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 사중주 : 마운트올리브 펭귄클래식 67
로렌스 더럴 지음, 김종식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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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고대하던 이집트 대사로 발령받은 마운트올리브는 과거의 연인인 레일라를 만날 생각에 가슴이 뛴다. 하지만 그가 도착한 이집트는 과거 그가 기억하던 그곳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고위직에 오른 그는 자신이 헤쳐 나가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음에 골치가 아프다. 작가이자 말단 외교관이던 퍼스워드는 네심을 혁명 전복자로 몰아 세우는 음모가 있다면서 마운트올리브에게 경고한다. 정치적인 희생양이 되지 말라고 네심에게 주의를 주는 퍼스워든과 마운트 올리브, 댄서 맬리사와 하룻밤을 보낸 퍼스워드는 그녀에게서 소름 끼치는 정보를 얻게 된다. 경악한 그는 그 날 밤 마운트 올리브에게 편지를 남긴 뒤 자살해 버린다.

 

다시 저스틴네심의 결혼 생활로 돌아가, 마운트 올리브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던 그 둘의 결혼의 실체를 들려준다. 자신의 민족인 (이집트내 기독교 민족)콥트 족의 세력을 통합하려던 네심은 동생 나로우즈가 반역자로 몰리자 자중할 것을 간청하다 거절당한다. 한편 네심의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마운트올리브에게 무릎을 꿇은 레일라는 정작 나로우즈가 암살되자 절규한다.

 

다른 책과는 달리 마운트 올리브을 중심으로 3인칭 시점으로 구술되고 있는 이 책은 당시 알렉산드리아를 휘감고 있던 정치적인 역학 관계를 통해 개인들에겐 보이지 않던 네심 부부의 정체가 폭로된다. 모든 이들에게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듯 보이는 네심 부부의 실체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 불륜녀와 오쟁이 진 남편을 연기하던 그 둘의 진정한 욕망은 무엇이었을까? 마운틴올리브가 영국 대사로써 직업적 양심과 네심과의 인연 사이에서 고민하는 가운데, 저스틴네심의 진짜 모습은 우리의 예상을 뒤집어 놓는다. 현재까지의 설명된 모든 것들이 실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이 판명되는 가운데, 정치라는 함수를 집어 넣어 보다 사건에 대한 보다 폭 넓은 전개가 이어진다. 다시 한번 판을 뒤집는 예상 못한 전개는 독자를 경악시키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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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사중주 : 발타자르 펭귄클래식 66
로렌스 더럴 지음, 권도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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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한적한 섬에서 맬라니의 아이를 키우면서 회상록을 쓴 달리는 그 원고를 발타자르에게 보낸다. 원고를 받은 발타자르는 빽빽하게 주석을 달아 다시 그에게 돌려 보낸다. 그가 잘못 알아도 한참 잘못 알고 있었다면서, 혹 진실을 감당할 용기가 있다면 자신의 주석을 읽어 보라면서. 발타자르의 말을 부인하던 달리는 저스틴이 진짜 사랑했던 사람이 작가인 퍼스워드였다는 말에 깜짝 놀란다. 자신은 그저 퍼스워드에게 향할 네심의 질투를 분산시키기 위한 방패막이었다는 것이다. 뜻밖의 사실에 소름이 끼친 달리는 진실을 찾아 사실을 짜맞추어 나가기 시작한다.

 

발타자르의 시선을 통해 알게된 사건의 과정은 이러했다. 딸의 실종으로 엉망진창이었던 저스틴은 사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네심의 청혼을 거절한다. 이에 네심은 언젠가는 자신을 사랑하게 될거라며 결혼식을 강행한다. 미모의 섹스 중독자와 명문 귀족의 결합, 곧 둘의 존재는 알렉산드리아 사교계의 화제가 되버린다. 하지만 아무리 앞태가 화려하다 한들 속까지 진실해질리는 없지 않는가. 사랑없는 결혼 생활에 질려버린 저스틴은 냉소적인 퍼스워든의 품으로 뛰어든다. 자신만만한 저스틴은 어떻게 해서든 퍼스워든의 사랑을 쟁취하겠다고 결심하나, 의외로 퍼스워든의 벽이 견고하기만 하다.

 

한편 저스틴의 사랑을 얻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실종된 저스틴의 딸을 찾던 네심은 아이가 이미 죽었단 말에 상심한다. 차마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지 못하는 네심을 저스틴은 의심한다. 둘 사이의 간격이 태평양만큼 넓어질 즈음, 달리가 나타나 맬라니와의 사각관계가 형성된다. 한편 네심의 어머니인 레일라는 젊은 시절의 연인인 마운트 올리브가 이집트 대사로 온다는 소식에 동요한다. 한때 <검은 제비>로 불리웠던 그녀는 병으로 미모가 훼손된지 오래, 은둔생활을 하던 그녀는 과연 자신이 마운트 올리브를 만날 용기를 낼 수 있을지 고민한다. 한편 네심의 언청이 동생 추남 나로우즈는 두어번 본 클레어에 대한 짝사랑에 어쩔 줄 몰라한다. 오랜만에 동생을 만난 네심은 야성적인 동생이 자칫 잘못하면 통제 불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우려한다.

 

비로서 퍼스워드에 대한 저스틴의 사랑을 알게 된 달리는 퍼스워든의 갑작스런 자살을 반추해본다. 과연 그는 왜 그렇게 갑작스럽게 자살한 것일까? 자살 현장에 네심이 와 있었던걸 기억한 달리는 그가 혹시 퍼스워드의 죽음에 관련된 것은 아닐까 추측한다.

 

1부의 모든 것을 뒤집는 반전이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작가의 영리한 배치에 허를 내두를 수밖엔 없었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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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리아 사중주 : 저스틴 펭귄클래식 65
로렌스 더럴 지음, 권도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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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알렉산드리아 사중주 연작의 첫 번째 편이다. 네 편에 걸쳐 이어지는 이야기의 얼개를 화자인 내 입장에서 회고하고 있는 책으로, 후편을 읽기 위한 초석쯤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화자인 나 달리는 한적한 섬에서 죽은 애인인 맬리사의 아이를 키우면서 글을 쓰고 있는 작가다. 위대한 작가가 되기엔 재능이 부족하단걸 알고 있는 나는 내 자신을 위해 --발표하긴 위함이 아닌--과거를 회상하는 글을 써 내려 가기 시작한다. 그의 생각은 자연스럽게 이집트의 북부 도시인 알렉산드리아에서 살았던 시기로 돌아간다. 거기서 그가 만났던 사람들의 면면은 다음과 같다. 신비한 매력의 소유자 정부 저스틴, 그녀의 부자 남편인 네심, 희생적으로 그를 사랑했던 애인 맬라니, 그리고 인습을 우습게 여기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의사 발타자르, 순수한 영혼이었던 화가 클레어, 승진에 목숨거는 외교관, 저스틴에게 버림 받은 후 상처를 소설로 승화시킨 전남편등...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묘하게 섞여들던 매혹의 도시 알렉산드리아, 그곳에서 저스틴과 사랑에 빠진 그는 곧 손에 쥐어지지 않는 사랑과 배신, 불륜과 질투, 순정과 열정, 이기심과 저항하기 힘든 유혹의 감정에 대해 알아 나가게 된다. 그렇다면 그 사건을 핵심 인물인 저스틴은 어떤 인물일까?

 

명문가 출신의 거부인 네심 아내 저스틴보잘것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남편을 잘 만나 귀부인이 된 여인이다. 어린 시절의 비참한 가난과 친척의 강간, 가출에 이은 첫 번째 남편과의 만남, 한때는 행복했으나 당사자 모두에게 상처를 남긴 채 끝난 결혼, 딸의 출산과 유괴에 따른 딸의 죽음... 가진 것이라곤 상처와 비루한 과거뿐인 그녀 앞에 네심이라는 백마 탄 기사가 나타난 것이다.  알렉산드리아 사람들 모두 그 둘에게 의구심과 걱정을 보내지만 예상과 달리 저스틴은 명문가의 아내 역활에 조용히 안착되어 간다. 사람들은 사교계에 완벽한 한 쌍이 등장한 것에 환영하면서 저스틴의 불운이 이제 끝났다고 부러워한다. 하지만 과연 그녀의 속사정도 그러했을까?

 

알렉산드리아를 떠도는 소문의 주요 등장인물인 저스틴을 만난 그는 명문가의 아내인 그녀가 가난한 자신을 그대로 인정한다는 사실에 우쭐해진다. 자연스럽게 연인사이로 발전하게 된 달리는 그녀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그리고 곧 그녀와의 관계를 이어간다는 것이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저스틴에겐 남편이, 그에겐 동거녀인 맬라니가 있었으니 말이다. 아내의 친구라는 사실만으로 그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던 신사 네심, 그만을 오매불망 쳐다 보고 사는 댄서 멜라니의 존재는 열정의 크기만큼 둘에게 죄책감을 불러 일으킨다. 더군다나 그는 점차 저스틴이 섹스 중독자이며 그 외에 다른 남자가 있다는걸 알게 된다. 저스틴도 그것을 자인하는 가운에 과연 사랑과 정사가 분리되어 질 수 있는 것인지 그는 자문하게 된다. 그 둘의 친구인 동성애자 의사 발타자르와 한때 저스틴을 사랑했던 클레어는 그 둘의 관계가 좋은 결말을 내지 못할 것이라면서 걱정한다. 하지만 사랑이란 금지하면 할수록 불이 붙는 법, 남편 몰래 밀회가 늘어나면서 둘의 대담함은 뻔뻔한 수준을 넘어서게 된다. 점차 둘의 관계가 비밀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서  저스틴은 남편의 질투에 몸서리치게 된다.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이 자명해 보이는 가운데, 제발 저린 그는 네심이 복수를 할 거라고 확신하게 된다. 하지만 네심은 그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아내때문에 비참해하는 남편을 연기할 뿐이다. 네심에게 연민을 느끼는 나, 그렇다면 과연 네심의 본심은 무엇이었을까? 저스틴이 떠나게 된 그 날의 사건을 배경으로 나는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곰곰이 따져보게 되는데...

 

오래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이 드디어 번역되어 나왔다는 사실에 우선 흥분을 했다. 로렌스 더럴의 명성은 그의 막내 동생인 제럴드 더렐에 의해 익히 알고 있었기에, 아마도 내 평생 읽지 못할거라 포기한 책을 이렇게 빨리 한글로 읽을 수 있어 반가웠다. 그가 어떤 스타일의 글을 쓰는지, 내진 어떤 내용의 글을 썼는지도 모른채 그의 책을 기다린 것에는 무엇보다 제럴드 더럴의 힘이 크다. 제럴드가 그의 깜찍하고 매력적인 책< 나의 특별한 동물 이야기>에서 묘사한 형의 모습은 잊기엔 너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언젠가는 위대한 작가가 될 거라고 호언 장담하고, 동생이 몰고온 온갖 사고뭉치와 소란을 "예술을 하는데 방해한다며" 엄마에게 불평하며, 자유로운 정신에 기발한 유머감각의 소유자인데다, 본인이 괴짜인 만큼이나 괴짜 친구들을 몰고 다니던 , 하루종일 타자기를 두들겨 댔다는 첫째 형이 바로 그였는데, 당시 얼뜨기 예술 추종가쯤으로 여겼던 그가 실제로 영국 대표 작가가 되었다는걸 알고는 무척 놀랐었다. 한 집안에서 뛰어난 문인이 둘씩이나 나오기란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그렇다보니 형 로렌스의 작품이 궁금해 지는 것은 당연했다. 특별한 형제의 특별한 책임이 확실해 보였으니까.

 

그렇다면 과연 그의 책은 내가 그렇게도 오매불망 기다린 보람이 있었을까? 한 편만 읽은 지금엔 ---실은 2권의 중간 정도 읽었지만--대충 만족스럽다. 첫 번째 권이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저스틴을 중심으로 벌어진 사랑 타령이 주라 좀 불안했는데, 2권째인 발타자르를 읽어보니 그게 다 작가의 전략이었다. 1권에서의 진실이 2권에서는 전혀 진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서 양상이 180도 달라지는데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다. 노련하게도 작가는 1권에선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사건을 전개 시켜 나가던데, 역시 영리한 작가의 탁월한 전개방식이란 생각이 든다. 하긴 명성이 괜히 생긴 것이겠는가. 주목할만한 무엇인가가 있으니 생긴 것이지...

 

결론적으로 2차대전 이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라는 이국적인 도시를 배경으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의 본성과 인간관계에의 복잡한 이야기를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필체로 그려내고 있던 소설로 보심 되겠다. 읽으면서 내내 과연 지금 이런 소설을 쓸만한 작가가 과연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없지 싶다. 스케일적인 면에서나, 인간 본성을 따지고 들어가는 집중력에서나 ,인물 개개인을 무리없이 설명해내는 이입능력면에서나, 현대 작가들은 이렇게 힘들게 쓰지 못한다. 읽어 보시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짐작하실 것이다. 소설적인 재미를 본격적으로 느껴보고 싶다시는 분들에게 강추! 첫 번째 권이라 추천작에 넣지만, 연작을 다 읽고 나선 어디로 배치될지 모르겠다. 지금까지의 인상으론 거장의 손에 잘 짜여진 페르시아 융단같은 이야기란 느낌이라 강추천작에 넣어지지 않을까 싶지만서도... 하니, 주의하실 것은 첫 권이 마음에 안 든다고 실망하시진 마시라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연작 소설이다. 네 권을 다 읽어야 그림이 비로서 완성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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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미래 - 사슴부족 이누이트들과 함께한 나날들
팔리 모왓 지음, 장석봉 옮김 / 달팽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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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팔리 모왓이 소문으로만 들어온 사슴부족을 찾아나선 이야기다. 2차대전이 끝난 뒤 북극을 탐험하고픈 열망에 시달리던 모왓은 어릴적 들었던 사슴 부족 이누이트들이 여전히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들을 찾아 무대포로 얼어붙은 땅 배런스에 들어간 그는 얼어죽거나 굶어죽는게 아닐까 라는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 다행히 이누이트와 독일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을 만나면서 간신히 굶어 죽는 참사는 면하게 된다. 그 혼혈인의 도움으로 사슴부족과 접촉하게 된 모왓은 서서히 그들에게 친구로 받아들여 진다. 그렇게 사슴 부족과 2년간의 동거를 시작한 모왓은 미개 종족이라고 알려진 일들이 대해 대부분 오해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다. 그들은 절대 미개한 종족이 아니었다. 단지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을뿐. 오히려 백인에게 착취를 당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었다. 상대가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그들은 순진하게 속고 있었고, 그것이 때론 한 가족의 떼죽음이란 처첨한 결과를 낳게 된다.

 

그렇게 모험삼아 사슴 부족을 찾아갔던 모왓은 백인들의 사슴 부족 학대를 목격하게 되면서 그들에 대한 몰이해가 학대를 부추긴다는 생각에 책을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을 보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한 종족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들의 환경을 고려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사슴 부족의 사슴에 대한 집착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모왓은 얼어붙은 땅 배런스에 살게 되면서 절실히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추운 계절에 살아남기 위해선 사슴의 지방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다. 언뜻 스치는 생각으론 사슴이 없으면 다른 물고기나 여우나 기타 동물을 잡아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실텐데, 그 음식들에는 겨울철을 나기 위한 순도 높은 지방 함량이 부족하다고 한다. 말하자면 그걸로는 굶어죽는다는 뜻이다.

 

다이어트가 주관심사중 하나인 우리로썬 이해하기 힘든 일이겠지만, 북극지방에서 죽지 않으려면 지방의 섭취가 절대적이라고 한다. 모왓 자신도 첫 겨울을 지내고 나서 몸이 무척 아팠는데 끓인 사슴 지방을 먹자 금세 낫는 경험을 한다. 추위엔 장사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경험을 통해 사슴 부족의 실정을 이해하게 된 모왓은 사슴이야말로 죽지 않기위해선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음식이고, 사슴을 숭배하게 된 것도 다 그런 이유란 것을 알게 된다.

 

TV를 통해 듣고 보기는 했지만, 모왓을 통해 듣는 북극의 생활 환경 조건은 나의 상상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 당신은 내년에 당신 가족이 다 함께 생존할 확률을 염두에 두고 살아가시는가? 아닐 것이다.  왜냐면 살아있을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슴 부족은 그렇지 못했다. 사슴을 얼마나 잡느냐에 따라 그 겨울을 나지 못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내 가족이 굶어 죽는걸 보느냐 마느냐가 사슴 사냥에 달린 것이라니, 사슴을 못 잡는 것이 그들에게 얼마나 큰 두려움일지 충분히 짐작 되실 것이다.

 

한 해의 생존이 단지 사냥한 사슴의 양으로 결정되는 환경에서 살다보니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 양식이 생겨나게 된다. 찾아온 손님은 절대 배 곯려 보내지 않고,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아이들을 위해 아이들은 최대한 다정하게 기르며, 노인들의 자살을 용감한 것으로 찬양하고, 정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죽은 가족들의 인육을 먹는걸 용인하는 등... 냉정하고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자들에겐 감상이란 사치를 누릴 여유가 없었다. 모왓의 설명을 듣다보니, 순간 오싹했다. 세상에나... 가족이 굶어 죽는걸 바라볼 수도 있는 환경에서 살아가다니... 그들의 두려움이 이해가 갔다. 더불어 내가 사슴 부족의 가장이라면 사슴에게 얼마나 잘 보이고 싶었을지도...

 

하나 북극에 적응 된 그들만의 문화는 필연적으로 백인들과 갈등을 낳게 된다. 이에 모왓은 강력하게 반발한다.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것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함이지 그들이 무식해서도 미개해서도 인간답지 않아서도 감정이 없어서도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과 함께 생활해 나가면서 그는 점차 그들이 얼마나 자존심이 강하고 인정이 넘치는 사람들인지, 백인들에겐 없는 고결함이 있는 종족인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런 자각은 그의 고민을 한층 더 깊어지게 한다. 사슴 부족에 대한 백인들의 몰 이해가 결국 그들을 망하게 할 거라는 생각때문이었다. 하여 그는 마지막 장을 사슴 부족에 대한 정확한 이해과 연민을 촉구하는데 다 할애하고 있었다. 그만큼 안타까웠다는 뜻일게다. 과연 그렇다면 그의 간절한 바람이 어떤 결실을 맺게 되었을까? 50년 후인 지금에도 사슴 부족은 생존하고 있을까? 혹 철저히 백인에게 융화되어 사라져 버린건 아닐까? 궁금해진다.

 

이 책을 읽은 수확이라면 사라져 가는 이누이트 사슴 부족에 대한 것들을 알게 해준 것이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임을, 단지 가혹한 환경에 적응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걸 설득력있게 보여 준 모왓의 문장력이 돋보인다. 초반이 좀 지루하긴 하지만 200페이지 중반을 넘어가면 모왓 특유의 글발이 등장하니 그때까지 참고 버티시면 읽을만해 질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추천하기 곤란한 이유는... 번역 때문이다. 종종 보이는 어색한 문장이 기분 좋은 독서를 방해하고 있었기에 하는 소리다. 하니, 제발 책 낼땐 최선을 다해 다듬어 내시라고 출판관련 분들에게 호소하고 싶다. 그래야 종이에게 덜 미안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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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과 책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정경원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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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비교적 뒤늦게 보르헤스를 알게 된 나는 허겁지겁 그의 책을 몽땅 다 해치웠다. 한 작가의 책을 한꺼번에 몰아 치웠을때의 장점이 그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이 잡힌 다는 것이라면 단점은 한동안 그의 책이라면 쳐다보기도 싫어진다는 것이다. 그때도 그랬다. 보르헤스라면 물려 버린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나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심드렁했었다. 뭐, 책이 어디 가나, 지금 읽어봤자 전에 읽었던 것과 별 다르지 않을거야. 그렇게 어엉 부영 망각의 세월이 흘러갔고, 올해 우연히 이 책이 서가에 꽂혀 있는걸 본 순간 다시 호기심이 일었다. 음, 보르헤스네, 무슨 말이 쓰여져 있을까? 다시 보르헤스를 읽어도 되는 시기가 왔음을 직감했다. 흠, 이젠 읽어도 되겠군, 적어도 질린 나머지 한 소리를 또 한다고는 하지 않을테니 말이다. 진짜로 그랬다. 보르헤스의 말이 새롭게 들려 왔으니 말이다. 더불어 그전에 느끼지 못했던 그의 사상에 대해 생각할 기회마저 얻었으니 일석이조다. 그런면에서 보면 책이란 것도 인연이 닿았을 때 제 값어치를 하게 되지 싶다. 감상할 준비가 안 되어 있거나, 받아들인 여력이 없다면 아무리 좋은 책도 의미가 없을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해독할 능력이 되지 못할 경우도 마찬가지겠지만서도...

 

보르헤스의 대표적 에세이만을 모은 에세이집이다. 오랜만에 읽은 보르헤스의 음성은 무척 다정하게 느껴졌는데, 그건  아마도 전에 좋아했던 작가를 다시 만났다는 반가움 때문도 있었을 거다. 비록 같은 음성이긴 했으나 소설에서 들려준 것과는 다른 느낌이 났는데, 어느정도는 직접적인 어투라서 그렇지 않는가 한다. 이 책에서도 그가 일흔이라는 나이에도 여전히 세상사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읽고 숙고하고 써내려 갔음을 볼 수 있었다. 문학과 정치, 나치즘과 위선, 우연히 재발견되는 천재들, 시대의 흐름을 뛰어 넘는 문학성, 장자의 나비와 콜리지의  꿈에서 드러난 나는 누군인가에 대한 질문, 다양한 문인들을 분석하던 비평가로써의 보르헤스등... 눈이 멀었음에도 그의 엄청난 독서력과 기억력엔 악 소리가 날 정도였는데, 어떻게 그 모든 것들을 다 외우고 이해하고 있는지 불가사의했다. 멀쩡한 눈을 갖고 있는 나는 어제 읽은 것도 벌써 잊어버리고 사는데 말이다. 천재란 우리의 상상을 가뿐히 뛰어 넘는 사람들이구나 싶어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그가 논하는 작가들 중엔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해가 팍팍 오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가 말하려 하는 바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에세이라 그가 쉽게 쓴 탓도 있지만, 다른 전작들에서 그가 집착하던 주제들이 반복되는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냉철한 지성과 애정이 담긴 삐딱한 유머, 과거와 현재에 대한 그의 견해들 모두 흥미진진하긴 했지만, 특히 그가 말년에 고심하던 것들을 들여다 볼 수 있었던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수확이었다. 뭐랄까, 그의 머리속을 거니는 듯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그가 자아와 나라는 간극 사이에서 해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상상력을 발휘하는 모습엔 놀라웠고, 인간이라는 위선 덩어리들이 잘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 궁리하는 모습에선  안도감이 들었다. 그는 인간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순진하거나 이상에 빠지거나 마냥 유토피아를 꿈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현실에 뿌리를 박고 있는 그의 혜안에도, 무엇하나 놓치지 않고 셈에 넣으려는 그의 통찰력에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의 목소리가 때론 예언자적으로 들려 오는 것도 다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시대를 막론하고 그의 통찰은 먹혀 들어가는 소리니 말이다. 더군다나 일흔의 나이에도 여전히 나는 누구일까로 궁싯대는 그의 모습, 적어도 난 나다. 라고 말하는 장면에선 어찌나 귀엽던지, 웃음이 나왔다. 허영기라곤 조금도 없는 그의 모습에 공감이 됐기 때문이다.

 

마침 이 책을 존 쿳시의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와 같이 읽었는데, 비교가 되는건 어쩔 수 없었다. 두 책 모두 작가가 일흔이 넘어 쓴 책들임에도 깊이에 있어 현저한 차이를 보였으니 말이다.  쿳시의 책을 보면서 늙는다는 것에 대해 추함과 서글픔을 느꼈는데, 그 분노와 두려움을 보르헤스의 책을 읽으며 달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자혜로운 할아버지 같던 그. 늙는다는게  단지 젊음을 상실하는 것과 동의어가 아님을 보여주어 그가 참 좋았다. 그가 한때 지구에 존재했었다는 것, 그를 통해 다양한 늙음이 있을 수 있다는 것과 그 가운데서 좋고 싫음을 골라낼 수 있음을 알게 해준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축복일지 모른다. 이 시대의 마지막 현자인 보르헤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맛 보기로 몇 문장 옮겨 적어본다. 내가 백마디를 주절대는 것보다 그게 더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밑줄 그은 말>

이 시대에 우리가 풀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는 (어느덧 잊혀 가고 있지만 한때 스펜서가 그의 명철한 예지력이 힘입어 지적하고 있듯이)국가가 점차적으로 개인의 행동에 침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공산주의라 불리기도 하고 때로는 나치즘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런 사회악과 싸워 나가는 속에서, 지금까지는 거의 무용지물이었거나 유해한 것으로 여겨지던 아르헨티나의 개인주의가 그 정당성과 당위성을 취득하게 될 것이다. 크게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향수에 젖어 나는 개인주의라는 것이 우리 아르헨티나 사람들과 어떤 식으로든 친화적 면이 있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가능성을 생각해본다. 다시 말해,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할 수있도록 해주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 말이다.---74 <서글픈 우리 개인주의>

 

1859년 마침내 피츠제랄드는 <루비야트> 초판을 발표한다. 그리고 그 후 많은 수정을 거쳐 조바심 어린 마음으로 새로운 판본을 소개한다. 그러던 중 기적이 일어난다. 어쩌다 시를 창작하게 된 페르시아의 천문학자와 완벽하게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동방의 책과 스페인의 책을 탐독한 영국 출신의 괴짜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그 둘 모두 닮지 않은 기이한 시인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146

 

웰스의 마지막 작품인 <신세계 입문>은 얼핏 보면 순전히 험담으로 일관한 백과사전같다. 쭉쭉 읽히는 이 책에서 그는 히틀러는 <어디 한 군데부러진 토끼 새끼> 같다고 비난하고, 괴링은 <밤새도록 온 도시의 깨진 파편을 쓸어 담고는 또 다시 파괴하는 도시의 학살자>라 비난하고, 이든을 <도저히 달랠길 없는 국제연맨의 핵심 홀아비>라 비난하고, 스탈린을 <심지어 프롤레타리아가 무엇인지, 어떻게 어디를 지해해야 할지 아는 사람 하나 없는데도 무조건 프롤레타리아의 독재를 변호한답시고 헛소리를 떠들어 대는 사람>이라고 비난하고, 어리석은 <철기병>을 비난하고, 프랑스군의 장군들을 <무능력과 체코슬로바티아산 탱크과 무전기를 통해 흘러든 풍문과 자전거를 타고 돌아 다니면 낭설을 퍼뜨리고 다니는 몇몇 사람들에게 패하고 만 주인공들>이라고 비난하며, 영국 귀족사회를 <패배에 대한 확고한 의지의 소유자>라 ...새뮤엘 호레어 경을 <정신적 도덕적 바보>라 비난하며, 영국인과 미국인을 스페인의 자유정신을 배신하였다고 비난하고,이 전쟁이 이념을 위한 전쟁일뿐 <당대의 무질서>가 빚어낸 하나의 범죄 행외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며, 이 세상을 낙원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괴링이나 히틀러 같은 악마들만 퇴치하거나 제거하면 충분할 것이라고 믿는 순진한 이들을 비난한다....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웰스는 나치가 아니었다. 이 일이 믿기 어려운 것은 나와 동시대를 산 모든 이들은 그 사실을 부정하거나 스스로 모르고 있을 뿐 거의 모두 나치였기 때문이다.--226

 

< 나는 사람을 두고 어느 인종에 속하는지 따지지 않는다. 그저 그가 한 인간인 것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어느 누구도 다른 이보다 열등하지 않다.>같은 마크 트웨인의 지혜로운 언급을 들이대봤자 아무 소용 없을 뿐이다.--227

 

작가는 자신보다 뛰어난 인물을 창조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나의 이런 부정 속에는 지적인 면과 윤리적인 면이 모두 포함된다. 나는 우리에게서 우리의 전성기 때보다 더 명석하고 고매한  창조물들이 생겨날 수없다고 생각한다.--285

 

사람들은 곧잘 절망과 고뇌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이는 허영심에 대한 아무에 다름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때 사람들은 비윤리적이다. 반면에 버나드 쇼의 작품은 해방의 운치를 남긴다. 스토아 학파나 북유럽의 무훈 신화 같은 운치를--288

 

쇼펜하우어는 사상가가 된다는 것 역시 환자나 여자에게 무시당한 남자가 되는 것만큼이나 참으로 허망한 일이며, 본질적으로는 그는 자신이 또 다른 무엇임을 잘 알고 있었다.--296

 

나는 사랑이나 우정의 상실 때문에 슬퍼질 때면 잃은 것은 단지 원래부터 내가 소유하지 않았던 것들뿐이라고 생각해본다.--317

 

내 나이 일흔이 훌쩍 넘었다. 이 나이가 되면 우연이나 새로움 같은 것이 진실이라 믿는 것보다 중요할 수 없다.--339

 

난 우상타파주의적 기질을 가지고 있지 않다. 나이 서른 무렵, 마세오니오 페르난데스의 영향하에 나는 미美라는 것이 몇몇 소수 작가의 특권이라고 믿었었는데, 이제는 아름다움이 모두의 것이며 우연히 뒤적이던 책 어느 페이지나 길거리에서 나누는 대화 속에서도 숨어 있다는걸 알게 되었다.---다시 말하거니와 고전은 무슨 대단한 정점을 지닌 책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온갖 이유 때문에 열의와 알 수없는 공경심을 갖고 읽게 되는 그런 책이다.---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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