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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킹 베를린 - 천유로 세대의 위험한 선택
소니아 로시 지음, 황현숙 옮김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이탈리아 오지에서 자란 소니아는 미래 없는 고향을 떠나 무작정 베를린으로 유학을 온다. 수학을 잘하던 그녀는 베를린 대학에서 어떻게 해서든 학위를 딸 생각이었다. 하지만 낯선 도시에 적응도 하기 전 그녀는 나이트 클럽에서 만난 라드야와 동거를 시작한다. 둘의 동거는 달콤했지만 문제는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가난, 그 와중에도 라드야가 창남 생활을 하고 있다는걸 알게 된 소니아는 그에게 그만둘 것을 요구한다. 라드야가 다른 일자리를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자 운명의 장난인지 이번엔 그녀가 매춘 생활에 들어가게 된다. 처음엔 인터넷 채팅을 통해 몸만 보여주던 그녀는 조금씩 조금씩 본격적인 매춘에 발을 담그게 되더니, 곧 안마 시술소, 퀴기등 본격적인 섹스워커로 살아가게 된다. 꿈에도 그리던 대학생이 되긴 했지만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저녁이면 매춘에 나서야만 하는 그녀, 쉽게 돈을 벌릴만한 일자리가 매춘밖에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몇년만 참자고 자신을 달랜다. 험한 손님들을 상대할때마다 이 생활을 때려 치워야지 다짐하지만, 늘 돈의 유혹앞에 지고 마는데...
왜, 꼭 매춘을 했어야만 했냐고 묻지는 않기로 했다. 그건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이니 말이다. 갖고 있던 용기를 다 끌어 모아도 매춘은 상상도 못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갖고 있는 용기를 다 끌어 모아 그 길로 들어서는 사람도 있는거다. 청운의 꿈은 안고 유학을 갔는데, 매춘이라니, 라며 다들 충격을 받으시던데, 소니아의 말을 들어보면 그녀가 매춘에 들어선 것은 어쩔 수 없었던 일은 아니었지 싶다.--다시 말해 안스러워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그녀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성관념이 희박한 사람이었다. 땀 흘려 돈 벌기 싫다는 이유로 매춘에 나서는 여자, 영화 볼 돈이 없다는 이유로 매춘에 나서는 여자, 나이트 클럽에서 처음 만난 그날 남자와 동거에 들어가질 않나, 그 남자를 먹여 살린다고 매춘에 나서질 않나, 그녀는 그저 헤픈 여자였을 뿐이다. 그녀는 깨닫고 있지 못하는 듯 보였지만 솔직히 그녀는 매춘을 불러 들이는 사람 같았다. 첫 남편도 창남, 바람을 피우는 상대도 창남, 자신은 창녀, 친구도 창녀... 그녀를 대학생이라는 신분으로 파악하는 것 같던데, 그녀의 정체성이 매춘녀에 더 가깝지 않나 싶다.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어 줄 수는 없는 것이니 말이다. 굶어 죽기 싫어 매춘을 하는게 아니라, 사고 싶은 건 많은데 돈이 없어 매춘을 하는 것이라면 그건 다른 사람보다 매춘이란 것에 대한 감수성이 낮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고, 바로 그녀가 그런 케이스였다. 하여간 그런 우여곡절을 거쳐 매춘 생활에 가담하게 된 그녀, 그 생활은 어땠을까? 돈이 궁해 하고 있긴 하지만 늘 다른 직업을 꿈꾸던 그녀의 바람은 이뤄졌을까?
무엇보다 매춘녀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매춘녀 자신이 쓴 매춘 일기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추측성 기사를 쓸 수밖엔 없는 르뽀와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과연 어떤 매춘녀가 자신의 생각과 삶을 이렇게 솔직하게 써내려갈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만은 박수를 받아도 좋지 싶다. 그들도 인간이고, 아이를 사랑하고,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고 싶어 하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녀는 힘주어 토로하고 있었다. 색안경을 끼고 자신들을 재단하진 말라는 것이다. 그들도 인간이라고, 그냥 어쩌다 보니 특이한 직업군에 들어선 것일뿐이지. 게다가 너희들, 우리 없이는 살지도 못하잖아? 우린 필요악이라고...라고 말하는 뉘앙스엔 살짝 미소가 흐르기도 했다. 틀린 말도 아니니 말이다. 특히나 섹스 워커들 사이에서 싹트는 우정이 인상적이었는데, 같은 험한 일을 하고 있다는 동지의식 때문인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다른 여자들 무리보다 커 보였다. 어디로 가면 돈을 잘 벌고, 어떤 사람은 경계를 해야 하며, 아이를 낳은 친구에게 선물을 하고, 함께 귀여워 하는 장면에서 그들도 다른 여자들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짠했다. 그들 역시 행복해지고 싶어하는 보통의 여자들이었던 것이다.
그밖에 인상적인 것을 들라면, 독일 매춘 사업계 구조였다. 포주가 갈취하는 구조인 우리나라와는 달리 거긴 당사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구조라고 한다. 자신의 개인 의사로 섹스 워커가 되고, 언제든지 그만 둘 수도 있고, 원한다면 언제나 다른 좋은 곳을 알아봐서 갈 수 있다고하니, 우리나라보단 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일단 섹스 워커가 되면 섹스가 곧 돈을 세는 단위로 머리속에 자리 잡게 된다는 사실이었다. 언젠가 토크쇼에 어떤 매춘녀가 " 난 그래도 돈을 받지만 너희들은 공짜로 해주잖아!" 라면서 방청객을 비웃는 바람에 소동이 인 적이 있었는데, 소니아의 말을 듣고보니 그 매춘녀의 말이 이해가 간다. 하여간 그런 생각들은 결국은 사람과의 관계를 왜곡시킬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물론 그렇게 따지자면, 과연 이 세상에 왜곡되지 않은 정상적인 관계가 과연 얼마나 되겠나 싶지만서도. 뭐, 그 자신이 결과를 감당하겠다면야, 그걸 비난할 필요는 아니, 비난한 근거는 되지 못하는게 아닐까 싶다.
소니아의 현재는 어떨까? 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근사한 직장을 얻어 홀로 아들을 키우고 있다고 한다. 자신을 꾸준이 등쳐먹던 남편과는 이혼을 했지만, 현재는 유부남과 열애중이라고...섹스워커시절, 자신을 찾아오는 유부남을 보면서 그들의 위선을 폭로하고, 비웃고, 험담하더니, 그 생활을 벗어나서도 그녀가 택한 삶이 유부남과의 연애라는 것은 아이러니질 않는가. 한마디로 인생의 경험에서 하나도 배운게 없지 싶다. 괜찮은 싱글 남자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녀가 그렇게 바라마지 않던 안정된 생활 역시 기대하기 힘들텐데...어째 내가 보기엔 그녀가 원하던 생활을 손에 넣을 것 같지는 않다. 그건 그녀의 과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단 그녀가 정상적이고, 가정적이며, 안정적인 사람들을 기피하는 성향이 있지 않는가 싶어서다. 그녀의 취향이 늘 바람을 피는 책임감 제로인 유부남 창남들이라면, 신이 도와주지 않는다 해도, 그런 사람들에 둘러 싸여 있기 마련 아니겠는가. 그것이 그녀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될지리니...