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도시 Z - 아마존의 치명적인 유혹에 관한 이야기
데이비드 그랜 지음, 박지영 옮김 / 홍익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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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아마존에 존재한다는 문명 도시 Z를 찾아나선 전설의 탐험가 포셋은 아마존에 들어간지 반년에 지나지 않아 실종되고 만다. 그의 마지막에 대한 전설만 무성한 채 세월은 흘러가고. 뉴요커 지의 기자인 저자는 그가 과연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해진다. 이에 여러가지 단서들을 종합해 과거 포셋의 발자취를 찾아 나서기로 하는데... 

모험이라는 해 본 적이 없는 저자가 오래전에 실종이 된 전설적인 탐험가의 마지막을 알아보기 위해 아마존으로 들어간다는 설정은 호기심을 자극하나, 뭔가가 있을 거라는 뉘앙스만 찔끔찔끔 흘리는채 이야기를 끌어 가는 것이 별로였다. 결국 아무것도 못 찾았으면서 계속 뭔가 있는 듯 설레발을 치는건 아니지 않는가. 

이야기를 그다지 잘 꾸며내는 작가는 아닌듯 하다는 느낌이다. 아마존을 배경으로 모험책을 썼다면 이것보다는 재밋어야 하는게 아닐까 싶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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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유산' 상속받기
짐 스토벌 지음, 정지운 옮김 / 예지(Wisdom)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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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일푼에서 자수성가한 사업가 레드 스티븐스가 사망한다. 얼마후 그의 유산집행을 맡게  된  변호사 해밀턴은 친구이자 레드가 조카 손자에게 이상한 유언을 남긴 것을 알게 된다. 1년동안 12개의 미션을 통과해야만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부잣집 아들로 이기적으로 성장한 조카 손자 제이슨은 펄펄 화를 내지만 최고의 유산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임무에 나서기로 한다. 그것이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굉장한 횡재이기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결국 제이슨이 12개의 미션을 수행하면서 할아버지가 알려 주고 싶어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좋은 의미라고는 하나 어째 식상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닐까 했는데, 어느정도는 그렇더라. 물론 새겨 들으면 좋은 말이 많긴 했지만, 이 세상은 교과서대로 움직이는 답안이 있는 곳이 아니니 말이다. 그 최고의 유산이 과연 얼마나 인생에 적용이 되려는지는 의문이다. 교훈이 절실하게 필요하시다는 분들에겐 좋을 듯. 남 말은 왠만하면 안 듣는다 하시는 분들에겐 시간 낭비가 될 것임을 미리 알려 드리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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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엔 까미노 - 산티아고로 가는 아홉 갈래 길
장 이브 그레그와르 지음, 이재형 옮김 / 소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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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탁월한 사진작가가 문장도 탁월한 경우를 본 적이 있으신가?  아직까진 난 못 본 것 같다. 물론 사진집을 그리 많이 본 적이 없어 단언하기는 그렇지만 아마도 사진을 다루는 뇌와 문장을 다루는 뇌가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게 아닐까 한다. 재능을 관장하는 뇌 영역이 다르니, 한 분야에서 탁월하다 해서 다른 분야까지 탁월하기를 보장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아니,오히려 한 분야에서 탁월한만큼 다른 분야에선 어정쩡이지 않을까 한다. 빌 브라이슨이 사진을 찍어 사진집을 만들면 그의 문장만큼 재기발랄하지는 못할 거란 말이다.

 

물론 사진이나 문장 모두가 출중한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자면 " 내셔널 지오그래픽"이라는 잡지가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진사와 기자가 동일 인물이던가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서도, 사진도 탁월하고, 문장도 시시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렇게 둘 다 좋기란 드물다는 것이다. 사진이 좋으면 문장이 시시하고, 문장이 탁월하면 사진이 별로이기 일쑤니 말이다. 나는 원래 시각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문장이 좋으면 사진이 흐릿한 것쯤은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은 환상인데, 문장이 별로라면? 흠, 좀 생각을 해 봐야 한다. 과연 이걸 좋다고 해야 하는지 말이다.

 

이 책은 순례길로 유명한 산티아고 길을 현지인의 입장에서 소개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인 장 이브 그레와그레는 기자 출신의 작가이자 사진사로, 산티아고 길이 유명해지기 오래전부터 그 길을 오고 갔다고 한다. 90년대 들어 그 길이 순례자들의 행렬로 만원이 되는걸 보면서 저자는 순례길의 아름다움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다만, 순례길을 걸어가면서 느낀 시시껄렁한 잡담이나 감상이 아니라, 그 길 자체를 소개하고자 한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흔히 다니는 길이 아닌 9가지 갈래의 길들을 보여주면서, 어떤 길이 아름답고, 어떤 길은 여름에 가면 죽음이며, 어떤 길이 한적하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는데, 혹시나 순례길을 여행하시려 계획하신 분들이라면 눈여겨 볼만한 정보였다.

 

이 책을 보고서야, 난 산티아고가 야고보 성인과 관련이 있다는걸 알았다. 야고보가 스페인 이름으로는 티아고고, 거기에 聖을 의미하는 산을 붙여 산티아고가 되었다는 것이다. 스페인의 작은 마을에 그런 이름이 붙게 된데는 야고보 성인의 무덤이 그곳에 있다는 전설때문이란다. 믿거나 말거나지만서도...그런 이유로 산티아고로 통하는 길이 순례자들의 길이 되었다는데, 솔직하게 털어놓자면 여지껏 난 그 길이 순례길로 이름이 붙은 것은 파올로 코엘료 때문인지 알았다.

 

그렇게 순례길이 된 유례를 알게 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내게 그 길은 순례길이라는 의미로는 다가오지 않았다. 난 Traveller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여행자...산티아고를 걷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순례자라고 말하는지는 알겠으나, 그렇다해도 내겐 그저 여행자와 다름없어 보였다. 왜 그냥 여행자가 아니면 안 되는 것일까. 꼭 그 길을 성령을 느끼기 위해 걸어야 할 필요는 없는거 아닐까? 저자가 누누히 강조하는 성령이 가득한 길이라는 의미에도 별로 동조하고 싶지 않았다. 아마도 그건 그 길을 걷기만 하면 저절로 깨달음이 오더라는 환상에 동조하기 싫어서일 것이다. 여행은 하고 나니 전혀 다른 인간이 되더라고 주장하는 역시 난 믿지 않는다. 인간이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동물은 못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걷는다는건, 현재를 온전히 느끼는 일이다. 비록 성령을 느끼기 위한 길이 아니라도, 아름다운 길을 걷는다는 것 자체가 사람의 심성을 순화시키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더군다나 산티아고 길처럼 아름답다면야, 바랄 것이 뭐가 있겠는가. 성령이 아니라도, 깨달음이 없다해도, 본질을 변화시키지 못했다해도 걷는 것 자체로 의미있는 일이라 본다. 하니, 순례길 말고 그냥 여행자의 길이란 의미로 난 산티아고 길을 이해하고 싶다.

 

이 책의 장점을 들라면, 우선 산티아고의 여러 길을 소개해준다는 점에서 점수를 딸만한다. 거기에 사진들이 예술이다. 너무 과장되지도 않으면서도 피사체를 최대한 아름답게 표현하려 노력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요즘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사진을 찍긴 하지만 이렇게 정갈하고 단아하게 찍은 산티아고 사진은 못 본 것 같다. 공들였음에도 전혀 티가 나지 않는 기법은 어떻게 개발한 것인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사진을 전공하는 사람이나, 사진 동호회 사람들 같은 경우는 눈여겨 봐도 좋을 듯 싶다. 산티아고로 이르는 길과 성당과 다리와 풍광과 시골 길과 소박한 사람들과 유럽 문화들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왜 사람들이 이 길을 찾는지 단박에 이해가 가실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차로 달리면서 지나간다는 것은 솔직히 무례한 것이다. 천천히 걸으면서 음미해 볼 만한 멋진 자연과 건축물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으니 말이다.

 

그런 장점 외에 단점을 들라면 첫째는 문장이 별로였다. 혹시나 해서 저자를 띄워줄만한 문장들을 눈을 부릅뜨고 찾았지만, 어쩜 그리도 식상하고 진부한 멘트만 날려 대시던지. 감상을 적어 내려간 글이나 정보를 던져준 글이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이더라. 다시 말해 이 저자가 필력있는 문장가는 못 된다는 말이다. 이 책이 유독 사진이 주인공이고 문장은 그저 사족처럼 느껴지는 것도 그때문이다. 문장에 눈길을 줘봐도 건질게 없으니 말이다. 이건 뭐, 들어줄만한 이야기가 있어야 들어주지. 어디서 황당무계한 전설이나 주어 듣고 와서는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시는데 저으기 계면쩍었다. 산타가 진짜로 존재한다고 거품을 물고 주장하는 사람을 만나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시려는가? 어색하지 않겠는가? 이건 예의삼아 그런척 해줘야 하나 고민되고 말이다. 거기에~~~합니다.입니다, 등등의 경칭 어미를 쓰는 번역은 정말로 고역이다. 요즘 보는 여행서에 그런 문장들을 쓰는 역자분들이 있던데, 의아할 뿐이다. 그게 읽기 얼마나 걸치적 거리는지 모르시나? 가뜩이나 문장력 부실한 마당에~~~ 합니다라는 아이 달래는 듯한 어투로 마무리를 하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아부하는 듯 느껴지고, 직접적이지도 않으며, 무엇보다 전문성이 의심스럽게 된다. 어떤 이유로 그런 문체를 쓰게 되셨는가는 모르겠는데, 원작에 충실히 번역하다 보니 그럴 수 밖엔 없었다고 해도, 읽는 독자들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감안해 편하게 읽도록 했음 좋지 않았을까 싶었다. 

 

하여, 결론은? 사진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나 산티아고 길로 여행을 가시려는 분들은 정보 삼아 보시면 좋을 듯. 그나저나 제목인 " 부엔 까미노"는 순례자들이 길에서 마주치면 하는 인사란다. 좋은 길이라는 의미인데, 행운을 빈다는 뜻 정도란다.우리나라 말로 치면 "수고하셔요" 가 되지싶다. 생각해보니 서로에게 그런 격려의 말은 건네는 것도 필요하긴 하겠다. 유대감도 유대감이지만, 3주에 걸쳐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그 누구에게나 쉬운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 길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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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단 - 카푸시친스키의 아프리카 르포 에세이
리샤르드 카푸시친스키 지음, 최성은 옮김 / 크림슨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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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쓸데 없는 눈물이나 환상을 만들어 내는 삼류 문인 천명보다 카푸시친스키 한 사람이 훨씬 더 가치가 있다. 르포르타주에 예술적 가치를 결합시킨 그의 비범한 재능 덕분에 우리는 "전쟁의 참상을 온전히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는 카푸시친스키 본인의 말에도 불구하고, 그 진상에 아주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다.===

 

리샤드르 카푸시친스키의 다른 책인 < 생의 또 다른 하루>의 영문판 서문에 쓰인 살만 루시디의 찬사다. 같은 책도 아니고, 더군다나 의례 쓰여져 있기 마련인 추천사를 굳이 처음에 소개하는 이유는 저 문장이 작가를 이해하는데 이보다 더 없이 정확할 수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삼류 문인 천명보다 가치가 있다는 말이 얼핏 거슬리게 들리시려나는 모르겠는데, 일단 그의 이력을 들여다보고, 그의 책을 읽어보면 생각이 달라지실거다. 책 중간에 조금은 지루한 구석이 있어 추천작으로 넣을까 망설였는데,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즈음 생각이 달라졌다. (조금 지루했단 이유로) 추천작으로 넣기엔 문장이 너무도 탁월하고 훌륭했기 때문이다. 유일무이라고 할 만한 그 만의 목소리, 놀라운 집중력, 아프리카를 다루는 폭 넓은 시야, 복잡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추릴 줄 아는 재능, 어디서고 자신을 낮출 줄 아는 겸허함, 학살을 다룰 땐 분노를 다스려야 함을 아는 본능적인 절제력, 어디에 있건 간에 순간적으로 상황을 파악해 내는 통찰력에 상상력, 따스한 인간애, 현실을 직시하는 냉철한 이성에 유머 감각등... 이렇게 걸출한 작가를 이제서야 소개한 것인지 의아 할 정도였다. 문장들이 너무 좋아 혹 그의 다른 책도 나왔는가 검색해보니, 역시나 이 책이 첫 타자다. 이럴때면 우리나라 출판계가 좁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째서, 이런 훌륭한 책들이 작가가 사망한지 몇 년이 지나서야 나오게 되는 것인지...인간이나 세계에 대한 시야를 트이게 해주는 진솔한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작가가 그리 흔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저자인 리샤르드 카푸시친스키는 폴란드 태생의 기자 출신 작가다. 기자 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던 그는 20대 시절 아프리카 통신원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아프리카와 인연을 맺게 된다. 폴란드라는 가난한 나라의 통신원, 비록 가난이 그의 발목을 잡을 지라도 최대한 남에게 빌붙는 기지를 적극 활용해 그는 아프리카 전역을 뽈뽈대며 다니기 시작한다. 60년대부터 9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아프리카를 말이다. 생각해 보시라. 그 기간에 이보다 더 비참한 대륙이 어디 있었는가 하고. (아, 물론 킬링필드의 아시아도 있긴 했지만.) 이보다 더 비이성적일 수 없다는 가난에 무지에 내전에 학살에 종족 분쟁에 쿠테타에... 사자가 무서워? 마주칠 일이 없으니 걱정 말란다. 오히려 모기야 말로 아프리카 최대 복병이란다. 말라리아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긴 경험자의 말이니 맞는 말일게다. 내전때는 최전방에서 취재하다 잡혀 사형 선고를 4번이나 받았으며, 40여회의 체포와 구금까지...그 30여년의 기간동안 저자가 발로 쓴 르뽀를 묶어낸 것이 이 책이다.  도무지 취재하려고 이 생고생을 해야 하나요? 툴툴대며 물어봄 직도 한데, 그는 그보단 아프리카의 저간 사정과 미래에 더 골몰하는 눈치다. 도대체 이 고통의 땅을 어찌해야 하오리까? 그는 묻고, 고민하고 있었다. 왜냐면 아프리카인들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백인에 지식인에 유럽인이니, 거들먹 거리면서 거만하게 꼬나 앉아서는 무지몽매하고 거렁뱅이에다 야만인들을 성토한다해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을텐데, 그는 편견이나 오만, 오해로 자신의 시야가 흐려지는 것은 거부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듣고, 보고, 겪어내면서 그는 아프리카를 통채로 이해하려 노력했고, 성공했다.

 

그것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아무리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훈련이 되어 있는 유능한 기자라고 해도 외부인의 시선을 가진 자가 현지인을 정확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감상에 젖지 않으며, 속지 않고, 현지인들이 복잡한 사정을 꿰뚫어 본다는 것은 보통의 집중력이나 노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우선 지쳐서도 못하고--과연 우리가 남에게 그렇게 관심이 있던가, 생각해보시면 금세 이해가 되실 것이다.--통찰력이 부족해서도 못한다. 그걸 잘 알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내고, 이런 문장들을 써 내려 갈 수 있을까? 살만 루시디의 말에 태클을 걸 수가 없었던 것도 그런 이유때문이다. 한나 르랄이란 폴란드 작가는 이런 말로 저자를 예찬한다.

 

" 카푸시진스키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고, 가장 행복을 느꼈던 세상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해야 하는 척박한 오지였다. 그런 곳에서 인간은 결코 다른 사람인 척 가장할 수 없으며, 자신의 참모습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내 보이게 된다."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이 책이 위대한 것은 결코 다른 사람인척을 하지 못했던 한 사내의 본 모습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인간애도 그렇지만, 그가 목격한 모든 것들에 지지 않은 채, 우리가 흑백이라는 인종 이데올로기를 넘어서길 바라던 지성 역시 감탄스러웠다.

 

그렇다고 그의 글이 정치적인 색깔만을 지녔는가 오해하진 마시길. 아프리카 사정이 사정이던 만큼 정치적인 에세이가 많긴 했지만 "압달라 왈로 마을에서이 하루 "같은 지극히 서정적인 에세이나, 유머감각 넘치는 탁월한 단편 소설 같았던 " 마담 디우프, 집으로 돌아가다." 나 "오시차의 웅덩이" 도 있으니 말이다. 기자출신이라고는 하나, 문장력이 너무 탁월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것을 썼어도 성공하지 않았을까 한다. 어쨌거나 그가 들려주는 아프리카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새 아프리카란 대륙이 더 가깝게 느껴졌다. 그의 애정이 전염된 탓이다. 총체적으로 이기적이고 부패중이라는  21세기에도 이런 살아있는 작가들을 배출해 낸 지구에도 새삼 자부심이 느껴진다. 하니 너무 기죽지 말지어다. 인간종도 때론 이런 멋진 인물을 만들어내니 말이다. 

 

 

   
   언젠가 나는 아프리카에 8년째 머물고 있는 나이 많은 영국인과 같은 테마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일반 문화와 달리 유럽인과 유럽 문화의 힘은 상황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 그중에서도 자아비판적인 태도에서 나온다. 분석과 조사, 그리고 끊임없는 탐구와 꾸준한 의심이 그 원동력이다. 유럽인의 정신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불완전함을 받아들인다. 그들은 회의적인 시각으로 끊임없이 의심을 품고, 늘 물음표를 던진다. 다른 문화권에서는 이처럼 강력한 비판정신을 찾아볼 수 없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자부심을 고취하기 위해 애쓰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완벽하다고 여기려는 경향이 있다. 즉 자기 자신에 대해 무비판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잘못의 책임을 다른 사람이나 다른 세력(음모나 스파이, 다양한 형태로 조재하는 외부의 통치)탓으로 돌린다.그들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모든 비판을 악의적인 공격이나 차별의 징후, 혹은 인종주의의 소산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문화를 대표하는 사람들은 비판을 자신에 대한 모욕이나 업신여기는 시도로 간주하며, 심지어 사디즘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만약 그들에게 도시가 지저분하다고 이야기하면 ,그는 마치 자신을 욕하기라도 한 듯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자기의 귀와 목, 손톱이 깨끗하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들의 머릿속은 자기 비판적인 시각 대신 미움와 열등감,시기심과 짜증, 유감으로 가득하다. 이런한 인식은 문화적으로, 사회 구조적으로 계속 영향을 미쳐 스스로 진보적인 개발에는 영 소질이 없다고 결론짓게 만들며, 발전을 갈망하는 내적인 변화를 유발시키는 데 있어 치명적인 걸림돌이 된다.아프리카의 문화가 바로 이런 무비판적이고 다루기 힘든 문화에 속하는가? 사디그 라시드와 같은 아프리카인들은 대륙 간의 경쟁에서 유독 아프리카가 뒤처진 이유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면서 바로 이 점에 대해 심사숙고하기 시작했다.---350

 


일반적으로 아프리카에 머무는 동안 유럽인들은 그곳의 극히 일부만 보게 된다. 대부분 겉으로 드러난 모습들, 별로 흥미롭지 않고 쓸모없는 단면들만을 본다. 모든 대상들 속에는 나름대로 드러나지 않는 가치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한다는 듯, 그들이 시선은 수박겉핥기식으로 피상적인 곳에서 겉돌 뿐 정작 그 내부를 꿰뚫고 들어가지 못한다. 유럽의 문화는 깊숙한 본질로의 침투, 자신과 다른 세상, 다른 문화의 근원을 파고드는 탐구에는 영 익숙치 않다. 역사적으로 볼때 유럽 문화를 포함하여 수많은 문화들을 최초로 접촉하는 단계에서 그 주도권을 차지한 것은 강도나 용병, 범죄자, 투기꾼, 노예 상인등 ,별로 질이 좋지 않은 유형의 사람들이었다.....국경을 초월한 탐욕스러운 약탈자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문화교류를 독점하면서 그 기준과 분위기, 색깔을 만들어 버렸다. 그들은 다른 문화를 존중하고 배우며, 상대방과 소통할 수 있는 공통된 언어를 찾는 일은 안중에도 없었다. 대부분 예의나 품위를 저버린 몽매하고 아둔하고 몰상식한 장사꾼들로, 그중 상당수는 문맹이며, 그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정복과 약탈, 학살뿐이었다. 이런 시행착오로 인해 각각의 개별적인 문화들은 서로를 좀 더 깊이 알아가면서 가까워지고 소통하는 대신 적대관계로 전락하고 말았으며, 그나마 조금 나은 경우가 무관심한 태도를 갖는 정도였다...결국 이異문화 교류는 무지한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치닫게 되었고, 인간관계 역시 가장 원시적인 기준, 즉 피부 색깔에 의해 좌우되었다.---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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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 워크 - 원죄의 심장,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3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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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려 제목을 검색하니 3년전에 이 책에 영화화 되었다는걸 알게 됐다. 책은 괜찮은데, 영화는 아니었나 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을 했는데도 소개가 된 걸 못 봤으니 말이다. 

 

블러그 워크 ,굳이 번역하자면 <피로 하는 일> 정도가 되려나?  피범벅이 된 현장에서 일한 전직 FBI 요원이 주인공이니 말이다.  미궁에 빠질뻔한 다수의 연쇄 살인범을 잡아낸 FBI 프로파일러 테리 매케일럽은 심장마비를 겪은 뒤 조기 은퇴를 하게 된다. 희귀한 혈액형 때문에 맞는 심장을 찾지 못한 그는장장  2년을 기다린 끝에 이식 수술을 받게 된다. 죽음 바로 앞에서 새 생명을 얻었다고 생각한 그는 조용히 은둔 생활에 돌입한다. 아버지가 남겨주신 배를 수리하면서... 

 

그런 그 앞에 미모의 여자가 찾아온다. 그녀는 그가 받은 심장은 바로 자신의 동생 그레이스의 것이라면서, 동생을 죽인 범인을 잡아달라고 부탁한다. 거절하는 그에게 그녀는 동생의 아들 사진을 보여주면서 당신이 새 생명을 얻은 것은 동생의 죽음 때문이었음을 잊지 말아 달라고 한다. 일말의 의무를 느껴달라는 것이다. 본인도 기증자에게 새 삶을 빚졌다고 생각한 테리는 보은의 차원에서 수사에 나선다. 사건을 추적하기 위해 경찰서에 들른 그는 그를 경계하는 수사관들 때문에 곤란을 겪는다. 그레이스가 살해되던 당시의 녹화 테입을 구해 본 테리는 그녀가 단순 편의점 노상 강도에게 살해되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뭔가 석연찮은 것이 있다고 생각한 그는 그간 비슷한 수법으로 살해된 사람이 더 있는지 알아본다. 그녀가 죽기 얼마전, 현금 인출기에서 돈을 인출하던 남자 한명이 마찬가지로 살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그레이스를 죽인 범인이 단순 강도가 아닌 연쇄 살인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단서를 따라가던 그는 과거 자신이 잡지 못한 코드 연쇄 살인범의 발자취를 발견하고는 경악한다. 코드 연쇄 살인범이 무엇때문에 그레이스를 살해한 것일까 고민하던 테리는 모든 의혹의 화살이 자신에게 돌려 지는 것에 순간 두려움을 느끼는데...

 

제목에 썼듯이 바쁜 계획이 있는 분들은 잡지 않는게 좋은 추리 소설이다. 백화점에서 세일을 한다고 해서 외출을 하려 했는데, 끝까지 보느라 결국 못 나갔으니 말이다. 표지에 소갯말로 <첫 페이지를 읽기 시작하면 끝을 볼때까지 결코 내려놓을 수없을 만큼 몰입도가 강하다.>고 하던데, 내 경험에 의하면 틀린 말은 아니지 싶다.하여간  추리 소설이라고 명함을 내밀어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집중력과 몰입도, 개연성, 탄탄한 스토리 라인이 있어서, 일단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내쳐 봐야 할 거라는 것을 명심하시길...

 

추리 소설의 얼개도 얼개지만, 등장인물들의 면면도 식상하지 않아 좋았다. 심장 이식 수술 여파로 운전은 커녕 약 보따리가 없으면 멀리도 못가는 허약한 탐정도 탐정이지만, 그를 돕겠다고 따라나선 옆 집 보트 아저씨는 어찌나 귀엽던지...평소 추리 소설을 좋아하다 못해 얼치기 탐정 노릇이라고 해보고 싶은 중년 사내의 모습을 아주 잘 포착하고 있었다. 추리 소설이 주는 긴박감과 연쇄 살인범이 주는 냉혹함을 적절하게 중화시켜주는 장치로 아주 잘 고안한 등장인물 같다. 그외에 연쇄 살인범의 개성도 언급해야 겠다. 자신의 적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냥 죽일 수 없었다는 이 사내, 설마 현실에 이런 살인범이 있겠는가, 개연성에는 약간 의문이 들었지만 추리 자체로는 무리가 없었으니 넘어가기로 한다. 잘 쓰여진 추리 소설이다. 타임 킬링용 집중력 있는 소설을 찾는 분들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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