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나무같은 사람 - 식물을 사랑하는 소녀와 식물학자의 이야기
이세 히데코 지음, 고향옥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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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사진만으로 마음을 사로잡기는 쉽다. 요즘엔 왠만한 표지들이 다들 환상적으로 아름답게 나오니 말이다. 문제는 그 표지에 걸맞는 내용인가 하는 것... 처음 이 책을 보고서 망서린 것도 바로 그때문이었다. 과연 이렇게 아름다운 표지에 걸맞게 괜찮은 내용일런지 하는 것이 적잖이 미심쩍었던 것이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느는 것이 의심과 회의와 냉소뿐이면 곤란하다는 것을 알지만서도, 어쩌겠는가. 그동안 너무 많이 당했던 (?) 탓에 쉽사리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하여, 오랜동안의 망서림 끝에 결국 사기로 한 것은 내용이 별로일지라도, 그림만 봐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서였다. 조카는 어차피 글을 아직 읽지 못한다. 엄청나게 읽고는 싶어하나, 아직은 기억만으로 읽는 척 할뿐이다. 다행히도 난 기억에 의지하지 않아도 되게시리 문자 해독능력이 있다. 하지만 딱히 내용이 별로라면 글자는 무시하고 그림만 보면 된다. 이렇게 깔끔하게 해결책을 낸 나는 그런 내 자신을 무척 뿌듯해 하면서 주문을 했다. 다음날 책이 왔고, 놀랍게도... 책이 너무 맘에 들었다. 

 내가 자랄때와는 다르게 요즘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들이 널려 있다. 하지만 그 책들중에서 내가 정말로 내 맘에 들어 환호하면 조카에게 들려줄만한 것들은 생각보다 적다. 아니, 왜 요즘 같은 시대에 괜찮은 동화책이 없는 거야? 불평, 불만이 폭주한다.궁시렁대가 이런 책을 만나면 저절로 신바람이 난다. 그래, 이런 책들이라면 두고두고 읽어줄만하지. 싶은 것이다. 

내용은 방학을 맞아 일본에서 프랑스로 놀러온 한 아이와 식물학자와의 우정을 그린 것이다. 식물원 곳곳에 출몰하는 일본 여자아이의 모습이 눈에 익을 무렵, 식물원에서 일하는 아저씨가 아이를 잡아 온다. 해바라기인줄 알고 꽃을 꺾었던 것이다. 그 꽃이 이미 꺽어져 있었던 것이라며 변명하는 아이, 물론 그 꽃은 아이가 꺾은 것이다. 할아버지에게 드리기 위해 꽃을 꺾었다는 소리를 들은 식물학자는 그녀에게 해바라기 씨를 건네준다. 집으로 돌아가 정성스레 씨앗을 심고 싹이 트기를 기다리는 아이, 싹이 트자 방방 뜨면 좋아한다. 여전히 식물원으로 출근을 하는 아이를 위해 식물학자는 천천히 식물원에 있는 나무들과 꽃과 정원들을 설명해준다. 식물에 대한 애정이 둘을 묶어 주는 가운데, 시간은 흘러 아이가 일본으로 가야 하는 가을이 되어 버리는데... 

 그림들이 너무 훌륭해서 할말을 잃을 정도다. 표지의 사진도 그렇지만 두 페이지에 걸쳐 나무를 표현한 그림은 정말로 와아~~소리가 나올정도로 멋졌다. 실물을 봤다 해도 감탄사가 나오긴 했겠으나, 그것을 못지 않게 표현해낸 작가의 그림 솜씨가 탁월해 보였다. 단지 실물을 그래도 묘사하는 것이 아닌, 저자 고유의 시각으로 그려낸 식물원의 모습들이 인상적이란 것은 말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이렇게 서정적이고, 욕심 없으며, 자유롭고, 한가로운 식물원을 정경을 어떻게 잡아냈을지... 작가 덕분에 몰랐던 식물원의 아름다움을 새삼 발견한 듯 해서 읽는 내가 뿌듯해 버렸다. 이 책을 읽고 식물원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제대로 읽지 않은 것이 분명할 것이다. 

그림이 너무 아름다워서 조카를 읽어주면서 내가 먼저 감동해 버렸다. 5살인 조카는 아직까진 왜 이  그림들이 그렇게 아름다운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그 녀석에겐 이것에 처음 만나는 세상이고, 하니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다 이렇게 아름다울 것이라고 믿고 있을테니 말이다. 언제나 어른이 되면, 그래서 자신의 아이를 위해 책을 고르다보면 어릴적 이 책이 기억나겠지. 어쩜 왜 요즘은 그런 책이 나오지 않느냐면서 불평을 할지 모르겠다. 내가 어렸을적에 읽어줬던 동화책들은 다들 멋지고 감동적이며, 아름다웠는데 하면서...추억에 젖는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추억으로 남겨도 좋을만큼 멋진 책이니 말이다. 

책을 다 읽어주고는 조카에게 월요일에 어린이집에 이 책을 들고 가서 친구들과 함께 보라고 해줬다. 조카는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어린이집에 가지고 가서 친구들과 함께 읽곤 한다. 물론 선생님이 읽어 주시긴 하지만, 좋은 책을 친구들과 함께 한다는 생각에 뿌듯해 한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때면 이러다가 조카가 토니어 크뢰거처럼 되는건 아닐까 걱정이 되긴 한다. 그것이 굉장히 외로운 길이라는걸 잘 알기 때문이다. 좋은 책을 나눈다는 생각이 얼마나 좋은 건데 , 아마도 내가 비약이 심하지 싶다. 조카가 내 말대로 이 책을 어린이집에 갖고 갔는지는 모르겠다. 그랬거나 안그랬거나 간에, 이런 책들은 많은 아이들이 읽어줬음 싶다.  비록 번역체가 읽어주기엔 좀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거슬리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 아름다운 책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완벽한 책을 만나는 것이 늘상 있는 것은 아니란 것을 알기에, 모든 아이들에게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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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한 스푼 - 365일 미각일기
제임스 설터.케이 설터 지음, 권은정, 파브리스 모아로 / 문예당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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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선 떠들지 않는다는게 내 원칙중 하나다. 하기 싫어서냐고? 설마 그럴리가... 나 같은 불평쟁이가 불평거릴 눈 앞에서 그냥 놓친다는게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데.... 마구마구 떠들고 싶다는게 내 심정이다. 하지만 아쉬움에 쩝쩝 거리면서도 입을 다무는 것은 잘난 척 하려 책을 다 읽는니 그 시간에 잠이나 자는게 남는 장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난 나를 고문하는데 취미가 없다. 거기에 안 읽은 책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는건 예의가 아니다. 둘을 더하면, 왜 내가 다 읽지 못한 책에 대해 함구하려는지 이해가 되실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은 지금 내가 그 원칙을 깨려 하기 때문이다. 리뷰 하려는 이 책 <위대한 한 스푼> , 다 읽지 못했다. 변명을 하자면 절대 내 탓 아니다. 정말로( 다 읽으려) 애를 썼다. 하지만 읽을 수가 없었다. 도무지 저자가 무식한 것인지 역자가 무식한 것인지, 말도 안 되는 문장들이 자꾸 눈에 밟히니 읽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식을 늘릴 생각으로 책을 읽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무식을 늘릴 생각으로 책을 읽지 않는 나로써는 이걸 읽어야 하나 말까로 적잖이 고민이 됐다. 예를 들어 볼까나?

 

"미트볼--자식들과 손주들은 내가 만든 미트볼을 좋아하지. 아이들이 그리울 때면 미트볼을 만들곤 해. 빵가루는 빵이 좋아야 하고말고. 빵가루와 커다란 파르메산 치즈 덩어리를 포드 프로세서에 넣고 오레가노와 바질을 한 티스푼씩 넣지. 그리고 날달걀 두개와 얇은 햄버거 1파운드로 골프공 크기의 미트볼을 만들어 올리브오일에 갈색이 되도록 익히고 나머진 버려. 마지막으로 소스에 마늘과 양파,그리고 신선한 바질을 한 줌 넣으면 끝이야.p.150-->음, 이 문장을 읽고 어떻게 만드는지 감이 오시는 분? 도무지 얇은 햄버거란 무엇일까? 소고기 다짐육을 말하는 것일까? 위에 나온 모든 것을 다 넣어 으깬 패티를 말하는 것일까? 그걸 햄버거라고 한다고 치자. 얇은(?) 햄버거 1파운드로 골프공 크기로 만든다는건 또 뭐야? 게다가 나머진 버리라니? 뭘 버리란 거야? 미트볼을? 아니면 올리브 오일을? 

 대충 이렇다. 읽다보면 뭔가 아귀가 안 맞는 듯한 문장들이 걸리적 댄다. 자칭 타칭 미식가라는 솔터 부부가 거반 30여년동안 그들이 해먹은 것들을 망라해 정리한 것이라는 이 책,  1년 365일 열두달동안 그들이 먹고 ,명사들을 초대해 먹인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엮어 놓은 책, 먹거리는 물론, 파티와 관련한 에티켓, 와인에 대한 이야기와 유명한 인물들의 먹거리에 관련한 스캔들등 먹는 것에 대한 잡다한 이야기가 빼곡히 나열된 이 책, 시도는 좋았다. 문제는 잘 나가는 듯 하다가도 말이 안 되는 문장들이 밥에 돌맹이처럼 서걱댄다는 점이다. 그들이 언급하는 요리들이 대부분 서양 음식이라는 점과  전적으로 솔터 부부의 시각에서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음식 이야기라는 것을 고려한다 쳐도 너무한다. 만약 그것이 문제였다면 외국인들이 쓴 요리 서적은 다 이상해 보여야 하질 않는가. 다른 외국인 요리사들이 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궁싯댄 기억이 없는걸 보면 이 책이 이상한거 맞다. 게다가 최음제에 대한 이야기는 왜 그리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지...인류 요리 역사가 최음제 위주로 전개된 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뭐, 무엇을 쓰건 간에 그건 작가의 맘이니 그걸 뭐라 할 수는 없다.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는 건너 뛰면 그만이니 말이다. 다먄 내가 양보할 수 없는 것은 적어도 그것이 믿을만한 이야기여야 하지 않느냐는 점이다. 맛깔난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믿거나 말거나, 누가 그랬다더라라는 풍문에 얽힌 이야기만 아니라면 일단은 합격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렇질 못했다. 이건 외계인이 나타났다는 기사를 주고 싣는다는 영국의 3류 잡지 썬지도 아니고, 그들보다 좀 더 품격 있다는 것만 다를까, 내용면에 있어서는 하등 질적인 면에서 차이가 나지 않아 보였다. 정확한 정보인지 확인하는게 저자에겐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걸까?  저자는 그저 드라마틱한 이야기면 독자들이 환호할거라 생각한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렇지 않다.  저자의 태도가 그렇다보니 더 이상 읽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는 없었다. 책의 두께를 생각하면 미안한 일이지만서도 어쩔 수 없었다.

 

어찌보면 독서란 음식을 맛보는 행위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재료가 신선하면 신선할수록 좋고, 미심쩍은 재료는 사절이며, 맛깔나게 요리하는 것으로 질이 결정되는데다,만드는 사람의 능력과 독창성이 중요하고, 일단 들어왔을때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넘기기가 수월하지 않다는 점등이 말이다. 이 책을 음식에 비유하자면, 도저히 목구멍으로 넘길 수가 없는 것이었다고나 할까? 그 이유를 대라면 제대로 조리 되지 않았다는 것이나 재료가 아무래도 미심쩍더라는 것 정도를 지적해야 할 것이다. 내진 음식을 나르던 웨이터가 주문을 잘못 전달한 것일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굳이 그 이유를 세세히 따지고 싶지는 않다. 제대로 된 음식을 음미하기에도, 맛깔 난 책을 찾아 내기에도 시간은 부족하니 말이다. 그 이유를 따질만한 시간이 있다면 차라리 잠을 자리라. 아니면 산책을 하던지...Life is meals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오, 글쎄. Life is meals이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만은, 실제의 삶은 그렇지 못하다. 또 어쩌면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기도 하고 말이다. 음식이 별로일때, 음식 외에 우리를 위로할 것들이 없다면 우리는 무슨 낙으로 살아가겠는가? 하니 Life is meals이라는 말엔 동조할 수 없다. Meals은 그저 우리 삶의 일부분일 뿐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러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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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10-07-06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동감함다... 리뷰 한줄 쓸까 말까 고민중이었슴다 ㅎ 특히 최음제 얘기도 지루하고. 이거야 원...

이네사 2010-07-06 21:10   좋아요 0 | URL
그렇죠? 누군가는 제 말에 공감해주실 줄 알았습니다.
대체로 그다지 호감이 가는 부부는 아니었어요. 부부가 썼다길래 무척 기대하고 본 책인데 말여요.
이런 사람들을 보면 정말 부부는 똑같은 사람들이 만나는구나,싶어요.
 
늦어도 11월에는
한스 에리히 노삭 지음, 김창활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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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대책없는 사랑이 요즘에도 먹히긴 하는걸까? 책을 읽으면서 내내 든 생각이다. 내가 너무 냉소적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도무지 이렇게 현실성 없는 사랑을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낭만적이라는 말을 쓸 수도 있겠지만, 낭만적인 사랑은 이렇게 무참할 정도로 진지하지 않지 않던가? 정신 나간 사람들의 사랑? 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너무 메마른 여자인 걸까?  

내용은 이렇다. 대기업 사장의 부인인 28살이 마리안네는 남편이 주최하는 문학상 수상자인 묀켄을 만난다. 만나자 마자 그녀를 향해 "당신이라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말에 마리안네는 운명을 느낀다. 처음 만난 그를 집으로 데려온 마리안네는 아들과 시아버지, 그리고 남편을 두고 묀켄과 집을 나선다. 여기 저기 떠돌면서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던 둘은 점차 불안에 떨게 된다. 마리안네의 불안이 극에 달할 즈음, 며느리를 예뻐하던 시아버지가 그녀를 찾아온다. 시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던 마리안네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이번엔 시아버지를 따라 나선다. 갑작스럽게 집을 나선 것 만큼이나 충동적으로 다시 집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마리안네는 최대한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행동하려 하나, 그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자의식이 강한 그녀가 허공에 떠돌고 있을 즈음 묀켄이 써 오던 극본이 완성되어 연극으로 상영된다는 것이 전해진다. 표를 사놓고 전전긍긍하는 그녀 앞에 다시금 당연하다는 듯이 묀켄이 나타나는데... 

내가 어렸을 적에 이런 책을 봤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둘의 사랑이 절대적이고 아름다우며,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하려나? 물론 지금도 그것은 똑같을 것이다. 사랑이란 감정을 어찌 인력으로 막아야 한다고 하겠는가. 두 사람이 사랑한다는데 막아야 한다고 생각할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다만 이 책을 보면서 내가 주목하게 된 것은 바로 한없이 바보로 비춰지던 마리안네의 남편이었다. 엄마는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간 후 자살로 막을 내려, 그 이후 무뚝뚝한 아버지 밑에서 자라다 돈에서는 성공을 했으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신부를 맞아 아내가 가출하는 꼴을 봐야 해. 바람이 나서 가출한 아내를 어찌해야 할까 고민한 사이도 없이 아버지가 아내를 데리고 와, 그런 아내와의 사이가 회복되기도 전에 다시 그 연적이 찾아와 아내를 데려가...이건 한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질 않는가? 다른 사람 둘이 사랑한다고 해서 왜 마리안네의 남편이 상처를 입어야 하는게 당연시 되어야 하는지 언잖았다. 사랑받지 못하는 자는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버림받아도 된다는 말인가? 

난 마리안네가 싫더라. 사랑하지 않는다는걸 잘 알면서도 안전하단 이유로 결혼을 선택한 그녀, 그것이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주체적으로 나서는 모습이 좋았을 것이다. 겨우 한번 만난 남자를 따라 나선 그녀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건 또 뭔가?  이렇게 대책없어도 되는 것일까? 의아했다. 어쩌면 그 둘이 그런 최후를 맞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런 결론이 아니라면 도무지 수습이 되지 않는 전개였기 때문이다. 과연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그 둘은 행복할 수 있을까? 다시 몇 달이 지난 후에 마리안네는 다시금 불안을 느낀다면 그를 떠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어디 있는가?  왠지 둘이 행복할 수 있는 길은 죽음 밖에는 없을 거란 생각에 우울해진다. 역시 대책없는 사랑은 대책없는 결론밖엔 나올 수 없는게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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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백 모중석 스릴러 클럽 21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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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10대를 벗어난 대학 신입생 시절, 맷 헌터는 친구들의 싸움이 휘말려 사람을 죽이고 만다. 그 댓가로 9년을 복역한 뒤 출소한 그는 과거를 잊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로 한다. 올리비아라는 멋진 여성을 만나 한눈에 반한 그는 결혼을 하고 정착을 한다. 그를 늘 돌봐주던 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잠시 그늘이 지긴 했으나 운명에 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에게 어느날 이상한 사진이 전송되어 온다. 바로 올리비아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고 있는 현장 사진이 날라온 것. 그는 자신의 세계가 다시금 뒤집히는 듯한 절망감을 느낀다. 그 사진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맷은 아내의 뒤를 캐기 시작한다.  

한편 로렌 뮤즈 수사관은 한 수녀의 죽음을 알아봐 달라는 부탁을 받고 모교를 찾아간다. 자연사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던 수녀의 가슴이 성형 보형물이었던 것, 62세의 수녀가 가슴 성형을 했을리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비로서 그녀가 누구였는지부터 알아보기 시작한다. 그녀가 타살되었다는 증거를 잡은 로렌은 마찬가지로 아내의 흔적을 쫓던 맷과 마주치게 되는데...과연 카톨릭 여학교에 숨어 살던 수녀와 아름다운 아내와의 연결점은 무엇일까? 점차 사건을 캐기 시작하면서 맷은 그가 알고 있던 올리비아라는 여인이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타임킬링용으로 읽을 만한 책이긴 하지만, 그다지 잘 된 추리 소설이었다고는 보기 어려운 책이다. 한달전쯤 읽었는데, 벌써 가물가물 생각이 나질 않는 것을 보면 더군다나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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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그리고 여러 불가능한 소망들
에일렛 월드먼 지음, 신정훈.이정윤 옮김 / 프리뷰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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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표지에 이 책을 세번이나 읽었다는 한 작가의 말에 비웃고 말았다. 세상에...세상은 넓고 읽은 책은 널렸구만, 뭐 읽을게 없어 이런 책을 세번이나 읽나? 책이 재밌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면 좀 더 그럴 듯한 말을 하는데 나았을 성 싶구만 말이다.  

대형 로펌에 취직한 에밀리아는 선배 변호사인 잭에게 한눈에 반하고 만다. 그가 자신의 반쪽임을 알아본 그녀는 그가 한 아이의 아빠이자 한 여자의 남편이라는 사실은 접어두고 그에게 무차별적으로 접근한다. 결국 잭을 이혼시키고, 그와 결혼한 에밀리아는 자신이 의붓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남편을 사랑하니 남편의 아이도 사랑할 줄 알았던 그녀는 그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더군다나 잭과의 사랑의 증표인 딸이 태어나자 마자 이틀만에 죽고 말자 에밀리아의 삶은 뒤죽박죽이 되버린다. 자신의 아이의 죽음을 채 받아 들이기도 전에 남편의 아들인 윌리엄을 돌봐줘야 하는 처지가 되버린 에밀리아는 조숙한 다섯살 윌리엄이 마치 악마처럼 느껴진다. 남편이 자신과 윌리엄 사이에서 전전긍긍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자신을 어쩌지 못하는 에밀리아는 점점 더 자신이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할지 자신이 없어 지는데... 

불륜을 자신의 가정을 깬 아버지를 미워하면서도 본인이 남의 가정을 깬 당사자가 되어버린 한 여자의 이야기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전형적인 자의식을 가진 여인네의 이야기.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주인공이 사랑스럽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단점. 결론이 해피엔딩이긴 했지만, 싸가지 없는 여주인공에 공감을 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남의 남편을 빼앗은 댓가로 의붓엄마가 된 여자의 갈등이 잘 그려졌다고 할지는 모르겠으나, 신경을 긁어 대는 것 같이 만나는 사람마다 긁어대는 주인공이 끝내는 끔찍해졌다. 도무지 이런 여자를 이겨내는 남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 아니면 가엾다고 해야 하나? 똑똑한 여자들은 피곤해, 라고 말하던 남자들이 이해되던 소설. 

추신--남의 가정을 깬 여자도 괜찮은 의붓엄마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려한 소설이지 않는가 한다. 하지만 오히려 이 책을 보면서 괜찮은 의붓엄마가 된다는 것이 이렇게 쉬울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적어도 이 소설속에 나오는 주인공 같은 여자라면, 그녀가 좋은 의붓엄마가 된다는 것을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왜냐면 아이를 너무 이해 못하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그저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여자일뿐. 그런 사람은 의붓 엄마가 아니라 자신의 아이도 제대로 키우지 못한다. 적어도 내 경험에 비춰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저자 본인을 투영한 주인공을 만들어 낸 듯 했는데,  과연 미국 여성들로부터 싸가지 없다는 말을 들을만도 한 여자란 생각이 든다. 말을 하는걸 보면 그렇게 얄밉지 않던데, 글을 쓸걸 보면 확실히 얄미운 걸 보면, 아무래도 싸가지 없는게 맞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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