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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 세상을 바꾼 섬, BBC Books
폴 D. 스튜어트 외 지음, 이성호 옮김 / 궁리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책을 받자마자 사진들만 먼저 흩어 봤는데, 두근두근 마음이 설레였다. 사진이 상상외로 멋졌기 때문이다. 예전 갈라파고스를 취재한 다큐를 봤을땐 칙칙하니 영 흉물스럽더만, 이 책의 사진속 갈라파고스는 이국적이고 찬란하며 호화롭고 매혹적이었다. 세계를 매혹시킨 섬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정경들이었다. 생물학자들에겐 두말할 것도 없이 천국으로 비춰졌을 것이고. 표지의 이구아나 사진을 넋 놓고 들여다 보다가, 표지를 넘겨보니 옹기종기 모여 있는 갈색 펠리컨이 등장한다. 그 사진도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찍었길래 펠리컨들을 저리도 다정하게 보이게 할 수 있을까, 사진사의 솜씨에 감탄했다. 흠. 오랫동안 --끽해야 두달이었지만,--- 책을 기다리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라파고스의 동물들 사진들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 보면서 오랜만에 동물 도감을 뒤적이는 흥분에 휩쌓였다. 동물들 사진은 언제봐도 질리지 않는단 말이지. 사진 넘 잘 나왔다면서 호들갑을 떨어댔다.
눈치 채셨는지 모르겠는데, 이렇게 사진만 장황하게 칭찬하는덴 다 이유가 있다. 왜냐면 도킨스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문자들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갈라파고스의 지리학, 역사학, 동물학, 식물학, 그리고 지형학들을 차례 차례로 설명하고 있는 책이었는데, 어찌나 설명을 못하던지... 상관없는 그를 자꾸 들먹여서 미안하지만 정말 빌 브라이슨을 급파하고 싶었다. 아님 <푸른 항해>의 토니 호위츠나... 그들이 썼다면 훨씬 더 재밌었을텐데 아쉬웠다. 이 책 하나 읽는데 일주일 쯤 걸렸다. 얇은데다 사진이 많다는걸 감안하면 한참 읽은 셈이다. 뭐, 실은 수면용으로 쓰였으니 놀랄 일은 아니지만서도... 사진을 볼땐 반짝반짝 빛나던 내 눈이 문자를 읽기 시작하면 뜨기를 거부하니 별 수 없었다. 책을 수면제로 사용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뭐, 어떻게든 알뜰하게 썼으면 되는거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 저자는 글을 못 쓰나? 의문이 드실 것이다. 잘 쓴다고 보여지진 않았지만, 그의 글을 난해하게 만드는데는 번역도 한 몫 하고 있었다.대학생이 번역한 것처럼 읽혔으니 말이다. 분명 열심히 해석을 했는데, 빠트린 문장이나 단어가 없는 것도 확실한데, 나중에 읽어보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건지 이해가 안 되던 내 대학생 시절때의 원서 리포트를 보는 듯 했다. 어쩜 감기는 눈을 부릅뜨고 정신 집중해 읽었다면 이해가 됐을지도 모르겠지만 수험서도 아니고 누가 그렇게 하겠는가? 하니, 집중력 그닥 우수하다고 자신 못하시는 분들은 그냥 사진만 보셔도 되지 않을까 한다. 일단 시간이 절약된다.
그래도 이 책을 보고 난 소득이라면...
1.갈라파고스는 처음에 봤을땐 칙칙하니 회색의 멋없는 섬처럼 보일 수도 있단다. 하지만 그 아래엔 풍부하고 진귀한 세계 다른 어느곳에서도 볼 수 없는 동식물들이 넘쳐난다고 한다. 한마디로 생명의 보고라는 말씀. 그래서 처음 섬의 인상에 실망했던 사람들도 곧 반하기 마련이라 하니, 그 섬에 가시는 분들은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야 겠다.
2. 이 섬이 태고적 그대로 아직까지 남아있는데는 고립된 지형도 한 몫 했지만 무엇보다 인간의 손이 타지 않았기 때문이라 한다. 인간을 본 적 없던 동물들은 얼마나 경계심이 없었는가 하면, 처음 다윈이 그 섬에 도착했을때 가지에 앉아 있는 매를 총신으로 툭툭 건드려 옆으로 가게 했을 정도였단다. 아마 이런 상황이지 않았을까?
다윈--- " 야, 매, 너 때매 안 보이잖아. 옆으로 좀 가봐..."
매-- " 아~~ 놔, 왜 조용히 앉아있는 날 갖고 그러는거야? 어? 밀었다 이거지! 윽, 처음이라 이번만 봐주는줄 알아 !" 라고 했을지도...
3.이 섬에 파충류가 넘쳐 난다는 사실을 눈치채신 분은 혹 있으신지 모르겠다. 의외로 파충류가 온혈 동물보단 적응력이 강해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기 쉽다고 한다. 음...그렇다면 언젠가 우리 인간이 몽땅 사라졌을때 우주인이 온다면 파충류들만이 남아서 그들을 맞이할 수도 있지 않을까? 표지의 저 사진처럼 말이다. 그렇게 되면 이 지구는 얼마나 이국적이여 보일까?
4. 놀라운 것은 아직도 갈라파고스 섬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멸종되었다고 선언했던 종들이 몇몇 오지의 섬을 탐험하다 발견되곤 한다는 말에 얼마나 기쁘던지... 그래, 너그들은 그렇게 꼭 꼭 숨어 있그래이. 그래야 우리 후손이 너그들의 후손을 만나볼 수 있지 않겄나?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게 잘 숨어 있다가 나중에나 나오거래이. 사람 비스드름 한 것들은 믿지 말고 말이다. 그게 내가 갈라파고스 동물들에게 들려 주고 싶었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