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코르뷔지에 - 자연 기하학 그리고 인간, 세계건축산책 1
도미나가 유주루 지음, 김인산 옮김, 우영선 감수 / 르네상스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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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코르뷔지에는 이미< 동방기행> 이라는 책에서 만난 작가이다. 본업이야 건축가이시지만 아마 화가로써도 작가로써도 손색이 없던 분이셨던 모양이다. 한 분야만이라도 성공한다는게 쉽지 않다는걸 감안하면 손대는 것마다 주목받는 이 양반,  천재긴 하셨나 보다. 동방기행이라는 책을 분명 읽기는 했는데 책이 예뻤다는걸 제외하곤 기억에 남는게 없는걸 보다. 그다지 인상적이진 못했다는 뜻이다. 아마 그땐 뭘 몰라서 그랬을 수도 있고,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 그랬을 수도 있다.다른 리뷰어의 말에 의하면 그렇다고 하니 말이다. 아님 그저 책 자체로 인상적이지 못했을수도 있지만서도, 어쨋거나 르 코르뷔지에를 염모하는 사람들에겐 그 책이 성경같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미래의 그를 만든 토대가 된 여행이었다고 하니 말이다. 

말이 옆으로 샜다. 이 책은 르 코르뷔지에를 존경하는 일본인 건축가가 그의 일생을 따라 여행한 것을 정리한 책이다. 마치 좋아하는 작가의 일생을 따라가는 것처럼 그 역시 르 코르뷔지에의 여정을 숨 죽이며 따라다니고 있었다.그의 어린 시절 자연과의 감화를 각인시켜준 스위스 쥐라 숲,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건축을 구상하게 된 파리, 아뜰리에와 가정집을 혼합시킨 라로슈 주택, 외딴 숲에 지중해를 연상시키게 하는 맑고 깨끗한 시간을 만들어낸 사보아 주택, 문외한이 봐도 잊기 힘든 개성을 지닌 롱상 성당, 기하학적인 풍경을 만들어낸 수도원과 그가 쉬기 위한 공간으로 건축한 오두막등...  

 르 코르뷔지에의 삶과 그의 건축물을 간략적으로 읽어내기 부족함이 없었다. 아마도 그건 저자 자신이 그를 너무도 존경하고 조금이라도 배우려 하는 자세 때문이 아닐까 한다. 무엇보다 그의 건축물 자체를 다양한 시선에서 잡은 사진으로 통해 설명해 주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한번 보느니만 못하니 말이다. 작가가 왜 그리도 그를 존경하는지 이해가 되었다고나 할까. 어떻게 천재는 만들어지고 성공하게 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위대한 건축물들을 그냥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던 나로써는 그 안에 수많은 노고와 비밀과 애정과 열정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말았다. 물론 천재적인 아이디어 역시... 

만일 외계인이 지구에 도착해 우리가 만들어낸 건축물들을 본다면 그가 아무리 지적으로 우수한 별에서 왔다고 해도 인간의 건축물의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낼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만든 위대한 걸작들이니 말이다. 르 코르뷔지에가 그랬던 것처럼, 비록 그가 자각을 못했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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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 죽지 마, 사랑할 거야 - 지상에서 보낸 딸과의 마지막 시간
김효선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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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살의 어여쁜 딸을 백혈병으로 잃어버린 작가가 딸을 그리며 쓴 병상일지다. 일상이 계속될 줄 알았기에 별로 소중한 줄 모르고 살던 저자는 고2가 된 딸 서연이가 이유없이 피곤해 하는걸 무심히 넘긴다. 딸이 급성 백혈병에 걸렸다는 진단에 혼비백산 한 가족들은 황급히 치료에 나서기 시작한다. 열악한 병실 환경, 죽는 것보다 더하지 않는 치료 과정, 일주일만에 450만원이 나온 치료비, 딸 침대 옆에서 쪽잠을 자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린 저자는 자신이 참담한 세상이 발을 내디딘 것에 놀라고 만다. 근사하고 멋지게 죽어가는 백혈병이란 그야말로 드라마속에서나 가능한 것이었던 것이다. 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만이 쓸 수 있는 환상이라는 것을. 

 

종종 사람들이 가진 환상들이 안타까울 때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안스러운 것은 그들의 환상이 깨지는 걸 볼 때이다. 환상이 깨지는 것은 현실과 맞닺뜨렸다는 뜻이고, 만약 그것이 자식의 죽음이라면, 아무리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 해도 환상 속에서 사는 것이 더 낫다. 환상속에 산다고 해서 죽을만치 고통스러울리는 없겠지만 현실이 어디 그런가. 회복할 길 없는 상처를 부여잡고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더군다나 죽음이란 타협이 안되는 상대다. 아무리 내가 잘못 했다고 용서를 빌어도, 환상속에 살았던 것을 회개해도, 현실에 발 딪고 살아 보겠다고 다짐을 해도 죽음이란 놈은 우리를 잘 봐주지 않는다. 냉대를 받고 거절 당한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우리는 마음에 화상을 입게 된다. 그것도 새 살이 날까 의심스러운 3도 화상을... 과연 그럴때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이야말로 아직도 내가 풀지 못한 숙제중 하나다. 아마도 이 책의 저자 역시 마찬가지 심정이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을 보면서 감동적이던 것은 가족간의 넘치는 사랑이었다. 어떤 병이나 다 그렇겠지만 간병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백혈병이란 무시무시한 병과 싸운다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가족들을 둔 서연이야말로 정말로 축복받은 삶을 살았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딸을 향한 애 끓는 그리움이나 처절한 안타까움이 해소되진 못할겠지만서도.

 

너무도 일찍 떠난 딸을 그리며 쓴 논픽션,  의연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던 서연이나, 오늘도 내일도 그 딸을 잊지 못할 엄마의 모정이 안스럽기만 했다. 하지만 책이란 점에서 평가를 하자면, 병이 악화되는 과정들을 평면적으로 나열하는데 그치는데다 위급 상황이 되면 주님을 외치는 것이 별로였다. 쉽게 말해 드라마나 영화나 책에서 보던 다른 병상일지와 별다를게 없었다는 뜻이다. 비록 저자가 드라마 작가라고는 하나, 아마도 아직까진 딸의 죽음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새로운 시선으로 상황을 해석해내진 못한 모양이다. 아니면 그녀가 느낀 것이 이것이 다 던가. 이것만으론? 좋은 책이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죽음에 대해 슬픔이나 감상을 갖게 되는건 누구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그걸 읽기 위해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난 그렇다. 타인의 감상을 읽으려 책을 읽지 않는다. 그것은 진부할 뿐이니까. 그보다 직접적인 이유를 대라면 그것만으론 고통이 치유되지 않는다는걸 알기 때문이다. 더 파고 들어가야 했다. 자신이 아직까지 이해하지도 소화하지도 못한 일들을 써 내다니, 일기와 다를게 뭐가 있겠는가. 죽음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면, 우리는 최대한 답을 알아내야 한다. 그것이 끝나지 않는한 우린 결코 편히 쉴 수 없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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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떠나가면
레이 클룬 지음, 공경희 옮김 / 그책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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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내와 깜찍한 딸을 둔 댄은 끝없이 다양한 여자들의 세계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벗어나질 못해 암스텔담의 여자들 반과 자고 다니는 남자다. 자신을 심각한 고독공포증이라고 소개하면서 --매우 운 나쁘게도 불치의 케이스?--그다지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열심히 설명하는 댄. 난 섹스 중독을 고독 공포증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걸 이 책을 보고 처음 알았다. 홍보 회사를 운영하다보니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뉘앙스를 확실히 이용하는 모양이던데, 그렇다고 본질이 달라지겠는가? 오히려 그를 더 우습게 보이게 한다는걸 본인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천성으로 바람둥이라는 그가 아내가 유방암에 걸렸다는 소식에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은 사별하고 만 과정을 늘어놓고 있는 소설이다. 다른 남편들과는 달리 자신은 그녀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지켰음을 자랑으로 내세우면서... 물론 그녀를 지킨다는 명목하에 끊임없이 외도를 하고, 그녀가 죽어가는 경과를 충실하게 불륜녀에게 보고를 했으며, 한번의 쓰리썸과 음주 운전에 의한 차 전복, 에스터시 복용등 그다지 자랑스럽지 않은 행동도 보여주긴 했으나, 죽어가는 아내를 지켰다는데 그 정도는 봐줘야 하는거 아니겠는가. 적어도 그는 그렇게 생각하는 듯 했다. 물론 그의 아내 역시 그런 그를 용서해주고,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세상을 떠났고 말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오래 전 섹스 & 시티에서 본 에피소드 하나가 떠올랐다. 섹스 & 시티의 주인공중 하나였던 샬롯은 얼마전 상처했다는 근사한 남자를 만난다. 아내를 무척이나 사랑했다는 그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이겨내기 힘들다면 징징 댄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순정파 남자가 어디 있을까 싶어 감동한 샬롯은 그날로 그와 함께 잔다. 그 다음날 그는 아직도 아내를 못 잊기에 앞 날을 기약할 수 없다는 말을 한다. 그 말에 경쟁심에 사로잡힌 샬롯은 점수를 따기 위해 아내의 기일에 묘지로 간다. 그곳에서 그녀는 자신과 같은 생각으로 무덤으로 몰려온 일단의 여인들과 만나게 된다. 결국 그 남자의 고통이란 여자들을 꼬시기 위한 전략이었던 것이다.

 

그 에피소드가 생각난 이유는? 바로 이 책의 작가가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닐까 싶어서다. 아내가 살아있을 때도, 심지어는 죽어갈 때도 외도를 일삼던 그가 아내가 죽은 뒤 이런 책을 내다니...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하더니, 아마도 자신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이 너무도 자랑스러웠던 모양이었다. 그 말마따나 버리고 떠난 것은 아니니 말이다. 과연 그의 진심은 무엇이었까? 진짜 아내를 사랑했을까? 아니 사랑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기나 하나? 그녀가 죽어가던 1년 반의 세월동안 방황하며 비틀거리면서 최대한 그녀에게서 벗어나지 못해 안달이던 그가 그녀가 죽어간다니 갑자기 착해지는 모습엔 진저리가 났다. 어쩌면 이 책의 최대 장점이라면 저자 자신의 개차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것일 것이다. 실은 자신이 그런줄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서양식 사고 방식에 사랑이란 아름답고 섹시하고 건강하고 나의 외도를 눈감아 주는 중에만 가능함 것임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사랑이 이런거라면....우린 사랑이란걸 쫓을 이유가 있는 것일까? 쓸쓸하게 눈을 감는것보단 그래도 그것이 더 나을까? 아마도...

 

하여 이 책을 보면서 가장 감동한 것은 작가의 사무치는(?)사랑이나 아내와의 사별 장면들이 아니라, 네델란드의 안락사 체계였다. 죽을 때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내 역시 좋아했다고 하는데, 이해 가는 반응이다. 어차피 죽을텐데 이왕이면 고통을 줄이는게 좋지 않겠는가.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끔찍한 고통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만큼 인간적이지 못한 것은 없어 보이니 말이다. 죽음은 힘들다. 삶이 힘들때는 도와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선 생명의 존귀함을 들어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다.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도 소극적인 안락사가 인정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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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 I’ve Loved You So Long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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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공항에서 어색하게 만나는 두 자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어떻게 해서든 분위기를 밝게 하려는 동생 레아와 너무 애쓸 필요 없다는 표정의 심드렁한 줄리엣, 팽팽한 갈등이 침묵속에 읽혀지는 두 자매,  과연 그들에겐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세상이 두렵지 않은 살인범 줄리엣>  


15년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사회로 나온 줄리엣은 동생 레아의 도움으로 사회 적응을 시작한다. 사람들이 무슨 죄를 지었길래 15년이나 살았는가 라고 물으면 담담하게 아들을 죽였다고 말하는 그녀, 그녀의 답을 들은 사람들은 대경실색하거나 짖굳은 농담이라 생각한다. 보호 관찰 기간이라 1주일에 한번씩 경찰관을 만나야 하는 줄리엣은 첫 만남부터 신세 한탄하는 보호 관찰관 포레가 꺼림칙하다. 유일한 혈육인 동생 레아는15년만에 만난 줄리엣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고, 레아의 남편 뤽은 살인범 줄리엣을 받아 준 아내가 못마땅하다. 처형이라 싫은 내색도 못하는 뤽과 레아 부부의 입양아 딸들, 레아의 말 못하는 시아버지등을 만난 줄리엣은 새로운 가족들 모두를 적당한 거릴 두고 관찰한다.
 

 
  
         < 언니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동생 레아 >  


똑똑한 모범생이었던 언니는 부모님의 자랑이었다. 의사였던 그녀가 6살 난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살인범이 될지 그 누가 알았겠는가, 그 날로 부모님에게 죽은 자식이 되어 버린 언니, 자신을 외동딸이라고 남들에게 소개하는 부모가 싫었던 레아는 어릴적 자신과 놀아주던 친절한 언니와 살인자 언니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분명 모종의 이유가 있을거라 추측하는 레아, 하지만 줄리엣은 입을 다물고 침묵할 뿐이다. 형기를 마치고 나온 줄리엣이 여전히 변명을 하지 않자 점점 레아의 인내심은 바닥나기 시작한다. 문학과 교수인 레아는 문학속 살인자의 이미지와 전혀 닮은 구석이 없는 줄리엣을 보면서 혼란스러워 한다. 언니를 이해하고픈 동생에게 여전히 차갑게 구는 줄리엣, 결국 둘의 갈등은 폭발하고 만다. 나를 오라고 한 것은 너였다면서 혹 불편하면 나가겠다고 적반하장식으로 소리치는 줄리엣, 레아는 갈 곳도 없는 주제에 당당한 언니가 이해되지 않는다. 한편 줄리엣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남편과 데이트에 나온 레아는 남편이 펄쩍 뛰는 모습에 이래저래 속이 상한다.
 

 
  
    < 타인의 고통은 언제나 가볍게 느껴지는 법이고... >  


정기적으로 보호 관찰관을 만나야 하는 줄리엣은 첫 만남부터 외롭다는 타령을 해대는 포레가 맘에 들지 않는다. 자신의 처지가 처지인만큼 그가 변태만 아니길 바라던 줄리엣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실은 선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혼남으로 딸을 그리워 하는, 언젠가 오리노코 강을 보러 여행을 떠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던 포레,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걸 안 이후에도 건성으로 그를 대하던 줄리엣은 그가 자살했다는 소식에 깜짝 놀란다. 줄리엣은 비로서 그가 진심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고 있었지만 자격지심에 제대로 듣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남들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거란 생각에 마음을 닫고 살았던 줄리엣 역시 타인의 고통은 가볍게만 여겨졌던 것이다.
 



 
15년간 어떻게 아들을 죽일 수 있느냐, 왜 아들을 죽었느냐는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줄리엣, 한때 감옥에서 강의를 한 경험이 있는 레아의 친구 미셸은 줄리엣에게 어떤 말못할 사정이 있었을거라 짐작한다. 감옥에 있는 사람들도 우리네와 별반 다르지 않더라는걸 자신은 안다고 하면서... 자신의 침묵을 존중하는 미셸에게 마음이 끌리는 줄리엣, 하지만 서둘러 다가오진 말라고 경고를 한다. 자신은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서... 줄리엣의 사회 복귀 역시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비로서 제 궤도에 올라서기 시작한다. 동생의 집에서 나올 준비를 하는 줄리엣은 비로서 자신이 자유를 실감하게 된다.
 


 
딸이 가져온 한 장의 종이로 인해 레아는 줄리엣이 왜 아들을 죽일 수 밖엔 없었는지 알게 된다. 왜 우리에게 말하지 않았느냐고, 그랬다면 우리가 도왔을텐데 라며 소리 지르는 레아, 줄리엣은 어떻게 도왔을건대 라면서 되묻는다. 적어도 이유를 말했어야 했지 않나고 다그치는 레아에게 줄리엣은 아들이 죽고 나니 그게 다 소용 없는 일 같이 느껴졌었다고 말한다. 자식의 죽음보다 더 한 감옥이 어디 있겠느냐면서, 자신은 벌 받고 싶어서 감옥에 간 것이라고 말한다. 과연 줄리엣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볼 때는 모르고 지나치는데 나중에서야 내 이야기구나 싶은 그런 영화가 있다. 전혀 내 이야기 같지 않은데--주인공이 너무 괴짜거나 이상하거나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해서...-- 뒤돌아보면 어머, 딱 나잖아 하게 되는 영화 말이다. 이 영화가 그랬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자신을 냉정한 살인자로 보는 사회의 시선에 " 뭐, 그렇게 생각하고 싶으면 그러던가... " 라는 표정으로 변명조차 않는 줄리엣이 당최 이해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부모에게조차 자신이 살인을 하게된 이유를 말하지 않다니, 비난받아 마땅했다. 아니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거나. 자신에게 아들이 그렇게 소중한 존재였다면 그녀 역시 부모에게 소중한 존재이니 말이다. 적어도 부모에겐 이유를 알렸어야 했다.  말 몇마디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렇게 영화가 말이 안 된다면서 투덜대면서 설겆이를 하다, 문득 그녀의 행동이 뚜렷하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맞아, 죽음이란 우릴 때로 그렇게 만들기도 하지. 죽음이란 감옥보다 더 큰 감옥은 세상에 없으니 말이다. 내면의 감옥이라는 점에서 보면 언제 석방이 될지 알 수조차 없다. 고통이라는 점에서보면 일시적인 자유를 박탈하는 감옥은 너무 쉬워 감지덕지할 지경이니까. 비로서 그녀가 이해가 됐다. 왜 감옥이라는 고통을 스스로 지려 했는지, 남들이 살인자라고 손가락질을 해도 태연할 수 있었던 것과 세상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는 태도 역시...그건 그녀 내면의 고통이 너무 커서 그 어떤 것도 비교될 수 없었기 때문이란 것을.
 
줄리엣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어떤 것도 그녀를 위로하거나 고통을 줄여주거나 외면하게 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자식의 죽음이야말로 그녀가 지고 가야 하는 천형이었기 때문이다. 왜냐면,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만큼은 진실이었음으로, 남들이 그것을 알아주건 몰라주건 간에 말이다. 자신이 자신에게 떳떳하다면 그 누구에게도 비굴할 필요가 없는거 아니겠는가. 설명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아들을 죽인 살인범이라는 극단적인 소재를 쓰고 있기는 했지만 영화 전개 과정은 전혀 극단적이지 않았다. 살인자라는 낙인을 달고 세상에 나온 줄리엣과 그녀를 맞는 세상 사람들이 변해가는 과정들을 설득력 있게 그리고 있었는데, 너무도 당당한 살인자를 연기하는 줄리엣과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좌절을 겪어야만 했던 레아의 연기가 압권이었다. 특히 줄리엣을 연기한 크리스틴 스캇 토마스의 경우는 처음엔 연기가 좀 과장되지 않았나 싶었다가 나중에서야 그녀가 계산된 연기를 하고 있었다는걸 알고는 소름이 돋았다. 줄리엣이라는 여자의 내면을 너무도 잘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타인을 그렇게 공감해서 연기한다는게 쉬운게 아닌데 ,스캇 토마스가 얼마나 지적인 배우인지 실감이 났다.
 
그렇다. 우린 이해하자는 말을 달고 살긴 하지만 실은 타인을 이해하는 것엔 언제나 한계가 따른다. 타인을 이해하는건 고사하고 그들의 고통을 배가시키고 있는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고 있지 않는한 그 사람을 안다고 하지 말라는 인디언 속담도 있지 않는가. 쉽게 타인을 재단하고 판단하는 우리네 세상에서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한박자 정도 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한다. 더불어,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라고 말 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이 실은 축복이라는 것도, 비록 그것이 수많은 고통을 야기한다고 해도 말이다. 사랑은,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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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 - 한줄기 희망의 빛으로 세상을 지어라
안도 다다오 지음, 이규원 옮김, 김광현 감수 / 안그라픽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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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도 느낀 거지만 리뷰 쓰려 다시 표지 사진을 보니 안도 다다오라는 양반 아무래도 건축가라기보단 뱀파이어 필이시다. 만약 내가 건물주었다면, 그래서 안도 다다오에게 집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다면 " 어디, 저 얼굴에 멋진 건물이 나오겠어? " 라는 의구심이 들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학력이 출세의 전부라는 일본에서 고등학교만 나온 뒤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하신 분이라니...꺼림칙 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이런 꺼림칙한 기분은 그냥 가지고 있어도 상관없다. 왜냐면 나의 의구심과는 상관없이 그는 세계적으로 너무너무 성공한 건축가라 내가 아무리 돈을 싸들고 쫓아 다닌다고 해도 절대 내게 집을 지어줄 리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보통 사람들은 만나기도 어려운 분이라는 뜻이다. 더더욱 다행스러운 것은 그는 일반 주택은 잘 지어주지 않는단다. 어쩌다 지어준 집들도 인상적이긴 했지만 편한 집이란 개념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에콜로지 어쩌고 저쩌고 우리가 떠들기 한참 전부터 그가 친환경적인 요소를 염두에 두고 집을 지었기 때문이란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을 만들고, 하늘을 최대한 바라보자는 취지하에 그가 만든 최초의 집엔 방에서 다른 방으로 가자면 옷을 입고 신발을 신어야 한다. 옛날 우리나라 뒷간 가는 것처럼 아들 방 가는데도 우산 들고 가야 하는 식이다. 그게 싫으면 그냥 비를 맞거나. 불편해 뵌다. 난방 시설도 안 해놔서 겨울엔 춥기까지 하단다. 놀라운 점은 집 주인들이 아직까지 만족하며 살고 있다는 것과 70년대 당시 신선한 발상이었다면서 그가 건축가로 성공하는데 발판이 되어주었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에게 그런 참신한 아이디어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안목과 성실함이 있었다니, 부러웠다. 안도 다다오라는 이 괴짜 양반을 키운 토양이야말로 바로 그런 것이었을테니 말이다. 나라면? 게을러서 그런데서 못 산다. 그래서 예술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고 하는가보다.

 

제목 그대로 안도 다다오란 일본 건축가의 자서전이다. 보통 자신의 개인적인 성장과 사생활을 다룬 자서전과는 달리 그가 만든 건축물의 자서전이라고 할만큼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는게 특징이다. 쉽게 말해 자신의 건축물이 그렇게 생겨날 수 밖엔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쌍둥이로 태어나는 바람에 외가댁에 보내져 외할머니 손에 자란 안도 다다오는 어린 시절을 공부와는 담을 쌓은 채 개구장이로 명성을 날리며 자란다. 남자는 자고로 제 밥벌이만 하면 된다며 아이를 풀어놓고 키우신 외할머니, 그런 외할머니의 혹독한 훈육 아래 안도는 자연스럽게 자연과 실리를 쫓는 성향이 몸에 배게 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잠시 복서 생활을 한 안도는 자신에게 챔피언이 될 자질이 없다는걸 깨닫고는 미련없이 다른 직업을 알아본다. 노가다로 인테리어 일을 하던 안도는 유명한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집을 보고 건축가로써의 꿈을 키우게 된다. 돈을 모아 세계 여행에 나선 그는 유럽의 건축물이 건축의 토대가 될 수밖엔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식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필요에 의해 공부를 시작하고 곧 회사를 차린다. 하지만 넘치는 자신감에도 그를 알아주는 건축주는 쉽게 나타나지 않는데.... 그렇게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회사를 차린 그가 현재의 성공을 일구기 까지의 과정을 무뚝뚝하게 이야기 하고 있는 책이었다.

 

정식 교육을 받지 않은 세계적인 건축가라... 그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이 책을 보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건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것이겠지만서도. 안도 다다오, 그 만의 열정과 아이디어, 뚝심등이 일궈낸 것이었으니 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작가의 약력을 알면 그 책에 대해 더 이해가 잘 가듯이, 건축가의 개인사가 그가 만든 건축물에 반영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말하자면 한 개인의 개성과 창작물은 별개일 수 없다는 의미다. 그의 성격 하나하나가 그의 건축물에 반영되는 것을 보면서, 이 세상에 다양한 건축물들이 있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과 개성의 수만큼이라는걸 깨달았다. 그리고 건축물이 예술이 되려면 건축가의 개성이 온전히 반영될만큼 독특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도...노출 콘크리트 공법은 별로 내 맘에 들지 않았지만, 최대한 절제된 공간 배치, 투박하지만 견고한 구조물들, 하나에서 열까지 배려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어 놓은 구조를 사는 사람들이 알아서 활용하게 놔 두는 것, 빛을 최대한 이용하는 구조나 주변 환경에 녹아 들어가게 설계를 하고, 거대한 프로젝트를 최소한의 인원만 가지고 게릴라식으로 만들어 내는 것 등은 정말로 인상적이었다. 그가 세계적인 건축가로 명성을 날리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더라. 그가 만들어낸 것들이 한결같이 다 독특했으니 말이다. 너무도 개성 넘치는 작품들이라, 건축도 예술일 수밖엔 없다는 걸 깨닫게 하기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간간히 들어가 있는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들을 보는 것은 굉장히 즐거운 경험이었으나, 책이라는 면에서 보자면 좀 지루한 감이 있어 애매작으로 넣는다. 아무래도 안도 다다오 자신이 전업작가는 아니다보니 글에는 한계가 있다. 재밌는 것은 그 양반의 성격이 글에도 반영된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투박한 건축물 만큼이나 투박하고 무뚝뚝한 문체, 짐작컨대 별로 친절하신 분은 아니시지 싶다. 올곧은 정직함과 패기, 밀어 붙이는 박진감은 차고 넘치시는 분이겠지만서도. 어쨌거나 건축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라면 한번 들여다 보심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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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노인 2010-03-09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지나다 들러서 다 읽고 갑니다.
눈깔 빠질뻔 했지만..
리뷰가 맘에 들어서 한줄 남깁니다
뭐가 맘에 들었냐구요?
인색한 평점이요ㅋㅋㅋ
다른 분들 대체로 별 다섯개 아님 네개
너무 후하게들 주셔서...ㅋㅋ

머 제각각의 취향이겠지만
확실한 자기 기준을 가지신 분 같아서리 좋았어요
책 선택시 몇가지는 도움도 됐어요

요즘 갑자기 소설 그것도 장편소설에 빠져서...
그나저나 이런 냉정한 리뷰어들이 더 많아져야 될텐데...
절판이 임박한 것들 위주로 살 책은 많고
돈은 없는 저같은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서라도 말이죠ㅋㅋ
재미와 번역의 질 소장가치등등 귀동냥하러 가끔 들르겠슴다~




이네사 2010-03-12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들 마음이 착해서 그런 것이겠지요. 전 별로 착하지 못해서리...
가끔 더 심하게 평하고 싶은 것도 참는다는...ㅋㅋㅋ
그런데 정말 이 리뷰들을 다 읽으셨다구요?하하하...
제가 쓴 글이지만 저도 10개는 못 넘어 가는데요. 지쳐서 말이죠.
대단하시네요. 좋은 책을 고르고 싶으신 마음이 간절하신가봐요.
여기가 더 책이 많긴 하지만 일목 요연하게 추천책만 보고 싶으시다면
네이버 이네사 블러그로 오셔요.거긴 추천작별로 정리해 놓아서, 제목만 보면 되거든요.
눈깔 빠지실 염려가 없다는 말이죠.^^

독거노인 2010-03-16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