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스러운 자기 파괴 일지.

인간 실격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다섯번의 자살끝에 죽었다는 오사무의 대표작.그의 자전적 요소가 곳곳에 배여있는,거의 그의 자서전처럼 들리는 책이다.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음에도 불행할 운명을 지고 태어난 듯 어둠의 길을 걷는 주인공 요조,그는 자기 파괴의 길을 마치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듯 주저없이 담담하게 걸어간다.그를 지켜본 마담의 말에 의하면,순수하고 눈치 빠르고,하나님같이 착한 아이였던 요조는 그렇게 살 수 밖엔 없었을까?어른들의 위선과 악행에 질식해 서서히 자신을 망가뜨려 가는 과정들을 보면서 기본적으로 삶을 책임져야 하는 것을 개인이라는 것을 앎에도,그가 안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어린 시절 부모의 유기에 가까운 방치,사랑 없는 성장환경,하녀의 성적학대, 어린시절의 데미지가 그를 자살과 알콜 중독과 섹스 중독,마침내는 마약중독으로 몰아가고,결국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다.신병원에 갇히자 자신은 인간으로써 실격했다고  절규하던 그,그에게도 소중했을 한번 밖엔 없는 인생을 유별나게 불행하고 고통스러웠단 것으로 흔적을 남기고 갔으니 ...내가 안스러워해야할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 아닌가 한다.

 어린 시절의 상흔이 어떻게 인간의 영혼을 지배하고 파괴하는지 교과서적으로 보여주던 책이었다.난 그의 절망과 분노,파괴충동들이 정신적으로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그가 다른 사람과는 달리 비정상적이고,변태적이며,심하게 무기력하고,인간으로써 실격자여서가 아니라. 모든 것은 그의 영혼이 내지르는 고통에 찬 비명이었다는,정신적 고통으로 살해된 것처럼 보이는 그,내겐 그의 자살이 자살로 보이지 않았다.우리 인간 모두는 그렇게 연약하고 소중한 존재임을...그렇기에 타인에게 친절해야 한다고 오늘도 중얼거려본다.

악마의 편지,우리는 이렇게 실패했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보급판 문고본) ㅣ C. S. 루이스 보급판
C.S.루이스 지음, 김선형 옮김 / 홍성사 / 2005년 9월

고참 악마가 신참인 조카 악마에게 인간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방법을 전수하고 훈계하는 편지를 묶은 것이다.신참답게 어리버리한 조카가 자신의 환자--기독교에 관심을 갖는 인간을 의미함--를 악마의 적,예수에게 빼앗기는 사태가 일어날까 우려되어 열심히 펜대를 놀리고 있는 스크루테이프,역설적으로 악마의 수법을 고찰함으로써 어떻게 우리가 악마의 손에 들어가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애걸하고,호통치며,조롱에,협박에,화를 참아가면서도 인내심을 발휘 친절하게 설명을 하면서 그는 조카에게 성공에 이르는 길을 단계별로 제시하고 있었다. 과연 신참은 그의 계획대로 오차없이 성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써 놓으니,유치한 장난같은 책일거라 생각되지만,사실은 인간의 본성을 꿰뚫은 탁월한 저서다.인간의 교만,성적 불성실,나태,자만,이기심,이기심을 숨긴채 나타나는 비이타성의 폐해등,우리가 눈살을 찌프리면서 지적하는 인간의 악성들이 루이스의 눈을 통해 예리하게 지적되고 있다.사실 루이스의 지적대로 우리가 타락하는데 악마는 굳이 필요치 않다.우리 자체만으로도 악을 행하는데 부족함이 없으니까.충분하고 넘친다.사실 나로써는 인간의 악을 행하는 능력을 의심한다는 것이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어쨌거나 작가가 말하려는 골자는 자신을 한번 더 돌아보라는 것이다.작가의 유머감각과 명민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책이었지만, 크리스찬이 아니라면 그의 진심을 제대로 읽어내려 하지 않을거란 생각에 애매작으로 넣는다.얇다.두꺼웠다면 오래전에 읽었을 책이다.왜 그는 책을 얇게 쓰는지 불평하고 싶어진다.만나게 되면 함 따져볼 생각이다.
 

휘발성이 강한 책.

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7년 5월

 유행처럼 다들 읽기에 경쟁심 내진 의무감 때문에 읽었다.알랭 보통의 책은 그가 유명해지기 전부터 읽어 왔지만,서서히 그에게서 질려가고 있었던 터여서,역작이라는 선전에 달라졌는가 내심 기대를 하고 봤다.변화를 싫어하는 내게 다행하게도 그냥 계속 질린 상태로 나아가도 좋겠더라는걸 확인했다.물론 그의 장점은 여전했다.유려한 문체,휙휙 넘어가는 막힘없는 문장들,빨리 읽힌다.그런데,결정적으로 삶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마치 그가 표지에 내세운 구조물처럼,어딘지 스튜디오세트처럼 인공적이다.생활의, 인간의 ,정의, 사랑의 ,끈끈한 사람 냄새가 나지 않았다.그저 지루하기 그지 없는 일상을 어떻게든 바쁘게 메꿔보려 건축에 눈을 돌린 사람의 애처로운 감상이 줄줄이 이어졌다고나 할까?아름다운 건축물에 대한 그의 설명에도 별로 감흥이 못느꼈으니 말 다했다.왜 그는 날 설득하는데 실패했을까.화려함으로 따지자면 이 책과 비교가 되지 않음에도,서현님의< 건축,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라는 책이 오히려 믿음직스럽다.그저 보통의 글발이 내겐 더 이상 먹히지 않는것인지,아님 이 책에 뭔가 양념이 부족했던 것인지는,아님 동양인과 서양인의 미에 대한 기준의 차이때문인지 모르겠지만,심드렁하고,그다지 배울 게 없었으며,기억나는 것도 없고,기억하고 싶은 것은 더더군다나 없었던,말이 지나치게 많다는 생각이 들던 책이었다.빨리 읽힌다는게 장점이나 읽는 속도만큼 휘발성이 강하다.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나면 하고 팠던 말을 하련다.

"나도 읽었다.!!!"

어디에도 없는 상상력의 세계

디스크월드 1 - 마법의 색 ㅣ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테리 프래쳇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 / 2004년 12월

일관되게 ,독창적으로 미쳤다고 공인을 받고 있는 테리 프래쳇의 디스크월드 연작의 첫번째와 두번째 작품이다.어리버리 마법사 린스윈드,언제나 어디서나 누군가에 무슨일이 생겨도 짱가를 무색케하는 천진함으로 사태를 해결해 (?)나가는 두송이꽃,두송이꽃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나 따라가는 충성의 대명사 배나무 짐짝,이 셋이 벌이는 유쾌 상쾌 통쾌 호쾌 발랄 명랑 기발의 대익살극이다.

 

"보이지 않는 대학"또는 "없는 것이 더 나은 대학"에서 마법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던 린스윈드.도서관에서 금지된 마법의 책을 장난삼아 들춰보다 강력한 주문 하나가 머리속에 자리잡는 바람에 더 이상 주문을 못 외게 되자 대학에서 쫓겨난다.아는 주문 달랑 하나의 무뉘만 마법사가 된 그는 곧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기"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그런 그 앞에 나타난 봉,디스크월드 사상 최초의 관광객이라는  두송이꽃은 환율을 계산 못해 엄청난 바가지를 쓰면서도 희희낙락해하는 낙천적인 인물이다.돈이 궁해 그의 가이드로 고용된 린스윈드는 예상치  못한 모험에 휘말리게 되자 불평을 늘어 놓으면서도 달아나지  않는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데...과연 그들이 헤쳐가야 하는 여정은 어디까지이며,죽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언제나 살아남는 린스윈드의 비결은 무엇일까.그리고 디스크월드 세계를 압박하면서 다가오는 새별의 정체는 무엇이며,종말을 막는다는 8개의 주문의 의미는 무엇일까?

 

키득키득대다,박장대소하다,기막혀 하면서 웃다가,작가의 조롱끼 섞인 유머에 감탄을 해가며 읽었다.책의 앞을 보니 작가의 사진이 박혀 있던데,단언컨대,그는 현대판 멀린 마법사의 재현이다.내 생일날 와서 이야기를 들려 준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탁월한 이야기를 들려 주시는데,그런 이벤트를 해주실까 의문이긴 하다.어쨌꺼나 완벽하게 멋지고 독창적인 책이었다.줄거리는 그다지 중요치 않고,그저 느물거리며 음흉스럽고 처연한 단어들로 문장을 희한하게 조립해 웃겨주시는 걸 아무 생각없이 따라가면 된다는게 키포인트임을 알려드리는 바다.번역판이라 형광등처럼 유머가 한박자 느리게 터질 수도 있으니,애꿎은 머리 탓하지 마시고,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보신다면 작가가 노린 익살의 효과를 톡톡히 보실 거라 사료된다.

살고 싶다면 그를 분석하라.

애널리스트
존 카첸바크 지음, 나선숙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5월

아내와 사별하고 은퇴를 기다리고 있는 정신과 의사 리치,8월의 휴가를 기다리면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그에게 한통의 편지가 날아든다.그가 과거에 잘못한 것에 대한 죄값을 치뤄야 할 때라면서 편지를 받은 날로부터 15일내에 자살하지 않으면 그를 파멸시키겠다는 내용.리치는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친절하지 않은 만두 아저씨>의  "넌 누구냐?"대사를 패러디하면서 과거의 기억을 더듬지만 딱히 원한을 살만한 사람을 찾아내지 못한다.하지만 편지 발신인  미스터 R은 발빠르게 착착 일을 진행해 ,리치의  환자는 자살하고,친척들은 협박을 받더니,순식간에 리치는 통장도,명예도,집도,기댈 사람도 다 잃게 된다.막다른 길에 몰린 리치는 자살로 자신의 존재를 지워버리는데...

 

책의 전반부가 협박범에 의해 철저히 무너져 가다 위장자살을 할 수 밖엔 없었던 리치의 공포가 생생하게 그려졌다면 ,후반부는 모든 것을 잃은 리치가 복수를 하는 과정이 전개된다.원래는 줄거리를 다 불어 버릴 생각이었는데,귀찮은 생각이 들어 생략한다.호기심이 생기시면 직접 읽어 보시길...
장편임에도 무리없이 잘 흘러나간 소설로,편집적인 정신병자가 저지르는 경악스런 일들이 알고 보면 그 속엔 이해 가능한 가정적 배경이 잠재해 있다는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다 .어느 순간 자신의 정체성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현대인들의 공포를 잘 그려냈다고 할까.다만,말이 너무 많다.얇기가 절반정도었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책 안에서의 통찰력이 고르지 못하다는 것도 감점거리었다.그래도 잘 된 추리 소설에 이름을 올릴 정도의 짜임새와 재미는 갖춘 책이니 앝잡아 보진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