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ale of Tom Kitten : The original and authorized edition (Hardcover)
Potter, Beatrix / Frederick Warne & Co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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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아주 어렸을 적 나는 베아트릭스 포터의 팬이었다. 피터 래빗과 다양한 동물들의 모험과 우정과 소란들을 얼마나 좋아했던지...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기분이 울적해지면 기분 전환 삼아 책들을 뒤적이고 했던 것이. 한번 본 책들이라고 상관없었다. 아니, 대개는 한번 이상 본 책들이었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책을 쌓아놓고 사줄만한 형편이 되는 집들이 별로 없었으니 말이다. 우리 집도 그랬다. 갖고 있는 책이 몇 권  안 됐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다. 이미 뻔히 결론을 아는 책들을 다시 살펴 보면서 처음 보는 듯 놀라고 즐거워 하고 당황하고 안타까워하고 궁금해 하고 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때론 다른 결론을 내는 상상해보면서. 하지만 늘 결론은 한가지였고, 결국 그런 결론으로 끝난다는 것에 저의기 실망했다. 그땐 몰랐다. 박혀 있는 문자가 내 생각만으로 바뀌질리 없다는 것을...

그나저나, 그땐 기억력이 그렇게 안 좋았던가? 갑자기 궁금해진다. 지금은 한번 본 책을 다시 보라면 마치 주리를 트는 고문을 당하는 양 비명을 질러대는데, 어떻게 그땐 보고 보고 또 본 책들을 마치 처음 보는 것인양 볼 수 있었던 것일지 이해가 안 간다. 단기 기억 상실증에 걸려 있는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미 달달 외우고 있는 책들을 처음 보는 것인양 그렇게 반갑게 읽을 수 있던 것일까. 아마도 그런 것들이 어린 아이의 특성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보면 내 조카도 그런 것 같으니 말이다. 물론 그 녀석은 나보다 진일보해서 자신이 이야기를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읽어줬던 책을 읽어 주면서 내가 조금 밍기적 거리면, 냉큼 자신이 줄거리를 설명해 주는걸 보면 말이다. 그럼에도? 녀석은 아직 아기다. 그래서, 한번 읽은 책을 또 읽어 달라고 , 다음에 와서도 또 읽어 달라고 요청한다. 넌 이걸 좋아하는구나? 난 빙그레 웃으면서 다시 읽어준다. 아이들의 취향이란, 그렇게 분명해서 좋다.별로 복잡하지도 않고 말이다. 

 하여간 요즘은 내 책보다 조카의 책을 찾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는건 거짓말이고. 물론 내 책에 훨씬 더 비중이 높지만 적어도 신경은 쓰고 있다. 것도 엄청 많이. 조카가 생기기 전엔 내 책만 고르면 됐지만, 그래도 명색이 고몬데, 나만 생각하긴 그렇지 않는가. 어쨌거나  조카에게도 신경을 쓴다는데, 그 정도는 봐주시라. 엄살을 부리자면 엄청 쓴다.  

그런데 어렵다. 아이들 책을 고르는 것은. 동화책이 많긴 했지만 딱히 내 눈에 차는 책을 찾는건 내 책을 고르는 것보다 더 어렵다. 그럴때마다 내가 어릴적 읽었던 책들이 생각난다. 그 많은 좋은 동화책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지금 나오는 책보다 못하지 않은 책들이 많았는데, 어렴풋이 생각나서 찾아보면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그나마 베아트릭스 포터의 경우는 몇 년 전 전기 영화가 나온 관계로 이름이나 기억나지, 다른 작가들의 동화책들은 제목이나 작가이름 조차 가물가물이다. 그렇다보니 내가 어렸을 적 읽었던 좋은 동화책들을 찾을 길이 없다. 안타깝고 서운하다. 지금 조카에게 읽어주면 환상적일텐데 말이다. 

어쨌거나 그래서 간신히 고른 베아트릭스 포터의 책, 그나마 원서로 읽어야 한다. 어쩐 일인지 모르지만 포터의 책은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절판이란다. 그래도 명색이 동화계의 대모라고 불리우는 작가인데, 피터 래빗이라는 유명한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우리나라 출판계가 좀 너무한거 아냐? 싶다. 아니 어쩜 그보단 우리나라 엄마들이 문제일지도... 책이 팔려야 출판사도 출간을 할테니 말이다. 하여간 피터 래빗의 인기가 그렇게 떨어졌단 말인가, 좀 서운해 하며 하는 수 없이! 원서로 들여다 본 책이 되겠다. 피터 래빗은 아니고, 톰 키튼이라는 고양이 삼 남매의 이야기다. 

세마리의 귀여운 고양이 삼 남매가 있었다. 미튼스와 톰 키튼, 그리고 모펫양. 그들의 엄마인 타비샤 트윗칫 여사는 오후 티 파티를 위해 그들의 단장을 시작한다. 얼굴도 닦아주고, 털도 브러쉬 해주고, 수염과 꼬리의 빗질도 마쳤다. 몸 단장을 마쳤으니 그 다음 순서는? 엄마는 그들에게 멋진 옷들을 입혀준다. 문제는 그 멋진 옷들이 아기 고양이들에겐 무척 불편했었다는 것, 엄마는 손님들이 오시기 전까지 얌전하게 있을 것과 옷을 깨끗하게 해 줄 것을 당부하지만, 과연 집밖으로 마실 나온 그들에게 옷이 얌전히 붙어 있기나 할까? 결국 티파티가 시작할 무렵, 엄마는 그들을 방으로 몰아넣고 손님들에게는 홍역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하고야 마는데... 

도무지 포터 여사는 아이를 키워 본 적이 없는 분이면서 아이들의 행동을 어쩜 이리도 잘 아시는 걸까? 고양이로 분한 세 남매의 천진한 행동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왜냐고? 우리 조카의 행동하고 똑같기 때문이다. 멋진 옷을 입혀 주면 뭐하나? 그게 그들에겐 별 의미가 없다. 물론 새 옷이 기분이야 좋긴 하겠지만, 아이들에게 옷이 새 것이니 얌전히 있으라는 명령은 하나 마나다. 아이들에겐 옷보다 놀이가 먼저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닿는대로 이리저리 달려 가다보면 옷이 더렵히지고 구겨지는 것은 당연지사. 개울이나 수돗가에라도 지나가는 날엔 젖는 것은 순식간이다. 막을 순 없느냐고? 농담하나? 놀겠다는 아이를 어떻게 막나? 그런 방법은 이 세상엔 없다. 또 그래야 하는 가도 모르겠고.  아이들에겐 노는 것이야말로 최대의 공부 아니겠는가. 

오래된 책임에도 내용은 지금 읽어도 하나도 손색이 없다. 아마도 포터가 포착한 이야기 자체가 아이들을 관찰한 것을 토대로 쓴 것이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시대가 아무리 지났다고 한들, 아이들이 어디 달라지겠는가. 여전히 그 아이들이지. 하여 내용이 촌스럽지 않을까 하던 우려는 괜한 것임이 드러났는데...문제는 그림이다. 움직임이 약간은 어색하다. 색상도 그다지 선명하지 않고. 옷 입은 고양이 세 남매는 그야말로 촌스럽다. 요즘 동화책을 만드시는 작가분들의 경우 매우 자연스럽게 그린다는걸 감안하면 포터가 살았을 당시는 디테일에 신경을 덜 쓴 모양이지 싶다. 아마도 그땐 이런 책이 나와준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겠지만서도 말이다. 포터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만한 그림이 지금 보니 촌스럽다니...대략 실망이다. 포터가 그린 고양이 들이야말로 현실속에 보는 고양이 그대로일텐데, 더 앙징맞고 귀엽고 깜찍한 동물들 그림에 익숙한 눈에는 그녀의 동물들이 촌스럽게 느껴진다. 동물들을 의인화한 어색하지 않은 상상력에, 아이들의 행동을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 거기에 동물들의 특징들을 잘 포착해 그려낸 포터만의 장점들이 여전했음에도, 이젠 그녀의 동화책이 한물 가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영어를 처음 배우는 아이들에겐 읽어줄만한 동화책이 아닐까 한다. 길지 않은 세련된 문장들이 읽어주기 딱 좋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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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패러다임 - 조지 소로스 특강, 오류와 불확실성의 시대를 넘어
조지 소로스 지음, 이건 옮김 / 북돋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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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패러다임>이란 팍팍한 제목에 저자가 조지 소로스다. 딱 투자 지침서일거란 생각이 드시지 않는가? 하지만 아니다. 이 책은 헤지펀드의 대부로 악명이 높은 조지 소로스의 철학 강연서다. 작년 중부 유럽 대학에서 했던 강의를 모은 것이라고 하는데, 모르긴 몰라도 강의를 들으러 온 대학생들로 만원이 되지 않았을까 한다.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행운이었을텐데, 거기에 고견을 경청하는 기회였다니, 그걸 놓치는 사람이 바보 아니겠는가. 게다가 이제 그의 나이 79세, 투자에 대한 감은 약간 잃었을지 모르나 세계에 대한 식견 만큼은 오히려 단단해질 시기다. 80년이나 되는 세월을 흘려 보내면서 세계의 모든 것에 귀를 열어놓고 산 사람이라면 더욱이나 더, 후손들에게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는 입을 열었다.

 

과연 그는 어떤 말을 하고 있을까?

 

내가 법학을 전공할때 맨 처음 배운 것중 하나가 "견제와 균형" 이란 개념이었다. 당시 인간은 마냥 선할 수도 있다고 믿던 나는 왜, 반드시, 꼭 , 필연적으로 견제가 인간 사회에 필요하다는 것인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부여된 막강 권력을 올바로 쓸 수 있는 인간이 그렇게 없다고? 설마...  권력이 집중하면 부패하기 마련이라는 명제에 그걸 어떻게 100% 확신하냐고 되묻고 싶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지만 진짜로 그랬다. 이제는 안다. 권력이건 돈이건 힘이건 간에 누군가를 통제할 위치에 서 있는 사람이 그걸 함부로 쓰지 않는다는건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부패를 욕하기보다--왜냐면 그건 당연한 것이니까--청렴을 칭찬하고 싶은 것도 그때문이다. 얼마전 읽은 < 삼성을 생각하다.>라는 책을 보면서 물론 비록 삼성의 비리가 극악스럽다기는 하나 삼성가의 사람들의 행태를 이상하게 여기는 저자를 보면서 순진하단 생각을 했다. 과연 전 세계 거부들 중에 괴팍한 괴짜가 아닌 사람들이 얼마나 될 거라 보나? 똑똑하고 정직하며 이성적이고 지적인데다 상식적이고 무게 잡는 것과 아첨을 혐오하는 평범한  보통 사람처럼 행동하는 CEO ? 글쎄... 그나마 인텔의 앤디 정도가 합격하려나? 버핏은 좀 인간적으로 느껴지지 않아서 탈락, 빌 게이츠는 정말로 인간이 아닐지 모른다. 어쨌거나 힘이 가졌을때 올바로 쓸지 아니면 나쁘게 쓸지를 결정하는 사람은 바로 그 개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지 소로스는 어느 쪽일지 궁금했다. 그 역시 그것에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고 말이다. 과연 그는 볼드몰트일까?  아니면 덤불도어일까? 그도 아니면 볼드몰트의 과거를 가진 개과천선한 덤불도어?

 

나를 그를 잘 모른다. 그래서 어느 것이 그의 모습이라고 단정짓진 못하겠다. 처음 인상으로 봐선 세번째가 맞지 않을까 싶었지만, 책을 읽고 나니 그보단 덤불도어처럼 보여지고 싶은 토니어 크뢰거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세상에나, 최고의 펀드매니저라고 불리는 사람에게 토니어 크뢰거의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깜짝 놀랐다. 하지만 소로스는 정말로 크뢰거를 닮아 있었다. 자신의 말에 귀 기울여 주길 바라면서 청자들을 쫓아 다니는 모습까지도.

 

 그는 이 책에서 말한다. 이 세상이 보다 나은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젊은 시절 포퍼의 <열린 사회>에 공감했던 저자는 이 지구가 나아갈 방향이 열린 사회이길 열망하고 있었다. 그를 위해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내재한 불확실성과 오류를 직시하고 제거 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자신이 젊은 시절 돈을 벌 수 있었던 것도 인간의 그런 헛점들을 탐구하고 이용한 결과였다면서. 철학적인 개념으로 오류성과 재귀성을 들고 있지만 뭐 어려운 개념 아니다. 우리는 틀리게 판단하기 쉽고, 그 틀림에 기인해 집단으로 염원하다보면 그것이 현실화 된다는 말이니까. 읽어보면 쉽게 이해되니 걱정하지 마시길... 그는 인간을 꿰뚫어 보는 것이 투자건 사업이건 삶에서건 성공하는 비결이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정작 그가 들려 주고 싶어 한 말은 그것이 아니다. 그는 우리 모두가 이길 수 있는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싶어했다. 단 한 사람이 성공하고 나머지는 패배하는 패러다임이 아닌, 우리모두 행복하고 성공할 수 있는 패러다임 말이다. 왜 사회는 일직선으로 진보하지 않는가?  적어도 퇴보는 안 해야 되는거 아냐? 친절한 소로씨는 현재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볼멘 소리를 한다.

 

그렇다. 투자계의 전설인 그가 바라는 것은 지금보단 진일보한 사회란다. 우리 모두 행복한 사회, 정치엔 도덕성이, 돈엔 윤리가, 견해엔 자유가, 권력엔 진실이 통하는 사회 말이다. 그의 말을 듣다보면 너무 쉬워 보여--아니, 그보단 그것이 너무 당연해 보여--아직까지 우리가 이런 사회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는 것이 이상해 보인다. 우리 모두가 이성적이고 지적이라면 그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개인으로써는 그럴 수 있겠지만 군중으로써는 아니다. 소로스 역시 그렇다는걸 잘 안다. 그는 이상주의자이기 앞서 골수까지 현실주의자이니까. 그가 대단한 점은 현실을 인정한 채 패배한 채로 앉아 있을 생각이 그에게 없다는 것이었다. 불평이나 한탄보단 연구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탁상공론보다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도.  하여 그는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최대한 자신의 돈을 지원할 생각이라고 한다. 그것이 자신이 가진 힘을 최대한 멋지게 쓰는 방법이라 여기는 듯 했다. 내게도 그렇게 보인다. 물고기를 잡아주느니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게 낫다는 속담처럼 말이다. 우린 근본적으로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그것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던지 간에. 우리 세대에 그런 일이 벌어지는걸 보게 될거라 생각되지 않지만, 적어도 씨앗이라고 뿌려 놓으면 뭔가 달라지지 않겠는가. 나도 바란다. 그가 염원한 사회가 실현되기를. 그래서 미래 언젠가 우리 지구가 그런 사회를 갖게 되기를. 우리 후손들이 자신의 힘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 있기를 . 그리고 견제가 왜 필요하다는 것인지 이해 못하는 사회가 되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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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6
잭 케루악 지음, 이만식 옮김 / 민음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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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영혼이라기 보다는 색다른 것에 끌리는 경향이 있는 샐 파라다이스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정신 사나운 청년 딘 모리아티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미국 횡단기다. 저자 잭 케루악의 소설속 자아인 샐 파라다이스는 할 일도 없던 차에 모험과 인생을 찾아 미국을 횡단해 보기로 한다. 책임도 의무도 미래도 희망도 돈도 없이 무작정 떠나는 여행길, 히치하이커와 친구들의 도움만으로 광활한 미대륙을 횡단하는 여정은 덴버와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다시 동부로, 멕시코시티로 이어진다.  마치 여행 자체를 중계 하는 듯 쉴새 없이 터져 나오는 입담, 대화 자체를 복사하는 놀라운 기억력, 그의 흥미를 끌어 내기에 충분한 개성을 가진 괴짜 친구들, 마음 내키는대로 떠나고 머무는 자유로움과 때때로 보여지는 통찰력등이 이 책의 위상을 높이고 있었다. 특히 초반 도입부, 핸드 헬드 기법으로 찍은 영화를 보는듯한 박진감이 넘치는 문체나, 그의 여정 자체에서 풍겨대는 독창성,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등장인물인 딘 모리아티의 기행등이 왜 그의 작품이 아직까지 회자 되고 있는지 짐작하게 했다. 남과는 확연히 비교되는 그 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던데,  아마 그것이 이 작품을 타임지나 뉴스위크지 선정 100대 명저에 뽑히게 한 가장 큰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선명한 목소리를 내는 작가가( =Originality) 그리 흔한 것은 아니니 말이다.

 

이 책은 몇 년전 원서로 읽고 이번이 두번째다. 그렇다보니 두 권에 명저를 넘어 신화적인 책으로 꼽히는 책임에도 그에 관한 리뷰가 저렇게 짧아져 버렸다.  한번 쓴 것을 다시 쓰려니 귀찮아진 것이다. 그렇게 귀찮아 할 것을 다시 읽은 건 처음 읽었을때 별로길래 혹시나 내가 잘못 이해한 것은 아닐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1권을 읽을때만 해도 내가 잘못 읽은게 분명하지 싶었다. 정신 번쩍 나도록 독창적인 문제, 아니 왜 이런 글을 내가 놓친 거지?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2부로 넘어가면서 곧바로 전해지는 익숙한 데자뷰... 총체적으로 정신이 나간 사람들의 기행을 쉬지도 않고 읽다보니 지루해서 미칠 것 같다. 마지막에 가선 그야말로 의무감에 간신히 읽었는데, 그 순간 깨달았다. 지난 번에도 그랬었다는 것을. 당시 퉁명스럽게 리뷰를 쓸 수밖엔 없었던 것은 책을 집어 던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인내심이 바닥나 버렸기 때문이었음이 쉽게 추측됐다.  책을 내려 놓으면서 든 ' 아이고. 이 정신 나간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은 도무지 어떤 인간들이냐,' 싶던 것도 똑같았다. 도무지 사회가 얼마나 곪아 있고, 갑갑했길래 이런 미친 사람들의 일탈에 속시원함을 느끼며 우상시 하게 된건지, 갑자기 미국 5~60년대 사람들이 가여워졌다.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중심적인 인물이 안하무인 동성애자인 게르망트 대공작(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혹 아시는 분은 지적해 주시길.) 이라면 이 책의 주인공은 딘 모리아티다. 사실 그 둘이 아니라면 두 작품이 걸작으로 탄생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소설이라는 것이 인간에 대한 새로운 고찰을 끌어 내는 것이라면, 적어도 그들같이 독특해야 새롭다는 말을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한때는 놀랍도록 신기한 존재였던 그들도 시간이 흘러 분석을 거듭하다보면 신선함을 잃어버린 다는 점이다. 익숙해 져서냐고? 어느 정도는...하지만 그보다는 개성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그렇지 않다는걸 알게 되서 일수도 있다. 마법 상자에 들어간 토끼가 실은 사라진게 아니라 숨어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심드렁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런면에서 딘이라는 등장인물에 대한 작가의 놀라움이 실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해하면 이 책은 조금 다르게 받아들여 질 것이다. 작가가 설명하는 딘은 이렇다. 자의식없이 되는대로 떠들고, 꼴리는 대로 섹스하고, 내키는대로 버리고 달아나고, 생각나면 다시 찾아오는 ,한마디로 책임감이나 의무, 내진 금기와는 상관없이 사는 인물이다. 매혹적인가? 어쩜 그럴 수도... 대부분의 우리들은 그렇게 살지 못하니 말이다. 작가 역시 그렇게 생각없이 사는 강렬하기만 한 딘이 신기해 죽을 지경이다. 어쩜 저렇게 자유로울 수 있을까? 도인의 경지에 오른 인물처럼 보인다. 자신과 관계한 모든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악의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를 미워할 수없게 만드는 묘한 구석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딘은 왜 그렇게 행동한 것일까? 잭이 경원에 차서 바라보는 것처럼 그는 개성 넘치는 천재나 도인인 것일까? 아니면 모든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정신병자에 불과한 것일까?  정신병원에서 막 탈출했거나 아니면 다시 들어가야 마땅한?

 

몇년전에 읽었을 때와 달리 이번엔 딘이라는 인물이 비교적 뚜렷하게 눈에 들어왔는데, 자세히 보니 그는 매우 심하게 상태 나빠진 노홍철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에너지 넘치고, 흥미있는 것에는 열정을 다하지만 오래가진 못하고, 늘 떠들고, 자극을 추구하고, 자극 상대가 자주 바뀌며, 남의 말에 잘 귀 기울이지 않고, 조울증 환자처럼 기분이 들떴다 순식간에 의기소침해 지는 등...심리학적으로 이런 것들은 집중력 장애를 가지고 있던 아이가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성장했을때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한다. 현란한 응원단장처럼 늘 붕 떠 있는 사람을 곁에 둔다는 것은 얼마나 흥분되는 일일까?  만약 내가 서커스같은 소란스러움과 기괴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딘은 더할 나위 없이 흥미진진한 상대일 것이다. 어쩜 잭 케루엑에겐 딘이란 사내가 그렇지 않았을까 한다. 절벽으로 내달리는 아찔한 기분으로 살면서도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가는 딘이 잭에겐 특별난 존재로 비춰졌을 것이다. 적어도 난 저 정도로 망가지진 않았잖아? 라는 우월감도 느끼면서 말이다. 인생의 치어리더이자, 희생양, 사이비 구세주,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다는 상황에서도 비참함없이 웃을 수 있는, 아니 한술 더떠서 이보다 더 나쁠 수 없는 상황까지 만들어 내야 살 맛이 나는 사람... 그렇다보니, 잭에겐 그가 친구이기 이전에 일말의 안도감을 주는 존재이지 않았을까? 잭이 딘을 향해 불평을 하고 버림을 받으면서도 이리저리 휘둘리며 살았는지 이해 되는 대목이다.

 

하여간 초반은 괜찮지만 2부를 읽으려면 각오를 좀 하셔야 할 것이다. 똑같은 미친 짓거리를 지치지도 않고 되풀이 해대는 사내들의 일지를 들여다 봐야 하니 말이다. 지루하고 지겹다. 내용이 그러할진대, 문장이 출중하면 뭐하나?  한가지로 지루할 뿐이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이 책을 읽으면서 "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한 사회의 관습과 제도, 온갖 형태의 업악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를 찾고 진정한 해방을 얻고자 하는 분투를" ( 표지에 쓰인 문구를 옮긴 것임.) 읽어낸다면, 분명 나보다는 감동적이고 흥미진진하게 읽으실 수 있을 것이다. 내게 이 책은 어느정도는 시대의 코미디로 보였다. 정신병자가 우상이 되다 못해 신화가 되었다니 말이다. 그나마 점수를 준다면 독창적이고 독특한 코미디정도? 한 100년 후엔 이 책이 어떻게 해석되어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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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스투어 - 세상에서 제일 발칙한 요리사 앤서니 보뎅의 엽기발랄 세계음식기행
앤서니 보뎅 지음, 장성주 옮김 / 컬처그라퍼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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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컨피덴셜>이라는 책을 쓴 뒤로 스타 요리사 자리에 오른 앤서니 보뎅은 점차 요리사의 일이 자신에게 벅차다는걸 느끼게 된다. 안식년 겸, 요리에 대한 열정을 되찾을 겸 그는 세계를 돌아보며 새로운 요리를 맛 보기로 한다. 처음엔 그 여정을 바탕으로 책을 쓸 생각이었으나 곧 일은 커지고 말아 다큐멘터리를 찍는 대 공사가 되고 만다. 카메라 스탭과 피디를 데리고 다니면서 세계 미각 여행을 떠난 보뎅이 쓴 일지를 묶은 것이다.  TV용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본인의 솔직한 심정이 빼곡히 적혀져 있다는 것이 장점, 물론 세계 여러 나라의 요리들을 눈으로나마 보게 되는 것도 좋았지만서도 말이다. 

이 책을 보면서 확실히 일류 요리사가 되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저자의 미각이 다른 사람보다 월등하다는 것이 글속에서 묻어났기 때문이다. 좀처럼 책을 읽으면서 구역질 하지 않는데, 유독 이 책을 읽으면서 구토가 자주 일어났던 것도 저자의 미각에 대한 집착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냄새건 미각이건 간에 그에게 다가오는 모든 감각들을 세세히 묘사하는 그의 서술 방식, 그처럼 예민한 감각을 갖고 있다면 나는 아마도 살아남기 힘들었을 듯...잘만 활용하면 요리사로써 성공할 수 있었겠지만서도 말이다. 

일류 요리사는 체력이 출중해야 한다. 요리사는 미각을 좋아야 한다. 요리사는 양심적이여야 한다. 요리사는 용감해야 하고--힘든 일이나 일이 한꺼번에 밀려 드는 것을 겁내지 않아야 하니까--사람들 잘 다뤄야 한다...요리사로써 요리사의 세계를 까발려 주는데 그만한 사람이 없지 싶다. 뷔페는 왠만하면 먹지 말 것과 식당 추천 요리 역시 안 먹는게 좋다는걸 그를 통해 처음 알았다. 역시나 같은 업계 사람이 들려주는 영업 기밀이 최고다. 나같이 주는 대로 먹는 사람은 죽었다 깨나고 몰랐을테니 말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저자의 말투가 좀 거칠다는 점이었다. 욕설이나 비속어가 남발하는데, 금세 이해된다는 점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 아니라 문장속에서 비속어는 좀 걸리적대기 마련이다. 글을 왠만큼 쓰는 사람이긴 했지만, 듣기에 세련되게 욕하는 방법만은 아직 터득하지 못하시지 않았나 한다. 하긴 그걸 제대로 터득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싶지만서도, 그런 이해가 용서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한다. 참, 완벽한 한끼를 찾고자 하는 그의 소망은 이뤄졌을까? 그렇다고 한다. 몇번이나 천국에 다녀왔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세계는 넓고 먹을 것은 널렸다는 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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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나무 - 그림으로 보는 자연의 경이로움
신여명 옮김, 토머스 로커 그림, 캔더스 크리스티안센 글 / 두레아이들 / 2009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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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서 있는 나무의 1년 12 달의 모습을 연차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봄의 나무, 여름의 나무, 가을 ,겨울의 나무... 등등...화려하고, 추레하고, 쓸쓸하고 , 풍성하며 때론 신비한  나무의 1년을 책 하나에 담아낸 것은 좋았지만, 읽다보면 지루하다는 점이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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