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타이거 - 2008년 부커상 수상작
아라빈드 아디가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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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지아바오 중국 총리가 인도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접한 발람은 인도의 기업 정신에 대해 알려주기 위해 그에게 편지를 쓴다. 인도 방갈로르의 잘 나가는 기업가라면서 자신을 소개하는 발람, 세상은 부자와 빈자, 즉 배때기가 커다란 남자들과 배때기기라곤 없는 남자들 그렇게 두 계급으로 나뉘는데, 자신이 부자 편이라면서 그것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는 발람. 그는 자신이 성공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떻게 인도에서 기업가로 성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팁을 얻게 될 수 있을거라 중국총리에게 너스레를 떤다. 아이에게 이름조차 지어주지 않아 그저 무니--아이란 뜻--라 불리웠던 소년, 카스트 천민출신의 인력거꾼 아들이며 간신히 글자를 읽을 수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던 하인 주제에 그는 어떻게 잘 나가는 기업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는 말한다 .그것은 바로 한 하루, 단 한 시간, 아니 단 일분이라도, 종으로 살지 않겠다는 자신의 결심때문이었다고 말이다. 자,그럼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하자.

 

하층민출신으로 태어난 발람은 어린 시절부터 인도의 고질적인 병폐들로 인해 고통받으며 자라게 된다. 악질적인 지주의 횡포, 카스트라는 비합리적인 제도가 뿜어내는 독기, 병원이건 학교건간에 사회 여기저기에 만연한 부패, 부자가 빈자를 종 취급하는 관습, 자라나는 아이를 생계전선에 뛰어 들게 하는 착취, 신부와 신부 가족을 울리는 지참금 제도등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취급하는 온갖 제도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을 목격한 그는 어떻게 해서든 보다 인간적인 삶을 살겠다고 다짐을 한다. 운전사가 돈을 많이 번다는 소문에 속성으로  운전을 배운 그는 운좋게도 고향 출신 지주의 운전사가 된다. 고향에선 그가 정복을 입은 운전사가 되었다는 소식에 좋아하고, 그 역시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면서 혈안이 된다. 지주의 큰 아들인 아쇽은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온 엘리트로 시대가 변했으니 사람도 변해야 한다고 믿는 낭만주의자다. 그에 비해 그의 동생 뭉구스는 아무리 인터넷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을거라 생각하는 비열한 인간이다. 하인들이란 주기적으로 협박하고 짓밟아야 주인을 존경하는 법이라고 믿는 뭉구스는 하인을 인간적으로 대하려는 형을 못마땅해한다. 어느날 진창 술을 먹고 드라이브에 나섰던 야쇽과 그의 아내 핑키 마담은 사람을 치고 만다. 주인 내외의 실수를 무마해주려던 발람은 그들이 자신을 범인으로 몰고가자 정신이 번쩍 든다. 사람을 죽였다는 자책감과 인도라는 거대한 불합리가 주는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한 핑키마담이 미국으로 떠나자 야쇽은 무너지고 만다. 그런 그를 다독이던 발람은 점차 자신의 자유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충동에 휩싸이게 된다. 결국 야쇽을 살해한 발람은 그의 돈을 훔쳐 도주길에 오르게 되는데...

 

인도가 변하고 있단다. 정말 과연 그럴까? 바깥 세상이 그들의 불합리를 손가락질 하고 있을때, 그래도 정신세계는 너희들보다 우수하다면서, 까불지 말라고 대들던 인도, 너무도 지지리도 가난해 보기조차 역겨울때도, 그래도 마음만은 부자라면서 내면적인 평화와 행복을 강조하던 그들, 카스트제도라는 말도 안 되는 계급제도를 갖고 사람들이 비야낭거릴때 그건 우리들만의 질서라면서 참견하지 말 것을 주문하던 그들. 과연 그들은 변했을까? 이 책에 의하면 그런것 같지도 않았다. 빈자나 하층민, 하인들등 밑바닥 인생들을 버러지처럼 취급하는걸 지극히 당연시하는 나라 인도는 아무리 너그럽게 봐준다고 해도 여전히 끔찍했으니 말이다. 아무리 그것이 오래전부터 내려온 관습이라고 해도, 또 그것에 길들여진 인도인들이 그 상황에 저의기 만족하며 산다고 해도, 버러지 취급을 받는 하층민들이 워낙 무식해서 다른 환경을 갖다줘도 마찬가지일거라는 말을 한다고 해도 눈살이 저절로 찌프려 지는 것은 그것이 인간적인 삶과 거리가 멀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적이고 인간적이며 평등한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기에 다른 삶을 상상할 수도 없는 인도인들을 보면 안스럽다. 내가 소중한 만큼 타인도 소중한 존재라는걸 익히지 못한 사람들에게 평등이니 정의를 외쳐본 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소 귀에 경을 읽어도 그들보단 더 빠르게 알아들을 것이다. 그런 무기력감과 절망감에서 벗어나고자 행동에 나선 사람이 있으니 이 책의 주인공인 발람이다. 단지 인간적으로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지니고 있었던 그는 상류층을 모시고 다니면서 점차 사회에 눈을 뜨게 된다. 발람에게 상류층이란 이런 자들이었다. 수십억을 뇌물로 바치고 오면서 동정 한 닢을 잃어버렸다고 하인을 닥달하고, 음주운전 사고로 사람을 치고는 하인에게 뒤집어 씌우며, 하인들의 가족들을 볼모삼아 협박을 일삼지 않나, 가난해서 무식한 사람들을 골리지 않나... 그에 비해 하층민은 또 어떤가? 그 모든 학대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그저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것에 안도하며 사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상류층의 위선과 횡포 못지 않게 하층민의 순종적인 태도에 진저리가 난 발람은 닭장안의 닭이 되지 않기 위해 난생처음 살인을 꾀하게 된다. 그것도 그나마 그 누구보다 인간적이었던 야쇽을 상대로... 그는 생각한다. 만약 정의대로 했다면 야쇽보단 뭉구스를 죽였어야 했다고... 하지만 그는 야쇽을 죽인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야쇽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은 문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류층 사람들에게 하류층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가 문제되지 않듯이, 그에게도 상류층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문제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받은대로 돌려준 그는 운전사를 하면서 주워 듣고 배운 것을 바탕으로 사업을 시작한다. 바로 적절한 뇌물과 권력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손쉽게 사업가로 자리잡게 된 그는 인도에서 배때기가 부른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양심을 저버리고 살면 되는 것이라는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남들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 역시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살인을 하고도 후회 하지 않는다는 주인공이라니... 자기가 무슨 뫼르소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주인공의 사연을 듣고보니 그럴 듯도 했다. 어쩌면 바로 그것이 인도가 당면한 커다란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살인이 가소로워 보일 정도로 사회에 만연한 부패와 부정의는 인간이 제정신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였으니 말이다. 상황이 그렇다보니 하인의 굴종보다는 살인자의 반항을 택한 주인공에게 지탄의 손가락질을 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 사회가 그렇게 돌아간다면 , 다른 수가 없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었다. 세상에...살인을 조장하는 사회가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싶어 오싹한 마음이 들었다. 과연 우리나라는 그런 인도와 얼마나 다를지 싶어 저절로 한숨이 쉬어진다. 그다지 많이 다르진 않으리라... 그나마 다행이라면 우리나라는 그것이 안 좋은 것들이라는 공감대만은 쉽게 조성된다는 것이겠지. 인간미가 사라진 사회, 꽉 막힌 사회, 공감대 형성이 안 되는 사회야말로 사람들의 마음이 골병들기 알맞은 구조니 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오래전에 읽은 존 쿳시의 <추락>이 생각났다. 이혼후 아무 생각없이 여인들을 농락하며 살던 남아공의 교수가 결국 성 스캔들로 대학에서 잘리게 된다. 그 소동속에서도 자신이 잘못했다는 생각은 일절 하지 않았던 그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딸이 흑인들에게 강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분노하는 그에게 딸은 오히려 이것이 남아공의 현실이라면서 그곳에서 살 생각이라면 그들의 행동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그들의 사는 방식이라면 외지인인 백인이 거기에 맞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정신이 번쩍 든 교수가 자신이 살았던 삶을 되돌이켜 보게 된다는 내용이었는데, 각박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는 모습이 이 책과 비슷했다.  물론 완성도면에서 보자면 <추락>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나았지만서도 말이다. 자연스러운 이야기 전개, 개연성 높은 주인공의 캐릭터,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상황묘사, 군더더기 없는 설명으로도 이해가 팍팍 오게 하는 대가다운 솜씨등은 역시 노벨상 수상작답다는 생각이 들게하던 소설이었다. 그에 비한다면 이 소설은 어딘지 좀 부족해 보였다.무엇보다 일관성없이 횡설수설한 주인공의 성격은 끝까지 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감이 잡히지 않게 했다. 그의 개인적인 역사에 대해선 모르는게 없이 다 들었음에도 말이다. 주인공이 아니라 상황이 소설을 이끌고 가다보니 생긴 일이 아닌가 싶은데, 그러다보니 잡다한 상황들로 이야기가 장황해진다는 단점도 있었다. 주인공의 캐릭터가 확고하지 않다보니, 그에게 별로 끌리지 않더라는 점도 별로였고... 노벨상과 부커상의 차이일까? 하여튼 2008년 부커상 수상작이라고 해서 기대를 많이 하고 봤는데 실망이었다. 더불어 <한 밤 중의 아이들>로 부커상중의 부커상을 탄 살만 루시디가 얼마나 글을 영리하게 쓰는지도 새삼 깨달았으니...그 책이야말로 번역중이라는 말을 3 년 전쯤에 들었는데, 도무지 그 프로젝트는 어디로 간 것일지 궁금하다. 이런 책이 발 빠르게 나올 정도라면 그 책은 이미 오래전에 나왔어야 했는데 말이다. 살만 루시디가 노벨상을 받아야나 나올려나? 설마 노벨상 타길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겠지? 설마한 생각에 오싹해졌다. 그가 노벨상을 탄다는건 정말로 요원한 일일테니 말이다. 그나저나 어째 리뷰가 산으로 올라간 느낌이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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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이체르 소나타 (보급판 문고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채윤 옮김 / 열매출판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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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이체르 소나타라는 낭만적인 곡을 제목으로 해서 이런 작품을 만들어낼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거장다운 톨스토이의 면모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던 작품으로, 도무지 이 양반은 어떤 사람이었을지 알아가면 알아갈 수록 궁금해진다. 이런 통찰력에 심미안에 분석력에 인간을 꿰뚫은 직감을 지닌 분이 기독교적 공동체를 주장했다는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서다. 사람들이 그를 따랐던 것도 당연하다는 전제하에, 만약 그가 오늘날 살아돌아왔다면, 그래서 여전히 똑같은 주장을 하고 다닌다면 나는 그를 어떻게 바라볼까? 천년에 나올까 말까한 천재로? 아님 너무 똑똑했던 나머지 머리가 약간은 가신 분으로? 남의 삶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은 지녔지만 아내를 고르를 눈은 없었던 사람으로? 아니, 여자를 보는 눈은 있었지만, 자신의 아내감을 고를만한 결단력은 없었던 사람으로? 어떻게 기억하게 될지 아직도 결정되지 않았으니...그는 정말로 수수께끼보다 엄청난 비밀을 가진 사람임에 틀림없다. 아무리 알아내도 여전히 베일에 싸인듯, 비밀을 감추고 계시는 톨스토이.어쨋꺼나 내가 박수를 보내는 것은 잘된 책에 한정된 것이니, 천재적인 작가로, 그리고 완벽한 책을 쓰신 분으로 난 그를 영원히 존경하게 될 것같다. 특히나 이 책을 보고난 다음엔 말이다. 

 왜 사람은 결혼을 하는가? 라는 문제에 대해 이렇게 신랄하게 대꾸를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왜 결혼을 하냐 비아냥대는 식으로 한마디씩 하긴 했으나 그것이 아무리 신랄하다고 한들 별로 와닿지 않았기에 별로 파급력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왜 결혼을 햐냐,애들아...그냥 혼자 살아...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다름아닌 톨스토이다. 그리고 그가 말을 할때는 정말로 심각하다. 진실만을 것도 우리가 왠만해서는 들여다 보고 싶지 않은 진실만을 털어놓기 때문이다. 평범한 독자들이여... 두려워해야 할 지리라...톨스토이가 결혼에 대해 입을 열였으니 말이다. 낭만적인 사고로 무장한 분들은 아예 이 책을 들지 않는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무서워,무서워 하면서 책을 내려 놓을지도 모른다. 냉정하고 신랄하며 빙퉁맞고, 무엇보다 자신이 결혼생활내내 괴로웠던 것들을 한치도 숨김없이 내뱉는데 그만 놀라고 말았다.이렇게 솔직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과 결혼 생활을 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웠을지 갑자기 톨스토이의 아내가 가엾어 졌을 정도다. 그가 어떤 대접을 받았던지간에 절대로 무너지거나, 당하고 살지만은 않았을 톨스토이. 그가 말하는 결혼의 실체는 바로 이렇다. 

귀족 가문이 자제로 흥청망청 바람둥이를 자처하며 살고 있던 주인공은 청순한 소녀를 만나 결혼을 한다. 소위 폭풍같은 사랑을 해서 맺게된 결혼, 아내의 가난이나 지위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은 순수한 사랑이 낳은 결과였다. 그때까지만해도 그는 사랑을 믿었다고 한다. 하지만 서서히 그 사랑도 결혼 생활을 행복하게 해주진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연이은 출산과 멀어진 거리, 남편은 점점 아내가 경멸스러워지고, 결국 아내는 자신의 불만은 외간남자와 바람 피우는 것으로 해소하려한다. 이에 질투에 눈이 먼 남편은 아내를 죽이고 말고... 정상참작을 받아 풀러난 그는 기차에 탄 사람에게 제발, 결혼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그건 인간이 절대 행복해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면서... 

소름끼칠 정도로 완벽한 결혼 보고서다. 물론 이렇게 살면 절대로 안 된다는 단서를 달아서...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인 여전히 이런 결혼 생활을 하며 살고 있을지, 안봐도 비디오란 생각에 씁쓸하기만 했다. 그러니 톨스토이의 책을 읽으신 분들은 들으라. 그의 말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시라. 요즘 같은 시대에 바람난 아내를 죽였다간, 자신의 죄책감은 물론이고 감옥에 가야 하니 말이다. 귀족도, 불륜도 사라진 이 시대에 정상참작이 내려지는 따위는 없을테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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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도 깜짝, 치과 의사도 깜짝! 비룡소의 그림동화 23
고미 타로 / 비룡소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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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 아픈 악어가 중대한 결심을 한다. 더 놀고 싶은 마음을 접고 치과로 향하는 악어, 표정이 자못 비장하다.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라는 두 사람, 악어는 치과의사를 보고, 치과의사는 당연히 악어를 보곤 깜짝 놀라고 만다. 한쪽 구석에 몰려 어떡하지를 외치는 두 사람--어찌나 귀엽던지...---무서워서 벌벌 떨던 둘은 용기를 내서 한번 해보기로 한다.썩은 이를 도려내고 드디어 치료를 마친 둘, 서로에게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헤어진다.---어찌나 공손하게 인사를 하던지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그렇게 친절한 인사 뒤에 숨은 그들의 진심은 바로 이런 것이었으니... 

" 싫어,싫어,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아."였다.!!!ㅋㅋㅋ 

이리하여 결론은 하나, 이를 닦자 이를 닦아가 되겠아니... 

서로에게 깜짝 놀라는 악어와 치과 의사의 독백이 재밌다. 서로를 싫어하고 무서워하며, 용기를 내고, 열심히 치료를 받는 모습을 대조해 그려놓았는데, 각각의 이유가 다르기 때문에 읽는 재미가 달랐다. 다만 조카의 경우는 치과를 아직 다닌 적이 없어서 왜 악어가 치과를 그렇게 무서워 하는지 이해를 못하는 것 같았다. 말하자면 아직 치과 버진이라고나 할까?  치과에 한번 다녀오고나면 아마 이 책의 의미가 더 확실하게 팍팍 와닿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은 분명 3세이전의 아이가 읽기 좋은 책이던데, 과연 3세 이전에 치과가 무섭다는걸 알만한 아이가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아이가 이해할만한 나이가 되면 이 책은 의미가 없어지는게 아닐까 싶어서 하는 소리다. 

표정의 익살맞은, 많이 않은 단어, 그림만으로 이해되는 상황설명등으로 유아정도의 아이가 읽어도 무방하지 않을까 한다. 물론 100%이해 할거라는건 장담하지 못하겠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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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전쟁 샘터 외국소설선 1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 샘터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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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살이 되면 어떤 기분이 될까? 어차피  살만큼 살았고, 앞으로 과거보다 더 영광된 나날이 올거라는 희망은 더 이상 없으며, 폐기처분 되기 일보직전처럼 여겨져 날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게 되려나? 여기 우리가 바로 그런 생각에 서 있을거란 생각에서 출발하는 소설이 있다. 

75살이 된 존은 우주 군대에 입대를 한다. 42년을 함께한 아내는 얼마전 뇌졸중으로 죽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는 소원한 상태, 나날이 나빠져가는 몸의 상태 역시 존의 마음을 심난하게 한다. 앞으로 잘해봤자 시체 신세밖엔 안 될거라는 비관적인 전망은 그로 하여금 우주 군대에 입대하도록 한다. 일단 입대한 뒤엔 어떻게 될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단지 새로운 몸과 삶이 주어진다는 것만 알고 들어간 우주 군대, 그는 곧 신체검사를 받고 새로운 몸을 이식받는다. 자신의 젊은 시절의 몸에 여러가지 신체 기능이 강화된 몸으로... 엣지있는 몸에 적응하느라 신나는 것도 잠시, 그들은 곧 우주 전쟁에 참가하게 되고, 그 전쟁이 상상외로 힘들다는걸 알게 된다.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순간들을 겪으면서 그와 동료들은 그들이 철저한 인간무기 병기로 바뀌여져 있음을 알게 된다. 동료들이 죽어가고, 자신들도 마찬가지도 낯선 것들을 무자비로 학살하는 가운데, 존은 낯선 행성에서 죽음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를 구해주려 다가온 사람을 보곤 그는 깜짝 놀라는데, 왜냐면 그것은 오래전에 죽은 그의 아내였기 때문이다.간신히 목숨을 건진 존은 아내와 꼭 닮은 그녀를 찾아 헤메는데... 

아내의 무덤을 들린뒤 군대에 입대한 한 노인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정말 멋졌다. 어차피 폐기처분될 몸을 가지고 궁싯대고 있음 뭐하나. 새로운 어드벤처를 찾아 우주군대에 입대한다는 설정의 이야기, 흥미진진했다. 어떤 세계가 펼쳐지는지 전혀 알지 못하면서 어차피 버린 인생이라며 군대에 입대하는 노인들로 만원인 우주선, 새로운 몸을 받고 회춘의 기쁨을 누리며, 새 삶에 기대를 하는 모습은 어쩜 그럴 수도 있겠다는 개연성도 가진다. 하지만 이 책에서의 장점은 딱 거기까지 였다. 그 부분을 넘어서면 막장 우주 드라마로 변하니 말이다. 아무리 sf물이라지만 깊이 없어요, 재미 없어요, 인간에 대한 예의 없어요,막말이 쓸데없이 쏟아져서 감정 이입 방해해요,이야기는 점점 어처구니 없어져가요, 나중에 어울리지도 않게 멜로 전선까지... 참 가관인 책이였다. 

에휴, 노인이 등장하는 소설이나 영화는 그렇잖아도 흥행에 실패한다고들 말하던데, 이건 실패해야 딱 알맞는 그런 소설이 아닌가 싶어 씁쓸했다. 무엇보다 마음에 안 들은 것은 75세의 나이에 여전히 20대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판단하는 주인공이었다. 비록 몸은 20대라도 70대 연륜의 이성과 깊이를 보여주면 뭐, 어떤가? 그랬다면 참 좋았으련만... 그냥 나이만 75세일뿐, 노인다운 연륜이라곤 찾아볼래야 볼 수 없었다. 작가는 노인이란, 그저 젊음을 그리워하고, 젊은 몸만 있다면 젊은이와 하나도 다를게 없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이 얼마나 서양인다운 얄팍하기 그지없는 생각인지... 읽다가 질려 버렸다. 노인전쟁이 아니라 쓰레기 전쟁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책, 노인 학대를 다룬 책과 별 다를게 없지 않을까 싶은 책이었다. 블러그를 통해 이 책이 나왔다고 하던데, 하긴 그것만 봐도 이 책의 진가를 알만도 하지 않는가 싶다. 그래도 혹시나 했던 나로써는 역시나 실망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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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별장, 그 후
유디트 헤르만 지음, 박양규 옮김 / 민음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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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유령일뿐>에 반해 찾아본 저자의 데뷔작. 역시 단편들인데, 데뷔작이라고 하나 그럭저럭 잘 쓰지 않았나 싶다. 물론 <단지 유령일뿐>에 비해 이야기를 구성하는 면이나 끌어가는 면에서 한참 모자라긴 함. 결말을 맺는 것을 도통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음. 우울하고 약간 몽환적인 경향에 산뜻한 개성을 지닌 사람들과는 상관없이, 그냥 인생을 흘려 보내는데 주력하는 사람들이 주로 등장인물로 등장함. 그런 사람이--좋게보면 초연하게 나쁘게 보면 좀비처럼-- 독일에선 각광받는 인간인가 ,아님 이 저자에게만 특이하게 영웅적으로 보이는 인물인가는 모르겠지만 중복되니 질리김 함. 만일 독일에서 이런 인간형이 각광을 받는 중이라면 독일은 한번 집단적으로 정신과적인 체크를 단단히 받아볼 필요가 있지 않는가 싶음. 퇴페적까지 아니더라도, 어쨌든 상관없다는 무기력주의, 패배주의, 내 인생 나몰라라 주의 등등 비관적이고 어떻게 해서도 행복해지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는 듯함. 우울한 비관주의 ,뭐 이 정도로 정의되려나? 

어쨌거나 그렇게 잘 사는 나라에서 그렇게 행복하지 못하다니 안 됐음. 다른 면에서 보면 착각이나 환상 속에서 살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나라 작가들보다 더 진보된 것이라고 봐질 수도 있는 면이겠으나... 어쨋꺼나 단편소설로써는 완성도가 떨어짐. 쉽게 말해 재미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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