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방의 빛 - 시인이 말하는 호퍼
마크 스트랜드 지음, 박상미 옮김 / 한길아트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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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서평집을 좋아하지도 잘 읽지도 않는다. 이유는 내가 읽으면 그 뿐인 책을 굳이 남의 설명까지 들어가며 읽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때문이다. 거기다 그들의 해석이 나의 공감을 사는 경우란 극히 드물어서, 이젠 아예 시간 낭비를 줄이는 취지에서라도 왠만하면 서평집은 들지 않는 편이다.  

 

같은 이유로 미술 작품을 해석하거나 평론한 글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글들을 읽을 때도 이런 저런 작품이 있다는 정보를 얻는 정도에서 그칠뿐 장황하게 이어진 글들은 건너뛰는 편이다. 절대 내 탓이라 할 수 없는 것이, 만약 공감이 가는 글이었다면 세상 어떤 것도 내가 그 글을 다 읽는걸 방해하진 못햇을테니 말이다. 아쉽게도 공감이 갈만큼 탁월한 글을 쓰는 작가들은 정말로 드물다. 대부분 시도는 좋았다는 선에서 그치거나, 잘 해봐야 안목은 출중하네 정도에서 그치기 마련이다. 그럴땐 차라리 그림을 보는게 낫다. 그것이 작가의 백마디 천마디 말보다 이해가 빠르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장점을 들라면 단연코 호퍼의 그림이었다. 시인이라는 작가가 이러저러한 말로 호퍼의 그림을 평하고 있긴 했지만 딱히 공감이 가는 문장들은 발견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역자인 박 상미님이 호퍼의 그림을 소개하기 위해 부랴부랴 이 책을 번역했다가, 나중에서야 이 책이 호퍼의 책이 아니라 마크 스트랜드의 글이라는걸 깨달았다는 말에 웃고 말았다. 역자가 그런 말을 쓰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실수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맞다. 이 책은 호퍼의 책이 아니다. 마크 스트랜드가 호퍼의 그림을 보면서 든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을 끄적인것이니 마크 스트랜드의 책이다. 그의 글이 주연이라면 호퍼의 그림은 조연이다. 하지만 주연보다 출중한 연기를 펼치는 조연처럼 이 책에서도 빛나는건 호퍼의 그림이었다. 하여 마크 스트랜드의 글을 읽기는 해도 그것보다 눈길이 머무는건 호퍼의 그림쪽이었다. 종종 긴 설명을 참지 못하면 곧장 호퍼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의 그림을 한참 들여다본 뒤 스트랜드의 글을 읽어본다. 내가 느낀 것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다. 공감이 별로 안 된다.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구나, 내진 그렇게도 보이는가 보지? 정도의 의미밖에는 없다. 종내 심드렁해진다.

 

다시 호퍼의 그림을 들여다본다. 집중해서 들여다볼 만한 가치가 있다. 제일 맘에 드는 작품은 맨 처음 나온< 나이트 호크>와 마지막< 빈방의 빛>이다. 왜 그 작품이 이 책의 제목이 되었는지 알 것 같다. 그냥 그림만 들여다 본다. 현란한 미사여구로 칭찬을 할 수는 없지만 감상은 하는덴 지장이 없다. 역자가 애를 써서 칼라 도판으로 이 책을 내놓은 이유를 알 것 같다. 아마도 그녀의 진심은 호퍼의 그림을 소개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리하여 (원작과는 달리 )이 책은 호퍼의 책이 되었다. 글보다 그림이 더 공감이 가니 어쩔 수 없다.  하니 혹 이 책을 집어드신 분들은 글은 건너뛴다 해도 그림은 꼭 감상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호퍼의 주요 작품들을 책 한권에서 한꺼번에 감상한다는 것 자체가 좋은 기회니 말이다. 호퍼를 좋아하건 아니건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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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 손안에 넣기 - 미술가, 딜러, 경매 하우스, 그리고 컬렉터들의 숨은 이야기
리처드 폴스키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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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연한 걸작>을 너무도 감명깊게 읽은 탓에 그 책의 역자인 박상미님이 번역한 책을 다 읽고 있는 중이다. 그 중에 걸린 <앤디 워홀 손안에 넣기>, 읽어보니 물론 <우연한 걸작>에 겨룰만한 걸작은 아니었으나, 안 읽으면 섭섭했을 만한 책이었다. 내용은 제목 그대로 앤디 워홀을 사기 위한 12년간의 여정을 그린 것으로,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느낄 독자들을 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미술계의 속사정 역시 생생하게 까발려 주고 있다는게 특징이다.

 

미술을 보는 안목은 있으나 돈이 없는 관계로 딜러에--쉽게 말해 미술품 장사-- 만족해야 했던 리처드 폴스키는 어느날 앤디 워홀의 작품을 갖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당시는 앤디가 뜨긴 했지만 생존중이여서 그다지 가격이 높지 않을 때였다고 한다. 작품성 높지만 잘 안 알려진--다른 말로 하면 싼 --작품을 알아보던 폴스키는 그 와중에 앤디 워홀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작품을 살 기회를 영영 놓친 것이 아닌가 절망하던 그가 마침내 12년만에 앤디의 자화상을 얻게 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들이 그려진 책인데, 90년대를 거치던 그 시기가 미술계의 활황과 불황을 두루 거치던 시기라서 작품을 사고 파는 과정들의 이야기가 마냥 흥미진진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놀라워던 점은 예술품의 구매 과정이 예술 애호의 측면이라기보단 주식 거래와 비슷했단 점이었다. 다시 말해 투기라는 것이다. 단지 주식은 유동성이 비교적 큰 반면, 예술품은 그렇지 않다라는 점이 다르다면 다를까? 하여 순진한 눈으로 예술 작품을 바라보던 나로써는 이것이 나중에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로 예술성을 판단한다는 딜러들의 심리가 가히 놀라웠다. 그런면에서 보면 가난한 예술가는 싫다면서 돈을 더 받아내기 위해 머리를 썼다는 앤디 워홀이 이해도 된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챙기는 구도에서 곰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테니 말이다.

 

거기에 미술작품을 사는 돈 많은 컬랙터 들이나 괴짜 딜러들, 경매 회사, 천재성 만큼이나 화려한 뒷담화를 남겨주던  화가들의 이야기 역시 이 책을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마치 작가가 " 나, 이 책 성공 못 시키면 굶어 죽어요 "라는 자세로 미술계를 적나라하게 까발려 주고 있는데다 미술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알기 힘든 이야기들이라,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부자들의 허세와 가식, 거만과 거드름을 누구보다 싫어하던 작가 역시 그들 못지 않게 속물이라는 것은 얼마나 아이러니 하던지... 부자들이 자신의 취향을 과시하는 사치의 장이 되어버린 미술계를 보면서, 천재의 재능과 광기가 빚어낸 예술 작품들이 결국엔 사고 파는 물건에 지나지 않는 다는 사실은 날 조금은 씁쓸하게 했다. 하니, 누구의 어떤 그림이 몇 백억에 팔린다는 소리에 그저 솔깃해 하는 우리들은 한번쯤은 생각해볼 일이다. 우린 그 작품의 내용이 아니라 가격에 경이를 보낸 것은 아닌지 하고 말이다. 과연 그것이 과연 그것을 창작해 낸 작가의 의도였을까 하는 것도...

 

어쨌든지 간에 미술계가 그럴듯하게 쳐 놓은 환상을 제대로 깨부셔주는 괜찮은 책이었다. 어깨에 힘 들어가지 않는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유머감각이 넘치는 것도 장점인데, 아마도 사석에서 이 책의 작가를 만나면 무척 재미있게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닐까 추측 된다. 쉽게 읽히는데다, 재미난 이야기로 가득하고, 앤디 워홀에 대한 새로운 면을 일깨워 주는데다, 허상도 부셔주는 판이니, 미술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입문서로도 추천하고 싶어진다. 그렇다. 예술을 한다고 해서 어디 다를게 있겠는가. 인간적인거, 그것이야말로 어디서나 늘 통하는 것이지 싶다. 또 그것이 정답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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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결혼했다 - 우크라이나어로 쓴 트랙터의 짧은 역사
마리나 레비츠카 지음, 노진선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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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사회주의적 좌파에 자유주의적인 사고를 지녔다고 생각하던 나데즈다에게 여든 넷의 아버지가 결혼을 통보해 온다. 상대는 그녀보다 열 살이나 어린 서른 일곱의 우크라이나 여자, 아버지가 노망 난게 분명하다고 판단한 나데즈다는 2년전 엄마가 돌아가신 뒤 관계가 소원해진 언니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길길이 날 뛰는 언니와 아이처럼 달래는 나데즈다의 협공 속에서도 아버지의 결심은 흔들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결국 새 엄마가 될 발렌티나를 만나 본 나데즈다는 한층 더 충격에 빠진다. 두꺼운 화장에 큰 가슴을 강조하는 요란한 차림새의 그녀는 한마디로 천박함의 결정체였던 것, 이젠 아버지가 그 여자에게 빠졌다는 것이 놀라운게 아니라 그녀가 아빠와 결혼하겠다고 나섰다는 것이 안스러운 나데즈다는 어떻게 해서든 그 둘의 결혼을 저지하기 위해 앞장을 선다. 하지만 십대도 아닌데 팔순의 아버지를 딸이 어떻게 막겠는가? 결국 결혼식을 치른 아버지는 가슴 크기 만큼이나 무자비한 발렌티나와 함께 사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는걸 알게 된다. 아이 하나 잘 키워 보겠다고 자신의 나이 곱절이나 되는 늙은 영감하고 결혼한 발렌티나, 주제 파악은 고사하고 발렌티나의 딱한 처지를 이용해 젊은 아내를 맞이한 한심한 아버지 사이에서 갈등하던 나데즈다는 학대를 당하고 있다는 아버지의 전화에 다시 한번 아버지의 집으로 향하는데...

 

식상한 제목때문에 별 기대를 안 했었는데, 예상 밖으로 참신하게 소재를 풀어내던 책이었다.  뜬금없는 아버지의 결혼 선언에 엄마의 유산 문제로 사이가 소원했던 딸들이 "새엄마 떼어내기 "프로젝트를 계획하면서 친해지는 과정들 역시 흥미진진했다. 자고로 내분을 잠재우는데는 공통의 적만큼 좋은게 없는가보다.  한없이 난감한 상황들을 설득력있게 풀어나가는 작가의 재치가 돋보던데, 작가 자신의 집안 문제를 쓴 거라 그런가 자연스러운 전개가 마치 내 일인양 읽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넘치지 않는 유머 역시 일품으로, 이렇게 추잡한 소재를 가지고 웃긴다는게 쉽지 않다는걸 감안하면 잘 쓴 책이긴 한 것 같다. 그나저나 남의 일이니 웃으며 읽었지만, 만약 내가 이 책의 주인공이라면 절대 웃음이 나오진 못했을 것이다. 그런면에서 아빠가 결혼한다는 황당한 상황을 블랙 유머로 승화시킨 작가의 역량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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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달 위를 걷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3
샤론 크리치 지음, 김영진 옮김 / 비룡소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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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아무말 없이 집을 나간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다. 엄마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 확실해지자 아빠는 오하이오 농장을 떠나 도시로 이사를 한다. 평생 농장에서 살았던 열 셋 소녀 샐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든 것이 뒤바뀐 것이 맘에 들지 않는다. 아빠는 새로운 아줌마를 소개하며 내게 무언가 설명하려 애를 쓰지만 샐의 마음은 닫힌지 오래다. 결국 아빠의 부모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서서 엄마를 찾아가보는게 어떤지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할아버지의 길 눈이 어둡다는게 핑계긴 하지만 샐은 엄마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왜 나를 떠났느나고, 나를 사랑하면서 어떻게 나를 버릴 수 있느냐고 묻고 싶은 샐, 과연 그녀의 엄마 찾기 여정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가출한 엄마를 찾아가는 여정이라... 식상하다고 생각했다. 마치 내 생각을 아는 듯 작가는 한 공간에 조부모와 함께 며칠간 여행을 하게 된 샐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친구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으로 한 가지 이야기를 덧 붙여 나간다. 전학 간 학교에서 새 친구들을 사귀겐 된 샐은 이 세상 사람들이 다 똑같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개성 넘치는 친구들과 어영부영 익숙해진 샐은 모든 사람들을 정신 병자로 취급하는 피비와 단짝이 된다. 피비의 가족들과도 만나게 된 샐은 기이하게 완벽한 그녀의 가족들에 당황한다. 완고한 남편의 요구에 맞춰 완벽한 주부를 연기하고 있던 피비의 엄마는 어느날 아무소리없이 사라지고 만다. 완벽한 그 무엇이 깨진 것이다. 엄마의 부재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잘 아는 샐은 피비와 함께 그녀의 엄마를 찾아 나선다. 몇 번의 고통스런 좌절을 겪은 뒤 그 둘은 젊은 대학생과 함께 있는 엄마를 발견하게 되는데... 과연 두 친구의 엄마들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사춘기 아이들의 호들갑스런 일상을 배경으로 잘 그려진 성장소설이다. < 그의 모카신을 신고 두 개의 달 뒤를 걸어 볼때까지 그 사람들 판단하지 마세요.> 라는 인디아인들의 격언을 바탕으로, 엄마를 이해하기 위해 여행을 나선 샐, 그녀가 그 여행을 나설 수 밖엔 없었던 사정을 알게 되자 샐의 고통이 이해가 갔다. 그리고 그 여행이 반드시 필요한 여정이었다는 것도. 그렇다. 겉으로 보기엔 이해 안 가는 행동도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면 수긍 되기 마련이다. 엄마의 입장이 되어 여행에 나설 수 밖엔 없었던 샐이 그 여행을 헤쳐 나가는 과정을 보는 것이 이 책의 백미였는데, 비교적 유치하거나 식상하지 않게 잘 그려내지 않았나 한다. 결국 엄마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던 샐이 얼마나 자랑스럽던지...죽음과 화해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니 말이다. 하긴 모른다. 소설속의 설정이라 그렇게 쉽게 화해가 된 것인지도, 하지만 그런들 어떠리. 감동이 있고, 배우는 게 있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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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버드의 어리석음 - 세상을 바꾸지 않은 열세 사람 이야기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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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책을 집어 들었던 나는 저자가 <네모난 못>의 저자 폴 콜린스라는걸 알고 반가움이 앞섰다. 엥, 모건의 아빠네. 우리나라에선 비교적 지명도가 낮은 그의 책이 다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네모난 못>을 그렇게 감동적으로 읽고도 그의 다른 원서를 챙겨볼 생각을 못한 나로써는 한국말로 읽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여기선 모건의 아빠가 무슨 말을 하려나? 마치 내가 잘 아는 사람이 쓴 글을 보듯 그렇게 책을 읽어 내려 갔다. 

 

모건의 아빠인 폴 콜린스는 아들을 아웃 사이더로 두어서 그런지 역사 속에서도 아웃 사이더에게 관심이 가는가 보았다. 부제가 이름햐여, " 세상을 바꾸지 않은 열세 사람 이야기", 이 책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딱 그런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니 말이다. 학부시절 대학 교수의 심부름으로 과거 신문을 복사하던 폴 콜린스는 우리가 상상하던 것과는 다른 과거의 모습에 흥미를 느낀다. 그 속엔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했던 것이다. 특히 그의 흥미를 끈 것은 정말로 열정적으로 살았으나 지금은 무참히 망각속으로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였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지금 인기 있는 사람들이 미래엔 무명씨가 된다는 것이 상상이 안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이 후대에서도 여전히 기억된다는 것은 실은 대단히 기이하고 드문 일이다. 호머나 세익스피어가 얼마나 천재인지는 알고 싶다면 굳이 그의 책을 읽지 않다고 된다. 간단한 셈으로도 이해 가능하니 말이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고 사라졌는지 혹 짐작이 가시는가? 대략 추측만으로도 현기증이 나는 숫자다. 사라진 수 많은 사람들속에서 여전히 기억되는 사람들이라면 천재가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그건 단지 운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운이 좋아 한 세대를 풍미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몇 세대를 건너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니, 모든 사람들이 다 천재가 아니란 것은 자명하고, 또 그들조차 이름을 후대에 남기지도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그렇게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사람들 가운데, 이 저자가 주목한 것은 당대에는 유명했으니 지금은 이름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명단이다. 당대 워낙 초절정의 인기를 누린 사람들이라 그 시대 사람들 생각으로 영원히 그 인기가 유지될거라 생각되었던 사람들 말이다. 물론 그들의 생각을 틀렸다. 그후론 아무도 그들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일례로 이 책의 제목인 존 밴버드는 '움직이는 파노라마'라는 거대한 두루마기 예술작품을 선보여 한때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예술가로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의 부와 예술은 한순간에 몰락하여 결국 그는 무일푼으로 죽게 된다. 자신을 최초로 유럽에 온 타이완 인이라고 속이고 다녔던 조지 살마나자르는 어떤가? 영국 최고의 사기꾼이라고 할만한 인물이었던 그는 한번도 가본 적 없는 타이완의 언어와 풍습을 적은 책을 출간해 유명해진다. 금발에 백인이었던 그가 동양인으로 행세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시대 아무도 동양인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무지해서 용납 된 사기라 할지라도 가보지도 못한 태생이라 우기고, 그 나라의 언어에 풍습을 기록한 책까지 냈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그야말로 한 인간이 순식간에 한 나라를 만들어 낸 것 아니겠는가.

 

미국 뉴욕 중심가에 최초로 '기압 지하철'을 만들고자 했던 앨프리드 엘리 비치는 아이디어를 끝까지 밀어붙이다 몰락한 인물의 전형을 보여주고, 롱펠로우와 함께 당대 최고 시인이라 불린 사람이라었으나 순식간에 조롱거리로 전락한 마틴 파퀘 터퍼는 인기라는 것이 얼마나 가변적인 것인가 생각하게 했다. 근엄하던 빅토리아 시대 컬트적인 연기를 선보여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왔지만 아무도 그가 재능있는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로버트 코츠는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자의 비애를 보여준다.  

 

기타 전세계의 과학자, 화가 ,작가, 사업가, 모험가,신학자, 작가, 농부등, 광기에 가까운 열정으로 자신이 하는 일에 매진했으나 어딘지 핀트가 맞지 않아 역사의 뒤안길 속으로 사라진 사람들 대한 이야기 열 세편이 수록되어 있었다. 그 중 내가 가장 안타까웠던 사람은 딜리아 베이컨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탁월한 지성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녀를 망가뜨린 것은 3류 배우에 불과한 세익스피어가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없을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 추론을 증명하겠다고 장학금까지 받고 영국으로 떠난 그녀는 결국 미쳐서 미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미쳤다고 글을 못쓰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탁월했던 지성만큼이나 집요한 집착의 소유자였던 그녀는 세익스피어는 허구의 인물이고 위대한 작품을 쓴 사람은 베이컨이라는 걸 증명한 책을 내고 만다. 그리고 그 책은 그녀를 마지막까지 지지한 사람들에게 절망을 안겨 준다. 말이 되지 않은 문장들을 주절주절 늘어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가 좋은 사람은 미쳐도 이성적으로 미치기 때문에 잘 알 수 없다는걸 알려준 사례로, 요즘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녀의 인생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그만큼 안타까웠다는 뜻일 것이다.  

 

이봐, 모건( 폴 콜린스의 아들 이름), 네 아빠는 원래 이렇게 이렇게 글을 쓰는구나. 이 책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성큼성큼 거칠것 없이 시원하게 써 내려간 문장들을 읽어가면서 <네모난 못>이 폴 콜린스에게 얼마나 힘든 작업이었을지 짐작하게 했다. 두 책 다  잘 쓴 글이긴 했으나 <네모난 못>이 심장으로 쓴 글이라면 이 책은 머리를 잘 굴려서 쓴 글이란 것이 한 눈에 보였으니 말이다. 영리하게 글을 써내려 가는 지성에 ,역사 밖으로 사라진 사람들을 향한 아련한 연민이 여전히 읽는 이의 마음을 울리고 있었으나, <네모난 못>만큼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는게 더 힘든 법인가보다. 성공할시 그만큼 울림이 크겠지만서도... 어쨌거나 탁월한 전업 작가로써 폴 콜린스를 보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적어도 모건이 돈이 없어 교육을 못 받는 일은 없겠네 싶어 안심이 됐다고나 할까.

 

그외에 과연 세상을 바꾸는 성공이란 얼마나 드문 일인가 라는 생각도 든다. 늘 많은 성공 스토리를 들으며 부러워하는 우리들은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과연 그들의 성공이란 것이 마지막까지 성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인생이란 순간이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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