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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전에 들어갔습니다
오쿠다 히데오 지음, 임희선 옮김 / 작품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난 일본 작가 이름이 그다지 익숙치 않다. 음. 다시 생각해보니 대부분의 작가 이름을 잘 외지 못한다. 실은 대부분 사람들의 이름을 잘 외는 편이 아니다. 나름 심각하게 듣고 열심이 외려 하지만, 하루 정도 지나고 나면 가물가물해지기 일쑤다. 원래 그런 처지에 문자마저 낯선 일본 작가라면, 자연스럽게 엄청나게 헷갈린다. 작가 이름을 못 외는 것은 당연하고, 엄청난 노력을 거쳐 외웠다고 해도 이 사람이 그 사람이던가 헷갈린다. 오다쿠인지 오쿠다인지는 영영 알길이 없을 것이다. 누가 내게 이런 증상이 흔한 일이라고 말해준다면 참 좋겠다. 틀릴때마다 기가 죽으니 말이다. 뭐, 어쨌든 이런 말을 이렇게 주절주절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이 책이 제목이 재밌어 보여서 고른 것이라는걸 말하기 위해서다. 작가가 오쿠다 히데오인건 알았지만 처음 보는 작가인줄 알았다. 그가 <공중 그네>의 저자인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그래도 나름 그의 책을 여러권 읽었는데 말이다. 이 책이 너무도 맘에 들어 연보를 살펴보니 공중그네의 저자라는게 아닌가. 깜짝 놀랐다. 더 놀란 것은 이 책이 오쿠다 히데오의 데뷔작이라는 점이었다. 데뷔작이 후속작보다 더 맘에 드는 경우는 드문데, 아마도 이 분은 초창기부터 유명 작가가 될 만한 싹이 충분했던 모양이다.물론 본인은 자신이 작가가 될 줄 저얼대 몰랐다고 하지만서도. 실은 아직도 자신이 작가라는 사실에 놀란다고 한다. 그런 그이지만 사람들이 그의 책을 읽는 이유는, 아마도 공감이 될만한 말들을 꾸준히 끄적이고 있어서는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제목에서 암시하다시피, 이 양반 스포츠 매니아시란다. 보통 매니아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스포츠 사랑을 소재로 수필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시간은 많고 할 일은 없을때 꾸준히 스포츠를 시청하시는 열혈 스포츠 광팬이셨는데, 그것이 도가 트다 보니 이런 수필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앞에 나서서 으싸으싸 난리는 쳐대는 그런 광팬은 아니다. 성격상 그렇게 열정적인(?) 사람은 못되니 말이다 .대신 그런 사람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나름 삶의 희열을 맛 보는 그런 사람이라고나 할까? 공중 그네에 나오는 의사 이라부를 보는 듯 생뚱맞기 그지 없다. 아무리 봐도 이라부의 원형은 작가 자신이 분명하다. 게다가 아무리 인색하게 쳐준다고 해도 이라부 못지 않게 웃기신다. 그보다 개성있고, 나름 논리적으로 공감가는 말도 처연하게 내 뱉는데, 귀엽다. 특이한데도, 변태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하는건 쉽지 않은데 말이다. 무해한 개성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경계를 아주 잘 타신다.
그렇게 소심한 광팬 출신인 그가 쓴 스포츠 칼럼집이다. 야구, 검도, 레슬링, 스모, 기타등등 다양한 스포츠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는데, 정말로 재밌다. 어깨에 힘 하나 안 들이고 쓴 문장들이 쉽게 쉽게 읽힌다. 본인이 내가 좀 이상하지 않는가 라고 물을 정도로 희한한 것들을 발견해 내는 재주가 있던데, 관찰력이 대단하지 싶다. 말하자면 우리가 스쳐가면서 흘려 버리는 일상들을 그는 예리하게 포착하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것들이야말로 개성있는 작가가 되기 위한 자질이 아니겠는가. 함께 보고 느끼긴 하지만 워낙 자잘하고 스쳐가는 것이라, 미처 말로 표현해내지 못하는 점들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쉽게 툭툭 내뱉으니 말이다. 그런면에서 보자면 본인은 극구 부인하지만, 탁월한 작가의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스포츠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가볍게 공감하면서 읽기 좋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인간 수컷은 싫어> 왜? 멍청하니까...라고 말하던 요하네라 마리 여사의 배필로 이 책의 작가인 오쿠다 히데오를 소개시켜 주었으면 어떨까 라는 상상이었다.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책속의 두 분이 닮아도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둔한 듯 예리한 지성을 숨기고 있던 것이나, 그럼에도 감출 길 없던 섬세한 인간미, 말끝마다 죄송합니다...를 달고 살았던 것과 의뭉스런 유머 감각등... 두 분 다 독신인줄 아는데--물론 마리 여사는 몇 년전 세상을 뜨셨지만--둘이 실제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었다면 잘 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서로를 이해하는데 조금의 어려움도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마리 여사는 조금 새침한 편이고, 히데오는 두리뭉실듯하니, 그야말로 천생연분인데 말이다. 뭐, 이 생에서는 이미 어긋나셨으니, 다음 생이란게 있다면 두 분이 꼭 한번 만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