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여름방학
사카키 쓰카사 지음, 인단비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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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름 잘 나간다고 생각하고 있던 호스트 야마토는 난데없이 호스트 클럽으로 자신을 찾아온 꼬마 때문에 식겁해 버린다. 초등학교 녀석이 글쎄, 손님들 앞에서 아빠라고 자신을 부르는게 아닌가? 애야. 네가 뭔가 잘못 찾아왔구나...달래려던 나는 그 아이의 입에서 오래전 헤어진 옛 애인의 이름이 나오자 당황하고 만다. 이거, 뭐야...정말로... 이 아이는 내 아이가 맞았던거야? 

비명이 채 나오기도 전에 나는 호스트란 멋진 (?) 직업에서 잘리고 만다. 손님을 울렸다는 이유였지만 아이가 있는 마당에 나 역시 그 직업이 그다지 탐탁치 않게 느껴지고 있었단 말이지. 하여 하루 저녁에 아빠가 된 것도 모자란 나는 직장마저 갈아치우고 만다. 더군다나 멋진 남자들이나 하던 호스트에서 노가다판 택배 직원으로...임시직원인 나에게 사장은 리아카를 끌라고 한다. 이거 내가 이딴걸 끌고 다닐 것 같아? 

호기도 부려보지만 이제 나는 홀 몸이 아니란 말이지. 난데 없이 나타난 아들--정확히는 12년 반만에 나타난--그동안 아빠를 알 기회가 없었다는 이유를 대며 나와 함께 살겠단다. 물론 여름방학때만...갑자기 이 여름이 길게만 느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서도, 왜일까? 그 녀석이 그다지 밉게 느껴지지 않는거야, 더군다나 이 녀석, 요리며 살림 솜씨가 보통이 아니란 말이지. 택배를 하느라 피곤에 절어 나타난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녀석...아, 둘이 산다는게 이런 거였구나, 누군가 나를 기다린다는게 말이야.나는 나도 모르게 그만 이 녀석에게 빠져들고 말아. 그나저나 여름방학이 곧 끝나 버릴텐데...방학이 끝나면 나는 또 어찌 살아야 하지? 

라는 넋두리를 주절주절 하고 있던 일본 소설이다. 지극히 일본 답게 약간은 얼빵한 사람들이 줄줄이 나와 그럼에도 그들이 좋은 가족 구성원이 될 수도 있다는걸 보여주고 있었다. 노메다 칸타빌레처럼 나사가 빠진 듯 이상한 사람들을 일본인들은 무척 좋아하는 듯. 이 소설에서도 역시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도와주며 살아가고 있는지 알려준다. 무겁지 않아서 좋긴 한데, 현실성이 있겠는가는 잘 모르겠다. 가족지상주의 환타지라고 비난해도 무리는 없겟으나, 그렇다고 비난해야 할만큼 완전히 빗나간 소설은 아니다. 그냥 시간 때우기용으로 읽기엔 부담 없을 듯.  

그나저나 택배 회사 이름이 허니비 택배회사란다. 왠지 기분이 좋지 않는가? 이 책의 성격하고 아주 잘 맞아 떨어지는 작명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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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디 에어 - Up In The Air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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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이 마치 집같고, 하늘 위 비행기가 마치 고향같은 남자가 있다. 직업이 파일럿이냐고? 물론 아니다. 그랬다면 이야기가 되지 못했을테니까... 아쉽게도 이 남자, 라이언 빙햄은 해고 전문가다. 심약해서 혹은 뜻밖의 불상사가 두려워 차마 직원들에게 해고 통지를 못하는 사장들을 위해 그는 미국 전역을 돌며 해고를 대신하는 일을 해준다. 1년에 322일 출장중인 그의 꿈은 천만 마일리지를 모아 세계 7번째로 플레티넘 카드를 얻는 것, 마일리지가 적립되지 않는 것에는 단 돈 1원도 쓰지 않는다는 그는 온갖 카드를 들고 다니며 적립에 혈안이다. 인생 뭐 있어, 진지하게 살 거 전혀 없다는 뜻으로 "빈 가방"이란 모토를 창시해낸 그는 가방 안에 최소한의 것들로 채울 것을 조언한다. 가족이나 친구 역시 그 최소한에 들어가지 않는다. 인간은 결국 홀로 살다 죽는다는 철학을 지닌 그에겐 인간관계로 골 머리를 앓은 인간들이 불쌍한 뿐이다.

 


 

 

 


 
공항 라운지에서 우연히 알렉스를 만난 라이언은 그녀가 "여자 라이언"이라는걸 알고는 흥분한다. 마일리지에 광분하고, 1년에 60마일을 출장 다니며,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관계를 추구하는 그녀, 라이언은 자신의 생각을 너무 잘 이해하는 그녀가 좋다. 서로의 일정에 맞춰 만남을 이어가던 둘은 나탈리가 실연으로 무너지는 바람에 조언자로 나서게 된다. 23살이면 천생 연분을 만나 결혼도 하고 멋진 집에서 살고 있을줄 알았다며 징징대는 나탈리에게 둘은 이런 저런 조언을 해준다. 그 과정에서 라이언알렉스가 자신과는 달리 안정된 가정을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알렉스가 마음에 든 나탈리는 그녀는 그저 친구일뿐이라는 라이언의 발언에 발칵 화를 낸다. 그것은 그녀에게 너무 불공평한 일이라면서, 그녀를 제대로 대접해 달라고 말한다.
 
한편 가족으로서의 의무를 잊고 살았던 라이언은 동생이 결혼한다는 소식에 고향으로 간다. 알렉스를 대동해 간 그는 그녀와 함께라는 것이 내심 흐믓하다. 결혼이라면 질색인 라이언은 동생의 결혼을 맞아 그런 내색을 하지 않으려 애를 쓴다. 결혼식 당일 날 매제될 사람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나서자 그는 처음으로 동생을 위해 그의 마음을 돌려 놓는다. 그와 동시에 라이언의 마음에도 잔잔한 파문이 인다. 그가 고대하던 강연장에서 다시 한번 " 빈 가방" 강연을 하던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하는 말에 의문을 품게 된다. 강연장을 뛰쳐 나온 그는 알렉스를 찾아 시카고로 향하는데...
 
조지 클루니의 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던 영화였지만 그 외에도 두 명의 여배우들이 제 몫을 단단히 해주고 있던 영화였다. 지나치게 깔끔하고 강박적으로 쿨한 관계를 지향하는 라이언 역의 조지 클루니나 순진한 헛똑똑이 나탈리, 거기에 냉정하면서도 도발적인 알랙스, 이렇게 세 명의 배우들의 앙상블이 이야기를 흠잡을 데 없이 자연스럽게 이끌고 있었다. 해고나 공항이라는 삭막한 소재를 가지고 무슨 근사한 이야기가 나오겠어 했건만 의외로 이야기 자체는 따스하다. 종종 터지는 유머도 식상하지 않았고. 특히나 실연당한 나탈리를 위로하면서 알렉스가 하던 말이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34을 넘은 여자들이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만한 대사가 아닌가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오히려 대 참사일테지... 인생은 혼자보단 둘이 더 낫고, 인생에선 마일지리보다 중요한게 있다는걸 뒤늦게 깨달아 가는 한 남자를 보면서 자신의 인생을 한번 되돌아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한가지 덧붙인다면 원하는 것이 분명하지 않았을 땐, 잃었다고 울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물론 세상은 그가 그의 마음대로 살도록 놔두지 않는다. 무엇보다 짐이 싫어한 그에게 사장은 신참이라는 성가신 짐을 떨구고 간 것이다. 화상 전화 매뉴얼을 통해 해고를 할 수 있는, 굳이 전국으로 출장을 가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을 개발한 새내기 나탈리는 라이언을 따라다니며 해고 일을 배우기 시작한다. 해고 통고가 마치 피자 주문하는 것 같이 쉬운 것인양 말하던 나탈리는 점차 그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 해고 당사자를 보면서 나탈리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베테랑 라이언의 조언에 힘 입어 그녀는 점점 자신감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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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스테인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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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과 모니카 르윈스키의 스캔들이 세계의 강박이 되다시피하던 1990년대를 배경으로 과연 당신은 빌을 단죄할 수 있는가를 묻고 있는 소설이다. 때는 1990년대 전립선 암을 앓은 뒤 숲 속 오두막에 은거하고 있던 소설가 주커만은 난데없이 자신을 찾아온 노교수 콜먼과 친해지게 된다. 평생을 봉직한 대학 교단에서 말 한마디를 잘못했다는 이유로 쫓겨나다시피 한 콜먼은 2년이 지난 그때까지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었다. 흑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고 고발당한 그는 평생 자신은 언어를 잘못 사용해 본적이 없다며 항변을 하나 소용이 없었다. 그가 그렇게 무력하게 쫓겨난 것은 단지 인종차별적인 발언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그간 무자비하게 대학을 혁신한 데 따른 반발도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너무 유능했던 나머지 적이 생겼다고나 할까. 유능함을 질투하는 무능한 집단은 어디나 있는 법이니 말이다. 자신이 무고하게 밀려났다 생각 한 그는 그 와중에 충격으로 아내마저 사망하자 분노에 떤다. 대학이 어떻게 썩었고 부패했으며 타락하고 있는지 보여 주겠다면서 <검둥이>란 제목의 회고전을 쓰고 있던 그는 어느날 자신이 그것을 끝내지 않을 것임을 주커먼에게 고한다. 더불어 일흔이 넘은 자신에게 딸보다 어린 애인이 생겼다는 것을...  

 

콜먼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밝힌 포니아 팔리는 대학에서 청소부 일을 하는 서른 넷의 여자다. 계부의 성적 학대와 자신만 알던 엄마를 피해 어린 나이에 가출을 한 그녀는 거리를 전전하면서 별별 일을 다 겪었다. 멍청하니 만만할거란 이유로 목장주와 결혼을 한 그녀는 곧 그것이 실수였음을 알게 된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남편은 외상성 증후군을 앓고 있었고, 그것은 곧 그녀를 시도 때도 없이 패는 것으로 발휘된다. 살기 위해 이혼을 선택할 수 밖엔 없었던 포니아는 이혼 후에도 자신에게 집착하는 전남편이 두렵다. 어느날 집에 불이 나 아이 둘이 사망하자 남편의 분노를 극에 달하고, 아이 둘을 한꺼번에 잃은 포니아의 슬픔 역시 한도를 넘어선다. 두 번의 자살 시도끝에, 사는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살고 있던 포니아는 분노에 눈이 먼 콜먼을 만나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정신 연령이나 겪은 일들로 따지자면 내가 당신보다 더 나이가 먹었다고 말하는 포니아에게 콜먼은 홀딱 반한다. 다른 사람들에겐 단지 치욕스런 애욕으로 보였을지 모르나, 적어도 그 둘에겐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둘은 서로에게 딱 필요한 것들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포니아에겐 콜먼의 친절이, 콜먼에겐 포니아의 세상 모든 것을 다 겪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체념이... 그 둘의 사이에 흐르는 진정성을 알게 된 주커먼은 그 둘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기로 한다. 

 

하지만 그건 주커먼의 이야기고, 대학 구내엔 그 둘에 대한 험악한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콜먼을 사랑하는 동시에 증오하던 프랑스 태생의 델핀 루 교수는 콜먼에게 익명의 협박 편지를 보내고, 자식들은 그와 대화하기를 꺼리게 된다. 자신이 추문의 한가운데 서 있는 걸 알게 된 콜먼은 자신이 살아 온 한 평생을 되집어 본다. 그들이 자신을 추한 노인네로 보는 것에 한심해 하던 그는 어쩌면 그들의 오해가 오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제나 그를 떠난 적이 없던 자신의 비밀이 떠오른 콜먼은 문맹에, 청소부인, 너무도 자존감이 낮아 남자들이 원하는 대로 따라 하는 어린애 같은 포니아가, 미국에서 가장 밑바닥에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녀가 실은 자신과 똑같다는걸 깨닫는다. 그 둘이 연인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진정한 사랑을 찾은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이목에도 연연하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이어가기로 한다. 교통사고로 끝장이 나기 전까지... 

 

둘의 비극적인 교통사고 소식을 전해 들은 주커먼은 사인이 의심스럽다. 둘의 죽음이 포니아의 전 남편의 짓이라는걸 밝혀 내려 하던 그는 우연히 콜먼의 비밀을 알게 된다. 과연 콜먼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분노의 콜먼을 잠재웠으며, 포니아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 것일까? 그의 비밀을 알게 된 주커만은 비로서 왜 콜먼이 회고전을 끝맺지 못했는지 이해하게 되는데... 

 

 아, 수다스런 로스 아저씨. 라는 생각이 들만큼 말이 많은 소설이었다. 어찌나 말을 청산 유수로 쏟아 내던지, 읽다 숨 넘어가는 줄 알았다. 좀 가끔 가다 쉬어주기도 하고 그래야지 말이야, 무슨 말을 그리 쉴새 없이 풀어놓는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주제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었다는 점이다. 만약 그랬다면 집중력을 읽어버리기 쉽상이었을텐데, 헉헉 대기는 해도 길을 잃어버리진 않을만큼 흥미진진했다. 잊지 마시라. 필립 로스는 다른건 몰라도 자신의 글에 자신만만한 작가라는 사실을. 또 그럴만하기도 했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마냥 사랑스러웠다는건 아니다. 사실 그의 글을 여자들이 보기엔 눈살이 찌프려지는 장면들이 많았다. 그는 왜 빌 클린턴이 스캔들로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있던 1990년대를 배경으로 이 책을 쓴 것일까? 이 책을 읽는 내 느낌은 이랬다. 과연 빌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자, 그 누가 있겠는가 라는 말을 그는 하고 싶었던게 아닐까 라고. 물론 그건 저자가 빌을 좋아하거나 옹호해서는 아니다. 그보단 빌 클린턴 만큼이나 성에 대해선 오지랖이 넓었던 자신을 옹호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었다. 말하자면 자신을 변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연 이 세상에 타인을 마음껏 비난할만큼 순결한 자가 있다고 보시는가? 그가 내세운 순결하지 않는 자의 표상이 바로 콜먼이다.

 

콜먼은 겉으로 보기엔 완벽한 고결남이다. 고전 문학 교수이자 학장으로,결혼 한 이후로 아내만 바라보고 산 사람이자 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은 아버지, 유능과 능률을 중시한 실리주의자인 그는 한마디로 존경받는 노년을 보내야 마땅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말 한마디 잘못했다는 이유로 한 순간에 몰락해 버리다니... 겉으로 보기엔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콜먼의 분노는 당연했다. 미국 사회는 미친게 분명했고, 인간이란 믿을 게 못되는  배은망덕한 종자들이며, 삶에서 합리성을 찾는건 어리석은 짓이다. 그렇게 한참 콜먼의 분노에 동참하던 독자들은 마침내 콜먼의 비밀을 알게 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그건 모두 콜먼이 자초한 일이었다는 것을. 콜먼은 보이는 것처럼 순결한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애인 포니아보다 못한 인간이었다. 적어도 포니아의 타락이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면 콜먼의 타락은 자신의 의지였으니 말이다. 이제 필립 로스는 우리에게 묻는다. 과연 타인에게 손가락질하면서 비난할 만큼 윤리적으로 깨끗한 인간이 어디 있겠는가 하고. 좀 캥겼다. 내가 마치 편협한 마녀가 된 것처럼.

 

글쎄, 과연 없을까? 물론 빌 클린턴의 스캔들이 적어도 우리가 상관할 바는 아니란 건 안다. 그건 그의 아내의 몫이니까. 그렇다고 과연 그의 행동이 옳은 것이라고 우린 말해야 하는 것일까? 누구나 그렇게 산다고 해서, 우린 빌을 비난해선 안 되냐 이 말이다. 어떤 이유로건 완벽하게 깨끗한 사람은 없는 것이니까, 도덕군자인척 하면서 뒤로 호박씨를 까는 위선자가 되지 않으려면, 우린 그저 그 누구도 비난하지 말고 입 다물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김 길태도 자신이 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면 우린 그를 비난 할 수 없는 것이여야 하지 않겠는가. 오히려 윤리를 들먹이는 우리 자신을 창피해 해야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주제도 모르고 남을 쉽게 판단했으니 말이다.

 

작가의 결론은? 애매해 보인다. 아마 자신도 차마 그렇다고 밀고 나가긴 그랬었나 보다. 한 100년쯤 후에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아직까진 그런 결론이 위험해 보인다. 내가 보기엔 ? 그는 꼬리 잘린 여우 같아 보였다. 자신의 꼬리가 잘렸으므로 남들에게 다 꼬리를 자르라고 연설을 하는... 그렇담 우린 우리의 꼬리를 잘라야 하는 것일까?

 

언젠가 빌 클린턴이 오프라 쇼에 나온 적이 있었다. 다른 모든 질문에 --심지어는 모니카에 대한 질문까지도, 미리 준비를 단단히 해 온 듯 했다.--청산유수로 거칠것 없이 대답을 하던 그가 딱 한번 얼굴을 붉히며 머뭇 거리는걸 봤다. 노련한 정치인인 그를 당황하게 한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제 연애를 하게 될 당신의 딸 첼시에게 남자에 대해 뭐라고 조언하고 싶은가? 

 

그의 답은 단 한마디였다. " Nothing." 난 그 말이 그날 그의 입에서 나온 단 하나의 진실이라고 지금까지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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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에서 온 장미 도둑 - 터키 사진작가 아리프 아쉬츠의 서울 산책
아리프 아쉬츠 지음 / 이마고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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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프 아쉬츠는 내게 낯 익은 작가다. 재 작년 <실크로드의 마지막 카라반>을 감명 깊게 읽은 후 한동안 그의 다른 작품은 없을까 궁리하던 차에 그가 서울에 한동안 살았으며 그 동안의 느꼈던 것들을 모아 책을 냈다는 말에 반색을 했다. 뭐랄까. 너무도 멀게만 느껴지던 대 스타를 우리 동네에서 만난 기분이랄까? 우리나라와는 인연이 없을 줄 알았던 저자가 서울에 1년 반이나 체류 했고, 또 서울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았다는 사실에 기분이 우쭐했었다. 와, 우리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구나라는 지극히 당연한 생각을 함과 동시에, 실크로드를 그렇게 통찰력 있게 따라 내려 가던 모험심 강한 그가 우리나라를 어떻게 해부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다행히도 내가 궁금할 것을 알았는지 그는 자신이 느낀 것을 이 책 안에 다 풀어놓고 있었다. 물론 내가 기대했던 것보단 자세하지 않아서 실망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맘에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스케일이라는 면에서 <실크로드의 마지막 카라반>과 비교가 안 된다. 실크로드완 다르게 한국이란 곳이 터키인들의 정서와도 차이가 있었겠고 말이다. 오기전에 공부를 하긴 했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생소한 미지의 나라에 와서 이만큼 책을 써 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거야, 라면서 위로를 했다. 물론 이것은 전작에 비교해서 그렇다는 것이니 오해는 마시길. 그 책에 비해 부족해 보인다는 것이지, 이 책 자체가 부족했다는 말은 아니니 말이다. 무엇보다 <실크로드의 마지막 카라반>은 많은 나라를 지나면서 이야기 자체가 풍부했겠지만, 우리나라야 역동적이라는 것 외엔 단일민족 아니던가. 차이가 나는게 당연하다.

 

어쨌거나 <실크로드>에서 익히 짐작한 대로 그는 유머 감각 넘치는 장난꾸러기였다. 그가 우리나라에 맞지 않았다고 하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그는 우리나라에 딱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야말로 익살 빼면 시체 아닌가? 그런 그의 유머 감각은 다음 문장에서도 빛이 난다. 내가 제일 웃었던 장면인데... 


 

" 어쨌든 생존을 하기는 해야 했다. 친구들은 생활에 도움이 될 거라면서 몇몇 단어를 가르쳐주었다. 나는 아직도 ' 만나서 반갑습니다'라든다 '미안합니다' '맛있게 드셔요' 같은 말은 모른다. 하지만 술자리에서만큼은 한국 사람들과 즐겁게 대화하기에 나의 어휘사전은 충분한 것 같다. 여기 나의 한국어 어휘 사전이 있다. 

 

아줌마: 옷이 화려하고 지하철에서 자리를 빨리 차지하는 중년 아줌마 

아이구 죽겠다.:어딘가 앉을 때 하는 말, 한숨을 길게 내쉬면 더 효과적이다. 

먹고 죽자 : 건배라는 뜻 

언니야~~~: 술집에서 주문할 때 하는 말 

맥주, 소주, 백세주, 복분자주, 막걸리: 내가 좋아하는 각종 술의 명칭 

죽여라 죽여 : 뭔가 내가 실수했을 때 상대에게 머리를 들이대며 하는 말 "

 

먹고 죽자가 건배라는 말에 큭큭 대로 웃고 말았다. 이 사람 한국 사람 다 됐군 싶다. 더군다나 개성 넘치고 기운 센 한국 아줌마들에 반했다는 그가 밉지 않았더라. 술자리를 좋아하고, 노래방에선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며, 한번 김치를 맛 본 뒤 한국 사람들보다 더 극성 맞은 김치 매니아가 되어버린 그를 안 좋아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가끔 지인들을 위해 거리의 장미들을 꺾어 선물했다고 하는데, 내가 그 장미들의 주인은 아니지만 다 용서해주고 싶었다. 뭐, 장미가 대수랴, 애교로 봐주자. 그만큼 다정하게 한국을 바라보는 외국인도 드무니 말이다. 한국의 정을 이해하는 인간미 넘치는 외국인을 매일 만날 수 있는건 아니질 않는가. 아마도 그를 가이드한 이 책의 역자 이 혜승님도 나의 견해에 동조하리라 본다. 그나저나 그의 말에 의하면 구 별로 다 장미들이 다르단다. 여유롭게 서울을 탐색하고 다닐 수 있는 자만의 관찰력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고 그가 우리나라에 대한 찬가만 늘어놓은 것은 아니다. 특히 거리마다 교회가 넘쳐 난다는 것과 그들이 아프간에 들어가 선교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어이 없어 하는 것엔 나도 동감이다. 아리프 아쉬츠님! 알아주시기 바래요. 당신만큼이나 우리도 그들이 이해 안 된다는 것을요. 무엇보다 이슬람 사람들에게 선교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그들에게 무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을. 그런 기독교 신자들을 기준으로 우리를 판단하진 말아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외국인의 눈에 우리나라가 어떻게 보일까 궁금하신 분들에겐 괜찮은 책일 듯. 저자의 인간미가 책을 읽는 즐거움을 높이긴 하나, 생각할 거릴 던져주는 담론이나 엄청난 통찰력등을 기대하고 집어들만한 책은 아니다. 더군다나 그의 시선에 잡힌 서울의 모습이 약간은 편향되어 있어 갑갑한 느낌을 주었다. 서울의 건축물들이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말에는 공감을 하지만, 밖에 나가서 보는 서울의 모습은 그의 렌즈에 잡힌 모습보단 다채로워 보이니 말이다. 뭐니뭐니해도 내가 그보단 서울에 오래 살았다는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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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영국의 시골길을 걷다 - 조금씩, 천천히, 동화 속 풍경에 젖어들기
기타노 사쿠코 지음, 임윤정 옮김 / 북노마드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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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시골길을 사랑하게 된 한 일본인의 포토 에세이다. 20여년전 영국 유학 시절에 반하기 시작, 지금까지 그 사랑을 유지하고 있다던데,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이해가 갈만큼 멋진 풍경들이 이어진다. 

특히 래빗 시리즈로 유명한 포터가 살았던 니어 소리 마을이나 아기곰 푸를 만들어낸 숲을 찾아낸 것은 신기했다. 작가들이 자신들이 살았던 고장을 배경으로 동화책을 만들어 냈다는 것인데, 지금 동화책을 들고 가서 봐도 똑같을 정도로 보존이 잘 되어 있다고 한다. 정말 탐나는 정보였다. 시간이 허락하고, 돈이 된다면 당장 비행기 티켓을 끊어 달려가고 싶어질 만틈. 

정원하면 영국이라는 말이 있듯이--물론 정원하면 인도라는 말도 있고, 한국이라는 말도 있으며, 일본이라는 말도, 중국이라는 말도 가능하다는 것은 안다. 각 나라마다의 정원이 다 특징이 있고 아름답다는 사실도. 가끔 그런 것들에 현혹이 되는 나를 보면 이 세상에 과연 아름답지 않은 것이 있을까 의아하게도 된다.-- 저자가 소개하는 영국 시골길들의 모습은 찬탄을 불러 일으켰다. 맨 처음에 등장하는 안개낀 날에 찍은 노란 꽃밭과 회색의 나뭇가지들은 오래전 본 김영갑님의 제주도 풍경을 연상시킬 정도로 아름다웠다. 이런 자연을 허락한 나라에서 사는 영국인들이 부러웠을 정도로...그 다음에도 이런 풍경속에 아직까지도 사람들이 살아간다니,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사진들이 이어진다. 그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마음도 풍요롭고 착할 거 같다. 도무지 악한 심성을 불러 일으키지 않는 그런 풍경이니 말이다. 아마도 그래서 사람들은 멋진 풍경의 장소를 찾아 다니는 것이겠지. 

하여간 왜 저자가 그렇게 영국의 시골길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간다. 영국에 떨어졌다면 나라도 그렇게 오래도록 떠돌아 다니고 싶어지니 말이다. 경치에 취해 아마 발이 아픈 것도 별로 신경 쓰이지 않을 것 같다. 그외에 왜 지방색이 묻어나는 맛난 음식들... 난 스콘 매니아다. 스콘에 딸기 쨈, 거기다 데번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클로티드 크림을 찍어 먹을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갑자기 돈을 많이 벌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언젠가는 스콘 먹으러 영국에 갈 수있을거 아니겠는가. 

동화속에서 걸어나온 듯한 영국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풍경들과 맛 있어 보이는 전통 음식들 덕분에 이 책은 충분히 볼만한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가 이 책의 장점이란걸 유의하시길. 


 꼬박꼬박 " ...있습니다. 와 저는 " 이라는 말을 쓰는 번역체가 거슬리던 데다--빨리 읽는다는 면에서도 그냥 "있다"나 " 나는..." 이라고 쓰는게 나았지 않는가 한다. 굳이 자신을 낯추는 저런 문체는 뭔가 별거 아닌데 들어 달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듯해서 별로다 .말하자면 아마추어의 문체로 들린다는 뜻이다. 거기다 들어 있는 내용도 그다지 대단한 것은 없었다. 그녀가 추천하는 곳이 포터나 그 외 작가들이 작품들을 만들 던 곳이었다는 것을 소개한다는 것 외엔, 딱히 들어줄 만한 정보는 없었다. 정보의 평범성과 평면성이 두드러진 글이라고나 할까?  

하니 글을 읽는다는 것말고, 혹 영국으로 여행을 떠나실 분이라면 한번 들어보심도 좋지 않을까 한다. 비행기 삭이며 호텔 경비에다 식대까지 합하면 무지 비싼 여행이 될 것 같기는 하지만 아무 생각없이 가는 여행이 아닌, 목적 있는 여행을 준비하시는 분들이라면 괜찮은 정보가 되지 않을까 싶다. 특히나 어릴적 포터의 래빗을 보면서 즐거워 했던 어린 시절을 가지신 분들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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