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투 런 Born to Run - 신비의 원시부족이 가르쳐준 행복의 비밀
크리스토퍼 맥두걸 지음, 민영진 옮김 / 페이퍼로드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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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때 달리기 매니아였던 사람으로써, 달리기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소란 떠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고? 그야 달리기는 그냥 달리면 되는 것이니까. 말이 필요없다는 뜻이다. < 우린 달리기 위해 태어 났다>는 의미의 이 책이 나온 것을 보면서도 약간은 뜨악한 심정이 든 것도 그때문이었다. 아, 또 달리기에 대해 난리 버거지를 피우는 또 하나의 책이 나왔구만. 식상해....라면서 안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여러 리뷰어들이 굉장한 책이라고 흥분을 하지 뭔가. 그래? 다른 책에선 보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양이지? 그렇담 당장 봐야지. 순식간에 반발심이 무너져 내리면서 저항선이 뚫려져 버렸다. 그렇다. 난 지조 없는 여자였던 것이다. 

하여 냉큼 달려가 본 이 책...어땠냐고?결론만 말하자면 다른 달리기 책에 비해선 그래도 영양가 있었으나, 격찬을 할만큼 대단하진 않았다. 음 역시 달리고 싶은 사람은 그냥 달리면 된다니까? 말이 필요 없어요~~~! 라면서 책을 내려 놓았다. 그래도 나름 괜찮은 책이니, 소개를 하자면 바로 이렇다. 

종군 기자로 나름 체육에는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던 저자는 달리기를 할때마다 다리가 고장나가 고민에 빠진다. 갖은 수를 다 썼음에도 여전히 고장이 나는 다리, 그는 결국 달리기를 포기하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서게 된다. 눈물을 머금고 달리기는 이제 그만 두어야 하나보다 할 무렵, 그는 달리기 위해 태어 났다는 놀라운 부족의 소식을 듣게 된다. 중남미 멕시코  험준한 협곡안에 살고 있다는 타라우마 족은 과거 원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진한 채 달리기의 희열을 만끽하며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장 그들의 비밀을 알아 내고 싶었던 저자는 백인으로썬 처음 그들에게 받아 들여진 카바요 블랑코를 만나러 간다.신출귀몰한다는 그를 만나지 못할까 노심초사하던 그는 우연히도 그를 만나 자신이 알고 싶어하던 것에 대해 신나게 질문하기 시작한다. 카바요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함께 보낸 며칠 동안 저자는 그를 통해 달리기의 노하우를 전수 받게 된다. 새로운 자유를 느끼면서 달리기를 배우게 된 그는 달리면 달릴 수록 다치는 그의 다리가 실은 운동화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멋진 기능이 추가된 비싼 운동화의 푹신함이 오히려 발의 기능을 방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된 그는 카바요가 멋진 계획이 있다고 하는 말에 도와 주기로 한다. 그것은 바로 타라우마라 족과 문명세계에서 온 사람들간에 달리기 시합을 하는 것, 장소는 물론 협곡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었다. 마약 장수들이나 드나드는 험악한 곳을 단지 달리기 시합을 위해 와 줄만한 사람들이 있을지 반신반의한 가운데, 그는 차근차근 시합 준비를 해나간다. 과연 카바요의 오랜 꿈은 이뤄질 것인가? 달리기에 미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자 작가는 흐믓함에 가슴이 뻐근해 지는데... 

 달리기에 미친 사람들의 열정을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었다는 점이 장점. 단점이라면 가끔가다 다소 횡설수설한다는 것과 너무 달리기에 몰두한 나머지 모든 것을 달리기에 포커스를 맞추던 것이었다. 그는 추론해 낸다. 인간이 불행하고 우울하고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한 것은 <달리기 위해 진화된 >우리 인간이 달리기를 하지 않아서라고. 그러니까 만병 통치약으로 달리기를 권장하고 있는 책이라고 보면 된다. 그의 이런 추론을 본 나의 반응은 10년전 바람 피운 것을 아직도 들먹이는 아내를 바라보면 남편이 할 듯한 것이었다. 

" 아니, 언제적 이야기를 아직까지도?" 

그래, 우리가 네 발로 기어다니다 달리기를 위해 진화를 했다고 치자. 도대체 그게 언제적 이야기라고, 우리 몸의 진화상의 증거들을 찾는건가?  아무리 달리기가 좋다고 한들 모든 것을 달리기에 맞추면 곤란한거 아니겠는가. 말하자면 객관성을 잃어 보였다는 뜻이다. 실은 그런 오바스러운 표현들이 이 책의 가치를 떨어 뜨리고 있었다. 일례로 맨처음 타라우마라족을 설명할때는 난 외계인 비스드름한 신비한 부족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줄 알고 깜짝 놀랐다니까. ......그러더니 마지막에 가서 보니 그저 그렇고 그런 원시 부족에 불과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물론 달리기야 탁월했지만, 인간으로써의 한계를 벗어나는 수준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적어도 서구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따라할 정도라면 기괴하다고는 말 못하지 않겠는가. 

그렇다 보니 책 장을 덮는데 발효 됐다가 푹 가라앉은 막걸리 반죽처럼 기대가 꺼져 버리는걸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달리기가 좋다는 이야기구만. 음...알아, 알고 있다니까. 그러니 제발 오바하지는 말아죠. 그래도 그 오바만 없었더라면 탄탄한 책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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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끝에 내가 있다 - CNN 앵커, 앤더슨 쿠퍼의 전쟁, 재난, 그리고 생존의 기억
앤더슨 쿠퍼 지음, 채인택.중앙일보 국제부 옮김 / 고려원북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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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3대 재벌가로 손꼽히는 밴더빌트 가문의 자손이자 CNN 간판 앵커로 유명한 앤더슨 쿠퍼가 쓴 회고록이다. 그다지 촘촘하지도 기록을 남기려 쓴 글도 아닌 듯 하니 자서전이라 할 수는 없고, 그냥 살아온 이야기를 덤덤히 풀어놓았다 생각하심 되겠다.  내가 본 인상으로는 한 시기의 마감(closer)의 의미로 쓴 것 같았다. 무엇엔가 쫓기는 듯 내전과 기아와 홍수와 파괴의 현장으로 자신을 내 몰았던 어떤 번뇌로부터의 졸업 말이다. 그렇다면 그를 사지로 내 몬 번뇌의 시작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9살 무렵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은 뒤 바쁜 나날들로 슬픔을 이겨 내고 있던 앤더슨 쿠퍼는 어느날 엄마에게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형이 엄마가 지켜보는 앞에서 난관으로 떨어져 자살을 했다는 것이었다. 언론에선 "신탁 펀드에서 나온 이자만으로 평생 먹고 사는" 팔자 좋은 아이의 자살에 대해 신나게 떠들어 대고, 엄마는 유령이라도 본 듯 그 애가 '체조 선수' 처럼 내 눈 앞에서 다이빙을 했다는 말을 되풀이 한다. 그런 상황을 지켜 보던 쿠퍼는 양가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형에 대한 그리움과 이 모든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자신에게 맡기고 떠나 버렸다는 분노가. 난 도대체 어떻게 살아가라고...하지만 내면 깊숙이 그를 사로잡은 질문은 아마도 이런 것이었으리라. 난 앞으로 형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인생이란 무엇일까? 과연 이 모든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왜 내게 이런 일이?  그는 알아야만 했다. 이 무작위로 벌어지는 일들의 의미를 ... 생존하기 위해, 내면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는 길을 떠난다. 그때가 그의 나이 21살, 당시의 심정을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었던 나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나의 내면에서 느끼는 고통과 일치하는 바깥세상이 있다면 그곳에서 머물고 싶었다. 내게는 마음의 평정이 필요했다. 나는 살아남고 싶었으며 다른 이들로부터 무엇가는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전쟁'은 나의 유일한 선택처럼 보였다.

 

아프리카, 넓은 대지가 그에게 숨 쉴 공간을 제공해 주는 가운데, 그는 내전으로 황량해진 오지를 취재해 간다. 너무 위험하고 처참해서 아무도 가지 않는 곳만을 골라 쫓는 기자가 되어버린 그는 서서히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얼마나 위험하길래라며 확 감이 안 오시는 분을 위해 그가 갔던 곳의 지명을 알려 드리면 다음과 같다. 보스니아, 사라예보, 르완다,소말리아, 이라크, 아이티, 쓰리랑카, 카트리나가 몰려온 뉴올리언즈등등...이름만 들어도 오싹하다. 제 정신인 사람이라면 도망가야 마땅한 곳에 제발로 취재하겠다며 들어가는 그의 진지함에( 나 같으면 정신 나감이라고 하겠지만.) 사람들은 신뢰를 보내오고 인기를 얻게 된다. 하지만 그가 유명해 진 것은 단지 그가 재난과 비극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카메라를 들고 서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적인 시선, 균형 잡힌 감각에 공정한 보도, 그리고 두려움 없이 공격을 해대는 성역없는 기자 정신이 돋보였던 때문이다. 일예로 카트리나 현장을 취재하면서 미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그를 보자니 미국 사람이 아님에도 속이 다 시원하더라.  과연, 부시 정부를 향해 그렇게 직선적으로 입바른 소리를 할만한 사람이 미국에서도 얼마나 되겠는가. 주눅 들거나 눈치 보지 않고 늘 당당한 앤더슨 쿠퍼, 그건 어쩌면 밴더빌트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자신의 명성을 올바르게 쓰는 사람으로써 그는 너무 매력적이다. 인간적인 매력을 자산으로 친다면 아마 그의 재산은 그가 받은 유산의 가치를 넘어서지 않을까. 우리나라엔 그런 언론인 어디 없나, 한없이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한때 오지만을 전공으로 돌아다니던 그는 이제 미국으로 돌아와 정착을 한 듯 하다. 르완다의 학살 현장에서 그는 이제 집에 돌아갈 때가 됐다고 선언한다.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고, 다 채워진 것이다. 슬픔의 잔이, 비통의 시간이, 의문에 대한 해답과 보고 겪어야 했던 것에 대한 호기심, 인간에 대한 지식도, 그리고 어디선가 형을 만날지 모른다는 그리움까지도. 극한까지 자신을 밀어 붙이던 그가 이제 깨달음의 항아리를 채운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형의 죽음에 대한 애통함을 가시게 하진 못한다. 단지 이제 그는 죽음을 넘어섰다는 것일뿐...

 

수 많은 죽음들을 목격하면서 그는 삶과 죽음에 경계선이 단지 희미할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자신의 슬픔을 세상을 이해하는데 올곧이 써 버린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서야 이 세상에 사는 사람과 세상을 등진 사람을이애하며 온전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고. 죽음이 그렇게 우리 곁에 있는 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낭떠러지 끝에 매달려도 그 끈을 놓치 않고 잘 매달리는 것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은 것이 4개월 전인데, 그동안 리뷰를 쓰기가 쉽지가 않았다. 재벌 3세라는 화려한 겉모양에 가려진 그의 본 모습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읽은 <행운에 속지 마라>에 이런 말이 쓰여져 있었다. 독자 서평은 책에 관한 것이라기 보다는 그 리뷰어 개인의 이야기일뿐이라고. 동의한다. 그런 시각에서 이 리뷰는 어쩜 가장 내 개인적인 이야기가 될 것이다.

 

다소 비음이 섞인 차분한 목소리, 30세에 벌써 머리가 세기 시작했다는 백발, 진지한 인상에 재벌이라는 타이틀, 세상의 위험한 곳이라면 어디든 (불러주건 안 불러주건) 열심히 따라다닌 못 말리는 오지랖, 선량해 보이는 눈빛, 미국을 떠들썩하게 한 양육 소송의 주인공인 어머니와 자살한 형등...이것이 앤더슨 쿠퍼에 대한 내 첫 인상이었다. 재벌인데, 전쟁터만 쫓아다닌다고? 사는게 어지간히도 심심했던 모양이군, 특유의 냉소로 난 비아냥 댔다. 그때까진 몰랐다. 그에게서 나의 모습을 보게 될 줄은... 방콕 족인 나와 지구상의 경계선은 없다면서 방방곳곳 누비고 다니는 역마살족인 앤더슨 쿠퍼에게 공통점이 있을 줄 어찌 상상이나 했겠나. 하지만 그랬다. 세상에나, 책을 읽으면서 어찌나 그가 잘 이해되던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의 내면의 역정과 내 것이 놀라울 정도로  흡사했던 것이다. 저건 내 이야기잖아?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난 그가 왜 자신을 전쟁터로 몰 수 밖엔 없었는지 안다. 내면의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는 것을. 세상 끝까지 가보는 것도 슬픔을 이겨내는 한가지 방법이라는 것을 말이다. 어떻게 아냐고? 난 그와 비슷한 나이쯤에 오빠를 잃었다. 그에게 철저히 공감할 수 밖엔 없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나 역시 그랬다. 전전긍긍하면서 해답을 찾아, 슬픔의 에너지가 나를 밀어 붙이는 곳까지 밀려 갔었었다. 종종 생각해 본다. 20대에 오빠를 잃지 않았더라면 지금  난 아주 평범하게 살고 있을 거라고. 그 잃어버린 시간들을 어디가서 보상을 받아야 하나 억울할때도 있다. 오빠를 만나 늘씬하게 패주면 억울함이 좀 풀릴까? 하지만 난 안다. 난 오빠에게 한 마디도 할 수 없을 것임을. 슬픔을 감내해야 하는 것도 사랑의 다른 모습이니, 어쩌겠는가,받아 들여야지.

 

이 책은 한 개인의 회고록으로도,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사는 한 언론인의 회고록으로도 읽을 수 있다. 어떤 것이 더 눈에 들어오는 가는 당신의 관심에 따라 달라지 테지만, 어떤 걸로 읽어도 무방하다. 단지 팁을 드리자면, 어떤 걸로 읽어도 매력적인 한 인간과 마주하게 될 거라는 것이다.특히나 돈이 사람을 비정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한번 보심도 좋을 듯. 편견이 깨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어떠신가? 극한의 경험을 한 선배에게 그 경험담을 들어 보는 것은? 장담컨대 흔한 경험담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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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집 - 책들이 탄생한 매혹의 공간
프란체스카 프레몰리 드룰레 지음, 이세진 옮김, 에리카 레너드 사진 / 윌북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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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집을 찾아서란 제목에 구미가 당겼다. 슬슬 살펴보니 별 내용이 없을 게 뻔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읽게 된 것은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작가들의 집을 구경할 수 있다는 호기심 때문일 것이다. 헤밍웨이, 마크 트웨인, 장 지오노, 특히나 로렌스 더렐이라니... 반가웠다. 그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만들어 낸 곳은 과연 어떤 곳일까? 궁금해서 들여다 본 책이다. 

일단은 생각보단 그다지 멋있는 곳은 아니였다는 점이 실망이었다. 아마도 잡지속에 화려한 인테리어의 집에 너무도 익숙해진 모양이다. 작가의 집과 그들이 창작한 방식과 연대기를 간략하게 나마 적어 놓았는데, 다양한 작가들을 한꺼번에 스캔 하기엔 괜찮지 않을까한다.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작가가 있다면 아마도 그들의 책을 읽는게 좋을 듯. 

가장 마음에 든 집으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집과 마크 트웨인, 그리고...음,. 별로 마음에 든 집이 없는 것 같다. 그러게 별로라니까. 남의 집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는건 실례지만서도, 다 별로 내가 들어가서 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 곳이었다. 더군다나 로렌스 더렐의 경우는 우리나라에 그다지 잘 안 알려진 작가라서 그의 이야기가 생소하기만 했다. 여성 편력이 만만찮으셨다고 하니 좀 실망이긴 한데, 그의 작품을 생각하면 뭐, 놀랄 일도 아니지 싶다. 그래도 말년이 고독하셨다니 안타깝다. 그러게 너무 까다롭게 굴다간 외롭게 마련이라니까. 이렇게 남 이야기를 참으로 하기 쉽다. 남 이야기니까~~~! 

작가들에게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들어보셔도 좋을 듯. 하지만 별로 남는 것은 없다는 것이 살짝 실망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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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의 아버지
카렐 판 론 지음, 김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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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별한 아내와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둔 30대의 과학자 아르민은 재혼한 아내에게서 아이가 없자 병원을 찾는다. 아내에게 문제가 있는것으로 짐작한 그는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자신은 유전적으로 무정자증이라 아예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라는 것, 그렇다면 내 아들은 누구의 아이란 말이냐? 아르민의 얼굴은 노랗게 질려 버린다.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 궁금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죽은 아내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일...두번째 아내 헬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은 전처의 과거를 캐고 다니기 시작하는데... 

인간은 동물이라는 말을 우린 자주 한다. 혈기 넘치는 두 남녀가 한 방에 있을때 알길 없는 성적 긴장감이 당연히 흘러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건 아니지...어떻게 뻔히 며느리이고 시아버지라는걸 아는 두 사람이, 신접 살림 꾸리기 위해 일을 하다 섹스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남편의 동생을 낳아서 한 집안에서 행복하게 살아다고? 아무리 인간이 동물이라지만 이건 해도 너무한다. 이 정도는 곤란하지 않는가? 안 그래? 강간범과 이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어. 네델란드, 섹스와 마약과 창녀에 대해 엄청나게 관대한 곳이라고 하던데, 사실 그건 겉보기의 문제고, 거길 다녀온 사람들은 다들 그들을 비웃더라. 그렇다. 어느정도 인간이 아니다 싶으면 우리는 비웃게 되어 있다. 제발. 이건 아니잖냐고 주장하고 싶다.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사랑이라....아들을 속이면서 말이다. 세상에 그런 아버지가 도대체 어디 있누,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면서 아들에게 키우라고 한다는게 도무지 말이 되는건지 ...참, 이런 책을 외국 책이라고 해서 번역해 읽어야 하는 건지 한심하다. 막장이라는 우리나라도 잘 만들잖아? 굳이 수입해 올 필요 없다니... 

참, 이 책을 보고 그래도 깨달았다. 우리나라 막장은 그나마 인간적이라는 것을. 책 표지가 예쁘다. 표지에 속아, 제목에 속아 책을 사시진 마시길. 정말 책 장에 꽂아 두기 싫은 책이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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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28 0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네사 2011-03-28 23:06   좋아요 0 | URL
음...네델란드보다 일본이 더 심하단 논리가 성립되는건가요?
참 일본은 알다가도 모를 나라 같아요. 어떤땐 우리나라보다 정서가 더 정갈하고 이성적인데,
또 막장으로 나가면 상상도 못하게 막장란 말이죠.
다양성이란 측면에선 매력적일 수도 있겠지만 종종 정체가 뭔지 혼란스럽다는 느낌입니다.
하여간 일본이건 네덜란드건 간에 이런 막장 읽고 있으면 욕지기 나와요.
시간낭비같고 말이죠.^^
 
행운에 속지 마라 - 기대하지 마라, 예측하지 마라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이건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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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주식 투자를 한다는 말에 이웃 블러거 한 분이 덧글을 남겨 주셨다. 주식투자가 재밌기도 하지만 어렵기도 하다면서, 부디 조심해서 하라고 당부하신다. 그 말에 나는냉큼  좋은 충고가 있으면 한마디 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투자를 하고 있다고는 하나 완전 초보인 나는 실은 거래를 어떻게 하는지도 모른다.--부끄러운 말이지만 모든걸 동생을 통해 하고 있어 그렇다.--그렇다고 오해는 마시라. 대박날 종목을 추천해 달라고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저 기본적으로 피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그 내막 정도를 알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지만 뭐, 충고도 아는 사람을 상대로 해야 들어 먹히지, 나 처럼 백지인 사람을 상대로 조언을 늘어놔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여 다른 사람 성가시게 하지 말고 차라리 공부를 하자 싶어 이 책 저 책 찔러 보다 걸린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내가 책과는 별 상관없는 저간의 사정을 이렇게 장황하게 털어놓는 이유는 바로 그 이웃에서 얻고 싶어했던 충고를 이 책에서 얻었기 때문이다. 남들은 몇 년 걸려서도 얻기 힘든  정보를 책 하나로 해결하다니, 이 정도면 운이 좋았지 싶다. 행운에 속지 말라고 저자가 충고를 하고 있기는 하나, 어쩌겠는가. 이럴 때면 운이 좋다고 느껴지는걸. 필요할때 알고 있어야 하는 정보를 제때 듣는 것도 어찌보면 행운 아니겠는가. 각설하고,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왜 투자를 하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날 웃게 만든 단서는 이것이다.

 "제정신인 사람을 순식간에 주식 도박자로 바꿔놓는 사람은, (월스트리트 전문가나 말재주 좋은 홍보가가 아닌) 주식투자로 횡재했다고 뽐내는 이웃 사람들이다. 모든 사람이 경험을 통해서 이익을 얻는다면, 이 세상에 현명한 부자들이 넘쳐 날..."
                                                                                         --에드윈 르페브르 /시장을 뒤흔든 100명의 거인들/ 피셔/p.107

아, 얄미운 이웃들이여. 돈을 벌었으면 얌전히 입 다물고 있을 것이지 왜 그리 나대고 다닌댜냐?  그렇게 그들은 불운에 절어 비참한 우리의 속을 뒤집어 놓는다. 이쯤되면 혹 나도? 라면서 나서고 싶어 지는게 인지상정이다. 뭐, 그들에게만 돈 벼락이 내리란 법 있나? 그들도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는거 아니겠어? 라면서 비장한 각오로 투자에 나선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이쯤에서 이 책의 저자의 프로필을 들여다 보기로 하자. 그는 20대부터 월가에서 증권 전문가로 일한 사람이다. 누구보다 월가의 사정에 빠삭하다는 뜻이다. 10년동안 월가의  트레이더로 일하면서 그는 월가 사람들의 up& down을 주목하게 되었다고 한다. 예리한 관찰력과 탁월한 분석력에 비판력, 그리고 인간성을 꿰뚫은 통찰력을 가진 그는 남들이 뒷담화 정도로 그쳤을 사건들에서 한가지 이론을 만들어 낸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인 Fooled by Randomness이다. 우연에 속지 마라 정도가 되려나? 풀어서 말하면 우연히 얻어 걸린 상황을 능력이라고 착각해서 인생을 그르치지는 말라는 뜻이다. 이해가 안 가시려나? 걱정 마시라. 그의 설명을 들어보면 금방 이해가 되실테니...

월가만큼 인생의 부침이 심한 곳은 아마 없지 않을까 싶다. 30대의 나이에 수백억대의 연봉을 받던 트레이더가 한 순간의 실수로 쫓겨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곳이니 말이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일생에 걸쳐 벌어질 일들이,  대박 신화의 본고장인 월가에서는 수 년 내진 수개월 안에 벌어진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겠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의 극적인 흥망성쇠 드라마를 목격하다 보면 인간인 우리는 자연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무엇이 그들을 성공에서 끌어 내린 것일까? 내진 영원할 것 같았던 성공 신화가 하루 아침에 무너진 이유는 무엇일까? 라는 것들... 그것이 바로 이 책의 저자 나심이 한 일이다. 그는 주변 사람들의 경우를 꼼꼼히 분석해서 이런 결론을 내린다. 눈 먼 행운이란 없다고. 혹시나 행운이란게 주어졌다고 해도 시간이 축적되면 운이 미치는 영향은 사라지기 마련이라고. 월가의 착각은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고 말이다. 성공한 트레이더는 뜻밖의 대박에 자신의 능력이 출중해서 나온 결과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것은 그가 바로 그 자리에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일뿐, 능력과는 상관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러냐고? 우선 시장이 분석이나 예측만으로 가늠될 수 있는 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장은 그야말로 술 취한 사람처럼 갈짓 자로 횡보하는 곳이다. 그것을 영어로 하자면  Randomness라고 한다. 술 취한 사람이 다음 발길을 어느쪽으로 향해 갈지 항상 맞추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있다면 그건 정말로 운 아니겠는가. 이때 등장하는 것이 확률이다. 만약 그 발걸음을 맞춘 사람이 이기는 구조가 계속되는데, 그 내기를 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많다면, 그 중에서 능력과는 상관없이 진짜로 운이 좋은 사람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월가에서 성공한 트레이더들이 바로 그 경우라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보는건 딱 그  트레이더의 up 상황이다. 뉴스나 광고를 통해 대대적으로 대박 신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심 탈렙은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그들의 down도 목격한 사람이기에.


 

그렇다면 그렇게 성공한 이들이 처참하게 추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탈렙은 그것이 성공의 원인을 운이 아니라 자신의 출중한 능력으로 돌리게 되는 심리를 든다.  물론 심각한 착각이다. 이 착각이 무서운 것은 파괴력이 크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능력을 과신한 채 자신의 무지를 망각한 트레이더들은 곧장 거만해 져서 판을 크게 벌리게 된다고 한다. 그 다음 길은 ? 쪽박이나 파산이나 해고의 길이지 무엇이겠는가. 높이 올라간 사람이 크게 떨어진다고 자신의 상상 이상으로 성공했던 그는 자신이 상상했던 이하로 떨어지기 마련이다. 친절하게도  이런 현상을 나심 탈렙은 진화론의 학설을 빌려 "장기적으로 상황이 균형을 이룬 것" 이라 설명해준다. 쉽게 말해 up+ down= 0으로의 수렴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논리적 아닌가.

 

 그는 이것을 쉽게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수학(확률론) 과 진화 생물학과 인지과학을 통해 설득력있게 논증을 풀어내고 있었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숫자가 있어야 확실하게 감을 잡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굳이 그런 것이 아니라도 직관적으로 쉽게 수긍되는 사실이다. 월가의 트레이더처럼 단시간에 극명한 부침을 겪는건 아니지만, 살다보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을 보게 되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렇다 .한마디로 여기나 거기나 인생을 살아간다는건 쉬운게 아니다. 끝을 보기 전까진 그 누구도 마지막을 장담할 수 없는게 인생이다.(하니 자만하지 말지니라~~~)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 가다보니 처음 주식 투자로 시작된 이야기가 처세술로 읽혀지는 부분으로 흘러 간다. 공감이 가는 말이 많았는데, 특히 소음이 싫어서 신문을 읽지 않는다는 말엔 박수를 쳤다. 요즘 내가 딱 그 심정이라서 더 그랬는가 보다. 하여간 새겨 듣는다고 해도 나쁘지 않은 조언들을 많이 들어 있었다. 그걸 받아들일지 아닐지는 당신의 몫이겠지만서도. 리뷰가 길어지는 관계로 느낀 점들을 짧게 남겨 본다면...


1. 우리 모두는 대충 총체적으로 무식하다.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주식 전문가란 타이틀을 단 사람도 마찬가지다. 하니 펀드 매니저라는 말에 기가 죽어 그가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해줄거란 착각은 절대 하지 말란다. 돈이 썩어나는 관계로 펀드 매니저의 자동차나 집, 휴가 수당을 대신 지불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면...
2. 미래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최대한 멀리 도망가라.
3. 대박이나 드라마틱한 삶을 좋아하는 사람들, 다시 말해 지루함을 못 참는 사람들은 명심하라. 추락의 길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는 것을.
4. 신은 중립적이다. 내진 우리에게 무심하다. 하니 운에 기대지 말라. 신이 당신을 편애한다는 생각도, 신이 타인만 편애 할거란 생각도 해로울 뿐이다.
5. 박사나 교수,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 심오하게 어려운 말을 쓴다면 일단 의심해 보라. 의심한다고 돈이 들지 않지만 의심하지 않을 시 자존심에 상처를 입거나 순진하단 소릴 듣거나 바가지를 쓸 경우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6. 남자들은 수학적으로 논증해야 진짜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7. 박학 다식한 나심도 심리학 분야에선 조금 무딘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워렌 버핏이 검소하게 사는걸 비웃던데, 그가 그렇게 사는건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가 아니다. 그저 돈을 모으는게 좋은 것이지. 돈이란 편리하고 귀족적인 삶을 의미하기도 하지만(나심처럼)  때론 힘 그 자체일 수도 (버핏처럼) 있다.
8. 대박 신화가 거짓이라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나심 왈, 내 이웃의 잔디가 더 파랗다는 어리석은 착각에서 벗어나 성실하게 살라신다.  혹여 주식 투자를 할 생각이면 인덱스 펀드 투자가 낫단다. 믿거나 말거나...
9. 흥미롭게도 나심 탈렙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의 저자인 포퍼의 팬이란다. 아마도 둘의 사고가 비슷해서 인 듯 싶다. 재밌는 것은 포퍼가 말년에 남에게 충고를 하느라 에너지를 낭비했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나심 탈렙이 비웃는 장면이었다. 하하하...내가 보기엔 나심, 당신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그건 포퍼나 탈렙이 어리석어서가 아니다. 그저 마음씨가 고운 사람이라서 그런 것일뿐. 하여간 이성과 본성이 대결을 하면 순식간에 패배하는건 늘 이성 같다. 포퍼도 그랬고, 나심 탈렙도 그랬으며, 아마 나 역시도 마찬가지 아닐까...
10. 주식 투자를 처음 시작하시는 분들에게 꼭 일독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투자에도 좋고, 인생에도 도움이 되니 일석 이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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