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를 먼저 봤는데,이 책의 매력을 다 살리진 못한 듯하다.
미국 남부의 서배너라고 하는 작은 마을에 홀려 그곳에 터를 잡고 8년을 살았던 양키 작가가 쓴 '서배너 이야기'이다.미국 남부 도시의 끈끈하고 퇴폐적이며 패쇄적이고 오만한 정취를 읽는 동안 감지가 될 정도로 유려하고 매끈하게 잘 쓴 책이었다.
그저 다른 사람들 눈엔 아름다운 마을에 불과했을 서배너를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보이게 만든 이 작가의 글솜씨는 가히 눈여겨 볼만했다.
제목이 거창해서 무슨 아담과 이브의 원죄를 들먹어야 할 듯한 으스스한 분위기지만 사실은 다른 도시와 담을 쌓고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살아가는 한 작은 도시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오만하고 퍠쇄적이라 우리끼리만으로도 잘 산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살아가는 미국 남부의 작은 도시 서배너, 그곳에서 작가가 만난 사람들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정도로 개성이 넘친다.
자수성가한 백만장자가 남창 애인을 쏴죽이고는 정당방위를 주장하며 재판을 받는 과정을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긴 하지만 재판 과정 보다는 이 재판을 둘러싼 인물들의 면면들이 화려하고 통찰력있게 다루어져 있다.
서배너라는 도시의 특성이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곳과는 완연히 달랐다.마치 19세기의 남부 소설속에서나 나올듯한 시대 착오적인 사람들 투성이라고나 할까.
시대 착오적이지만,매력적이고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 살아가는 모습들이 눈을 떼지 못하게 할만큼 매혹적이었다.소설속의 허구의 인물들이라고 해도 대단하다고 할텐데, 다 살아 있는 인물들이라니...
게다가 마치 자신이 걸어다니는 곳곳의 모든 것들을 순식간에 흡인하는 듯한 작가의 예민함과 특유의 다정함도 독자에게 읽는 재미를 더하게 해 주는 요인이었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상으로의 은밀한 여행이라고 책 표지에 나와있지만 ,그 보단 다양하고 매혹적인 ,그러나 이젠 이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듯한 사람들이 실제로 출연하는 연극처럼 보여진다.철저한 사기꾼이지만 미워할 수 없는 변호사 아저씨,과거의 영화에 사로잡혀 사는 부호의 아내,스트립쇼를 하는 여장 남자, 저렴한 가격으로 저주를 내려주기도 하고 풀어주기도 하는 부두교 여사제,70이 넘은 나이에도 음악이 필요하단 곳이라면 어디나 가서 피아노를 쳐주는 할머니, 거만하고 패쇄적인 백인 상류층의 위선과 우스꽝스런 작태들이 유연하게,하지만 신랄하게 묘사되어 있는 이 책을 보면서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바로 이 모든 사람들이 어떤 죄를 짓고 지을 것이건 간에 그들이 바탕은 선한 사람이라는 것과 미워할 수 없을 만치 매력적이라는 것을 작가가 잘 보여 준다는 사실이다.
결코 평범하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의 기벽을 있는 그대로 발산하며 살아가는 모습들이 세세하게 잘 포착이 되어 있는 것과 도덕이나 윤리를 내세우기에 앞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이해하고 긍정하는 작가의 시선에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매우 유쾌하고 재밌으며 모순이 없이 잘 쓰여진 수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