도취증 환자.

왜냐면 그녀는 "특별하니까."

그 모든 인간적인 결점에도 불구하고 패션에 관한 한 탁월한 안목과 완벽에 가까운 일처리,어디서고 눈에 뜨이는 옷차림으로 주목을 받는 여자.

 

이 둘이 만나 사이좋게 지냈다더라 ...라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고로 충돌이 당연히 예상이 되는 이 책에서 난 내가 누구 편을 들지가 궁금했었다.

맨처음 책을 읽으면서는 안드레아편을 들 수가 없었다.

미란다의 가족들이 자신을 알아 보지 조차 못한다고 불평하는 그녀를 보면서 ,참...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데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말하는 그녀의 순진함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책의 후반부로 가면서 점점 더 미란다의 편을 들기가 곤란해졌다.

성공을 위해 모든 짓을 다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뭐라 할 순 없지만 ,다른 이들을 고문해도 된다고 철썩같이 믿고 실행하는 것은 욕을 얻어 먹어도 싼 일이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각자가 처한 위치에서 본인이 원하지 않더라도 해야 하는 일들이 있기 마련이다.

<Defend yourself>라고 말을 한 것은 그런 행동들 뒤엔 각자 위치에서 자신을 변호할 만한 이유들이 반드시(혹은 어느 정도는 )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그땐 우린 얼마나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어디까지 우린 상대의 행동을 용인해야 할 것인가.

어려운 문제다.인생의 다른 문제들처럼 쉽게 풀리지 않는 것일 것이다.

아마도 그런 문제들을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행동하거나 그 행동들을 쉽게 이해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진정한 성공을 할 수 있는 천재가 아닐까.

.......아님 ,이것도 그저 순진하기 그지없는 생각에 불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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