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불호가 갈릴 것이라는 말에 그래도 나는 호일 것이다라고 자신하면서 보게 된 영화. 워낙에 타란티노에게 적응이 되어 있기도 하고, 전작들의 폭력성이 아주 지나친데라고 끔찍해 하면서도 필요악이라고 해야 하나, 악을 응징한다는 면에서 통쾌한 점이 없지 않아 있었기 때문에 어느정도 수긍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폭력은 폭력일뿐, 눈을 거슬리지 않을리 없다. 하여 타란티노의 잔인한 폭력성에 대해 차곡차곡 쌓여있던 내재된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작품이 바로 이 영화다. 도를 넘어선 폭력이 아무리 영화라고 해도 똑바로 봐주기 힘들다. 생각할 것도 없이 나는 불이었고, 이건 호불호를 따질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 싶어 못마땅했다. 요즘은 워낙에 두리뭉실하게 말을 하는 경향이 두드러져서, 배려한답시고, 그리고 너의 취향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호불호라는 말을 쓰는가 본데, 호불호는 그래도 어느정도 작품성이 있는 영화를 두고 할 수 있는 말이지, 이 영화는 거기까지 이를 정도는 못되는 듯해서 말이다. 그냥 별로다라고 하면 안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지울 길이 없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깨달은 건데, 타란티노는 서부시대에나 어울릴만한 사람이다. 꼴리는대로 총질을 해대도 아무런 터치도 하지 못하던 시대, 사이코패스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면서 명성을 드높이던 시대,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명제가 그대로 통용되던 시대에 그의 정서가 딱이다. 어쩌면 타란티노는 정의를 가장한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더라. 폭력을 이렇게나 좋아하시나 싶을 정도로 올곧게 폭력 취향적인 성향을 아낌없이 보여주시는데, 이쯤되면 나같이 평범한 사람은 그만 질리기 마련이다. 그의 악동같이 짖굳은 유머 감각, 불의에 침묵하지 않는 것, 이야기꾼으로써의 현란한 재능만큼은 나도 부인하지 못하겠지만서도, 결국 모든 이야기를 폭력으로 끝맺는 버릇은 도무지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아무리좋게 포장을 하려 해도 이젠 선을 넘은 듯하다. 그저 타란티노는 이런 사람이구나, 라고 결론짓는게 옳을 듯해. 바로 그게 그니까...
영화 내용은 타란티노 답게 쌈박하게 시작한다. 이야기꾼으로써의 감각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오하이오 깊은 산골, 눈보라 태풍이 몰려오는 긴박한 순간에 레드락 타운으로 달려가는 마차를 길거리에서 세우는 사람이 있다. 그는 유명한 흑인 현상금 사냥꾼으로 세 구의 시체와 함께 자신을 태워 달라고 부탁한다. 탐탁해 하지 않으면서도 결국 그를 태우기로 결정하게 된 마차 손님은 역시나 유명한 현금 사냥꾼 <행맨>이었다. 그가 행맨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 죽건 살았건" 간에 같은 돈을 지급한다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늘 현상범을 끌고와서 교수형을 시키는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그가 마차를 타고 이 겨울 산길을 가게 된 것도 여자 현상범인 토마구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왜 힘들게 살려서 데려가는냐는 흑인의 질문에 그것이 나의 방식이라고 쿨하게 답하는 행맨 . 그들을 태운 마차는 도중 신입 보안관이라고 자칭하는 자까지 픽업해서 미니의 양장점--일종의 산장 대피소--으로 달려가게 된다. 도착한 그곳에는 이미 늙은 장군과 사형집행인, 그리고 맥시코인과 이방인이 있었다. 미니 양장점에 주인인 미니가 없다는 사실에 흑인 현금 사냥꾼은 의심을 품지만 추리를 완성하기엔 단서들이 부족하다. 서로가 모두 낯선 이방인들이라고 주장하면서도 팽팽한 살기가 감도는 가운데, 독살 사건이 일어나자 분위기는 일순간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그 누구도 이유없이 그곳에 오진 않았다는 문구가 설명하듯, 그들이 그곳에 모인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었는데, 과연 그 8명들의 운명은?
장점을 들라면 이야기에 생명력이 있다는 점과 배우들의 연기가 안정적이라는 것에 있다. 사무엘 잭슨, 커트 러셀, 그리고 제니퍼 제이슨 리의 연기는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인상적이다. 그외 배우들도 각자 자신의 배역을 잘 해준 듯하다. 신입 보안관 역의 월튼 고긴스는 본인의 인생 역을 만난 듯 자연스러운 남부 사투리 연기가 좋았다. 단점은 앞서 말했듯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타란티노의 전작들에 비해서 눈이 팍 떠지는 그런 배우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 장고의 크리스토프 왈츠나 레오나르도 드카프리오, 바스터즈의 브레드 피트, 펄프 픽션의 존트라볼타 같이 확 눈에 들어오는 매력을 지닌 배우들이 이 영화속에는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그나저나 타란티노의 폭력성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던데, 그게 어떻게 제어가 안 되는 듯하다. 폭력의 중독성에 빠진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누군가가 잔인한 폭력만이 재밌는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말 좀 해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게 귀에 들려올지는 알 수 없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