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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조용히 사랑한다 - 자라지 않는 아이 유유와 아빠의 일곱 해 여행
마리우스 세라 지음, 고인경 옮김 / 푸른숲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표지에 오렌지색 반바지에 노랜색 윗 옷을 입고 있는 아이가 눈에 뜨인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는 달리고 있는 듯한 자세를 하고 있는 녀석이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유유다. 아프다더니 녀석, 튼튼하게 자란 모양이네. 이것이 처음 본 유유에 대한 내 인상이었다. 사진에서 뭔가 어색한게 느껴지긴 했지만 애써 그러려니 무시하면서. 그리고 무심히 책의 뒷장을 넘겨 보다, 같은 옷을 입은 유유의 다양한 사진이 릴레이로 담겨 있는걸 보곤 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아니, 왜 똑같은 사진들을 이렇게 배열했지? 책을 한 손으로 쥐고 빠르게 투투투투 넘겨 보니 그제서야 좀 이해가 됐다. 아, 아이가 달리는 것 같이 느껴지도록 배열한 것이구나.... 영문을 알 길이 없었다. 별일이네, 아이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으면 다른 사진들을 넣어줄 것이지, 왜 똑같은 사진을 넣은 것일까?
그 의문은 책을 다 읽을 즈음 풀리면서 먹먹한 감동으로 변해버렸다. 왜냐면, 이 책의 주인공인 유유는 한번도 제 발로 걸어본 적이 없는 아이기 때문이다. 이 사진들은 달리기는 커녕 걸어본 적도 없는 아들을 위해, 그런 아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 아버지를 위해 호르디란 사진 작가가 만들어준 것이라고 한다. 유유를 향해 눈 감지 말라고 주문한 사람은 유유의 누나였고, 아이의 팔다리는 친지들의 손에 고정되어 있었다. 포토샵의 수정 덕분에 아이는 사진속에서나마 달릴 수가 있었던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리고는,성냥개비보다 얇은 듯한 팔을 열심히 흔들고 다리를 내 디디면서, 진짜로 달리고 있는 듯한 유유의 모습에 내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유유의 아버지인 저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 내 아들이 걷는 모습을 보고 싶어, 호르디, 아니, 그보다 더 대단한 거야, 아들이 달리는 모습을 보고 싶어!" 그것이 얼마나 간절한 소망이었던지, 사진 작가를 움직이고, 아들을 움직이더니, 이젠 보는 독자들을 움직이게 한다. 쉽게 전이되는 진동이다. 인간은 때론 놀랍도록 이기적인 존재이나, 진심이 울리지 않을 정도로 이기적인 존재는 못되는가보다. 이럴땐 설득이라는 것조차 별로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설득할 필요조차 없으니 말이다. 유유의 사진을 보면서 울면서 미소를 짓는게 가능함을 깨닫는다. 와. 이봐, 유유...너 정~~엉~~말 잘 달리는구나, 달리기 선수해도 되겠어. 그리고 유유의 아버지를 향해 이렇게 말하고 싶어졌다. 아들이 정말 잘 생겼는데요? 자랑스러우시겠어요. 라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흐믓함에 미소를 짓겠지. 유유는 바로 우리를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아이니 말이다.
태어나 한달이 된 아들 유유가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을 눈여겨 본 아버지 마리우스 세라는 아내와 함께 병원을 찾는다. " 기지개를 켜는 것 같이 말이죠..."라면서 설명하던 저자는 의사의 표정이 심각해지는 걸 보곤 당황한다. 그리곤 그 기지개 같은 행동이 간질 발작이라는 설명에 망연자실한다. 어른들도 힘들어 하는 간질 발작을 하루에도 몇 차례나 하고 있었다는걸 그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뇌의 질환에 의한 것이란 것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정상이라는 검사 수치, 그들은 오랫동안 아들의 병명조차 알 수가 없었다고 한다. 딸에 이어 아들을 낳은 뒤 남과 다르지 않은 가정을 꾸릴 생각이었던 부부는 자신들에게 닥친 불행이 믿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둘은 거기에서 머물지 않는다. 달리는 것을 고사하고, 걷는 것도, 기는 것도 못하며, 목조차 가누지 못하는 아들을 데리고 그들은 여행을 다니기 시작한다. 아들이 장애아라고 해서 가족 구성원에서 빼 버리거나, 불행에 짓눌려 패배한 채로 남아 있기를 거부한 것이다. 그렇게 일곱 살을 넘기기 힘들다는 아들과 함께 세상을 누비고 다닌 여정들을 담아낸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남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그들이 얼마나 사려깊고, 친절하며, 우아하고, 유머 감각 넘치며, 매력적인지 이야기 하지만, 듣는 사람이 그걸 이해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건 상상력이나 표현력 부족의 문제는 아니다. 그보단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그들의 외모나 전망이나 능력이나 개성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 정답에 가까울 것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들의 영혼이고, 영혼은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면 알아차리기 어렵다. 영혼이 그를 어떻게 미소 짓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내 영혼에 어떤 파문이 일게 했는지는 겪어 본 사람이 아니면 알기 힘드니 말이다. 영혼에 가까이 다가간 사람이 아니라면 사랑은 불가능하다는게 내 생각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우린 넘쳐나게 하지만 진정으로 사랑을 하는 사람은 글쎄? 얼마나 될까? 그가 사랑을 아는 사람인지 아닌지 가장 알아내기 쉬운 시험을 들어보라면 난 장애를 든다. 과연 당신은 장애를 가진 사람을 그전과 그 후 똑같이 사랑할 수 있는가? 어려울거라 느껴지시는가? 아니, 별로 그렇지는 않다. 장애와 영혼이 별개라는걸 알면 말이다. 그런면에서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들을 너무도 사랑하는 이 저자의 모습이 나를 울렸다. 그리고 정말 신기하게도 나는 그의 아들 유유를 알 것만 같았다.이 책 속에서 저자가 아들에 대해선 별로 설명을 하고 있지 않음에도 말이다. 놀라운 일 아닌가? 때론 설명이 필요없는 것도 있는 법인가보다.
장애아의 아버지가 쓴 구태의연한 책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의외로 나를 한방 먹인 역작이었다. 어렵게 쓰인 문장도 별로 없고, 대단한 사상을 설파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랬다. 어쩌면 그것이 더 어려운 일이여서 그런가도 모르겠지만서도.
엄마가 장애인인 나는 장애인 가족을 가진 사람 특유의 직감이 발달한 편이다. 쉽게 말하면 그들이 진심으로 장애인을 대하는지 아니면 단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제스쳐를 쓰는 것인지 직관적으로 알아차린다는 뜻이다. 하여 장애를 다룬 책에서 내가 감동을 받는건 드문 일로, 노벨상을 탄 유명한 장애아 아버지 오에 겐자부로를 싫어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내겐 그가 지성인을 가장한 나르시스트에 위선자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쓸모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에 맞지 않는 아들을 받아 들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그는 자신의 책에서 구구절절히 토로하나, 나는 그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과연 그의 아들 노릇을 하는 것은 얼마나 가혹한 일이었을까하고. 생각을 뒤집어 보면 오히려 고생을 한 것은 그의 아들이 아니겠는가 싶은 것이다. 아무리 노벨상이 대단한 것이라 해도, 난 그가 내 아빠가 되는 것은 싫을 것 같다.
이 책 처음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을 쓰는 일이 내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될 지도 모른다고...난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정확하게 안다. 그리고 그렇게 주저한 그가 왜 이 책을 썼는지도. 더불어 이 책을 쓰는 동안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을 거란 것도 안다. 그는 어쩌면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이런 글을 쓴다고 해서 세상이 뭐 달라지겠어? 라고.
그를 대신해서 내가 말하고 싶다. 달라진다고. 왜냐면, 장애란 이해시켜야 하는 무엇이기때문이다 .장애인을 대하는 것 역시 우리가 배워야 하는 어떤 것이고. 아직까진 말이다.한계를 넘는 것이 쉽다는걸 보여주지 않는다면 아무도 시도하지 않을테니 말이다. 저자의 솔직한 음성이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하다. 무딘 우리를 일깨워 주는데 사랑보다 더 좋은게 뭐가 있겠는가. 하여 난 오늘도 유유의 아버지인 마리우스 세라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그의 아들 유유에게도. 새로운 지평을 우리에게 보여줘서, 그리고 잘 견뎌줘서 고마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